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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마25:2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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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2002.10.30
얼마 전 아들이 수능시험을 본 어느 어머니에 대한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시험이 끝났는데 집이 초상집처럼 변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밥을 먹지 않고 집에 누워 있고 아들은 아들대로 자책감에 시달려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시험을 못보았으면 그랬을까 생각했는데 시험 점수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385개가 나왔는데 390 이상 점수가 나오지 않아서 온 집안이 초상집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를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사장이 직원에게, 직원이 사장에게, 친구에게, 형제에게 기대를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 대하여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Ⅰ. 하나님은 우리에 대하여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 아담을 만들어 놓고서부터 기대를 표명했습니다. 아담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진 기대입니다.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생물들을 다스리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동물의 종이되고 실물을 섬기고 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을 원치않고 그것들을 통제하며 만물의 영장으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믿음의 조상으로, 모세를 부르실 때 민족의 지도자로, 이사야를 부르실 때 백성을 회개시키는 선지자로, 베드로를 부르실 때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사울을 부르실 때 이방인과 임금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기대를 가지고 부르셨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은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지고 계시는 기대는 어떤 기대입니까? 수능 390점 못받았다고 누워 계시는 부모와 같은 기대는 아닙니다.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능을 주고 그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기대를 하십니다.
대부분 우리 부모가 자녀에 대하여 기대를 가질 때 어떤 조건으로 기대를 가집니까? 무작정 너는 수능 시험 390점 마져야 한다라고 생각합니까? 무조건 너는 의사가 되어야 하고 너는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기대를 가집니까?
기대는 우선 그 사람을 아는 정보에 의해서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아이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등등 앎에 의해 기대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평판을 통해, 과거의 경력, 기록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통해 기대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상대에 대한 앎의 정도가 기대를 크게 할 수도 있고 작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잘 못 알면 빗나간 기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 대하여 정확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운동을 해야 할 사람인지? 공부를 해야할 사람인지? 목사가 되어야 할 사람인지? 공무원이 되어야 할 사람인지 아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고 기대하십니다.(15) 소유를 맡깁니다.(14) 재능대로라는 말은자기의 힘이나 능력에 따라, 주인이 종들의 능력을 잘 알고 능력을 바르게 평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재능은 무한한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1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으로 1달란트를 벌기 위해서는 일반노동자가 20년 동안 일을 해야 합니다. 달란트 즉 재주 재능, 선천적인 재능과 특별한 소질, 천국을 위하여 쓰여야 할 은사,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지혜와 기회 등을 주시고 기대하십니다. 그런데 이 재능은 아주 많이 주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가장 적게 받은 사람도 일달란트입니다.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우리에게 많은 재능을 주시고 기대하십니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유익이 아니라 우리의 유익을 위해 기대했습니다.
주인이 돈을 벌어 부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 그것으로 말미암아 더 많은 것을 받고 즐거운 잔치에 참여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장의 문을 열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3)현재적 관점이 아니라 미래적 관점으로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
주고 떠나는 것입니다. 결국 미래에 평가하는 것입니다.
4)일률적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개인의 수준에 맞게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1달란트 맡은 자와 두달란트 맡은 자와 다섯달란트 맡은 자에게 거는 기대가 다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달란트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 어떤 기대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까? 연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대에 못미쳤다고 우리를 포기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Ⅱ. 하나님의 기대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기대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대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기대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기대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기대에 대하여 대조적인 반응을 볼 수가 있습니다.
1. 우리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1)먼저 기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입니다.
