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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가지 최상의 복 (Ⅰ)

마태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837 추천 수 0 2009.11.09 23: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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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1~5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7년 7월 8일 주일2부설교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서론>

‘여덟 가지 최상의 복’이라는 제일 편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며 복을 받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복을 많이 받은 사람과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을 살펴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평생 고생하지 않고 남의 덕에 잘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한평생 뼈 빠지게 고생만 하다가 가는 사람이 있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운명적으로 차별 지어진 복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순종하여 믿고 받아 누리면 받을 수 있는 지극한 복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본론>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주님께서는 첫째로,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그 복은 천국을 소유한 복인 것입니다. 천국은 죽어서 올라가는 것만 천국이 아니라 이 땅에 살아있을 동안에 마음속에 천국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의 놀라운 은총이 마음속에 강물처럼 넘실거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것은 심령을 비운다는 것입니다. 꽉 들어차 있는 사람은 가난하지 않잖아요. 심령을 비워버린 사람이 가난한 사람인 것입니다. 아담은 심령을 비우지 못하고 마귀의 탐욕과 욕심으로 채웠습니다. 아담의 마음에는 마귀의 꾀임을 받아서 욕심과 탐심이 꽉 들어차 있으므로 욕심과 탐심을 통해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말하는 탐심과 욕심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는 그 결과 에덴의 낙원 속에 있으면서도 원망과 불평이 꽉 들어차고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천국을 잃어버리고 지옥의 노예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가 죽어서 지옥가기 전에 이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그 마음속에 하늘나라가 떠난 그 심정에는 미움, 원한, 분노, 낙심, 좌절, 절망 등이 꽉 들어찬 생지옥이 이루어지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은 욕심과 탐심을 비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탐욕을 발통시켜 유혹하려고 해도 예수님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마음속에 욕심과 탐심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마귀가 노크를 해도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산이 없는데 고함을 쳐봤자 산울림이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 욕심과 탐심을 비워 버렸기 때문에 욕심과 탐심으로 마귀가 아무리 고함을 쳐도 메아리쳐 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탐욕을 완전히 비워버린 것입니다. 40주 40야 금식하고 배가 얼마나 고팠습니까? 그때 마귀가 와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아들의 권능과 지위를 사용해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구복부터 먼저 채우라는 것입니다. 탐욕의 속삭이는 음성인 것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 단호하게 주님께서 마귀의 탐욕을 거부한 것은 주님 속에 탐욕이 없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떡으로만 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리고 마귀하고 통하지 않았습니다. 마귀의 말에 메아리쳐 오는 음성이 없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안목의 탐욕으로 유혹하려고 했습니다만 예수님은 지위나 명예를 탐하지 않았었습니다. 마귀는 말하기를 "너희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와 위엄을 사용해서 명예를 얻으라. 높은 뾰충 탑에 데리고 가서 뛰어 내리라.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고 발에 돌이 부딪히지 않게 날씬하게 내려 앉는 것을 보면 박수를 치고 너의 명예와 영광을 돌릴 것이다."라고 꾀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라고 성경까지 인용하면서 탐욕으로 주를 이끌었으나 주님 마음속에는 지위나 명예는 유명해지기를 원하는 탐욕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메아리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4:7) 마귀가 명예욕으로 예수님을 넘어뜨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산위에 올라가서 세상 부귀영화를 다 보이면서 "내게 절하면 이것을 네게 주겠다."고 한 것 압니다. 예수님 마음속에 부귀, 영화, 공명을 원하는 탐욕과 욕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욕심을 가지고서 아무리 유혹해도 메아리치지 않습니다. 