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낙심되었습니까?

잠언 김필곤 목사............... 조회 수 1807 추천 수 0 2009.10.18 08:32:50
.........
성경본문 : 시42:1-11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1788년에 영국에 역사가 에드워드 기본이라는 사람이 "로마제국의 쇠퇴와 멸망 "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로마 제국의 멸망 원인 다섯 가지를 지적했습니다. 1)이혼율의 급증으로 인한 가정의 붕괴, 1)둘째는 높아지는 세율과 계획성 없는 재정지출(낭비). 3)비정상적 쾌락의 추구 4)군비확장과 인구 감소 5)종교의 부패 등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유럽교회가 점점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데 세계 교회가 2000년대에 가서 서서히 쇠퇴하여 로마처럼 그 명맥만 유지한다면 그 쇠퇘 원인을 사가들은 어떻게 진단할까요?
사단이 우리 기독교 신앙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는 어떤 것일까요?
신앙인의 마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신앙인의 삶을 무력과 시키는 것 그것은 낙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개개인들을 희망을 잃어 버리게 하여 급속히 교회로 전염되게 하면 교회의 미래는 암울해질 것입니다.
낙심은 그리스도인을 무섭게 파괴하는 무기일 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파괴시키는 사단의 무기입니다. 낙심은 마음의 병균입니다. 낙심은 마음의 바이러스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전염되면 그것은 가정으로 이웃으로 퍼저 신앙 공동체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말 큰 사전에 보면 낙심(落-떠어질 락 心-마음심)이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이 풀어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낙망(落-떨어질 락 望-바랄 망)이란 희망을 잃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낙망은 솨하흐입니다. 이 뜻은 "풀이 죽게 하다. 구부리다. 누이다"라는 말입니다. 병균에 감염되면 사람이 몸이 풀이 죽고 누어 꼼짝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낙심에 마음이 감염되면 희망을 잃어버립니다. 무기력해집니다.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사람도 만나기 싫습니다. 일하기도 싫습니다. 교회에 나오기도 싫습니다. 후회의 아픔에 사로잡힙니다.

Ⅰ. 우리가 왜 낙심합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 때문에 낙심합니다. 어떤 결과가 이루어지기까지 기다리지 못해서 낙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낙심합니다. 사랑하는 것을 잃었을 때 낙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당할 때 낙심합니다. 꿈이 좌절된 것처럼 느껴지는 현실 앞에서 낙심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 결과가 드러나지 않을 때 낙심하게 됩니다. 기도 응답이 더디 올 때 낙심합니다. 낙심하는 경우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근거해 보면 3가지 정도의 이유를 들을 수 있습니다.

1. 자신의 마음대로 일이 안될 때 낙심합니다(2).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낙망하고 있습니다(5,6,11).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에서 떨어져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갈 수 없습니다. 이 기자가 다윗이라면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나와 올라 갈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 기자가 고라 자손이라면 포로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오면 사람들은 낙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갈 내야 갈 수 없고, 노력해도 되지 않고, 이루어 낼 내야 이룰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면 실망합니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원하는 성적을 얻기를 희망합니다. 그런데 이제 수능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바라는 바 점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사업하는 분들이 연초에 계획을 세워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원하는 바 반절 수준도 되지 않습니다. 연인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남편을 전도하기 위해 애를 쓰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더 안 좋은 쪽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열심히 노력했지만 가면 갈수록 더 안 좋은 일만 생깁니다. 이럴 때 사람은 낙심하는 것입니다.

2. 일이 안된 이유를 모를 때 낙심합니다(2,9)
시편 기자는 어느 때 예루살렘에 올라갈까 모르는 상황에서 애타게 절규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잊었는지, 어찌하여 원수들이 핍박하는 지를 몰라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 이루워 지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알면 낙심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애인에게 편지를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회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일주일 지나 한달 지나면 실망하는 것입니다. 실연당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자기를 싫어서 답장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외국에 가 있기 때문에 편지를 받아 보지 못하여 답장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공장을 가동하는데 생산력이 저하된 이유를 알면 그것을 고쳐 다시 생산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는데 그 이일 이루워지지 않은 원인을 알게 되면 실망하지 않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그 원인을 처방하여 다시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원인도 없는데 일이 않되면 더욱 실망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했는데 실패했습니다. 사랑을 베풀었는데 억울함을 당합니다. 그러면 낙심합니다.

