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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464 추천 수 0 2009.10.10 14:34:10
.........
성경본문 : 골2:6-7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2002.10.29

오늘 오후 예배가 끝난 후 남전도회 친선 축구 시합을 한다고 합니다. 축구를 할 때 각자 서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등에 번호를 달고 뜁니다. 포지션이 있는 것입니다. 문지기는 문지기가 서야할 장소가 있고 공격진은 공격진이 있어야할 장소가 있습니다. 링커는 링커로서의 역할을 해야할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뒤범벅이 되면 동네 축구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저마다 제 자리가 있습니다. 나무 뿌리는 땅에 박혀 있어야 하고 열매는 나무 가지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뿌리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안됩니다. 차는 주차할 수 있는 곳에 서 있어야하지 거리 중앙에 주차해 있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사고난 차입니다. 침대는 침실에 있어야 하지 거실에 있으면 안됩니다. 밥알은 밥그릇에 있어야 합니다. 이마나 코에 묻어 있으면 안됩니다. 학생은 학생의 자리에서 일심 불란으로 공부에 전심 전념할 때 믿음직스럽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학생이 학교에 가지 않고 인터넷 방이나, 도박장, 오락실, 노래방, 싸움판에 있다면 그것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이 제 자리를 떠나면 그것은 탈영이고 감옥에 갑니다. 보초는 보초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곳이 제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에게도 신앙 생활하면서 기본적으로 서 있어야할 자리가 있습니다. 이 자리를 떠나면 신앙의 이상 징후가 생기는 것입니다. 요즈음 이재록씨에 대한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비쳤습니다. 얼마전 신문을 보니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기보다는 자신은 가전제품도 기도로 고친다고 말하는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분의 근본적인 잘못은 무엇입니까? 제 자리에 서 있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 놓았습니다. 하나님을 마음대로 부리는 사람처럼 자신을 위장했습니다. 자신을 반 하나님으로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인간일 뿐입니다. 인간은 인간의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내내 매스컴에서 옷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보도하는지 우리는 그 이유를 앎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 역시 모두 다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 자리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장관의 부인은 장관이 아닙니다. 힘있는 자가 아닙니다. 단 장관의 부인일 따름입니다. 재벌의 부인도 재벌이 아닙니다. 단 그 재벌의 부인일 따름입니다. 다를 제 자리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천사 사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분수를 모르고 하나님처럼 되려다가 타락하였습니다. 최초의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처럼 되려다가 타락하였습니다.
창3:5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5)"
이말에 넘어간 것입니다. 멀쩡하던 여인이 이말에 넘어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여 따먹었습니다.
제 자리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은 제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것이 질서의 아름다움, 조화의 아름다움입니다.

