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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난초론

이정수 목사............... 조회 수 2357 추천 수 0 2009.10.24 10: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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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예화 400。한비야의 난초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난초를 키우는 일과 같습니다. 향기로운 蘭香을 얻기 위하여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내게는 알래스카에 계신 미국인 양부모 윗튼 씨 부부가 계십니다. 그분들은 근무 차 한국에 오셨다가 클래식 다방에서 DJ 하던 나와 인연을 맺었는데 한국에서의 나의 대학 생활, 그리고 미국 유학 생활 때 개인 장학금 형식으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나는 그분들을 지난 20년 이래 줄곧 경제적인 측면에서 뿐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진정 내 마음의 부모님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분들도 나를 친딸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분들과 나와의 이 인연은 지금까지의 내 삶을 풍요롭고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저절로 그런 아름다운 인연 관계를 만들어 준 것일까? 아닙니다. 남 돕기 좋아하는 그분들과 인연을 맺은 한국 사람이 어찌 나 하나 뿐이었겠습니까? 나 역시 외국인 부부를 만난 인연이 어찌 그분들 분이었겠습니까? 나와 내 양부모님의 인연이 이렇게 아름다운 관계로 성장한 것은 나와 내 양부모님 모두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잘 키워나가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입니다.

인연의 싹은 하늘이 준 것이지만 이 싹을 잘 키워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도록 하는 것은 순전히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연이란 그냥 내버려두어도 잘 자라는 야생초가 아니라 공과 시간을 들이고 오래 참고 지극 정성으로 가꾸어야 비로소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고귀한 난초와 같은 것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난초를 키우는 공이 들진대, 하물며 이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나 자신과는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아야 할 것인가? 나 자신과의 관계도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 맺음에 드는 정성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굳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나 자신을 제대로 알기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노력의 첫 번째는 일기를 스는 일입니다. 두 번 째는 여행입니다. 그것도 지금처럼 혼자 떠나는 여행입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과 부닥치는 상황에서 나 자신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스스로에 대한 고정 관념이 많이 깨어지고, 평소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지내던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때로는 예상치 않게 멋진 나 자신을 만나기도 합니다.
<한비야,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푸른숲, 46-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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