3. 일의 결과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을 때 낙심합니다(3,10).
사람들이 이 시편 기자가 다윗이라면 "너 그렇게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더니 결과는 무엇이냐, 결국 아들에게 쫓겨나 도피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만약 고라의 후손이라면 "성전에서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더니 겨우 그 결과가 포로냐?"라는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이 살아 있으면 이런 결과가 나왔겠냐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90점을 맞았는데 어머니가 인정해주 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합니다. 열심히 꽃꽂이 하여 강대상에 놓았는데 목회자가 "뭐 그런 꽃꽂이가 있냐"고 인정해 주지 않으면 낙심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가정, 학교, 직장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낙심하게 됩니다.

Ⅱ. 낙심에서 벗어 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1. 일을 하는데 있어서 나의 한계 상황을 바라보지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1,2,6,8)
시편 42편에는 인칭 대명사가 51개가 등장합니다. 시인은 계속적으로 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를 강조하면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무능력한 나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무능력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낙심합니다. 성전에 오르고 싶으나 갈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합니까?
1)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였습니다.(1).
2)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하였습니다(2).
3)갈 수는 없으나 예루살렘을 볼 수 있는 산에 오릅니다(6).
4)그 일이 이루워 지도록 기도합니다(8).
우리는 초점을 연약한 나에게 맞추면 낙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대단한 것 같지만 무능력합니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이루워지지 않았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일이 안될 때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관점은 무능한 나에서 돌려 하나님을 향할 때 우리는 낙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발점에 들어선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돌아가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무능력을 방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루터 예화)
인도에서 열심히 선교사역을 한 스텐리존스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전도 하였지만 완악한 인도 사람들은 회개 하지 않았고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스텐리 존스는 너무 한심하기도 하고 사기도 떨어져 사과 나무 밑에 쓰러져 누워 있었습니다. 그 때 나무 사이에서 존스 피곤하지 지쳤지? 예 하나님 지쳤습니다. 왜 지쳤느냐?
제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저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습니다 저들에게는 열매가 없습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이 다가오는데 선교사 처럼 열매가 없어 낙심하며 피곤에 지쳐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열심히 공부는 하였지만 성적은 여전히 부진합니다. 올해 전도 열심히 할려고 했는데 결실이 없습니다. 하나님 위해 돈 좀 많이 벌어 보려고 했는데 성과가 없습니다. 교사로 성가대로, 아버지로, 어머니로, 자식으로, 부모로 한 번 잘 해보려고 했는데 결과가 없습니다. 혹 낙심된 성도님 않계십니까? 교회는 다녔지만 신앙의 진보가 없다고 낙심하시는 분은 안계십니까? 처음 시작할 때 굉장한 의욕과 열심을 가지고 시작했던 그 일로 부터 손을 떼고 후회하며 좌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낙심한 스텐리 존즈 선교사에게 말했답니다. "이 사과나무를 보아라 지금은 열매가 없는 것 같으나 뿌리가 땅에 묻혀있고 잎이 태양을 향해 펼쳐 있고 채널이 나를 향해 맞춰져 있을 땐 언젠가 좋은 열매가 맺힐 것이다. 낙심하지 말아라 아름다운 열매가 맺힐 것이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7)"라는 사실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열매 맺게 해 주십니다.
내 능력은 부족하지만 우리 하나님이 맺히게 해주십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 126:5)"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낙심하지 마시고 기도의 씨를 뿌리십시오.
누가복음 18장 7절, 8절을 보십시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2. 이유를 몰라 낙심하지 말고 약속을 믿고 찬양해야 합니다(6).
오늘 본문을 보면 "어찌하여(5.9.11)"라는 질문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일이 잘 안될 때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문제가 풀립니까? 이유를 안다고 모든 문제의 답이 있습니까? 인간 사회에는 이유를 안다할 지라도 풀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연 " 왜 이런 일이 내게 임했을까? .. 왜 하필이면 나라는 말인가?..."라고 질문하면 낙심합니다. 그러나 이 낙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이유를 아는 것보다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유를 모두 다 알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밥에 대하여 다 이해하고 밥을 먹습니까? 자동차에 대하여 다 이해하고 자동차 탑니까? 어떤 사람은 신앙도 다 이해하고 믿겠다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다 이해하고 믿겠습니까? 믿으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종로가는 지도를 주고 종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종로 가는 길을 다 이해하고 다 답사해 보고 갑니까? 그 지도를 준 사람과 그 지도를 그린 사람을 믿고 그대로 따라 가다 보면 종로가 나오는 것이고 이해가 되는 것 아닙니까?
신앙인의 삶이란 설명보다는 약속에 의지하는 삶입니다. 아이가 골절이 되어 병원에가서 X-Ray를 찍었습니다. 의사는 부러진 뼈를 맞추고 기부스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의사가 X-Ray 사진을 가지고 환자에게 뼈의 성분, 골절의 이유, 수술시 약품투여 방법, 그 약품의 효능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한다면 그 환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차라리 앞으로 2주 후면 낮게 됩니다. 라고 그 사람에게 말한다면 더 용기를 주고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을 의뢰하고 살아갑니다.
6절에 보면 주를 기억하였다고 했는데 이 시편 기자가 다윗일 경우는 지금은 비록 쫓기는 신세이지만 그의 왕국이 영원하리라는 삼하 7:12-16의 약속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만약 고라 후손이라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환경이 낙심할 만한 상황이지만 약속을 믿고 희망차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유는 몰라도 약속을 의지하고 살아갈 때 희망이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갈바를 알지 못하고 약속 붙들고 출발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지형과 앞으로 무엇이 전개될 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약속해 주었을 뿐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도 약속을 붙들고 그 어려운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약속 붙들고 나가십시오. 이해되는 것보다는 약속을 믿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 트루먼은 퇴임 후에 고향 미주리 주 인디펜더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 느 날 트루먼이 기념 도서관에 갔을 때 어린 학생들이 지도 선생님과 함께 그에게 접근해 왔습니다. 그 중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제 나이였을 때 인기 있는 반장이셨지요?” “정반대란다. 눈이 나빠 안경이 없을 때는 맹인과 같았고 재주도 없고 운동에도 소질이 없었으며 누가 큰소리만 쳐도 바들바들 떠는 겁쟁이였단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 게 뜨고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성경 말씀을 었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못할 일이 없다는 말씀이야.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든 중단 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했단다. 하나님께서 내 등 뒤에 서 계시니까 말이다”라 면서 자기의 등을 보여 주었습니다. 트루먼은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용기 확신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서 함께하십니다. 자신있게 세상을 사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107:30)"

