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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히4: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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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6년 12월 17일 주일 3부 설교 |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예비하심’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저는 책을 읽다가 이런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눈이 있기 전에 빛을 준비하셨다. 하나님은 코가 있기 전에 공기를 준비하셨다. 귀가 있기 전에 생명의 말씀을 준비하셨다. 입이 있기 전에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셨다. 발이 있기 전에 딛고 설 땅을 준비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교회를 준비하시고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셨다고 말했었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후에 영원한 천국 안식까지도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물을 예비해 놓으셨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며 따라갈 때에 삶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고 쉽고 가볍게 안식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해 놓은 후 오직 자녀가 부모님의 뜻을 따라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고 부모님를 섬기므로 부모님의 은혜로 평안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본론>
1. 아담을 위해 예비된 안식
아담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안식을 예비해 놓았지 수고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예비해 놓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이 첫날에 빛을 지으시고 이튿날에 궁창을 만드시고 사흘 날에 땅을 만드시고 모든 열매 맺는 과일 나무가 나게 하시고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시고 공중에 새와 물고기를 지으시고 땅에 기는 모든 짐승과 곤충을 지으시고 마지막에 더 이상 지을 것이 없을 때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음을 받고 첫날에 아마 하나님께 나와서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시다. “하나님, 저희들이 태어나서 오늘 첫날이 되었는데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럴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보라. 있을 것 다 준비해 놓았다. 땅을 보라. 삼라만상 있을 것 다 준비해 놓았다. 물속을 보라. 있을 것 다 준비해 놓았다. 내가 네가 태어나기 전에 있어야 될 모든 것을 예비해 놓았으니 너는 내가 수고해서 지어놓은 것을 은혜로 받아서 누리기만 하라. 오직 믿고 순종하고 나를 사랑하고 섬기므로 내가 지은 만물을 누리기만 하라.”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원래 아담을 지으셨을 때 아담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기를 원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살아가는 이 세계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친히 수고하셔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살 곳은 동산에 낙원을 지어놓은 것입니다. 슬럼가를 지어놓은 것이 아닙니다. 판자촌을 지어놓은 것이 아닙니다. 아담을 위해서 낙원을 지어 놓으셨습니다.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고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이 강물같이 흐르는 에덴을 예비해 놓으시고 주님께서 그 에덴에서 오직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만 하면은 에덴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곳을 즐기며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고 살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예비해 놓으셨든지 하나님이 예비한 곳에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을 반역하고 하나님을 저항하므로 타락한 것이 정말 일류역사상에 가장 큰 비극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다보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자기 분수에 넘치게 주어지지 아니한 것을 탐욕을 가지고 요구하다가 타락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지음을 받아서 하나님이 만든 세계를 다스리고 살라고 했으면 감지덕지하고 살아야 될 것인데 마귀의 꾀임에 빠져서 하나님처럼 되지 못한다고 불평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사람이면 사람으로 살아야지 왜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것입니까? 손주를 사랑하고 즐거워하니까 할아버지 상투까지 베어 달라고 한다고.. 하나님이 다 예비해 주고 너무나 아름답게 해주니까 이제는 교만해져 가지고서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하나님의 뜻을 반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산의 실과는 다 먹으라. 그러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 죽는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고 섬기는가 안하는가를 시험해 보는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마귀를 따라서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니까 마귀의 말에 순종해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역하게 된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안식에서 쫓아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에서 쫓겨나니까 당장 어떻게 되었습니까?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고 그들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야 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비극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신 모든 아름다운 안식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예비해 주지 아니하므로 자기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를 직접 예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우리 아버님이 늘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너희들이 부모 밑에 있을 때 얼마나 행복한줄 알아라. 나중에 부모 밑을 떠나고 나면 모든 것을 너희들이 스스로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고생스럽다.” 저는 사춘기가 이르렀을 때 부모 밑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간섭이 몹시 마음에 귀찮고 싫었습니다. 그리고 부모 없는 곳에 나가서 내 마음대로 살았으면 좋겠다하는 그런 마음이 늘 있었는데 아버지 그 말씀이 귀에 거슬렸습니다. ‘나를 설교하려고 그런다. 꾀려고 저렇게 말씀하신다. 뭐 부모님 밑에 있을 때 뭐가 그렇게 좋으냐. 내가 나가서 자유롭게 살자.’ 그러나 나중에 부모슬하를 떠나서 타향에 와서 살아보니 정말 아버지 말씀이 옳았습니다. 그때부터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전부 내가 해결해야 되니까 염려하고 근심하고 수고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 밑에 있을 때는 부모님이 나를 대신 염려하고 수고하고 근심하고 고통을 해주기 때문에 그 우산 밑에서 편안하게 안식 했습니만 부모님 밑을 떠나오니까 그 우산이 사라지자 내가 직접 염려하고 근심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괴로움을 당하면서 나의 살길을 예비해야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예비해 주셨을 때 그 은혜 속에 있을 때는 안식했습니다. 편안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살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천지와 만물을 다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에덴에 낙원까지 예비해 놓았는데 뭘 걱정할 것이 있습니까?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고 섬기기만 하면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해서 하나님 안식에서 쫓겨나고 만 것입니다.
창 3:23~24에 “야훼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쫓겨난 뒤로 이제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총을 누릴 수 없는 삶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아담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게 살게 되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괴로웠습니다. 그러한 삶이 오늘 우리에게 이어져서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전국적으로 시장이 약 2천명이 있는데 그런데 지난 5년 동안 이들 중 135명이 과로로 사망했다고 했습니다. 해마다 전체의 7%에 해당하는 27명의 시장이 과로로 숨진다는 것입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빠르고 바쁘게 돌아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일본에서는 해마다 약 4천명의 근로자들이 과로로 숨진다고 말했습니다.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만 우리나라 사정도 이와 비슷한 것입니다. 수입이 늘어나서 편안하게 살기 위해 새로운 자동차를 사고, 집을 넓히고 호화로운 생활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수입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 일만 해서는 안 되니까 투잡, 쓰리잡을 뛰고 남편도 일하고 아내도 일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집에 돌아오면 다 스트레스에 걸려서 신경이 곤두섭니다. 이러므로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집에서 좋은 환경에서 살면서 행복은 사라지고 기쁨과 평안도 사라지고 마음에 스트레스가 꽉 들어차고 미움, 원망, 불평, 탄식이 꽉 들어찬 것이 오늘날의 현실 생활인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아담의 타락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 안식을 예비하셨지만 분수를 넘은 욕심과 탐심으로 하나님 자리를 넘보다가 안식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이제는 별 도리 없이 모든 것을 우리가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직임지지 않을 때는 평안히 살 수 있으나 내가 책임을 짊어지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서 인생을 책임지고 살수밖에 없는 인간이 되고 만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을 위해 예비된 안식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도 한가지입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불러내실 때 그들을 위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예비하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훼이레 예비하는 하나님이시라 막연하게 불러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서 살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하늘 아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있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예비할 때 광막한 광야를 예비한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를 통해서 불러내셨습니다.