게임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한 것 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을 비워버린 사람에게는 아무리 세상 것을 가지고 욕심과 탐심으로 유혹해도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세상 욕심과 탐심이 있으면 마귀는 욕심과 탐심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는 욕심과 탐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욕심과 탐심으로 유혹했고 예수님도 욕심과 탐심으로 유혹했는데 아담은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예수님은 마음을 비웠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이 가득이 차 있어서 마귀가 세계가 들어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마음에 탐심과 욕심을 비워 버려야 되는데 어떻게 비워 버립니까? 주님 앞에 나와서 회개와 통회와 자복으로 욕심과 탐심을 비워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천국이 아무리 가까워도 마음에 세상의 욕심과 탐심이 꽉 들어 차 있으면 주님 나라가 들어올 틈이 없는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을 주님 앞에 회개하고 자복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비워 버리면 그 속에 하나님이 들어오시고 예수님이 들어오시고 성령이 들어오시고 천국이 들어와서 마음을 점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이 있으면 그와 함께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마음속에 소용돌이 치는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을 비워 버리고 천국이 들어오면 의와 평강와 희락, 믿음, 소망, 사랑이 충만하게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천양지차의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되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잘못된 방법으로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욕심이 생기면 죄를 짓게 되고 죄가 깊어지면 죽음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엡4:18~19에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욕심이 들어오면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함과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을 비우고 하늘나라와 하늘 의를 구하면 천국이 우리 마음속에 가득하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약1장 14절에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
욕심과 탐심이 있을 때 거기에 끌려서 시험에 빠지고 미혹되지만 욕심과 탐심을 회개와 자복으로써 비워 버리고 하늘나라의 의와 영광을 구하면 마음속에 성령으로 천국이 임하여 그렇게 마음속이 행복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미움, 원한, 좌절이 꽉 들어차 있으면 생지옥인 것입니다.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이 지옥같이 끌어 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다 토해 버리고 이것을 다 비워 버리고 마음속에 의와 평강과 희락과 믿음, 소망, 사랑이 넘쳐나면 마음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이 여기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천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죽어서 천당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 마음속에 욕심과 탐심을 비워 버리고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면 천국이 들어와서 이 땅에서 마음에 천국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기쁨과 평안과 소망과 의와 영광이 넘치게 되면 얼마나 행복하게 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행복은 우리마음의 상태에 있지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부귀, 영화, 공명을 환경에 다 갖다 놓아도 마음이 지옥이 되어 있으면 결코 행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어도 마음이 천국이 있으면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은 마음을 비우게 하기 위해서 시험과 환난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삶의 풍랑이 일어나면 욕심과 탐심의 짐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지중해를 건너던 배들이 큰 풍랑을 만나면 배에 짐을 먼저 다 풀어서 바다에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풍랑을 만나면 짐을 풀어야 배가 파선되지 않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삶의 풍랑을 만나면 짐을 풀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을 회개하고 자복하게 되고 주님 앞에 부르짖게 되면 주님의 나라가 우리 속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119:67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엡4:22~24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사람을 입으면 좋겠는데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애써도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안 되니까 우리가 깨어지고 회개하고 욕심과 탐심을 자복하면 성령이 도와 주셔서 우리 마음을 청소시켜 주시고 성령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아들이 우리 마음에 안주하여 계시고 천국이 우리 심령 속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소유하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탐욕과 욕심이 꽉 들어찬 자는 지옥을 마음속에 가지고 생지옥의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이 결코 행복을 갖다 주지 않습니다. 