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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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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2:4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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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김연숙씨가 쓴 [흔들리는 신앙, 붙들어 주소서]라는 글에 22년 동안 미국 이민 교회에서 108번 교회를 옮긴 장로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년에 약 5번 정도, 평균 두 달에 한 번 정도 교회를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상향의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런대 교회를 옮기는 날로부터 그 교회의 단점을 찾기 시작합니다. 목사의 허물을 맨 먼저 찾아냅니다. 그리고 자기 눈에 드러난 허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답니다. 교회주보, 성가대, 주방, 교인들의 태도 등 108개 교회의 단점을 낱낱이 노트에 적어서 마치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었답니다. 그가 병으로 죽게 되자 어느 교회도 그의 장례식을 해줄 수가 없었답니다. 이유는 그가 섬긴 교회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죽기 전 108번째 교회 목사님이 불쌍히 여겨 그의 장례식을 해주었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천국에 올라가 주님 앞에 108개 교회의 허물을 기록한 두툼한 노트를 펴놓는다면 주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주님은 그 사람의 허물이 적힌 수십 권의 노트를 던져주시지는 않았을까요? 그의 후손은 얼마나 불행했을까요?
모든 사람들은 이상향의 교회를 찾습니다. 그러나 이상향의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란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이상향의 교회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사모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 초대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교회는 개척교회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교회란 이런 곳이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나오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크게 나누어 10가지의 특징이 나옵니다.
1) 패역한 세대 속에서 부름받아 구원받고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회였습니다./40,41,42 2) 가르침 받은대로 구체적으로 서로 교제하는 교회였습니다./42,44절(함께 있어, 통용하고)
3)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일에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였습니다./42,46
4) 기도하는 일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42
5) 봉사하는 일에 헌신된 교회였습니다./45
6) 찬양하는 일에 열심인 교회였습니다./47
7) 전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였습니다./1:8; 2:41,47; 4:4; 5:14; 6:7; 8:4,31;
11:24; 12:24; 13:48; 14:1; 16:5; 18:8; 19:20; 28:30,31
8) 치유의 능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43
9) 온 백성의 칭찬을 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47
10) 그리고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져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47
오늘 하나님께서 이런 교회를 원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이면 싸우고 흩어지면 흉을 보는 교회가 아닙니다. 극장식 교회가 아닙니다. 극장 구경가듯 예배 구경가고 설교 감상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학교같은 교회도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의 사람, 도시, 사건, 역사들을 딸딸 외워 시험쳐서 자격증 따려는 곳이 아닙니다. 백화점같은 교회도 아닙니다. 여러 프로그램을 진열해 놓고 충성스런 고객을 유치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콘써트 홀이 아닙니다. 무슨 발표 들으러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설교 발표? 찬양 발표? 가끔씩 따라 하고? 교회는 사교 클럽이 아닙니다. 싸이버 교회, 네트워크 교회, 온라인 교회, 문어발식 교회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진정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교인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세가지로 오늘 본문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A.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졌습니까?
1)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46(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2)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42(이 가르침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야고보 설교15:13-21, 스데반 설교7:2-53,베드로 설교 4회 2:14-41;3:12-26;10:34-43;17:7-11,바울 설교 6회13:14-43;17:22-32;20:17-38;22:1-22;24:10-21;26:1-24)
3) 기도하기를 전심 전력을 다했습니다./42
4) 하나님을 열심히 찬양했습니다./47
B.우리 열린 교회도 이런 부분에 인정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1) 교회에서 모이기를 힘써 축제적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크게 예배, 교육, 교제, 선교(전도), 봉사(구제)라는 다섯 축이 있습니다. 모두가 중요하지만 가장 우선순위가 예배입니다. 교인이 많이 모이느냐 적게 모이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부자가 모이느냐 가난한 사람이 모이느냐?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모이느냐? 학식있는 사람이 모이느냐? 좋은 프로그램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예배가 하나님게 영광드리는 예배이냐 사람들의 잔치이냐가 문제입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23)"
마지 못해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감격하여 기쁨과 즐거움으로 한 가족이 어울어져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생동력이 있는 예배, 기쁨이 있는 예배. 용서가 있는 예배, 감사가 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구원의 감격이 있는 예배, 치유받는 예배, 능력이 넘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공로로 매주 이렇게 나와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50년 만에 부모 형제 만나는 사람 얼마나 감격합니까? 대통령만 만난다면 얼마나 기뻐합니까?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삼위 일체 하나님께 나와 경배하는 것입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2) 실제적인 제자 훈련이 이루어져 예수님의 제자들이 많이 배출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변화된 11명이 당시 세계를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수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 그리스도의 제자도 변화된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실제적으로 변화된 제자를 배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3) 능력있는 기도로 응답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대하 6:21)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여 응답받았드시 우리 열린 교회가 하나님의 인정받는 교회가 되어 모든 식구들이 이곳에 와서 기도할 때 응답받는 역사가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인한 기쁨의 감격을 가지고 찬양하는 살아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형식에 치우쳐 얼어 붙은 교회가 아니라 늘 복음으로 활화산처럼 기쁨의 감격을 가지고 찬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5절까지 나오는 찬양을 보며 짜증내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찬양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찬양할 때 기쁨이 솟고 찬양할 때 마음에 참된 평강이 깃들과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찬양할 때 간수가 회개하고 기적이 나타났듯이 찬양을 통하여 삶이 변하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왜 이들이 성전에 모여 예배하였고, 무엇을 이들이 가르쳤고, 왜 이들이 기도하고 찬미하였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 이들이 성전에 모여 예배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니까 다 도망 간 사람들입니다. 서로 누가 큰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싸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들은 이제 제물을 통하여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전에서 모여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모든 설교의 중심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이제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예배로 변했으며 제사 중심에서 말씀 중심으로 기도 중심, 찬양 중심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인정받는 교회가 될려면 그리스도 중심으로 예배하고 교육받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진리입니다.
