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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짐을 지라

갈라디아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064 추천 수 0 2009.10.18 08:34:28
.........
성경본문 : 갈6:1-5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2002.10.30

옷노비 청문회인지 옷값 대납 사건 청문회인지 지난 주에 청문회 장면들을 뉴스를 통하여 보았을 것입니다. 만약 청문회에 나왔던 권사님 중 한 분이 우리 교인이었다고 가정하면 그 권사님을 보고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권사님, 참 잘하였습니다. 권사님 파이팅" 이렇게 하겠습니까? 아니면 모른체 아무말 하지 않고 지나치겠습니까? 아니면 "권사님 그럴 수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맹세하고 성경에 맹세하므로 하나님께 욕을 돌릴 수 있습니까?"하며 얼굴을 붉히고 한 바탕하겠습니까?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문제가 다가오면 목회자로서 어떻게 해야할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지만 역시 답은 성경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대답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무슨 범죄라는 것은 고의적으로 악한 행동을 저지른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결함, 결점, 잘못, 실수라는 말로 무의적으로 혹은 육체의 연약함 때문에 지은 죄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 실수가 이번 청문회처럼 만인 앞에 드러났습니다. 아무도 몰래 한 행동이 들어났습니다. 꼭 청문회 사건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어느날 저희 아이가 헌금을 주었는데 가계에 가서 과자를 사먹고 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이 사실을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한 것 같지만 드러났습니다. 때로는 남편이 아내 몰래 바람을 피웠던 것이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아내가 남편 몰래 계하다가 돈을 날린 것이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용납하기 힘든 남편의 과거가, 아내의 과거의 잘못이 들어날 수도 있습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부모의 결점이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용서하기 힘든 목회자의 실수가 들어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아들 딸이 부모님 몰래 돈을 훔친 것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가정의 복잡한 문제들이 교인들에게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이런 일이 있을 때 세가지로 구분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 범죄가 들어난 사람에 대하여(그러한 자 1절), 그리고 그 범죄를 본 자신에 대하여(네 자신, 너도 1절; 각각 자기일-4절; 각각 자기의 짐-5절) 그리고 그 범죄를 본 공동체에 대하여 교훈하고(형제들아 1절, 너희가-2절) 있습니다.

1. 먼저 그 범죄가 드러난 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대부분 사람들이 자기의 약점이나, 잘못, 실수가 들어나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수치를 느끼게 됩니다. 아담도 부끄러워 범죄한 후 부끄러워 숨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고 당당하고 뻔뻔한 사람도 있지만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은 대부분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을 도망가고 싶어합니다. 아마 이번 청문회에 나온 교인들도 오늘 교회에 나가기 싫을 것입니다. 여기 나온 "드러나거든"이라는 말의 원문의 뜻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다.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사람 만나기도 싫고, 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지는 것입니다. 깊은 영적 우울증에 빠져 버립니다. 특히 의가 강한 사람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제까지 의롭게 살았고 일평생 동안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고 했는데 자기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죄받는 위치에 서니 견딜 수 있겠습니까? 심하면 자살의 유혹을 받게되고 그 유혹에 지면 자살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때때로 할 때가 있습니다. 오랜 전에 부 교역자로 봉사하고 있을 때 월요일과 토요일은 제가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월요일 그만 일어나지 못하고 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그날은 종소리도 듣지 못하고 잠에 골아 떨어진 것입니다. 일어나 보니 6시가 넘었습니다.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교인들을 어떻게 보며 담임 목사님을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니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 주어야 합니까? 보는 교인들마다 목사님 왜 오늘 새벽기도회 안나왔어요. 회개하세요. 담임 목사님이 불러 경건 성이 부족하니까 우리 교회를 사임하고 기도원에 가서 40일 기도하고 내려오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 때 담임목사님은 "괜찮아 목회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며 위로하고 힘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때를 잊지 못합니다. 그 때 그 감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교회를 옮기고 싶고, 신앙을 버리고 싶고 낙심하고 불안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롭잡는다는 말은 "돌이키다. 그물을 깁다(마4:21 막1:19), 인격을 완성하다(고후13:11)"라는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책망하고 나무라고 정죄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영어성경에서는 'restore'라는 말로 번역하여 회복시킨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원어로 본래 접골 즉 뼈가 어긋났을 때 뼈를 바르게 맞추는 일을 지칭합니다. 어부들이 그물을 깁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몸을 정상적으로 회복하게 하는 것이고 그물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상 회복을 한다는 말입니다. 일어 설수 없는 사람을 일어 서게 해주는 것입니다. 상처난 부분을 드러내 놓고 후벼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감싸주는 것입니다. 상처난 신앙, 상처난 마음, 상처난 감정, 상처난 자존심, 상처난 인격을 다시 치유해주고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권사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을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어머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사장으로, 목사로, 집사로, 남편으로, 아내로 도저히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어떠한 잘못으로 가정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잘못으로 직장에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실수로 교회에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그들을 결코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정상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혼자 설 수 없는 사람을, 그렇지 않아도 낙심한 사람을 더 밟고 짖누르고 정죄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예수님께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어떻게 합니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정죄하며 죽이려는 사람들을 향하여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성경을 보면서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참 말로 형언할 수 없구나를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의 이중적이 속마음이 다 드러났습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어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애굽와 바로에게 들통이 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셔서 그를 정죄합니까? 아닙니다.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창13:14에 나타나셔서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손과 땅과 복을 주겠다고 비전을 주십니다. 아브라함만 그렇습니까? 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 다윗, 모세, 엘리야, 요나, 베드로, 바울 모두 실수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비난하며 정죄하지 않습니다. 희망과 용기를 주면 그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데로 이끌어갑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저는 이 말씀을 확실히 믿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이 실수하지만 병을 회복하게 하고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게 하시고 위로해 주시고 직위를 회복케 하시고 잃은 것을 되찾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일시적 실수는 있으나 영원한 실패는 없습니다.

