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율법과 은혜

요한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671 추천 수 0 2009.10.12 23:27:00
.........
성경본문 : 요1:17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6년 7월 30일 주일3부 설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서론]
저는 여러분과 함께 ‘율법과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의 생활을 혁신시킨 수많은 발명품 중에 하나가 우리가 매일 즐겁게 보는 거울입니다. 인류는 거울을 발명하고 거울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자기의 모습을 비로소 바라봄으로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해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이상은 할 수가 없습니다. 거울에 비친 때 묻은 모습, 흐트러진 모습은 거울 자체로써는 고칠 수 없습니다. 거울은 잘못된 것을 비춰줄 따름이지 고쳐줄 능력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율법은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의 죄지은 모습, 불의한 모습, 추악한 모습, 버림받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에 따른 준엄한 심판을 선언할 뿐 조금도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더러워진 우리 외형의 모습을 물로 씻거나 혹은 성형수술을 하여 고치는 것처럼 더러워진 우리 내적 모습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보혈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로 고쳐질 수가 있습니다.

[본론]
1. 율법의 눈과 은혜의 눈

렘브란트가 그린 ‘탕자의 귀향’이라는 그림을 보면 남루한 옷에 흉한 몰골을 한 탕자가 등을 보인 채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깊은 연민으로 그 아들을 바라보며 손을 넓게 펴서 아들의 등을 어루만집니다. 바로 옆에는 아버지와 똑같은 붉은색 외투를 입고 수염을 기른 사람이 서 있습니다. 바로 큰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큰아들은 아버지와 달리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허리춤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시선은 냉정하고 차갑습니다. 작가 수잔 헤르츠는 바로 이 큰아들에게 ‘제2의 탕자’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신학자 사이먼 키스트메이커는 큰아들을 ‘자기 의에 가득 찬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큰아들은 ‘율법의 눈’으로 동생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더불어 탕진하고 빈 손들고 돌아온 동생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율법적으로 심판하고 정죄하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큰 아들과 같은 율법의 눈으로 아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사랑과 자비의 눈으로 아들을 본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눈과 은혜의 눈이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이 탕자의 이야기를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한 농부가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가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상속을 달라고 강요해서 그를 받아서 청산해서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여 다 허비한 후에 기근이 와서 살수 없게 되매 돼지를 치는 농장에 가서 일을 하다가 지치고 피곤하고 병들어서 그는 아버지께로 돌아오기로 마음을 작정하고 머리는 흐트러지고 몸은 벌거벗고 병든 채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집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를 섬겨온 형은 무시무시하고 냉정한 눈으로 그 동생을 바라보았습니다. “저런 나쁜 놈! 창기와 더불어 아버지 재산을 허비한 놈을 아버지가 집에 받아들인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그는 아버지를 평론했습니다.
눅15:30에 보면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까? 아버지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나는 이 아들과 함께 잔치 상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은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용서와 사랑의 눈으로 자식을 보았습니다. 그는 눅15:32에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비록 탕자가 되어 아버지의 자산을 창기와 함께 다 먹어치워 버렸으나 회개하고 돌아왔으니 아버지가 너무나 기뻐서 그 아들을 영접하고 이 아들은 잃은 아들인데 도로 찾아왔고 죽은 아들인데 살아났으니 얼마나 기쁘고 즐거우냐. 맏아들과 태도가 전혀 다릅니다. 율법적인 눈으로 보면 이 탕자가 돌아온 사람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눈으로 보면 용서와 사랑으로 품에 품어주고 기뻐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맏아들과 같은 하나님이 아니시라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이 되신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103:12~13절에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야훼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율법은 심판을, 은혜는 구원을 위한 것