오늘 날 타락해가는 교회들은 목회자 중심이냐 장로 중심이냐 성도 중심이냐 서로 싸웁니다. 장로가 설교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싸우는 것을 얼마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교회는 직분자나, 건물, 물질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근본적으로 교회는 누가 세웠습니까?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피값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우리가 왜 이 자리에 모였습니까? 무엇때문에 모였습니까?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그 구원에 감격하여 오늘도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찬양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조금 윤택한 성도도 예수님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성도도 예수님 때문에, 남자 성도님도 예수님 때문에, 여자 성도님도 예수님 때문에, 더 배운 젊은이도 예수님, 덜 배운 할머니도 예수님. 마음에 상처받아 고통받는 성도님도, 늘 생활에 활기와 기쁨이 넘치는 성도님도 예수님 때문에 이곳에 모인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같이 예배하며, 같이 찬송 부르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말씀듣고 아멘하고, 같이 할렐루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교회는 이미 교회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치명적인 실수가 바로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문밖에 쫓아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주인이신 예수님을 무시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처음 초대교회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마땅히 존경받을 이가 있다면 교역자가 아닌 창립 멤버, 장로님, 헌금 많이 하는 성도, 열심있는 성도가 아니라 예수님이요, 대접받을 이가 있다면 ,부흥사가 아닌 예수님이요, 영광받을 이가 있다면 실력있고 공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예배받을 이가 있다면 그분도 예수님이시요, 찬양받을 이가 있다면 역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목회자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예수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성도님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교회에 와서 보아야 합니다. 오늘 날 그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바로 그 교회가 예수님 중심인가를 보면 됩니다. 예배하는데도 예수님 중심인가? 가르치는데도 예수님 중심인가? 기도하는데도 찬양하는데도 예수님 중심인가를 보면됩니다.
2. 사람에게 인정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과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이냐는 것입니다.
A. 예루살렘 교회를 보십시오. 그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1)서로 교제 하며 떡을 떼었습니다./42
만났다 설교 듣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옆에 누가 않을까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말을 붙일까 조마조마 하면서 교회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기둥 뒤에 숨어 예배드리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교제가 있었습니다.
2)진정한 나눔이 있었습니다./44.45(물건, 재산(부동산) 소유(동산) 자발적 필요 따라 나눔)
성도의 교제를 "코이노니아"라고 합니다. 교제의 근본 정신은 그리스도가 머리라면 우리는 몸이요, 몸의 각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몸의 각 부분은 서로를 감싸주고 서로를 아낍니다. 그들은 서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자기의 것을 자기의 것이라 하지 않고 스스로 내어 놓았습니다. 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였습니다. 교회는 주님과 생명관계입니다. 예수님의 고민이 교회의 고민이 되어야 하고, 교역자의 괴로움이 장로의 괴로움이 되어야 하고, 장로의 괴로움이 권사의 괴로움이 되어야 하고, 권사의 괴로움이 집사의....이렇게 되지 못하면 강당에 모여 강연듣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를 포도 나무와 가지로 비유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연결되어 한 몸이 될 때 바로 그 모습이 교회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네 가난이 내 가난되어야 하고, 네 외로움이 내 외로움이 되어야 하며 네 어려움이 내 어려움, 네 고민이 내 고민, 네 고독이 내 고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들이며 한 아버지를 섬기는 식구들입니다. 학력이 문제가 안됩니다. 출신 지역이 문제가 안됩니다. 경제의 유무가 문제다 안됩니다. 미모가, 재능이, 나이가, 성별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 때 믿지 않는 사람들도 우리를 인정해 줍니다.
3)많은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47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왜 이들이 이렇게 살 수 있었겠습니까?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43절을 보십시오. 직접 기적과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기적과 표적은 무엇으로 나타났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성령 충만입니다. 2장17-18절을 보십시오. 요엘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부모나 자녀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모두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격 자체가 성령의 지배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아 충만하면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욕심 충만, 쾌락 충만하면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내 인격을 성령이 온전히 지배해 버리면 이타주의가 될 수 있고 하나님 말씀 중심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의 관계는 참으로 아름다운 관계로 변합니다.