성경 출 3: 8에 보면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 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지나는 과정에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출13:21에 “야훼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그때 벌써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자연 에어컨디션을 준비한 것입니다. 여러분 요사이 우리 문명이 발달된 시절에는 에어컨디션을 예비해서 살기 때문에 여름에도 시원하고 겨울에도 따뜻하게 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광대한 광야를 에어컨디션 했습니다. 낮에는 광야가 얼마나 뜨거운지 햇빛이 내려쬐이므로 그대로 내버려 두면 수분이 증발해서 얼마 있지 아니하면 목이 말라 사람들이 살수 없습니다. 그런데 구름 기둥이 떠서 해를 가려줍니다. 그러므로 시원하지요. 저는 이 글을 성경에서 읽고 뭐 그런가보다 했는데 제가 소련에 가서 하바로스크에서 집회를 하는데 그때 소련이 붕괴되고 난 다음에 얼마 안 되어서 시설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풀밭에 나가서 설교를 합니다. 넓은 초원에 한 4, 5만 명이 모였는데 햇빛이 내려 쬐이는데 미칠 지경이에요. 얼마나 뜨거운지. 목이 타고 도저히 설교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강단에 앉아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햇빛을 가려 주었다는데 어디 나도 한번 구해보자. ‘하나님 이렇게 뜨거워서 내가 설교를 할 수 없으니 구름기둥으로 좀 시원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랬는데 설교를 딱 시작하려고 일어서니까 그것도 큰 구름도 아닙니다. 손 바닥만한 구름이 해를 딱 가리는데 내내 설교 마칠 때까지 해를 따라가면서 손바닥만한 구름이 해를 가리니까 얼마나 시원한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정말 좋은 에어컨디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은 기가 막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지나면서 결코 더위를 느끼지 않은 것은 구름이 그들을 가려 주었고 밤에는 춥지 않았습니다. 광야는 기온차가 심하므로 밤에는 너무나 춥기 때문에 바위들이 떵떵 소리를 내고 깨어집니다. 그런데도 따뜻하게 된 것은 불기둥이 가운데 서가지고서 환하게 밝혀서 적군들의 침략을 막아주고 짐승들을 막아줄 뿐 아니라 훈훈하고 따뜻하게 지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은 기가 막힙니다. 거치른 광야를 지날 때도 하나님은 낮, 밤을 가릴 필요 없이 에어컨디션을 해주셨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 마시게 하시고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먼지처럼 많은 고기를 내려 먹이시고 40년간 의복과 신발이 헤지지 않았고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과 탄식과 반역을 한 것입니다. 아무리 잘해줘도 잘해준 것을 보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없는 것을 가지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3백만이 오니까 여러 가지 불평분자도 많이 섞여있는데 원래 불평을 다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중에 몇 명 불평분자가 일어나서 “왜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에 끌어내어서 길도 사나운데 다리도 아프고 잠자리도 편치 못하고 물도 늘 흐르는 물을 안주고 바위에서 내려오는 물을 주느냐. 만나, 메추라기만 주느냐. 소고기를 안주고 물고기는 안주느냐.” 온갖 불평을 하니까 불평은 염병같이 퍼져 나갑니다. 불평은 염병처럼 퍼져 나가서 순식간에 모든 사람이 불평에 병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친구를 잘 사귀어야 되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희망찬 말을 하는 친구를 사귀면 그 친구만 만나면 모든 불평이 사라지고 원망이 사라지고 희망차고 긍정적이 됩니다만 원망, 불평, 탄식을 전문으로 하는 친구를 만나면 이 친구가 만나자마자 원망, 불평, 탄식하고 가슴을 치므로 같이 따라서 그 병균이 들어와서 원망, 불평, 탄식하고 불행해지고 탄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편이 부정적인 사람이면 아내와 자식이 다 부정에 휘말려 들어가고 아내가 부정적이면 남편과 자식들도 모두다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라도 한쪽편이 긍정적이 되면 그 긍정적인 것으로 모든 것을 밝고, 맑고, 환하게 하고 희망차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불평이란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광야를 지나는 과정에 도우심을 예비해 놓은 데도 불구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없는 것을 가지고 불평하므로 불신앙, 불순종,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하고 거역하므로 하나님이 분노하셨습니다. 여러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자녀들을 위해서 선물을 부모님이 예비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부모님이 정성껏 선물을 예비해서 자식들에게 갖다 주는데 그 선물을 자식들이 받아서 “뭐 이런 것을 선물이라고 주노?”하면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 버리면 부모는 마음이 섭섭하고 괘씸하게 여기게 되어서 ‘나중에 선물 주는가봐라’하며 선물을 안주는 것입니다.
제가 옛날에 해외에 많이 다녔기 때문에 자식들에 대해서 늘 마음에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들들만 셋이기 때문에 제가 언제나 애들이 좋아하는 조그마한 장난감 자동차 같은 것을 사왔는데 애들이 벌써 커서 소학교를 졸업 맡았는데도 불구하고 자동차를 사다주니까 이를 받아가지고서 “뭐 이런 것을 선물로 갖다 주나요?” 하면서 쓰레기통에 다 집어던져 버려요. 굉장히 제가 마음이 섭섭했습니다. ‘이놈들 내가 다음에 사주는가봐라.’ 그다음부터 돌아오면서 선물을 절대로 안 사왔습니다. 쓰레기통에 던지는 것이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 마음에 불안하고 행복하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은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을 볼 때 괘씸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다 예비하고 준비해 주셨는데도 감사와 찬양을 하지 않고 원망, 불평, 탄식하고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없는 것을 골라가면서 원망하고 불평하니까 괘씸하게 여기고 하나님 마음이 불평스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비한 것을 다 거두어 버리는 것입니다.
민14:29~30에 보면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 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심기가 불편하셨든지 그냥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결단코 못 들어간다. 한 놈도 내가 들여보내지 않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기가 얼마나 불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감사해야 돼요. 내가 허름한 옷이라도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감사하면 하나님이 기뻐해서 더 좋은 것을 줄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좁은 집도 하나님 집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도 비를 피하고 눈을 피하고 바람을 피하고 살 수 있는 집을 주시니 감사 합니다 하면 주님이 좋은 집 주실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거친 음식도 감사하게 먹으면 좋은 음식을 주실 수 있는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이 기쁘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우리의 환경을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므로 받아 들이냐 안 받아 들이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의 기도가 응답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심기가 불편해져서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안주시는 이유가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하고 춤추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꾸 아담과 하와처럼 없는 것을 가지고 불평하고 이스라엘 백성처럼 없는 것을 끄집어내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해서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다 멸해 버리고 1세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그냥 부르시지 않았었습니다. 구원받을 길을 예비하시고 천당을 다 준비해 놓고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의 죄 짐을 청산할 도리가 없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우리가 죗값을 갚으려면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죽고나면은 죗값을 어떻게 갚습니까? 우리는 의로운 생활을 통해서 죄를 갚을 수도 없고 우리의 고행을 통해서 죄를 갚을 수도 없고 수양과 도덕을 통해서도 죄를 갚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 죄 덩어리입니다. 죄 값으로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벌을 받아서 우리 죄를 다 가루로 만들어서 훅 불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 덩어리를 다 없앴으므로 예수 앞에 나오면 아무 일도 안했는데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든 그대로 주님께 나오는데 믿기만 하면 주님이 용서해 주시고 의롭다고 해주시고 천국 영광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니 얼마나 놀라운 구원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까? 오늘 구원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시기 위해서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이 예비한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고 거역한다면 그 운명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겠습니까? 오늘날도 하나님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받아야 마땅한 사람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녀, 노유,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그대로 오라. 빈손 든 그대로 오라. 그리고 예비한 것을 믿기만 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라. 값없이 공짜로 다 선물로 구원을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의지하기만 하면 우리는 천당길이 환합니다. 십자가 없이 천당에 가려면 율법이 우리를 막고 있고 마귀가 우리를 막고 있고 양심이 우리를 막고 있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천당을 갈 수 없어요. 가려고 하면 율법이 ‘죄를 지었으니 죽어야지 어디 천당에 들어가려 하니 못 간다.’ 또 마귀가 ‘이 죄지은 놈이 어디 천당에 가려고.’라며 참소하지요. 그다음 우리 양심이 ‘우리는 절대로 천당에 못 간다’고 참소하지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장애물이 우리 앞에 막혀 있는 것입니다.
3. 천국에 예비 된 영원한 안식
그러나 예수님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것을 다 청산했으므로 율법도 예수님 십자가 밑에서 허무하게 되고 마귀도 물러가고 양심의 가책도 사라지고 천국 가는 고속도로를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천당 가는데 장애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내가 다 이루어 놓았으니 네가 할 일은 없다. 믿기만 하라.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면 그냥 안식할 수 있습니다. 편안하게 천당에 갈 수 있고 또 천당에 가서 살집도 영원히 있을 곳을 주님이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거처까지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정말 예비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구원도 십자가를 통하여 예비해 놓고 천국의 영광도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았으니 우리는 정말 기뻐 뛰고 춤추며 얼씨구나 감사하고 믿습니다. 주님, 순종합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섬기고 나가면 다 패스될 수 있는 것입니다.
R. A 토레이 목사님이 쓴 「기도의 능력과 능력의 기도」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교회에 출석하는 한 노인이 임종에 도달하게 되어서 빨리 임종예배를 보러 뛰어갔습니다. “임종을 맞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성도님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아니오! 이루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걱정이 되어 “아휴, 곧장 하나님을 만나실 것인데 화평을 이루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을 담대하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까 다시 노인은 “걱정할 것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목사님은 제차 “아휴 어떻게 걱정을 안 합니까?” 그러니까 평안한 얼굴로 말하기를 “제가 그렇게 할 필요가 왜 있습니까? 2천년 전에 예수님이 날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 하나님과 화평을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내가 화평을 이룰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나는 믿기만 하면 공짜로 화평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평안하고 마음에 안심하고 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토레이 목사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웠습니다. 맞았어요. 믿으면 될 것인데, 가서 “화평을 이루셨습니까?”라며 그 사람보고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어본 자기가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우리가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믿기만 하오. 믿기만 하오. 믿기만 하면은 주님이 이루어 놓은 것을 그대로 누리는 안식을 소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 가는 길과 천국생활 전부를 예비해 놓으시고 우리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 그저, 그저 감사 할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순종만 하면 그 안식에 들어갑니다.
