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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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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2002.10.30
지난 주 오후 예배 때 회교권에서 선교하시는 정선교사님이 오셨습니다. 참 좋으신 선교사님이시데 한가지 흠이 있다면 뭘 잘 잃어 버립니다. 건강증이 심합니다. 제가 한 15년 전에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어요. 월요일날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려 강대상에 올라가니까 낯선 시계가 있어요. 설교하시고 시계를 그대로 풀어놓고 가신 것입니다. 설교하시는 날 제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넣어주기 위해 노트북 컴퓨터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방 만 가져왔어요. 알맹인 컴퓨터는 빼놓고 온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오기 전 주일에는 부산에 있는 모 교회에 설교하시러 가셨는데 설교하고 성경을 놓고 오신 것입니다. 지난 화요일 다시 컴퓨터를 가지고 저희 교회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바레인에서 사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요일 날 출국하는데 사모님께서 챙길 것을 꼼꼼히 점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소에 얼마나 건망증이 심하면 그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선교사님께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순수와 복음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정도, 부부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꼭 잃지 말아야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사랑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이 사랑을 잃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Ⅰ. 첫 사랑을 잃은 교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는 첫사랑을 잃은 교회가 되었습니다(4).
1. 에베소 교회는 첫 사랑이 있던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였습니다.(엡18:18-23; 19:1-8) 바울이 3년 동안 눈물과 희생으로 목회한 교회였습니다.(행20:17-38) 나중에 아볼로가(행18:24-) 목회하였고 디모데가 목회한 교회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목회하였습니까? 사랑도 전염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열정이 있던 사람들이 목회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뜨거운 사랑이 있었습니다. (엡1:15; 3:7; 3:18 4:2 4:15; 5:2)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이미 30여년 전에 에베소 교인들의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언급하바 있고 사랑을 권고하였습니다. 성경을 한 번 찾아 보세요. 바울과 에베소 교회 장로들이 이별하는 장면 말입니다.(행20:17,19,24,31,35,36,37)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1장 8절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아니고서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 이 참 사랑을 알게 하시고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사랑으로 그들을 뜨겁게 사랑하며 목회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랑도 전염되는 것입니다.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그 사랑이 있있습니다.
2. 그들은 이 사랑을 버렸습니다.
버렸다는 말은 배도하였다는 말입니다. 배신하였다는 말입니다. 식어졌다는 말입니다.
3. 우리는 첫사랑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최고의 덕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1-3절을 보십시오. 사랑이 없으면 방언도 천사의 말도 예언도 지식도 구제도 헌신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서기관(율법사)이 와서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크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마22:37-40)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벧후 1:7에서 그리스도인의 덕목을 말씀하면서 가장 위에 오는 덕목이 무엇입니까?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교회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교회가 개척될 때는 뜨겁게 사랑하며 생일 케익도 자르고 서로 축하해 주며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내일처럼 돌보아 줍니다. 예배도 생기가 있고 기도도 능력이 있습니다. 봉사하는 것도 기쁨이 있습니다. 왜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하면 모든 것이 힘이 들지 않습니다. 즐겁습니다. 활력이 있습니다. 똑같은 꽃을 만들더라도 사랑하는 애인에게 주기 위해 만드는 경우와 먹고살기 위해 만드는 경우는 다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사랑하니까 어떻습니까? "창 29: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칠 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더라"
"창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한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
설교들 들어도 생동감있게 듣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어떤 말씀을 주실까?하고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첫사랑을 잃으면 감격이 없습니다.
개척교회를 몇 년 한 어느 목사님의 아들이 자기 방에서 장난감 벽돌을 가지고 이것을 높이 쌓으면서 혼자 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옆에 있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쌓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벽돌을 쌓고 있는 아이를 향해서 "너 뭘 하고 있는 거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뒤돌아보면서 "쉿! 아빠 조용히 하세요. 지금 교회를 짓고 있는 겁니다."
