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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5:1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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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7년 3월 25일 주일 2부설교 |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긍정만이 사는 길이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봄은 긍정의 계절입니다. 겨울 동안 산불로 타버린 언덕, 눈사태로 무너진 곳, 얼어붙었던 강산에 다시 따뜻한 생명의 손길이 나타나 모든 것을 용서하고, 무너진 과거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생명의 푸름과 꽃동산을 만들어 가는 계절입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겨울을 지나면서 낭패를 당하고 상처를 입고 잃어버리고 절망한 삶을 그대로 방치하면 인생이 폐허가 되고 맙지요. 그러나 예수님 십자가 밑에 나아와 울며 과거를 용서받고 용서하고 잊어버리고 훨훨 털고 일어나서 내일의 꿈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이 바로 긍정의 삶인 것입니다. 이 긍정의 삶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이 탕자의 삶인 것입니다. 탕자는 큰 농사를 짓는 부자농부의 둘째 아들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탐욕이 들어와서 자기가 나이가 이르지도 못한데 아버지의 상속을 강요했습니다. 옛날에는 맏아들은 아버지가 죽을 때 3분의 2의 재산을 가져가고 둘째 아들에게는 3분의 1을 줍니다. 그 3분의 1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하도 강청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 많은 재산 중 3분의 1을 둘째 아들에게 주니 이를 다 청산해서 먼 나라로 가서 아주 호의호식하고 허랑방탕하게 살아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나라의 큰 흉년이 들어오자 호구지책을 세울 수가 없어서 직장을 구하러 다니다가 돼지를 치는 회사에 사원으로 채용이 되었는데 그 회사에서 시골에 보내어 돼지농장에서 일을 하게 했는데 너무나 월급이 작아서 먹고 살수가 없습니다.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고 추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돼지우리에서 같이 살면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려고 해도 돼지들이 그것을 충분히 주지도 않습니다. 그는 아주 처참한 인생의 수렁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가 이야기를 우리가 살펴보면 우리의 생애 속에 큰 교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과거의 죄책과 후회의 늪에서 벗어나야 했다
첫째로, 그가 그 절망의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이며 있을 때는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는 미래가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 그가 해야 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죄책과 후회의 늪에서 벗어나야 되었습니다. 그 마음속에 엄청난 죄책이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배반한 죄가 가슴에 쓰렸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리고 울면서 그를 붙들었습니다. 너가 나이가 들면 내가 상속을 줄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강청을 하는 것을 아버지에게 몹쓸 말을 하고 반역을 하고 고함을 치고 행패를 부리고 아버지의 재산을 강탈하는 그 죄책이 이제 마음속에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잘 나갈 때는 다 잊어 버렸는데 모든 것 다 잃어버리고 고통스러우니까 태산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버지에 대해서 지은 죄과인 것입니다. 그 죄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그가 재기불능인 것입니다.
눅15:12~13절에 그 사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없이 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과거를 돌이켜 보니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얼마나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던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매일같이 아름다운 여자들을 돈으로 사서 갈고, 도박꾼들, 방탕자들, 마약중독자들과 합쳐서 놀이터를 벌이고 무절제하고 비윤리적이고 비도적인 생활을 하던 그 생활은 다 골라 가면서 했습니다.
눅15:13 이하에 보면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돈을 물쓰 듯이 썼습니다. 아버지가 피와 눈물과 땀으로 모은 재산을 노력하지 않고 얻은 재산이라 그대로 막 쓰니까 그 재산이 아무리 많은들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탕진한 재산을 생각할 때 그의 가슴이 아픕니다. 얼마나 아버지가 피 땀 흘려 모은 재산을 자기가 모두다 음란과 방탕과 도박과 술 취함으로 없앴다는 그 죄책이 그 영혼을 짓눌렀습니다. 그 죄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아버지께 죄를 회개하고 그리고 그 죄를 자기가 스스로 용서해 주는 길밖에는 살아갈 길이 없습니다. 죄는 첫째로, 하나님의 법을 어겼으니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요, 아버지를 거역했으니 아버지께 회개하고 용서 받아야 될 것이요, 그 다음에는 자기가 자기를 용서해 주고받아 주어야 될 것입니다. 이래서 그가 하루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돌아가서 회개를 해야 되겠다.”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다시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겠습니다.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고 인간은 삶을 다시 시작해야 되겠다고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눅15:18~19에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살아나려면 용서를 구하고 또 자기를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아야 되고 아버지에게 용서를 받아야 되고, 자기 스스로에게 용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죄의 용서는 세 가지 방향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고 그 다음 내가 직접 상처를 입힌 자에게 용서를 청합니다. 용서를 해주든 안 해주든 내가 할 일은 용서를 하는 사과를 해야 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내 스스로 정죄하고 미워하는 그것을 용서해서 나 스스로가 나를 사과하고 용서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눅15:20~21절에 보면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 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여러분 우리가 이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배워야 될 것은 우리도 한 사람 없이 크고 작은 탕자인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 이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우리 부모와 혹은 이웃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애를 가슴에 손을 얹고 보면 죄책이 크게 소리치고 머리를 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이 죄책을 눌러 놓으면 이 죄책이 내 마음속에 아무 소리 안 할 것 같아도 죄책을 눌러 놓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을 떠나지 아니하고 마음이 우울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상쾌한 믿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아무리 주여, 주여 외쳐도 내 마음속에 왜 믿음이 생겨나지 않습니까?” 라는 그런 말을 합니다. 마음에 감춰 놓은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 아무리 부르짖어도 믿음이 생겨나지 않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음이 일어나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에 감추인 죄악을 청산해야 됩니다. 이 탕자와 같이 하나님 앞에 내 죄를 다 고하고 내가 기억 나는데로 죄를 지은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리고 자기 죄를 자기가 용서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내에게 죄를 지었으면 아내에게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 안 해주고 해주고는 아내 책임입니다. 내가 할 일은 아내에게 죄책을 구하고 또 남편에게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고 이웃에게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고 편지라도 쓰고 인터넷에 글이라도 올려서 죄사함을 요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자기를 향해서 말해야 됩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고 이웃에게 용서를 구했고 그랬으니 너도 너 자신을 용서하라. 나도 내 자신을 용서한다. 스스로 그렇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는 보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죄를 지은 사람, 안 지은 사람, 큰 죄인, 적은 죄인 할 것 없이 모두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오면 하나님은 용서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받으라. 