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히12:5~13 |
---|---|
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6년 12월 10일 주일 2부설교 |
-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더불어 ‘징계’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자라나면서 부모님의 꾸지람과 채찍을 맞은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억울하고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으나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꾸지람과 채찍 뒤에 감춰진 부모님의 뜨거운 사랑, 우리가 잘되기를 간구하는 그 소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천국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은 신앙성장 과정에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의 꾸짖으심과 채찍을 체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징계 받을 때는 고통스럽고 섭섭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녀이기 때문에 바르게 자라기 위하여 반드시 사랑의 채찍을 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채찍을 들어서 때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생자든지 그렇지 않으면 믿지 않는 자인 것입니다.
하루는 미국의 무디 목사님이 교인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아무리 범죄 해도 하나님은 저를 그대로 두세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안살아 계신 것 아닙니까?”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에 무디 목사님은 그 부인을 쳐다보면서 “부인, 부인은 지금 스스로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부인은 “아니, 왜요? 제가 교회를 얼마나 오랫동안 다녔는데요?” 이 말에 무디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부인이 참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은 부인을 그대로 놔두지 않고 반드시 때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나왔어도 하나님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안 때린 것 보니 사생자든지 버림받았든지 가짜 교인이 틀림없습니다.” 맞습니다! 히12: 8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은 성장과정에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의 꾸짖으심과 채찍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장하는 동안에 반드시 아버지의 교정을 받아야 됩니다. 완전하게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허물투성이요, 실수투성이인 우리들을 하나님이 그대로 보실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천국을 상속으로 주려고 택했는데 올바른 사람이 되지 못하면 어떻게 천국을 상속으로 주시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 뿐 아니라 또 한번 징계의 채찍을 들어 때려서 우리의 잘못을 교정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본론]
1. 왜 징계 하시는가?
사람들은 말합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셔야 되나요?
그것은 불순종 때문인 것입니다. 태어날 때마다 순종하는 사람은 없어요. 여러분 자식 길러봤지요?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호기심이 많습니까? 부모님이 어린아이 기를 때 “야, 책상위에 올라가지 말라. 밥상위에 올라가지 마라. 경대에 올라가지 마라. 이것을 손대지 말라. 저것은 손대지 말라.” 그래도 한번도 순종하는 것 보았습니까? 얻어맞아야 순종을 하지요. 그리고 화장품 회사에서나 가정의 약 팔 때는 옆에 반드시 붙여 놓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손대지 못하게 하십시오.’ 왜냐하면 손만 닿으면 무엇이든지 끌러서 마시니까. 애들은 무엇이든지 손만 닿으면 끌러서 마십니다. 그것이 빈대약이든, 쥐약이든 상관하지 않아요. 정말 애 기를 때는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위험한 약은 반드시 어린 아이가 손대지 못하는 곳에 두어야 되고 위험한 걸상을 갖다 놓으면 안 됩니다. 올라가지 말라고 하면 더 올라가서 반드시 넘어지는 것입니다. 저도 지금 기억나는 것은 어릴 때 자랄 때 한참 아침 식사를 하는데 아버지 책상에 내가 기어 올라갔다가 책이 뒤엎어져 가지고서 내가 책상에 깔린 기억이 아직도 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불순종하기 때문에 부모에게 늘 꾸중을 듣고 채찍을 맞아야 되는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신앙이 어릴 때는 하나님께 비일비재하게 불순종합니다. 그러므로 꾸짖음을 받고 채찍에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것입니다.
사 1: 4~ 5에 “슬프다 범죄 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야훼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북극 탐험대장 존 프랭클린 경은 탐험 도중 눈과 빙산 사이에 갇혀 밤을 지내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워낙 추웠기 때문에 그 곳에서 잠이 들면 30분만 지나도 의식이 없어 얼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프랭클린 경은 대원들에게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잠들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피곤에 지친 대원들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습니다. 흔들어 깨우면 “우리는 얼어 죽지 않습니다. 단지 잠시 쉬려고 눈을 감고 있는데 왜 대장님이 이렇게 우리를 괴롭힙니까?”하고 불평을 말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프랭클린 경은 그들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몸을 흔들고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얻어맞고 발길로 차이고 반항을 했지만 그 얻어맞는 것 때문에 잠을 잘 수 없고 아침까지 깨어서 해가 돋을 때까지 안 얼어 죽고 살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맞을 때는 무시무시하게 아팠지만 결국 대원들은 무사히 밤을 보내고 탐험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불순종은 단지 순종하지 않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불순종하면 영적으로 생명이 끊어집니다. 세상 잠에 푹 빠져 버립니다. 마귀의 자장가 소리를 듣고 마귀의 세계로 끌려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세상 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불순종의 자녀들을 때린 것입니다. 사정없이 얼굴도 때리고 발로 차기도 하고 가슴팍을 때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에서 깨어나서 기도하고 정신을 차려서 마귀의 자장가에 속아 넘어가지 말도록 하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여러분 가축을 훈련할 때도 불순종하면 때립니다.