율법은 심판을 위한 것이요, 은혜는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율법은 거울과 같아서 우리의 결점을 들추어내고 정죄하고 심판할 따름이지 구원을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만 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성전 뜰에서 말씀을 증거 하는데 이른 새벽에 수많은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 율법주의자들이 한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머리채 휘어잡고 끌고 와서 예수님 발 앞에 내동댕이쳤는데 이 여자는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눈이 붉게 충혈 되고 옷은 흐트러지고 머리는 삼발이 되고 신발도 벗었습니다. 공포에 질려서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은 손에, 손에 돌을 들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이런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당신은 이 여자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율법은 이 여자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으니 율법으로 보면 이 여자를 정죄하고 심판하고 죽이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허리를 굽혀서 손가락으로 무엇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썼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지만 나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계명을 적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 계속해서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이 “당신은 이 여자를 어떻게 하겠나이까? 율법대로 죽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고개를 들어서 큰 자부터 적은 자까지 눈을 맞추어 보시고 난 다음 틀림없이 예수님이 기록한 십계명을 가르치면서 “당신네들 중에 이 법에 저촉되지 않은 사람이 먼저 돌로 쳐라!” 그리고 난 다음 허리를 굽혀서 또 손가락으로 적습니다. 무엇을 적었을까요? 그 사람들이 율법을 어기고 지은 죄를 예수님이 써내려 가니까 예수님 어깨 너머로 손가락이 적은 죄가 자기들에게 해당되니 가슴이 덜컹했습니다. 율법 앞에는 의롭다함을 입을 육체가 없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모두다 돌맹이를 놓아 버리고 살며시 그 자리를 떠나 도망치고 만 것입니다. 한참 후에 이 여자를 정죄하고 심판하고 죽이려고 하던 사람들이 다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율법을 가지고 이 여자를 정죄하는 자에게 주님이 율법으로 대처했습니다. 율법을 적어놓고 “너희들 중에 이 율법에 어긋나지 않은 사람 돌로 쳐라!” 주님의 말씀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모든 사람들이 정죄를 당하고 도망을 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보시고 말씀했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여자가 눈물을 닦고 주변을 돌아보니 돌맹이만 흩어져 있고 한 사람도 없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휘둥그레진 눈을 가지고 “주님 아무도 나를 정죄하는 자가 없나이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바라보시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예수님은 이 여자를 살리려고 하는 은혜의 역사를 베푸신 것입니다.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은 율법으로써 이 여자를 정죄하고 죽이려고 했는데 이 사람 여자를 건져낼 법이 없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위대한 은혜의 역사를 베풀어서 이 여자를 정죄하는 자들에게서 건져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재생의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모두다 하나님 앞에 서면 그 죄가 다 드러나고 벌거벗은 수치를 면할 수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벌거벗은 수치를 면할 수가 없어서 도망쳐서 나무 뒤에 숨지 않았습니까?
네덜란드의 한 시인이 꿈에 천국을 갔습니다. 한 천사가 나와서 그를 맞으며 금 빛나는 책을 보여 주었습니다. 시인이 “그게 무슨 책입니까?”하고 물으니 ‘당신의 삶을 기록한 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고 하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서 가까이 다가가 첫 장을 열어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빽빽히 적혀 있었습니다. 시인이 그 내용이 무엇이냐고 묻자 천사는 ‘당신의 악한 행동들을 빽빽하게 여기에 적어 놓았습니다.’ 시인은 더럭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다음 장을 넘겨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천사는 ‘당신이 했던 사악한 말들이 여기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 장을 보니 더 빽빽했습니다. 천사는 ‘이것은 당신이 했던 악한 생각들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제 그는 다음 장을 넘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넘기는데 보니까 온통 검정색으로 칠해져 있었습니다. 놀란 그에게 천사는 ‘이것이 당신의 악한 마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은 마음에서 악한 생각이 나오고, 악한 생각에서 악한 행동들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시인은 자신이 변명할 수 없는 죄 덩어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죄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꽉 들어찬 자신을 발견하고 절망했다는 글을 읽어 본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 앞에 서서 보면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은 죄 덩어리인 것입니다. 죄 중에 태어나서 죄악 가운데 살다가 죄악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살길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예수님께 나아가야 살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지 아니하고 천지 율법 중에 서있으면 율법은 우리를 발가벗기고 정죄하고 심판하고 영원한 멸망으로 몰아넣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율법 앞에 의롭다함을 입을 육체가 전혀 없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는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신 것입니다.

3. 율법은 모세로,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으로 주신 것
율법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로 받아서 백성에게 준 것입니다.