나가서 하나님을 찾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벌써 2천년전에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찾고 계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탕자를 떠난 그날부터 문 열어 놓고 기다리고 있듯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늘 문을 열어 놓고 우리를 향해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 몸찢고 피흘린 댓가로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하셨으므로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죄를 고하면 우리는 반드시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고후5:21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형벌을 다 받으므로 죄를 다 청산해 버리고 만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안에 들어오면 용서를 받고 아버지 하나님처럼 의롭게 되는 은혜를 받아서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나오면 하나님은 말갛게 용서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요일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 앞에 우리 마음이 용서를 받았으면 그 다음에는 우리는 담대하게 이웃에게 용서를 청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이웃이 내가 특정한 사람이 없으면 괜찮습니다만 특별히 내가 이웃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 있으면 그 상처 입은 이웃에게 나가서 죄를 사해달라고 요청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용서를 받을 수도 있고 어떠한 사람은 용서 안 해 주겠다고 고개를 흔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용서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고 용서를 해주면 좋고 안 해 줘도 나는 죄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이미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용서한 열매로써 이웃에게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죄를 스스로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이웃의 죄를 용서함같이 우리 죄도 용서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살면서 자기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죽일 놈, 나쁜 놈, 고약한 놈, 버림받아야 마땅한 놈, 이런 놈은 살아갈 필요가 없다. 나는 이 세상에서 망해야 된다.’ 자기를 비하하고 자기를 정죄하고 자기를 심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려서 ‘나는 못산다. 나는 살 수 없다. 살아갈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한 사람을 우리가 용서 안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 주었는데 왜 내가 나를 용서하지 않습니까? 나를 솔직히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거울을 들여다보고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용서 받았으니 나도 너를 용서한다. 네가 옛날에 못되게 굴어서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었지만 이제 나는 너를 용서한다. 그러므로 용서받으라.’ 스스로를 용서해서 죄 짐을 풀어 놓아야 수렁에서 건져냄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죄 짐을 벗어 놓지 아니하면 수렁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유명한 과학자 코페르니쿠스의 무덤 비석에는 그의 유언을 따라서 이런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바울의 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나는 베드로의 능력을 구하지 않습니다. 오 하나님, 나는 회개하는 강도에게 주셨던 은혜를 구합니다." 우리는 회개를 통해 과거의 죄책과 후회의 늪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럴 때 긍정적으로 살아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항상 부정적이 되게 하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이 되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 죄의 늪에서 벗어나야 긍정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고 믿음을 행사하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탕자가 그 쥐엄 열매를 먹는 돼지 소굴에서 나올 수 있는 결단이 하나님과 아버지께 회개를 하겠다고 작정을 한 그날부터 그는 그 수렁에서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크고 적은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일 때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지은 죄를 회개하고 자기의 죄를 용서하고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할 때 수렁에서 나올 수 있고 긍정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첫발을 디딜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지난날을 잊어버려라
둘째로, 이 탕자는 지난날을 다 잊어버려야 됩니다. 이 탕자가 수렁에서 빠져 있을 때 늘 과거가 그를 집착하게 하는 것은 과거가 엄청나게 부자였는데 내가 이렇게 가난하게 되었다는 탄식인 것입니다. 그렇게 돈이 많았는데 그 돈이 다 어디로 날라 갔나. 어찌하다가 그 돈이 다 소모되고 말았느냐. 과거에 부자였던 생각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합니다. 그는 현재 돼지소굴에 살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옛날에 부자였던 과거를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를 잊어버리고 던져 버려야 그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지 과거에 잡혀있는 사람은 앞으로 전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앞을 바라보고 나가야 삽니다. 과거에 잡혀있고 과거에 집착해서 늘 탄식하면 한발자국도 앞을 나가지 못하고 이 사람은 수렁에서 죽고 마는 것입니다.
잠23:5에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눅12:15에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재물과 지위나 명예 이런 것이 과거에 아무리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떠나간 이후에는 집착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 훌훌 털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내가 과거에 이런 사람이었는데 그런 대접을 지금 받지 못하고 이런 비참한 것이니 너무나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으리으리하게 으스대며 살았던 과거가 마음속에 집착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과거에 내가 안 살았는데 거대한 저택에서 살고 자가용을 가지고 운전사가 있고 정원사들이 있고, 가정부들이 있고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느냐. 내가 일어서면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절을 하고 내가 나가면 마중을 나가고 어느 곳에 가나 일등석에 앉고 이런 삶을 살던 내가 어찌하다가 이렇게 외롭고 고독하고 좌절하고 절망적인 사람이 되었느냐. 어찌하다가 돼지소굴까지 낮아져서 돼지 쥐엄 열매를 받는 수렁에 빠졌는가.’ 그런 탄식을 하고 살면 안 됩니다. 그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떠나간 과거는 놓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미 환경에서 떠나갔는데 내 마음속에 그것이 집착되어 있어 과거처럼 행세하면은 아무도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과거는 떠나갔으니까 과거에 부자처럼 생각하고 행세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으리으리하게 으스대며 살았던 그 행실을 그대로 하려고 하면은 과거에 붙잡혀서 그는 결코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 것인 것입니다.
시52:7에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자가 패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시 127:1~2)라고 말한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 없이 살다가 망했으면 과거 행세를 하지 말고 과거를 다 내던져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내가 장관이었는데, 국회의원이었는데, 회사 회장이었는데, 과거에 내 지위도 있고 명예도 있었는데, 과거에 내가 대접받고 살았는데 나 지금도 그렇게 행세하고 대접 받아야지.’ 마음속에 그렇게 생각해도 이미 지나간 과거가 그를 그렇게 대접해 주지 않습니다. 이미 그는 과거를 떠난 사람입니다. 현재에는 아무것도 없는 쪽 발가벗은 거지요, 돼지소굴에 있는 자기를 알고 자기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돼지소굴에서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탕자는 돼지소굴에 앉아서 생각할 때 괘씸한 일이 많았습니다. 자기에게 그렇게 사랑을 받고 자기가 좋은 옷도 사주고 귀고리, 목걸이, 팔찌, 발찌 사주던 그 아름다운 여자들 내 낭군, 우리 남편, 우리 영웅이라고 하던 그 여자들이 순식간에 자기를 버리고 돈 없으니까 문전박대하는 것을 생각하고 이를 갈았습니다. ‘이년들 두고 봐라! 언제 내가 일어나서 복수할 것이다.’ 그것을 자꾸 이를 갈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그 여자들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마음속에 아무리 그렇게 해도 그 시대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미 떠나갔습니다. 그는 허상에 잡혀 있는 것입니다. 저의 친구들을 원망합니다. ‘돈 꽤나 있을 때는 나를 형님이라고 하고, 나를 주인이라고 따라오던 그놈들, 나하고 같이 술 먹고 방탕하고 도박할 때는 나를 영웅으로 생각하더니 이제 나를 발길로 차버리고 모른 체 하고 떠나가고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두고 보자. 이 괘씸한 놈들, 사람이 항상 이렇게 있을 줄 아느냐. 내가 일어나면 너희들 박살을 내겠다.’ 박살을 내기는 무슨 박살을 내. 지가 박살이 났는데. 소용이 없는 일인 것입니다. 과거에 미웠던 일도 다 버려야 됩니다. 과거에 분노도 다 버리고 시기와 질투도 다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원망, 시기, 분노, 질투한다고 해서 과거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지나가 버린 것은 잊어 버려야 됩니다. 미운 상사도 잊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미운 사장도 잊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미운 친구도 잊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를 잊을 수 있어야 수렁에서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과거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이를 갈고 소화가 안 되고 얼굴을 찌푸리고 불행하면 그 사람은 과거의 족쇄에 묶여서 현재와 미래를 잃어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과거를 훨훨 털어 버리고 미래를 향해서 날개를 치고 날라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뒤에 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잊어 버릴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는 아무리 원통하게 여겨도 안돌아오는 것입니다.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지나간 과거가 여러분을 현재 잡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도록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좋았던 과거도 돌려보내고, 나빴던 과거도 돌려보내고, 원망스럽던 과거도 다 하나님께 맡겨서 잊어버리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미래를 향하여 뛰어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미래를 향해서 뛰지 않는 사람 항상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사고를 칩니다.
