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나의 새 생명의 모태 십자가

고린도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690 추천 수 0 2009.10.28 00:07:47
.........
성경본문 : 고전1:18~25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6년 12월 3일 성찬주일 3부설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나의 새 생명의 모태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어머님의 모태는 우리 육신의 생명의 고향입니다. 오키나와에 가면 무덤을 어머니 모태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까 어머니 모태에서 나왔다가 돌아갈 때는 어머니 모태로 돌아간다.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갈보리 십자가는 우리 영적인 삶의 모태인 것입니다. 어머님 없는 육체적인 삶이 없듯이 갈보리 십자가 없이는 우리 영적인 삶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본론>
1. 갈보리 산 십자가

여러분 십자가를 가만히 바라보면 수학적으로 플러스표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이전에는 예수님 하나님 아들로 따로 계시고 우리는 아담의 후예로써 죄인으로 따로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접촉점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매달렸을 때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아담의 후손인 우리 죄인들과 그곳에서 하나가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끌어안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청산하신 것입니다. 죄는 우리가 짓고 벌은 예수님이 받으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엄청난 죄를 지어서 그 죄의 벌은 죽음인 것입니다. 영원한 멸망인 것입니다. 우리로써는 죄 값을 갚을 수 없습니다. 형벌을 받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와 하나 되셔서 죄는 우리가 짓고 벌은 예수님이 받아서 청산해 버려 주신 것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아들과 아담의 후손인 우리 죄인이 하나가 될 수 있지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어떠한 수양이나 도덕이나 노력이나 선행을 통해서 주님과 우리는 일체될 수가 없습니다.
로 6: 6에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일터에 나간다. 일체가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우리는 절대로 함께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의로우시고 우리는 영원한 죄인인데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죄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죄에 대한 심판만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오셔서 심판을 받아서 죄를 다 청산해 버리고 우리와 십자가에서 하나 되게 만들어서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될수있는 곳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지 아니하고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과 인생은 하나 될 길이 결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플러스를 통해서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 됨으로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옛 아담의 사람의 청산된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삼대재앙 아닙니까? 영혼이 죽어 멸망당하는 재앙과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이마에 땀을 흘려 먹고 사는 재앙과 육체는 늙고 병들고 죽어 지옥으로 떨어지는 재앙을 남겨준 것입니다. 아담의 자손으로써 삼대재앙을 가슴에 안고 태어난 우리들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하나 됨으로 말미암아 삼대재앙을 주님께서 멸하시고 삼중축복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은 죄를 멸하시고 죽은 영혼을 살리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게 만들어 주시고 저주를 청산하시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받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질병을 치료하시고 사망을 멸하시고 부활, 영생, 천국을 허락해 주심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삼중축복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갈 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하나 되었습니다.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새로 태어나서 이제는 예수님이 내 중심에 사는 것입니다.