저희는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언제나 소를 먹여야 되었습니다. 아침에도 학교가기 전에 아침소를 먹여야 되고 학교 갔다 오면 곧장 소를 끌고 나가서 풀을 먹여야 되는데 정말 소를 먹이기가 시간이 안가고 귀찮고 괴롭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소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혼자 놀다가 보면 소가 남의 밭에 들어가서 남의 콩밭의 콩을 다 뜯어 먹고 주인이 소를 잡고 야단법석을 합니다. 그러면 그다음 주인에게 사정을 하고 나와서 소를 엄청나게 때립니다.
소를 묶은 이까리를 가지고서 내리 때리고 이리 때리고 소가 이리 뛰고 저리 뛰도록 때리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소를 많이 때린 경험이 있습니다. 순종을 안 하기 때문에 “너 또 남의 밭에 들어가서 먹겠느냐? 한번만 더 들어가면 죽여 버린다.” 때리고, 때리고. 순종하면 때릴 필요가 없는데 순종 안하기 때문에 때리거든요. 우리들도 순종을 안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때리는 것입니다.
시32: 9에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약 3: 3에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순종하면 왜 때리겠습니까? 순종하면 왜 재갈을 물리겠습니까? 불순종하기 때문에 순종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자기 고집대로 비뚤어진 길로 나가는데 징계 안할 부모가 있겠습니까? 자식이 부모 앞에서 잘못된 길로 가는데요. 깡패가 되고 양아치가 되고 남의 물건을 훔치고 싸움이나 하고 돌아다니면 부모가 그것을 보고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부모가 아니지요.
어느 사형수 한사람이 사형받기 전에 어머니를 좀 만나자고 간구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너무나 자식에 대한 애절한 마음이 있어 아들이 앉으니까 창살 사이로 어머니 손 좀 내달라고 어머니가 손을 내주니까 손을 딱 잡더니만 칵 깨물어 손가락을 끊어 버렸어요.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면서 “이놈아, 어떻게 애미 손가락을 물어 찢느냐?”고 그러니까 “어머니 내가 어릴 때 이웃집에 가서 물건을 훔쳐 왔을 때 어머니가 잘했다고 칭찬했지요. 안 잡히고, 안 들키고 용하게 잘 훔쳐왔다고 어머니가 칭찬하는 바람에 내가 용기를 얻어 가지고서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었습니다.” 조용기 말고요. “나중에는 살인강도가 되고 오늘날 사형선고를 받게 된 것은 어머니가 나를 꾸짖고 때려 주었더라면 이 길로 안 왔을 것인데 나를 감추어 주고 칭찬하고 격려해 주었기 때문에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히12: 7~ 8에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징계 없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나는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징계도 하지 아니하시고 그대로 내버려 놓으신다. 하나님은 나에게 관용만 베푸신다.” 그것은 여러분이 사생자나 친아들이 아니거나 주워온 아들이거나 버림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관심한 것입니다. 여러분 길을 가다가 흙탕물에 마구 뒹굴고 노는 애를 볼 때 남의 애들이 그러는 것 보면 무심코 ‘쯧쯧쯧. 교육 잘못시켰다.’ 그러고 지나가잖아요. 그러나 여러분의 자식이 진흙탕에 새 옷을 입고 뒹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멱살을 잡고 끌어내어 가지고서 집에 와서 한 바께스 물을 퍼붓고는 몽둥이로 때리지요. “다시 진흙에 뒹굴어 봐라. 가만 두겠는가!”라고 하는 그것이 부모인 것입니다.
잠13:24에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 하느니라”
매를 아끼는 자는 자식을 미워한다. 요사이는 교육제도가 어떻게 되었는지 자식에게 매를 들 수가 없어요. 학교에 가도 선생이 자식을 때리면 당장 핸드폰으로 경찰을 불러서 고발을 합니다. 당장 부모를 불러내고 부모는 뛰어와서 학생 앞에서 학부모라는 자격을 가지고 선생을 맹렬히 공격합니다. 그러니 선생이 인격을 만들어 줄 수 없어요.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데 징계 없이 키울 수가 있습니까? 부모들도 요사이 자녀들을 징계하자니 “기죽이지 말라. 기죽이지 말라.” 아버지가 자식들 좀 혼내주면 엄마가 와서 “왜 네 자식이냐? 왜 기죽이냐?” 또 엄마가 자식을 꾸짖으면 아버지가 와서 “네 자식이냐? 왜 내 자식을 기죽이느냐?”
잘못된 기는 죽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변화가 되지요. 올바른 길로 걸어가지요. 마음의 어리석음은 채찍으로 말미암아 바로 잡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음은 매를 때려야 마음에서 나가는 것이지 그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징계가 없는 교육으로 말미암아 패륜아들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불신앙하기 때문에 징계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안 믿어요. 교회는 와서 신앙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깊이 믿고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신18:19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에 하나님의 많은 축복의 약속의 말씀도 있고 하나님의 의무를 주시는 말씀도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우리가 믿어야 돼요.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아무 연결이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연결되는 것이지 믿지 아니하면 연결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해서 믿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 문을 열고 받아 들여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일조와 헌물을 드려 내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지 않는가 보라. 이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괜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건 가지고 돈 가져오라고 꾀는 그런 말씀 하신다.”고 불순종했습니다. 그 결과로 온 나라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서 그들이 가난해지고 패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징계 하시는 것입니다.
