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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6: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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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정명 형제 |
참고 : | 새길교회 2009.9.20 주일설교 |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선물로 주어진 삶
[요한복음 16 : 20~24
박정명 형제
겁도 없이 <말씀증거>를 하겠다고 나서놓고, 몇 주를 멍하고 난감한 기분으로 보냈습니다. 이 자리에서 감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참 없을뿐더러 아는 성경말씀도 없었기 때문에, 저는 머릿속에서 맴도는, 희망에 관한 루쉰의 한 어구만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서 마땅히 하는 일이 없는 저는, 요즘은 제가 준비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무작정 쌓아놓고 충동적으로 사는 편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재미있게 하면서 뭔가 배울 일들도 많이 있을 텐데, 저는 아침 열 시쯤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오전 시간을 때웁니다. 몸은 게으르고, 머리에는 정리되지 않은 일들과 욕심과 감정들만 얽혀서 무력감만 쌓여갑니다.
말 그대로 ‘미저러블’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던 어느 하루였습니다. 순전히 저의 불성실함과 부정직함으로 친구와 약속을 못 지키고 폐를 끼치게 됐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탓할 것이 저뿐인 상황이 생겼습니다. 잘못했다는 느낌과 함께, 방만하고 무기력하게 살아온 스스로가 미워서, 저는 가슴에 돌 한 개가 콱 들어박힌 느낌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느낌을 피하고 싶어서 저는 들어주지 않으실 것이 분명한, 잘못했어요, 근데 용서해주세요, 와 같은 기도만 엎드려서 반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할 일의 한 가지라도 하자, 라고 생각하며 그 다음 주까지 청년회에서 읽기로 했던 요한복음을 읽자고 성경을 폈습니다. 물론, 읽어야 할 성경 말씀도 많이 밀려 있었습니다.
이 때 요한복음을 읽고 감동을 받았으며, 제 삶이 달라졌다, 라고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이라면 너무 전형적인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17장 사이의 말씀, 예수님이 잡혀가시기 전,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들을 읽으면서 제 심장은 강하게 뛰었고, 북받쳐 올랐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인 인세 속에서 고단하셨을 것이고, 떠나실 때가 되어 마음이 복잡하셨을 것이고, 믿음 없고 약한 제자들을 보면서 외롭기도 하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하셨던 말씀들은 격려와 당부, 그리고 확신을 주시는 사랑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해도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너희는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아라.”와 같은 말씀들을, “진정으로 진정으로”, 정말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약속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은 오직 “서로 사랑하라”는 것 하나였습니다.
말씀들을 읽으면서 제 마음은 어느새 제 고민들을 떠나 구름 위에 떠 있었습니다. 온갖 기쁨과 절망에 몸부림치고 질곡을 겪는 우리의 삶이, 본질적으로는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뿐임을 저는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지 못하고 흔들리는 인간의 약함도 사랑하신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그 약함 속에서도 어떻게든 걸어 나가면 하나님 곁에, 그리고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저는 잘한 것도 없이 용서받은 양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가슴이 터질 정도로 감동하면서 본 영화가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라는 영화입니다. 환타지적 요소를 좀 담고 있는 영화인데요, 인생이 무엇이고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관한 위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중세 기독교의 ‘연옥’은 용서받을 수 있는 자들이 죄의 대가로 형벌을 받고 인생을 정리하는 중간적 공간이라 알고 있습니다. 원더풀 라이프의 배경은 역시 삶을 정리하는 공간으로서의 연옥인데요, 이 영화에서 연옥의 컨셉은 중세 기독교에서와 다릅니다. 죽은 자들은 1주일 동안, 자기 인생에서 영원히 기억하고픈 하나의 추억만을 고릅니다. 추억을 고르면, 죽은 자들은 그 추억을 영화로 직접 찍어보며 인생을 정리하고, 안식의 세계로 갑니다.
단 하나의 기억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좀 섭섭하고, 잊혀지는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슬픈 일 같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죄적과 공과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자신의 삶을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이 본질적으로 ‘주어진 선물’이라는 점을 암시합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우리의 삶은, 스스로의 삶을 얼마나 사랑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평가된다는 점에서 무척 평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의 인생관 안에 예수님이 주신 계명, “사랑하라”와 예수님이 하신 약속 “너희가 구하는 것을 주겠다.”의 두 말씀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절하게 느껴가며 읽었던 말씀들 가운데 저를 가장 뒤흔들었던 것은 16장 20절에서 24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에 대한 것입니다. 물론 제가 느껴본 절망의 깊이는 아직 그리 깊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절망의 순간에 생의 에너지가 무척 강렬하게 타오르는 것, 그리고 절망 속에서 희망이 발견되는 순간 사람들이 살아있음과 행복함에 강하게 전율할 것이라고 막연하게나마 느낍니다. 아마도 그런 순간들 속에서 삶의 정점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혀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너희가 울며 애통해할 것’이며 ‘슬픔에 싸일 것’이라 예고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잡혀 돌아가심은, 그들의 삶과 희망을 걸었던 빛과 같은 존재가 당대의 보수적인 유대교의 탄압과 로마 제국의 혼란스런 정세에 삼켜져 버림을 의미하며, 세상은 그들이 어릴 적부터 봐온 것처럼 관습과 힘의 논리로 흘러가는 증거로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을 뚫고, 도저히 상식으로 믿을 수 없는 방식으로 부활하시고, 제자들을 ‘아버지 곁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은,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며 산 사람들을 위한 가장 강력한 희열의 순간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이것은 마지막 구절처럼 순전히 “너희에게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성경을 읽기 전 제가 마음속으로 만지작거리던 루쉰의 말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희망이란 본래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다. 희망은 대지 위에 난 길과 같다. 애초부터 땅 위에 길이란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그 곳이 길이 되기 때문이다.”
재일동포이자 민주화 투사의 가족으로써 고단한 삶을 살아오셨던 서경식 씨는 루쉰의 말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루쉰이, ‘희망이란 본래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할 때, 그는 희망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거의 없다’라고... 인간은 희망이 있기 때문에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걸어가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희망’이다.”
서경식 씨나 루쉰의 말처럼, 우리 주변에는 애초부터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여기서 인간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희망이 ‘주어져서’가 아니라,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인간이 어떤 주체로써 그것을 살아내고, 겪어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씀들에 깊이 공감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의 실천이 없이는 희망이 만들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는 <원더풀 라이프>를 생각하고, 예수님의 말씀 속에 깃들어 있던 확신과 사랑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희망이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중요한 은총의 일부가 아닐까, 삶을 한 계단 위에서 바라보면 ‘희망이 없는 상황이란 없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희망은 믿음을 갖고 실천하는 사람을 위해 신이 준비한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저는 제 생의 마지막 날, 제 삶의 기억을 고르라면서,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시면서 비워두신 제 자리를 가리키실 예수님을 감히 상상하고 있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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