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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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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겔37:1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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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남북 분열 55년 만에 남북 정상이 만나는 날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어느 신문 기사를 보니까 2000년에 들어와 세계의 최대 뉴스거리라고 합니다. 이 역사적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 500여명의 외신 기자들이 들어 온다고 합니다. 역사적인 사건인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옛날 같으면 전쟁을 하다가 적진에 장군이 담판을 하기 위해 모든 위협을 무릅쓰고 늘어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냉전 시대가 종식된 지금도 한 민족으로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며 평화 상태이기 보다는 정전 휴전 상태의 나라입니다. 말 그대로라면 전쟁을 하다가 잠깐 멈춘 것이고 잠깐 쉬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북진통일"을 3,4대의 박정희 대통령은 "선 성장 후 통일" 제 5공화국의 전두환 대통령은 "민족화합 민주통일",노태우 대통령은 "한민족 공동체 통일안"을 내세우며 통일노력을 시도하였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 성사를 앞두고 김일성의 사망으로 결실을 보지 못했는데 이제야 그 결실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역사 속에서 다른 것은 모르지만 남북 문제만큼은 김대통령은 나름대로 소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98년 2월 25일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평화, 화해, 협력] 실현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에 대북정책 목표를 두고 ①평화를 파괴하는 일체의 무력도발 불응 ②흡수통일배제 ③화해. 협력의 적극추진 등 대북정 3대 원칙을 제시하고 그 원칙을 변함없이 실천해 온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동안 동해안에 잠수정이 침두하기도 했고 서해에서 교전도 있었지만 이 부분만큼은 빨갱이라는 오해를 사면서까지 원칙을 고수하며 포용정책을 실천한 것은 역사 속에서 인정받을 만한 것입니다.
물론 이번 정상회담이 부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납북인사 8만 명, 미귀환 포로 5만 명, 납치인사 8000명인 있는 상황이고 북한의 속셈이 남북화해나 평화적인 통일보다는 전략 전술에 일환으로 어려운 경제난을 해소하고 김정일 체제를 견고히 할 뿐 아니라 국제적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북 정당회담이 이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같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 것은 소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어떤 개인에 의해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우연히 발생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역사 속에서 살아계서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개입을 믿는 신앙인의 눈으로 본다면 이 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기도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분단 55년 동안 남한의 성도들은 끊임없이 남북의 통일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이 기도만큼을 빠뜨리지 않고 드렸고 1000만 이산 가족 중 믿음의 사람들은 가슴치며 통곡하며 통일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북에 있는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때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정도로 교회가 부흥하였고 영적 축복을 받은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 자들이 점령하자 신앙인들은 지하로 이름없이 숨어 버렸습니다. 북한에 신앙인들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신앙인들이 있고 그들은 끊임 눈물흘리며 신앙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날을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북한에는 세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조선 기독교도 연맹 산하에 있는 교회입니다. 1988년 건립된 봉수교회와 1990년에 건립된 칠골교회와 같은 교회입니다. 봉수교회 신도 수는 한 400여명이 된다고 하고 칠곡 교회는 평양시 만경대에 있는 교회로 김일성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반석교회라고도 불리웁니다.
또 하나는 가정교회입니다. 이것도 조선 기독교도 연맹 산하에 있습니다.
1998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제6차 조국의 평화통일과 선교에 관한 기독자회의에 참석한 북한의 김현철 지도위원의 말에 따르면 가정교회는 전국의 도와 군에 흩어져 있으며, 목사는 30명이고 교인은 1만 4천 명쯤 된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지하교회입니다.