B. 우리 열린 교회와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한 가족처럼 헌신적인 사람의 교제가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2:19-22절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제 남남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한 식구다는 말입니다. 한 성전이라는 말입니다.
어려울 때 도와 주고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때 함께 울어주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가정같아야 합니다. 장로님의 아들을 내 아들처럼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고 집사님의 딸을 내 딸처럼 관심을 가지고 잘 되기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새식구가 들어 올 때 마치 어린 갖난 아이를 돌보듯이 돌보아야 하고 온 식구가 새 식구에게 관심을 가지듯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몇 년 전 신문 기사에서 누어 지내는 두 아들을 공부시켜 고입 검정 고시 전국 수석이 되게 한 한 어머니의 기사를 읽어 보았습니다. 장씨 형제는 6세까지만 해도 잠깐 앉아있을 수는 있었으나 통증이 심해지고 작은 충격에도 뼈가 달걀껍질처럼 쉽게 부러지고 성장도 거의 멈추는 등 증세가 심해지면서 깁스를 수차례 반복해오다 아예 24시간 누워지내게 됐었다고 합니다. 차라리 하나님이 대려가기를 원하기도 했다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낳은 아들이기 때문에 22년 동안 20년 동안 두 아들을 뒷바라지 한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낳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중증 장애 남편 뒷바라지 대입 검정고시 합격까지 두 발을 못쓰는 중증 장애인 남편을 뒷바라지해 대검에 합격시킨 한 아내의 이야기도 보았습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5살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고 두 다리를 못쓰게 된 최영섭씨를 만나 평생 그를 돌보기로 결심 결혼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내 송영자씨는 남편을 공부시키기 위해 온갖 굿은 일을 하며 그들 돌보았습니다. 결국 장애인 목회자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꿈이라고 했습니다. 왜 갖은 고생을 참고 견디면 돌봅니까?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모자라 보이는 것 같지만 내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가족은 바로 이러해야 합니다. 좋은 점 찾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자란 점 찾아 보충해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족한 점을 채워 주고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서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롬 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많은 사람들이 이 모임에 끼워 달라고 할 정도록 부러운 삶의 현장에서 진정한 나눔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 있는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재능이 있으면 재능을 나누고, 물질이 있으면 물질을 나누고, 사랑이 있으면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미소로 말로 나누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보니까 교인을 라이벌로 생각합니다. 거래자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용자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느 얌체 같은 신자가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행20:35의 말씀을 펼쳐서 목사님 앞에 놓으며 "목사님 여기에 뭐라고 써 있습니까?"물었습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써 있지," "그래요, 저 좀 주세요 좀 도와주세요." 그러자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성경을 이렇게 돌려서 자기가 보라고 했지 남한테 보여주려고 다닙니까?"
몇 년 전에 어느 전도사님이라고 교회에 찾아 왔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는데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문에 이름을 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그 중에 목사님은 누구냐를 것입니다. 안 도와주면 제사장과 같다는 말이겠지요. 제가 제사장이라면 그분은 강도일 것입니다.
(행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서울 도림동에서 33년째 풍도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정진원 장로님의 기사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방송 재단 이사장이었던 선친의 뜻을 받들어 약국을 처음 개업할 때부터 농어촌교회 목회자들에게는 무료로 약을 지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매월 농어촌에서 수십통의 감사편지와 배추 무 감자 깻잎 참기름 등이 배달된다고 합니다. 이들 부부는 무료로 약을 지어주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은혜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약국을 찾는 사람들이 매일 줄을 이어 아침에 약국문을 열기 전부 사람들이 대기실에 가득하다고 합니다. "약봉투에 반드시 성경구절을 적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열린 교회 식구들은 성령 충만하여 성령으로 하나되어 사랑으로 서로 돌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3. 역사 속에서 책임을 다하는 교회,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A. 오늘 예루 살렘 교회는 그 당시 사회 속에서 어떤 영향력을 미쳤습니까?
1)사람들이 두려워 하였습니다./43 왜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까?
2)교회와 가정의 유기적 관계가 이루어졌습니다/46
3)백성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47
4)믿는 백성들이 날마다 늘어났습니다./47
B. 우리 열린 교회는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1)세속화 된 교회-교회가 세상을 그대로 따라가는 교회가 있습니다. 세상의 것을 모방합니다. 세상에 동화됩니다. 이것을 교회의 세속화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2장에는 세상 풍속과 욕심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것을 모방하면 안됩니다. 세상은 인본주의입니다. 황금만능주의입니다. 쾌락 지상주의입니다. 과학 만능주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성공하여야 합니다. 세상에 있는 회사, 기업, 공장 등은 성장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공동체입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장하면 되는 것입니다. 과정의 윤리를 상실하고 세상 방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죽어도 나만 잘되면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이런 영향으로 멀쩡한 교회 팔고 신도시로 이사합니다. 준수한 교회 부수고 세계적인 교회를 짖는다고 또 짖습니다. 직분은 벼슬이 됩니다. 외식과 독선이 가득차게 됩니다. 권모 술수가 난무합니다. 내 교회밖에 모르는 이웃에 대한 섬김과 나눔을 잊어 버린 집단 이기주의가 횡행합니다.
