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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가지 최상의 복 (Ⅱ)

마태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773 추천 수 0 2009.11.09 23:5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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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6~8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7년 7월 15일 주일2부설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서론>
오늘은‘여덟 가지 최상의 복’제 2편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인생의 복은 그릇이 준비된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릇이 준비 안 된 사람에게 내린 복은 오히려 복이 아니라 화가 되는 것입니다. 요행을 통해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오히려 크게 불행을 당한 이야기들을 우리는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본론>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오늘 네 번째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분은 의인이다. 의로운 사람이다. 우리는 그렇게 말하는데 엄격한 의미에서 의라는 것은 평생에 죄를 한번도 지은 적이 없는 상태며, 마귀의 참소를 전혀 받지 않는 인격이며,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당당히 설수 있는 자격을 말합니다. 이런 의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평생에 한번도 죄를 안 지었다. 계명을 다 지키다가 한 계명만 지키면 그것은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평생에 죄를 한번도 안 지은 사람이 의인이요, 마귀가 아무리 와서 손가락으로 찌르려고 해도 찌를 곳이 없는 흠 없는 사람이요, 하나님 앞에 가슴 딱 펴고 ‘하나님 저 보십시오.’하고 당당히 나설 수 있는 그런 자격을 가진 사람이 의인입니다. 그러니 그런 의인이 타락한 아담의 자손 중에 누가 있겠습니까?
시119:142에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그런데 사64:6에는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많은 수양이나 종교적 신앙을 통해서 의인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죄인이 되고자 하는 타락한 사람 별로 많지 않습니다. 다 어떻게 하더라도 의롭게 살고 의인이 되려고 하고 어느 부모치고 자식 기를 때 의롭고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라고 안 가르치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많은 수양이나 종교적 신앙을 통해서 의인이 되고자 해도 그렇게 하면 할수록 죄가 더 드러납니다.
갈3:10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러니 다 저주 받았지요. 율법이 기록된 것 하나도 없이 다 지켜야 의인이 되는데 율법을 하나라도 범하면 죄인이요, 저주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울을 들여다 보십시오. 거울은 여러분의 얼굴에 흠점을 발견해주지 절대로 씻어 주지는 않습니다. 물이 씻어주지 거울은 씻어주지 않습니다. 율법은 거울과 같아서 우리의 잘못된 점을 지적은 해주지만 우리를 깨끗하게 해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거울에 비추어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는 이 세상에 전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했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날 때부터 벌써 돌이킬 수 없이 부패한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죄는 누룩과 같아서 사람을 부패하게 만듭니다. 아담이후로 모든 자손들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죄 중에 잉태되고 죄 중에 태어나서 부패 되었습니다. 어느 자매님이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요. 자기 외손녀가 집에 왔는데 이모가 빵을 사다 주었는데 그 빵을 감추어 놓았어요. "이모가 사준 빵을 가져 오너라." 그러니까 이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말을 조금 배운 애인데 "이모가 빵 사준 것 없어요." 천연스럽게 거짓말해요. "아니 얼마 전에 이모가 빵을 사다주지 않았느냐."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사다 주었어요." 어떻게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거짓말을 그렇게 천연스럽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안 가르쳐 줘도 어린 아이는 하는 것입니다. 죄는 안 가르쳐 줘도 어린아이는 하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이미 부패한 죄성이 들어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로3: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 없는 의인은 하나도 없어요. 롬3:10~12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기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서고자 하는 사람은 어리석게 짝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담 후에 수양과 도덕과 노력으로 의인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 앞에 설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인간을 의롭게 만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아들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아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써 죄없이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태어나셔서 이 땅에 오셨고 우리의 재물이 되어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덮어 쓰고 형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것은 전부 우리 때문인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사 53:5~6) 영원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재물이 되셔서 영원히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우리의 죄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우리 일생이 아니라 영원히 용서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지 않고는 절대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로운 신분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행위의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니라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선물은 누구나 주는 사람에 의해서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하는 신분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엡2:8~9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절대로 인간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은 없습니다. 의롭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설 수가 없습니다. 오직 유일하게 의로운 길은 예수님이 죄를 용서해 주어서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의로움을 선물로 받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의로움을 선물로 받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설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니, 죄인이 믿음으로 의로움을 선물로 받으면 너무하지 않느냐. 그런 공짜가 어디 있느냐." 공짜입니다. 너무나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므로 우리가 대가를 지불할 수가 없습니다. 