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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렘32:3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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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정지석 형제 |
참고 : | 새길교회 2009.8.9일 주일설교 |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희망의 노래
[예레미아 32 : 37~41, 마태 5 : 11~12]
정지석 형제
8월은 한국교회가 특별히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달입니다. 8.15 해방절이 들어있는 날입니다. 이 날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 민족이 어떤 지경에 있었을지 모릅니다. 현재 중국에는 일본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을 위해, 일본 총독부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혹은 살 길을 찾아 만주로 이주했던 조선족들이 귀국하지 못한 채 남아 소수민족으로 조선족 자치주를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약 6백만 내지 7백만 명이 이주 나갔다가 해방되어 돌아온 이들이 4-5백만 명이며, 나라 사정이 여의치 않게 돌아가다가 남북한 전쟁이 나고 분단된 탓에 끝내 귀국치 못하고 남아있는 이들이 현재 2백여만 명에 이릅니다. 이젠 남의 나라(중국) 사람으로 살고 우리도 그렇게 대하고 있으니, 8.15 해방이 없이 지금까지 지내왔다면 우리 민족은 마치 현재의 조선족 모양으로 세계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아가고 있을지, 마치 오늘의 티벳같이 나라 없는 망국민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해방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 형편을 돌아보면, 망국민의 신세는 면했지만,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휘둘리면서, 제 나라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꼴이니 참으로 딱한 처지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8.15에 우리가 일본 식민지로부터는 벗어났지만 남북한이 한 나라로 될 때까지는 온전한 독립과 해방은 되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이런 고백을 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힘써 기도하는 일은 오늘 우리 시대에 온전한 민족의 해방을 성취하려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우리 교회에게 부여된 신앙의 사명이라 하겠습니다.
일본식민통치 아래서 우리 교회와 신자들은 구약성서를 많이 읽었고, 그 안에서 오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굳게 믿음으로 믿음을 지키고, 절망한 민족에게 희망의 노래를 불러 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신사참배라든가 세상사로부터의 무관심과 같은 신앙적 변질과 도피가 있었지만, 고난가운데서도 인내하면서 믿음을 견고히 했습니다. 특별히 출애굽기를 많이 읽으면서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민족 차원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증언하고 있는 것이 구약성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사라고 하는데, 이를 단순히 한 민족의 역사로 보지 않고,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봅니다. 구약성서는 한 민족의 역사로 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왜냐하면 그 민족의 출신성분이 노예였으며, 서로 싸우면서 둘로 갈라졌고, 결국은 강대국에게 멸망해 포로로 잡혀가고 노예로 팔려 다니다가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는 처참한 역사증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개 민족사를 증언하는 것이 구약성서가 아닙니다. 구약성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어 가느냐는 것이 구약성서의 중심을 흐르는 주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의 분단과 멸망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증언하는 구약성서를 읽으면서 오늘 우리 민족에게 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분단되고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는가, 성서는 어떻게 그 원인을 증거하고 있는가를 살펴봅니다. 첫째, 성서는 왕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왕이 저지른 죄악이 이스라엘을 분단시키고 멸망하게 된 직접 원인이라고 증언합니다. 열왕기 상 12장부터 이런 증언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왕의 행적을 요악하면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권력숭배, 부의 숭배, 그리고 강대국에 의존하여 안전을 취하려는 현실무력 숭배가 그것입니다. 왕의 이러한 우상숭배는 야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을 잃어버리게 하였습니다. 둘째, 백성의 잘못을 성서는 증언합니다. 왕을 요청한 이들은 백성이라고 성서는 증언합니다. 백성들도 하나님의 법보다는 물질적 풍요를 갈구하고 향락에 취해, 가난한 자와 약자를 무시하고 억누르면서, 야훼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는 죄악에 빠졌다고 성서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들은 이런 왕과 백성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명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왕과 백성의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예언자는 야훼 신앙의 대변자요 하나님의 행동을 대신하는 대행자 역할을 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매우 강조되고 반복되어 나타나는 말씀이 바알 신앙을 버리고 야훼 신앙으로 돌아오라는 예언자들의 말씀입니다.