렘35:17에 “내가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함이니라”
말해도 안 듣고 불러도 대답 안하면 때려야지요. 또한 우리가 징계를 받는 것은 자기만 섬기고 이웃을 멸시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혼자 살지 못해요. 태어나면 벌써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고 외아들, 외딸이 아닌 다음에는 형제들이 있고 그 다음에는 장성하면 학교가면 친구들이 있고 또 가장 가까운 친구인 아내가 있고 자식을 낳게 되지 않습니까. 혼자 못살아요. 함께 살아야 돼요. 그러므로 내 중심으로 내 고집대로만 인생을 살면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어요.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다른 사람하고 함께 산다는 것을 늘 의식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나와 달라요. 제가 결혼식 때 늘 신랑, 신부에게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되고 아내도 남편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된다. 다른 배경을 가지고 다른 교육을 가지고 다른 경험을 가지고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 사람을 항상 그 사람 입장에서 동정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참아야 되지 내 입장만 가지고서 나 닮으라. 아내도 날 따라 오너라. 자식들도 날 따라 오너라. 이웃도 날 따라 오너라.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충돌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다른 것을 인정 안하면 충돌하고 말아요.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이 대화의 시작입니다. 대화라는 것이 일방통로로 나 혼자만 말을 자꾸 하면 대화가 아닙니다. 아내와 자식들을 모아놓고 아버지가 일장연설을 합니다. 자기말만 해요. 자기의 생각, 자기의 철학을 말합니다. 1시간을 이야기해도 대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주장 말하는 것이지. 대화라는 것은 내 말을 하고 난 다음 상대방의 말을 듣고 또 상대방의 말을 내가 듣고 또 내말도 하고. 그래서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서로의 생각에 동정을 하고 그리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사는 것이 인간관계인 것입니다. 자기만 섬기고 이웃을 멸시하게 될 때는 분쟁이 생기고 알력이 생기고 투쟁이 생깁니다. 요사이는 참 가정이 쉽게 이혼을 하는데 왜 그러느냐. 너무 집에서 자식들을 키울 때 부모님이 행실 없이 키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사이 젊은이들은 연하의 여성하고 결혼하려고 해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여성하고 결혼하는 것은 엄마와 같이 의지하려고. 30, 40이 되어도 마마보이가 되어서 엄마! 엄마! 이것, 엄마! 저것. 그렇게 자라 놓으니까 전부 마누라도 자기 엄마와 같이 생각하고 괴롭습니다. 옛날에 우리 교회에 선교사로 왔던 스웨인 목사 부부가 있는데 스웨인 목사님은 어릴 때부터 고아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은 소련 태생인데 나이가 연상의 부인을 데리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둘이가 선교사가 되어서 한국에 나왔는데 하루 부인이 내게 와서 신앙상담을 왔습니다. “목사님, 우리 남편이 신앙도 좋고 참 착한데 항상 나보고 엄마, 엄마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불러서 ‘여보 나는 당신 엄마가 아니고 당신 아내에요. 당신 엄마처럼 당신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참아주지는 않아요. 당신과 나는 동등한 인격을 가진 당신의 아내에요. 그러므로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꼭 아침에 “엄마! 엄마! 칫솔 갖다 줘. 엄마 옷 갖다 줘.” 그렇게 한다고 우리 남편 좀 불러다가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교육 좀 시켜달라고 한 적 있습니다. 여러분 아내는 엄마가 아닙니다. 나와 대등한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서 아내와 함께 대화를 하고 이해를 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인내할 수 있는 것을 배워야 돼요. 또 젊은 여성들은 결혼할 때 남편을 아버지인줄 착각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나는 딸이 없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딸이 있었으면 완전히 확 빠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미리 아시고 딸을 안주셨는데 아버지가 딸을 얼마나 사랑합니까? 딸들이 크게 자라서 아버지 옷도 입혀 주고 아버지 심부름도 해주고 아버지 생활을 돌보아주면 아내보다도 아버지를 더 사랑하는 딸이 되는 것입니다. 저희 선교사로 계셨던 존 허스톤 목사님 외딸이 있었습니다. 캐런이라고 외딸이 있었는데 굉장히 착하고 이뻐요. 그런데 아버지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은 가정싸움이 났는데 엄마가 아버지를 구박을 하니까 딸이 앞서 나와서 “왜 우리 아버지 구박하느냐?” 그러니까 엄마는 “내 남편이지 네 남편이냐? 너는 빨리 시집이나 가고 집 떠나라!” 그러니 걔는 “아니다. 내 아버지인데 왜 엄마가 내 아버지를 괴롭히느냐?” 야! 그 싸움 내가 말리는데 혼났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그 딸을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딸이 시집을 못 갔습니다. 엄마는 이제 천국 갔는데 딸이 이제 50이 넘었는데 아버지 80된 아버지와 같이 삽니다. 한평생 아버지와 같이 살아요. 참 그런 딸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결혼하는 젊은 여성들은 남편이 아버지처럼 자기를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해주고 참아주고 끌어안아 주기를 기대하는데 그런 남편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눈 닦고 찾아도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안 그런데 당신은 똑같은 남자로써 왜 이 모양이냐? 당신하고 못살겠다.” 그래서 가정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대화가 안 되는 것입니다. 무조건하고 애 중심으로 이해해주고 동정해주고 사랑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만 섬기고 이웃을 멸시할 때 문제가 생기고 그런 사람을 또 하나님은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교회에도 교회공동체입니다. 함께 주님께 나와서 함께 주님을 섬기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거기에 목사가 장로나 성도들보고 전부 나만 따라 오너라. 그러면 그 목사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지 않겠습니까? 혹은 장로가 목사와 교인들은 전부 우리 장로만 따르라. 그것도 징계 대상입니다. 어떠한 공동체에도 자기중심으로 따라오면 징계대상입니다. 서로 대화하고 의논해서 서로 이해해서 함께 손잡고 나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시101: 5에 “자기의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로다”