햇빛을 돈 주고 살 사람 없습니다. 너무나 값이 비쌉니다. 공짜로 받지요. 공기를 돈 주고 숨쉴 수 없습니다. 너무 값이 비싸기 때문에 공짜로 숨쉬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돈 주고 살수 없습니다. 너무나 크기 때문에 공짜로 받습니다. 계산할 수 없고 돈으로 측량할 수 없는 것은 공짜로 받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우리는 의로움을 선물로 받지 대가를 지불하고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라도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그대로라도 와서 예수를 믿으면 용서를 선물로 받고 의로움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의로운 사람이나 선물로 의로움을 받은 사람이나 받은 것은 한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고 의인이 된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 믿고 의의 선물을 받아 의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의인이 되고나면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 주셔서 의롭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의롭게 될 수 있는 힘은 성령이 오셔야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가 의롭게 살수가 없습니다. 예수 믿고 의롭게 된 사람이 의로운 열매를 맺고 정의롭게 살 수 있는 길은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며, 의지할 때 성령이 힘을 주셔서 우리를 의롭게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1998년 미얀마 즉, 옛날 버마의 한 불교 승려, 파울루라는 사람은 황열병과 말라리아로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그는 3일 만에 화장하기 직전에 관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 동안 천국과 지옥을 보고 경험한 사실을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거짓말에 속고 살아 왔습니다. 저는 우리 조상들이 종류를 알 수 없는 불길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많은 우리 동료들이 미리 간 사람들이 불꽃 가운데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건은 그 지역 전체를 충격 속에 몰아 넣었습니다. 파울루는 그 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시작했고, 이것을 목격한 3백 여명의 스님들이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불교계와 정부는 발칵 뒤집어지고 파울루는 체포되었습니다. 지금 미얀마에서 그의 테이프를 듣는 일은 심각한 범죄 행위가 됩니다. 이러한 일은 '아시안 소수민족 선교회'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인간은 많은 수양이나 종교적 신앙을 통해 의인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구원은 예수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의인은 용서받지 않고는 의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의로움은 행위로써 이룰 수 없으므로 믿음으로 선물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온 천하 인간에게 구원받을 만한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롭게 살기를 사모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예수를 알게 되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로움을 선물로 받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의로움을 선물로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곧장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을 통해서 의롭게 살 수 있는 능력과 힘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롭기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누구를 불문하고 예수님께 나오면 만족하게 되고 기쁘게 되고 의인이 되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게 되고 저 세상 천국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다섯째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 했는데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면 나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김을 당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고 주기도문에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용서해 주지 못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위선적인 기도인 것입니다. "남을 용서해 준 것처럼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러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6:14~15에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남을 용서하지 않고 심판하면 자기도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하루 성전뜰에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데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힌 여인이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에게 끌려 왔습니다. 율법의 제자들에게 끌려 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기를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혔습니다. 성경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힌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손에 손에 돌을 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허리를 굽혀 글을 썼습니다. 어깨 너머로 다 보았는데 성경은 무슨 글을 썼다고 안했지만 추측하건데 주님이 십계명을 썼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꾸 "당신은 이 여자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허리를 펴서 큰 자로부터 작은 자까지 바라보시고 난 다음에 "당신들 중에 계명에 비춰봐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추상같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너희가 율법으로 이 여자를 정죄하니까 나도 너를 율법으로 정죄하겠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그리고 난 다음 주님은 또 엎드려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 나는 말은 안했지만 그들의 개인적인 죄를 예수님이 들추어 내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큰 자부터 작은 자까지 다 돌을 놔버리고 걸음아 날 살려라고 달아나 버리고 만 것입니다. 자기 죄가 드러나니까 주님 앞에 설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 지옥 가는 것 하나님이 지옥 보내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가 드러나므로 견딜 수가 없어서 제발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어서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니십니까? 하나님 앞에 서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고 난 다음 주님이 그 죄를 들추어 낼 때 견디지 못해서 다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한참 만에 예수님께서 "여자여 고개를 들라. 너를 정죄하는 자가 있느냐?" 돌아보니까 "돌멩이만 있고 정죄하는 자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 주님은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교훈을 해서 다시는 죄짓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지 그 자리에서 돌로 쳐 죽이지 않았었습니다.