2. 죄가 드러난 경우를 보고 믿음의 공동체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2)
어떤 사람의 잘못이 드러나면 교회도 매정하게 그 사람을 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그 사람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 안믿는 사람들은 술한 잔 먹고 풀어 버린다는데 예수믿는 사람은 술 안먹고 안풀겠다고 고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은근히 따돌리고, 가볍게 보고, "속마음을 알았다, 당신의 본모습을 알았다. 이제까지 꼬리만 보았는데 몸통을 보았다"라고 말하며 그 사람과 상종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로 비난하며 수근거립니다. 교회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결국 다른 교회로 가든지 아니면 세상으로 빠져버립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우리에 교훈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짐이 우리가 같이 지어야 할 짐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짐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2절의 짐과 5절의 짐은 원어적으로는 서로 다른 말입니다. 2절의 짐은 `바로스(baros)'로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말하며 5절의 `짐'은 `포르티온(phortion)'으로 혼자 운반할 수 있는 작은 짐을 말합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 때문에 고통당하며 번민할 수 있습니다. 자신 혼자 감당하기는 너무나 벅찬 짐일 수 있습니다. 이 때 믿음의 사람들은 그 짐을 함께 져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이란 곧 사랑의 법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라는 사실이 무엇으로 차이가 납니까? 위기 때 더욱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지체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까?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고전 12:26)"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이빨이 아픈데 발과 손과 머리만 아무 고통없이 잠을 잘 수 있습니까? 이빨이 아프면 온 몸이 온밤을 새우게 되는 것입니다. 눈이 아프며 그것은 눈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몸 전체의 문제입니다.
같이 지어야 할 짐이 있다면 서로 같이 지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박으면서 우리의 무거운 짐을 져 주시지 않았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내가 지어야할 남편의 약점의 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지십시오. 내가 지어야할 아내의 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지어야할 부모님의 짐, 내가 지어야할 자녀의 짐, 내가 지어야할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목사님, 구역 식구들의 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지십시오.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사탄의 전략에 말려들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를 가정을 기업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서로 미워하게 하고 증오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짐을 짐으로 이겨야 합니다. 우리는 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윌로크릭 교회가 있습니다. 27000명쯤 나온다고 합니다. 그 교회에 빌하이벨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참 사람의 짐을 잘 지주는 지도자로 소문이 나있습니다. 그 교회 3/1의 설교을 맡아 수고하는 리스토베르라는 설교 목사가 있습니다. 그는 본래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내만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자기 교회에 나와 회심한 그를 빌하이벨 목사가 목회자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너무나 부족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짐을 진 것입니다. 그는 일주일에 그 한 사람을 위해 20시간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그 교회가 당시 10000명 나올 때였습니다. 설교하고 나면 그 원고를 수정해 주고 다시 격려해주고 무려 2년 반 동안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보다 잘 할 때까지 돌보와 주겠다는 마음으로 그의 짐을 져주었습니다. 이게 그리스도인의 짐지는 자세가 아닐까요? 남의 짐 지기기 쉽지는 않습니다. 무겁다고 팽개치고 십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짐을 질 때 우리가 성숙할 수 있습니다. 그 짐을 짐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근시였기 때문에 항상 안경을 두개씩 가지고 다녔습니다.한번은 루스벨트가 선거운동 중 슈렌크라는 사람이 쏜 총에 가슴을 맞고 쓰러졌습니다.의사는 그의 안주머니에서 박살난 안경집을 꺼냈습니다.[이 안경집이 당신을 살렸습니다.총알이 안경집에 맞아 각도가 꺾였지요] 그러자 루스벨트는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나는 그 쇠로 만든 안경집을 항상 귀찮은 짐으로만 생각했어요.그런데 내 생명을 구했군요] 형제의 짐을 지는 것 귀찮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지십시오.
남편이 교회에 안나온다고 아내가 교회에 안나온다고 아들, 딸이 신앙 생활을 아니한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짐을 져주십시오. 생활 전도 훈련원에서 조한한 새신자가 교회에 출석하는 동기를 보니까 교회에 나온 동기가 정과 관심에 감동해서가 80%이고 스스로 결정해서가 10%, 문서전도지를 통해서가 5%, 전도 전문가 권유 3%였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가지고 심을 져 줄 때 사람들은 변화되는 것입니다.