보세요.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라 했습니다. 무서운 말씀 아닙니까? 눈이 높이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잠14:21에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모이면 성찬 때 음식을 가져와서 성찬을 했습니다. 옛날에는 교회가 가난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성찬을 준비하지 못하므로 성찬을 집에서 음식을 가져오는데 부자들은 맛있는 떡과 반찬을 잔뜩 가져오고 가난한 사람은 빈 손들고 옵니다. 그래서 성찬식 때 성찬을 떼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은 모여서 그들은 진짜 진수성찬을 먹고 가난한 사람들은 입맛만 쭉 다시고 교회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차별하고 분쟁이 생기고 분열이 생겼습니다. 양극화 현상이 생겼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이 부자들이 자기만 챙기고 이웃을 멸시하는 그 태도에 분노하셨습니다. 이래서 고린도교회에 바울선생이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그런즉 먹으려 모일 때 서로 기다리라” 성찬을 잘못 떼도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병들게 하시고 생명을 빼앗기도 하시는데 우리가 자기만 섬기고 이웃을 멸시하는 삶을 절대 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란 그리스도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나 혼자 믿고, 나 혼자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살아야지 사랑 없는 몰인정한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의 가장 큰 조건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한다. 그냥 가서 끌어안고 늘 입만 쪽쪽 맞추고 얼굴만 두드리고 끌어안고 이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사랑이란 항상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항상 입술을 쪽쪽 맞출 수가 있어요? 항상 끌어안을 수도 없습니다. 바쁜 세상에 끌어안을 수가 어디 있습니까? 바쁜데. 사랑이란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한 사람이 없고 허물투성이인데 남편도 아내의 잘못을 지적하지 말고 허물을 덮어주고 잘난 것을 지적해서 칭찬해주고 아내도 남편의 허물을 덮어주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용기를 줘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부지요. 부부가 서로 자꾸 벗기고 할퀴고 소금을 치고 고통을 주면은 부부가 아니라 원수가 되지요. 하기야 뭐 사람들이 말하기를 부부는 하늘에서 내보낼 때 원수가 화목하라고 내보냈다는 그런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간에 많이 싸운 데요.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부부라는 것은 하나님이 서로 허물을 덮어주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힘을 주어서 험한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부부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이 없이는 가정이 이룰 수 없어요. 허물을 덮어주고 용기를 넣어 주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준다. 여러분 칭찬이 얼마나 좋은지 압니까? 칭찬은 기계에 기름을 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기름을 치면 기계가 잘 돌아가잖아요. 남편이 아내를 칭찬하면 아내가 용기백배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칭찬하면 그 칭찬이 남편에게 살아갈 의욕과 용기를 넣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장점을 자꾸 들추어 주고 격려하고 희망하고 힘을 주어야 되는 것이지 결점을 들춰내서 상처를 입히고 자존심을 짓밟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최후의 일각까지 지키는 것이 자존심입니다. 자존심을 잃어버리면 아무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자존심을 버린 사람은 도적질도 할 수 있고 살인도 할 수 있고 강간도 할 수 있고 강도도 할 수 있습니다. 창녀도 될 수 있습니다. 자존심을 없애 버리니까 자기 자존심이 없는데 뭘 못해요.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자존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존심을 짓밟으면 인간은 모든 체면을 던져 버리고 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자존심에 손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을 지적하더라도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지적은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조차도 자존심에 손을 안 댔습니다. 왜냐하면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힌 여자 다 돌로 쳐 죽이려고 할 때 예수님은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 죄짓지 말라.” 자존심에 손상시키지 않았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에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 치우고 여섯째 남편하고 사는 여자보고도 예수님은 “이 창녀야, 이 더러운 여자야!” 그런 자존심 상하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네 남편을 데리고 오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내가 남편이 없나이다.” “맞았어. 네가 지금 사는 그 남편은 네 남편이 아니고 그냥 동거하는 남편이다. 네가 과거에 다섯 남편이 있었다.” 사실을 말했지 꾸짖거나 상처를 입히는 욕은 하지 않았습니다.
