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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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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렘33장: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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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저는 목회하면서 크고 작은 위기들을 가끔 겪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때였는데 그 날 설교를 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저녁 늦게 전화가 왔습니다. 교회 권사님으로부터 전화였습니다. 권사님은 오늘 설교 누구 들어라고 했습니까?라고 심문하듯 물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권사님들으라고 그런 설교를 할 수 있느냐고 불편한 마음을 제 가슴에 심어 놓았습니다. 어떤 경우는 설교를 하였는데 설교 한 구절 때문에 성도가 오해하여 교회를 떠나려고 하는 경우도 보고 기도하는데 그분의 이름을 넣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기도하였다고 해서 반발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목회자를 비난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어느 경우에는 순서지에 자신의 이름을 실지 않았다고 분노하는 사람도 있고 교회에서 만났는데 웃지 않았다고 시비를 하며 인간관계를 위기로 몰아가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갖가지 위기를 당합니다. 위기를 나누면 학자들은 발달위기와 사건위기로 설명합니다만 우리 신앙인들이 겪는 위기를 유형별로 나누어 본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위기,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위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오는 위기, 일과의 관계에서 오는 위기 등으로 나누어 볼 수 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신앙의 위기가 찾아오면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고 신앙의 깊은 늪에서 절망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자녀의 탈선,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의 외도), 친구, 교인과의 관계에서 위기가 다가오면 그 문제로 뼈아픈 고민을 하게되고 잘 못되면 모든 관계가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정신적, 육체적 위기가 닥쳐 올 수 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질병으로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일과의 위기의 대표적인 것은 경제적 위기입니다. 사소한 과오 때문에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사업을 하며 부도로 고통가운데 처할 수도 있습니다.
위기를 만날 때 성도님은 그 위기를 어떻게 처리하십니까? 어떤 위기든 위기를 만날 때 사람은 미래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지느냐에 따라 위기를 처리하는 방법이 현격하게 다릅니다. 인간 관계의 위기를 당할 때 이제 저 사람과의 관계는 이것으로 끝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위기를 처리하는 방법은 다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저 분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함께 하여야하겠다면 그에 맞는 위기 관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기를 만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자세입니다. 미래 어떻게 되기를 원하느냐? 가 중요합니다. 우리 신앙의 사람들은 위기 속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자세가 어떠해야 할까요?
1. 어떤 위기가 온다하여도 미래를 소망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합니다(6-9)
크고 작은 위기를 당할 때 사람들이 미래에 대하여 가지는 자세는 요약하면 세 가지로 나타날 것입니다.
첫 째는 미래에 대하여 아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질병으로 인하여 죽을 것이다. 부도로 인하여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인생은 이것으로 끝이다. 우리 가정은 이것으로 파탄이다." 등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미래에 대하여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진다 하여도 나는 일어날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 그 병으로 절대 죽지 않는다." 등의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셋째는 될 대로 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질병에서 나으면 낳고 않나으면 죽고, 사업이 다시 회생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주저 안고" 등과 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어떤 타입니까?
우리 신앙인의 타입은 미래에 대하여 아주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타입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예레미야가 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전하였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40년 동안 말씀을 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레미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1) 감옥에 갇혔습니다.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때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 것같습니까? 지금 시드기야가 왕이 된지 12년이 될 때였습니다(32:1). 그는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렘1:1). 요시야왕 여호야김 시드기야 제 11년 말까지 예언한 선지자입니다(렘1:3).
그러니까 1장 5절에 근거하여 그가 20살에 부름받았다면 거의 60살이 된 때였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예레미야 혼자 짝사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하나님의 이 사랑을 받아 주지 않았으면 하나님을 예레미야에게 기도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 (렘 7:16)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곤액을 인하여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을 듣지 아니하리라 (렘 11: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 백성을 사랑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배신을 당한 것입니다. 짝사랑의 배신감 이것을 성도님들 느껴보셨습니까? 저는 목회를 하기 때문에 가끔 느껴봅니다. 어떤 가정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잘되기를 위해 일했는데 나중에는 비난받습니다. 그 때의 감정의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저는 예레미야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수 있을 것같습니다. 사명에 있어서도 위기입니다. 감옥에 갇혔으니 이제 끝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나의 미래는 없다. 이제 감옥에서 죽는 구나"라고 미래에 대하여 절망할 수 있습니다.
이 때 그 감옥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을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미래는 하나님의 은혜로 보장된 것이니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잘못으로 인한 범죄의 댓가를 치룬다는 것입니다(4-5)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6-9) 이 성을 치료하신다는 것입니다.(6)
평강과 성실에 풍성함을 나타냅니다.(6)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게 합니다.(7,11) 처음과 같이 세웁니다.(7)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고 사해 줍니다.(8) 세계 열방 앞에서 하나님의 기쁜 이름이 되게 합니다.(9) 하나님의 찬송과 영광이 되게 합니다(9). 모든 무리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합니다(11). 예루살렘 성을 다시 부흥케 합니다(12,13).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십니다.(26) 이스라엘을 영원히 보호할 것입니다(24-26).