자동차를 운전해 가는 사람이 고속도로에서 앞을 보고 핸들을 잡지 않고 자꾸 백미러를 쳐다봅니다. ‘뒤에 무슨 차가 오느냐. 저 사람 좋은 차 부리네. 저 차는 왜 저리 가까이 오느냐. 저 사람 왜 운전을 잘못 하느냐.’ 자꾸 백미러를 쳐다보면 그러다가는 가드레일을 들여 박거나 언덕에 떨어지거나 앞에 추돌하거나 자기가 죽습니다. 과거를 자꾸 쳐다보는 사람은 결국 자기가 추돌하고 교통사고 일으키고 죽는 것처럼 파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백미러는 필요 없을 때 보지 말아요. 앞만 바라보고 앞을 향해서 운전대를 잡고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자기 현실은 빈손 들었으니까 빈손 든 자신을 받아 들여야 돼요. 이 탕자의 놀라운 점은 과거의 죄책에서 회개를 해서 놓여났을 뿐 아니라 과거의 자기 잘 살던 것 다 포기해 버리고 현실을 받아 들였었습니다. 그가 아버지께 나갈 때 나를 품꾼의 하나로 봐달라고 나갔던 것입니다. 품꾼이란 것은 하루하루 일용직인 것입니다. 과거에 아들로써 당당하여 재산 3분의 1을 탔던 그가 큰소리 쾅쾅하고 수많은 종을 부리던 그가 종 밑에 부림을 당하는 품꾼으로 자기를 낮춘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우리가 긍정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태도인 것입니다. 자기의 현재 위치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위치를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현재가 품꾼이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거에 부자요, 과거에 으리으리하게 잘살던 그런 행세를 하려면 안 되는 것입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빈손 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붙잡여서 주님 앞에 빈 손 들고 못나가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인 것입니다. 주님 앞에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돈도 다 비워 버리고 이제는 손 털털 버리고 수렁에 빠진 내가 빈 손 들고 품꾼의 하나가 되어서 주님 앞에 나오는 그런 마음의 태도를 가져야 긍정적인 인생을 살수 있는 것입니다.
시40:17에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가난하고 궁핍한 자기를 인정해야 주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마5:3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가난한 현실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품꾼의 하나로 낮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품꾼이 된 자기가 되어야 주님이 받아주는 것입니다.
시34:18에 "야훼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중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 하시는도다" 마음이 상하고 중심으로 통회하고 자기의 죄책을 다 회개하고 벗어버리고 과거에 잘살던 오만하고 교만한 자리를 다 떠나보내고 회개하고 자기가 낮은 품꾼으로 통회하고 회개하면 주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베푸는 것입니다.
욜2:13에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야훼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마음을 찢고 야훼께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오만하고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결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겸손하고 깨어지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낮아진 자는 주님이 찾아 오셔서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탕자의 위대한 점을 거기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3.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이 탕자는 그 많은 죄를 아버지의 지은 죄, 하나님께 지은 죄를 회개하고 자기를 용서하고 오만하고 교만하고 도도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낮아져서 품꾼의 하나가 되어서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이것이 절대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길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자고 결심한 그는 이와 같은 마음의 준비를 한 것입니다. 그냥 돌아가자. 죄를 지은 그대로 회개도 안하고 그냥 돌아가자. 안돌아가지는 것입니다. 과거에 오만하고 교만하고 “잘사는 대접을 해달라. 나에게도 과거같이 부자로 만들어 주고 으리으리하게 살게 만들어 달라. 나 지금도 기생들하고 놈팽이들 하고 놀 수 있는 자금을 대달라.” 그러한 태도로 나올 때 아버지는 받아주지 않습니다. 수렁에서 먼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수렁에서 나오지 않고는 아버지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탕자는 수렁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아버지께 죄를 회개하고 자기 자신의 죄를 용서하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 오만하고 교만하고 자만하고 잘못 살았던 마음을 깨뜨리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품꾼의 하나가 되는 겸비한 마음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일어섰을 때 아버지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리고 부정의 생활은 떠나가고 긍정적인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즉, 그는 이제는 아버지를 향해서 희망을 가지고 나가요. 품꾼의 하나로부터 출발해서라도 희망을 찾자. 살길은 여기밖에 없다. 살길은 돼지수렁에서 벗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희망을 향해서 그는 전진했습니다.