(2)분리된 교회-세상이 싫다고 자신들끼리만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만 잘되면 됩니다.
(3)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부조리한 사회를 변혁시키고 사회를 선도하며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더러워진 사회를 정화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회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모방할 수 있도록 하고 사회가 교회를 추종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어떻게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4장 2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요약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세가지입니다.
(1)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2)가르치시는 것이었습니다. (3)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가르치는 것은 믿는 사람에 대한 교육이므로 믿지 않는 세상을 향한 방법은 두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복음 전하여 생명의 변화시키는 것이고 병든자, 약한자를 정상인으로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열린 교회는 사회를 향하여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1)먼저 약한 자에게 관심을 갖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홀로 서기를 할 수 없는 자들이 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소년 소녀 가장, 무의탁 노인, 정신적, 신체적 장애인, 경제적으로 궁핍함을 당한 자 등 약자를 향하여 구제의 손길을 펼쳐야 합니다.
가난과 기아, 불의와 전쟁의 종식, 파괴와 오염으로부터 환경 보호. 사회악과 부도덕에 대항하여 변화를 추구하는 일, 인신매매, 유괴, 폭행근절. 물량주의, 쾌락주의, 인본주의적 우상철학과 싸워야 합니다. 지역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주민 스스로 그들이 안고있는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도록 돕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주민들을 위한 권익 사업과 생활 상담사업, 노인 사업, 탁아 사업등을 모색하여야 합니다.
법도 감동한 사건이라는 기사를 읽어 본 일이 있습니다.
신용카드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모씨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였습니다. 그는 관례대로 하면 징역 1년 이상의 실형이 불가피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모 회사의 간부라고 밝힌 윤모씨가 서울지법 형사 10단독 양승국 판사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지난 여름 야유회에서 급류타기를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저를 김씨가 구했습니다. 사나운 물살에 모두가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에서 그가 자기 목숨을 걸고 물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김씨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얼마 전엔 새 직장?? 새 출발하게 됐다고 인사까지 왔었는데..}.
그는 변호사를 선임해 주었습니다. 직접 자신이 법정에 나서 선처를 부탁했습니다. 양 판사는 검찰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고민 끝에 벌금 7백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윤씨는 김씨의 벌금도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껴 앉고 {이제 바르게 사는 일만 남았다}고 격려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이제 우리도 주님의 뜻을 따라 베풀어야 합니다. 봉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구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조그마한 일부터 시작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나누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는 이 일을 위해 전문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교회의 최초의 조직입니다. 구제를 위한 안수집사 모임입니다.
2)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사회를 향하여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큰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궁극적으로는 자선단체는 아닙니다. 영혼을 살리는 영적 병원입니다. 그들에게 물질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복음 밖에 없습니다. 복음으로 사람이 변화될 때 사회의 물결은 변화되는 것입니다.
(1)인물을 길러내야 합니다. (2)선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손가락 몇 개를 움직일 뿐 전신이 말을 듣지 않는 척추 장애인 이 일세씨가 있습니다. 결혼한 아내 김성은(31)씨의 뒷바라지로 학업에 전념해 메사추세츠대 경영학과를 3년 만에 우등 졸업했고, 지난해 5월 최고의 엘리트 코스로 알려진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 입학했습니다. 기쁨도 잠시, 이씨에겐 학업 못지 않게 그 동안 장애인이 입학했던 사례가 없었던 케네디 스쿨의 건물을 드나드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시련이었습니다 그것을 안 학교 측은 대학원 출입 문 3개를 그를 위해 2주 동안 공사하여 장애자도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
한 생명을 위한 관심입니다.
(막 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딤후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4. 그결과 어떤 일이 일어 났습니까?
온백성이 칭송, 날마다 믿는 사람 더함
두 세사람이 모이기만 하면 하는 얘기가 온통 이 얘기 뿐 이라는 것입니다. 그 교회를 가니까 사람이 달라지더라! 처음보는 사람인데도 사랑이 철철 넘치더라! 가난한 사람을 돌봐주더라!.....그래 그럼 나도 가봐 야 겠는걸.....하면서 울면서 왔다가 웃으면서 돌아가고, 떨면서 왔다가 떳떳 하게 돌아가고, 절망하면서 왔다가 소망을 가지고 돌아가고..... 이런 소문이 온 시내에 파다하니 그 자리가 터져 나가도록 모여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일순간에 부흥이 되었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성장의 모습을 보십시오.
(1)삼천-행2:41 (2)남자 오천-행4:4 (3)심히 많음-행6:7 (4)남녀 세례-행8:12 (5)수가 많아짐-행9:31 (6)수다한 사람들-행11:21 (7)수만-행21:20
이제 우리는 교회를 어떻게 만들기를 원하십니까?