아버지가 대견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개척교회를 하는데 얼마나 한이 맺혀 아이가 교회를 짓고 있을까?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대견하여 한 마디 더 물었습니다. "애야, 교회에서는 왜 조용히 해야 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이때에 아이가 말합니다. "아빠 참! 교회에서는 조용해야지요. 사람들이 다 잠들었으니까요. 떠들면 깨잖아요." 그러드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남편이나 아내 말을 듣는 것이 귀찮아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잔소리로 들리는 것입니다. 차라리 잠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정열이 있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하는가 귀를 기울이며 웃을 준비를 하고 기뻐할 준비를 하고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복음 송)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Ⅱ. 첫사랑을 잃은 이유(2,6)
왜 사랑이 식어 집니까? 에베소 교회는 이단과 싸우다 보니까 그랬습니다.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불평하지 않고, 단점을 보지 못하고, 이성적 판단으로 계산하지 않는 사랑을 진리를 파수하다 보니 잃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인정해 줄 정도로 진리에 서서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의심이 강하다 보면 사랑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1,2,3,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다 알고 있었습니다. 안다는 말은 성경에서 기노스코, 오이다, 에피스타마이라는 말입니다. (1)기노스코라는 말은 어떤 경험과 얻어진 지식을 통하여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창2:17, 마6:31) (2)오이다라는 말은 본래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신 절대적 전지 전능의 지식을 가리키는 동사입니다.(요13:7, 계21:7) (3)메피스타마이는 사실과 사건에 대하여 아는 전문적이고 과학적이고 기술적이고 산업적인 지식을 가리키는 동사입니다.(창47:6; 딤전6:4) 여기서 안다는 말은 하나님 만이 소유한 전지 전능으로 아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1)악한 자를 용납하지 안은 것(2) (2)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 낸 것(2) (3)참은 것(3) (4)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딘 것(3) (5)게으르지 아니 한 것(3) (6)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한 것(6) 등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약하면 그들의 행위입니다. 그 행위는 곧 수고와 인내입니다.
1. 그들은 수고의 행위로 사랑이 식어졌습니다.
성경에 보면 수고라는 말도 세 종류로 나와 있습니다. (1)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노동을 모크도스라 하고 (2)온 힘을 다하여 노동하는 것을 포노스라하며 (3)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노동과 온힘을 다하여 행한 수고의 결과로 일어나는 녹초가 될 것 같은 피곤함을 코폰이라고 합니다. 바로 여기서 말하는 수고는 코폰이라는 말로 녹초가 될 정도의 수고를 말합니다. 체험 삶의 현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마라톤을 뛰고 난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 수고한 그들의 수고는 무엇입니까?
(1)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2)입니다. 악한 자들은 에베소 교회에 현저하게 나타난 이간자로서 거짓 사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의 교리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2)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 된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2)
니골라당(6)이 있습니다. 니골라당이란 초대교회 7집사 가운데 니골라 집사(행6:5)가 타락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를 일컫는 다고 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사람의 육신은 영원히 악한 것인 데 선한 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만 믿으면 영혼은 정결케되기 때문에 육신으로는 성결한 삶을 살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것입니다.(현재의 구원파의 교리). 이에 대하여 주님도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6절) 하셨습니다.
(3)게으르지 않았습니다.(3)
2. 그들의 인내의 행위로 사랑이 식어졌습니다.
(1)오래 참았습니다.(3)
오래 참는 다는 것도 성경에서는 두가지로 쓰입니다. 어떤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는다는 말은 마크로 수미아라는 말을 쓰고 어떤 사건에 대하여 오래 참는다는 것은 후포모네라는 말을 씁니다. 여기서는 어떤 사건에 대하여 오래 참는다는 말입니다. 곧 에베소 교회는 율법주이 외식주의 , 인본주의와의 싸움에서 인내하여 승리하였습니다.
(2)견디었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온다할 지라도 참고 견디었습니다.
에베소라는 말은 욕망과 소망이라는 뜻입니다. 이 도시는 케이스터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었 상업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소 아시아의 최대의 도시로 경제적으로 풍성한 도시였고 민주정치가 발달된 도시였고, 운동경기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다이아나 신전이 있어 이방신을 숭배하는 도시였습니다. 여사제만 해도 수천명이었고 신전 청소를 위하여 수천명의 노예가 일하였다고 하니 과연 어느 정도였을 것인가를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성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부적을 팔았고 범죄자가 신전 300M 이내에 오면 살수 있었기 때문에 온갖 범죄의 소굴이 되었다 합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들은 각종 유혹으로부터 인내하고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랑이 없어졌습니다.