성경에 눅6:37에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인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남의 죄를 보고서 비평하고 정죄하고 돌로 치면 반드시 내가 정죄 받고 돌로 얻어 맞을 때가 다가옵니다. 왜 사람이니까.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남을 정죄하고 돌로 때리면 나중에 내가 정죄 당할 때 돌로 얻어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위로해서 제기하게 도와주면 내가 쓰러졌을 때 사람들은 내가 한 그대로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다시 일으켜 세워준 도움을 베풀어 주게 될 것입니다. 남을 용서 없이 심판하면 자기도 그대로 심판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내산 밑에 사는 사람과 갈보리산 밑에 사는 사람이 다릅니다. 구약은 시내산 밑에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엄중한 계명대로 살고 그 계명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 범하면 사형이다. 몸서리칩니다. 그러나 갈보리산 밑에 가면 예수님이 너가 십계명을 어기고 지은 죄를 내가 다 맡았다. 죄의 빚을 내가 다 청산했으니 너는 나를 믿고 빚에서 해방되라. 용서와 사랑이 갈보리 산에 넘쳐납니다. 시내산 밑에는 불이 산을 두르고 번개가 치고 뇌성벽력이 났습니다만 갈보리 산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 찢고 피흘려서 달려있는 모습만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통해서 용서와 사랑이 강물같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내가 너의 죄의 빚을 갚았다. 죄의 빚은 죄의 빚이다. 갚기는 갚아야 된다. 네가 갚든지 내가 갚든지 갚아야 되는데 너는 못 갚지 않느냐. 그러므로 내가 대신 갚아 주었으니 나를 받아들이고 죄에서 해방되라." 제가 젊을 때 나의 동기동창이 시골에서 목회를 했는데 부흥회를 갔습니다. 부흥회 첫 날 보니까 교인들이 다 죽었어요. 산게 아니라 다 죽었어요. 찬송도 힘이 없고 통성기도는 안하고 설교도 아멘도 안합니다. 계속해서 갈보리 십자가의 은혜를 전파하니까 닷새째 되는 날은 할렐루야를 하고 통성기도를 하고 감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내 동창이 나를 만나서 식사를 같이 하면서 얼굴이 시뻘개져서 "오늘 당신을 청해가지고 부흥회 한 것을 후회한다. 전부 죄인인데 죄인을 때려잡지 않고 전부 용서와 의로움과 사랑을 전파하니 당신 거짓 선지자다." 나를 보고.. "죄인을 보고 전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벼락을 맞고, 삼족이 멸하고 고통당할 것이라고 호령을 해야지." 그래서 "당신은 시내산 밑에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그랬어요. 그러므로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으므로 다 심판받고 말지요. 오늘 우리는 갈보리 산 밑에서 설교합니다. 갈보리 산에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받은 사람을 보고 주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주님이 용서와 의와 사랑을 베푸는 이 시대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합니까?" 구약에는 죄를 지으면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지만은 하나님의 아들이 영원한 제사를 드려서 영원히 우리 죄를 용서하셨으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가면 영원한 용서와 의를 받는데 어떻게 정죄하는 설교를 합니까? 예수를 믿어 의롭게 되면 하나님이 후속조치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면 성령이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므로 우리가 의롭게 살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지 정죄하고 심판해서 전부다 기를 죽여 놓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올바르게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회개해도 다시 일어나서 또 죄짓고 회개해도 또 죄짓는 것은 회개해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힘이 어디서 옵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지 나로 말미암아 오지 않습니다. 용서와 의는 선물로 받고 그 다음 선물로 모셔 들이므로 성령이 도우셔서 우리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무거운 짐을 못들 때 부모님이 함께 들어주면 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짊어질 수 없을 때 성령이 우리 속에 와서 힘을 주시면 너끈이 짊어지고 나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내산 밑에서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갈보리 산 밑에 사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7:3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엡4:32에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친절하게 하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해 준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라. 