북한 당국의 종교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눈을 피해 지하에 숨어 신앙을 유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을 무릎쓰고 지금도 이들은 7-8명 많게는 20명씩 남의 눈을 피해 산에서 다락방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모퉁이돌 선교회는 1985년부터 1만 2천여 권의 성경과 신앙 서적을 재 중국 동포 신자를 통해 북한 지하 교회에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 있는 지하교회 신자야말로 이사야 선지가 말한 대로 신앙의 그루터기요, 남한 신자들과 동질성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 기독교 재건의 초석들입니다. 이들은 남몰래 울부짖으며 통일을 위해 기원했을 것입니다. 오픈도어 선교회(96년 7월)에 의하면 지하교회에서 신앙을 보존하고 있는 신자 14만 명 정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패트릭 존스턴 박사는 북한에 최대 9만 2천여명의 교인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무서운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그들은 남모르게 통곡하면서 통일을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인의 기도응답이 마치 엘리야가 3년 반 가믐이 든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여주듯이 우리 민족에게도 통일에 대한 손바닥만한 구름으로 응답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2000년에 들어와 우리 민족에게 통일의 비전을 새롭게 해 주시는 기회로 믿소 싶습니다.
1.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민족 통일에 대한 비전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이러한 비전을 에스겔에게 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민족이 하나가 되는 비전을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주고 있습니다. 이 비전이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16, 17, 19, 22) 이 비전을 보았을 때 에스겔은 어떤 처지에 있었습니까?
1) 절망적 상황에 있는 에스겔
(1)포로로 간 에스겔
그는 제사장이었습니다(겔1:3)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발강가 포로 수용소에 있었을 것입니다(겔1:1). 아마 지금 30대 쯤이었을 것입니다.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사드릴 성전을 잃었습니다. 제사장이라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가족을 잃었습니다. 고향을 잃었습니다. 미래가 참담합니다. 결코 살아 생전 고향 땅으로는 돌아갈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2)암담한 민족의 미래
왕의 아들들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왕도 눈을 빼임 당했습니다. 통일된 나라가 솔로몬 이후 남북으로 나뉘어 민족적 비극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것도 모자라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했습니다.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여 왕실의 가족과 명문가의 유능한 사람들은 다 포로로 잡혀갔고 일부 서민들은 유다에 남았고 일부 바벨론에게 반항한 사람들은 다시 애굽으로 도망을 간 상태에 있습니다. 이제 민족은 소망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회복이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절망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의 상태를 뼈의 환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겔37:1-2). 1-2절을 보십시오.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라버렸습니다. 골짜기에 버려진 뼈처럼 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씀합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합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다 멸절되었습니다.
(3) 도와 줄 나라 없는 국제 정세
왕은 당시 남쪽의 강대국 중의 하나였던 애굽을 의지하였지만 애굽은 자국의 이익만 챙길 따름이지 조금도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자신들도 바벨론에게 침략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와 우리 나라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어떻습니까? 에스겔 시대나 비슷합니다.
남북한과 4강의 최근 동향을 보면, 두개의 축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평양-베이징-모스크바를 연결하는 축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도쿄-워싱턴을 잇는 축입니다.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하였고 푸틴이 평양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서로 전략적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회복하고 있습니다. 김대통령은 일본 수상과 클린턴을 만났습니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4강이 구한 말처럼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통일을 도와 주기 위해서일까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국제 사회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사상에 의한 냉전 구도가 종식된 요즈음 경제 이데올로기에 의해 세계는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까? 러시아만 보아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고 빚을 빌려가며 북한과 군사적 관계를 정리했는데 이제 다시 등거리 회교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국제 사회에서 우리는 아직 그들 만큼 힘이 강하지 않습니다.