벧전 1: 3~ 5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찰스 웨슬리는 감리교의 창시자의 동생입니다. 존 웨슬리는 위대한 복음 전도자였는데 그 동생 찰스 웨슬리는 천재적인 음악 작곡가였습니다. 많은 찬송가를 작곡했습니다. 한번은 이 찰스 웨슬리가 미국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오는데 큰 풍랑이 일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진눈깨비가 내리고 배가 기우뚱 거렸습니다. 그는 갑판에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치고 피곤해진 바닷새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오더니만 찰스 웨슬리의 품안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는 바다에 진눈깨비를 맞고 바람에 날리면 있을 곳을 찾지 못하다가 배있는데 날라 와서 찰스 웨슬리의 옷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옷을 들춰 보니까 옷을 딱 잡고 숨을 할딱할딱 하면서 편안하게 있거든 그래서 ‘야 이놈아, 잘 들어 왔다. 네가 내 속에 들어왔으니 편안하게 있겠지.’ 그런데 그 찰스 웨슬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했습니다. ‘야, 새도 풍랑 만났을 때 네 가슴에 들어와서 쉬는데 인생에 풍랑을 만나고 진눈깨비가 올 때 너는 어디에 피할 수가 있느냐. 내 가슴속에 들어와서 새처럼 딱 기대면 마음에 안식을 얻을 수가 있지 않느냐.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므로 내 품에 들어왔으면 어떤 풍랑도 너를 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성경에는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 품에 있으면 밤의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님께서 그 깃으로 우리를 덮어서 우리가 그 날개 밑에 피할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찰스 웨슬리는 그 자리에서 찬송가 441장을 지었습니다. '비바람이 칠 때와'라는 찬송인데 우리 한번 다같이 불러 보십시다.
“비바람이 칠 때와 물결 높이 일 때에 / 사랑하는 우리 주 나를 품어 주소서/
풍파 지나가도록 나를 숨겨주시고 / 안식 얻는 곳으로 주여 인도하소서
나의 영혼 피할 데 예수 밖에 없으니 / 혼자 있게 마시고 위로 하여 주소서/
구주 의지 하옵고 도와주심 비오니 / 할 수 없는 죄인을 주여 보호하소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할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죄악의 풍랑도 막을 수가 없고 세속과 부정의 풍랑도 우리가 피할 수가 없고 질병의 풍랑도 우리가 이길 수가 없고 가난과 저주와 삶의 고생의 풍랑도 죽음의 풍랑도 우리 힘으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 풍랑을 피할 것은 예수님의 품이 예비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손을 내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헛된 곳에 피난처를 찾지 마십시오. 돈이 여러분의 피난처가 되지 못합니다. 부귀, 영화, 공명이 피난처가 되지 못합니다. 곧장 다 날아가는 새처럼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청춘이 피난처입니까?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순식간에 청춘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피난처는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천국에 있을 곳을 예비하신 예수님의 품안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는 것이요, 예비한 안식처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 풍랑이 아무리 세게 몰아친다 할지라도 우리 주 예수님의 품 안에 있으면 놀라운 안식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우리는 들어가지 못하고 세상에 방황하는 사람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픕니다. 이렇게 주님이 친히 오셔서 몸 찢고 피 흘려 안식을 예비해 놓았는데 세상 사람들은 무관심 합니다. 인본주의로 살고, 이기주의로 살고, 세속주의로 살고 주님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살므로 주님이 예비한 안식이 그들에게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믿지 않으므로 효과가 없지요. 그리고 또 주님께 돌아와서도 주님에게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반역하고 주님께 반항하므로 하나님이 속이 상해하시고 슬퍼하시고 안식을 빼앗아 가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힘으로 세상에 안식을 만들어 보려고 스스로 길을 만들려고 합니다. 가시밭길에 길을 만들려고 하니 길이 만들어 집니까?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은 너무나 적고 사람이 못 만들 길은 너무나 많습니다. 죄에서 용서받은 길도 만들 수가 없고 세속과 마귀를 이길 길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절망적인 병에서 살아날 길도 없고 가난하고 절망적인 곳에서 먹고 살길도 우리가 막연할 때가 많고 더구나 죽음의 길을 건너서 저 세상으로 가는 길은 우리 힘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전혀 길이 없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미 예수님이 오셔서 만들어 놓은 길에 들어서야만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가 길을 만들어 놓았다. 몸 찢고 피 흘려 죽음을 통해서 용서와 의와 영광의 길도 내가 만들어 놓았고 거룩하고 성령 충만의 길도 만들어 놓았다. 치료의 길도, 축복의 길도 영생복락의 길도 만들어 놓았다. 나를 믿고 순종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섬기면 이 안식을 다 누릴 수가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무관심하고 반항하고 자기 인본주의로 인간의 힘으로 길을 만들겠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서 우리는 전적으로 주님께 의지하는 우리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히 3:18~19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시37: 5에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안식할 일이 주님 품에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4. 지상에도 예비된 양식
그러므로 우리 지상의 삶도 주님이 다 예비한 안식 속에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아담을 위해서 천지와 만물과 에덴을 예비했지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예비하시고 광야를 지날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당 길과 영원한 천국의 집만 예비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길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막연하게 부르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여러분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서 하루가 되기 전에 우리 일생을 하나님의 책에다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일생을 설계해 놓았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자기를 설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설계해 놓았는데 하나님의 설계를 바라보고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고 섬겼으면 하나님이 설계해 놓은 그 길로 편안히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설계를 무시하고 인생을 자기가 설계해서 자기 힘으로 살겠다고 하니 가시넝쿨 속에서 찢기고 상처입고 피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전 2: 9에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도저히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한 것을 크고 비밀한 길을 예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일생을 살아갈 동안에 우리의 삶은 이미 이 땅에서도 예비해 놓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롬 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아들조차 주신 하나님이 아들을 모시고 사는 우리의 일생을 주님께서 예비해 놓지 않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히 4:11에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순종하고 믿으면 하나님이 예비한 안식에 우리는 이미 들어가서 살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누울 때 까지 하루의 생활을 주님은 이미 만세전에 설계를 해놓으시고 필요한 것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믿기만 하고 순종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구하면 주님께서 다 이미 예비한 곳으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구하는 자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 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비해 놓고 구하라. 나에게 구하기만 하면 예비한 길로 이끌어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1964년도에 경험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잠이 탁 깹니다. 모골이 송연합니다. 얼마나 어려운 고비를 당했는지 몰라요. 그때 세계오순절대회가 브라질 리오자네이로에서 있었는데 내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했을 때 촌놈입니다. 브라질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브라질까지 가서 오순절세계대회에 참석을 하고 이제 돌아오는데 돈이 한 푼도 없어요. 그때는 2백 불 밖에 정부에서 허락해주지 않는데 2백 불을 쪼개고 쪼개서 호텔 비 내고 식비내고 돌아올 때는 비행기표 밖에 없어요. 그 비행기를 브라질에서 타면 미국 LA에서 갈아타고 한국으로 나오면 되었습니다. 밥은 비행기 안에서 주니까 얻어먹으면 되는 것이고 그래서 공항 카운터에 가서 짐을 다 맡기고 비행기 탑승수속을 하고 비행기를 타려고 줄을 서있는데 브라질 경찰 한 사람이 두리번, 두리번 하고 보더니만 나에게 오더니만 패스포트 보자고 그래요. 패스포트를 보여주니까 포켓에 집어넣고 그냥 가버리는 거에요. 내가 비행기 타고 가야 되는데 패스포트는 포켓에 넣고 가기에 놀라서 따라가서 패스포트 프리즈, 패스포드. 