엡 2: 5~ 6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여기에 보면 살리는 것도 함께 살리고 일으키는 것도 함께 일으키시고 하늘에 앉힌 것도 함께 앉히셨으니 십자가는 완전한 플러스로써 우리와 함께 하는 곳입니다. 십자가를 끌어안으면 예수님과 하나님과 함께 할수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떠나면 예수님과 하나님과 우리는 구만리 장천 멀리 떨어져 있고 함께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만이 우리에게 하늘과 땅, 영원한 생명과 현실이 하나가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새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고후 5:17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 즉, 아담의 자손으로써 이 세상에 죄악 투성이요, 저주 덩어리요, 절망과 죽음밖에 없는 인생이 십자가에서 깡그리 청산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와 영광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고 생명과 축복으로 넘치는 사람이 되고 부활과 소망이 가득한 사람으로 변화 되어서 하나님조차 신기하게 여겨서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흙을 뭉쳐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넣어 영혼을 주어서 사람이 되게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옛 아담의 자손을 십자가에서 다 청산해 버리시고 십자가에서 새로 우리를 피조물로 만드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우리 모든 병을 고치시고 우리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사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는 역사를 십자가에서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롬 6: 4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아담의 옛 생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생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받아 새롭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다 예수를 믿으므로 새사람이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새 생명을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나는 용서받은 의인으로 영광을 충만히 받은 새 생명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형통한 새 생명인 것입니다. 나는 치료받고 부활, 영생을 얻은 새 생명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그러므로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생각하고 여러분이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꿈꾸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찬양하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하고 에덴에서 쫓겨나갈 때 탄식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인생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와에게 말씀하기를 “너희 후손은 뱀의 머리를 깨뜨릴 것이요, 뱀은 후손의 뒤꿈치를 물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인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깨뜨릴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훗날에 오셔서 마귀의 권세를 깨뜨릴 것을 말한 것입니다. 주님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벌써 우리를 구원할 계획을 세우시고 하나님이 구원의 꿈을 꾸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마음이 굉장히 고통스러웠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슬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인류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사람을 끌어안고 옛사람을 청산하고 아담의 후손을 청산하고 새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베푸셨으므로 하나님의 마음은 만족하시고 기뻐하시고 구원의 계획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 죽을 다 내신 예수님을 재물로 내놓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여러분 친구를 위해서 대신 죽을 사람이 있습니까?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해서 더한 사랑이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덩어리인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벌을 받고 죽게끔 하도록 보내 주셨으니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내보내 주셨겠습니까?
요일 4:10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미워하는 짓만 계속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구하기전에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 대신 벌 받아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청산하시고 구원하신 그 은혜를 생각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이 이미 증명되고 확증된 것입니다. 사랑이란 것은 입술로 말하기는 쉬워도 증명하기는 힘이 듭니다. 입술로 사랑한다는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을 증명하는 것은 힘이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 어떻게요?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증명된 사랑인 것입니다. 마귀가 종종 와서 하나님 너 사랑하지 않는다. 너는 버림받았다. 거짓말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십자가를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저기에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매달렸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기에 그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보내셔서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죽어서 내 죄의 대가를 지불하게 하셨느냐. 사탄아 거짓말하지 말고 물러가라!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증거는 우주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가혹한 고통을 날 위하여 참으셔서 그리스도가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는 것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가. 