인간이 범죄 하므로 죄를 드러나게 하고 죄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오만하고 교만해서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 나는 죄지은 적이 없다. 나는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깨끗한 사람이다.”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인간이 거울이 없을 때는 자기 얼굴에 숯먹을 잔뜩 칠해 놓고도 내 얼굴이 깨끗하다고 주장을 합니다. 이 사람에게 아무리 얼굴이 먹이 묻었다. 숯먹이 묻었다고 해도 안 믿습니다. 거울을 비춰줘서 직접 보여주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가 의롭고 죄 없고 깨끗하고 담대하다고 큰소리치나 율법의 거울을 비춰주면 율법에 비친 자기 모습은 처참한 죄인으로 율법의 정죄를 받고 판단을 받고 심판을 받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교만을 깨뜨리고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처참한 죄인인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영적인 거울인 율법을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것입니다.
롬 7:13에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이미 죄는 있는데 계명이 들어와서 비춰보니 죄가 더 심하고 무섭게 드러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인간의 노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아, 내가 수양을 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고 고행을 하고 노력을 하면 내가 의롭게 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의사가 병을 고치려고 할 때 병이 너무 중하면 약으로도 소용이 없고 수술로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처럼 너무나 죄가 많기 때문에 수양과 도덕으로나 의로운 행위로나 고행으로 우리의 죄 가를 도말할 수가 없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죄 덩어리인데 어떻게 우리 스스로 우리를 정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또 이 세상에 사는 사람치고 매일 보는 것이 죄요, 듣는 것이 죄요, 사는 것이 죄인데 이 세상의 죄악을 헤치고 나 혼자 독야청청하고 의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 것입니까?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이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손가락질하고 너는 죄인이라고 정죄하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네가 죄가 없으면 다른 사람의 죄를 정죄하고 심판하라. 네가 정죄하고 심판하는 그 척도로써 너도 정죄 당하고 심판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써는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율법은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갈 3:10~12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율법을 행하면 산다합니다. 그러면 율법을 행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율법을 행하지 못하지요. 오직 우리가 용서와 의로움을 받을 길은 예수 믿는 길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천지 어느 곳에 보아도 우리 스스로 힘으로 죄를 청산하고 의롭게 될 수 있는 길도 방법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결국 예수님의 구원을 바라보도록 인도하는 어린아이의 선생과 같습니다. 율법 하에서 보니 완전히 죄인이요, 또 죄인이요, 또 죄인이요, 또 무서운 죄인인데 살길이 없습니다. 손발은 묶이고 입은 다 막고 이제는 눈도 캄캄하고 변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오직 한 가지 길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 아래 지은 모든 죄를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청산해 버려서 다 용서해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많은 죄가 다 청산되고 용서를 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다는 메시지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메시지요, 은혜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율법 하에서 정죄를 당하고 절망에 처한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은 예수께 나오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오히려 우리를 예수께로 인도하는 초등학교 선생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으면 천방지축으로 자기가 잘났다고 뛰어다니는데 율법에 비추어 보니까 자기의 입을 막고 손, 발이 다 묶여지고 절망적인 죄인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기를 해방시켜 주고 죄에서 용서해 주고 의롭게 해주실 분은 예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 앞에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얻어맞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로 들어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갈 3:23~25에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갈 2:16에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4. 엄청나게 값비싼 은혜