(1)다섯달란트, 두달란트 맡은 자는 달란트를 받았을 때 주인을 위해 이익을 남기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2)그러나 한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①자신이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면 자기의 것이 아니라 주인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주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을 맡겼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24)"라고 말씀합니다. 굳은 사람이라는 말은 완고하고 거칠다는 말입니다. 눅19:21절에는 엄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노동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완고한 수전노같은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주인을 악한 인격자로 몰아부쳐 자신의 불성실에 대한 핑계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의 선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음으로라고 말합니다. 여전히 자신의 나태함을 변명하기 위해 주인은 인색하고 탐욕많은 구두쇠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며 투자에도 매우 인색하고 일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노동력과 재산을 착취하려는 파렴치한 인물로 매도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가 장사하면 자기에게 이익이 없고 주인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②실패하면 엄하게 책망할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두려워 하였다고 합니다. 혹 장사하여 실패하면 책임이 전적으로 자기에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기대한 만큼 현실이 따라주지 않으면 먼저 나타나는 반응은 실망입니다. 실망은 기대가 크면 큰 만큼 크게 나타납니다. 그 다음으로 오는 감정은 비관입니다. 실망은 계속되면서 기대치나 현실도 변화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비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비관의 단계가 계속되면 결국 환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단계에 오면 더 이상 거짓된 현실감을 갖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개는 그 현실을 싫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현실에 대하여 희망하던 기대가 공허함을 깨닫고 자기 무능력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포자기해 버립니다. 기대가 가장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두 번이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책망하고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비전을 주십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였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를 저주하며 버렸습니까? 오히려 베고픈 베드로에게 고기를 주면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어 보십니다. 그리고 내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다시 사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를 위해 살다가 실패할 때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위로하시는 분이시고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달란트를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착취자가 아니시고 우리를 괴롭히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서기를 원하십니다.
옥수수의 대가 김순권 박사가 있습니다. 이분은 가난한 농촌에서 자랐습니다. 너무 가난하여 미래가 암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골 교회에 나가 희망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발견하였습니다. 공부하여 장학생으로 대학을 다니고 하와이로 유학을 갔습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식량난을 해소해 주었습니다. 위대한 한국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 대하여 기대하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기대에 부흥하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기대를 이루워 드릴까요?
1) 게으른 종이 되지 말고 부지런한 종이 되어야 합니다.
두달란트 다섯달란트 맡은 자는 그 달란트를 맡자 어떻게 합니까?(16,17) 바로 장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맡은 자는 어떻게 합니까?(18) 땅을 파고 돈을 감추어 둡니다. 그것이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주인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부지런하지 않고는 해낼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습니다. 도둑놈도 부지런해야 잘 먹고 잘 삽니다. 열정을 가지고 부지런한 사람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게으름은 바람직하지 않는 상태 정도가 아닙니다. 죄악입니다. 자신도 망치고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도 망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초대교회 그리고 중세기를 거치는 동안에 일곱 가지 대표적인 큰 죄악을 말할 때 게으름을 포함 시켰습니다. 본래 의미는 "돌보지 않음"입니다. 무책임하고 무관심하다는 말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기뻐하기도 싫어 하고 흥분하기기도 감격하기도 싫어 합니다. 의욕이 없습니다. 엘리 제사장처럼 자녀를 방치합니다. 게으름은 죄악이고 게으름음은 습관이고 근본적으로는 사명감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명감이 있는 사람은 게으를 수가 없습니다. 이 일이 하나님께서 맡겨준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이 내가 이 땅에 태어나 해야할 일이고 이것이 내가 이루워 놓고 죽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게으르겠습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게으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잠 12:27)"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하느니라 (잠 19:2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잠 12:24)"
2) 악한 종이 되지 말고 착한 종이 되어야 합니다.