그 십자가의 가혹한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안 참을 수 있어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구하면 열 두 영되는 천사를 보내어서 십자가에 내려오게 하실 수도 있고 그 원수들을 다 멸하실 수도 있고 고통당하지 않고 예수님은 승천하실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택할 수 없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원해서 가혹한 고통을 짊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인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예수님 계시고 예수님 안에 하나님 계시고 하나님과 예수님은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분리된다는 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젖을 먹이는 어린 아기를 엄마 품에서 떼 간다는 것은 무자비한 일이지요. 어머니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합니까? 어머니가 어린 아기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어머니의 품에서 어린 아기를 빼앗아 간다는 것은 가혹한 일이지요. 견딜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불가불 이혼을 하게 된다. 얼마나 불행하고 슬픈 일입니까? 좋은 친구가 생명처럼 서로 사랑하는 친구가 서로 떠나간다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입니까? 사람은 분리된다는 것, 소외된다는 것은 한없이 두려운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셨는데 언제 하나님과 예수님이 분리 되었느냐. 우리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죄가 되었습니다. 죄를 짊어진 것이 아니라 죄 덩어리가 되어 버렸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하나님이라. 죄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어. 죄와 하나 될 수 없으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은 분리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당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당한 그 절망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짜로 생지옥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매달렸을 때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혀서 12시가 되었을 때 그는 하늘을 향해서 부르짖은 것입니다. “제구 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버림받은 그 극도의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왜 그런 극단적인 고독과 소외감을 느꼈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 때문에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죄 덩어리가 되어서 하나님께 소외당하고 버림을 당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혹한 고통을 나 위하여 참으신 예수님은 나를 참으로 사랑하시는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치욕적인 모욕을 참으셨습니다. 나 같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한칼에 다 베어 버렸을 것인데 주님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우리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가혹한 고통을 당하는데 유대인들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군중들과 함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그렇게 모욕을 했습니다.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 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남은 잔뜩 구원하는군. 남의 죄는 용서하고 남의 귀신들린 사람은 고쳐주고 남의 병도 고쳐주고 남의 죽은 자를 살려도 주고 배고픈 자 먹이고 기적도 행하더니 왜 자기는 못 구하느냐?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우리가 믿어줄게. 말할 수없는 모욕을 가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원수들의 모욕을 받고 마음속에 고통이 안 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못 내려 온 것이 아니라 내려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내려왔습니다. 왜냐, 예수님이 죄 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불해야 되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신 갚고 벌을 완성하기 위해서 안내려 오셨어요. 그것이 예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어떠한 모욕을 당해도 끝까지 우리를 위해서 주님은 그 모욕을 이를 깨물고 참으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마귀의 험악한 억압을 참으셨습니다. 마귀는 역사상에 최악의 흉악한 짓을 예수님께 행하신 것입니다. 마귀가 사주한 로마총독과 유대인들이 합쳐서 십자가에 못 박고 난 다음 마귀는 온 귀신들을 다 동원해서 예수님을 억압했습니다. 예수님 머리를 뉘어 어깨위에 올라타고 발로 차고 물고 찢고 달라 들고 그리스도에게 행한 것은 여러분 나중에 우리가 천당에 가면은 하나님이 그 사실을 보여줄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지금 모르지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이지 않는 악마의 억압을 당한 것은 형언할 수 없습니다. 치욕당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칠 흙같이 어두운 그 손길로 예수 그리스도를 둘러싸고 예수 그리스도를 억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조소하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많은 억압을 견뎌내신 것입니다. 우리도 여러분 요사이 마귀나 귀신이 와서 우리를 억압하면 우울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살고 싶지 않고 미움과 분노가 용솟음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쫓아낼 수 있지만 그때는 예수님이 쫓아낼 수도 없는 것은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으므로 죄를 잡고 있는 원수 마귀는 예수님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죄악을 행한 것입니다.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면 당장 해방될 수 있는데 안내려 오셨어요.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는 사랑의 증거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극한적인 육체적 고통을 견디셨습니다. 로마의 법정에서 40에서 하나 감한 39 차례의 매를 때렸습니다. 