1. 먼저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로 만듭시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1) 구원에 감격하여 교회에서 모이기를 힘써 축제적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이 실제적인 제자 훈련을 통하여 재 생산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응답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4)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와 감격의 찬양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사람에게 인정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열린 교회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한 가족처럼 헌신적인 사람의 교제가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2)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3. 역사 속에서 책임을 다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속화 된 교회가 아니라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니라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을 개혁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약자를 도와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선교와 구제에 헌신된 교회어야 합니다. 기쁨과 희망을 주는 교회, 부패를 막는 방부제 역할을 하는 교회, 사람을 키우는 교회, 선교의 보루라 되는 교회, 나눔과 구제가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교회상/본문:행2:43-47 /김필곤 목사
모든 사람들은 이상향의 교회를 찾습니다. 그러나 이상향의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란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이상향의 교회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사모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 초대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교회는 개척교회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교회란 이런 곳이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나오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크게 나누어 10가지의 특징이 나옵니다.
1) 패역한 세대 속에서 부름받아 구원받고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회였습니다./40,41,42 2) 가르침 받은대로 구체적으로 서로 교제하는 교회였습니다./42,44절(함께 있어, 통용하고)
3)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예배드리는 일에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였습니다./42,46
4) 기도하는 일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42
5) 봉사하는 일에 헌신된 교회였습니다./45
6) 찬양하는 일에 열심인 교회였습니다./47
7) 전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였습니다./1:8; 2:41,47; 4:4; 5:14; 6:7; 8:4,31;
11:24; 12:24; 13:48; 14:1; 16:5; 18:8; 19:20; 28:30,31
8) 치유의 능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43
9) 온 백성의 칭찬을 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47
10) 그리고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져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47
오늘 하나님께서 이런 교회를 원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이면 싸우고 흩어지면 흉을 보는 교회가 아닙니다. 극장식 교회가 아닙니다. 극장 구경가듯 예배 구경가고 설교 감상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학교같은 교회도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의 사람, 도시, 사건, 역사들을 딸딸 외워 시험쳐서 자격증 따려는 곳이 아닙니다. 백화점같은 교회도 아닙니다. 여러 프로그램을 진열해 놓고 충성스런 고객을 유치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콘써트 홀이 아닙니다. 무슨 발표 들으러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설교 발표? 찬양 발표? 가끔씩 따라 하고? 교회는 사교 클럽이 아닙니다. 싸이버 교회, 네트워크 교회, 온라인 교회, 문어발식 교회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진정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교인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세가지로 오늘 본문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A.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졌습니까?
1)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46(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2)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42(이 가르침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야고보 설교15:13-21, 스데반 설교7:2-53,베드로 설교 4회 2:14-41;3:12-26;10:34-43;17:7-11,바울 설교 6회13:14-43;17:22-32;20:17-38;22:1-22;24:10-21;26:1-24)
3) 기도하기를 전심 전력을 다했습니다./42
4) 하나님을 열심히 찬양했습니다./47
B.우리 열린 교회도 이런 부분에 인정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1) 교회에서 모이기를 힘써 축제적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크게 예배, 교육, 교제, 선교(전도), 봉사(구제)라는 다섯 축이 있습니다. 모두가 중요하지만 가장 우선순위가 예배입니다. 교인이 많이 모이느냐 적게 모이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부자가 모이느냐 가난한 사람이 모이느냐?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모이느냐? 학식있는 사람이 모이느냐? 좋은 프로그램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예배가 하나님게 영광드리는 예배이냐 사람들의 잔치이냐가 문제입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23)"
마지 못해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감격하여 기쁨과 즐거움으로 한 가족이 어울어져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생동력이 있는 예배, 기쁨이 있는 예배. 용서가 있는 예배, 감사가 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구원의 감격이 있는 예배, 치유받는 예배, 능력이 넘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공로로 매주 이렇게 나와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50년 만에 부모 형제 만나는 사람 얼마나 감격합니까? 대통령만 만난다면 얼마나 기뻐합니까?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삼위 일체 하나님께 나와 경배하는 것입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2) 실제적인 제자 훈련이 이루어져 예수님의 제자들이 많이 배출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변화된 11명이 당시 세계를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수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 그리스도의 제자도 변화된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실제적으로 변화된 제자를 배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3) 능력있는 기도로 응답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대하 6:21)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여 응답받았드시 우리 열린 교회가 하나님의 인정받는 교회가 되어 모든 식구들이 이곳에 와서 기도할 때 응답받는 역사가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인한 기쁨의 감격을 가지고 찬양하는 살아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형식에 치우쳐 얼어 붙은 교회가 아니라 늘 복음으로 활화산처럼 기쁨의 감격을 가지고 찬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5절까지 나오는 찬양을 보며 짜증내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찬양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찬양할 때 기쁨이 솟고 찬양할 때 마음에 참된 평강이 깃들과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찬양할 때 간수가 회개하고 기적이 나타났듯이 찬양을 통하여 삶이 변하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왜 이들이 성전에 모여 예배하였고, 무엇을 이들이 가르쳤고, 왜 이들이 기도하고 찬미하였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 이들이 성전에 모여 예배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니까 다 도망 간 사람들입니다. 서로 누가 큰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싸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들은 이제 제물을 통하여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전에서 모여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모든 설교의 중심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이제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예배로 변했으며 제사 중심에서 말씀 중심으로 기도 중심, 찬양 중심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인정받는 교회가 될려면 그리스도 중심으로 예배하고 교육받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진리입니다.