렘29:11~13에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야~ 얼마나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까?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평안을 주고 재앙에서 벗어나게 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어찌하든지 희망을 주고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는 것이니, 수렁에서 벗어나서 기도하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을 찾고 만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좋은 하나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부정적인 삶속에 빠져 있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부정의 수렁에서 벗어나서 긍정으로 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높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거에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이라도 아버지에게 회개하고 나오면 아버지가 죄를 용서하고 씻어 주시고 그 여파를 가지고서 이웃에 회개하고 나를 용서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거기에 플러스해서 우리 마음이 깨어지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과거에 잘살았던 행세 다 버리고 부귀, 영화, 공명, 명예, 지위를 다 진토에 내던져 버리고 훨훨 벗어 잊어버리고 품꾼의 하나가 될 각오를 하고 출발을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활짝 두 손을 내밀고 우리를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영국의 존 메이어 수상은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집이 하도 어려워서 열여섯 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새벽부터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를 반죽하는 일을 한 후에 간단히 토스트로 아침식사를 대신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습관은 그가 이후에 은행의 간부와 정치가로서 명성을 얻은 후에도 이어져서 그는 서민들이 출입하는 식당을 즐겨 찾았습니다. 그가 사는 집도 서민층이 사는 동네에 살았습니다. 수상이 된 이후 기자들은 그에게 고난의 세월을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비관적인 생각을 갖지 않았다. 항상 희망을 갖고 일하며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지게 했다. 하늘은 표정이 밝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 복을 준다고 말한 것 입니다. 보세요. 어떤 상황이든 비관적인 생각을 갖지 않고 항상 희망을 가진다.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얼굴에 웃음을 떠나지 않게 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복을 주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늘 희망을 향해 긍정적으로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절망을 안고 부정적이 되면 우리는 좌절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로에서 시작하는 인생을 살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돈도 다 벗어 버리고 빈손 들게 돼서 제로에서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마음의 겸허함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올 때 내 마음이 부하면 안 됩니다. 내 마음이 제로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부귀, 영화, 공명을 다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다 그것을 벗어 버리고 빈 손 들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부귀도 영화도 공명도 지위도 명예도 하나님 재단 앞에 다 바쳐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빈손 들고 품꾼이 되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루하루 사는 것이 품꾼의 삶 아닙니까? 내일을 살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내일 일을 자랑치 말라. 오늘 네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하나님 부르시면 하나님 앞에 나서야 될 것 아닙니까? 우리는 실제로 제로 인생인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내 세상에 내가 가지고 있는 지위, 명예, 권세, 부귀, 영화 이 모든 것을 다 십자가 밑에 내려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걸림돌이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제로 인생으로 출발해서 하나님만이 우리의 희망이 되고 우리의 긍정적인 삶이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벧전5:5~7에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교만한 자를 돌보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겸손한 자를 하나님이 돌보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로에서 시작하는 인생 품꾼의 하나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품꾼의 하나로써 주님께 나가면 그때부터 우리 인생은 우리의 수고하고 노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세계가 열려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자기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교만을 깨뜨리지 아니한 사람은 자기의 노력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십자가에 다 저버리고 교만은 깨뜨리고 오만을 깨뜨리고 제로인생으로 출발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탕자가 제로 인생이 되어서 아버지께 나오는 장면을 여러분 보십시오. 아버지께 그는 완전히 깨어져서 품꾼의 하나로 보시옵소서 하고 나왔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늘에도 죄를 지었고, 아버지에게도 죄를 지었으니 이제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나를 하루하루 고용하는 품꾼의 하나로 보아 주시옵소서.” 아버지는 대답 안했습니다. 이미 이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은 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가 죄를 버리고 교만을 버렸을 때 하나님은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 아버지가 얼마나 사랑한지 그것을 표현하기를 잃었다가 찾았으며 죽었다가 살아난 아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를 버리고 오만을 버리고 빈 손 들고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고 하신 말씀이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다. 이 내 아들은 잃었다가 내가 도로 얻었다고 말씀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이 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께 이아들이 빈 손 들고 나와서 꿇어 엎드리니까 아버지가 아들을 일으켜서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허름한 옷 아닙니다.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아들이 되었다는 표시인 반지를 갖다 끼워라.” 유대 나라에서는 가족은 반지를 끼웁니다. “그 다음 신발을 신겨라.” 종들은 신을 안신어도 아들은 신발을 신기는 것입니다. “신발을 갖다 신겨라.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우리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었다.” 이아들이 입이 벌어졌습니다. 어안이 벙벙합니다. “아버지여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나이까?” “이제부터 너는 나의 은혜로 사는 자식이다. 이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끝났다. 네가 새사람이 되어 돌아왔으므로 이제 너는 나의 힘으로 사는 것이다. 내가 돌봄으로 사는 것이다. 내 옷을 입고 내가 주는 신발을 신고 내가 주는 반지를 끼고 내가 잡는 송아지를 먹고서 내 집에 사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팔로써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용서받은 의로운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영광의 옷을 입혀 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반지를 끼워 주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언약의 말씀을 신겨 주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성령을 주셔서 의와 평강과 희락, 믿음, 소망, 사랑의 잔치 상을 베풀어 주어서 하나님 앞에서 기쁘고 즐거운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부정에서 긍정으로 들어와서 사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수렁에 빠진 삶이 재기하는 길은 긍정적으로 나가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 길은 십자가 앞에서 용서로 새롭게 되고 철저히 과거를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품속에 뛰어 들어가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살지 말고 은혜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속에 사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과 인본주의로 삽니다. 그러나 주님께로 죄를 회개하고 깨어져서 탕자가 변화되어 돌아온 사람은 하나님 섬기며 살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이제는 앉아도 은혜요, 서도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약속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복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 성령 충만의 잔치 상을 베풀고서 살다가 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수렁 속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적고 큰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거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수렁에서 나오기 위해서 그 좌절과 절망에서 나오기 위해서 우리는 십자가 앞으로 나가십시다. 회개하십니다. 철저히 회개하십시다. 용서를 하나님께 구하고 사람에게 구하고 자기 자신도 정죄하지 말고, 열등의식과 좌절감에 빠지지 말고 용서해 주고, 현재를 직시해서 제로로 하나님께 나가십시다. 제로성 게임입니다. 빈손 들고 나가십시다. 아무것도 자랑하지 마십시오. 현재는 과거에 예수 믿지 않고 죄악에 살던 시대에 내가 아닌 것입니다.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돈도 다 떠나갔습니다. 나는 현재 품꾼의 하나로써 제로가 되어서 주님 앞에 빈손 들고 하나님이여, 하나님만이 나의 생명이요, 모든 것은 모든 것입니다. 주께만 의지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삽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만 따라갑니다. 주님께서 은혜로 품어 주시고 여러분 은혜로 인도해 주시고 은혜로 살려 주셨다가 은혜 중에서 천당에 올라가서 영원히 은혜로 말미암아 살게 만들어 주십니다.