이제는 화장실에 들어가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미국 사람이 아닌 동양 사람이 오면 브라질이 그때 부패가 극했으니까 경찰관들이 패스포드를 빼앗아 가서 화장실에 가면 크루자도스로 돈을 주면 도로 바꿔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촌놈이 그런 것을 압니까? 처음 외국 나갔으니까. 자꾸 화장실 가서 페스포트 달라고 하니까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만 싱긋 웃더니만 그냥 나가 군중 속에 섞여 버리는데 이제는 패스포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비행기회사에서는 자꾸 조용기 빨리 비행기 타라고 하다가 없으니까 짐을 내려놓고 비행기는 떠나가 버렸습니다. 나는 국제고아가 되고 만 것입니다. 브라질에는 그때 한국 대사관도 영사관도 없고 한국사람 한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다가 돈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돈 한 푼도 없지요. 아는 사람도 없지요. 비행장 대합실에 앉아서 기가 막혀요. 세상에 기가 막혀도 그렇게 기가 막힐 리가 없습니다. 자, 아는 사람이 있나, 전화를 한통 걸 수 있나. 그때는 한국에서 미국이나 구라파에 전화하려면 전화 신청해 놓고 8시간 기다릴 때였습니다. 그러니 전화도 못해, 돈도 없어, 아는 사람도 없어, 이제는 갈 곳도 없어, 패스포드도 없어. 그런데 앉아서 이제는 수염이 희게 될 때까지 브라질 사람 되고 말았다. 당장 이제 먹고 살 것이 없으니까 구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그래서 그때 앉아 가지고서 ‘하나님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다가옵니까? 하나님 뜻을 따라서 브라질까지 왔는데 나로 하여금 이렇게 국제고아가 되게 하십니까?’ 하나님 말씀이 다 안 믿어져요. 그래서 롬 8:28을 외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는데 이런 것도 선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구만리장천에 사라져 버리고 기도도 안나오고 불안과 공포가 꽉 들어찼습니다. 그래서 걸상에 앉아서 울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땅 팔 노릇입니다. ‘나는 어디가요? 갈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안 도와주면 나는 어떡해요?’ 그리고 울다가 얼굴을 들어 보니까 한 중년의 미국 신사가 그 부인과 딸을 데리고 내 앞을 지나가면서 나를 유심히 보다가 내가 쳐다보니까 고개를 쓱 돌리고서 지나가요. 그래서 ‘내 몰골이 말이 아니구나. 날 구경하면서 저렇게 가는구나?’ 그리고 또 내가 울면서 기도를 하고 그러니까 도로 또 돌아와서 나를 쳐다보더니만 얼굴을 싹 돌리고 가요. ‘저 사람이 정말 동양 사람이 울고 있으니까 구경꾼인가 보다.’ 그다음에 내가 앉아서 또 울고 기도하니까 그 다음에는 도로 돌아오더니만 내 곁에 와서 “말씀 좀 물어 봅시다.” 그래서 영어를 하니까 얼마나 반갑던지. 전부 포르투갈 말 만 쓰는 가운데서 영어를 말하니까 너무나 반가웠어요. 미국분입니까 하니까 “나는 미국 선교사입니다. 나는 여기서 자동차로 한 3시간 달려가야 하는 쌍파울로에서 손님을 리오 자네이로까지 모시고 가서 비행기를 태워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당신이 앉아서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내가 말을 걸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10년 전에 내 친구 루피 리처드 선교사가 한국에 가서 선교를 했는데 그분이 기도편지에 사진을 한 장 붙여 왔는데 폐병 걸려 죽던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우리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사진을 붙여 놓았는데 내가 그것을 은혜롭게 그 편지를 읽고 그 사진을 자세히 봤는데 오늘 내가 지나면서 보니까 당신이 그 사진과 너무나 닮았어요. 혹시 내가 사진에 본 그 사람이 아닌가? 싶어가지고서 물어봅니다.” 내가 화들짝 일어나서 잡고서 “내가 그 사람입니다. 아이고, 내가 그 사람입니다. 내가 그 사람입니다.”하며 눈물이 줄줄 났습니다.
“나는 이곳에 와서 아무것도 돈도 없이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브라질 경찰이 와서 내 패스포트를 빼앗아가 버리고 나는 오도 가도 못하고 이제 여기서 완전히 고아가 되었습니다.”라고 하소연 하니까 선교사님이 “쯧쯧” 혀를 차면서 “그놈들이 항상 그런다니까요. 그놈들이 동양 사람이나 약소국가에서 온 사람들 패스포트를 빼앗고 공갈쳐서 돈 빼앗고 하는데 당신도 거기에 걸렸군요.” 그러면서 자기 딸을 보고서 “이 어른 패스포드를 찾아 주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사람들이 그때는 아주 불친절하던지 우리가 말을 해서는 말을 안 들었어요. 그런데 그 집 딸이 대학생인데 아버지에게 놀러왔다가 아버지 따라 그 공항까지 왔는데 이쁜 여자가 말을 하니까 다 말을 들어주더라구요. 내가 그래서 사람이 고통을 당하면 남자는 굶어죽어도 여자는 안 굶어 죽겠다. 왜냐하면 패스포트를 담당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아무리 물어도 내가 말하거나 그 선교사님이 말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이 여자가 “패스포트 어디 있어요?”묻자. 그 경찰 하는 말이 “하던 일 다 마치고 시내로 가서 경찰국에 들어가서 외사과로 찾아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경찰국에 가서도 내가 말을 하려니까 그 아담스 목사님이 “목사님은 말하지 마세요. 이 브라질 사람들은 남자들이 말하면 들어주지도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선교사님 딸이 브라질 말을 그렇게 잘해요. 포르투갈어를 하니까 외사과의 담당 경찰관에게 까지 갔습니다. 그 사람이 내 패스포드를 받아서 가지고 와가지고서 점심시간에 쓰레기통에 내버렸어요. 상사가 이야기를 하니까 쓰레기통에 가서 뒤지니까 내 패스포드 쓰레기통에서 나와요. 그래서 쓰레기통에서 패스포드를 받아 나오니까 선교사님 하시는 말이 “이제 일주일 후에야 비행기가 다시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주일 동안 여기 있을 수 없으니까 쌍파울로 우리 집에 갑시다. 우리 집에 가서 우리 집에서 먹고 일주일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시오.” 그래서 쌍파울로까지 차를 타고 가서 그 집에서 묵고 일주일 후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무사히 돌아왔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요. 하나님이 예비를 안해주셨으면 오늘 여기에 제가 있지 않고 브라질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가 그때 패스포드 빼앗길 것을 10년 전에 아시고 이미 아담스 씨에게 그것을 보게 하시고 아담스 씨가 그 후로 브라질 선교사로 와서 그 날도 구태여 꼭 그날에 손님을 모시고 리오 데 자네이로 비행장에서 환송을 하고 나를 만나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기가 막힙니다. 나는 어제 저녁에도 이 생각을 하고 자다가 몸을 떨었습니다. 그때 내 마음에 황당함과 당황한 심정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사람이 객지에 가서 아무리 어려움을 당해도 돈이 있으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포켓에 돈이 두둑하면 돈으로써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돈 떨어지고 올 데, 갈 데 없었으면 그 때 홈 리스가 되고 정말 절망인데 나는 그 때 돈도 떨어지고 패스포드도 없어지고 아는 사람도 없고 완전히 절망이었는데 모른 것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몰랐습니다. 늘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그런 상황에 처하니까 하나님이 사라져 버리더라구요. 연기 속으로 싹 사라져 버립니다. 마음에 믿음도 사라지고 절망에 처하더라구요.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 처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습니다. 예비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셔서 크고 작은 인생길을 미리 아시고 미리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훼 이레가 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결론>
모든 일에 미리 아시는 고로 미리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에게 그 예비 된 안식 안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곳에 들어가면 편안하게 살아요.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시고 내가 책임이 없으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를 하나님이 다 예비해 놓으시니까 믿고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면 하나님이 술술 실타래 풀듯이 풀어서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안식하고 살든지 하나님을 따라 살지 않고 피투성이가 되어 살든지 우리는 선택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금세 안식, 내세 천당 안식까지 주님이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을 허락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담도 안식을 누릴 수 있고 이스라엘 백성도 안식을 누릴 수 있는데 불순종, 불신앙, 저항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므로 안식에서 쫓겨나고 만 것입니다. 아담처럼 쫓겨나지 말게 도와 주시 옵시고 이스라엘 백성처럼 쫓겨나지 말게 도와 주시 옵시고 우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을 감사하고 누리게 도와 주시 옵소서. 적은 일에 감사하고 예비한 것을 즐기는 사람, 큰일에도 주님이 예비해 주시고 감사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 속에서 평안하게 기쁘고 즐겁게 믿음으로 순종하므로 사랑하므로 섬김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예비하심’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저는 책을 읽다가 이런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눈이 있기 전에 빛을 준비하셨다. 하나님은 코가 있기 전에 공기를 준비하셨다. 귀가 있기 전에 생명의 말씀을 준비하셨다. 입이 있기 전에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셨다. 발이 있기 전에 딛고 설 땅을 준비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교회를 준비하시고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셨다고 말했었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후에 영원한 천국 안식까지도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물을 예비해 놓으셨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며 따라갈 때에 삶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고 쉽고 가볍게 안식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해 놓은 후 오직 자녀가 부모님의 뜻을 따라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고 부모님를 섬기므로 부모님의 은혜로 평안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본론>