주라 그리하면 돌려 줄 것이라 했는데 용서와 사랑을 주면 용서와 사랑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심판과 정죄를 주면 심판과 정죄가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1999년 코소보전쟁 중 미군 세 사람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 중 한 명인 크리스토퍼 소토운은 석방될 당시 자기를 가둬두었던 보초를 위해 꼭 기도를 해주고 떠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는 허락을 받아 그 감옥의 보초 자기에게 몹시 고통을 주고 괴롭힌 보초에게 가서 "당신이 나를 괴롭힌 것을 용서합니다. 나는 예수 이름으로 당신을 축복합니다."고 기도하고 돌아 섰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손가락질했습니다. "야 이 자식아! 죽도록 박대를 당하고 발길로 채이고 매로 때린 그 사람을 용서하고 축복하고 돌아오다니 너 그런 어떤 심보를 가졌기에 그러냐." 그러니 그는 말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 내가 용서 안하고, 축복 안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면 평생에 원한이 내 마음에 쌓여서 쓴물을 낼 것 이니까 내가 그것을 청산하고 돌아가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자신을 학대하던 사람에 대해 분노와 원한 대신 축복의 기도를 해주고 떠난 그 군인은 고향에 돌아가서 마음에 안정을 누구보다 빨리 얻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동료들은 내내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고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고 가정이 파괴되고 고난을 당했으나 용서한 이 사람은 건전한 생활을 시작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용서와 건강의 관계를 40년 동안 연구해온 북 캘리포니아의 태도치유연구센터가 내린 결론에 의하면 '용서는 건강도 회복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용서해야 마음도 건강하고 육체도 건강하고 가정도 건강해 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남의 과오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남을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면 이처럼 건강의 복도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내가 긍휼히 여기면 이웃으로 부터 긍휼을 당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심판하고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심판하시고 용서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서 얼마나 처절하게 몸 찢고 피 흘린 것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용서를 받은 우리들은 용서의 빚을 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엄청나게 긍휼히 여기고 용서해줘야 될 빚을 진 사람으로 우리는 이웃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는 빚을 갚게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여섯째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아무리 보려고 해도 안보이잖아요. 소련의 우주인이 우주에 올라 갔을 때 아무리 살펴봐도 하나님은 안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우주인은 우주선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고 난 다음 온천지에 하나님이 가득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똑같은 우주선을 타고 하늘에 올라갔는데 한 사람은 하나님이 보이지도 않더라고 말하고 한 사람은 온천지에 하나님이 가득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 슬픈 마음을 가지면 나무도 슬프게 보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보면 나무가 춤추는 것 같습니다. 나는 옛날에 우리 아버님을 전도해서 예수님을 믿게 하고 난 다음 아버님과 함께 새벽기도를 마치고 밖에 나오는데 아버님이 그 전날까지도 "죽어야 되겠다. 한강에 뛰어가서 자살해야 되겠다. 사업이 실패해서 내가 이 가족을 어떻게 짊어지고 가겠느냐. 네가 책임져라." 굉장히 우울한 말씀을 하셔서 내가 마음이 굉장히 괴로웠는데 중생을 하시고 새벽기도 나오시고 나오면서 마침 눈이 내리는데 저의 손을 흔들면서 "이 정원에 있는 나무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돌멩이도 이렇게 아름답고 하늘에 눈이 이렇게 이쁘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다 똑같은데 뭐가 달라졌습니까? 아버님 마음이 달라진 것입니다. 환경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달라진 것입니다. 똑같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수천가지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기쁜 사람은 기쁜 세상을 보고, 슬픈 사람은 슬픈 세상을 보고, 미워하는 사람은 미워하는 세상을 보고 온갖 환경은 우리 마음이 만들어 내는 창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정결하면 하나님이 마음속에 비춰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시므로 우리의 지식이나 인간의 지혜나 총명이나 모략이나 재능을 통해서는 볼 수가 없어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람이 감히 볼 수 있는 것입니까? 깨끗한 호수에는 하늘이 비취지 않습니까? 여러분 맑은 호수에 가보세요. 호수 주변에 있는 나무도 비취고, 두둥실 떠가는 구름도 물에 비취고, 파란 하늘도 비춰서 하늘이 물 안에 있고 물 안에 하늘이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썩은 물에는 가보면 나무도 비취지 않고 구름도 비취지 않고 하늘도 비취지 않고 썩은 냄새만 푹푹 풍기고 있는 것입니다.