그때에 매라는 것은 가죽 끈에 다섯 가지가 벌어지고 그 끝마다 쇠고랑을 달아 놓아서 치면 몸에 감겨서 가죽을 파고 들어가서 당기면 가죽이 터져서 고랑처럼 터지고 선지피가 흘렀습니다. 이 매를 맞다 쇼크사를 하는 죄인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섬섬한 그 가슴팍과 어깨에 이 가죽 띠기 휘어감아 당길 때마다 고랑이 파여지고 선지피가 흘렀습니다. 예수님은 그 고통에 고함을 치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39차례 맞고 나면 찢어진 가죽 사이로 염증이 생겨서 열이 나기 시작합니다. 온몸은 불덩이처럼 타는 것입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인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예수님은 또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가셨습니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상처를 입고 고통을 당하며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매달리셨습니다. 생살을 찔러서 대못을 박고 양손과 양발에 대못을 박고 십자가에 높이 달아 놓았는데 여러분 손을 잡고 매달리는 것도 힘이 드는데 묶어서 매달리니 이 가슴에 있는 모든 근육이 당겨서 심장이 뛸 수가 없습니다. 심장이 뛸 수 없으니 숨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서서히, 서서히 피를 흘리며 호흡곤란으로 몸부림을 치며 죽어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매달려서 오후 3시까지 6시간 동안 최악의 육체적인 고통을 겪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순간마다 내려오고 싶었을 것입니다. 내려올 수 있기 때문에 ‘아버지여, 못 견디겠습니다. 나 내려 갈렵니다.’ 그러면 하늘의 천사들이 다 동원해서 예수님을 그냥 내려오게 하실 것입니다. 순간순간 내려오실 수 있고 또 내려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끝까지 고통을 참고 고통의 잔을 마신 것은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이란 무섭습니다. 제가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북한에서 피난 내려온 한 부부가 있었는데 아들만 아홉을 낳아서 길렀어요. 그런데 그 아들들이 다 밖에 나가서 신발 닦고 남의 가방 훔치고 그렇게 하면서 먹고 사는 가정인데 내가 전도를 하니까 그 부인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는 하루에도 열 번이고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납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10년 동안 술주정뱅이로 쌀 한 톨 벌어오지 아니하고 애들은 밖에 나가서 신발 닦고 남의 물건 훔쳐오고 이런 삶이 삶입니까? 애미로써 나는 견딜 수가 없어 몇 번이고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썩은 새끼 목메어서 끊을 수 있는 줄 알면서도 못 끊는 이유는 자식들 때문입니다. 저렇게 어렵고 고난스러운 삶을 사는데 애미조차 죽어버리면 그 자식들 어디를 가겠습니까? 자식들 때문에 나는 죽을 수도 없습니다. 살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압니까?” 그 말이 지금도 쟁쟁합니다. 자식들 때문에 못 죽는다. 우리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내려오신 것입니다. 극한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내려올 수 있는데도 못 내려오신 것입니다. 못 내려 올 사람이 못 내려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능히 털어버리고 내려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안내려 오신 것을 생각할 때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우리는 깊이 마음속에 감격적으로 받아들여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범인처럼 죽으셔서 그 시체가 무덤에 사흘 동안 들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무덤 속에 들어가 계셨다니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은 음부에 내려가서 사흘 동안 계셨습니다. 사흘 만에 주님은 모든 것을 다 청산하시고 부활하실 때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일어나셔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영원한 영광과 소망과 승리를 가지고 주님께서는 일어나게 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끌어안으신 예수님은 끝까지 우리를 십자가에서 구속하시고 영원한 천국의 영광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마음속에 감격해야 될 것입니다.

3. 우리의 자랑은 십자가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류구원의 뜻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엄청나게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렸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는 것인데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이 자원하여 사람이 되어 오셔서 십자가에 혹독하고 모진 고난을 다 깨뜨리면서도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사 그를 높여서 모든 이름위에 높은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면 무조건하고 사랑하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만유를 주님께서 붙잡고 만유를 운행하신 것입니다. 예수 없는 천국은 없습니다. 예수없는 역사는 하나님이 이루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예수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요 3:16 말씀대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동서남북 어디서 오든지 남녀, 노유, 빈부, 귀천 불과하고 흑, 백인류 피부색깔이 어떤지도 불구하고 예수께 나오기만 하면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엄청나게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무조건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이 온 천하에 활짝 열렸습니다. 마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절망하여 가슴을 칩니다. 어찌하든지 사람을 미혹케 해서 값없이 주는 이 구원을 못 받게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처참한 것은 수많은 세상 사람들이 세상에 없어질 부귀, 영화, 공명을 따라가면서 이 거저 주는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등한이 여기고 등을 돌린다는 이 비극인 것입니다.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 손에 잡았으나 얼마동안 쥐고 있습니까? 