<기도>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다 크고 작은 탕자였는데 우리가 수렁에 빠져 허덕일 때 십자가를 바라보고 용서의 길을 열도록 만들어 주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용서받은 의인이 되고 과거를 다 청산하고 빈 손 들고 아버지께 나가 은혜를 받아 살게 만들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혹시 이 현실을 잊어 버리고 과거로 돌아가는 어리석은 사람 없게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다 깨어지고 낮아지고 회개하고 품꾼이 되어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긍정만이 사는 길이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봄은 긍정의 계절입니다. 겨울 동안 산불로 타버린 언덕, 눈사태로 무너진 곳, 얼어붙었던 강산에 다시 따뜻한 생명의 손길이 나타나 모든 것을 용서하고, 무너진 과거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생명의 푸름과 꽃동산을 만들어 가는 계절입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겨울을 지나면서 낭패를 당하고 상처를 입고 잃어버리고 절망한 삶을 그대로 방치하면 인생이 폐허가 되고 맙지요. 그러나 예수님 십자가 밑에 나아와 울며 과거를 용서받고 용서하고 잊어버리고 훨훨 털고 일어나서 내일의 꿈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이 바로 긍정의 삶인 것입니다. 이 긍정의 삶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이 탕자의 삶인 것입니다. 탕자는 큰 농사를 짓는 부자농부의 둘째 아들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탐욕이 들어와서 자기가 나이가 이르지도 못한데 아버지의 상속을 강요했습니다. 옛날에는 맏아들은 아버지가 죽을 때 3분의 2의 재산을 가져가고 둘째 아들에게는 3분의 1을 줍니다. 그 3분의 1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하도 강청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 많은 재산 중 3분의 1을 둘째 아들에게 주니 이를 다 청산해서 먼 나라로 가서 아주 호의호식하고 허랑방탕하게 살아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나라의 큰 흉년이 들어오자 호구지책을 세울 수가 없어서 직장을 구하러 다니다가 돼지를 치는 회사에 사원으로 채용이 되었는데 그 회사에서 시골에 보내어 돼지농장에서 일을 하게 했는데 너무나 월급이 작아서 먹고 살수가 없습니다.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고 추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돼지우리에서 같이 살면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려고 해도 돼지들이 그것을 충분히 주지도 않습니다. 그는 아주 처참한 인생의 수렁에 빠진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가 이야기를 우리가 살펴보면 우리의 생애 속에 큰 교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과거의 죄책과 후회의 늪에서 벗어나야 했다
첫째로, 그가 그 절망의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이며 있을 때는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는 미래가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 그가 해야 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죄책과 후회의 늪에서 벗어나야 되었습니다. 그 마음속에 엄청난 죄책이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배반한 죄가 가슴에 쓰렸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리고 울면서 그를 붙들었습니다. 너가 나이가 들면 내가 상속을 줄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강청을 하는 것을 아버지에게 몹쓸 말을 하고 반역을 하고 고함을 치고 행패를 부리고 아버지의 재산을 강탈하는 그 죄책이 이제 마음속에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잘 나갈 때는 다 잊어 버렸는데 모든 것 다 잃어버리고 고통스러우니까 태산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버지에 대해서 지은 죄과인 것입니다. 그 죄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그가 재기불능인 것입니다.
눅15:12~13절에 그 사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없이 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과거를 돌이켜 보니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얼마나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던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매일같이 아름다운 여자들을 돈으로 사서 갈고, 도박꾼들, 방탕자들, 마약중독자들과 합쳐서 놀이터를 벌이고 무절제하고 비윤리적이고 비도적인 생활을 하던 그 생활은 다 골라 가면서 했습니다.
눅15:13 이하에 보면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돈을 물쓰 듯이 썼습니다. 아버지가 피와 눈물과 땀으로 모은 재산을 노력하지 않고 얻은 재산이라 그대로 막 쓰니까 그 재산이 아무리 많은들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탕진한 재산을 생각할 때 그의 가슴이 아픕니다. 얼마나 아버지가 피 땀 흘려 모은 재산을 자기가 모두다 음란과 방탕과 도박과 술 취함으로 없앴다는 그 죄책이 그 영혼을 짓눌렀습니다. 그 죄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아버지께 죄를 회개하고 그리고 그 죄를 자기가 스스로 용서해 주는 길밖에는 살아갈 길이 없습니다. 죄는 첫째로, 하나님의 법을 어겼으니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요, 아버지를 거역했으니 아버지께 회개하고 용서 받아야 될 것이요, 그 다음에는 자기가 자기를 용서해 주고받아 주어야 될 것입니다. 이래서 그가 하루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돌아가서 회개를 해야 되겠다.”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다시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겠습니다.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고 인간은 삶을 다시 시작해야 되겠다고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눅15:18~19에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살아나려면 용서를 구하고 또 자기를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아야 되고 아버지에게 용서를 받아야 되고, 자기 스스로에게 용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죄의 용서는 세 가지 방향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고 그 다음 내가 직접 상처를 입힌 자에게 용서를 청합니다. 용서를 해주든 안 해주든 내가 할 일은 용서를 하는 사과를 해야 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내 스스로 정죄하고 미워하는 그것을 용서해서 나 스스로가 나를 사과하고 용서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눅15:20~21절에 보면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 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여러분 우리가 이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배워야 될 것은 우리도 한 사람 없이 크고 작은 탕자인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 이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우리 부모와 혹은 이웃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애를 가슴에 손을 얹고 보면 죄책이 크게 소리치고 머리를 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이 죄책을 눌러 놓으면 이 죄책이 내 마음속에 아무 소리 안 할 것 같아도 죄책을 눌러 놓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을 떠나지 아니하고 마음이 우울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상쾌한 믿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아무리 주여, 주여 외쳐도 내 마음속에 왜 믿음이 생겨나지 않습니까?” 라는 그런 말을 합니다. 마음에 감춰 놓은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 아무리 부르짖어도 믿음이 생겨나지 않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음이 일어나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에 감추인 죄악을 청산해야 됩니다. 이 탕자와 같이 하나님 앞에 내 죄를 다 고하고 내가 기억 나는데로 죄를 지은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리고 자기 죄를 자기가 용서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내에게 죄를 지었으면 아내에게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 안 해주고 해주고는 아내 책임입니다. 내가 할 일은 아내에게 죄책을 구하고 또 남편에게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고 이웃에게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고 편지라도 쓰고 인터넷에 글이라도 올려서 죄사함을 요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자기를 향해서 말해야 됩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고 이웃에게 용서를 구했고 그랬으니 너도 너 자신을 용서하라. 나도 내 자신을 용서한다. 스스로 그렇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는 보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죄를 지은 사람, 안 지은 사람, 큰 죄인, 적은 죄인 할 것 없이 모두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오면 하나님은 용서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받으라. 