3.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의 평가보다 미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평가를 기대해야 합니다.(4).
사람들이 조롱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과거에는 왕으로 과거에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도망자가 포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 스스로로 과거에는 성전에 많은 사람을 인도하였는데 지금은 갈 수도 없는 처지라고 스스로 낙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못견딥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견딜 수 없고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늘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평가자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미래를 바라보며 기대를 가지고 우리에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과거를 평가하기 좋아하고 그것으로 우리를 낙심시키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평가를 보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인간의 평가란 다 상대적이고 주관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우리에게 왜 이런 어려운 상황, 실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를 주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 과거를 생각하고 싶으면 나쁜 과거만 생각하지 말고 처음 과거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것도 없는 적신으로 나온 과거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왕도 되게 하고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도 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조금 사정이 나빠졌을 따름입니다. 어려움 당할 때 좋았던 왕년에 집착하면 낙심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아직 인생 끝난 것 아닙니다. 갈 길이 남아 있습니다. 숙제 하다 말고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직 인생의 막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인생 살다보면 낙심될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인생 다 산사람처럼 그렇게 지금이 전부라고 평가하지 마십시오. 모든 과거는 디딤돌로 사용되어야지 거침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30년 준비하여 3년 일하였습니다. 모세도 80년의 준비기간이 있었습니다. 지금 잘 되는 것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신앙의 선배들은 낙심되는 상황에 있었지만 낙심하며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17살에 꿈을 꾸며 성경에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설레임과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찾아온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죽음의 고비, 인신매매, 노예였습니다. 얼마나 낙심되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요셉의 인생의 끝인가요?
모세를 보십시오. 40세에 조국을 위하여 큰 꿈을 가지고 출발하였습니다. 민족을 위해 일어섰습니다. 그던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40년 간이나 말입니다. 장구한 세월을 광야에서 고독하게 보내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그는 10대에 일국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30세에 왕이 되기 까지 청소년기 청년기를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바울은 어떻습니까? 위대하고 극적인 부름을 받았지만 3여년 동안 아라비아에 들어가 침묵의 기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분들이 겪은 것이 오늘 우리가 겪는 것보다 덜 힘든 것일까요?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들의 인생을 그것으로 마치게 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훈련시켜 하나님의 쓰실 만한 그릇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윈스턴 처칠"도 학교 다닐 때에 낙제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발명왕 에디슨도 무수히 많이 실패하였습니다. 