얼마 있지 아니하여 물거품처럼 다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영화는 다 꿈과 같은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귀의 미혹에 빠져서 영원히 살길을 버리고 사는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상을 쫓아 쫓아가는 것을 볼때 탄식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가운데서 건져냄을 받아 눈이 열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을 구주로 모실 수 있다는 것 이 은혜는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뜻만 이루실 뿐 아니라 마귀의 무장을 완전히 해체시켜 버린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할 때 마귀에게 무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죄의 무기, 세속의 무기, 질병의 무기, 저주의 무기, 죽음과 멸망의 무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마귀가 스스로 무기를 가진 것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므로 말미암아 마귀에게 강력한 무기를 들려준 것입니다. 마귀는 이 무기를 가지고 모든 사람들을 종횡무진으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죄의 무기로 사로잡고 세속으로 얽어매고 질병으로 짓밟고 저주로 훼방하고 영원한 멸망과 죽음으로 협박공갈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리심으로 우리를 끌어안고 주님께서 대속의 피를 흘리시므로 마귀의 무장이 다 해제되어 버렸습니다. 죄가 용서받고 의롭게 되고 영광을 얻으므로 죄가 없어져 버리고 세속이 그리스도 십자가로 다 무너져 버렸으므로 세속과 마귀가 무력화되고 질병을 청산해 버리므로 병이 치료함을 받고 저주가 다 속량되므로 아브라함의 축복이 임하고 사망과 음부가 도발되어 버리므로 영원한 천국이 임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마귀는 무장이 해제되고 마귀는 이제는 당당한 자리에서 쫓겨나고 만 것입니다.
요12:31~32에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임금 노릇하던 원수 마귀가 이제는 쫓겨났습니다. 무장해제 되었습니다. 사자는 사자인데 이빨 빠진 사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는 찾지만 우리가 믿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쫓아내면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는 마귀인 것입니다.
골 2:15에 “통치자들과 권세들” 즉, “마귀의 통치자와 마귀 권세 자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십자가를 통하여 마귀를 이기고 구경거리고 만드셨습니다. 형편없는 쥐새끼로 만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마귀의 무장이 해제되고 우리를 해방시켜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내가 네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시91편에도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네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제는 마귀와 귀신은 구경거리가 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영원히 율법의 정죄를 해소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천당에 들어가려 해도 율법이 있어서 “너는 죄를 지었으니 죽으라.” 죄를 지은 자는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양심도 호응을 해서 “너는 죄 지었으니 죽어야 된다.” 도저히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어요. 율법이 딱 버티고 있는데 천하장사 율법 앞에서 어떻게 우리가 뚫고 나갑니까? 이 율법을 누가 무력화 시킬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율법의 요구의 죽음을 다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십자가 플러스에서 우리를 끌어안고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죄가 되어서 율법의 심판인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죽었다가 부활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죽었다가 부활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사람을 대신해서 벌을 받으시고 죽었으나 부활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를 다 청산했기 때문에 이제는 율법이 아무리 와서 우리를 치려고 해도 조건이 없습니다. 율법이 우리를 치려고 하면 예수님의 보혈이 말했습니다. ‘다 갚았다. 다 갚았다. 율법아 너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율법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청산되어 버리고 말았다.’ 내가 아무리 빚을 많이 지어도 우리 아버님이 오셔서 빚을 다 청산해 버렸으면 빚쟁이가 나를 더 괴롭힐 수 없습니다. 빚쟁이가 괴롭히려고 하면은 아버지가 청산한 문서를 내놓고 청산되었다. 나는 빚쟁이 아니다. 과거에는 빚쟁이였지만 지금은 빚쟁이가 아니다. 과거에는 죄인이었지만 예수 보혈로 말미암아 이제는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죄의 권세는 무너졌다. 영원히 율법의 정죄가 해소되고 양심의 참소가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롬 8: 1~ 2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 다음 우리가 십자가로 자랑해야 될 것은 예수 십자가는 우리에게 천국이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만 것입니다. 천국의 문이 어디에서 열렸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에덴에서 떠나자 에덴문은 닫히고 화염검이 에덴 문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에덴은 하나님이 옮겨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 시작해서 천국 가는 문은 막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서 수양과 도덕을 통해서 고행을 통해서 철학을 통해서 천국 문을 찾았지만 천당문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천국 문을 열어 제켜 버리고 만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천국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천국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죄가 막고 있지요. 사탄이 막고 있지요. 율법이 막고 있지요. 양심의 가책이 막고 있지요. 어떻게 들어갑니까? 바리게이트가 한두 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죄가 버티고 있으면 못 들어간다고 그럽니다. 마귀가 참수하면서 너 못 들어간다고 하는데 율법이 당장 정죄의 심판의 칼을 들고 못 들어 간다고 하는데. 내 양심이 나는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말을 하는데 어떻게 들어갑니까? 그러나 십자가 내놓으면 십자가 앞에 죄는 사라지고 마귀는 혼비백산하고 떠나가고 율법은 무력화되고 내 양심은 정결하게 되고 천국 가는 문이 활짝 열려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십자가만이 살길입니다. 십자가 없이 살아갈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십자가를 교회에도 십자가를 천당에도 영원히 십자가 중심의 예배가 계속될 것입니다.
