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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은사의 통일성

고린도전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201 추천 수 0 2009.11.08 1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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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12:12-27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좋은교회 http://charmjoun.net 
2002·06·08 설교

 성령님께서는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나눠주십니다. 이렇게 다양한 은사를 받은 성도들은 그 은사를 서로 귀하게 여기면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가 이렇게 다양하기 때문에 교회는 더욱 아름답고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은사의 다양성이 교회의 일치를 해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합니다. 각자가 다 다른 은사를 가지고 나름대로 봉사한다면 어떻게 교회가 일치를 이룰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이런 생각을 가진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이 문제에 대해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은사의 다양성은 교회의 일치를 방해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의 일치를 증진하고 촉진합니다. 교회 안에 나타나는 은사들은 일치 속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바울은 인간의 몸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12절).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의 사역을 완수하시기 위해서 살과 피로 된 몸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그 분의 사역을 계속하시기 위해서 살아있는 인간들로 구성된 몸을 가지고 계십니다"(Bittlenger).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한 성령을 통해 지체로서 이 몸에 참여합니다.
  우리 몸에는 수많은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 지체들은 각자 다른 기능과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체가 많고 그 기능과 역할이 다르다는 것이 몸의 일체성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다양한 지체들이 각각 그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해야만 건강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이와 같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모든 성도들이 각각 이 몸의 지체들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각 지체들에게 각기 다른 다양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다양한 은사들은 교회의 일치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의 각 지체들이 각기 다른 은사를 가지고 충성되게 교회를 섬길 때 그 교회는 건강하고 은혜가 풍성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일치의 근원

  교회에는 많은 성도들이 있고, 그들이 받은 은사들이 각각 다른데 어떻게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까? 일치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은사를 받은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의 출신과 취미와 수준과 고향이 같아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일치는 그 구성원들이 모두 똑같은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교회의 일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바울은 교회의 일치는 모든 성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영적인 경험에 있다고 말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13절)
  유대인과 헬라인은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그 역사와 종교와 문화가 매우 다를 뿐 아니라, 당시 세계의 상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로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와 같은 이방교회는 헬라인들과 유대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는 노예와 자유인이 역시 같이 있었습니다. 노예들과 자유인들은 더욱 이질적인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교회에 나와서 함께 성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바울은 그들이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토록 이질적인 사람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13절을 근거로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은 교인들을 일등 그리스도인과 이등 그리스도인의 2단계로 구분해왔습니다. 그들은 여기 나오는 성령세례는 예수 믿고 난 후에 일어나는 체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구원은 받았으나 성령세례는 받지 못한 사람과,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성령세례도 받은 사람의 두 부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받았으나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무기력한 삶을 살며 육신적인 생활방식을 추구하며, 성령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능력과 축복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본문을 왜곡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13절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일부만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다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을 두 부류로 구분하는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이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이 분명합니다.
  1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령세례'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예수 믿게 된 사람들은 그 출신과 배경과 어떤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이 된다. 우리를 이렇게 하나되게 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십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을 언급한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다양성을 상기시켜줍니다. 고린도는 여러 문화권 출신의 사람들이 가득 찬 국제적인 항구도시였습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도 여러 부류의 이질적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증거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적 능력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몸과 지체

  바울은 다양한 성도들이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있는 교회를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는 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지체들이 있는가 하면, 내부에 있어서 겉으로 볼 수 없는 지체들도 있습니다. 이 지체들은 각각 다르지만 각자 독립적이지 않고 몸 안에서 질서정연하게 통일성과 일치를 이루고 있습니다(12절). 각 지체는 그 기능과 역할을 통해서 몸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각 지체가 온전하게 제 기능을 다할 때 우리 몸은 건강하고 왕성해집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각자의 역할을 다할 때 교회는 건강하고 풍성해집니다.
  '밀림의 성자'라 불리는 슈바이쳐는 철학, 신학, 의학, 음악 부문에서 4개의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처럼 30세 이후에는 남을 위해 살기로 작정하고 아프리카에서 병원을 열고 원주민들을 위해 일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슈바이쳐가 일하는 병원을 방문하여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 같이 훌륭한 사람이 이렇게 고생스럽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슈바이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를 그렇게 안쓰럽게 보지 마십시오. 주님의 손이 되어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주님의 손이 되어, 주님의 발이 되어, 주님의 입이 되어 일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영광스럽고 복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봉사하는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억지로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각자가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충성을 다할 때 우리는 가장 복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는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몸된 교회 안에서 지체된 성도들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자세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지체들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15-16, 21절)