나라 안 사정은 어떻습니까? 남한은 아직 IMF체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식량난으로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통일에 대한 열정이 두 나라 국민들에게 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정책을 집행하는 힘있는 자들은 통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득권을 빼앗깁니다.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잃어버리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통일에 대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2) 비전을 보는 에스겔
(1)소망을 갖게 하기 위해 질문(3)
에스겔의 마음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먼저 에스겔에게 마른 뼈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2)살아나 군대를 이루는 비전을 보여 주심(10)
7절 이하를 보십시오. 흩어진 뼈들이 서로 제 자리를 찾아 갑니다. 힘줄이 생깁니다. 살이 오릅니다. 가죽이 덮입니다. 생기가 들어갑니다. 살아나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3)민족이 하나가 되는 비전을 보여 주심(15-22)
둘인 막대기가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됩니다. 남북이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비전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상대적 가치인 민족 통일은 절대적 가치인 하나님 나라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는 비전은 `이기는 통일'이 아니라 `함께 사는 통일'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 할지라도, 평화(shalom)와 공의를 파괴하며 이루어지는 통일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통일을 원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사역, 즉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순종적 생활양식의 확산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선교적 차원에서 우리는 더욱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무너진 교회들을 다시 새워야 합니다. 울부짖는 북한의 지하 교회 교인들의 음성을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남북한의 정부 모두 통일을 원합니다. 그러나 속마음은 다릅닏. 북한의 경우 `남반부 인민의 해방'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통일의 당위를 찾고 있습니다. 반면에 남한의 경우 `국토분단과 민족분열에 따른 민족적 고통및 불이익해소'라는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통일의 당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인의 답변은 북한의 이데올로기적 차원 또는 남한의 현실주의적차원보다도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차원에서 제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뜻을 같이 하며 서로 돕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규범에 대한 순종입니다(창1:28). 북한 동포에 대한 사랑, 나아가 해외동포와 우리의 후손까지 포함한 민족에 대한 사랑은 예수님의 이웃 사랑(요15:12)에 대한 순종입니다. 모세와 바울도 심지어 예수님도 민족을 사랑하였습니다.
2. 우리에게 민족 통일의 비전을 주시고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1)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비전을 주시고 그 비전을 하나님이 이루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권능으로"라고 했고, 5절에서는 "주 여호와께서"라고 했고 6절 끝에서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했고 9절을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에”라고 했고, 12절을 보면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4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고 했습니다. 누가 통일을 시킨다는 말씀입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입니다." 누가 돌아 오게 합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2)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비전을 이루어 주십니다.
누가 무덤을 엽니까? 누가 무덤에서 나오게 합니까? 누가 마른 뼈를 군대로 만듭니까? “나 여호와가 말하고 이루느니라” “나 여호와인 줄 알리라”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궁휼히 여겨 반드시 통일 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통일에 대한 비전을 가집시다. 통일에 대한 사명감을 가집시다.
우리가 어떻게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까?
역사 속에서 오스트리아는 중립화로 통일하였습니다. 오스트리아는 패전국의 일원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등의 네개 강국에 의해 분활 점령되었지만 온건 사회주의자에 의해 통합 임시정부를 수립 할 수 있었고 이 임시정부를 측으로 단일 행정 체계를 쉽게 이룩 할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은 공산 주의 폭력 혁명(전쟁)에 의해 통일 되었습니다. 독일은 서독의 우세한 경제력에 의해 흡수 통일하였습니다. 남북 예멘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상극적인 체계를 국력의 비례에 따라 통합 정부을 이루었습니다(형식적인 체제통합). 우리 나라는 어떻게 통일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나라의 경우 통일 방식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상호 합의 통일 방식이요. 둘째는 어느 한쪽의 붕괴에 따른 일방적 흡수 통일 방식이요. 셋째는 전쟁에 의한 무력 통일 방식입니다. 남. 북한 공히 첫째의 합의 통일 방식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 방안'을 남한은 `3단계 3기조 통일 정책'을 통일방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대남 4개 요구사항 ((1)외세의존정책 포기 (2)주한 미군 철수 의지 표명 (3)합동군사훈련 영구 중지 (4)미국의 핵우산탈피)을 제외하고 양측 안을 비교해 보면, 양측 모두 단계적, 점진적 통일을 수용하고 있어 유사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통일을 원하시겠습니까?