욕심과 탐심을 비워야 하늘나라가 임하시고 하늘나라가 와야 의와 평강과 희락과 믿음, 소망, 사랑으로 출렁이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에 있지 환경에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행한 이유를 이웃을 탓하고 환경을 탓합니다만 이웃과 환경이 우리에게 불행을 가져올 권한은 없습니다. 아무리 마귀가 꾀어도 예수님은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탐욕과 욕심이 없으면 이웃의 어떠한 어려움에도 환경에도 우리는 고난을 당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에 하늘나라가 임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둘째로, 주님께서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위로를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애통이란 무엇인 것입니까?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탄식하고 슬퍼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만하는 사람은 애통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고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깨 쭉 펴고 주먹을 쥐고 건방지게 턱을 높이 들고 자만하지 애통하지 않습니다. 애통하는 사람은 가슴을 치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못나고 처참하고 모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았을 때 가슴을 치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hungry Spirit"라고 말합니다. 심신이 배고픈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심신이 배고픈 "hungry Spirit"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찌하든지 배고픔을 면하려고 자기의 배고픔을 채우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34:18에 "야훼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 하시는도다." 마음이 상해서 자기의 부족함을 탄식하고 슬퍼하면 주님께서 와서 축복하시고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원자력 전문가인 정근모 박사는 늘 '1등 인생'에 익숙한 사람이어서 마음에 애통함이 없었습니다. 경기중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한 후에 경기고등학교 시절에는 4개월 만에 월반하여 서울대학교에 차석으로 입학한 천재였습니다. 24살에 우리나라 유학생으로는 제일 먼저 어린 나이에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어서 '꼬마교수'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미국 시민권을 얻고 미국의 과학계에 두각을 나타내는 놀라운 원자 전문학자였던 것입니다. 승승장구하며 나아가던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아들이 신부전증으로 투병생활을 하게 되어 지금까지 1등 인생이었던 그에게 큰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이 세상에 부모에게 가장 괴로움은 자식이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신장이 망가져서 신부전증이 되어서 죽어 가는데 이 세상 1등 인생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까? 너무나 마음에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아들에게 자기 신장을 때 주는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나 중생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들의 질병으로 인한 애통함이 없었더라면 그가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닥친 죽음을 바라보고 얼마나 땅을 치고 애통하고 인간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그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두 손 들고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정근모 박사가 구원받은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고 난 다음 무엇을 해야 되겠는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일해야 되겠다고 미국 시민권 포기하고 한국으로 나와서 과학처장관도 하고, 전력회사 사장도 하고, 오늘날 총장으로써 일하고 있는데 그가 교만하고 오만하고 자기만족으로 꽉 들어찬 인생이 아들이 신부전증에 걸리므로 애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애통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애통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도와주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누가 부르짖습니까? 애통하는 사람이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라는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젊은이가 성공한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놀러나 다니고 유흥업소나 들락거리고 돈이나 쓰고 번질하게 좋은 옷만 입고 다니면 애통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내일이 뻔합니다. 내일에 성공이란 위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잠을 자지 아니하고 고학을 해가면서 애통하는 마음으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 이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은 위로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어떤 위로냐, 축복과 성공의 위로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지금 마음에 애통하는 사람은 장차 위로를 받고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웃고 즐기는 사람은 장차 울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내 마음이 가난해야 "hungry Spirit"가 있어야 이 가난을 면하기 위해서 뼈빠지는 고생을 하고 노력을 하고 애를 썼기 때문에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고 노력하는 자에게 축복을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운동선수들을 보면 복싱선수나 육상선수나 다 가난한 사람들이 성공한 것을 보았습니다. 