1. 아담을 위해 예비된 안식
아담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안식을 예비해 놓았지 수고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예비해 놓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이 첫날에 빛을 지으시고 이튿날에 궁창을 만드시고 사흘 날에 땅을 만드시고 모든 열매 맺는 과일 나무가 나게 하시고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시고 공중에 새와 물고기를 지으시고 땅에 기는 모든 짐승과 곤충을 지으시고 마지막에 더 이상 지을 것이 없을 때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음을 받고 첫날에 아마 하나님께 나와서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시다. “하나님, 저희들이 태어나서 오늘 첫날이 되었는데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럴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보라. 있을 것 다 준비해 놓았다. 땅을 보라. 삼라만상 있을 것 다 준비해 놓았다. 물속을 보라. 있을 것 다 준비해 놓았다. 내가 네가 태어나기 전에 있어야 될 모든 것을 예비해 놓았으니 너는 내가 수고해서 지어놓은 것을 은혜로 받아서 누리기만 하라. 오직 믿고 순종하고 나를 사랑하고 섬기므로 내가 지은 만물을 누리기만 하라.”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원래 아담을 지으셨을 때 아담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기를 원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살아가는 이 세계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친히 수고하셔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살 곳은 동산에 낙원을 지어놓은 것입니다. 슬럼가를 지어놓은 것이 아닙니다. 판자촌을 지어놓은 것이 아닙니다. 아담을 위해서 낙원을 지어 놓으셨습니다.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고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이 강물같이 흐르는 에덴을 예비해 놓으시고 주님께서 그 에덴에서 오직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만 하면은 에덴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곳을 즐기며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고 살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예비해 놓으셨든지 하나님이 예비한 곳에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을 반역하고 하나님을 저항하므로 타락한 것이 정말 일류역사상에 가장 큰 비극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다보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자기 분수에 넘치게 주어지지 아니한 것을 탐욕을 가지고 요구하다가 타락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지음을 받아서 하나님이 만든 세계를 다스리고 살라고 했으면 감지덕지하고 살아야 될 것인데 마귀의 꾀임에 빠져서 하나님처럼 되지 못한다고 불평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사람이면 사람으로 살아야지 왜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것입니까? 손주를 사랑하고 즐거워하니까 할아버지 상투까지 베어 달라고 한다고.. 하나님이 다 예비해 주고 너무나 아름답게 해주니까 이제는 교만해져 가지고서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하나님의 뜻을 반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산의 실과는 다 먹으라. 그러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 죽는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고 섬기는가 안하는가를 시험해 보는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마귀를 따라서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니까 마귀의 말에 순종해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역하게 된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안식에서 쫓아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에서 쫓겨나니까 당장 어떻게 되었습니까?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고 그들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야 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비극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신 모든 아름다운 안식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예비해 주지 아니하므로 자기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를 직접 예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우리 아버님이 늘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너희들이 부모 밑에 있을 때 얼마나 행복한줄 알아라. 나중에 부모 밑을 떠나고 나면 모든 것을 너희들이 스스로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고생스럽다.” 저는 사춘기가 이르렀을 때 부모 밑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간섭이 몹시 마음에 귀찮고 싫었습니다. 그리고 부모 없는 곳에 나가서 내 마음대로 살았으면 좋겠다하는 그런 마음이 늘 있었는데 아버지 그 말씀이 귀에 거슬렸습니다. ‘나를 설교하려고 그런다. 꾀려고 저렇게 말씀하신다. 뭐 부모님 밑에 있을 때 뭐가 그렇게 좋으냐. 내가 나가서 자유롭게 살자.’ 그러나 나중에 부모슬하를 떠나서 타향에 와서 살아보니 정말 아버지 말씀이 옳았습니다. 그때부터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전부 내가 해결해야 되니까 염려하고 근심하고 수고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 밑에 있을 때는 부모님이 나를 대신 염려하고 수고하고 근심하고 고통을 해주기 때문에 그 우산 밑에서 편안하게 안식 했습니만 부모님 밑을 떠나오니까 그 우산이 사라지자 내가 직접 염려하고 근심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괴로움을 당하면서 나의 살길을 예비해야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예비해 주셨을 때 그 은혜 속에 있을 때는 안식했습니다. 편안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살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천지와 만물을 다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에덴에 낙원까지 예비해 놓았는데 뭘 걱정할 것이 있습니까?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고 섬기기만 하면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해서 하나님 안식에서 쫓겨나고 만 것입니다.
창 3:23~24에 “야훼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쫓겨난 뒤로 이제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총을 누릴 수 없는 삶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아담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게 살게 되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괴로웠습니다. 그러한 삶이 오늘 우리에게 이어져서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전국적으로 시장이 약 2천명이 있는데 그런데 지난 5년 동안 이들 중 135명이 과로로 사망했다고 했습니다. 해마다 전체의 7%에 해당하는 27명의 시장이 과로로 숨진다는 것입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빠르고 바쁘게 돌아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일본에서는 해마다 약 4천명의 근로자들이 과로로 숨진다고 말했습니다.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만 우리나라 사정도 이와 비슷한 것입니다. 수입이 늘어나서 편안하게 살기 위해 새로운 자동차를 사고, 집을 넓히고 호화로운 생활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수입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 일만 해서는 안 되니까 투잡, 쓰리잡을 뛰고 남편도 일하고 아내도 일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집에 돌아오면 다 스트레스에 걸려서 신경이 곤두섭니다. 이러므로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집에서 좋은 환경에서 살면서 행복은 사라지고 기쁨과 평안도 사라지고 마음에 스트레스가 꽉 들어차고 미움, 원망, 불평, 탄식이 꽉 들어찬 것이 오늘날의 현실 생활인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아담의 타락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 안식을 예비하셨지만 분수를 넘은 욕심과 탐심으로 하나님 자리를 넘보다가 안식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이제는 별 도리 없이 모든 것을 우리가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직임지지 않을 때는 평안히 살 수 있으나 내가 책임을 짊어지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서 인생을 책임지고 살수밖에 없는 인간이 되고 만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을 위해 예비된 안식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도 한가지입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불러내실 때 그들을 위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예비하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훼이레 예비하는 하나님이시라 막연하게 불러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서 살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하늘 아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있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예비할 때 광막한 광야를 예비한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를 통해서 불러내셨습니다.