누구를 통해서입니까? 메시야 가 다윗의 후손으로 나게 합니다(15). 메시야가 공평과 정의를 실행하게 합니다(15). 다윗 왕권이 영원히 계승될 것입니다.(17). 레위인 제사장 영원히 존속(18). 낮과 밥이 영원한 것처럼 다윗의 언약 영원(20,21)하심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소망적인 미래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위기에 처한다 하여도 그리스도 안에 선택한 우리를 하나님은 버리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31절에 그런즉 이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7절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9절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사실을 믿습니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는 자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1)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삼상12:22)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삼상 12:22)
(2)순전한 사람(욥8:20)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즉 (욥 8:20)
(3)주를 찾는 자(시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시 9:10)
(4)의인(시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시 37:25)
우리에게 어떤 위기가 온다하여도 미래를 소망적으로 긍정적으로 바라봅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까? (어는 권사님의 전화, 동생의 반발)
이렇게 소망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2. 우리가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질 때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음으로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1-2).
나라나 개인이나 위기를 당하면 가장 호황을 이루는 것이 점 집이라고 합니다. 미래를 알 수 없으니까 예측하기 위해 점을 봅니다. 그리고 그 점괘를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은 상황을 보고 절망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능력을 보고 희망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기적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미래에 대하여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말씀밖에 없습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말씀의 예언대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감옥에 갖혀 있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합니까? 1절 보세요. 말씀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기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에게 미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6절을 보십시오. 치료하시는 여호와. 고쳐 주시는 여호와, 평강을 주시는 여호와. 7절에 보니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여호와, 잃었던 처음 것을 찾게 해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우리 앞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신1:29-33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신 1:29)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신 1:30)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신 1:31)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신 1:32)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신 1:33)"
복음 찬송에 "나의 등 뒤에서(앞 길에서) 나를 도우시는(인도하시는) 주 나의 인생 길에서 지티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 않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이끌어 주시네) 일어나 걸으라 내가 새힘을 주리니 일어나 걸으라 내 너를 도우리"
앞길에 인도하시는 하나님으로 바꾸어 불러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따라 오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치 롯과도 같습니다. 롯의 사위와도 같습니다.
창세기를 보십시오. 지극한 위기 상황입니다. 나라가 유황불로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미래에 대하여 알려줍니다. 믿습니까? 농담으로 여깁니다. 롯도 지체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런 비유를 말했습니다.
큰 극장에 배우들이 연기를 합니다. 극장에 불이 났습니다. 연출가가 나가 불이 났으니 질서 정연하게 나가달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칩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기립박수를 칩니다. 진짜 불이 났습니다. 이 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키에르케고르는 설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우리가 미래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소망을 가진다고 미래가 긍정적이고 소망적으로 되어질까요? 우리가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래도 믿고 있다고 미래가 믿는대로 되어질까요? 하나님의 요구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3. 말씀에 근거하여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진 자는 기도함으로 미래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성취해야 합니다(3).
말씀으로 소망을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에게 요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1) 내게 부르짖으리라는 것입니다. 적당히 묵상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아이가 베란다에서 떨어질 판국입니다. 옆에 큰애가 서있습니다. 이 때 큰아이에게 속삭입니까? 외치는 것입니다. 네 동생 붙잡으라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간절하고 애타게 그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한나의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아이를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에스더와 같은 기도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기도입니다. 다니엘과 같은 기도입니다. 지금 잘 못하면 자신이 이제까지 쌓아온 명예와 권력 부가 한꺼번에 무너집니다. 이 때 하나님 마음대로 교양있게 기도하겠습니까? 히스기야와 같은 기도입니다. 불치의 병으로 죽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로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대하 32:20)"
우리는 위기를 당하면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해야 할 이유 7가지를 성경을 통해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1)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16:19)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70년이 되면 해방될 것 예언하였습니다(렘29:10-14) 그러나 12절을 보십시오.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겔을 통해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겔36:37)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출애굽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창15:12-26절에서 이미 아브라함을 통해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출2:23-25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통해서입니다.
(2)기도를 쉬는 것이 죄이기 때문(삼상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삼상 12:23)
(3)기도만이 하나님께 응답받을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약4: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약 4:2)"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4)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렘33:3)
(5)기도가 우리를 근심에서 구출하여 주기 때문(시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시 34:6)
(6)기도함으로 충만한 기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4)
(7)주님의 명령이기 때문(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 26:41)
2)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해 주십니다(3).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비밀을 네게 보이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그 비밀은 "네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인간의 머리로는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70년 후에 있을 예레미야가 죽은 후에 있을 바벨론 포로 귀환을 말씀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500년 후에 있을 예수님의 초림을 말씀합니다(15,17).
