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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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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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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영혼이 지닌 힘과 그 힘이 작용하는 방식을 모르는 사람은 영적인 이해에서 자칫하면 기만당할 수 있다.
영혼이 어떻게 해서 은총으로 "신"이 되는 것인가.
나의 영적인 벗이여, 그대도 보다시피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이토록 형편없이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영적인 말과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할 때, 특히 우리 영혼의 기능들과 그들이 작용하는 방식을 모르고 있을 때라면 쉽사리 철저하게 속아 넘어가곤 한다고 해도 놀랄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대의 마음이 육적인 일에 몰두하게 되면 그것이 제아무리 감탄할 만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때마다 그대는 그대 자신보다 '아래에' , 그리고 그대 영혼의 '바깥에' 자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 자신을 더 잘 알고, 완성을 촉진하기 위해서 그대의 마음이 영혼의 기능들이 보이는 (그대 자신이나 여타의 영적 피조물들에게서 그대 자신과 동일한 자연적 수준으로 드러나는 성덕이나 악덕 같은) 미묘한 움직임들과 그 기능들이 영적으로 작용하는 방식에 집중될 때면 그때마다 그대는 자신 '안에' 있으며 그대에게 적합한 수준을 찾아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의 마음이 어떤 육체적 또는 영적 문제가 아닌 오로지 하나님께만 집중되어 있다고 느낄 때면(이 책의 가르침을 온전히 파악하면 밝혀지듯이) 그때마다 그대 자신 '위에' 그러면서 하나님 '아래에'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대는 분명히 그대 자신 위에 있는 것이니, 이유는 본성으로는 실현할 수 없는 일을 은총으로 실현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대는 이로써 의지와 조화를 이룬 가운데 영으로, 사랑으로 하나님과 합일을 이룹니다. 물론 그대는 하나님 아래에 자리합니다. 표현 방식상 이 시점에서는 그대와 하나님이 영적으로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리고 그러기에 그대든 누구든 완전하게 관상하는 사람은 이같은 합일로 인해 성서의 말씀마따나(요 10:34) 정말로 '신'이라 불리우게 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대는 하나님 아래에 자리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본래부터 하나님이시오. 시작이 없는 분이신 데 반해서 그대는 한때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권능과 사랑으로 그대를 중요한 존재로 만드신 이후로 그대는 그대의 의지에 따른 의도적인 행위로 그대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보다 더 못한 것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대를, 은총으로 말미암아 이곳에서는 그분과 영으로 불가분하게 결합되고 그후에는 끝없는 세상 천국에서 지복 속에 합일하는, 일종의 신으로 만들어 준 것은 오직 그분의 완전히 분에 넘치는 자비 덕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은총으로 그분과 온전히 합일되었다 하더라도 그대는 여전히 그분보다 무한히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영적인 벗이여, 그대는 이제 영혼의 기능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그 기능들이 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걸핏하면 속임수에 걸려서 영적인 취지로 쓰여진 말들의 의미를 왜곡하기 십상이라는 점을 어느 정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내가 그대의 열망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라고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고 오히려 어린아이가 놀이할 때처럼 최선을 다해 이를 숨기라고 권유하는 까닭도 얼마만큼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대가 영적인 의미를 지닌 말들을 육적으로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영혼이 어떻게 해서 은총으로 "신"이 되는 것인가.
나의 영적인 벗이여, 그대도 보다시피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이토록 형편없이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영적인 말과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할 때, 특히 우리 영혼의 기능들과 그들이 작용하는 방식을 모르고 있을 때라면 쉽사리 철저하게 속아 넘어가곤 한다고 해도 놀랄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대의 마음이 육적인 일에 몰두하게 되면 그것이 제아무리 감탄할 만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때마다 그대는 그대 자신보다 '아래에' , 그리고 그대 영혼의 '바깥에' 자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 자신을 더 잘 알고, 완성을 촉진하기 위해서 그대의 마음이 영혼의 기능들이 보이는 (그대 자신이나 여타의 영적 피조물들에게서 그대 자신과 동일한 자연적 수준으로 드러나는 성덕이나 악덕 같은) 미묘한 움직임들과 그 기능들이 영적으로 작용하는 방식에 집중될 때면 그때마다 그대는 자신 '안에' 있으며 그대에게 적합한 수준을 찾아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의 마음이 어떤 육체적 또는 영적 문제가 아닌 오로지 하나님께만 집중되어 있다고 느낄 때면(이 책의 가르침을 온전히 파악하면 밝혀지듯이) 그때마다 그대 자신 '위에' 그러면서 하나님 '아래에'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대는 분명히 그대 자신 위에 있는 것이니, 이유는 본성으로는 실현할 수 없는 일을 은총으로 실현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대는 이로써 의지와 조화를 이룬 가운데 영으로, 사랑으로 하나님과 합일을 이룹니다. 물론 그대는 하나님 아래에 자리합니다. 표현 방식상 이 시점에서는 그대와 하나님이 영적으로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리고 그러기에 그대든 누구든 완전하게 관상하는 사람은 이같은 합일로 인해 성서의 말씀마따나(요 10:34) 정말로 '신'이라 불리우게 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대는 하나님 아래에 자리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본래부터 하나님이시오. 시작이 없는 분이신 데 반해서 그대는 한때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권능과 사랑으로 그대를 중요한 존재로 만드신 이후로 그대는 그대의 의지에 따른 의도적인 행위로 그대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보다 더 못한 것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대를, 은총으로 말미암아 이곳에서는 그분과 영으로 불가분하게 결합되고 그후에는 끝없는 세상 천국에서 지복 속에 합일하는, 일종의 신으로 만들어 준 것은 오직 그분의 완전히 분에 넘치는 자비 덕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은총으로 그분과 온전히 합일되었다 하더라도 그대는 여전히 그분보다 무한히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영적인 벗이여, 그대는 이제 영혼의 기능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그 기능들이 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걸핏하면 속임수에 걸려서 영적인 취지로 쓰여진 말들의 의미를 왜곡하기 십상이라는 점을 어느 정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내가 그대의 열망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라고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고 오히려 어린아이가 놀이할 때처럼 최선을 다해 이를 숨기라고 권유하는 까닭도 얼마만큼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대가 영적인 의미를 지닌 말들을 육적으로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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