1895년 독일의 뢴트겐(Wilhelm Konrad Rontgen, 1845-1923)이 X선을 발견한 후 인류는 병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도 이 X-Ray로 찍으면 다 나타납니다. 결핵이나 기타 장기에 관련된 질병의 많은 부분이 X-Ray 촬영으로 밝혀져서 의사들이 약을 투여하고 수술을 하고 고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X-Ray로 얼굴 속에 못이 박힌 사람, 뱃속에 수술 가위가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신문에 났습니다. 율법은 X-Ray와 같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보면 감추어진 죄가 다 드러나요. 율법이 오기 전에는 자기 속에 숨겨놓은 죄가 있습니다.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X-Ray가 비취면 감추인 죄가 다 드러납니다. 설 곳이 없습니다. 완전히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율법으로 벌거벗은 존재가 되었으니 우리를 씻어주고 입혀주고 의롭게 해줄 분은 예수님 밖에 없으므로 율법에 쫓긴 우리는 별 도리 없이 십자가 밑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뛰어갈 도리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용서하고 의롭다 하기 위해서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은 너무나 값싸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니 그런 값싼 것이 어디 있느냐. 무슨 노력을 해야지. 여러분 너무 값이 비싸면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해를 여러분 값 주고 비취임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돈 주고 햇빛을 비추라고 하면 이 세상에 살아나갈자 없습니다. 햇빛 안비취면 농사도 못 짓고 동식물도 살아나지 못하고 우리도 살지 못합니다. 햇빛이 너무나 값이 비싸기 때문에 우리가 노력해서 대가를 지불하지 못하고 오직 은혜로 받아들일 따름인 것입니다. 공짜로 받아들입니다. 햇빛을 공짜로 받아들이면서 고맙다 하는 사람 없어요. 당연한 이치로 생각하지요. 오늘 여러분 살아계신 여러분들이 숨을 쉬지 않으면 4분만에 다 죽어요. 이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숨을 쉬고 있는데 이 공기에 돈을 내고 숨 쉬는 사람 누가 있어요? 오늘 제가 이 자리에서 돈 내고 숨 쉬라고 한다면 여러분 살아날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공기는 너무나 귀하고 값이 비싸기 때문에 돈으로 계산할 수 없어요. 공짜로 숨을 쉬지요. 공짜. 부모의 사랑도 돈을 주고 살 수 없지 않습니까? 부모의 사랑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손발이 다 닳도록 수고하고 우리를 살려주신 부모의 사랑을 돈으로 계산할 수 없습니다. 그냥 부모의 사랑은 공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햇빛을 주시고 공기를 주시고 부모의 사랑을 주신 그 하나님이 이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가 율법 하에서 지은 우리 모든 죄를 대신 끌어안고 대신 책임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죽음으로써 죄를 갚아 주셨으니 그 값이 엄청나게 큽니다. 우주보다 그 값이 더 크기 때문에 도저히 우리는 값을 지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물로 공짜로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지만 이 죄를 대신 갚아주신 예수님의 은혜는 우리가 선물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후 5:21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세계 제1의 강철 왕 카네기는 “빚은 다 갚을 수 있지만 우리가 받은 은혜는 영원히 갚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나는 공짜로 받았지만 하나님은 엄청난 값을 지불하신 것이 십자가의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공짜가 아닙니다. 하나님 편에 볼 때는 어마어마한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독생자를 주시고 독생자는 생명을 바쳐서 우리를 위해서 죄를 갚아 주었기 때문에 그 값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값비싼 대가를 지불했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공짜로 받게 되었으니 이 은혜를 받고 감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고 영원히 지옥 불에 타야 될 우리들이 단지 와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기만 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다 용서를 받고 무죄백방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누리게 되었으니 이런 축복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 수가 있습니까? 대박 대박해도 이런 대박이 어디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너무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셨으므로 사람들이 안 믿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 축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세상에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벌 받지 않고 용서받는 일이 있습니까?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했는데 우리 개인 개인은 우리의 죄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죄 때문에 우리가 심판을 받아 죽으면 영원히 지옥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아담, 하와 이후 강림하실 때까지 인류의 모든 죄를 다 책임지고 죽으셨지만 그 죄를 갚고 일어날 수 있는 여력이 계십니다. 우리는 여력이 없어요. 죽어도 우리 죄를 다 못 갚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류의 모든 죄를 다 갚아도 여력이 있어서 부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조선조시대에 나라 돈 천 냥을 먹으면 참소를 당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라 돈 천 냥을 먹고 감옥에 갇혔는데 어느 기간 동안에 빚을 갚으면 도로 나올 수가 있고 빚을 못 갚으면 목 베임을 받습니다. 