레19:16~18에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야훼이니라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야훼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 없는 말을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2. 징계의 채찍
잠20:30에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하나니 매는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
징계가 뭐 이렇게 간지러 주는 것이 징계인줄 압니까? 상하게 때린다고 말했었습니다. 상하게 때린다는 것은 굉장히 아프다는 것입니다. 고함을 치도록 아프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 징계를 주실 때는 육체의 병, 마음의 병을 통해서 징계를 줄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병들면 당장 내가 누구든지 회개를 해야 돼요. 성경 야고보서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라.” 징계를 받을만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병이 올 수가 있으므로 죄를 생각하고 회개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가에 가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나중에 성전에서 그를 만났을 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죄를 범해서 38년 동안 병들어 누워있는 것 예수님이 용서하고 고쳐 주었는데 또 너를 죄를 지으면 더 심한 것이 다가올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제일 쉽게 하나님이 징계의 채찍을 때리는 것은 병입니다. 반드시 징계로써 병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마귀가 우리에게 와서 억압하여 병을 들게 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죄짓고 나면은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알아요. 이 병이 마귀가 억압해서 오는 병인지 내가 죄를 지어서 매를 맞는지 자기가 알아요. 아무 잘못한 것 없는데 병이 들 때는 마귀를 물리쳐야 되지만 내가 잘못한 것 번연히 알고 채찍에 맞을 때는 아! 징계라는 것을 알고 빨리 회개해야 병이 낫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 부흥을 이끌었던 이성봉 목사님은 어린 시절 예수님을 잘 믿었으나 청년이 되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21살 때 1920년 6월 24일 주일 예배를 드리는 대신 평양에 가서 장사한 돈으로 술을 진탕 마시고 돌아오다가 갑자기 오른쪽 다리에 통증을 느끼고 쓰러졌습니다. 의사는 골막염이라 다리를 절단해야 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질병으로 그를 치신 것입니다. 이에 이성봉 목사는 철저하게 회개하고 3년의 투병생활 하는 중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26살에 신학교에 입학하여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한 청년이 회개하고 변화되어 그 다음 한 나라를 복음으로 흔드는 위대한 종이 된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 이성봉 목사를 모르시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저희 신학교 다닐 때 우리 한국에 최고의 부흥사였습니다. 한국 전역을 복음으로 뒤흔들었습니다. 그도 징계를 받아서 3년 동안 골막염을 치료하는 눈물의 기도를 하고 난 다음 변화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면 하나님께서 징계의 채찍을 드십니다. 그러나 징계를 통해 우리가 더 깊은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징계는 또한 사업이 망할 때도 있습니다. 잘 가는 사업이 하나님의 징계를 맞고 패망한 사람들 많습니다.
말 3: 8~ 9에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말했었습니다.
학 1: 6에는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하나님의 성전은 폐허로 만들어 놓고 전부 사람들이 자기의 삶에만 치중을 하고 연락을 위해서 준비하니까 하나님이 징계를 때려서 하는 모든 사업이 망하게 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텐리 템이라는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있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녔지만 결혼을 한 후에 교회를 등한히 하고 돈 버는 일에 열중을 했습니다. 당시는 플라스틱 사업이 호황기라 그도 작은 플라스틱 공장을 세워 사업을 했는데 얼마나 사업이 잘 되던지 돈을 긁었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없다고 교회에도 안나가고 성경도 안 읽고 가정예배도 드리지 아니하고 가정도 등한히 하고 아내가 교회 나가자고 그렇게 사정을 해도 “웃기는 소리 하네. 돈벌 때 돈벌어야지 무슨 한가하게 교회 가서 예배나 드리고 있냐!”고 꾸짖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아니하여 사업이 조금씩 어려워지기 시작하더니 무려 네 번이나 도산을 하고 재기할 여력이 조금도 없게 된 것입니다. 그제야 스텐리 템은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임을 알고 교회에 나가서 땅을 치고 회개하고 울부짖어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하루는 기도 중에 물에 빠진 베드로가 주의 손을 잡고 건짐 받는 환상을 보고, 그는 ‘이제부터 오직 주님의 손만을 붙들고 사업을 하겠습니다. 나는 세상 사람이 시키는 데로 하지 않고 세상 줄잡지 아니하고 주님의 손만 잡고 사업을 하겠습니다.’하고 철저히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가정예배 드리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서약하기를 수익금의 51퍼센트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아예 규정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십일조를 드린 것이 아니라 수입 중에 51퍼센트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새벽마다 기도하며 주님과 의논하여 사업을 했습니다. 그 결과 1년 안에 2백만 달러의 수익을 내는 굴지의 사업가로 성공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삶을 살면 징계의 채찍을 드십니다. 그럴 때 회개하고 주님께 엎드려 변화하면 오히려 더 큰 신앙과 축복을 얻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못되라고 때리는 것이 아니라 잘되라고 때리는 것입니다. 때려서 돌이키면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사 우리를 더 잘되게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때리시고 상처 입히시고 난 다음에 하나님은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또한 징계는 원수를 시켜서 우리를 공격하게 만들 때도 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 일로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하나님이 굉장히 진노하셨어요. 자기의 부하 장수의 아내인 밧세바를 강제로 빼앗아서 강간을 하고 자식을 잉태하게 만든 죄, 그리고 그 남편을 일선에 내보내서 죽인 죄, 살인죄에다가 간음죄를 지었으니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고 말하기를 이제부터 너를 크게 참소할 마귀의 꺼리를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징계하셨는데 그 몸에서 나온 압살롬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국을 빼앗으려고 해서 결국은 압살롬의 군대와 다윗.