돌아온 주인은 두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맡은 사람을 평가할 때 어떻게 말씀합니까?(21) 착한 종이라고 말씀합니다. 한달란트 맡은 자는 26절에 악한 종이라고 말씀합니다. 착하다는 말은 올바름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악하고 선하다는 기준이 무엇이겠습니까? 상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윤리 도덕 규범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무엇이겠습니까? 주인의 의도를 알아 주인이 원하는데로 하면 그것이 선한 것이고 주의의 의도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위대하고 화려한 일을 했더라도 그것은 선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가 있습니다. 명예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아름다움일 수도 있고 지혜일 수도 있고 뛰어난 기능일 수도 있고 직분일 수도 있고 맡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주신 분의 의도에 따라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열심히 일을 하기는 하되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악한 일을 해면 사회에도 가정에도 하나님 나라에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앞으로 미래 사회가 변화된다고 합니다. 21세기에는 인공 자궁에 의해 아이가 출산되고 남자의 장기에 임신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300세까지 갈 수 있다고 합니다. 텔레파시로 두뇌와 컴퓨터가 의사 소통을 한다고 합니다. 2012년에는 휴대용 자동 음성 통역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공부하지 않아도 옆에 차고다니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20년이면 암을 정복한다고 합니다. 2022년이면 일반인도 우주 여행을 한다고 합니다. 50년내에 인공 지능 로봇이 등장하여 기후도 조절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뜻에 맡아야 합니다. 이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도대로 되어가야 인류는 행복한 것이지 그렇지 못하면 파멸에 처하고 말것입니다. 부지런 함이 좋다고 도둑질에 열심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달리기 연습을 한다고 최선을 향해 절벽으로 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열심을 다해 아무리 돈을 벌고 명예를 얻는다고 그것이 방향이 잘못되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43)나 CNN방송 설립자 테드 터너(58)는 부자입니다. 빌 게이츠는 최근 소아마비 퇴치기금으로 6백억원을 세계보건기구에 쾌척했고 테드 터너는 유엔에 매년 1조2천 억원씩 기부금을 내고 있다고합니다. 원래 자선에 관심이 없던 게이츠에게 구제의 기쁨을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터너였다고 합니다. 3년전, 터너는 사업에만 몰입하던 게이츠를향해 충고를 던졌답니다. "너무 많은 돈을 은행에 예금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지.그돈으로 남을 돕는다면 인생이 훨씬 풍요로울텐데…”
게이츠는 이 말에 감동을 받아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돈도 중요하고 명예도 중요하고 지식도 건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를 위해 쓰이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좋은 머리로 무기를 만들은 인류를 죽인다면 그 재능은 필요 없은 해악에 불과합니다.
3) 불충한 종이 되지 말라고 충성스런 종이 되어야 합니다.
충이라는 말은 한자어로 가중데 중에 마음 심자입니다. 중심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주인이 없을 때도 마음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주인이 없을 때 문제입니다. 충성스럽지 못한 사람은 주인이 없을 때 성실하지 못합니다. 신뢰하고 맡겨준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한결같아야 합니다. 처음이나 나중이나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잘 될 때나 잘못될 때나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주인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것입니다. 주인에게 충성된 종을 만나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잘하였도다는 우수하다 훌륭하다는 말로 지난 날의 노력에 대하여 주인의 만족과 인정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충성되다는 말은 신실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자기 맡은 바 사명에 충실한 종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충성된자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충성된 자를 만나 함께 일한 다는 것은 참으로 큰 복같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은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잠 20:6)"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딤후 2:2)"
충성하기는 충성하되 작은 일에 충성하여야 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지 못한 자는 큰 일에도 충성하기 힘이 드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께서 지금 하라고 시키신 작은 일에 충성한다면 앞으로는 보다 큰 일을 맡을 수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갭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눅16:10-11)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눅19:17).
헨리 나우웬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하버드 대학 교수였습니다. 보수도 좋습니다. 명예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신 지체아를 돌보기 위해 떠납니다. 제자들이 물어 봅니다. 왜 그 좋은 것을 버리고 정신지체아들과 지내냐고요. 그분은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동안 성공과 인기라는 이름의 꼭대기를 향해 오르막길을 달렸습니다. 그리고 한 장애인을 만나 내리막 길을 가고 있습니다. 오르막 길에서는 나만 보였지만 내리막 길에서는 그리스도를 보았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주인은 떠나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성합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아주 덕망이 높은 부자였는데 환갑이 돼서 잔치를 했다는 겁니다. 옛날은 이런 잔치를 하면 한 일주일 동안 하거든요. 마당에다가 천막을 쳐 놓고, 그리고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대접하면서 굉장한 잔치를 하게 되는데, 환갑잔치 바로 전날 저녁에 주인은 종들을 다 불러놓고 모든 종들에게 짚 한 단씩을 주고 "이 한 단의 짚을 가지고 오늘 밤새 여기 앉아서 새끼를 꽈라. 새끼를 꼬는데 가장 가늘게 길게, 가늘게 길게 꽈라." 이렇게 얘기하고 나가 버렸습니다. 종들은 불평이 많았습니다. "이 영감이 우리를 부려먹다가 환갑 잔치하는 날까지 이렇게 우리를 부려먹다니, 그것도 이걸 가늘게 꼬려면 밤새 꽈야할 모양인데 이럴 수가 있나!" 그래서는 불만에 있어서 굵게굵게 그냥 꽈서 몇 미터 되게 꽈 가지고 내던지고 잠을 자더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중에 한 종은 "그런게 아니지. 꼬라면 꼬는 거지 무슨 말이 많아. 그래서 종이 새끼 꼬는 거 당연한 것이지." 그래서, 주인의 명령대로 가늘게 가늘게, 길게 길게 꼬았단 말입니다. 아침에 주인이 나타나 가지고 그 종들을 다 불러서 "이리 오너라." 그리고, 광 문을 열고, 창고 문을 열고 "자 여기 있는 엽전, 마음대로 끼워 가지고 네가 꿸 수 있는데 까지 다 꿰어 가지고 가라. 오늘부터 너희들은 자유다." 그랬대요. 아 이거 굵게 꼰 사람들은 거기다가 몇 개 이렇게 꽂아 놓고 가슴을 치게 됐고, 이 가늘게 꼰 사람들은 한나절 꽂는 겁니다. 바리바리 싣고 집을 나가서 처자식 다 얻고 잘 살다 죽었답니다.