나가서 하나님을 찾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벌써 2천년전에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찾고 계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탕자를 떠난 그날부터 문 열어 놓고 기다리고 있듯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늘 문을 열어 놓고 우리를 향해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 몸찢고 피흘린 댓가로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하셨으므로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죄를 고하면 우리는 반드시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고후5:21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형벌을 다 받으므로 죄를 다 청산해 버리고 만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안에 들어오면 용서를 받고 아버지 하나님처럼 의롭게 되는 은혜를 받아서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나오면 하나님은 말갛게 용서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요일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 앞에 우리 마음이 용서를 받았으면 그 다음에는 우리는 담대하게 이웃에게 용서를 청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이웃이 내가 특정한 사람이 없으면 괜찮습니다만 특별히 내가 이웃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 있으면 그 상처 입은 이웃에게 나가서 죄를 사해달라고 요청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용서를 받을 수도 있고 어떠한 사람은 용서 안 해 주겠다고 고개를 흔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용서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고 용서를 해주면 좋고 안 해 줘도 나는 죄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이미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용서한 열매로써 이웃에게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죄를 스스로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이웃의 죄를 용서함같이 우리 죄도 용서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살면서 자기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죽일 놈, 나쁜 놈, 고약한 놈, 버림받아야 마땅한 놈, 이런 놈은 살아갈 필요가 없다. 나는 이 세상에서 망해야 된다.’ 자기를 비하하고 자기를 정죄하고 자기를 심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려서 ‘나는 못산다. 나는 살 수 없다. 살아갈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한 사람을 우리가 용서 안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 주었는데 왜 내가 나를 용서하지 않습니까? 나를 솔직히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거울을 들여다보고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용서 받았으니 나도 너를 용서한다. 네가 옛날에 못되게 굴어서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었지만 이제 나는 너를 용서한다. 그러므로 용서받으라.’ 스스로를 용서해서 죄 짐을 풀어 놓아야 수렁에서 건져냄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죄 짐을 벗어 놓지 아니하면 수렁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유명한 과학자 코페르니쿠스의 무덤 비석에는 그의 유언을 따라서 이런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바울의 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나는 베드로의 능력을 구하지 않습니다. 오 하나님, 나는 회개하는 강도에게 주셨던 은혜를 구합니다." 우리는 회개를 통해 과거의 죄책과 후회의 늪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럴 때 긍정적으로 살아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항상 부정적이 되게 하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이 되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 죄의 늪에서 벗어나야 긍정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고 믿음을 행사하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탕자가 그 쥐엄 열매를 먹는 돼지 소굴에서 나올 수 있는 결단이 하나님과 아버지께 회개를 하겠다고 작정을 한 그날부터 그는 그 수렁에서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크고 적은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일 때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지은 죄를 회개하고 자기의 죄를 용서하고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할 때 수렁에서 나올 수 있고 긍정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첫발을 디딜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지난날을 잊어버려라
둘째로, 이 탕자는 지난날을 다 잊어버려야 됩니다. 이 탕자가 수렁에서 빠져 있을 때 늘 과거가 그를 집착하게 하는 것은 과거가 엄청나게 부자였는데 내가 이렇게 가난하게 되었다는 탄식인 것입니다. 그렇게 돈이 많았는데 그 돈이 다 어디로 날라 갔나. 어찌하다가 그 돈이 다 소모되고 말았느냐. 과거에 부자였던 생각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합니다. 그는 현재 돼지소굴에 살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옛날에 부자였던 과거를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를 잊어버리고 던져 버려야 그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지 과거에 잡혀있는 사람은 앞으로 전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앞을 바라보고 나가야 삽니다. 과거에 잡혀있고 과거에 집착해서 늘 탄식하면 한발자국도 앞을 나가지 못하고 이 사람은 수렁에서 죽고 마는 것입니다.
잠23:5에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눅12:15에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재물과 지위나 명예 이런 것이 과거에 아무리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떠나간 이후에는 집착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 훌훌 털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내가 과거에 이런 사람이었는데 그런 대접을 지금 받지 못하고 이런 비참한 것이니 너무나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으리으리하게 으스대며 살았던 과거가 마음속에 집착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과거에 내가 안 살았는데 거대한 저택에서 살고 자가용을 가지고 운전사가 있고 정원사들이 있고, 가정부들이 있고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느냐. 내가 일어서면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절을 하고 내가 나가면 마중을 나가고 어느 곳에 가나 일등석에 앉고 이런 삶을 살던 내가 어찌하다가 이렇게 외롭고 고독하고 좌절하고 절망적인 사람이 되었느냐. 어찌하다가 돼지소굴까지 낮아져서 돼지 쥐엄 열매를 받는 수렁에 빠졌는가.’ 그런 탄식을 하고 살면 안 됩니다. 그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떠나간 과거는 놓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미 환경에서 떠나갔는데 내 마음속에 그것이 집착되어 있어 과거처럼 행세하면은 아무도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과거는 떠나갔으니까 과거에 부자처럼 생각하고 행세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으리으리하게 으스대며 살았던 그 행실을 그대로 하려고 하면은 과거에 붙잡혀서 그는 결코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 것인 것입니다.
시52:7에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자가 패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시 127:1~2)라고 말한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 없이 살다가 망했으면 과거 행세를 하지 말고 과거를 다 내던져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내가 장관이었는데, 국회의원이었는데, 회사 회장이었는데, 과거에 내 지위도 있고 명예도 있었는데, 과거에 내가 대접받고 살았는데 나 지금도 그렇게 행세하고 대접 받아야지.’ 마음속에 그렇게 생각해도 이미 지나간 과거가 그를 그렇게 대접해 주지 않습니다. 이미 그는 과거를 떠난 사람입니다. 현재에는 아무것도 없는 쪽 발가벗은 거지요, 돼지소굴에 있는 자기를 알고 자기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돼지소굴에서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탕자는 돼지소굴에 앉아서 생각할 때 괘씸한 일이 많았습니다. 자기에게 그렇게 사랑을 받고 자기가 좋은 옷도 사주고 귀고리, 목걸이, 팔찌, 발찌 사주던 그 아름다운 여자들 내 낭군, 우리 남편, 우리 영웅이라고 하던 그 여자들이 순식간에 자기를 버리고 돈 없으니까 문전박대하는 것을 생각하고 이를 갈았습니다. ‘이년들 두고 봐라! 언제 내가 일어나서 복수할 것이다.’ 그것을 자꾸 이를 갈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그 여자들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마음속에 아무리 그렇게 해도 그 시대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미 떠나갔습니다. 그는 허상에 잡혀 있는 것입니다. 저의 친구들을 원망합니다. ‘돈 꽤나 있을 때는 나를 형님이라고 하고, 나를 주인이라고 따라오던 그놈들, 나하고 같이 술 먹고 방탕하고 도박할 때는 나를 영웅으로 생각하더니 이제 나를 발길로 차버리고 모른 체 하고 떠나가고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두고 보자. 이 괘씸한 놈들, 사람이 항상 이렇게 있을 줄 아느냐. 내가 일어나면 너희들 박살을 내겠다.’ 박살을 내기는 무슨 박살을 내. 지가 박살이 났는데. 소용이 없는 일인 것입니다. 과거에 미웠던 일도 다 버려야 됩니다. 과거에 분노도 다 버리고 시기와 질투도 다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원망, 시기, 분노, 질투한다고 해서 과거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지나가 버린 것은 잊어 버려야 됩니다. 미운 상사도 잊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미운 사장도 잊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미운 친구도 잊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를 잊을 수 있어야 수렁에서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과거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이를 갈고 소화가 안 되고 얼굴을 찌푸리고 불행하면 그 사람은 과거의 족쇄에 묶여서 현재와 미래를 잃어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과거를 훨훨 털어 버리고 미래를 향해서 날개를 치고 날라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뒤에 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잊어 버릴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는 아무리 원통하게 여겨도 안돌아오는 것입니다.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지나간 과거가 여러분을 현재 잡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도록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좋았던 과거도 돌려보내고, 나빴던 과거도 돌려보내고, 원망스럽던 과거도 다 하나님께 맡겨서 잊어버리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미래를 향하여 뛰어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미래를 향해서 뛰지 않는 사람 항상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사고를 칩니다.