3. 우리는 어떤 수고를 하고 진리를 파수하기 위해 어떤 댓가를 치르고 인내한다하여도 사랑만큼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불의한 교계의 모습을 바라보고 열을 내다보면 사랑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어제 신문에 전직 목사인 분이 이혼하고 아들이 자신을 아버지라고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강금하여 죽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랑이 식어집니다. 교인들이 서로 일을 하다 보면 서로 옳은 방법을 강구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떻습니까? 사랑이 식어집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서로 바라보면서 사랑한다고 외쳐 보십시오. 만약 배우자가 오늘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면 집을 바라보고 사랑한다고 속삭여 보십시오. 부부 뿐 아니라 교회 성도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오후에 중앙공원에서 만나자고 하면 안됩니다. (바람난 모 교회 목사님의 예)
옛날 교회가 핍박받을 때 하드리안 황제가 크리스천이라는 이상한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라고 아리스티데스라는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었습니다. 크리스천들의 행동을 본 아리스티데스는 보고서를 황제에게 제출했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서로 사랑합니다.” 오늘 우리를 보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보십시오! 저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비!”, “봐라! 저들이 서로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봐라! 저들이 서로를 얼마나 비판하는지!”, “봐라! 저들이 서로 어떻게 싸우는지!”이런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프랜시스 쉐퍼는 그의 저서「20세기말의 교회」에서 “교회는 죽어가는 문화 속에서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 거듭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세상에 주고 있는데 그 기준은 사랑하는냐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서로 상처받고 마음 상하고 신앙을 잃으면 안됩니다. 무디지에는 소개하는 교회를 분열시키고 망하게 하는 10가지 대표적인 사례를 실었습니다. ①교회 내 특정 교인의 요구 사항에만 철저하게 초점을 맞춰라 ②교회 안에 떠도는 모든 소문과 비평을 다 귀담아 들어라 ③목회자의 약점만 찾아내 이야기 하라 ④사랑 안에서 결코 참된 것을 말하지 말라 ⑤불평 불만의 씨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해 두라 ⑥남을 용서하되 오직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는 자만 용서하라 ⑦자신의 죄는 덮어두고 위선으로 가장하라 ⑧공중기도 시간을 통하여 교회에 대한 불만을 다 토해내라 ⑨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항상 이기기에 힘써라 ⑩하나님이 당신에게 교회를 분열시키라는 사명을 주셨다고 믿고 행하라. 교회는 이렇게 되면 않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만족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책임감 때문에 신앙생활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인내는 짜증만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런 인내는 화목하게 하는 힘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예배, 지루할뿐입니다. 설교도 찬송도 길게만 느껴질 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봉사, 지겨울뿐입니다. 예배니 인내니 봉사니 충성이니..얼마나 중요한 신앙행위들입니까?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신앙행위가 될 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겉보기에는 그럴듯 해도 그 안에 들어가 보면 형식과 원망과 피곤과 짜증과 불평뿐이요 피차의 저주와 정죄와 아집과 교만만 남을 뿐입니다.
직분을 맡아 봉사하든 가정에서 집안 일을 하든 회사에서 일을 하든 그 모든 것은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단과 싸우는 것도 진리를 파수하는 것도 목숨을 다하여 수고하는 것도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심리학의 태두로 불리는 프로이트에게 어느날 누군가가 물었다."선생님 노이로제 증세가 없는 건전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이 물음에 프로이트는 대답하기를 "노이로제 증세가 없는 건전한 사람이란 바로 사랑할수 있고 일할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무신론자인 그도 이렇게 사랑을 강조하였습니다. 건전한 신앙이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사랑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대하여 "첫째, 사랑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둘째, 사랑은 존경하는 것이며 셋째, 사랑은 이해하고 넷째, 사랑은 책임을 진고 다섯째, 사랑은 주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는 사랑에 대하여 이보다 더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Ⅲ. 첫사랑의 회복
첫 사랑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5)
1. 어디서 떨어졌는가를 생각하고 항상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현재 떨어져 있는 것을 계속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라는 것입니다.
2.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잘못된 길에서 180도 돌려 바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3.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첫사랑을 회복하여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처음 사람을 되찾을려면 3단계의 명령을 준수해야 합니다. 첫째는 어디에서 떨어졌는가를 계속 생각하는 것이고 2단계는 회계를 시작하는 것이며 3단계는 실천하는 것입니다. (탕자 눅15:17-32)
4. 첫사랑을 회복합시다.