성경 출 3: 8에 보면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 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지나는 과정에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출13:21에 “야훼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그때 벌써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자연 에어컨디션을 준비한 것입니다. 여러분 요사이 우리 문명이 발달된 시절에는 에어컨디션을 예비해서 살기 때문에 여름에도 시원하고 겨울에도 따뜻하게 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광대한 광야를 에어컨디션 했습니다. 낮에는 광야가 얼마나 뜨거운지 햇빛이 내려쬐이므로 그대로 내버려 두면 수분이 증발해서 얼마 있지 아니하면 목이 말라 사람들이 살수 없습니다. 그런데 구름 기둥이 떠서 해를 가려줍니다. 그러므로 시원하지요. 저는 이 글을 성경에서 읽고 뭐 그런가보다 했는데 제가 소련에 가서 하바로스크에서 집회를 하는데 그때 소련이 붕괴되고 난 다음에 얼마 안 되어서 시설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풀밭에 나가서 설교를 합니다. 넓은 초원에 한 4, 5만 명이 모였는데 햇빛이 내려 쬐이는데 미칠 지경이에요. 얼마나 뜨거운지. 목이 타고 도저히 설교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강단에 앉아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햇빛을 가려 주었다는데 어디 나도 한번 구해보자. ‘하나님 이렇게 뜨거워서 내가 설교를 할 수 없으니 구름기둥으로 좀 시원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랬는데 설교를 딱 시작하려고 일어서니까 그것도 큰 구름도 아닙니다. 손 바닥만한 구름이 해를 딱 가리는데 내내 설교 마칠 때까지 해를 따라가면서 손바닥만한 구름이 해를 가리니까 얼마나 시원한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정말 좋은 에어컨디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은 기가 막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지나면서 결코 더위를 느끼지 않은 것은 구름이 그들을 가려 주었고 밤에는 춥지 않았습니다. 광야는 기온차가 심하므로 밤에는 너무나 춥기 때문에 바위들이 떵떵 소리를 내고 깨어집니다. 그런데도 따뜻하게 된 것은 불기둥이 가운데 서가지고서 환하게 밝혀서 적군들의 침략을 막아주고 짐승들을 막아줄 뿐 아니라 훈훈하고 따뜻하게 지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은 기가 막힙니다. 거치른 광야를 지날 때도 하나님은 낮, 밤을 가릴 필요 없이 에어컨디션을 해주셨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 마시게 하시고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먼지처럼 많은 고기를 내려 먹이시고 40년간 의복과 신발이 헤지지 않았고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과 탄식과 반역을 한 것입니다. 아무리 잘해줘도 잘해준 것을 보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없는 것을 가지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3백만이 오니까 여러 가지 불평분자도 많이 섞여있는데 원래 불평을 다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중에 몇 명 불평분자가 일어나서 “왜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에 끌어내어서 길도 사나운데 다리도 아프고 잠자리도 편치 못하고 물도 늘 흐르는 물을 안주고 바위에서 내려오는 물을 주느냐. 만나, 메추라기만 주느냐. 소고기를 안주고 물고기는 안주느냐.” 온갖 불평을 하니까 불평은 염병같이 퍼져 나갑니다. 불평은 염병처럼 퍼져 나가서 순식간에 모든 사람이 불평에 병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친구를 잘 사귀어야 되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희망찬 말을 하는 친구를 사귀면 그 친구만 만나면 모든 불평이 사라지고 원망이 사라지고 희망차고 긍정적이 됩니다만 원망, 불평, 탄식을 전문으로 하는 친구를 만나면 이 친구가 만나자마자 원망, 불평, 탄식하고 가슴을 치므로 같이 따라서 그 병균이 들어와서 원망, 불평, 탄식하고 불행해지고 탄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편이 부정적인 사람이면 아내와 자식이 다 부정에 휘말려 들어가고 아내가 부정적이면 남편과 자식들도 모두다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라도 한쪽편이 긍정적이 되면 그 긍정적인 것으로 모든 것을 밝고, 맑고, 환하게 하고 희망차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불평이란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광야를 지나는 과정에 도우심을 예비해 놓은 데도 불구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없는 것을 가지고 불평하므로 불신앙, 불순종,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하고 거역하므로 하나님이 분노하셨습니다. 여러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자녀들을 위해서 선물을 부모님이 예비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부모님이 정성껏 선물을 예비해서 자식들에게 갖다 주는데 그 선물을 자식들이 받아서 “뭐 이런 것을 선물이라고 주노?”하면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 버리면 부모는 마음이 섭섭하고 괘씸하게 여기게 되어서 ‘나중에 선물 주는가봐라’하며 선물을 안주는 것입니다.
제가 옛날에 해외에 많이 다녔기 때문에 자식들에 대해서 늘 마음에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들들만 셋이기 때문에 제가 언제나 애들이 좋아하는 조그마한 장난감 자동차 같은 것을 사왔는데 애들이 벌써 커서 소학교를 졸업 맡았는데도 불구하고 자동차를 사다주니까 이를 받아가지고서 “뭐 이런 것을 선물로 갖다 주나요?” 하면서 쓰레기통에 다 집어던져 버려요. 굉장히 제가 마음이 섭섭했습니다. ‘이놈들 내가 다음에 사주는가봐라.’ 그다음부터 돌아오면서 선물을 절대로 안 사왔습니다. 쓰레기통에 던지는 것이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 마음에 불안하고 행복하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은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을 볼 때 괘씸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다 예비하고 준비해 주셨는데도 감사와 찬양을 하지 않고 원망, 불평, 탄식하고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없는 것을 골라가면서 원망하고 불평하니까 괘씸하게 여기고 하나님 마음이 불평스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비한 것을 다 거두어 버리는 것입니다.
민14:29~30에 보면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 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심기가 불편하셨든지 그냥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결단코 못 들어간다. 한 놈도 내가 들여보내지 않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기가 얼마나 불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감사해야 돼요. 내가 허름한 옷이라도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감사하면 하나님이 기뻐해서 더 좋은 것을 줄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좁은 집도 하나님 집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도 비를 피하고 눈을 피하고 바람을 피하고 살 수 있는 집을 주시니 감사 합니다 하면 주님이 좋은 집 주실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거친 음식도 감사하게 먹으면 좋은 음식을 주실 수 있는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이 기쁘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우리의 환경을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므로 받아 들이냐 안 받아 들이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의 기도가 응답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심기가 불편해져서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안주시는 이유가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하고 춤추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꾸 아담과 하와처럼 없는 것을 가지고 불평하고 이스라엘 백성처럼 없는 것을 끄집어내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해서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다 멸해 버리고 1세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그냥 부르시지 않았었습니다. 구원받을 길을 예비하시고 천당을 다 준비해 놓고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의 죄 짐을 청산할 도리가 없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우리가 죗값을 갚으려면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죽고나면은 죗값을 어떻게 갚습니까? 우리는 의로운 생활을 통해서 죄를 갚을 수도 없고 우리의 고행을 통해서 죄를 갚을 수도 없고 수양과 도덕을 통해서도 죄를 갚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 죄 덩어리입니다. 죄 값으로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벌을 받아서 우리 죄를 다 가루로 만들어서 훅 불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 덩어리를 다 없앴으므로 예수 앞에 나오면 아무 일도 안했는데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든 그대로 주님께 나오는데 믿기만 하면 주님이 용서해 주시고 의롭다고 해주시고 천국 영광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니 얼마나 놀라운 구원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까? 오늘 구원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선물로 주시기 위해서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이 예비한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고 거역한다면 그 운명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겠습니까? 오늘날도 하나님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받아야 마땅한 사람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녀, 노유,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그대로 오라. 빈손 든 그대로 오라. 그리고 예비한 것을 믿기만 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라. 값없이 공짜로 다 선물로 구원을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의지하기만 하면 우리는 천당길이 환합니다. 십자가 없이 천당에 가려면 율법이 우리를 막고 있고 마귀가 우리를 막고 있고 양심이 우리를 막고 있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천당을 갈 수 없어요. 가려고 하면 율법이 ‘죄를 지었으니 죽어야지 어디 천당에 들어가려 하니 못 간다.’ 또 마귀가 ‘이 죄지은 놈이 어디 천당에 가려고.’라며 참소하지요. 그다음 우리 양심이 ‘우리는 절대로 천당에 못 간다’고 참소하지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장애물이 우리 앞에 막혀 있는 것입니다.
3. 천국에 예비 된 영원한 안식
그러나 예수님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것을 다 청산했으므로 율법도 예수님 십자가 밑에서 허무하게 되고 마귀도 물러가고 양심의 가책도 사라지고 천국 가는 고속도로를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천당 가는데 장애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내가 다 이루어 놓았으니 네가 할 일은 없다. 믿기만 하라.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면 그냥 안식할 수 있습니다. 편안하게 천당에 갈 수 있고 또 천당에 가서 살집도 영원히 있을 곳을 주님이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거처까지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정말 예비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구원도 십자가를 통하여 예비해 놓고 천국의 영광도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았으니 우리는 정말 기뻐 뛰고 춤추며 얼씨구나 감사하고 믿습니다. 주님, 순종합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섬기고 나가면 다 패스될 수 있는 것입니다.
R. A 토레이 목사님이 쓴 「기도의 능력과 능력의 기도」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교회에 출석하는 한 노인이 임종에 도달하게 되어서 빨리 임종예배를 보러 뛰어갔습니다. “임종을 맞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성도님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아니오! 이루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걱정이 되어 “아휴, 곧장 하나님을 만나실 것인데 화평을 이루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을 담대하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까 다시 노인은 “걱정할 것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목사님은 제차 “아휴 어떻게 걱정을 안 합니까?” 그러니까 평안한 얼굴로 말하기를 “제가 그렇게 할 필요가 왜 있습니까? 2천년 전에 예수님이 날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 하나님과 화평을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내가 화평을 이룰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나는 믿기만 하면 공짜로 화평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평안하고 마음에 안심하고 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토레이 목사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웠습니다. 맞았어요. 믿으면 될 것인데, 가서 “화평을 이루셨습니까?”라며 그 사람보고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어본 자기가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우리가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믿기만 하오. 믿기만 하오. 믿기만 하면은 주님이 이루어 놓은 것을 그대로 누리는 안식을 소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 가는 길과 천국생활 전부를 예비해 놓으시고 우리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 그저, 그저 감사 할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순종만 하면 그 안식에 들어갑니다.