아버지의 군대가 대접전을 벌이고 결국 아버지가 아들 압살롬을 죽여야 하는 비극까지 이른 것입니다. 징계라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삼하 15:14에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도망할 때 맨발로 울고 가고 함께 모든 백성도 자기 머리를 가리고 울고서 도망을 쳤습니다. 징계라는 것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어찌할 도리 없이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는 다윗이라도 아들이 원수가 되어서 공격을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혹은 징계를 받을 때 가정파탄, 자녀의 가출이나 부부간의 이혼같은 비극도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때릴 때는 여러분 아프게 때리는 것입니다.
삼하 7:14에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의 매가 뭡니까? 자식을 가출하게 만드는 사람의 매, 인생의 채찍이 부부간에 서로 분열되고 갈라지면 얼마나 아픈 것입니까? 내가 죄를 지어서 잘못해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아니하고 죄악 가운데 버티면 결국 하나님의 징계는 가장 아픈데 살을 파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렘 2:19에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야훼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야훼의 말씀이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징계는 생명을 빼앗는 징계도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안 들으면 하나님이 생명을 빼앗습니다.
겔18:20에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고 말했으며, 레26:16에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라고 말했었으며,
“또 만일 너희가 그렇게까지 되어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일곱 배나 더 징벌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 징계의 최후는 죽음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학자요, 또 목회자였던 에드워즈 목사의 일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목회하던 교구에 주정뱅이 도박꾼인 사람이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에드워즈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왜 왔냐고 하니까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네가 술을 끊고 도박을 끊고 착한 사람이 안 되면 1년 이내에 네 생명을 빼앗겠다.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에드워즈 목사님은 그 하나님 징계의 경고인데, 당신이 해야 될 일은 술을 끊고 도박을 끊고 교회에 열심히 나와서 하나님을 잘 섬기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1년이 넘어도 징계를 받지 아니할 것입니다. 얼마나 꿈이 무서웠든지 이 사람은 목사님 말대로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도 별 다른 일이 생기지 않자 그는 옛날 생활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술도 다시 조금 마시고, 도박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드워즈 목사님이 아무리 당신 꿈을 기억하시오. 하나님은 징계 하십니다 해도 하는 말이 “꿈은 꿈이지. 뭐 꿈을 보고 야단이야. 하나님이 징계하려면 지금쯤 했겠지 뭐. 아무 상관도 없이 나는 괜찮은데 무슨 소리 합니까? 그런 어리석은 소리를 목사님 하시 마시오.”하며 오히려 반항을 했습니다. 그 후 얼마 후에 그 주정뱅이는 만취된 상태로 술집을 나오다가 그 계단에서 굴러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 죽은 날을 목사님이 일기장을 펼쳐서 보니까 바로 꿈을 꾼 그 날로부터 꼭 1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경고한데로 징계의 채찍을 때려서 생명을 빼앗은 것입니다. 그가 믿고 순종했더라면 징계를 당치 않았을 것인데 불순종하고 반항했으므로 결국 생명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은 무서워요. 때로는 우리의 생명도 거두어 가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징계를 당할 때
그러므로 우리가 징계를 당할 때 어떻게 징계를 받아 들여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징계를 때릴 때 우리는 “부당합니다. 왜 나를 때리십니까? 하나님 너무 합니다.” 그렇게 반항을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매를 맞을 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원망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애들을 키우면서 굉장히 마음에 많은 괴로움을 느낀 것은 내가 꼭 애들 잘못을 고치기 위해서 채찍을 때리면 채찍을 맞고 난 다음 당장 어머니에게 가서 “엄마가 일러 주었지?” 회개를 하지 않고 “엄마가 일러 주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알고서 나를 때리지 않느냐” 반항을 합니다. 맞았으면 회개했으면 좋겠는데 자기 잘못을 회개를 하지 않고 꼭 엄마에게 가서 “엄마가 왜 일러 주었느냐.”고 엄마에게 원망을 하는 것을 볼 때, 아무리 때려도 회개를 안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괴로웠던 것이 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도 그런 체험이 있지요? 꼭 엄마가 징계를 하면 아빠가 일러 주었는가 보다, 아빠가 징계를 하면 엄마가 일러 주었는가 보다.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이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매를 맞을 때 원망하고 불평하면 매를 훨씬 더 많이 맞습니다. “아버지 당연지사입니다. 맞아야 마땅합니다. 그냥 맞을 정도가 아니라 병신이 되어도 마땅합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회개를 해야 돼요. 얻어맞을 때 회개를 해야 용서를 받지 완악한 마음으로 원망하고 불평하면 이것 개준(?)의 뜻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 크게 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에는 몽둥이가 여러 종류가 있어요. 적은 회초리를 때리다가 회개 안하면 회초리가 자꾸 커지는 것입니다.