한 사람이 감옥에 갇혔는데 얼마 있지 않다가 길거리에 활보하고 다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아, 저사람 천 냥 빚을 갚았구나. 그래서 살아났구나.” 만일 길거리에 나오지 못하고 사라지면 “천 냥 빚을 못 갚고 감옥에서 목이 날라 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으로 죄를 지은 영혼은 죽음의 감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죽음의 감옥에 들어가고 영원히 소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감옥에서 도로 나오신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감옥에 들어가서 사흘 만에 그 죄를 다 청산하시고 여력이 계시기 때문에 승리로 감옥 문을 열고 부활해서 나오신 것입니다. 그 감옥에는 공자도 들어가서 못나왔습니다. 석가모니도 그 감옥에 들어가서 못나왔습니다. 맹자도 못나왔습니다. 마호메트도 못나왔습니다. 그들은 위대한 군자요, 우리에게 좋은 진리를 가르쳤지만 죄는 갚지 못했습니다. 자기 죄 값으로 죽음의 감옥 속에 들어가고 못나왔으니 죄의 빚을 못 갚았지요. 예수님은 우리 인류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죽음의 감옥 속에 들어갔으나 사흘 만에 나와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 값을 다 갚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한 것은 인류의 모든 죄를 예수님이 다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천하만국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구원받을 이름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능히 벌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 십자가에 밑에 나아가면 우리가 다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대미문의 홍수를 당했습니다. 전국적으로 비가 얼마나 많이 내리고 얼마나 홍수가 났는지 아주 두렵고 몸서리칩니다. 이렇게 비가 내릴 때 여러분 큰 우산 밑에 있으면 비를 맞지 않잖아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비가 쏟아질 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우산 밑에 들어가면 심판의 비한방울도 임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우산밖에 있으면 계속 심판의 비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 십자가 밑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비는 한 방울도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다 갚아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남녀노유, 빈부, 귀천할 것 없이 잘했거나 못했거나 의인이거나 죄인이거나 선인이거나 악인이거나 그런 인간적인 행동의 잣대로 셀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하고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예수 안 믿으면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들어오면 용서와 의로움을 있고 예수밖에 있으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롬 4: 25절에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19세기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스 I세 때 일입니다. 황제는 병사 복장을 하고 진을 돌아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밤이 깊어 병사들을 돌보기 위해서 이 막사, 저 막사를 기웃기웃하고 있었습니다. 한 막사에 불이 켜져 있습니다. 그 막사는 평소에 황제가 친하게 지내던 장교 아들의 막사로 그 군의 재정을 담당한 막대한 책임을 진 장교였습니다. 황제는 반가운 마음에 막사 틈을 들여다보니 그 병사가 책상 위에 엎드려 있고 옆에는 장전한 권총이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가까이 가보니까 책상 위에는 장부가 펼쳐져 있고 맨 아래에 "이 큰 빚을 누가 갚을 수 있을까? 나는 자살할 수밖에 없다."라는 글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황제는 금방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원래 착실하고 좋은 병사였는데 도박에 빠져서 점점 빚을 지니까 공금을 횡령해서 도박을 하고 나중에 뒷감당을 못하기 때문에 권총 자살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절망에 처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 자살할 요량으로 권총을 책상위에 놓고 머리를 양팔 사이에 묶고 지난날을 뉘우치다가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니콜라스 1세는 병사를 깨우지 않고 조용히 펜을 들어 장부의 메모 밑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가 갚았노라. -니콜라스 1세” 일개 병사로서는 군대의 공금을 횡령하고 도저히 갚을 수 없으므로 자살을 하든지 군법회의에 돌아가서 총살을 당할 수밖에 없는데 그 나라 황제가 그 빚 밑에 니콜라스 황제가 이 빚을 갚았노라. 그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별천지가 왔습니다. 죽음은 생명으로, 절망은 소망으로, 파멸은 영원한 자유로 그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놀라운 소식입니다. 눈을 비비고 또 비비고 보아도 사실 그 사인은 니콜라스 1세의 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죽음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제가 이 세상에 살면서 주님이 주신 의로움도 다 소진해 버리고 거룩함도 다 써먹어 버리고 주님이 주신 몸도 다 황폐하게 만들고 저주로 꽉 들어차고 죽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우리가 되어서 희망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길로 영원한 지옥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절망에 처했을 때 하늘의 황제인 예수님이 오셔서 그 보혈로 우리 밑에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내가 다 갚았노라.’ 