Ⅲ. 결국 하나님의 평가의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1. 부지런한 종은
1)더 많은 것을 맡게 됩니다(21,2328). 우리가 성실히 감당하면 하나님께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것들을 더 주십니다.
2)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여라고 합니다(21,23).
두 달란트 받는 사람도 동일합니다.
2. 게으른 종은
1)있는 것도 빼앗깁니다.(28)
2)이를 갈며 통곡하게 됩니다.(30)
결국 종으로 추방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 우리의 건강, 지혜, 물질, 재능 등을 묻어 두지 맙시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날이 옵니다. 이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자포자기하면서 슬퍼하지 맙시다. 일어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바라보며 이제 게으른 종이 되지 말고 부지런한 종이 됩시다. 악한 종이 되지 말고 착한 종이 되어 시대의 등불을 밝힙시다. 불충한 종이 되지 말라고 충성스런 종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드립시다.
기대와 평가/마태복음 25:21-30/김필곤 목사
얼마 전 아들이 수능시험을 본 어느 어머니에 대한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시험이 끝났는데 집이 초상집처럼 변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밥을 먹지 않고 집에 누워 있고 아들은 아들대로 자책감에 시달려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시험을 못보았으면 그랬을까 생각했는데 시험 점수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385개가 나왔는데 390 이상 점수가 나오지 않아서 온 집안이 초상집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를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사장이 직원에게, 직원이 사장에게, 친구에게, 형제에게 기대를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 대하여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Ⅰ. 하나님은 우리에 대하여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 아담을 만들어 놓고서부터 기대를 표명했습니다. 아담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진 기대입니다.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생물들을 다스리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동물의 종이되고 실물을 섬기고 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을 원치않고 그것들을 통제하며 만물의 영장으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믿음의 조상으로, 모세를 부르실 때 민족의 지도자로, 이사야를 부르실 때 백성을 회개시키는 선지자로, 베드로를 부르실 때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사울을 부르실 때 이방인과 임금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기대를 가지고 부르셨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은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지고 계시는 기대는 어떤 기대입니까? 수능 390점 못받았다고 누워 계시는 부모와 같은 기대는 아닙니다.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능을 주고 그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기대를 하십니다.
대부분 우리 부모가 자녀에 대하여 기대를 가질 때 어떤 조건으로 기대를 가집니까? 무작정 너는 수능 시험 390점 마져야 한다라고 생각합니까? 무조건 너는 의사가 되어야 하고 너는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기대를 가집니까?