오늘 날 타락해가는 교회들은 목회자 중심이냐 장로 중심이냐 성도 중심이냐 서로 싸웁니다. 장로가 설교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싸우는 것을 얼마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교회는 직분자나, 건물, 물질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근본적으로 교회는 누가 세웠습니까?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피값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우리가 왜 이 자리에 모였습니까? 무엇때문에 모였습니까?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그 구원에 감격하여 오늘도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찬양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조금 윤택한 성도도 예수님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성도도 예수님 때문에, 남자 성도님도 예수님 때문에, 여자 성도님도 예수님 때문에, 더 배운 젊은이도 예수님, 덜 배운 할머니도 예수님. 마음에 상처받아 고통받는 성도님도, 늘 생활에 활기와 기쁨이 넘치는 성도님도 예수님 때문에 이곳에 모인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같이 예배하며, 같이 찬송 부르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말씀듣고 아멘하고, 같이 할렐루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교회는 이미 교회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치명적인 실수가 바로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문밖에 쫓아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주인이신 예수님을 무시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처음 초대교회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마땅히 존경받을 이가 있다면 교역자가 아닌 창립 멤버, 장로님, 헌금 많이 하는 성도, 열심있는 성도가 아니라 예수님이요, 대접받을 이가 있다면 ,부흥사가 아닌 예수님이요, 영광받을 이가 있다면 실력있고 공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예배받을 이가 있다면 그분도 예수님이시요, 찬양받을 이가 있다면 역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목회자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예수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성도님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교회에 와서 보아야 합니다. 오늘 날 그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바로 그 교회가 예수님 중심인가를 보면 됩니다. 예배하는데도 예수님 중심인가? 가르치는데도 예수님 중심인가? 기도하는데도 찬양하는데도 예수님 중심인가를 보면됩니다.
2. 사람에게 인정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과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이냐는 것입니다.
A. 예루살렘 교회를 보십시오. 그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1)서로 교제 하며 떡을 떼었습니다./42
만났다 설교 듣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옆에 누가 않을까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말을 붙일까 조마조마 하면서 교회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기둥 뒤에 숨어 예배드리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교제가 있었습니다.
2)진정한 나눔이 있었습니다./44.45(물건, 재산(부동산) 소유(동산) 자발적 필요 따라 나눔)
성도의 교제를 "코이노니아"라고 합니다. 교제의 근본 정신은 그리스도가 머리라면 우리는 몸이요, 몸의 각부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몸의 각 부분은 서로를 감싸주고 서로를 아낍니다. 그들은 서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자기의 것을 자기의 것이라 하지 않고 스스로 내어 놓았습니다. 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였습니다. 교회는 주님과 생명관계입니다. 예수님의 고민이 교회의 고민이 되어야 하고, 교역자의 괴로움이 장로의 괴로움이 되어야 하고, 장로의 괴로움이 권사의 괴로움이 되어야 하고, 권사의 괴로움이 집사의....이렇게 되지 못하면 강당에 모여 강연듣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를 포도 나무와 가지로 비유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연결되어 한 몸이 될 때 바로 그 모습이 교회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네 가난이 내 가난되어야 하고, 네 외로움이 내 외로움이 되어야 하며 네 어려움이 내 어려움, 네 고민이 내 고민, 네 고독이 내 고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들이며 한 아버지를 섬기는 식구들입니다. 학력이 문제가 안됩니다. 출신 지역이 문제가 안됩니다. 경제의 유무가 문제다 안됩니다. 미모가, 재능이, 나이가, 성별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 때 믿지 않는 사람들도 우리를 인정해 줍니다.
3)많은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47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왜 이들이 이렇게 살 수 있었겠습니까?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43절을 보십시오. 직접 기적과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기적과 표적은 무엇으로 나타났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성령 충만입니다. 2장17-18절을 보십시오. 요엘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부모나 자녀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모두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격 자체가 성령의 지배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아 충만하면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욕심 충만, 쾌락 충만하면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내 인격을 성령이 온전히 지배해 버리면 이타주의가 될 수 있고 하나님 말씀 중심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의 관계는 참으로 아름다운 관계로 변합니다.
B. 우리 열린 교회와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한 가족처럼 헌신적인 사람의 교제가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2:19-22절 말씀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제 남남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한 식구다는 말입니다. 한 성전이라는 말입니다.