1. 우리 믿음의 사람의 제 자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그 안에"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6절에서 "그 안에 행하되" 7절에서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예수 안에 신앙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나무를 비유해서 말한 것입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돈에 뿌리를 박으면 안됩니다. 명예에 뿌리를 박으면 안됩니다. 세상 권력에 뿌리를 박으면 안됩니다. 자아 성취에 뿌리를 박으면 안됩니다. 쾌락에 뿌리를 박으면 안됩니다.
그 안에 세움을 입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 건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우는 신앙 인생의 건물의 기초석은 무엇이겠습니까? 머릿돌 되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안에 세워지는 건물만 마지막 인생의 종막, 역사의 종막이 올 때 불에 타지 않고 남는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계속에서 그 안에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찾아 보세요.(골 1:2; 골 1:4; 골 1:14; 골 1:17; 골 1:19: 골 1:28: 골 2:3; 골 2:9; 골 2:10; 골 2:11; 골 2:12; 골 3:18; 골 3:20; 골 4:7; 골 4:17)
15번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많은 신앙인들이 제 자리를 떠나 탈선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 뿌리를 박지 못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루소는 십대는 과자에 움직이고, 이십대는 연인에 움직이고, 삼십대는 쾌락에 움직이고, 사십대는 야심에 움직이고, 오십대는 탐욕에 움직이고 오십대가 넘으면 명예에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뿌리가 되고 우리가 세움을 입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것들입니까? 우리는 주님께 뿌리를 박고 주님으로부터 세움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얼마저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아내가 예뻐 보일 때..."란 글입니다. 20대 후반은 남편을 위해서 예쁜 아기 낳아줄 때 아내가 예뻐 보이고, 30대 후반은 좋은 집에 못산다고 불평하지 않고 잘 참아주는 아내를 볼 때 예뻐 보이고, 40대 후반은 "당신 건강해요. 건강해야 되요" 하면서 보약 다려줄 때 예뻐 보이고, 50대 후반은 "당신은 참 훌륭한 사람이야"라고 칭찬해 줄 때 아주 예뻐 보이고, 60대 후반은 '당신과 살아온 생은 참 행복한 삶이었다'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싱긋이 웃어줄 때 예뻐 보이고, 70대 후반은 조용히 "우리가 죽거든 양지바른 곳에 함께 묻힙시다." 하면서 주름잡힌 얼굴로 쳐다볼 때 아주 예뻐 보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아내가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주님 때문입니다. 아내가 비록 보약 안다려 주어도 주님 때문에 예뻐 보이는 것입니다. 그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기 작으면 어떻습니까? 허리가 굴으면 어떻습니까? 뚱뚱하면 어떻습니까? 주님 안에 뿌리를 박으면 모든 것이 사랑스럽습니다. 코고는 것도 사랑스럽습니다.
교회도 주님 안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숫자에 뿌리를 내리고, 목사의 학벌에 뿌리를 내리고, 장로의 돈에 뿌리를 내리고, 교회의 재산에 뿌리를 내리면 안됩니다. 오직 교회의 주인은 삼위 일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아야 합니다. 요즈음 안타까운 것은 너무도 교회가 주님께 뿌리를 내리지 않고 다른 것에 내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도 이사하여 교회를 선택할 때 수천 수만이 나오는 화려한 교회를 선택합니다. 교회의 제자리가 수만이 되는 것이 제 자리일까요? 한 부모가 수십명의 아들을 거느리고 있다면 그 가정이 아름답고 제 기능을 할 수 있겠습니까? 큰 것이 반드시 선한 것은 아니고 많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고 효휼성있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 뿌리를 내려야 그 교회가 바른 교회입니다.
얼마전 이재록 씨 사건이 보도된 후 c3tv에서 네티즌들이 토론을 했습니다. 많은 글이 올라 온 것을 보았습니다. 그 글 중 당신네 교회 목사의 점수를 한번 매겨봐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한 번 점수를 매겨 보십시오.
1)당신네 교회 목사의 사례비가 한달 2백 50만원을 넘는가?
2)당신네 교회 목사의 집이 40평 이상인가?
3)당신네 교회 목사가 외제차나, 대형차를 타고 다니는가?
4)설교시간에 한 달에 한번 이상 헌금을 강조하는가?
5)설교시간에 성경 구절을 다섯 번 이상 인용하는가?
6)설교를 할 때 축복을 받으라고 강조를 하는가?
7)골프장에 가서 골프를 치는가?
8)교회재정을 구제나, 봉사에 쓰는 것을 그 목사가 좋아하는가?
9)마지막으로 열 번째 고급호텔 출입을 자주 하는가?
집이 40평 이상이면 1점을 주고, 아니면 0점, 외제차나 대형차를 타고 다니면 1점, 아니면 0점을 주라는 것입니다. 평가를 그렇게 해서 자기네 교회 목사가 0점에서 2점을 받았으면 더 할데 없이 훌륭한 목사니 절대로 교회 옮길 생각을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3점에서 5점이 되면 이 목사님은 문제가 있는 목사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고치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기다리면 가능성이 있는 목사라는 것입니다. 6점 이상이 되면 망설일 것 없이 그 교회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왜 이런 글이 나와야 합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제자리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지 않고 교회 성장에, 세상적 명예와, 부, 권세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은 정치인 대로, 학자는 학자 대로, 언론인은 언론인대로, 군인은 군인 대로, 모두가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은 그리스도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무엇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까?
세상 것 뿌리 박아 보십시오. 맺히는 열매는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 오시는 날 아무 쓸데 없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께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입니다. 받았다는 말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공로 없으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여 하나님의 아들 삼아 주었다는 말입니다. 자신에게 월급만 조금 많이 주어도 얼마나 사람들이 그 사람을 밤잠도 자지 않고 일합니까?
우리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었습니다. 어느날 해변에 가 죽을 뻔 하였는데 누군가 살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남자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그 사람위해 살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하나님의 아들 삼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으로부터 떠날 수 있습니까?