기대는 우선 그 사람을 아는 정보에 의해서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아이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등등 앎에 의해 기대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평판을 통해, 과거의 경력, 기록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통해 기대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상대에 대한 앎의 정도가 기대를 크게 할 수도 있고 작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잘 못 알면 빗나간 기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 대하여 정확한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운동을 해야 할 사람인지? 공부를 해야할 사람인지? 목사가 되어야 할 사람인지? 공무원이 되어야 할 사람인지 아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고 기대하십니다.(15) 소유를 맡깁니다.(14) 재능대로라는 말은자기의 힘이나 능력에 따라, 주인이 종들의 능력을 잘 알고 능력을 바르게 평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재능은 무한한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1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으로 1달란트를 벌기 위해서는 일반노동자가 20년 동안 일을 해야 합니다. 달란트 즉 재주 재능, 선천적인 재능과 특별한 소질, 천국을 위하여 쓰여야 할 은사,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지혜와 기회 등을 주시고 기대하십니다. 그런데 이 재능은 아주 많이 주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가장 적게 받은 사람도 일달란트입니다.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우리에게 많은 재능을 주시고 기대하십니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유익이 아니라 우리의 유익을 위해 기대했습니다.
주인이 돈을 벌어 부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 그것으로 말미암아 더 많은 것을 받고 즐거운 잔치에 참여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장의 문을 열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3)현재적 관점이 아니라 미래적 관점으로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
주고 떠나는 것입니다. 결국 미래에 평가하는 것입니다.
4)일률적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개인의 수준에 맞게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1달란트 맡은 자와 두달란트 맡은 자와 다섯달란트 맡은 자에게 거는 기대가 다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달란트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 어떤 기대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까? 연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대에 못미쳤다고 우리를 포기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Ⅱ. 하나님의 기대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기대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대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기대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기대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기대에 대하여 대조적인 반응을 볼 수가 있습니다.
1. 우리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1)먼저 기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입니다.
(1)다섯달란트, 두달란트 맡은 자는 달란트를 받았을 때 주인을 위해 이익을 남기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2)그러나 한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①자신이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면 자기의 것이 아니라 주인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주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을 맡겼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24)"라고 말씀합니다. 굳은 사람이라는 말은 완고하고 거칠다는 말입니다. 눅19:21절에는 엄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노동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완고한 수전노같은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주인을 악한 인격자로 몰아부쳐 자신의 불성실에 대한 핑계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의 선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음으로라고 말합니다. 여전히 자신의 나태함을 변명하기 위해 주인은 인색하고 탐욕많은 구두쇠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며 투자에도 매우 인색하고 일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노동력과 재산을 착취하려는 파렴치한 인물로 매도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가 장사하면 자기에게 이익이 없고 주인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②실패하면 엄하게 책망할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두려워 하였다고 합니다. 혹 장사하여 실패하면 책임이 전적으로 자기에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기대한 만큼 현실이 따라주지 않으면 먼저 나타나는 반응은 실망입니다. 실망은 기대가 크면 큰 만큼 크게 나타납니다. 그 다음으로 오는 감정은 비관입니다. 실망은 계속되면서 기대치나 현실도 변화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비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비관의 단계가 계속되면 결국 환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단계에 오면 더 이상 거짓된 현실감을 갖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개는 그 현실을 싫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현실에 대하여 희망하던 기대가 공허함을 깨닫고 자기 무능력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포자기해 버립니다. 기대가 가장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두 번이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책망하고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비전을 주십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였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를 저주하며 버렸습니까? 오히려 베고픈 베드로에게 고기를 주면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어 보십니다. 그리고 내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다시 사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를 위해 살다가 실패할 때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위로하시는 분이시고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달란트를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착취자가 아니시고 우리를 괴롭히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서기를 원하십니다.
옥수수의 대가 김순권 박사가 있습니다. 이분은 가난한 농촌에서 자랐습니다. 너무 가난하여 미래가 암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골 교회에 나가 희망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발견하였습니다. 공부하여 장학생으로 대학을 다니고 하와이로 유학을 갔습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식량난을 해소해 주었습니다. 위대한 한국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 대하여 기대하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기대에 부흥하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기대를 이루워 드릴까요?
1) 게으른 종이 되지 말고 부지런한 종이 되어야 합니다.