렘17:9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는데 사람의 마음이 구원받기 전에는 만물보다 부패하고 더러운 썩은 물이기 때문에 하늘이 비취지 않지요. 그러므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늘아래 머리를 두고 살면서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내 주먹을 믿으라.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해를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달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별들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꽃 한포기를 봐도 "아~ 하나님이 묘하게 지으셨구나. 사람들을 봐도 하나님이 얼마나 이쁘고 아름답게 사람을 만드셨느냐." 여러분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을 아름답게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경치를 보면 "야~ 바다가 아름답구나! 산천이 저렇게 곱구나. 아름답다. 아름답다." 그럽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께 묻습니다. "내가 만든 자연만물을 아름답다고 하는데 나의 가장 걸작품인 사람은 아름답지 않느냐? 너희 남편 아름답지 않느냐? 너희 아내 아름답지 않느냐? 너희 자식 아름답지 않느냐?" "몰랐네요." 여러분 자연이 아름다운데 최고 걸작품으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었으니 사람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름답게 봐야 돼요. 남편을 아름답게 보십시오. 아내를 아름답게 보십시오. 자식을 아름답게 보십시오. 이웃을 아름답게 보십시오. 밉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밉게 보이는 것입니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미운 가운데도 모든 아름다운 것이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마음이 나의 환경을 바라보게 하고 결정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말한 것입니다.
시24:3~4에 "야훼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하나님 산에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청결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여러분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보세요. 전도하는데 칠십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전도해서 예수 믿게 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습니다. 70, 80 먹은 사람 고집이 세 가지고 무슨 말을 해도 안 들어가요. 딱딱한 바위에다가 씨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보십시오. 질문도 안하고 의심도 아니하고 찬송 부르지만 찬송 부르고 기도하자면 기도합니다. 여러분 집에서 손주나 손녀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이들을 데리고서 가족예배 보십시오. 찬송하면 같이 따라하고 기도하면 같이 기도하고 아멘하면 같이 아멘하고 질문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이 그대로 비춰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대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인들의 마음은 이 세상에서 오래 살면서 너무나 오염되고 굳어졌기 때문에 복음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길거리 밭이 되고 자갈밭이 되고 가시 넝쿨 밭이 되어서 씨앗이 심어지지 않아요. 그러나 어린아이의 마음은 옥토가 되기 때문에 심어져서 곧장 열매를 맺어요. 교회가 장차 희망을 두려면 어린 아이들에게 힘을 많이 쏟고 복음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학교를 등한이 여기면 그 교회는 장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학교 어린아이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증거 하면 어릴 때 심은 씨앗은 나중에 커서 방황을 하다가도 반드시 도로 돌아오고 그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마11:25에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 하나이다."