3. 다른 사람의 잘못이 드러날 때 자신에 대하여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대개 나쁜 방향으로는 두가지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며 자신은 의롭다고 교만해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믿는 사람 다 그렇고 그렇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신앙이 나태해지다가 신앙을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이 잘 믿은 줄로 알았는데 뭐 별수 없구만 하고 교회를 기피합니다. 장로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고 권사님, 목사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생각하며 교회를 기피합니다.
오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 자신을 성찰하여야 합니다 1절 하반절에 "네 자신을 돌아 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도 그런 범죄에 처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마구 비난한데 자신이 그 자리에 앉으면 더할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그만한 지위권 권력이 주어지지 않아서서 주어지면 더할 수도 있습니다.
2)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3절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 버리면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습니다.
3) 자신은 떳떳하다고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4절에서는 나는 그렇지 않다고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교만하게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줄로 생각하면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4)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여야 합니다. 5절에서는 자기의 짐을 지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살펴 자기에게 주어진 짐을 지고 가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맡겨준 짐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묵묵히 해내는 것입니다. 더욱 열심을 다해 맡겨준 일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신령한 너희입니다. 믿지 않은 사람과는 차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신령한 사람은 신령한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서로 짐을 져 줍시다. 그리고 나의 짐은 책임감 있게 지고 갑시다.
가나안을 향해 나갈 때 백성들이 범죄합니다. 원망합니다. 좌절합니다. 이방신을 섬깁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까지 원망합니다. 이 때 모세는 어떻게 합니까? 자신에게 맡겨준 일을 포기합니까? 하나님은 그 일을 포기하라고 합니까? 계속해서 주시는 말씀은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였습니다. 그런데 홍해가 앞에 있습니다. 모세를 원망합니다. 우리 매장지가 없어 이곳으로 이끌어 와서 이곳에서 죽게하는냐고 원망합니다. 이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출14:15-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 앞길에 무엇이 막겠습니까?
사탄은 어떤게 하든 우리의 신앙의 공동체의 부정을 드러나게 하여 파괴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에 어디 문제 없는 곳이 있겠습니까? 무덤에 가면 문제가 없지만 이 세상 사는 어는 곳이든 문제는 있습니다. 문제를 보고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사탄은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도 아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낙심시켰습니다. 초대교회가 형성될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으로 하나님의 신성한 공동체를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선배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묵묵히 지고 감으로 가나안을 정복했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탄은 늘 유혹합니다. 너같은 것이 너같은 교회가, 너 같은 가정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오늘도 말씀하십시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신 31:8)"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출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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