링컨도 사업에 실패하고 신경쇠약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실패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당대 그 실패의 현장에서는 사람들이 조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들의 미래를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생의 과정을 보고 낙담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니까 제자들은 실패한 줄 알고 낙담하고 다 제갈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을 부활하심으로 그들을 다 회복시켰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사람들처럼 낙담하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실패도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회일 뿐입니다. 우상장사의 아들 아브라함, 부인을 누이라고 속인 실패의 사람 아브라함, 목동 다윗, 여러번 실패한 어부 베드로, 예수님을 핍박한 사람 바울, 기생의 아들 입다, 바람둥이 삼손, 겁쟁이 기드온, 농사꾼 아모스, 소모는 엘리사... 하나님은 이들 모두에게 낙심할 만한 상황에서도 사명을 주어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환난을 당할때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요16:33)고 말씀합니다. 미래를 보며 두려워 하고 있습니까? "두려움이 엄습할 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사41:10)라고 말씀합니다. 모두가 떠나 버리고 홀로입니까? "외로울때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6)라고 말씀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였습니까? "선을 행하나 낙심될 때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되면 거두리라"(갈6:9)고 말씀합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희망을 가집십시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2116 사도행전 자기를 극복하십시오 행14:8-10  이한규 목사  2009-10-22 2194
2115 사도행전 기복주의를 버리십시오 행14:8-10  이한규 목사  2009-10-22 2132
2114 사무엘상 인생 성공과 축복의 원리 삼상7:12  이한규 목사  2009-10-22 2500
2113 사도행전 지혜로운 후퇴는 전진입니다 행14:1-7  이한규 목사  2009-10-22 1972
2112 사도행전 축복의 최대 원천 (행 14:1-7) 행14:1-7  이한규 목사  2009-10-22 2223
2111 요한복음 네가 바로 샘이다 요4 :10~26  양현혜 교수  2009-10-22 1948
2110 에스겔 영성의 일곱 단계 겔36:26  정지석 형제  2009-10-22 2364
2109 갈라디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신앙회복 갈2:16  김송자 자매  2009-10-22 1631
2108 누가복음 너의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 눅8:40~48  길희성 형제  2009-10-22 2252
2107 시편 눈물 방울 (Tear Drop) file 시39:12  정지석 형제  2009-10-22 1735
2106 요한복음 하나님의 영광의 신비 요11:17-44  정용섭 목사  2009-10-21 2362
2105 사무엘상 야훼가 말씀하시는 통로 삼상16:1-13  정용섭 목사  2009-10-21 2093
2104 출애굽기 나는 야훼다 출6:2-8  정용섭 목사  2009-10-21 1754
2103 요한복음 영은 바람이다 요3:1-8  정용섭 목사  2009-10-21 1800
2102 창세기 자유의 길, 분열의 길 창3:1-7  정용섭 목사  2009-10-21 1978
2101 고린도후 싫지만 꼭 필요한 고난 고후11:23~31  조용기 목사  2009-10-20 1735
2100 시편 범사에 감사하라 시50:23  조용기 목사  2009-10-20 2883
2099 베드로전 마귀를 대적하라 벧전5:8~9  조용기 목사  2009-10-20 3107
2098 시편 나의 목자 예수님 시23:4~6  조용기 목사  2009-10-20 2028
2097 고린도후 겉사람과 속사람 고후4:16~18  조용기 목사  2009-10-20 2225
2096 빌립보서 소박한 행복 빌4:4~7  조용기 목사  2009-10-20 1815
2095 마가복음 하나님을 믿으라 막11:12~14, 20~25  조용기 목사  2009-10-20 1731
2094 시편 주님 중심의 삶 시127:1~2  조용기 목사  2009-10-20 2094
2093 고린도후 기독교 신앙과 역설 고후6:8~10  조용기 목사  2009-10-20 1794
2092 로마서 믿음과 기다림 롬4:17~21  조용기 목사  2009-10-20 1867
2091 에배소서 새 사람 엡4:22-24  강종수 목사  2009-10-18 2000
2090 신명기 이웃과 함께 감사하는 생활 신16:9-12  김필곤 목사  2009-10-18 1970
2089 누가복음 이웃과 함께 사는 신앙인 눅10:25-37  김필곤 목사  2009-10-18 2151
2088 갈라디아 서로 짐을 지라 갈6:1-5  김필곤 목사  2009-10-18 2064
» 잠언 낙심되었습니까? 시42:1-11  김필곤 목사  2009-10-18 1807
2086 에배소서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2:1-10  김필곤 목사  2009-10-18 1541
2085 사무엘상 잃은 것 찾게 하시는 하나님 삼상30:1-10  김필곤 목사  2009-10-18 2013
2084 디모데후 겨울이 오기전에-인생의 가을 [1] 딤후4:9∼22  임영수 목사  2009-10-16 3917
2083 로마서 산 제물로서 예배 롬12:1∼8  임영수 목사  2009-10-16 2868
2082 마가복음 만민이 기도하는 집 막11:15∼19  임영수 목사  2009-10-16 2220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