복음은 지혜와 지식으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마음에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못보고 예수님을 안 봤는 데 왜 믿어요? 성령이 마음에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복음의 진리는 계시 지식이지 인간으로 연구하고 배워서 얻는 지식이 아닌 것입니다. 그 계시가 깨끗한 마음에 임하지요. 혼탁한 마음에는 임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끗한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보혈로 씻으면 깨끗히 되고 성령이 임하셔서 하나님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씻을 세제는 세상에서는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마음 바탕이 그렇지 않는데 어떻게 합니까? 오늘 우리 한국 젊은이들이 서양 사람이 되려고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이고, 빨간 물을 들이고 얼굴을 아주 백인처럼 치장을 하지만 얼마 안있어 비가 오는데 한번 가보십시오. 다 씻어 내려 버리면 원상 복구되고 마는 것이지 까만 머리에 갈색 눈에 황색 얼굴이 되고 말지요. 나는 서대문에 있을 때 너무나 너무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울었습니다. 우리 자매님 한분이 아프리카인하고 결혼을 했는데 아프리카 딸을 낳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학교 가니까 애들이 다 자꾸 흉을 보거든요. 얘가 너무나 너무나 고통스러우니까 하루에 엄마가 장사하고 돌아오니까 얼마나 수세미로 손을 씻었던지 피부가 다 벗겨져서 피투성이가 되었어요. 그러면서 "엄마, 엄마! 나는 왜 아무리 아무리 때를 벗겨도 살이 까매? 나는 왜 이래?" 그리고 엄마가 그 애기를 안고 통곡을 하고 울었다고 해서 "이 애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래서 제가 홀트 고아원에 이야기해서 양녀로 보내도록 수속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원래 태어날 때부터 피부가 검으면 아무리 물로 씻어도 안 되지 않습니까? 원래 아담과 하와의 자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로 말미암아 부패하고 돌이킬 수 없이 썩었는데 아무리 인간의 수양과 도덕과 노력으로 근본 바탕이 변하나요? 안변합니다. 그 근본 바탕이 변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을 믿고 성령이 오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나야 돼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보혈로 씻고 성령이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 믿는 사람은 이전 아담의 사람은 십자가에서 청산해 버리고 새로 피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회개하고 보혈로 씻으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시고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이 비춰오는 것입니다.
딛3:5~6에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보혈로 씻음 받으면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셔서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심령 속에서 바라보고 느끼고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엡1:17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혈로 씻으면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의를 사모하는 자는 만족하게 되는 것은 의를 사모하고 사모하다가 힘으로 능으로도 안되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어서 100% 의를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만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의롭게 되는 것은 100% 선물입니다. 하나도 우리의 공로로 되지 않습니다. 100%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용서받고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 기막힌 복음이요, 이런 축복은 천하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용서와 의를 받고 영광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얼마나 나를 불쌍히 여기는 가를 기억하십시오. 나 때문에 십자가에 중한 고통 당하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는 은혜를 생각하고 예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지 안 았었으면 천벌을 받아 지옥 아랫목에 떨어지려 했는데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겨서 날 대신 십자가 짊어져 주시므로 그 보혈로 내가 용서를 받고 의롭다함을 얻었으니 나도 그 긍휼과 그 용서를 가지고서 이웃을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을 긍휼히 보십시오. 아내를 긍휼히 보십시오. 자식을 부모를 불쌍히 보십시오. 불쌍하지 않아요? 다 불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불쌍합니다. 시내 산에서 살지 말고 갈보리산 밑에서 살면서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 속에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음이 청결하게 되는 길은 예수님의 보혈밖에 없다고 말하지 않았었습니까? 그리스도의 보혈 앞에서 통회하고 회개하고 자복하면 보혈이 와서 씻어주시고 성령이 싹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게 되어요. 회개하면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을 알게 되므로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100년 전에 큰 부흥이 일어난 것은 길선주 장로가 회개하고 온 성도들이 밤새도록 회개하니 성령의 불이 임하여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이 가슴에 메아리치고 깨달아지므로 이 복음이 평양에서 시작해서 온 삼천리 강토를 휩쓴 것 입니다. 회개하고 보혈로 씻으면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오늘은 이 세 가지 복을 우리가 알아보았습니다. 참으로 세상의 어떤 복으로도 바꿀 수 없는 천상의 복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의로움으로 충만하고, 긍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넘쳐서 의와 평강과 희락 속에서 매일같이 감사하며 찬송하고 살다가 천국 들어가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여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태어날 때부터 부패한 죄인으로 태어났는데 왠일인지 왠말인지 예수님께 나와서 그 피로 씻고 그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되었나이까.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팔복 중에 전에 세가지 복을 우리가 배웠고 오늘 중간 세가지 복을 또 배웠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이 놀라운 축복이 우리의 마음속에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늘의 복을 받아 복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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