3. 우리에게 주신 민족 통일의 비전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에스겔에게 보여주신 민족 통일의 비전은 결국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 질 것을 말씀합니다. 에스겔에게 육체적 부활의 비전을 보여 줍니다(12) 바벨론으로부터 정치적 해방을 보여 줍니다. 그와 동시에 영적 부활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14-36:26,27) 누구를 통해서입니까? 그 주체가 누구입니까?(21) 통일 왕국의 왕이었던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행13:22) 다윗은 이미 370년 전에 죽었습니다. 상징적 표현 표현입니다. 그러면 그분은 누구계습니까? "나는 선한 목자(요10:11) 참 포도 나무(요15:1) 다윗의 뿌리(계22:16)"라고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한 목자(24), 화평의 언약(26)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을 열국이 알게됩니다.(28) 어떤 것을 알게 됩니까(23, 27, 28)
2)남북 통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첫째, `통일 한국'은 하나님 중심의 사회, 예수님께서 범사에 인정받으시는 사회가 되도록하여야 합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 해방'을 부르짖으며, 하나님보다 인간 이성을 강조하는 잘못된 사조에 사로잡혀 왔습니다. 이제 경제를 신으로 섬기는 사회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통일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등 각종 정치 이데올로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해서는 안됩니다. 통일 한국은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사회로서,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님의 통치하심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인정되는 사회로 통일 되도록 우리는 힘을 다하여야 합니다.(그리스도의 통치권이 미치는 사회)
둘째, `통일 한국'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한 원리가 적용되는 사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말씀에 의해 부활하고 말씀에 의해 하나가 되는 민족통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다 성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왜곡된 이데올로기 있습니다. 이것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은 성경적인 것 밖에 없습니다. 한 쪽만 강조하면 안됩니다. 자본주의는 개체를 강조합니다. 공산주의는 전체를 강조합니다. 기독교은 개체주의(individualism)가 아닌 인간주의(personalism)이고 집산주의(collectivism)가 아닌 공동체 주의(communalism)입니다.
셋째, 통일 한국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5000년 역사 속에서 약소국으로 각종 설움과 박대에 처했던 이 민족에게, 지난 100년 사이에 하나님께서 이만큼 영육간에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이제는 통일이 되면 국력이 세계적인 국가가 될 것입니다. 군사력만 해도 160만 대군을 가집니다. 이미 세계 10대 무역 국가가 되었습니다. 대륙을 향해 철도로 얼마든지 선교할 수 있는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비전을 보여 주시면서 두 가지 사역을 사명으로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말씀의 사역(7,8)입니다. 또 하나는 성령의 성령의 사역(9.10)-14입니다. 우리는 통일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이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을 돕는 것은 공산주의자들을 이롭게 하는 일이고, 그들에게 전쟁 물자를 제공하는 자살 행위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통일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보다는 영구 분단이 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00만 동족 가운데 핵심 공산주의자는 많이 잡아도 200만이 못됩니다. 힘으로 능으로 못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의 힘으로는 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아야 합니다.
에스겔의 눈에 보여진 현실은 이미 죽은지 오래된 뼈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그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질문하셨을 때 단지 눈에 보여지고, 자기가 과거에 경험한 것을 토대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대신에 (겔37:3)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를 따름입니다.
민족이 하나되는 비전을 보는 사람들/에스겔37:15-28/김필곤 목사
98년 2월 25일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평화, 화해, 협력] 실현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에 대북정책 목표를 두고 ①평화를 파괴하는 일체의 무력도발 불응 ②흡수통일배제 ③화해. 협력의 적극추진 등 대북정 3대 원칙을 제시하고 그 원칙을 변함없이 실천해 온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동안 동해안에 잠수정이 침두하기도 했고 서해에서 교전도 있었지만 이 부분만큼은 빨갱이라는 오해를 사면서까지 원칙을 고수하며 포용정책을 실천한 것은 역사 속에서 인정받을 만한 것입니다.
물론 이번 정상회담이 부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납북인사 8만 명, 미귀환 포로 5만 명, 납치인사 8000명인 있는 상황이고 북한의 속셈이 남북화해나 평화적인 통일보다는 전략 전술에 일환으로 어려운 경제난을 해소하고 김정일 체제를 견고히 할 뿐 아니라 국제적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북 정당회담이 이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같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 것은 소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어떤 개인에 의해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우연히 발생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역사 속에서 살아계서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개입을 믿는 신앙인의 눈으로 본다면 이 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기도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분단 55년 동안 남한의 성도들은 끊임없이 남북의 통일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이 기도만큼을 빠뜨리지 않고 드렸고 1000만 이산 가족 중 믿음의 사람들은 가슴치며 통곡하며 통일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북에 있는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때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정도로 교회가 부흥하였고 영적 축복을 받은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 자들이 점령하자 신앙인들은 지하로 이름없이 숨어 버렸습니다. 북한에 신앙인들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신앙인들이 있고 그들은 끊임 눈물흘리며 신앙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날을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북한에는 세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조선 기독교도 연맹 산하에 있는 교회입니다. 1988년 건립된 봉수교회와 1990년에 건립된 칠골교회와 같은 교회입니다. 봉수교회 신도 수는 한 400여명이 된다고 하고 칠곡 교회는 평양시 만경대에 있는 교회로 김일성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반석교회라고도 불리웁니다.