히10:19~20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님의 육체가 찢어지므로 성수에 들어갈 문이 활짝 열려서 우리는 십자가를 의지하고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 죄가 조롱하면 ‘너 비켜!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십자가가 이겼느니라.’, 마귀가 막으면 ‘비켜! 십자가로 너는 무장해제 되었느니라.’, ‘못 건너가!’라고 율법이 막으면 ‘다 청산되었느니라.’, 양심이 참소하면 ‘가만있어. 예수님의 보혈이 이겼느니라.’ 가는 곳마다 승리하고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권세로 우리는 도처에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은 십자가 이외에 지식을 자랑하거나 교육을 자랑하거나 인물을 자랑하면 모두다 사탄입니다. 십자가 이외에 어떤 목사라도 자기를 자랑하면 사탄의 종이요, 어떤 장로나 권사나 안수집사나 집사나 성도들이 자랑하면 사탄의 자식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할 것은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바울선생도 내가 십자가와 그 못 박힌 그리스도 이외에는 자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죽는 것이 겁이 나지 않아요.
고후 5: 1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영원한 집이 있는데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유유히 들어갈 수 있으니까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 넘치는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저 하늘을 바라보아 어떻게 들어갈 것이냐. 십자가가 나를 통해서 들어오너라. 여기에 길이 있다. 그 십자가 건너편에 보면 영광이 충만합니다. 눈물도 없고 근심도 없고 탄식도 없고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도 없고 영원한 소망, 영원한 기쁨, 영원한 평화, 영원한 아름다움이 넘쳐나고 약한 것도 없고 신령한 몸으로 영광스러운 몸으로 강한 몸으로 영생하는 몸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세세무궁토록 천천 만세 왕 노릇 하며 살 수 있는 곳이 예비 되어 있는 것입니다. 천국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이 십자가이므로 십자가를 자랑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결론>
십자가만이 우리의 소망이요, 구원이요, 천국길인 것입니다. 다른 길로 가지 마십시오. 다른 길로 미혹되지 마십시오. 십자가의 길 이외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절대로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 이외에는 살아갈 곳이 없습니다. 이 땅에 살 동안에도 마음속에 십자가를 품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서도 세세무궁토록 십자가를 예비하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일생을 십자가 중심으로 살아야 하고 천국에서도 십자가 중심으로 모여서 세세무궁토록 찬미하고 감사할 것은 십자가밖에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 그늘 밑에 가면 내가 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 최대의 선물은 갈보리 산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 속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끌어 안으셨습니다. 플러스표로 영원히 우리를 끌어안고 옛사람을 폐하고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아담의 후손을 멸하고 그리스도의 자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지옥의 자식을 천국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고 세상에서 천국으로 가는 문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에게 십자가를 선물로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꿈이요, 믿음인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아니고는 우리는 구원받을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우리의 자랑은 십자가밖에 없는 것을 알고 십자가만 자나 깨나 믿고 의지하고 자랑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2152 마가복음 기도원의 예수, 새길의 예수, 그리고 공동체 막10:46~52  홍상수 형제  2009-10-31 1865