어려울 때 도와 주고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때 함께 울어주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가정같아야 합니다. 장로님의 아들을 내 아들처럼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고 집사님의 딸을 내 딸처럼 관심을 가지고 잘 되기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새식구가 들어 올 때 마치 어린 갖난 아이를 돌보듯이 돌보아야 하고 온 식구가 새 식구에게 관심을 가지듯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몇 년 전 신문 기사에서 누어 지내는 두 아들을 공부시켜 고입 검정 고시 전국 수석이 되게 한 한 어머니의 기사를 읽어 보았습니다. 장씨 형제는 6세까지만 해도 잠깐 앉아있을 수는 있었으나 통증이 심해지고 작은 충격에도 뼈가 달걀껍질처럼 쉽게 부러지고 성장도 거의 멈추는 등 증세가 심해지면서 깁스를 수차례 반복해오다 아예 24시간 누워지내게 됐었다고 합니다. 차라리 하나님이 대려가기를 원하기도 했다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낳은 아들이기 때문에 22년 동안 20년 동안 두 아들을 뒷바라지 한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낳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중증 장애 남편 뒷바라지 대입 검정고시 합격까지 두 발을 못쓰는 중증 장애인 남편을 뒷바라지해 대검에 합격시킨 한 아내의 이야기도 보았습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5살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고 두 다리를 못쓰게 된 최영섭씨를 만나 평생 그를 돌보기로 결심 결혼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내 송영자씨는 남편을 공부시키기 위해 온갖 굿은 일을 하며 그들 돌보았습니다. 결국 장애인 목회자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꿈이라고 했습니다. 왜 갖은 고생을 참고 견디면 돌봅니까?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모자라 보이는 것 같지만 내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가족은 바로 이러해야 합니다. 좋은 점 찾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자란 점 찾아 보충해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족한 점을 채워 주고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서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롬 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많은 사람들이 이 모임에 끼워 달라고 할 정도록 부러운 삶의 현장에서 진정한 나눔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 있는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재능이 있으면 재능을 나누고, 물질이 있으면 물질을 나누고, 사랑이 있으면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미소로 말로 나누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보니까 교인을 라이벌로 생각합니다. 거래자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용자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느 얌체 같은 신자가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행20:35의 말씀을 펼쳐서 목사님 앞에 놓으며 "목사님 여기에 뭐라고 써 있습니까?"물었습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써 있지," "그래요, 저 좀 주세요 좀 도와주세요." 그러자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성경을 이렇게 돌려서 자기가 보라고 했지 남한테 보여주려고 다닙니까?"
몇 년 전에 어느 전도사님이라고 교회에 찾아 왔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는데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문에 이름을 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그 중에 목사님은 누구냐를 것입니다. 안 도와주면 제사장과 같다는 말이겠지요. 제가 제사장이라면 그분은 강도일 것입니다.
(행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서울 도림동에서 33년째 풍도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정진원 장로님의 기사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방송 재단 이사장이었던 선친의 뜻을 받들어 약국을 처음 개업할 때부터 농어촌교회 목회자들에게는 무료로 약을 지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매월 농어촌에서 수십통의 감사편지와 배추 무 감자 깻잎 참기름 등이 배달된다고 합니다. 이들 부부는 무료로 약을 지어주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은혜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약국을 찾는 사람들이 매일 줄을 이어 아침에 약국문을 열기 전부 사람들이 대기실에 가득하다고 합니다. "약봉투에 반드시 성경구절을 적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열린 교회 식구들은 성령 충만하여 성령으로 하나되어 사랑으로 서로 돌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3. 역사 속에서 책임을 다하는 교회,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A. 오늘 예루 살렘 교회는 그 당시 사회 속에서 어떤 영향력을 미쳤습니까?
1)사람들이 두려워 하였습니다./43 왜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까?
2)교회와 가정의 유기적 관계가 이루어졌습니다/46
3)백성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47
4)믿는 백성들이 날마다 늘어났습니다./47
B. 우리 열린 교회는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1)세속화 된 교회-교회가 세상을 그대로 따라가는 교회가 있습니다. 세상의 것을 모방합니다. 세상에 동화됩니다. 이것을 교회의 세속화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2장에는 세상 풍속과 욕심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것을 모방하면 안됩니다. 세상은 인본주의입니다. 황금만능주의입니다. 쾌락 지상주의입니다. 과학 만능주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성공하여야 합니다. 세상에 있는 회사, 기업, 공장 등은 성장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공동체입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장하면 되는 것입니다. 과정의 윤리를 상실하고 세상 방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죽어도 나만 잘되면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이런 영향으로 멀쩡한 교회 팔고 신도시로 이사합니다. 준수한 교회 부수고 세계적인 교회를 짖는다고 또 짖습니다. 직분은 벼슬이 됩니다. 외식과 독선이 가득차게 됩니다. 권모 술수가 난무합니다. 내 교회밖에 모르는 이웃에 대한 섬김과 나눔을 잊어 버린 집단 이기주의가 횡행합니다.
(2)분리된 교회-세상이 싫다고 자신들끼리만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만 잘되면 됩니다.
(3)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부조리한 사회를 변혁시키고 사회를 선도하며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더러워진 사회를 정화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회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모방할 수 있도록 하고 사회가 교회를 추종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어떻게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4장 2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요약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세가지입니다.