또 하나는 가정교회입니다. 이것도 조선 기독교도 연맹 산하에 있습니다.
1998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제6차 조국의 평화통일과 선교에 관한 기독자회의에 참석한 북한의 김현철 지도위원의 말에 따르면 가정교회는 전국의 도와 군에 흩어져 있으며, 목사는 30명이고 교인은 1만 4천 명쯤 된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지하교회입니다.
북한 당국의 종교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눈을 피해 지하에 숨어 신앙을 유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을 무릎쓰고 지금도 이들은 7-8명 많게는 20명씩 남의 눈을 피해 산에서 다락방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모퉁이돌 선교회는 1985년부터 1만 2천여 권의 성경과 신앙 서적을 재 중국 동포 신자를 통해 북한 지하 교회에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 있는 지하교회 신자야말로 이사야 선지가 말한 대로 신앙의 그루터기요, 남한 신자들과 동질성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 기독교 재건의 초석들입니다. 이들은 남몰래 울부짖으며 통일을 위해 기원했을 것입니다. 오픈도어 선교회(96년 7월)에 의하면 지하교회에서 신앙을 보존하고 있는 신자 14만 명 정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패트릭 존스턴 박사는 북한에 최대 9만 2천여명의 교인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무서운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그들은 남모르게 통곡하면서 통일을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인의 기도응답이 마치 엘리야가 3년 반 가믐이 든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여주듯이 우리 민족에게도 통일에 대한 손바닥만한 구름으로 응답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2000년에 들어와 우리 민족에게 통일의 비전을 새롭게 해 주시는 기회로 믿소 싶습니다.
1.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민족 통일에 대한 비전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이러한 비전을 에스겔에게 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민족이 하나가 되는 비전을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주고 있습니다. 이 비전이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16, 17, 19, 22) 이 비전을 보았을 때 에스겔은 어떤 처지에 있었습니까?
1) 절망적 상황에 있는 에스겔
(1)포로로 간 에스겔
그는 제사장이었습니다(겔1:3)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발강가 포로 수용소에 있었을 것입니다(겔1:1). 아마 지금 30대 쯤이었을 것입니다.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사드릴 성전을 잃었습니다. 제사장이라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가족을 잃었습니다. 고향을 잃었습니다. 미래가 참담합니다. 결코 살아 생전 고향 땅으로는 돌아갈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2)암담한 민족의 미래
왕의 아들들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왕도 눈을 빼임 당했습니다. 통일된 나라가 솔로몬 이후 남북으로 나뉘어 민족적 비극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것도 모자라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했습니다.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여 왕실의 가족과 명문가의 유능한 사람들은 다 포로로 잡혀갔고 일부 서민들은 유다에 남았고 일부 바벨론에게 반항한 사람들은 다시 애굽으로 도망을 간 상태에 있습니다. 이제 민족은 소망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회복이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절망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의 상태를 뼈의 환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겔37:1-2). 1-2절을 보십시오.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라버렸습니다. 골짜기에 버려진 뼈처럼 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씀합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합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다 멸절되었습니다.
(3) 도와 줄 나라 없는 국제 정세
왕은 당시 남쪽의 강대국 중의 하나였던 애굽을 의지하였지만 애굽은 자국의 이익만 챙길 따름이지 조금도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자신들도 바벨론에게 침략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와 우리 나라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어떻습니까? 에스겔 시대나 비슷합니다.