벧전 1: 3~ 5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찰스 웨슬리는 감리교의 창시자의 동생입니다. 존 웨슬리는 위대한 복음 전도자였는데 그 동생 찰스 웨슬리는 천재적인 음악 작곡가였습니다. 많은 찬송가를 작곡했습니다. 한번은 이 찰스 웨슬리가 미국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오는데 큰 풍랑이 일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진눈깨비가 내리고 배가 기우뚱 거렸습니다. 그는 갑판에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치고 피곤해진 바닷새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오더니만 찰스 웨슬리의 품안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는 바다에 진눈깨비를 맞고 바람에 날리면 있을 곳을 찾지 못하다가 배있는데 날라 와서 찰스 웨슬리의 옷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옷을 들춰 보니까 옷을 딱 잡고 숨을 할딱할딱 하면서 편안하게 있거든 그래서 ‘야 이놈아, 잘 들어 왔다. 네가 내 속에 들어왔으니 편안하게 있겠지.’ 그런데 그 찰스 웨슬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했습니다. ‘야, 새도 풍랑 만났을 때 네 가슴에 들어와서 쉬는데 인생에 풍랑을 만나고 진눈깨비가 올 때 너는 어디에 피할 수가 있느냐. 내 가슴속에 들어와서 새처럼 딱 기대면 마음에 안식을 얻을 수가 있지 않느냐.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므로 내 품에 들어왔으면 어떤 풍랑도 너를 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성경에는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 품에 있으면 밤의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님께서 그 깃으로 우리를 덮어서 우리가 그 날개 밑에 피할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찰스 웨슬리는 그 자리에서 찬송가 441장을 지었습니다. '비바람이 칠 때와'라는 찬송인데 우리 한번 다같이 불러 보십시다.
“비바람이 칠 때와 물결 높이 일 때에 / 사랑하는 우리 주 나를 품어 주소서/
풍파 지나가도록 나를 숨겨주시고 / 안식 얻는 곳으로 주여 인도하소서
나의 영혼 피할 데 예수 밖에 없으니 / 혼자 있게 마시고 위로 하여 주소서/
구주 의지 하옵고 도와주심 비오니 / 할 수 없는 죄인을 주여 보호하소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할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죄악의 풍랑도 막을 수가 없고 세속과 부정의 풍랑도 우리가 피할 수가 없고 질병의 풍랑도 우리가 이길 수가 없고 가난과 저주와 삶의 고생의 풍랑도 죽음의 풍랑도 우리 힘으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 풍랑을 피할 것은 예수님의 품이 예비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손을 내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헛된 곳에 피난처를 찾지 마십시오. 돈이 여러분의 피난처가 되지 못합니다. 부귀, 영화, 공명이 피난처가 되지 못합니다. 곧장 다 날아가는 새처럼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청춘이 피난처입니까?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순식간에 청춘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피난처는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천국에 있을 곳을 예비하신 예수님의 품안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는 것이요, 예비한 안식처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 풍랑이 아무리 세게 몰아친다 할지라도 우리 주 예수님의 품 안에 있으면 놀라운 안식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우리는 들어가지 못하고 세상에 방황하는 사람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픕니다. 이렇게 주님이 친히 오셔서 몸 찢고 피 흘려 안식을 예비해 놓았는데 세상 사람들은 무관심 합니다. 인본주의로 살고, 이기주의로 살고, 세속주의로 살고 주님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살므로 주님이 예비한 안식이 그들에게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믿지 않으므로 효과가 없지요. 그리고 또 주님께 돌아와서도 주님에게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반역하고 주님께 반항하므로 하나님이 속이 상해하시고 슬퍼하시고 안식을 빼앗아 가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힘으로 세상에 안식을 만들어 보려고 스스로 길을 만들려고 합니다. 가시밭길에 길을 만들려고 하니 길이 만들어 집니까?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은 너무나 적고 사람이 못 만들 길은 너무나 많습니다. 죄에서 용서받은 길도 만들 수가 없고 세속과 마귀를 이길 길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절망적인 병에서 살아날 길도 없고 가난하고 절망적인 곳에서 먹고 살길도 우리가 막연할 때가 많고 더구나 죽음의 길을 건너서 저 세상으로 가는 길은 우리 힘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전혀 길이 없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미 예수님이 오셔서 만들어 놓은 길에 들어서야만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가 길을 만들어 놓았다. 몸 찢고 피 흘려 죽음을 통해서 용서와 의와 영광의 길도 내가 만들어 놓았고 거룩하고 성령 충만의 길도 만들어 놓았다. 치료의 길도, 축복의 길도 영생복락의 길도 만들어 놓았다. 나를 믿고 순종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섬기면 이 안식을 다 누릴 수가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무관심하고 반항하고 자기 인본주의로 인간의 힘으로 길을 만들겠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서 우리는 전적으로 주님께 의지하는 우리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히 3:18~19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시37: 5에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안식할 일이 주님 품에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4. 지상에도 예비된 양식
그러므로 우리 지상의 삶도 주님이 다 예비한 안식 속에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아담을 위해서 천지와 만물과 에덴을 예비했지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예비하시고 광야를 지날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당 길과 영원한 천국의 집만 예비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길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막연하게 부르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여러분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서 하루가 되기 전에 우리 일생을 하나님의 책에다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일생을 설계해 놓았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자기를 설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설계해 놓았는데 하나님의 설계를 바라보고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고 섬겼으면 하나님이 설계해 놓은 그 길로 편안히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설계를 무시하고 인생을 자기가 설계해서 자기 힘으로 살겠다고 하니 가시넝쿨 속에서 찢기고 상처입고 피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전 2: 9에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도저히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한 것을 크고 비밀한 길을 예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일생을 살아갈 동안에 우리의 삶은 이미 이 땅에서도 예비해 놓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롬 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아들조차 주신 하나님이 아들을 모시고 사는 우리의 일생을 주님께서 예비해 놓지 않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히 4:11에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순종하고 믿으면 하나님이 예비한 안식에 우리는 이미 들어가서 살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누울 때 까지 하루의 생활을 주님은 이미 만세전에 설계를 해놓으시고 필요한 것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믿기만 하고 순종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구하면 주님께서 다 이미 예비한 곳으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구하는 자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 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비해 놓고 구하라. 나에게 구하기만 하면 예비한 길로 이끌어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1964년도에 경험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잠이 탁 깹니다. 모골이 송연합니다. 얼마나 어려운 고비를 당했는지 몰라요. 그때 세계오순절대회가 브라질 리오자네이로에서 있었는데 내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했을 때 촌놈입니다. 브라질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브라질까지 가서 오순절세계대회에 참석을 하고 이제 돌아오는데 돈이 한 푼도 없어요. 그때는 2백 불 밖에 정부에서 허락해주지 않는데 2백 불을 쪼개고 쪼개서 호텔 비 내고 식비내고 돌아올 때는 비행기표 밖에 없어요. 