2. 우리가 제 자리에 서 있는 삶이란 삶의 현장에서 어떤 유혹과 환란 속에서도 믿음에 굳게 서있는 것입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세 종류가 있습니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입니다. 있어서는 안되는 사람입니다. 꼭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유혹이 온다할 지라도 믿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1)구원 받은 믿음으로 어떤 유혹에서도 유혹을 물리치고 굳게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벧전 5:9)"
믿음 밖에 없습니다. 이 믿음은 어디에서 옵니까? 오늘 본문에는 교훈을 받은 대로입니다.
로마서에서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성령께서 감동을 시켜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 12:3)"

2)능력을 행하는 믿음으로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능력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단지 지식적으로만 아는 믿음으로 끝나요.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약 2:19)" 이 믿음이 구원얻는 믿음이나 능력을 행하는 믿음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역사적인 믿음입니다. "목사님이 그러다고 하더라,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었다." "예수님은 4대 성인 중의 하나다." 종교적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이런 믿음으로는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질 수 밖에 없습니다.
헐버트 선교사는 "한국인들의 관념은 불교적이고 삶은 유교적이고 위기를 당할 땐 미신적이다." 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교회 오면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가정에 가면 직장과 사회에 나가면 능력있는 믿음의 삶을 살지 못하니까 옷 사건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애인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집사인 애인의 부모는 청년에게 몇가지를 물었습니다. "자네는 앞으로 뭘 할 작정인가?" " 예, 전 신학자가 될겁니다. " " 오, 대단하군. 그런데, 그동안 내 딸은 어떻게 먹여 살릴거지?" "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할겁니다. 그리고, 따님은 하나님이 먹여 살리실 겁니다." " 그러면, 자식들은 누가 키우지? " " 하나님께서 키우실 겁니다. " 이윽고, 병구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애인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요?" 그러자, 장인이 대답했습니다. "그 녀석은 돈도 없고, 취직할 계획도 없더군. 나를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것 같어."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해타산적인 것이 생기면 믿음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능력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일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아버지가 예배를 드리고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해질 무렵이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무시 한 개 먹었으면 좋겠다" "남의 것을 돈도 주지않고 그냥 먹어요?" "주인이 없쟎아! 얘야, 내가 무우밭에 들어가서 한 개 뽑아올 터이니, 너 누가 보는지 망을 보거라" 아버지는 무우 밭에 들어가서 큰 것을 하나 골라서 뽑으려 하였습니다. 그때 아들이 소리쳤습니다. "누가 봐요!" 아버지는 깜짝 놀라 뛰어나오면서 말했습니다. "누가 보냐?" "하나님이 보셔요" 아버지는 빙긋 웃으면서 아들에게 말했다. "그냥 가자! 장난삼아 한 번 그래본걸 갖고 너는 참말로 내가 무우를 뽑는 줄 알았냐?""아니요, 저도 장난삼아 말했어요."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롬 14:23)"
삶의 현장에서 믿음의 능력을 나타내고 사는 삶을 삽시다. 유혹많고 환란 많은 세상이지만 믿음 우리의 믿음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결국 무릎을 끓습니다.

3. 우리가 제 자리에 서 있는 삶이란 결국 삶의 열매로 감사의 열매가 맺히는 삶입니다.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면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면 무엇을 맺히겠습니까?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 희락,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감사의 열매를 맺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뿌리를 박고 있으면 감사의 생활이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제 자리를 지키는데 감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지금 감옥에 갖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감사란 어떤 조건을 주어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오늘 골로새서를 보십시오. 우리가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1)구속 곧 죄사함이 있다고 말합니다.(1:14)
2)완전한 자로 서게 됩니다.(1:28)
3)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져 있다고 말합니다.(2:3)
4)그 안에서 성령의 충만이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2:10)
5)그 안에서 죄로 죽은 우리가 생명으로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2:12)

스펄젼 목사님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천국을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요나는 고기 뱃속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스데반은 돌무더기 속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자 밥이 되면서도 감사했고 캄캄한 카타콤 속에서도 감사했습니다