  어떤 사람이든 나는 교회에 필요없는 존재라는 컴플렉스를 갖는다든지,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를 끊고 사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교만함도 매우 잘못된 태도입니다. 15-16절은 스스로 교회에 소속되기를 거부하거나, 스스로 자신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거나, 은사를 받지 못했다고 서운해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21절은 다른 지체를 경멸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전자는 열등감, 그리고 후자는 우월감을 나타냅니다. 교회의 일체성을 가장 심각하게 방해하는 것이 바로 이 두 가지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해롭게 하는지 다음의 예화를 보면서 생각봅시다.
  족제비라는 동물은 몸의 절반 이상이나 되는 길고 탐스러운 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족제비에 관한 재미있는 우화가 있습니다. 족제비가 사냥개에게 쫓기다가 죽을힘을 다해 겨우 자기 굴속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족제비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눈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내가 개를 피해 도망할 때 무엇을 했니?" 눈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주인님이 도망할 때 길을 찾고 앞을 살피느라고 여념이 없었지요." 족제비는 자기가 개를 피해 이렇게 도망한 것은 눈의 덕택이라고 하면서 눈을 어루만졌습니다. 그리고 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내가 도망할 때 무엇을 했니?" 귀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개가 짖는 소리와 뒤쫓아오는 소리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달하느라고 힘을 다했답니다." 족제비는 귀를 쓰다듬으면서 흡족해 했습니다. 그리고 다리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내가 도망할 때 무엇을 했니?" 다리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짧은 다리지만 개보다 몇 배나 부지런히 달려서 여기까지 도망하게 했지요." 족제비는 다리가 가장 수고를 많이 했다고 하면서 다리를 칭찬했습니다. 이번에는 꼬리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개가 그렇게 무섭게 쫓아올 때 무엇을 했니?" 꼬리가 대답했습니다. "개가 나를 금방이라도 물 것 같아서 다리 사이에다 집어넣고 있었지요." 꼬리의 말을 들은 족제비는 화가 났습니다. "아니, 다리가 그렇게 죽도록 애쓰고 있을 때 너는 다리에게 방해가 되도록 그렇게 했단 말이냐? 안되겠다. 너 같은 놈은 개에게 주어버려야겠다." 이렇게 말한 후에 족제비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개를 향해서 꼬리를 내밀었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개는 족제비 꼬리가 나오자 얼씨구나 하고 물고 늘어졌습니다. 그러자 결국은 족제가 밖으로 끌려 나와 잡혀 죽고 말았습니다.
  이 우화는 우리 몸의 모든 부분이 다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 몸의 지체 중에서 어느 것도 필요치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 중에 하나만 잘못되어도 온 몸이 고통을 당하고 문제가 생깁니다. 혀나 이가 아프면 음식 먹기가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마찬가지로 교회의 지체들은 모두 요긴합니다. 그리고 지체들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교회에서 필요치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에 꼭 필요한 지체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다른 모든 형제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 서로가 명심해야 합니다.

    지체들은 서로 다릅니다(17-20절)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입니다. 그리고 각 지체는 유일하고 독특해서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고 대신할 수 없습니다. 만일 지체들이 각각 자기가 원하는 지체가 될 수 있어서 모두 눈이나 입이 되었다고 칩시다. 그런 몸은 매우 기형적이고 쓸모가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습니다(18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지체들을 몸에 배치하신 것입니다. 각 지체가 다른 것, 그리고 그 기능과 역할이 다른 것은 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계획하신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각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시고 배치하시고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영광과 축복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삶의 목적과 보람이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충성하는 성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 쓰임을 받게 되는 줄 알고 기뻐합니다. 우리 교회가 다같이 기도하며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기쁨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아니겠습니까?

    지체는 서로 돌보아야 합니다(22-26절)

  우리 몸의 지체들은 서로 돌봅니다. 만일 우리 몸의 어느 부분이든 한 대 맞으면 우리의 손은 본능적으로 그 자리를 어루만집니다. 눈앞에 뭔가가 나타나 위협이 된다 싶으면 눈꺼풀은 재빨리 문을 닫아 버립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혀와 이가 얼마나 긴밀하게 협력하는지 보십시오. 혀는 쉬지 않고 음식물을 어금니 사이로 밀어 넣어줍니다. 간혹 이가 실수해서 혀를 깨무는 때가 있습니다.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혀는 이를 원망하거나 공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를 만져주고 쓸어줍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모습입니까?
  그 뿐입니까? 우리는 몸의 지체들 중에서 약하게 보이거나 덜 귀하게 보이는 부분들에 더욱 신경을 씁니다. 우리 얼굴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칭찬을 받는 부분은 눈일 것입니다. 반대로 가장 소홀히 여기고 무관심한 부분은 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귀에 가장 치장을 많이 합니다. 요즘엔 귀고리 달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 손가락 중에서 어떤 손가락이 가장 덜 귀하겠습니까? 아마도 무명지일 것입니다. 오죽하면 무명지라고 부르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무명지에다 가락지를 끼워줍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지체들이 서로 돌보는 것처럼, 교회의 지체들은 서로 돌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체들이 서로 돌보게 하심으로 몸을 고르게 하십니다(24절). '고르게 하다'라는 말은 조제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알약들을 갈아 섞어서 약을 조제하는 것처럼 한다는 뜻입니다. 또는 물감을 혼합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서로가 고르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가 고르게 되는 방법은 서로 돌보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것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즉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우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함께 울어주는 것보다 함께 기뻐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다른 형제가 복을 받고 쓰임 받고 칭찬을 들을 때 정말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된 겸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체들의 기쁨과 슬픔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그들을 돌보고 있습니까? 당신은 형제의 슬픔과 아픔에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까? 형제의 기쁨에 진정으로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사역은 그 분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고 당신의 몸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 계시는 동안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는 일을 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이 일을 계속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주님처럼 서로를 겸손히 섬김으로써 주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계속해나가야 합니다.
  몸과 똑같은데 몸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은 몸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몸이라고 부르지 않고 시체, 또는 송장이라고 부른다. 몸은 아름답고 귀합니다. 그러나 시체는 부패하며 냄새가 납니다. 사람들이 싫어하고 피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 몸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하사 주님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하게 하시려고 성령께서는 몸의 각 지체들에게 생명을 주셨고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대로 충성하면 교회는 아름답고 건강하게 됩니다. 그러나 서로를 돌보지 않고 자기 유익만을 추구하며, 형제를 멸시하고 자기만을 내세운다면 그 교회는 죽은 교회가 됩니다. 부끄럽고 냄새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주님께서 하시던 일들을 능력있게 감당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높이 드러내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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