주님이 보혈로 죄 가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다 갚았다고 선언해 버렸으므로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죄에서 용서받은 의인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변화가 되었으니 이것을 어찌 믿을 수가 있습니까? 너무 좋은 일이 되어서 눈이 휘둥그레 되고 입이 벌어지고 말이 안 나옵니다. 이런 큰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면 이 세상에 너무나 비참한 존재인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지옥 가는 것은 자기 죄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 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훌륭한 행위를 못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선물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지옥 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습니다. 너무나 값비싼 선물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롬 3:23~24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세상에 옷을 한 벌 사도 값을 지불해야 됩니다. 서산에 가서 갈치 한 마리 먹으려고 해도 값을 지불해야 됩니다. 돌게 한 마리를 찢어 먹으려고 해도 값을 지불해야 되는 것입니다. 천당은 값없이 갑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값없이 천국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슴에 사무쳐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엡 2: 8~ 9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에게서 구원이 우리의 선한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생일날이 오면 선물받기를 기대하고 크리스마스가 오면 선물을 받고 선물을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서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구주로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이 하나님의 선물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느냐, 안 받느냐가 우리 일생 운명을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오하이오 주의 한 도시에서 675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하면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라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중에 85% 정도의 사람들이 성경과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등록하고 예배를 빠짐없이 참석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선한 일생을 삶으로써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노력하면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어떤 종교든 열심히 믿으면 갈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모두 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회 아무리 나와도 성경 아무리 읽어도 아무리 선하고 착한 일을 해도 아무리 종교를 열심히 믿어도 그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나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셔 들여야 구원을 받지 예수님 이외에 모든 것은 구원을 가져올 수 있는 조건이 안 됩니다. 천하 인간에게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름이나 다른 철학이나 다른 종교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는 것입니다.
M. R. 디한 박사는 율법과 은혜에 대하여 아주 간략하게 7가지로 표현했습니다.
첫째, 율법은 가장 선한 사람도 정죄하지만 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도 구원한다.
둘째, 율법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하나 은혜는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라고 말한다.
셋째, 율법은 죄의 빚을 갚으라 하지만 은혜는 이미 죗값을 지불했다고 말한다.
넷째,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지만 은혜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게 한다.
다섯째, 율법은 돌에 새겼으나 은혜는 마음에 기록되었다.
여섯째, 율법은 두려움을 가져오지만 은혜는 화평과 확신을 가져다준다.
일곱째, 율법은 복종을 강요하지만 은혜는 순종하는 능력을 준다.
율법이 죄를 드러나게 하고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데 반해 예수님은 은혜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의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영접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반역하고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어서 벌거벗은 몸으로 빈 손들고 집으로 돌아올 때 율법주의자인 형님은 그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창기와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가산한 이놈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놈을 위해서 환영만찬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언어도단입니다. 안됩니다. 이놈은 심판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 일이냐. 과거는 다 과거로 용서해 주고 내 품에 안아서 이 아들을 다시 새사람으로 만들겠다.” 