야훼신앙과 바알 신앙은 단지 개인의 신앙 자세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 민족 공동체의 비젼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문제였습니다. 바알신앙은 위계질서와 사회적 신분 차별을 정당화하고, 중앙화된 경제와 공납(세금) 경제에 기초한 공동체 사회를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야훼신앙은 열두 연합 부족의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덜 중앙집권적이고, 지역 부족과 마을 공동체간의 협력적이고 평등하고 정의로운 경제를 추구하는 공동체적 비젼의 기반이었습니다. 왕은 바알 신앙을 좋아했습니다. 백성들은 바알 신앙과 야훼신앙 사이에서 오락가락 했습니다. 예언자들은 야훼 신앙의 견고한 대변자요 대행자였습니다.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은 출애굽기에서부터 이어내려오는 야훼 신앙, 즉 옛 이상(평등과 정의의 실현을 추구하는 이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입니다. 신앙적으로는 옛 것을 지키려는 보수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는 이 옛 이상을 실현하려고 함으로서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은 야훼신앙을 회복하여, 민족의 생명력을 존속시키는 길을 추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민족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으로 읽은 예언자 예레미아는 남유다의 멸망기에 활동했던 예언자입니다. 예레미아의 히브리말, 이스메야는 ‘야훼께서 기초를 세우신다’란 말에서 의미하듯이 뭔가 새로운 시작의 기초를 놓는데 기여한 예언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기초가 든든해야 하듯이 기초를 세우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레미아는 제사장 아들로 예루살렘 북쪽 5킬로 떨어진 아나돗이란 마을 출신으로 바벨론에 의해 남유다가 멸망할 것을 예언하는 임무를 맡아 수행한 예언자입니다. 멸망 예언을 하니 고향에서조차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박해를 당하고 왕의 핍박을 피해 외국으로 도피하는 삶을 산 예언자입니다. 그는 예언활동을 627-580BC, 약 53년간 했습니다. 유대 마지막 선왕 요시아 왕과 함께 종교개혁을 단행하기도 했지만 609BC 요시아 왕(640-609BC)이 애급 바로느고 왕에게 살해당한 이후 다른 왕들 시대에는 계속 박해를 당했습니다. 남유다도 마지막 왕 시드기야 왕 때 애굽 동맹을 맺고 애급의 봉신국가로 있다가 신흥 강국 바벨론에 의해 587BC년 멸망당했습니다. 구약성서는 야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현실적인 강대국이었던 애급에 의지했던 시드기야 왕을 하나님이 심판하여,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한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 감당했던 역사적 사명은 참으로 특별합니다. 멸망의 암흑기에서 예언자는 멸망을 예언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희망의 약속을 예언합니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죄에 대한 형벌이며 동시에 죄로부터의 구원이란 두 차원을 의미합니다. 예언자들은 이런 역설적인 증언의 사명을 띤 사람들입니다. 고대근동에는 신을 체험하고 황홀경에서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예언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알 신앙의 예언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예언자들과 달리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사회정치적 역사 현실 속에 증언하면서, 하나님의 사회 정치적 심판을 하면서 왕과 맞서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언자들의 사회 정치적 비판은 세상 권력자에 대한 형벌의 심판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시키고자 하는 사명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아는 남유다의 멸망이란 형벌을 예언하면서, 다시금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선포합니다. 남유다가 회개치 않으면 오직 멸망의 심판아래 들어갈 수 밖에 없음을 선포했습니다. 회개는 야훼 하나님 신앙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남유다는 끝내 회개치 않다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다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게 예언자의 선포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는 희망의 믿음의 근거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근거입니다. 오늘 읽은 예레미아 말씀은 당시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그 당시 예레미아의 심정이 되어 읽어보고, 또 지금 우리 현실에서 이 말씀을 통해 계시되는 하나님의 뜻을 새기는 것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32장 37-38절은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을 보여줍니다. ‘보라 내가 큰 분노함으로 쫓아냈던 그들을 불러모아 이곳으로 다시 인도하여 안전하게 살게하겠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진노를 푸시고 다시 고국 땅에 돌아와 안전하게 살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증언합니다.
39-40절은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을 보여줍니다. ‘내가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마음과 행동이 단일함), 언제나 나를 경외함으로 자신과 자녀들까지 복을 받게 하며, 나는 영원한 계약을 그들과 맺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나를 경외토록하여 나로부터 등 돌리지 않게 한다’. 영원한 계약을 재확인하는 것인데, 그 길은 마음과 행동이 한결같아서, 하나님을 늘 경외하는 삶을 살고 이것이 나와 후손까지 복을 받는 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씀이란 하나님을 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제 마음대로 욕심껏 살지 않고 조심하며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좋은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님을 배반하여 등 돌리는 삶도 하지 않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하시겠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41절.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정녕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당에 심으리라’.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조은 일을 해주실 때 기쁘다고 합니다. 심판하실 때 하나님은 화나고 분노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자신의 자녀들에게, 선택한 백성에게 좋은 일을 해 주실 때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과 혼을 다하여 그들이 땅에 정착하도록 할 것이라고 희망의 약속을 전합니다. 여기에서 보면, 멸망이라는 절망의 상황 속에서 예언자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약, 구원의 약속을 선포하면서 희망을 노래합니다.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야훼 하나님의 노래를 받아 예레미아 예언자가 희망의 노래를 백성들에게 들려줍니다. 비참한 이스라엘 망국사 속에서 이들을 존속시키는 원천은 야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은 절망 속에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역설적 힘의 원천입니다. 이것이 구약성서가 증언하는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산상 설교에서 강조하신 것이 이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12절에 보면,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어려움과 곤경 핍박 속에서 오히려 기뻐하라는 이 설교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조건에서건 희망의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이 됩니다. 초대교회가 이 믿음을 계승했고, 어려운 상황을 이겨갔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지킨 믿음의 신비로운 유산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믿음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믿음에서 우리는 어려움, 불가능, 절망의 상황 속에서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에서 탄생한 교회는 이 믿음을 증거해야 하는 예언자의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민족 통일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늘어 갑니다. 50년을 넘어 이제 64년이 되어오면서, 갈라진 채로 살아 온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려서 요즘 신세대들에게는 남북한이 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또 분단 시대를 살아 온 어른 세대에 속한 분들도 남북 통일하면 자꾸 골치 아픈 정치적인 문제로만 되어버려서, 통일이 되겠느냐는 회의감이나 절망감이 마음 깊이 뿌리 내리고 있고, 젊은 세대들은 경제적인 수지타산을 하면서 가난한 북한과의 통일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지경입니다.
오늘 민족 통일은 믿음의 사건이 되어있다고 저는 봅니다. 믿는 자에게 통일은 이뤄진 것이며 이뤄질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희망의 노래를 부르면서, 혹여 받을 모욕과 핍박, 그리고 거짓으로 악한 모함을 받게 될 때 우리는 오히려 그로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늘의 상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이 계절에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그리고 민족 내부를 허물어 가는 양극화된 빈부 격차를 줄이는 일을 위해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예언자들의 믿음의 유산을 이어받으면서 오늘의 역사 현실에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나아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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