첫사랑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진리를 파수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파수한다고 사랑을 잃어버리고 뼈만 남은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진리 없는 사랑 역시 궤도를 잃은 기차와 같지만 사랑없는 진리는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회복하는 가정 사랑을 회복하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누가 교회에 들어와도 사랑이 넘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실패한 베드로에게 오셔서 회복해 주시는 것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부인할 때 숯불이 보입니다.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세 번 물어 봅니다. 처음 고기를 잡을 때 그를 불렀습니다. 똑같은 현장입니다. 요21:15,16,17을 보십시오. 내가 처음 아내와 남편과 결혼할 때의 상황으로 돌아 가보십시오. 처음 예수님을 믿고 감격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잃은 것이 많습니까? 얻은 것이 훨씬 많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갖가지 기적을 체험했고, 교훈을 받았고 무식한 어부이지만 한 때 대장노릇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순간 예수님이 자신의 마음대로 해주지 않고 돌아가시니까 그 큰 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잘해주다가도 한 순간 내마음대로 안되면 사랑을 버리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내 사랑을 잃었는가를 진단해야 합니다.
장애인 부자를 14년 동안 돌본 엄연호씨 기사를 읽어 보았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역 회사에 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세관에 자주 가야 했는데 절차가 까다롭고 불친절해 죽기만큼 싫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지금의 남편이 일을 처리해줬는데 다른 담당자들과는 달리 친절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자상하게 대해 주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첫 사랑이 었습니다. 그녀는 혼자 사랑을 키웠지만 알고보니 유부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입술을 깨물며 그를 잊었습니다. 그리고 6년이 흐른 후 그 남자가 사고를 당했고 아내마저 떠났다는 소식이 들었습니다. 화재로 그는 몸의 절반 이상이 3도화 상으로 썩어가고 있었고 얼굴은 알아볼 수도 없을만큼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1년 이상 병원생활을 하면서 일곱번이나 피부이식수술을 받았습니다. 아들 철희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얼굴과 다리가 심하게 일그러지고 손가락 10개를 모두 잘라내야 했습니다. 본처가 인연을 끊고 떠나버린 불구의 남자와 그 아들, 재산마저 잿더미로 날려 정부가 주는 구호 양곡과 연료비에 목을 걸었던 이들 부자를 남편과 아들로 택한 그녀였습니다. 주변의 반대가 심했고 친정 어머니로부터는 내쫓긴 딸이 됐지만, 사랑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게 아니라고 다짐하며 새로운 가정을 꾸렸습니다.
퇴원해도 갈 곳이 없는 이들을 위해 보증금 20만원에 월세 4만원짜리 셋방을 얻고 시골에 맡겨져 있던 둘째아들을 데려왔습니다. 생선장수 백화 점종업원 화장품 외판원 파출부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4년동안 방에서만 지내던 남편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노점상 일 돕기에 나섰습니다. 철희도 6개월간 눈물겨운 연습 끝에 한 손으로도 글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그녀의 뒷 바라지로 철희는 올해 인하대 법학과를 학업 우수 장학생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사랑하나로 힘겨운 14년을 헤쳐왔다고 하였습니다.
첫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5) 순종하지 않으면(5) 첫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1)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내가 네게 임하여" (2)네 촛대를 옮기리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6:22)
교회사가들은 에베소 교회와 에베소 시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등대가 옮겨진 사실을 실제적으로 확인한다고 합니다. 즉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 주후 330년 5월 11일 신 로마를 만들고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이라 호칭하면서 대 주교의 권한이 에베소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습니다. 따라서 에베소 교회의 영광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11세기에는 감독권 마져 폐지 되었으며 1308년에는 터어키 군에 의하여 점령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오늘 날의 에베소는 볼품없는 철도와 왜소한 정거장 허름한 여관과 빈민가만 보일 뿐 바울 당시 아시아 제일의 항구도시였던 사실은 추억 속의 그림자로만 남게되었습니다.
교회는 어는 교회든 예수님이 붙들고 있습니다(1). 예베소(2:1) 서머나(2:8) 버가모(2:12) 두아디아(2:18) 사데(3:1) 빌라델비아(3:7) 라오디게아(3:14) 모두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 교회는 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큰 건물을 가진 교회나 셋방살이 교회나 만명 나오는 교회나 세명 나오는 교회나 다 주님께서 친히 붙드시고 일하십니다. 거닌다는 것은 한가하게 휴식을 취하며 구경하고 다닌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맹목적으로 서성대며 걸어다닌다는 말이 아닙니다. 쉬지 않고 계속 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진리 안에서 첫 사랑을 회복하시는 성도님이 되시기 바랍니다.