아버지는 이 아들을 받아 들여서 좋은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고 가락지를 끼우고 그리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여러분 율법은 여러분과 나를 정죄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율법에 의해서 구원받을 소망은 없습니다. 율법은 우리의 모든 삶을 다 뒤집어 놓고 파헤쳐 놓고 정죄하고 심판하기 때문에 율법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고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을 육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용서를 허락하여 주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숯 구멍같이 검고 죄악 덩어리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내가 너 대신 다 갚았다. 내가 다 내 보혈로 청산했다. 이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오너라. 잃은 가운데서 길을 찾아오너라. 나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구원은 선물로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매일 은혜 밖으로 나가면 율법의 심판에 잡히게 됩니다. 예수밖에 나가면 모두다 율법의 심판 하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만이 용서와 의와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항상 은혜의 울타리인 주 예수님 믿음 안에 살아야 되고 예수밖에 나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살면 여러분 하늘에 들어갈 넉넉한 권세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을 그치고 세상으로 나가면 율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영원한 멸망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다 율법 하에 태어나서 율법의 정죄와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해결하지 못하고 우리는 절망적인 존재였으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러 죽어 청산해 주시므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다 용서받고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왠 말입니까? 이 왠 은혜입니까? 너무나 크신 복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이 큰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으니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은혜를 받아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며 살고 이 복음을 온 천하에 전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2082 마가복음 만민이 기도하는 집 막11:15∼19  임영수 목사  2009-10-16 2220
2081 마태복음 경계해야할 바리새인의 누룩 마23:23∼28  임영수 목사  2009-10-16 3072
2080 시편 구원 받은 자의 노래 [1] 시107편  임영수 목사  2009-10-16 1781
2079 사도행전 고난 중에 지켜야 할 3가지 행13:42-52  이한규 목사  2009-10-15 2286
2078 사도행전 용서 체험 행13:36-41  이한규 목사  2009-10-15 1965
2077 고린도전 당신에게 나를 바칩니다 고전10:16-17  이한규 목사  2009-10-15 1787
2076 사도행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행13:16-23  이한규 목사  2009-10-15 3640
2075 사도행전 포기는 항상 이릅니다 행13:13-14  이한규 목사  2009-10-15 1864
2074 사도행전 영혼이 미혹되지 않는 길 행13:4-12  이한규 목사  2009-10-15 1955
2073 사도행전 좋은 교회-사명을 따르는 교회 행13:1-3  이한규 목사  2009-10-15 2177
2072 창세기 가인과 아벨 file 창4:3~8  이영교 형제  2009-10-14 2029
2071 마태복음 카프카의 천국 file 마13:44~46  정선자 자매  2009-10-14 1709
2070 로마서 어린이 영성의 선각자들 롬8:12~17  정양모 신부  2009-10-14 1945
2069 마태복음 환상과 현실 마17:1-9  정용섭 목사  2009-10-14 1800
2068 미가 일상의 영성 안에서 미6:1-8  정용섭 목사  2009-10-14 1891
2067 고린도전 말의 한계 고전1:10-17  정용섭 목사  2009-10-14 1878
2066 요한복음 세례 요한의 증언 요1:29-34  정용섭 목사  2009-10-14 2386
2065 이사야 야훼 하나님의 종 사42:1-4  정용섭 목사  2009-10-14 1758
2064 에배소서 찬양의 이유 엡1:3-14  정용섭 목사  2009-10-14 3348
2063 이사야 절대 긍정 사63:7-9  정용섭 목사  2009-10-14 1786
2062 요한복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요18:33-38  정용섭 목사  2009-10-14 2174
2061 시편 시편 기자의 간증 시118:5~7  조용기 목사  2009-10-12 1813
2060 고린도후 나는 누구인가? 고후5:17  조용기 목사  2009-10-12 1851
2059 빌립보서 행복의 조건 빌4 4~7  조용기 목사  2009-10-12 1930
2058 로마서 나는 과연 믿음의 사람인가? 롬4:17~25  조용기 목사  2009-10-12 1765
2057 고린도후 극복하는 신앙 고후12:7~9  조용기 목사  2009-10-12 1523
2056 고린도후 축복의 노다지 고후9:6~9  조용기 목사  2009-10-12 1558
» 요한복음 율법과 은혜 요1:17  조용기 목사  2009-10-12 1671
2054 에배소서 욕망이란 우상 엡5:5  조용기 목사  2009-10-12 1614
2053 잠언 자승자박(自繩自縛) 잠6:2  조용기 목사  2009-10-12 1666
2052 마가복음 알고 믿고 확신한 데 거하라 막11:22~24  조용기 목사  2009-10-12 1774
2051 고린도전 목적이 선하다면 고전10:31-33  강종수 목사  2009-10-11 1663
2050 히브리서 가정 문화, 변혁의 주인공 히11:8-10  김필곤 목사  2009-10-10 1359
2049 신명기 이웃과 함께 감사하는 생활 신16:9-12  김필곤 목사  2009-10-10 1499
2048 누가복음 이웃과 함께 사는 신앙인 눅10:25-37  김필곤 목사  2009-10-10 1811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