자동차를 운전해 가는 사람이 고속도로에서 앞을 보고 핸들을 잡지 않고 자꾸 백미러를 쳐다봅니다. ‘뒤에 무슨 차가 오느냐. 저 사람 좋은 차 부리네. 저 차는 왜 저리 가까이 오느냐. 저 사람 왜 운전을 잘못 하느냐.’ 자꾸 백미러를 쳐다보면 그러다가는 가드레일을 들여 박거나 언덕에 떨어지거나 앞에 추돌하거나 자기가 죽습니다. 과거를 자꾸 쳐다보는 사람은 결국 자기가 추돌하고 교통사고 일으키고 죽는 것처럼 파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백미러는 필요 없을 때 보지 말아요. 앞만 바라보고 앞을 향해서 운전대를 잡고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자기 현실은 빈손 들었으니까 빈손 든 자신을 받아 들여야 돼요. 이 탕자의 놀라운 점은 과거의 죄책에서 회개를 해서 놓여났을 뿐 아니라 과거의 자기 잘 살던 것 다 포기해 버리고 현실을 받아 들였었습니다. 그가 아버지께 나갈 때 나를 품꾼의 하나로 봐달라고 나갔던 것입니다. 품꾼이란 것은 하루하루 일용직인 것입니다. 과거에 아들로써 당당하여 재산 3분의 1을 탔던 그가 큰소리 쾅쾅하고 수많은 종을 부리던 그가 종 밑에 부림을 당하는 품꾼으로 자기를 낮춘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우리가 긍정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태도인 것입니다. 자기의 현재 위치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위치를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현재가 품꾼이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거에 부자요, 과거에 으리으리하게 잘살던 그런 행세를 하려면 안 되는 것입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빈손 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붙잡여서 주님 앞에 빈 손 들고 못나가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인 것입니다. 주님 앞에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돈도 다 비워 버리고 이제는 손 털털 버리고 수렁에 빠진 내가 빈 손 들고 품꾼의 하나가 되어서 주님 앞에 나오는 그런 마음의 태도를 가져야 긍정적인 인생을 살수 있는 것입니다.
시40:17에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가난하고 궁핍한 자기를 인정해야 주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마5:3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가난한 현실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품꾼의 하나로 낮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품꾼이 된 자기가 되어야 주님이 받아주는 것입니다.
시34:18에 "야훼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중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 하시는도다" 마음이 상하고 중심으로 통회하고 자기의 죄책을 다 회개하고 벗어버리고 과거에 잘살던 오만하고 교만한 자리를 다 떠나보내고 회개하고 자기가 낮은 품꾼으로 통회하고 회개하면 주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베푸는 것입니다.
욜2:13에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야훼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마음을 찢고 야훼께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오만하고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결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겸손하고 깨어지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낮아진 자는 주님이 찾아 오셔서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탕자의 위대한 점을 거기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3.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이 탕자는 그 많은 죄를 아버지의 지은 죄, 하나님께 지은 죄를 회개하고 자기를 용서하고 오만하고 교만하고 도도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낮아져서 품꾼의 하나가 되어서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이것이 절대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길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자고 결심한 그는 이와 같은 마음의 준비를 한 것입니다. 그냥 돌아가자. 죄를 지은 그대로 회개도 안하고 그냥 돌아가자. 안돌아가지는 것입니다. 과거에 오만하고 교만하고 “잘사는 대접을 해달라. 나에게도 과거같이 부자로 만들어 주고 으리으리하게 살게 만들어 달라. 나 지금도 기생들하고 놈팽이들 하고 놀 수 있는 자금을 대달라.” 그러한 태도로 나올 때 아버지는 받아주지 않습니다. 수렁에서 먼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수렁에서 나오지 않고는 아버지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탕자는 수렁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아버지께 죄를 회개하고 자기 자신의 죄를 용서하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 오만하고 교만하고 자만하고 잘못 살았던 마음을 깨뜨리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품꾼의 하나가 되는 겸비한 마음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일어섰을 때 아버지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리고 부정의 생활은 떠나가고 긍정적인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즉, 그는 이제는 아버지를 향해서 희망을 가지고 나가요. 품꾼의 하나로부터 출발해서라도 희망을 찾자. 살길은 여기밖에 없다. 살길은 돼지수렁에서 벗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희망을 향해서 그는 전진했습니다.