남북한과 4강의 최근 동향을 보면, 두개의 축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평양-베이징-모스크바를 연결하는 축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도쿄-워싱턴을 잇는 축입니다.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하였고 푸틴이 평양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서로 전략적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회복하고 있습니다. 김대통령은 일본 수상과 클린턴을 만났습니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4강이 구한 말처럼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통일을 도와 주기 위해서일까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국제 사회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사상에 의한 냉전 구도가 종식된 요즈음 경제 이데올로기에 의해 세계는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까? 러시아만 보아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고 빚을 빌려가며 북한과 군사적 관계를 정리했는데 이제 다시 등거리 회교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국제 사회에서 우리는 아직 그들 만큼 힘이 강하지 않습니다.
나라 안 사정은 어떻습니까? 남한은 아직 IMF체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식량난으로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통일에 대한 열정이 두 나라 국민들에게 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정책을 집행하는 힘있는 자들은 통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득권을 빼앗깁니다.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잃어버리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통일에 대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2) 비전을 보는 에스겔
(1)소망을 갖게 하기 위해 질문(3)
에스겔의 마음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먼저 에스겔에게 마른 뼈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2)살아나 군대를 이루는 비전을 보여 주심(10)
7절 이하를 보십시오. 흩어진 뼈들이 서로 제 자리를 찾아 갑니다. 힘줄이 생깁니다. 살이 오릅니다. 가죽이 덮입니다. 생기가 들어갑니다. 살아나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3)민족이 하나가 되는 비전을 보여 주심(15-22)
둘인 막대기가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됩니다. 남북이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비전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상대적 가치인 민족 통일은 절대적 가치인 하나님 나라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는 비전은 `이기는 통일'이 아니라 `함께 사는 통일'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 할지라도, 평화(shalom)와 공의를 파괴하며 이루어지는 통일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통일을 원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사역, 즉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순종적 생활양식의 확산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선교적 차원에서 우리는 더욱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무너진 교회들을 다시 새워야 합니다. 울부짖는 북한의 지하 교회 교인들의 음성을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남북한의 정부 모두 통일을 원합니다. 그러나 속마음은 다릅닏. 북한의 경우 `남반부 인민의 해방'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통일의 당위를 찾고 있습니다. 반면에 남한의 경우 `국토분단과 민족분열에 따른 민족적 고통및 불이익해소'라는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통일의 당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인의 답변은 북한의 이데올로기적 차원 또는 남한의 현실주의적차원보다도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차원에서 제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뜻을 같이 하며 서로 돕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규범에 대한 순종입니다(창1:28). 북한 동포에 대한 사랑, 나아가 해외동포와 우리의 후손까지 포함한 민족에 대한 사랑은 예수님의 이웃 사랑(요15:12)에 대한 순종입니다. 모세와 바울도 심지어 예수님도 민족을 사랑하였습니다.
2. 우리에게 민족 통일의 비전을 주시고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1)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비전을 주시고 그 비전을 하나님이 이루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권능으로"라고 했고, 5절에서는 "주 여호와께서"라고 했고 6절 끝에서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했고 9절을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에”라고 했고, 12절을 보면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4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고 했습니다. 누가 통일을 시킨다는 말씀입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입니다." 누가 돌아 오게 합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2)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비전을 이루어 주십니다.
누가 무덤을 엽니까? 누가 무덤에서 나오게 합니까? 누가 마른 뼈를 군대로 만듭니까? “나 여호와가 말하고 이루느니라” “나 여호와인 줄 알리라”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궁휼히 여겨 반드시 통일 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통일에 대한 비전을 가집시다. 통일에 대한 사명감을 가집시다.
우리가 어떻게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까?