두달란트 다섯달란트 맡은 자는 그 달란트를 맡자 어떻게 합니까?(16,17) 바로 장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맡은 자는 어떻게 합니까?(18) 땅을 파고 돈을 감추어 둡니다. 그것이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주인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부지런하지 않고는 해낼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습니다. 도둑놈도 부지런해야 잘 먹고 잘 삽니다. 열정을 가지고 부지런한 사람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게으름은 바람직하지 않는 상태 정도가 아닙니다. 죄악입니다. 자신도 망치고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도 망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초대교회 그리고 중세기를 거치는 동안에 일곱 가지 대표적인 큰 죄악을 말할 때 게으름을 포함 시켰습니다. 본래 의미는 "돌보지 않음"입니다. 무책임하고 무관심하다는 말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기뻐하기도 싫어 하고 흥분하기기도 감격하기도 싫어 합니다. 의욕이 없습니다. 엘리 제사장처럼 자녀를 방치합니다. 게으름은 죄악이고 게으름음은 습관이고 근본적으로는 사명감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명감이 있는 사람은 게으를 수가 없습니다. 이 일이 하나님께서 맡겨준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이 내가 이 땅에 태어나 해야할 일이고 이것이 내가 이루워 놓고 죽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게으르겠습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게으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잠 12:27)"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하느니라 (잠 19:2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잠 12:24)"
2) 악한 종이 되지 말고 착한 종이 되어야 합니다.
돌아온 주인은 두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맡은 사람을 평가할 때 어떻게 말씀합니까?(21) 착한 종이라고 말씀합니다. 한달란트 맡은 자는 26절에 악한 종이라고 말씀합니다. 착하다는 말은 올바름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악하고 선하다는 기준이 무엇이겠습니까? 상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윤리 도덕 규범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무엇이겠습니까? 주인의 의도를 알아 주인이 원하는데로 하면 그것이 선한 것이고 주의의 의도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위대하고 화려한 일을 했더라도 그것은 선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가 있습니다. 명예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아름다움일 수도 있고 지혜일 수도 있고 뛰어난 기능일 수도 있고 직분일 수도 있고 맡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주신 분의 의도에 따라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열심히 일을 하기는 하되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악한 일을 해면 사회에도 가정에도 하나님 나라에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앞으로 미래 사회가 변화된다고 합니다. 21세기에는 인공 자궁에 의해 아이가 출산되고 남자의 장기에 임신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300세까지 갈 수 있다고 합니다. 텔레파시로 두뇌와 컴퓨터가 의사 소통을 한다고 합니다. 2012년에는 휴대용 자동 음성 통역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공부하지 않아도 옆에 차고다니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20년이면 암을 정복한다고 합니다. 2022년이면 일반인도 우주 여행을 한다고 합니다. 50년내에 인공 지능 로봇이 등장하여 기후도 조절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뜻에 맡아야 합니다. 이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도대로 되어가야 인류는 행복한 것이지 그렇지 못하면 파멸에 처하고 말것입니다. 부지런 함이 좋다고 도둑질에 열심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달리기 연습을 한다고 최선을 향해 절벽으로 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열심을 다해 아무리 돈을 벌고 명예를 얻는다고 그것이 방향이 잘못되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43)나 CNN방송 설립자 테드 터너(58)는 부자입니다. 빌 게이츠는 최근 소아마비 퇴치기금으로 6백억원을 세계보건기구에 쾌척했고 테드 터너는 유엔에 매년 1조2천 억원씩 기부금을 내고 있다고합니다. 원래 자선에 관심이 없던 게이츠에게 구제의 기쁨을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터너였다고 합니다. 3년전, 터너는 사업에만 몰입하던 게이츠를향해 충고를 던졌답니다. "너무 많은 돈을 은행에 예금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지.그돈으로 남을 돕는다면 인생이 훨씬 풍요로울텐데…”
게이츠는 이 말에 감동을 받아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돈도 중요하고 명예도 중요하고 지식도 건강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를 위해 쓰이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좋은 머리로 무기를 만들은 인류를 죽인다면 그 재능은 필요 없은 해악에 불과합니다.
3) 불충한 종이 되지 말라고 충성스런 종이 되어야 합니다.