진리 안에서 사랑을 회복하는 교회/본문: 계2:1-7/김필곤목사
지난 주 오후 예배 때 회교권에서 선교하시는 정선교사님이 오셨습니다. 참 좋으신 선교사님이시데 한가지 흠이 있다면 뭘 잘 잃어 버립니다. 건강증이 심합니다. 제가 한 15년 전에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어요. 월요일날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려 강대상에 올라가니까 낯선 시계가 있어요. 설교하시고 시계를 그대로 풀어놓고 가신 것입니다. 설교하시는 날 제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넣어주기 위해 노트북 컴퓨터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방 만 가져왔어요. 알맹인 컴퓨터는 빼놓고 온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오기 전 주일에는 부산에 있는 모 교회에 설교하시러 가셨는데 설교하고 성경을 놓고 오신 것입니다. 지난 화요일 다시 컴퓨터를 가지고 저희 교회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바레인에서 사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요일 날 출국하는데 사모님께서 챙길 것을 꼼꼼히 점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소에 얼마나 건망증이 심하면 그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선교사님께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순수와 복음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정도, 부부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꼭 잃지 말아야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사랑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이 사랑을 잃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Ⅰ. 첫 사랑을 잃은 교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는 첫사랑을 잃은 교회가 되었습니다(4).
1. 에베소 교회는 첫 사랑이 있던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였습니다.(엡18:18-23; 19:1-8) 바울이 3년 동안 눈물과 희생으로 목회한 교회였습니다.(행20:17-38) 나중에 아볼로가(행18:24-) 목회하였고 디모데가 목회한 교회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목회하였습니까? 사랑도 전염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열정이 있던 사람들이 목회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뜨거운 사랑이 있었습니다. (엡1:15; 3:7; 3:18 4:2 4:15; 5:2)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이미 30여년 전에 에베소 교인들의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언급하바 있고 사랑을 권고하였습니다. 성경을 한 번 찾아 보세요. 바울과 에베소 교회 장로들이 이별하는 장면 말입니다.(행20:17,19,24,31,35,36,37)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1장 8절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아니고서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 이 참 사랑을 알게 하시고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사랑으로 그들을 뜨겁게 사랑하며 목회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랑도 전염되는 것입니다.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그 사랑이 있있습니다.
2. 그들은 이 사랑을 버렸습니다.
버렸다는 말은 배도하였다는 말입니다. 배신하였다는 말입니다. 식어졌다는 말입니다.
3. 우리는 첫사랑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최고의 덕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1-3절을 보십시오. 사랑이 없으면 방언도 천사의 말도 예언도 지식도 구제도 헌신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서기관(율법사)이 와서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크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마22:37-40)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벧후 1:7에서 그리스도인의 덕목을 말씀하면서 가장 위에 오는 덕목이 무엇입니까?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교회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교회가 개척될 때는 뜨겁게 사랑하며 생일 케익도 자르고 서로 축하해 주며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내일처럼 돌보아 줍니다. 예배도 생기가 있고 기도도 능력이 있습니다. 봉사하는 것도 기쁨이 있습니다. 왜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하면 모든 것이 힘이 들지 않습니다. 즐겁습니다. 활력이 있습니다. 똑같은 꽃을 만들더라도 사랑하는 애인에게 주기 위해 만드는 경우와 먹고살기 위해 만드는 경우는 다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사랑하니까 어떻습니까? "창 29: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칠 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더라"
"창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한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
설교들 들어도 생동감있게 듣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어떤 말씀을 주실까?하고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첫사랑을 잃으면 감격이 없습니다.
개척교회를 몇 년 한 어느 목사님의 아들이 자기 방에서 장난감 벽돌을 가지고 이것을 높이 쌓으면서 혼자 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옆에 있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쌓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벽돌을 쌓고 있는 아이를 향해서 "너 뭘 하고 있는 거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뒤돌아보면서 "쉿! 아빠 조용히 하세요. 지금 교회를 짓고 있는 겁니다."