역사 속에서 오스트리아는 중립화로 통일하였습니다. 오스트리아는 패전국의 일원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등의 네개 강국에 의해 분활 점령되었지만 온건 사회주의자에 의해 통합 임시정부를 수립 할 수 있었고 이 임시정부를 측으로 단일 행정 체계를 쉽게 이룩 할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은 공산 주의 폭력 혁명(전쟁)에 의해 통일 되었습니다. 독일은 서독의 우세한 경제력에 의해 흡수 통일하였습니다. 남북 예멘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상극적인 체계를 국력의 비례에 따라 통합 정부을 이루었습니다(형식적인 체제통합). 우리 나라는 어떻게 통일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나라의 경우 통일 방식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상호 합의 통일 방식이요. 둘째는 어느 한쪽의 붕괴에 따른 일방적 흡수 통일 방식이요. 셋째는 전쟁에 의한 무력 통일 방식입니다. 남. 북한 공히 첫째의 합의 통일 방식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 방안'을 남한은 `3단계 3기조 통일 정책'을 통일방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대남 4개 요구사항 ((1)외세의존정책 포기 (2)주한 미군 철수 의지 표명 (3)합동군사훈련 영구 중지 (4)미국의 핵우산탈피)을 제외하고 양측 안을 비교해 보면, 양측 모두 단계적, 점진적 통일을 수용하고 있어 유사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통일을 원하시겠습니까?
3. 우리에게 주신 민족 통일의 비전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에스겔에게 보여주신 민족 통일의 비전은 결국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 질 것을 말씀합니다. 에스겔에게 육체적 부활의 비전을 보여 줍니다(12) 바벨론으로부터 정치적 해방을 보여 줍니다. 그와 동시에 영적 부활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14-36:26,27) 누구를 통해서입니까? 그 주체가 누구입니까?(21) 통일 왕국의 왕이었던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행13:22) 다윗은 이미 370년 전에 죽었습니다. 상징적 표현 표현입니다. 그러면 그분은 누구계습니까? "나는 선한 목자(요10:11) 참 포도 나무(요15:1) 다윗의 뿌리(계22:16)"라고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한 목자(24), 화평의 언약(26)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을 열국이 알게됩니다.(28) 어떤 것을 알게 됩니까(23, 27, 28)
2)남북 통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첫째, `통일 한국'은 하나님 중심의 사회, 예수님께서 범사에 인정받으시는 사회가 되도록하여야 합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 해방'을 부르짖으며, 하나님보다 인간 이성을 강조하는 잘못된 사조에 사로잡혀 왔습니다. 이제 경제를 신으로 섬기는 사회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통일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등 각종 정치 이데올로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해서는 안됩니다. 통일 한국은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사회로서, 범사에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님의 통치하심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인정되는 사회로 통일 되도록 우리는 힘을 다하여야 합니다.(그리스도의 통치권이 미치는 사회)
둘째, `통일 한국'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한 원리가 적용되는 사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말씀에 의해 부활하고 말씀에 의해 하나가 되는 민족통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다 성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왜곡된 이데올로기 있습니다. 이것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은 성경적인 것 밖에 없습니다. 한 쪽만 강조하면 안됩니다. 자본주의는 개체를 강조합니다. 공산주의는 전체를 강조합니다. 기독교은 개체주의(individualism)가 아닌 인간주의(personalism)이고 집산주의(collectivism)가 아닌 공동체 주의(communalism)입니다.
셋째, 통일 한국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5000년 역사 속에서 약소국으로 각종 설움과 박대에 처했던 이 민족에게, 지난 100년 사이에 하나님께서 이만큼 영육간에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이제는 통일이 되면 국력이 세계적인 국가가 될 것입니다. 군사력만 해도 160만 대군을 가집니다. 이미 세계 10대 무역 국가가 되었습니다. 대륙을 향해 철도로 얼마든지 선교할 수 있는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비전을 보여 주시면서 두 가지 사역을 사명으로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말씀의 사역(7,8)입니다. 또 하나는 성령의 성령의 사역(9.10)-14입니다. 우리는 통일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이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을 돕는 것은 공산주의자들을 이롭게 하는 일이고, 그들에게 전쟁 물자를 제공하는 자살 행위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통일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보다는 영구 분단이 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00만 동족 가운데 핵심 공산주의자는 많이 잡아도 200만이 못됩니다. 힘으로 능으로 못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의 힘으로는 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아야 합니다.
에스겔의 눈에 보여진 현실은 이미 죽은지 오래된 뼈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그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질문하셨을 때 단지 눈에 보여지고, 자기가 과거에 경험한 것을 토대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대신에 (겔37:3)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를 따름입니다.
민족이 하나되는 비전을 보는 사람들/에스겔37:15-28/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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