라면만 먹고, 뛰고, 라면만 먹고 복싱연습을 하는 사람은 눈에 핏줄을 세우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애통하기 때문에, 자기의 생활이 너무나 가난하고 교육도 받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뒤쳐진 처지를 면하기 위해서 결심하고 육상을 뛰고 복싱연습을 하고 운동경기에 노력을 다해서 한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세계적인 인물이 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보았습니다. 세계적인 육상선수, 세계적인 복싱선수 이러한 사람들이 다 "hungry Spirit"를 가진 사람, 배고픈 사람, 애통하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유명한 인사가 되고 마음에 큰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약4:9~10에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 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애통하는 성도가 성령 충만하고 응답의 복을 받습니다. 자기 신앙에 만족하고 기도도 하지 않고 말씀도 읽지 않고 거드렁 거리는 성도치고 성령 충만한 사람 봤어요? 내가 은혜가 모자르고 내가 인격적으로 부족하고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니 너무나 답답한 일이다. 좀더 하나님을 알고 좀더 주님의 은혜를 받고 좀더 성령 충만하고 좀더 능력있는 삶을 살겠다는 애통한 마음으로 새벽기도 나오고 철야기도하고 혹은 금식기도하고 산상기도도 하고 부르짖고 외치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그 마음속에 은혜로 채워 주셔서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성도, 애통하는 교회가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 한국에 지금 100주년 대회를 위해서 온 한국교회가 모여서 기도하고 애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임했던 성령 역사가 100년 후에 우리 한국 땅에 임하여 달라고 온 한국교회가 모일 때마다 기도하고 통곡하고 부르짖고 애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교회 성령운동의 위로가 임할 징조인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만하고 만족해서 부르짖지도 아니하고 기도하지 아니하고 거드렁 거리면 하나님이 결코 부흥이라는 위로를 허락하여 주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삼상1: 11에 보면 만군의 야훼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겠다고 한나가 말했습니다. 한나는 브닌나가 심히 격분케 하므로 마음이 괴로워서 야훼 앞에 애통하며 통곡한 것입니다. 한나가 브닌나가 괴롭게 하지 않았었으면 애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나는 엘가나의 첫째 아내고, 브닌나는 둘째 아내입니다. 둘째 아내는 아들을 쑥쑥 내어 가지고서 잘사는데 첫째 아내인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브닌나가 애통하지 않도록 "아이고 형님 자식이 없으면 어떨까요? 내 자식이 형님 자식 아닙니까? 내 자식을 형님 자식으로 하세요." 그러면서 위로해 주었으면 한나가 마음을 편히 가지고 기도 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브닌나가 "자식도 못 낳는 처지에 무슨 첫째 마누라냐. 마누라 내놓으라. 내가 첫째가 되고 싶다. 네가 무슨 첫째 마누라냐! 자식 낳아봐라. 낳아봐라!" 너무나 마음에 고통스럽고 괴롭기 때문에 성전에 올라가서 성전에 올라가서 한나가 애통해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애통함을 들으시고 위로해서 아들을 주었는데 사무엘을 주신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여러가지 애통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혹은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자식 때문에 사업 때문에 생활 때문에 고통이 다가와서 애통할 때 괴롭지만 그 애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돌이켜 볼 때 우리가 가장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은 때가 언제냐, 애통할 때였던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가슴을 치고 통곡하고 애통할 때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응답해 주시고 체험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신앙이 한 단계 발전한 것을 우리가 체험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위로함이 임하는 것입니다. 애통하기를 그치면 위로도 그칩니다. 애통하기를 그치면 큰 낭패가 납니다. 우리가 88올림픽이 있기 전에는 6.25이후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애통했습니까? 우리도 잘살아 보자고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얼마나 허리춤을 매고 고통을 당하면서 일하고 또 일하고 일하고 또 일했었습니다. 애통하는 마음이 우리 한국 국민에게 꽉 들어차서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 우리도 일본이나 미국처럼 한번 잘살아 보자. 그런데 88올림픽을 하고 난 다음 온 세계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Korea No.1" "와~ 코리아 크게 발전했다. 대단하다." 그런 칭찬을 받는 바람에 그만 어깨가 으쓱해져서 애통하는 마음이 없어져 버리고 만 것 입니다. 우리도 꽤 잘사는가보다. 그때부터 엄청나게 사치풍조가 한국에 바람이 불고, 노사분쟁이 일어나고 여러 사회 구석구석마다 잘못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애통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그 결과 무엇이 왔느냐. IMF가 오고 만 것입니다. 