아버지가 대견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개척교회를 하는데 얼마나 한이 맺혀 아이가 교회를 짓고 있을까?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대견하여 한 마디 더 물었습니다. "애야, 교회에서는 왜 조용히 해야 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이때에 아이가 말합니다. "아빠 참! 교회에서는 조용해야지요. 사람들이 다 잠들었으니까요. 떠들면 깨잖아요." 그러드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남편이나 아내 말을 듣는 것이 귀찮아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잔소리로 들리는 것입니다. 차라리 잠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정열이 있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하는가 귀를 기울이며 웃을 준비를 하고 기뻐할 준비를 하고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복음 송)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Ⅱ. 첫사랑을 잃은 이유(2,6)
왜 사랑이 식어 집니까? 에베소 교회는 이단과 싸우다 보니까 그랬습니다.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불평하지 않고, 단점을 보지 못하고, 이성적 판단으로 계산하지 않는 사랑을 진리를 파수하다 보니 잃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인정해 줄 정도로 진리에 서서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의심이 강하다 보면 사랑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1,2,3,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다 알고 있었습니다. 안다는 말은 성경에서 기노스코, 오이다, 에피스타마이라는 말입니다. (1)기노스코라는 말은 어떤 경험과 얻어진 지식을 통하여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창2:17, 마6:31) (2)오이다라는 말은 본래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신 절대적 전지 전능의 지식을 가리키는 동사입니다.(요13:7, 계21:7) (3)메피스타마이는 사실과 사건에 대하여 아는 전문적이고 과학적이고 기술적이고 산업적인 지식을 가리키는 동사입니다.(창47:6; 딤전6:4) 여기서 안다는 말은 하나님 만이 소유한 전지 전능으로 아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1)악한 자를 용납하지 안은 것(2) (2)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 낸 것(2) (3)참은 것(3) (4)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딘 것(3) (5)게으르지 아니 한 것(3) (6)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한 것(6) 등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약하면 그들의 행위입니다. 그 행위는 곧 수고와 인내입니다.
1. 그들은 수고의 행위로 사랑이 식어졌습니다.
성경에 보면 수고라는 말도 세 종류로 나와 있습니다. (1)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노동을 모크도스라 하고 (2)온 힘을 다하여 노동하는 것을 포노스라하며 (3)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노동과 온힘을 다하여 행한 수고의 결과로 일어나는 녹초가 될 것 같은 피곤함을 코폰이라고 합니다. 바로 여기서 말하는 수고는 코폰이라는 말로 녹초가 될 정도의 수고를 말합니다. 체험 삶의 현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마라톤을 뛰고 난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 수고한 그들의 수고는 무엇입니까?
(1)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2)입니다. 악한 자들은 에베소 교회에 현저하게 나타난 이간자로서 거짓 사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의 교리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2)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 된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2)
니골라당(6)이 있습니다. 니골라당이란 초대교회 7집사 가운데 니골라 집사(행6:5)가 타락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를 일컫는 다고 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사람의 육신은 영원히 악한 것인 데 선한 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만 믿으면 영혼은 정결케되기 때문에 육신으로는 성결한 삶을 살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것입니다.(현재의 구원파의 교리). 이에 대하여 주님도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6절) 하셨습니다.
(3)게으르지 않았습니다.(3)
2. 그들의 인내의 행위로 사랑이 식어졌습니다.
(1)오래 참았습니다.(3)
오래 참는 다는 것도 성경에서는 두가지로 쓰입니다. 어떤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는다는 말은 마크로 수미아라는 말을 쓰고 어떤 사건에 대하여 오래 참는다는 것은 후포모네라는 말을 씁니다. 여기서는 어떤 사건에 대하여 오래 참는다는 말입니다. 곧 에베소 교회는 율법주이 외식주의 , 인본주의와의 싸움에서 인내하여 승리하였습니다.
(2)견디었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온다할 지라도 참고 견디었습니다.
에베소라는 말은 욕망과 소망이라는 뜻입니다. 이 도시는 케이스터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었 상업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소 아시아의 최대의 도시로 경제적으로 풍성한 도시였고 민주정치가 발달된 도시였고, 운동경기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다이아나 신전이 있어 이방신을 숭배하는 도시였습니다. 여사제만 해도 수천명이었고 신전 청소를 위하여 수천명의 노예가 일하였다고 하니 과연 어느 정도였을 것인가를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성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부적을 팔았고 범죄자가 신전 300M 이내에 오면 살수 있었기 때문에 온갖 범죄의 소굴이 되었다 합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들은 각종 유혹으로부터 인내하고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랑이 없어졌습니다.