그 비행기를 브라질에서 타면 미국 LA에서 갈아타고 한국으로 나오면 되었습니다. 밥은 비행기 안에서 주니까 얻어먹으면 되는 것이고 그래서 공항 카운터에 가서 짐을 다 맡기고 비행기 탑승수속을 하고 비행기를 타려고 줄을 서있는데 브라질 경찰 한 사람이 두리번, 두리번 하고 보더니만 나에게 오더니만 패스포트 보자고 그래요. 패스포트를 보여주니까 포켓에 집어넣고 그냥 가버리는 거에요. 내가 비행기 타고 가야 되는데 패스포트는 포켓에 넣고 가기에 놀라서 따라가서 패스포트 프리즈, 패스포드. 이제는 화장실에 들어가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미국 사람이 아닌 동양 사람이 오면 브라질이 그때 부패가 극했으니까 경찰관들이 패스포드를 빼앗아 가서 화장실에 가면 크루자도스로 돈을 주면 도로 바꿔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촌놈이 그런 것을 압니까? 처음 외국 나갔으니까. 자꾸 화장실 가서 페스포트 달라고 하니까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만 싱긋 웃더니만 그냥 나가 군중 속에 섞여 버리는데 이제는 패스포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비행기회사에서는 자꾸 조용기 빨리 비행기 타라고 하다가 없으니까 짐을 내려놓고 비행기는 떠나가 버렸습니다. 나는 국제고아가 되고 만 것입니다. 브라질에는 그때 한국 대사관도 영사관도 없고 한국사람 한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다가 돈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돈 한 푼도 없지요. 아는 사람도 없지요. 비행장 대합실에 앉아서 기가 막혀요. 세상에 기가 막혀도 그렇게 기가 막힐 리가 없습니다. 자, 아는 사람이 있나, 전화를 한통 걸 수 있나. 그때는 한국에서 미국이나 구라파에 전화하려면 전화 신청해 놓고 8시간 기다릴 때였습니다. 그러니 전화도 못해, 돈도 없어, 아는 사람도 없어, 이제는 갈 곳도 없어, 패스포드도 없어. 그런데 앉아서 이제는 수염이 희게 될 때까지 브라질 사람 되고 말았다. 당장 이제 먹고 살 것이 없으니까 구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그래서 그때 앉아 가지고서 ‘하나님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다가옵니까? 하나님 뜻을 따라서 브라질까지 왔는데 나로 하여금 이렇게 국제고아가 되게 하십니까?’ 하나님 말씀이 다 안 믿어져요. 그래서 롬 8:28을 외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는데 이런 것도 선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구만리장천에 사라져 버리고 기도도 안나오고 불안과 공포가 꽉 들어찼습니다. 그래서 걸상에 앉아서 울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땅 팔 노릇입니다. ‘나는 어디가요? 갈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안 도와주면 나는 어떡해요?’ 그리고 울다가 얼굴을 들어 보니까 한 중년의 미국 신사가 그 부인과 딸을 데리고 내 앞을 지나가면서 나를 유심히 보다가 내가 쳐다보니까 고개를 쓱 돌리고서 지나가요. 그래서 ‘내 몰골이 말이 아니구나. 날 구경하면서 저렇게 가는구나?’ 그리고 또 내가 울면서 기도를 하고 그러니까 도로 또 돌아와서 나를 쳐다보더니만 얼굴을 싹 돌리고 가요. ‘저 사람이 정말 동양 사람이 울고 있으니까 구경꾼인가 보다.’ 그다음에 내가 앉아서 또 울고 기도하니까 그 다음에는 도로 돌아오더니만 내 곁에 와서 “말씀 좀 물어 봅시다.” 그래서 영어를 하니까 얼마나 반갑던지. 전부 포르투갈 말 만 쓰는 가운데서 영어를 말하니까 너무나 반가웠어요. 미국분입니까 하니까 “나는 미국 선교사입니다. 나는 여기서 자동차로 한 3시간 달려가야 하는 쌍파울로에서 손님을 리오 자네이로까지 모시고 가서 비행기를 태워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당신이 앉아서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내가 말을 걸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10년 전에 내 친구 루피 리처드 선교사가 한국에 가서 선교를 했는데 그분이 기도편지에 사진을 한 장 붙여 왔는데 폐병 걸려 죽던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우리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사진을 붙여 놓았는데 내가 그것을 은혜롭게 그 편지를 읽고 그 사진을 자세히 봤는데 오늘 내가 지나면서 보니까 당신이 그 사진과 너무나 닮았어요. 혹시 내가 사진에 본 그 사람이 아닌가? 싶어가지고서 물어봅니다.” 내가 화들짝 일어나서 잡고서 “내가 그 사람입니다. 아이고, 내가 그 사람입니다. 내가 그 사람입니다.”하며 눈물이 줄줄 났습니다.
“나는 이곳에 와서 아무것도 돈도 없이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브라질 경찰이 와서 내 패스포트를 빼앗아가 버리고 나는 오도 가도 못하고 이제 여기서 완전히 고아가 되었습니다.”라고 하소연 하니까 선교사님이 “쯧쯧” 혀를 차면서 “그놈들이 항상 그런다니까요. 그놈들이 동양 사람이나 약소국가에서 온 사람들 패스포트를 빼앗고 공갈쳐서 돈 빼앗고 하는데 당신도 거기에 걸렸군요.” 그러면서 자기 딸을 보고서 “이 어른 패스포드를 찾아 주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사람들이 그때는 아주 불친절하던지 우리가 말을 해서는 말을 안 들었어요. 그런데 그 집 딸이 대학생인데 아버지에게 놀러왔다가 아버지 따라 그 공항까지 왔는데 이쁜 여자가 말을 하니까 다 말을 들어주더라구요. 내가 그래서 사람이 고통을 당하면 남자는 굶어죽어도 여자는 안 굶어 죽겠다. 왜냐하면 패스포트를 담당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아무리 물어도 내가 말하거나 그 선교사님이 말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이 여자가 “패스포트 어디 있어요?”묻자. 그 경찰 하는 말이 “하던 일 다 마치고 시내로 가서 경찰국에 들어가서 외사과로 찾아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경찰국에 가서도 내가 말을 하려니까 그 아담스 목사님이 “목사님은 말하지 마세요. 이 브라질 사람들은 남자들이 말하면 들어주지도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선교사님 딸이 브라질 말을 그렇게 잘해요. 포르투갈어를 하니까 외사과의 담당 경찰관에게 까지 갔습니다. 그 사람이 내 패스포드를 받아서 가지고 와가지고서 점심시간에 쓰레기통에 내버렸어요. 상사가 이야기를 하니까 쓰레기통에 가서 뒤지니까 내 패스포드 쓰레기통에서 나와요. 그래서 쓰레기통에서 패스포드를 받아 나오니까 선교사님 하시는 말이 “이제 일주일 후에야 비행기가 다시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주일 동안 여기 있을 수 없으니까 쌍파울로 우리 집에 갑시다. 우리 집에 가서 우리 집에서 먹고 일주일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시오.” 그래서 쌍파울로까지 차를 타고 가서 그 집에서 묵고 일주일 후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무사히 돌아왔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요. 하나님이 예비를 안해주셨으면 오늘 여기에 제가 있지 않고 브라질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가 그때 패스포드 빼앗길 것을 10년 전에 아시고 이미 아담스 씨에게 그것을 보게 하시고 아담스 씨가 그 후로 브라질 선교사로 와서 그 날도 구태여 꼭 그날에 손님을 모시고 리오 데 자네이로 비행장에서 환송을 하고 나를 만나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기가 막힙니다. 나는 어제 저녁에도 이 생각을 하고 자다가 몸을 떨었습니다. 그때 내 마음에 황당함과 당황한 심정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사람이 객지에 가서 아무리 어려움을 당해도 돈이 있으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포켓에 돈이 두둑하면 돈으로써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돈 떨어지고 올 데, 갈 데 없었으면 그 때 홈 리스가 되고 정말 절망인데 나는 그 때 돈도 떨어지고 패스포드도 없어지고 아는 사람도 없고 완전히 절망이었는데 모른 것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몰랐습니다. 늘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그런 상황에 처하니까 하나님이 사라져 버리더라구요. 연기 속으로 싹 사라져 버립니다. 마음에 믿음도 사라지고 절망에 처하더라구요.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 처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습니다. 예비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셔서 크고 작은 인생길을 미리 아시고 미리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훼 이레가 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결론>
모든 일에 미리 아시는 고로 미리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에게 그 예비 된 안식 안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곳에 들어가면 편안하게 살아요.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시고 내가 책임이 없으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를 하나님이 다 예비해 놓으시니까 믿고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면 하나님이 술술 실타래 풀듯이 풀어서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안식하고 살든지 하나님을 따라 살지 않고 피투성이가 되어 살든지 우리는 선택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금세 안식, 내세 천당 안식까지 주님이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을 허락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담도 안식을 누릴 수 있고 이스라엘 백성도 안식을 누릴 수 있는데 불순종, 불신앙, 저항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므로 안식에서 쫓겨나고 만 것입니다. 아담처럼 쫓겨나지 말게 도와 주시 옵시고 이스라엘 백성처럼 쫓겨나지 말게 도와 주시 옵시고 우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을 감사하고 누리게 도와 주시 옵소서. 적은 일에 감사하고 예비한 것을 즐기는 사람, 큰일에도 주님이 예비해 주시고 감사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 속에서 평안하게 기쁘고 즐겁게 믿음으로 순종하므로 사랑하므로 섬김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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