2151 창세기 생존과 해방으로의 인도자 - 하갈의 하나님 창16:7~12  최만자 자매  2009-10-31 2043
2150 마태복음 이렇게 배웁니다 마4:3~8  안인숙 자매  2009-10-31 1495
2149 마태복음 하나가 되기 전에는 마5:23~24  이상익 형제  2009-10-31 1997
2148 예레미야 희망의 노래 렘32:37-41  정지석 형제  2009-10-29 2147
2147 사도행전 신앙의 현실과 삶의 현실 행2:42-47  정용섭 목사  2009-10-29 2331
2146 베드로전 희망은 기다림이다. 벧전1:13-21  정용섭 목사  2009-10-29 2411
2145 사도행전 부활의 증인 공동체 행2:22-32  정용섭 목사  2009-10-29 1809
2144 요한복음 부활을 증거 하는 여인 요20:11-18  정용섭 목사  2009-10-29 2043
2143 마태복음 갈릴래아 나자렛 사람 마21:1-11  정용섭 목사  2009-10-29 2099
2142 요한일서 왜 죄를 짓지 말아야 하나? 요일3:1~6  조용기 목사  2009-10-28 2037
2141 누가복음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눅10:17~19  조용기 목사  2009-10-28 2485
2140 요한복음 우물물과 생명수 요4:13~14  조용기 목사  2009-10-28 2113
2139 마태복음 마음하늘 마6:10  조용기 목사  2009-10-28 1628
2138 누가복음 아! 하나님의 은혜로 눅15:11~24  조용기 목사  2009-10-28 2687
2137 여호수아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 수1:2~9  조용기 목사  2009-10-28 3790
2136 고린도후 새해의 주인 하나님(God, the Master of the New Year) 고후6:1~2  조용기 목사  2009-10-28 2247
2135 이사야 크리스마스에 오신 아기 사32:1~4  조용기 목사  2009-10-28 1803
2134 히브리서 예비된 안식 히4:1~11  조용기 목사  2009-10-28 2103
2133 히브리서 징계 히12:5~13  조용기 목사  2009-10-28 1937
» 고린도전 나의 새 생명의 모태 십자가 고전1:18~25  조용기 목사  2009-10-28 1690
2131 고린도전 성령의 능력으로 하라 고전2:1-5  박노열 목사  2009-10-26 1937
2130 고린도전 하나님의 미련한 것으로.. 고전1:18~25  박노열 목사  2009-10-25 2013
2129 로마서 승리하려면 근심하라 롬7:22-25  강종수 목사  2009-10-25 1676
2128 고린도후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고후5:1-10  김필곤 목사  2009-10-24 2285
2127 창세기 명절의 만남, 중요한 것은 창45:4-10  김필곤 목사  2009-10-24 1866
2126 로마서 서로 만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롬1:8-13  김필곤 목사  2009-10-24 1845
2125 갈라디아 서로 짐을 지라 갈6:1-5  김필곤 목사  2009-10-24 2410
2124 시편 낙심되었습니까? 시42:1-11  김필곤 목사  2009-10-24 2170
2123 에배소서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2:1-10  김필곤 목사  2009-10-24 1709
2122 전도서 종교적 회의를 넘는 능력있는 신앙인 전3:11-22  김필곤 목사  2009-10-24 1713
2121 사무엘상 잃은 것 찾게 하시는 하나님 삼상30:1-10  김필곤 목사  2009-10-24 2181
2120 창세기 끝도 아름다워야 합니다 창50:22-26  김필곤 목사  2009-10-24 1838
2119 히브리서 가정 문화, 변혁의 주인공 히11:8-10  김필곤 목사  2009-10-24 1744
2118 나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나훔 나1:1-15  한태완 목사  2009-10-23 939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