렘29:11~13에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야~ 얼마나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까?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평안을 주고 재앙에서 벗어나게 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어찌하든지 희망을 주고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는 것이니, 수렁에서 벗어나서 기도하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을 찾고 만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좋은 하나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부정적인 삶속에 빠져 있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부정의 수렁에서 벗어나서 긍정으로 향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높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거에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죄인이라도 아버지에게 회개하고 나오면 아버지가 죄를 용서하고 씻어 주시고 그 여파를 가지고서 이웃에 회개하고 나를 용서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여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거기에 플러스해서 우리 마음이 깨어지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과거에 잘살았던 행세 다 버리고 부귀, 영화, 공명, 명예, 지위를 다 진토에 내던져 버리고 훨훨 벗어 잊어버리고 품꾼의 하나가 될 각오를 하고 출발을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활짝 두 손을 내밀고 우리를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영국의 존 메이어 수상은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집이 하도 어려워서 열여섯 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새벽부터 공사현장에서 콘크리트를 반죽하는 일을 한 후에 간단히 토스트로 아침식사를 대신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습관은 그가 이후에 은행의 간부와 정치가로서 명성을 얻은 후에도 이어져서 그는 서민들이 출입하는 식당을 즐겨 찾았습니다. 그가 사는 집도 서민층이 사는 동네에 살았습니다. 수상이 된 이후 기자들은 그에게 고난의 세월을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비관적인 생각을 갖지 않았다. 항상 희망을 갖고 일하며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지게 했다. 하늘은 표정이 밝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 복을 준다고 말한 것 입니다. 보세요. 어떤 상황이든 비관적인 생각을 갖지 않고 항상 희망을 가진다.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얼굴에 웃음을 떠나지 않게 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복을 주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늘 희망을 향해 긍정적으로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절망을 안고 부정적이 되면 우리는 좌절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로에서 시작하는 인생을 살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돈도 다 벗어 버리고 빈손 들게 돼서 제로에서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마음의 겸허함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올 때 내 마음이 부하면 안 됩니다. 내 마음이 제로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부귀, 영화, 공명을 다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다 그것을 벗어 버리고 빈 손 들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부귀도 영화도 공명도 지위도 명예도 하나님 재단 앞에 다 바쳐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빈손 들고 품꾼이 되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루하루 사는 것이 품꾼의 삶 아닙니까? 내일을 살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내일 일을 자랑치 말라. 오늘 네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하나님 부르시면 하나님 앞에 나서야 될 것 아닙니까? 우리는 실제로 제로 인생인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내 세상에 내가 가지고 있는 지위, 명예, 권세, 부귀, 영화 이 모든 것을 다 십자가 밑에 내려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걸림돌이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제로 인생으로 출발해서 하나님만이 우리의 희망이 되고 우리의 긍정적인 삶이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벧전5:5~7에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교만한 자를 돌보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겸손한 자를 하나님이 돌보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로에서 시작하는 인생 품꾼의 하나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품꾼의 하나로써 주님께 나가면 그때부터 우리 인생은 우리의 수고하고 노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세계가 열려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자기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교만을 깨뜨리지 아니한 사람은 자기의 노력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십자가에 다 저버리고 교만은 깨뜨리고 오만을 깨뜨리고 제로인생으로 출발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탕자가 제로 인생이 되어서 아버지께 나오는 장면을 여러분 보십시오. 아버지께 그는 완전히 깨어져서 품꾼의 하나로 보시옵소서 하고 나왔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늘에도 죄를 지었고, 아버지에게도 죄를 지었으니 이제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나를 하루하루 고용하는 품꾼의 하나로 보아 주시옵소서.” 아버지는 대답 안했습니다. 이미 이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은 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가 죄를 버리고 교만을 버렸을 때 하나님은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 아버지가 얼마나 사랑한지 그것을 표현하기를 잃었다가 찾았으며 죽었다가 살아난 아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를 버리고 오만을 버리고 빈 손 들고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고 하신 말씀이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다. 이 내 아들은 잃었다가 내가 도로 얻었다고 말씀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이 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께 이아들이 빈 손 들고 나와서 꿇어 엎드리니까 아버지가 아들을 일으켜서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허름한 옷 아닙니다.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아들이 되었다는 표시인 반지를 갖다 끼워라.” 유대 나라에서는 가족은 반지를 끼웁니다. “그 다음 신발을 신겨라.” 종들은 신을 안신어도 아들은 신발을 신기는 것입니다. “신발을 갖다 신겨라.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우리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었다.” 이아들이 입이 벌어졌습니다. 어안이 벙벙합니다. “아버지여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나이까?” “이제부터 너는 나의 은혜로 사는 자식이다. 이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끝났다. 네가 새사람이 되어 돌아왔으므로 이제 너는 나의 힘으로 사는 것이다. 내가 돌봄으로 사는 것이다. 내 옷을 입고 내가 주는 신발을 신고 내가 주는 반지를 끼고 내가 잡는 송아지를 먹고서 내 집에 사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팔로써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용서받은 의로운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영광의 옷을 입혀 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반지를 끼워 주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언약의 말씀을 신겨 주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성령을 주셔서 의와 평강과 희락, 믿음, 소망, 사랑의 잔치 상을 베풀어 주어서 하나님 앞에서 기쁘고 즐거운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부정에서 긍정으로 들어와서 사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수렁에 빠진 삶이 재기하는 길은 긍정적으로 나가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 길은 십자가 앞에서 용서로 새롭게 되고 철저히 과거를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품속에 뛰어 들어가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살지 말고 은혜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속에 사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과 인본주의로 삽니다. 그러나 주님께로 죄를 회개하고 깨어져서 탕자가 변화되어 돌아온 사람은 하나님 섬기며 살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이제는 앉아도 은혜요, 서도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약속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복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 성령 충만의 잔치 상을 베풀고서 살다가 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수렁 속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적고 큰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거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수렁에서 나오기 위해서 그 좌절과 절망에서 나오기 위해서 우리는 십자가 앞으로 나가십시다. 회개하십니다. 철저히 회개하십시다. 용서를 하나님께 구하고 사람에게 구하고 자기 자신도 정죄하지 말고, 열등의식과 좌절감에 빠지지 말고 용서해 주고, 현재를 직시해서 제로로 하나님께 나가십시다. 제로성 게임입니다. 빈손 들고 나가십시다. 아무것도 자랑하지 마십시오. 현재는 과거에 예수 믿지 않고 죄악에 살던 시대에 내가 아닌 것입니다.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돈도 다 떠나갔습니다. 나는 현재 품꾼의 하나로써 제로가 되어서 주님 앞에 빈손 들고 하나님이여, 하나님만이 나의 생명이요, 모든 것은 모든 것입니다. 주께만 의지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삽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만 따라갑니다. 주님께서 은혜로 품어 주시고 여러분 은혜로 인도해 주시고 은혜로 살려 주셨다가 은혜 중에서 천당에 올라가서 영원히 은혜로 말미암아 살게 만들어 주십니다.
<기도>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다 크고 작은 탕자였는데 우리가 수렁에 빠져 허덕일 때 십자가를 바라보고 용서의 길을 열도록 만들어 주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용서받은 의인이 되고 과거를 다 청산하고 빈 손 들고 아버지께 나가 은혜를 받아 살게 만들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혹시 이 현실을 잊어 버리고 과거로 돌아가는 어리석은 사람 없게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다 깨어지고 낮아지고 회개하고 품꾼이 되어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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