광야의 백성이 되지 마십시오. 불평하지 마십시오. 주안에 있는 자들은 주어진 조건에 감사합니다.
한 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권투 왕이었던 무하마드 알리라는 사람을 잘 알 것입니다. 그는 현재 파킨스씨 병에 걸려 투병 중입니다. 이 병 때문에 그는 지난 번 애틀란타 올림픽 때 성화를 점화하러 나와서는 제대로 점화를 못 할 정도로 덜덜 떨었다고 합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왕년에 전성기 때 "내가 최고로 힘이 세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자다."하고 큰소리치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덜덜 떨면서 성화도 겨우 점화할 만큼 약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기자 회견을 하면서 "사람보다도 하나님이 더 강하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제가 이 병에 들었습니다."라면서 감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늘 불만족합니다. 늘 원망합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홍해를 건넌 후 감격하여 찬양을 합니다. 조금 가니 마라의 쓴물이 있습니다. 원망합니다.
"출 15: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신광야에서 양식이 없습니다. "출 16:2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또 원망합니다.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자 "출 17:3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고 원망합니다. 만나와 메추라기 싫증이 납니다. 그러자 " 민 11: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 거늘" 원망합니다. 정탐꾼을 보낸 후에 어떻습니까? "민 14: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감사 불감증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원망 자동기계입니다. 입만 벌리면 원망합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이방인의 죄를 지적할 때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했습니다. 말세의 특징 중 하나 입니다. "(딤후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교회를 원망합니다. "사랑이 없다. 돌봐 주지 않는다. 뜨거움이 없다. 말씀에 능력이 없다. 비좁다. 프로그램이 없다. 갖가지 구실을 붙여 원망합니다. "
웰즈 "완전한 교회를 찾지 마라. 찾을 수 없을뿐더러 찾아낸다 하여도 당신이 그 교회의 교인이 될 자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남편 아내 자식 부모를 원망합니다. "우리 남편은 왜 이렇게 돈을 적게 벌어 오는가? 다른 집 남편은 진급을 하였는데, 우리 집 아버지는 왜 이렇게 출세를 하지 못하였는가? 우리 아들들은 왜 이렇게 공부를 못하는가?"
경주 어느 교회에서 되어 진 일입니다. 한쪽 다리가 조금 짧아서 몸을 기우뚱거리며 걷는 장로가 있었습니다. 주일 낮 예배 시간에 목사를 따라 강단에 올라갔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장로의 기도시간이었다.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장로는 의자에 와서 앉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기도를 마친 후에 강딴에서 내려와 교인들과같이 의자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 것이 통례인데 이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강단 뒷 의자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목사의설교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장로는 졸고 있었습니다. 장로는 깊이 졸다가 몸이 기웃뚱하는 바람에 그만 짧은 다리쪽이 미끄러져 강단에서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순간 교회 안은 웃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장로의 부인은 그 모습을 보고 민망하여 옆 사람이 듣도록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병신 육갑하고 있네"
그래도 다치지 않은 것을 감사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네 삶이 이렇습니다.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능력으로 삶의 현장에서 꼭 있어야 할 사람으로 능력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그리스도 안에 거하므로 감사의 열매를 맺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골로새서2:6-7/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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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예레미야 새로운 세상 렘33:14-18  정용섭 목사  2009-10-07 1843
2024 요한복음 앎의 영적인 차원 요6:41-51  정용섭 목사  2009-10-07 1831
2023 여호수아 만나 이후 수5:10-12  정용섭 목사  2009-10-06 1893
2022 요한복음 자유로워지는 길 요8:31-38  정용섭 목사  2009-10-06 1842
2021 시편 공간, 울림, 하나님 시19:1-6  정용섭 목사  2009-10-06 2050
2020 예레미야 기다림의 이중성 렘29:4-14  정용섭 목사  2009-10-06 2344
2019 히브리서 받은 복과 누리는 복 히4:1~11  조용기 목사  2009-10-05 2006
2018 창세기 영원한 행복의 길 창1: 31  조용기 목사  2009-10-05 1601
2017 누가복음 말씀 위에 선 믿음 눅8:22~25  조용기 목사  2009-10-05 2078
2016 사도행전 성령강림의 축복 행2:1~4  조용기 목사  2009-10-05 1955
2015 히브리서 벼랑 끝에 서게 될 때 히10:37~39  조용기 목사  2009-10-05 2197
2014 디모데후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딤후4:6~8  조용기 목사  2009-10-05 2806
2013 요한삼서 왜 삼중축복인가? 요삼1: 2  조용기 목사  2009-10-0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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