미래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미래의 일을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응답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복음 찬송(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우리의 질병의 위기, 신앙의 위기, 가정의 위기, 나라의 위기, 경제의 위기, 자녀의 위기가 다가올 때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주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신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일평생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위기를 당해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 기도해야 합니다.
위기는 아무 예고 없이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다가옵니다. 어떤 위기일 지라도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포기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미래를 소망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소망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기도함으로 미래를 보장받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3절 다시 한번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 밭에 떨어져 열매를 맺기 바랍니다.
위기를 만날 때 성도님은 그 위기를 어떻게 처리하십니까? 어떤 위기든 위기를 만날 때 사람은 미래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지느냐에 따라 위기를 처리하는 방법이 현격하게 다릅니다. 인간 관계의 위기를 당할 때 이제 저 사람과의 관계는 이것으로 끝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위기를 처리하는 방법은 다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저 분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함께 하여야하겠다면 그에 맞는 위기 관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기를 만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자세입니다. 미래 어떻게 되기를 원하느냐? 가 중요합니다. 우리 신앙의 사람들은 위기 속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자세가 어떠해야 할까요?
1. 어떤 위기가 온다하여도 미래를 소망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합니다(6-9)
크고 작은 위기를 당할 때 사람들이 미래에 대하여 가지는 자세는 요약하면 세 가지로 나타날 것입니다.
첫 째는 미래에 대하여 아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질병으로 인하여 죽을 것이다. 부도로 인하여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인생은 이것으로 끝이다. 우리 가정은 이것으로 파탄이다." 등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미래에 대하여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진다 하여도 나는 일어날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 그 병으로 절대 죽지 않는다." 등의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셋째는 될 대로 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질병에서 나으면 낳고 않나으면 죽고, 사업이 다시 회생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주저 안고" 등과 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어떤 타입니까?
우리 신앙인의 타입은 미래에 대하여 아주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타입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예레미야가 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전하였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40년 동안 말씀을 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레미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1) 감옥에 갇혔습니다.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때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 것같습니까? 지금 시드기야가 왕이 된지 12년이 될 때였습니다(32:1). 그는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렘1:1). 요시야왕 여호야김 시드기야 제 11년 말까지 예언한 선지자입니다(렘1:3).
그러니까 1장 5절에 근거하여 그가 20살에 부름받았다면 거의 60살이 된 때였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예레미야 혼자 짝사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하나님의 이 사랑을 받아 주지 않았으면 하나님을 예레미야에게 기도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 (렘 7:16)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곤액을 인하여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을 듣지 아니하리라 (렘 11: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 백성을 사랑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배신을 당한 것입니다. 짝사랑의 배신감 이것을 성도님들 느껴보셨습니까? 저는 목회를 하기 때문에 가끔 느껴봅니다. 어떤 가정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잘되기를 위해 일했는데 나중에는 비난받습니다. 그 때의 감정의 참으로 힘들고 어렵습니다. 저는 예레미야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수 있을 것같습니다. 사명에 있어서도 위기입니다. 감옥에 갇혔으니 이제 끝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나의 미래는 없다. 이제 감옥에서 죽는 구나"라고 미래에 대하여 절망할 수 있습니다.
이 때 그 감옥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을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미래는 하나님의 은혜로 보장된 것이니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잘못으로 인한 범죄의 댓가를 치룬다는 것입니다(4-5)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6-9) 이 성을 치료하신다는 것입니다.(6)
평강과 성실에 풍성함을 나타냅니다.(6)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게 합니다.(7,11) 처음과 같이 세웁니다.(7)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고 사해 줍니다.(8) 세계 열방 앞에서 하나님의 기쁜 이름이 되게 합니다.(9) 하나님의 찬송과 영광이 되게 합니다(9). 모든 무리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합니다(11). 예루살렘 성을 다시 부흥케 합니다(12,13).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십니다.(26) 이스라엘을 영원히 보호할 것입니다(24-26).