3. 우리는 어떤 수고를 하고 진리를 파수하기 위해 어떤 댓가를 치르고 인내한다하여도 사랑만큼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불의한 교계의 모습을 바라보고 열을 내다보면 사랑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어제 신문에 전직 목사인 분이 이혼하고 아들이 자신을 아버지라고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강금하여 죽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랑이 식어집니다. 교인들이 서로 일을 하다 보면 서로 옳은 방법을 강구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떻습니까? 사랑이 식어집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서로 바라보면서 사랑한다고 외쳐 보십시오. 만약 배우자가 오늘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면 집을 바라보고 사랑한다고 속삭여 보십시오. 부부 뿐 아니라 교회 성도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오후에 중앙공원에서 만나자고 하면 안됩니다. (바람난 모 교회 목사님의 예)
옛날 교회가 핍박받을 때 하드리안 황제가 크리스천이라는 이상한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라고 아리스티데스라는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었습니다. 크리스천들의 행동을 본 아리스티데스는 보고서를 황제에게 제출했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서로 사랑합니다.” 오늘 우리를 보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보십시오! 저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비!”, “봐라! 저들이 서로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봐라! 저들이 서로를 얼마나 비판하는지!”, “봐라! 저들이 서로 어떻게 싸우는지!”이런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프랜시스 쉐퍼는 그의 저서「20세기말의 교회」에서 “교회는 죽어가는 문화 속에서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 거듭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세상에 주고 있는데 그 기준은 사랑하는냐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서로 상처받고 마음 상하고 신앙을 잃으면 안됩니다. 무디지에는 소개하는 교회를 분열시키고 망하게 하는 10가지 대표적인 사례를 실었습니다. ①교회 내 특정 교인의 요구 사항에만 철저하게 초점을 맞춰라 ②교회 안에 떠도는 모든 소문과 비평을 다 귀담아 들어라 ③목회자의 약점만 찾아내 이야기 하라 ④사랑 안에서 결코 참된 것을 말하지 말라 ⑤불평 불만의 씨를 마음 속 깊이 간직해 두라 ⑥남을 용서하되 오직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는 자만 용서하라 ⑦자신의 죄는 덮어두고 위선으로 가장하라 ⑧공중기도 시간을 통하여 교회에 대한 불만을 다 토해내라 ⑨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항상 이기기에 힘써라 ⑩하나님이 당신에게 교회를 분열시키라는 사명을 주셨다고 믿고 행하라. 교회는 이렇게 되면 않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만족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책임감 때문에 신앙생활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인내는 짜증만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런 인내는 화목하게 하는 힘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예배, 지루할뿐입니다. 설교도 찬송도 길게만 느껴질 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봉사, 지겨울뿐입니다. 예배니 인내니 봉사니 충성이니..얼마나 중요한 신앙행위들입니까?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신앙행위가 될 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겉보기에는 그럴듯 해도 그 안에 들어가 보면 형식과 원망과 피곤과 짜증과 불평뿐이요 피차의 저주와 정죄와 아집과 교만만 남을 뿐입니다.
직분을 맡아 봉사하든 가정에서 집안 일을 하든 회사에서 일을 하든 그 모든 것은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단과 싸우는 것도 진리를 파수하는 것도 목숨을 다하여 수고하는 것도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심리학의 태두로 불리는 프로이트에게 어느날 누군가가 물었다."선생님 노이로제 증세가 없는 건전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이 물음에 프로이트는 대답하기를 "노이로제 증세가 없는 건전한 사람이란 바로 사랑할수 있고 일할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무신론자인 그도 이렇게 사랑을 강조하였습니다. 건전한 신앙이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사랑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대하여 "첫째, 사랑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둘째, 사랑은 존경하는 것이며 셋째, 사랑은 이해하고 넷째, 사랑은 책임을 진고 다섯째, 사랑은 주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는 사랑에 대하여 이보다 더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Ⅲ. 첫사랑의 회복
첫 사랑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5)
1. 어디서 떨어졌는가를 생각하고 항상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현재 떨어져 있는 것을 계속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라는 것입니다.
2.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잘못된 길에서 180도 돌려 바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3.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첫사랑을 회복하여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처음 사람을 되찾을려면 3단계의 명령을 준수해야 합니다. 첫째는 어디에서 떨어졌는가를 계속 생각하는 것이고 2단계는 회계를 시작하는 것이며 3단계는 실천하는 것입니다. (탕자 눅15:17-32)
4. 첫사랑을 회복합시다.