나는 옛날 어머니가 매를 가지고 때릴 때 제가 발견한 것이 있었어요. 제가 어릴 때 짓궂은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매를 많이 맞았는데 자꾸 달아나니까 매 끝에 맞으니까 굉장히 아프더라구요. 그래서 그 다음 경험을 통해서 어머니가 나를 때릴 때 어머니를 끌어안고 달려드니까 매 안쪽에 맞으니까 나 때려도 아프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진짜로 아픈 것처럼 아프지도 않는데 고함치고 “아이고 나죽네. 아이고 나죽네.” 그래도 사실은 안 아프더라구요. 그래서 경험을 얻어 가지고 그 다음부터 어머니가 때리기만 하면 끌어안거든. 어머니를 끌어안고 “아이고 나죽네.” 그러니까 어머니가 때리기를 그친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끌어안고 달라들어야 매도 덜 아프지 하나님께로부터 자꾸 변명하고 뒤로 물러가면 채찍 끝에 맞으면 살을 파고 들어오고 피를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히12: 5~ 6에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야훼의 징계를 경히 여기거나 꾸지람을 싫어 말라. 야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지아니하고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한다고 했기 때문에 여러분 징계할 때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자녀로 취급하고 서자로 취급하지 아니하시는 것을 알고 오히려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징계는 괴롭습니다. 저도 48년간 목회하면서 개인적인 일 때문에 목회 때문에 하나님께 매를 맞은 적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때리실 때는 인정사정없이 때립니다. 정말 아프게 때립니다. ‘아이고 나 죽겠네. 아이고 하나님 나 죽겠네.’ 징계를 때립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징계를 받으실 때 십자가에 못 박혔지 않습니까?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탄식을 하도록 징계를 때리신 것입니다. 징계는 아픈 것입니다. 여러분, 징계는 몸에 병도 들게 하고 사업도 망하게 하고 가족들 간에 지리멸렬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기도 하고 자기의 목숨을 잃어 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징계를 해서 지옥에 안 보내려고 하니까. 얻어맞아 병신이 되더라도 회개해서 천국 가는 것이 낫지 건장한 몸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께 버림받고 영원한 지옥에 가면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거룩함에 참여시키고 하늘나라 영광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끝까지 따라와서 때리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에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징계를 받을 때 땅을 치고 회개하고 변화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징계를 받고 돌아서면 또 옛날로 돌아가고 옛날로 돌아갑니다. 개 보세요. 개가 잔뜩 먹고 난 다음 구속에 가서 웩하고 토해 놓습니다. 이만큼 토해놓고 보면 그것도 도로 또 먹어요. 비위기 상해요. 돼지가 물러 다 씻어 놓으면 또 수렁에 들어가서 또 뒹굴어요. 사람이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개와 같이 씻고 수렁에 들어가는 돼지같이 죄를 회개했다고 하고 난 다음에 징계의 채찍을 놓으면 또 옛날로 돌아가고 또 옛날로 돌아가고 거듭거듭 그렇게 하다가 하나님이 나중에는 이정도 징계해서는 안 되겠다. 생명을 빼앗아야 되겠다. 큰 죄악으로 영혼을 잃어버리기 전에 생명이라도 추수해야 되겠다고 그 생명을 거둬 버린 것입니다.
시51: 9~12에 다윗이 징계를 받고 난 다음 그 회개하는 시를 보십시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이렇게 간절하게 회개하고 변화 되어야 되요. 보넬은 “어떤 사람은 종종 회개하지만, 절대 개선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자주 시작하고 그만 두기를 반복하면서도 절대 돌이키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회개란 다만 도덕적으로 죄를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가장 진정한 회개는 이전의 죄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징계를 당할 때 회개해야 변화 받아야 됩니다. 입술로만 잘못했습니다. 잘못 했습니다 하고 행위는 개떡 차반으로 하면 그것은 가짜 회개인 것입니다. 비는 것이 아니라 잘못한 것을 단호히 버리고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징계는 끊이지 않습니다.