누구를 통해서입니까? 메시야 가 다윗의 후손으로 나게 합니다(15). 메시야가 공평과 정의를 실행하게 합니다(15). 다윗 왕권이 영원히 계승될 것입니다.(17). 레위인 제사장 영원히 존속(18). 낮과 밥이 영원한 것처럼 다윗의 언약 영원(20,21)하심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소망적인 미래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위기에 처한다 하여도 그리스도 안에 선택한 우리를 하나님은 버리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31절에 그런즉 이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7절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9절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사실을 믿습니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는 자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1)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삼상12:22)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삼상 12:22)
(2)순전한 사람(욥8:20)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즉 (욥 8:20)
(3)주를 찾는 자(시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시 9:10)
(4)의인(시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시 37:25)
우리에게 어떤 위기가 온다하여도 미래를 소망적으로 긍정적으로 바라봅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까? (어는 권사님의 전화, 동생의 반발)
이렇게 소망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2. 우리가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질 때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믿음으로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1-2).
나라나 개인이나 위기를 당하면 가장 호황을 이루는 것이 점 집이라고 합니다. 미래를 알 수 없으니까 예측하기 위해 점을 봅니다. 그리고 그 점괘를 의지합니다. 어떤 사람은 상황을 보고 절망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능력을 보고 희망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기적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미래에 대하여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말씀밖에 없습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말씀의 예언대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감옥에 갖혀 있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합니까? 1절 보세요. 말씀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기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에게 미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6절을 보십시오. 치료하시는 여호와. 고쳐 주시는 여호와, 평강을 주시는 여호와. 7절에 보니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여호와, 잃었던 처음 것을 찾게 해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우리 앞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신1:29-33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신 1:29)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신 1:30)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신 1:31)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신 1:32)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신 1:33)"
복음 찬송에 "나의 등 뒤에서(앞 길에서) 나를 도우시는(인도하시는) 주 나의 인생 길에서 지티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 않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이끌어 주시네) 일어나 걸으라 내가 새힘을 주리니 일어나 걸으라 내 너를 도우리"
앞길에 인도하시는 하나님으로 바꾸어 불러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따라 오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치 롯과도 같습니다. 롯의 사위와도 같습니다.
창세기를 보십시오. 지극한 위기 상황입니다. 나라가 유황불로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미래에 대하여 알려줍니다. 믿습니까? 농담으로 여깁니다. 롯도 지체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런 비유를 말했습니다.
큰 극장에 배우들이 연기를 합니다. 극장에 불이 났습니다. 연출가가 나가 불이 났으니 질서 정연하게 나가달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칩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기립박수를 칩니다. 진짜 불이 났습니다. 이 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키에르케고르는 설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우리가 미래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소망을 가진다고 미래가 긍정적이고 소망적으로 되어질까요? 우리가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래도 믿고 있다고 미래가 믿는대로 되어질까요? 하나님의 요구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3. 말씀에 근거하여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진 자는 기도함으로 미래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성취해야 합니다(3).
말씀으로 소망을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에게 요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1) 내게 부르짖으리라는 것입니다. 적당히 묵상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아이가 베란다에서 떨어질 판국입니다. 옆에 큰애가 서있습니다. 이 때 큰아이에게 속삭입니까? 외치는 것입니다. 네 동생 붙잡으라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간절하고 애타게 그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한나의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아이를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에스더와 같은 기도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기도입니다. 다니엘과 같은 기도입니다. 지금 잘 못하면 자신이 이제까지 쌓아온 명예와 권력 부가 한꺼번에 무너집니다. 이 때 하나님 마음대로 교양있게 기도하겠습니까? 히스기야와 같은 기도입니다. 불치의 병으로 죽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로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대하 32:20)"
우리는 위기를 당하면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해야 할 이유 7가지를 성경을 통해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1)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16:19)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70년이 되면 해방될 것 예언하였습니다(렘29:10-14) 그러나 12절을 보십시오.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겔을 통해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겔36:37)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출애굽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창15:12-26절에서 이미 아브라함을 통해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출2:23-25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통해서입니다.
(2)기도를 쉬는 것이 죄이기 때문(삼상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삼상 12:23)
(3)기도만이 하나님께 응답받을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약4: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약 4:2)"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4)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렘33:3)
(5)기도가 우리를 근심에서 구출하여 주기 때문(시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시 34:6)
(6)기도함으로 충만한 기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4)
(7)주님의 명령이기 때문(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 26:41)
2)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해 주십니다(3).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비밀을 네게 보이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그 비밀은 "네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인간의 머리로는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70년 후에 있을 예레미야가 죽은 후에 있을 바벨론 포로 귀환을 말씀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500년 후에 있을 예수님의 초림을 말씀합니다(15,17).
미래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미래의 일을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응답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복음 찬송(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우리의 질병의 위기, 신앙의 위기, 가정의 위기, 나라의 위기, 경제의 위기, 자녀의 위기가 다가올 때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주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신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일평생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위기를 당해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 기도해야 합니다.
위기는 아무 예고 없이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다가옵니다. 어떤 위기일 지라도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포기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미래를 소망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소망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기도함으로 미래를 보장받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3절 다시 한번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 밭에 떨어져 열매를 맺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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