애통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IMF가 온 것 입니다. IMF를 당해서 우리가 모두다 또다시 정신을 차리고 가슴을 치고 애통하고 허리춤을 줄이고 고통을 하니까 IMF를 능가해서 오늘날 이 시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애통함을 잃어버리면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내리막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나 애통할 때는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위로하고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잠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애통하지 않은 교만한 마음과 거만한 마음은 반드시 패망과 넘어짐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욜2:12~13 말씀에 "야훼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야훼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러면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고 복구시켜 주시고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애통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큰 축복인 것입니다. 영육 간에 애통하는 개인이나 민족은 미래에 위로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가슴치고 통회하고 자복하며 애통하는 사람을 보거든 미래에 위로가 있을 것을 예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애통해야 되고, 육적으로도 애통해야 신령한 은혜도, 물질적인 은혜도, 축복도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복이 있는 것입니다.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셋째로, 성경에는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생각하면 사납고 힘세고 무자비한 자가 폭력으로 땅을 차지할 것 같이 생각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착하고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하고 양보하는 사람이 땅을 잃어 버릴 것 같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과 롯을 보십시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친아버지와 다름이 없습니다. 가나안 땅에 와서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가 풀이나 우물 때문에 다투고 싸울 때 이것이 아브라함과 조카 롯 때문에 마음을 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조카가 온유한 마음을 가졌으면 "아이고 삼촌 내가 잘못했습니다. 삼촌께서 좋은 땅을 좋은 우물이 있는 곳을 차지하십시오. 나는 삼촌을 보내시고 난 다음 내가 그 다음 땅을 차지하겠습니다." 이래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조카 롯은 아주 오만하고 방자하게 아브라함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조카야, 네가 동이라하면 나는 서로 하고, 네가 남이라 하면 내가 북으로 할테니 네가 먼저 선택하라." "물론이지요. 젊은 내가 먼저 선택해야지요." 그래서 요단 땅을 바라보고 물도 넉넉하고 목초도 많으니까 그곳으로 가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양보하고 메마른 가나안땅에 남았습니다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더불어 남은 것입니다. 롯은 좋은 땅을 차지하러 갔으나 하나님 없이 갔고 아브라함은 비록 메마른 땅에 남았으나 하나님과 함께 남으니까 하나님께서 온유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셔서 온 가나안 땅을 다 점령하게 하고 하나님 없이 소돔과 고모라로 내려간 롯은 패가망신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온유한 자가 실패하고 낭패하고 버림받는 것 같지만 온유한 자는 하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결국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나운 자는 현재 이익을 손에 얻는 것 같지만 하나님과 같이 하지 않습니다. 양보하고 빼앗긴 온유한 자가 잃어버린것 같지만 여러분 그는 하나님과 같이 하시기 때문에 종국에는 하나님이 축복으로 돌이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높이면 낮출 자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유하는 자가 이기는 자인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과 폭력으로 유익한 것을 다 취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얼마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취한 사람은 하나님이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악을 선으로 변하는 기적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시37:1~2에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에 우리가 비유를 보면 사나운 짐승들이 잘살 것 같으나 실상 보면 사나운 짐승들은 수도 적고 험한 곳에 삽니다. 사자나 범이나 이리들을 보십시오. 들판에 돌아다니지 않습니까? 고산절벽을 타고 다니면서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고 숫자도 많지 않습니다. 사자가 숫자가 많습니까? 범이나 이리가 숫자가 많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나운 자가 좋은 것을 차지할 것 같지만 들판은 차지하지 못하고 높은 바위 틈사이 돌아다니며 숫자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동물은 수도 많고 평탄한 곳에 삽니다. 가장 온유한 동물이 양입니다. 양은 물고 찢을 이빨도 없고 받을 뿔도 없고 잘 뛰어갈 다리도 없습니다. 아주 온유한 짐승이 양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 동물 중에 제일 많은 수가 양입니다. 뉴질랜드에 가면 인구보다도 양의 수가 더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짐승이 죽임을 당할 것 같으나 평탄한 들판에 푸른 들판에 드러누워서 살고 수도 많은 것입니다.