목회하면서 보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징계 받는 것 보았는데 제일 처음에는 몸으로 징계하시고 그 다음에 보니까 사업으로 징계하시고 그래도 회개 안하니까 가족들이 지리멸렬이 되고 그래도 회개 안하니까 자기 가족 중에 어떤 사람의 생명을 빼앗기도 하고 그래도 회개 안하니까 본인을 데리고 가시더라구요. 징계의 도수가 자꾸 높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겁낼 사람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했는데 자꾸 멀리멀리 떠나니까 징계의 도수를 높여서 나중에는 목숨까지 거두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골에 가면 담장 너머로 감나무가 이렇게 나가 있습니다. 그러면 감이 가을에 아주 탐스럽게 익으면 주인은 바깥에 걸어가는 사람이 따먹을까 싶어서 그것을 때려서 떨어뜨리려고 하고 바깥에 있는 사람은 담 넘어온 감을 주인 몰래 따먹으려고 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에서 떠나면 하나님도 때리고 마귀도 때립니다. 양쪽에 다 얻어맞는다고. 마귀는 완전히 잡아 가려고 때리고 하나님은 잡아가기 전에 빨리 돌이키려고 때리시고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제일 좋은 길은 믿고 순종하고 사는 것이 제일 좋은 길인 것입니다. 회개하고 순종하고 믿고 살면 하나님이 축복을 받고 사는 것이 가장 큰 아름다운 축복인 것입니다. 징계는 순식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참아야 됩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징계를 맞으면 회개하면 당장 징계가 끝날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상당히 시간이 오래갑니다. 이성봉 목사도 징계를 받으실 때 3년 동안 회개를 했습니다. 당장 징계를 때면 징계를 우습게 여기고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고통스럽거니와 상당 기간동안 징계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뼈에 사무치도록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회개와 변화의 열매가 보일 때까지 하나님은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히12:11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징계를 다 받고 난 다음에 회개하고 변화되는 것 보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상쾌하고 영광스러운지 몰라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징계를 받기 전에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했는데 징계 때문에 죄의 쇠사슬이 끊어졌습니다. 징계를 안 맞았으면 절대 이 죄 쇠사슬을 끊지 못했는데 징계를 안 맞았으면 내가 술을 계속 먹었을 것이고 계속 도박했을 것이고 계속 방탕했을 것인데 징계를 때리시므로 너무나 살이 아프고 뼈가 쑤시기 때문에 징계의 채찍으로 쇠사슬이 끊어졌습니다.’ 그렇게 감사하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징계의 채찍이 오면 고통 속에 휘말려 들어가게 되고 사람이 괴로우면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에 보통 때는 결코 끊을 수 없던 죄악도 포기하고 끊고 새롭게 변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징계를 받고 변화를 받고 나면 나중에 평강의 열매를 맺고 의로운 삶을 살게 되고 성령이 충만하고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사람이 변화되어요.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이 있는 아름다운 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의 채찍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깊이 뉘우치고 감사드려야 될 것입니다. 징계를 받을 때 감사를 해야 돼요. 입 딱 다물고 있어도 안돼요. 징계를 때리면 아파서 울고 회개하고 난 다음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날 사랑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좀 깨달아야 돼요. 채찍이 나를 변화시키고 지옥에서 건져 준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를 해야 돼요. 징계를 맞으면서도 원망, 불평하면 안돼요.
욥 5:17~18에 “볼 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저도 어릴 때 애들을 불러놓고 때리고 난 다음에 내가 몰래 방에 들어가서 운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자식을 때려놓고 난 다음에 때린 것만큼 애비의 마음이 상해요. 자식 때려 놓고 울고 그리고 난 다음에 세수하고 나온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그런 체험했지요? 자식 때리고 난 다음 때린 만큼 마음에서 부모가 괴롭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우리를 징계하실 때 하나님 괴로워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때리시고 난 다음에 싸매시고 상하게 하시고 난 다음 손으로 고친다고 말한 것입니다. 울고 흐느끼고 잘못했습니다. 오히려 나를 징계해 주시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도로 와서 끌어안고 두들겨 주고 싸매어 주고 고쳐 주시는 하나님, 이것이 우리 아버지 아닙니까? 우리 하나님은 인정사정없는 법관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 금새 안심, 내세 복락을 얻게 하려고 하는 다정한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야훼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그의 노여움은 잠깐이요 은총은 평생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큰 고통을 당한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함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징계를 받지 않으려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양심을 통한 성령님의 음성으로, 이웃의 경고로 돌이키라고 하실 때 깨닫고 돌이켜야 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맞지 않아요. 자식들도 길러 보면 부모가 몽둥이를 들면 맞고 꿇어앉아서 죽을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달라고 날 살라 달라고 하면 맞아도 들 맞아요. 그러나 채찍을 들고 나오면 반항하고 “내가 뭘 잘못했어? 때려봐! 때려봐! 때려봐! 때려봐!” 그러면 그것은 혹독하게 얻어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때리기 전에 양심을 통해서 꾸짖으시고 이웃을 통해서 경고하시고 하나님이 여러 번 돌이키라고 지시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도 하나님을 무시하고 만휼히 여기고 계속해서 반항을 하면은 그때부터 징계를 얻어맞는 것입니다. 돌이키지 않고 제 길로 가면 하나님의 징계가 반드시 임해요. 하나님이 때리실 때는 인정사정없이 때립니다. 때릴 때 인정사정 주고 때리면 때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프게 때려요. 눈물나게 때려요. 고통당하게 때려요. 인정사정 안주고 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회개하고 돌이킬 때만 징계가 그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회개하고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사생자로 버림받은 자로 취급치 아니하시고 아들로 취급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못난 짓 많이 하고 방탕하고 불순종하고 불의한 일 많이 하는 우리들을 하나님은 꾸짖으시고 달래시고 가르치시고 채찍으로 때리시기까지 하셔서 변화시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징계를 해주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징계 당한 것을 감사합니다. 징계를 통해서 변화당하는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 앞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성장하게 만들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가 모두다 징계를 받아 변화 받게 도와주시옵시고 징계를 기쁘게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들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