(1)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2)가르치시는 것이었습니다. (3)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가르치는 것은 믿는 사람에 대한 교육이므로 믿지 않는 세상을 향한 방법은 두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복음 전하여 생명의 변화시키는 것이고 병든자, 약한자를 정상인으로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열린 교회는 사회를 향하여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1)먼저 약한 자에게 관심을 갖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홀로 서기를 할 수 없는 자들이 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소년 소녀 가장, 무의탁 노인, 정신적, 신체적 장애인, 경제적으로 궁핍함을 당한 자 등 약자를 향하여 구제의 손길을 펼쳐야 합니다.
가난과 기아, 불의와 전쟁의 종식, 파괴와 오염으로부터 환경 보호. 사회악과 부도덕에 대항하여 변화를 추구하는 일, 인신매매, 유괴, 폭행근절. 물량주의, 쾌락주의, 인본주의적 우상철학과 싸워야 합니다. 지역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주민 스스로 그들이 안고있는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도록 돕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주민들을 위한 권익 사업과 생활 상담사업, 노인 사업, 탁아 사업등을 모색하여야 합니다.
법도 감동한 사건이라는 기사를 읽어 본 일이 있습니다.
신용카드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모씨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였습니다. 그는 관례대로 하면 징역 1년 이상의 실형이 불가피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모 회사의 간부라고 밝힌 윤모씨가 서울지법 형사 10단독 양승국 판사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지난 여름 야유회에서 급류타기를 하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저를 김씨가 구했습니다. 사나운 물살에 모두가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에서 그가 자기 목숨을 걸고 물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김씨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얼마 전엔 새 직장?? 새 출발하게 됐다고 인사까지 왔었는데..}.
그는 변호사를 선임해 주었습니다. 직접 자신이 법정에 나서 선처를 부탁했습니다. 양 판사는 검찰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고민 끝에 벌금 7백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윤씨는 김씨의 벌금도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껴 앉고 {이제 바르게 사는 일만 남았다}고 격려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이제 우리도 주님의 뜻을 따라 베풀어야 합니다. 봉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구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조그마한 일부터 시작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나누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는 이 일을 위해 전문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교회의 최초의 조직입니다. 구제를 위한 안수집사 모임입니다.
2)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사회를 향하여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큰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궁극적으로는 자선단체는 아닙니다. 영혼을 살리는 영적 병원입니다. 그들에게 물질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복음 밖에 없습니다. 복음으로 사람이 변화될 때 사회의 물결은 변화되는 것입니다.
(1)인물을 길러내야 합니다. (2)선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손가락 몇 개를 움직일 뿐 전신이 말을 듣지 않는 척추 장애인 이 일세씨가 있습니다. 결혼한 아내 김성은(31)씨의 뒷바라지로 학업에 전념해 메사추세츠대 경영학과를 3년 만에 우등 졸업했고, 지난해 5월 최고의 엘리트 코스로 알려진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 입학했습니다. 기쁨도 잠시, 이씨에겐 학업 못지 않게 그 동안 장애인이 입학했던 사례가 없었던 케네디 스쿨의 건물을 드나드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시련이었습니다 그것을 안 학교 측은 대학원 출입 문 3개를 그를 위해 2주 동안 공사하여 장애자도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
한 생명을 위한 관심입니다.
(막 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딤후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4. 그결과 어떤 일이 일어 났습니까?
온백성이 칭송, 날마다 믿는 사람 더함
두 세사람이 모이기만 하면 하는 얘기가 온통 이 얘기 뿐 이라는 것입니다. 그 교회를 가니까 사람이 달라지더라! 처음보는 사람인데도 사랑이 철철 넘치더라! 가난한 사람을 돌봐주더라!.....그래 그럼 나도 가봐 야 겠는걸.....하면서 울면서 왔다가 웃으면서 돌아가고, 떨면서 왔다가 떳떳 하게 돌아가고, 절망하면서 왔다가 소망을 가지고 돌아가고..... 이런 소문이 온 시내에 파다하니 그 자리가 터져 나가도록 모여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일순간에 부흥이 되었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성장의 모습을 보십시오.
(1)삼천-행2:41 (2)남자 오천-행4:4 (3)심히 많음-행6:7 (4)남녀 세례-행8:12 (5)수가 많아짐-행9:31 (6)수다한 사람들-행11:21 (7)수만-행21:20
이제 우리는 교회를 어떻게 만들기를 원하십니까?
1. 먼저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로 만듭시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1) 구원에 감격하여 교회에서 모이기를 힘써 축제적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이 실제적인 제자 훈련을 통하여 재 생산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응답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4)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와 감격의 찬양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사람에게 인정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열린 교회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한 가족처럼 헌신적인 사람의 교제가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2)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3. 역사 속에서 책임을 다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속화 된 교회가 아니라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니라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을 개혁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약자를 도와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선교와 구제에 헌신된 교회어야 합니다. 기쁨과 희망을 주는 교회, 부패를 막는 방부제 역할을 하는 교회, 사람을 키우는 교회, 선교의 보루라 되는 교회, 나눔과 구제가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교회상/본문:행2:43-47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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