시23:1~2에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온유한 동물은 목자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사나운 짐승은 목자가 없습니다. 목자를 따를 이유도 없고 목자가 사나운 짐승을 끌고 다니지도 않습니다. 온유한 짐승은 목자가 끌고 다니기 때문에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하고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목자로 삼기 때문에 하나님이 푸른 초장으로 푸른 물가으로 인도해 주시고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므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교훈을 통해서 볼지라도 사나운 나라와 국가는 언제나 망했습니다. 역사에 대해서 보면 앗수리아나 바벨론이나 파사나 헬라나 로마는 그 당시에 거대하고 사나운 나라였지만 오늘 역사상 다 사라지고 흔적도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앗수리아에 포로로 잡혀가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파사와 헬라와 로마에 포로가 되었던 약소국 이스라엘은 지금도 독립국가가 되어서 세계 속에 우뚝 솟아 있는 것입니다. 역사상 그렇게 사나운 나라들은 다 망해서 흔적도 없는데 그들에게 짓밟히고 고난당한 이스라엘 소수민족은 지금도 나라를 세우고 독립 국가를 세우고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로써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공산주의 교훈을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독일이 얼마나 사나운 나라였습니까? 온 유럽을 다 석권할 것 같았지만 사나운 나라는 망했습니다. 일본이 사납게 일어나서 대동화 전쟁을 일으키고 온대동화를 다 점령을 하였지만 망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온유한 나라들이 짓밟히고 찟기고 죽는 것 같지만 다 살아 일어나고 부활한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공산화 하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통을 가하고 괴로움을 가해 왔습니까? 그러나 공산주의는 70년 만에 망해 버리고 만 것 입니다. 여러분 사나운 개인이나 민족은 반드시 망합니다.
시76:9에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온유한 자의 목자는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온유한 자의 편에 서서 일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결국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시37:9~11로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야훼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악인은 하나님과 대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하나님이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대항해 싸워서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사나운 자를 대항하시고 심판하시고 온유한 자를 돌보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을 이 땅을 차지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11:29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주님 자체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주님은 자기를 붙잡아 가는 사람에게 몸을 맡기고 때리는 사람에게 얼굴을 돌리고 수염이 뽑히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부드럽고 온유하고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로마의 군인들과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납게 몰아치고 십자가에 죽여서 그들이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돌아보십시오. 로마와 사나운 유대군인들은 온데간데없고 예수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우뚝서 계신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천지를 점령하신 것입니다.
골3:12~13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결론>
오늘 주님이 주시는 팔복 중에 세 가지 복을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두 주간 계속해서 팔복 강해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차별 없이 주기 때문에 우리는 깨닫고 배워서 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해서 천국을 이 땅에서 벌써 가지고 살고 애통하여 주님께 부르짖으므로 응답받는 위로를 우리가 체험하게 되고 온유하고 겸손해서 하나님을 믿고 따름으로 말미암아 결국에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성공을 이 땅에서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러한 마음가짐을 우리가 가져야 그릇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준비된 그릇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하나님이여 마음에 욕심과 탐심을 다 비워 버리고 마음이 가난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천국이 마음을 점령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가 마음을 점령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항상 애통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만족하고 이만하면 되었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hungry Spirit"를 가지십시오. 더 많은 은혜를 받기 위하여 애통하십시오. 더 많은 은총을 받기 위하여 애통하고 부르짖으십시오. 위로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온유하십시오. 주먹은 주먹으로, 이는 이로, 총은 총으로, 칼은 칼로 맞대결 하면 다 망하는 것입니다. 오른편 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며 송사하여 겉옷을 가지려면 속옷까지 주며 억지로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는 온유하고 겸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그 편에 서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있으면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아무리 큰소리하고 주먹을 휘두르고 움켜쥐어도 아무것도 하나님 손에서 빼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사나운 자는 온유한 자를 위해서 예비하고 준비할 따름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의 태도를 준비하는 그 사람은 내일이 있고 영광이 있고 축복이 있겠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참으로 복을 받고 살 수 있는 마음의 태도를 가르켜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축복이 와도 받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마음이 가난하게 도와 주시 옵시고 애통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온유한 마음을 갖고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세상 철학을 따르지 말고 세상 지혜를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 옵소서. 성령이여 우리 마음을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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