첫사랑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진리를 파수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파수한다고 사랑을 잃어버리고 뼈만 남은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진리 없는 사랑 역시 궤도를 잃은 기차와 같지만 사랑없는 진리는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회복하는 가정 사랑을 회복하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누가 교회에 들어와도 사랑이 넘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실패한 베드로에게 오셔서 회복해 주시는 것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부인할 때 숯불이 보입니다.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세 번 물어 봅니다. 처음 고기를 잡을 때 그를 불렀습니다. 똑같은 현장입니다. 요21:15,16,17을 보십시오. 내가 처음 아내와 남편과 결혼할 때의 상황으로 돌아 가보십시오. 처음 예수님을 믿고 감격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잃은 것이 많습니까? 얻은 것이 훨씬 많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갖가지 기적을 체험했고, 교훈을 받았고 무식한 어부이지만 한 때 대장노릇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순간 예수님이 자신의 마음대로 해주지 않고 돌아가시니까 그 큰 사랑을 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잘해주다가도 한 순간 내마음대로 안되면 사랑을 버리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내 사랑을 잃었는가를 진단해야 합니다.
장애인 부자를 14년 동안 돌본 엄연호씨 기사를 읽어 보았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역 회사에 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세관에 자주 가야 했는데 절차가 까다롭고 불친절해 죽기만큼 싫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지금의 남편이 일을 처리해줬는데 다른 담당자들과는 달리 친절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자상하게 대해 주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첫 사랑이 었습니다. 그녀는 혼자 사랑을 키웠지만 알고보니 유부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입술을 깨물며 그를 잊었습니다. 그리고 6년이 흐른 후 그 남자가 사고를 당했고 아내마저 떠났다는 소식이 들었습니다. 화재로 그는 몸의 절반 이상이 3도화 상으로 썩어가고 있었고 얼굴은 알아볼 수도 없을만큼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1년 이상 병원생활을 하면서 일곱번이나 피부이식수술을 받았습니다. 아들 철희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얼굴과 다리가 심하게 일그러지고 손가락 10개를 모두 잘라내야 했습니다. 본처가 인연을 끊고 떠나버린 불구의 남자와 그 아들, 재산마저 잿더미로 날려 정부가 주는 구호 양곡과 연료비에 목을 걸었던 이들 부자를 남편과 아들로 택한 그녀였습니다. 주변의 반대가 심했고 친정 어머니로부터는 내쫓긴 딸이 됐지만, 사랑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게 아니라고 다짐하며 새로운 가정을 꾸렸습니다.
퇴원해도 갈 곳이 없는 이들을 위해 보증금 20만원에 월세 4만원짜리 셋방을 얻고 시골에 맡겨져 있던 둘째아들을 데려왔습니다. 생선장수 백화 점종업원 화장품 외판원 파출부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4년동안 방에서만 지내던 남편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노점상 일 돕기에 나섰습니다. 철희도 6개월간 눈물겨운 연습 끝에 한 손으로도 글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그녀의 뒷 바라지로 철희는 올해 인하대 법학과를 학업 우수 장학생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사랑하나로 힘겨운 14년을 헤쳐왔다고 하였습니다.
첫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5) 순종하지 않으면(5) 첫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1)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내가 네게 임하여" (2)네 촛대를 옮기리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6:22)
교회사가들은 에베소 교회와 에베소 시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등대가 옮겨진 사실을 실제적으로 확인한다고 합니다. 즉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 주후 330년 5월 11일 신 로마를 만들고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이라 호칭하면서 대 주교의 권한이 에베소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습니다. 따라서 에베소 교회의 영광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11세기에는 감독권 마져 폐지 되었으며 1308년에는 터어키 군에 의하여 점령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오늘 날의 에베소는 볼품없는 철도와 왜소한 정거장 허름한 여관과 빈민가만 보일 뿐 바울 당시 아시아 제일의 항구도시였던 사실은 추억 속의 그림자로만 남게되었습니다.
교회는 어는 교회든 예수님이 붙들고 있습니다(1). 예베소(2:1) 서머나(2:8) 버가모(2:12) 두아디아(2:18) 사데(3:1) 빌라델비아(3:7) 라오디게아(3:14) 모두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 교회는 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큰 건물을 가진 교회나 셋방살이 교회나 만명 나오는 교회나 세명 나오는 교회나 다 주님께서 친히 붙드시고 일하십니다. 거닌다는 것은 한가하게 휴식을 취하며 구경하고 다닌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맹목적으로 서성대며 걸어다닌다는 말이 아닙니다. 쉬지 않고 계속 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진리 안에서 첫 사랑을 회복하시는 성도님이 되시기 바랍니다.
진리 안에서 사랑을 회복하는 교회/본문: 계2:1-7/김필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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