충이라는 말은 한자어로 가중데 중에 마음 심자입니다. 중심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주인이 없을 때도 마음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주인이 없을 때 문제입니다. 충성스럽지 못한 사람은 주인이 없을 때 성실하지 못합니다. 신뢰하고 맡겨준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한결같아야 합니다. 처음이나 나중이나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잘 될 때나 잘못될 때나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주인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것입니다. 주인에게 충성된 종을 만나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잘하였도다는 우수하다 훌륭하다는 말로 지난 날의 노력에 대하여 주인의 만족과 인정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충성되다는 말은 신실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자기 맡은 바 사명에 충실한 종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충성된자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충성된 자를 만나 함께 일한 다는 것은 참으로 큰 복같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은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잠 20:6)"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딤후 2:2)"
충성하기는 충성하되 작은 일에 충성하여야 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지 못한 자는 큰 일에도 충성하기 힘이 드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께서 지금 하라고 시키신 작은 일에 충성한다면 앞으로는 보다 큰 일을 맡을 수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갭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눅16:10-11)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눅19:17).
헨리 나우웬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하버드 대학 교수였습니다. 보수도 좋습니다. 명예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신 지체아를 돌보기 위해 떠납니다. 제자들이 물어 봅니다. 왜 그 좋은 것을 버리고 정신지체아들과 지내냐고요. 그분은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동안 성공과 인기라는 이름의 꼭대기를 향해 오르막길을 달렸습니다. 그리고 한 장애인을 만나 내리막 길을 가고 있습니다. 오르막 길에서는 나만 보였지만 내리막 길에서는 그리스도를 보았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주인은 떠나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성합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아주 덕망이 높은 부자였는데 환갑이 돼서 잔치를 했다는 겁니다. 옛날은 이런 잔치를 하면 한 일주일 동안 하거든요. 마당에다가 천막을 쳐 놓고, 그리고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대접하면서 굉장한 잔치를 하게 되는데, 환갑잔치 바로 전날 저녁에 주인은 종들을 다 불러놓고 모든 종들에게 짚 한 단씩을 주고 "이 한 단의 짚을 가지고 오늘 밤새 여기 앉아서 새끼를 꽈라. 새끼를 꼬는데 가장 가늘게 길게, 가늘게 길게 꽈라." 이렇게 얘기하고 나가 버렸습니다. 종들은 불평이 많았습니다. "이 영감이 우리를 부려먹다가 환갑 잔치하는 날까지 이렇게 우리를 부려먹다니, 그것도 이걸 가늘게 꼬려면 밤새 꽈야할 모양인데 이럴 수가 있나!" 그래서는 불만에 있어서 굵게굵게 그냥 꽈서 몇 미터 되게 꽈 가지고 내던지고 잠을 자더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중에 한 종은 "그런게 아니지. 꼬라면 꼬는 거지 무슨 말이 많아. 그래서 종이 새끼 꼬는 거 당연한 것이지." 그래서, 주인의 명령대로 가늘게 가늘게, 길게 길게 꼬았단 말입니다. 아침에 주인이 나타나 가지고 그 종들을 다 불러서 "이리 오너라." 그리고, 광 문을 열고, 창고 문을 열고 "자 여기 있는 엽전, 마음대로 끼워 가지고 네가 꿸 수 있는데 까지 다 꿰어 가지고 가라. 오늘부터 너희들은 자유다." 그랬대요. 아 이거 굵게 꼰 사람들은 거기다가 몇 개 이렇게 꽂아 놓고 가슴을 치게 됐고, 이 가늘게 꼰 사람들은 한나절 꽂는 겁니다. 바리바리 싣고 집을 나가서 처자식 다 얻고 잘 살다 죽었답니다.
Ⅲ. 결국 하나님의 평가의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1. 부지런한 종은
1)더 많은 것을 맡게 됩니다(21,2328). 우리가 성실히 감당하면 하나님께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것들을 더 주십니다.
2)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여라고 합니다(21,23).
두 달란트 받는 사람도 동일합니다.
2. 게으른 종은
1)있는 것도 빼앗깁니다.(28)
2)이를 갈며 통곡하게 됩니다.(30)
결국 종으로 추방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 우리의 건강, 지혜, 물질, 재능 등을 묻어 두지 맙시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날이 옵니다. 이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자포자기하면서 슬퍼하지 맙시다. 일어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바라보며 이제 게으른 종이 되지 말고 부지런한 종이 됩시다. 악한 종이 되지 말고 착한 종이 되어 시대의 등불을 밝힙시다. 불충한 종이 되지 말라고 충성스런 종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드립시다.
기대와 평가/마태복음 25:21-30/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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