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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마태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945 추천 수 0 2009.11.16 14:3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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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6:11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7년 8월 26일 주일2부설교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서론>
오늘 저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돈은 만 악의 뿌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돈은 만 가지 선의 뿌리라고도 말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돈 그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돈을 쓰는 사람에 따라서 선하게 쓰면 선하게 되고 악하게 쓰면 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돈이 악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악한 수단이 되고 좋은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선한 수단이 됩니다. 우리 신앙인은 돈 즉 물질에 대하여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수를 잘 믿으려면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려야 된다. 예수를 잘 믿으려면 물질적인 일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을 따라서 결정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성경에 뭐라고 말씀 하셨는가 그것을 우리가 알고 그대로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서 신앙생활을 해야지 사람들의 의견과 사람들의 생각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구약시대 하나님의 사람과 물질
구약시대 하나님의 사람과 물질에 관한 관계에 관해서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우리가 보아야 될 것입니다. 먼저 인간의 최초 거주지는 에덴 낙원이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낙원이라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납니까? 낙원이 헐벗고 굶주리고 황폐하고 광야가 된 곳을 보고 '야~ 이것 낙원이다.' 그렇게 생각할까요?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 상상 속에 최고로 기화요초 만발하고 먹기에도 좋고 보기에도 아름다운 실과와 꽃이 많이 피고 열매 맺고 아름다운 시내가 흐르고 새들이 노래하는 기가 막힌 좋은 곳을 생각할까요? 어린 아이들이라도 좋은 것을 보고 좋다고 말하고 나쁜 것을 보고 나쁘다고 말합니다. 하물며 우리가 낙원을 보고 '이것 나쁘다. 좋지 않다.' 그렇게 말할 사람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에덴 낙원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낙원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성경에는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다고 말하시고 창2:11~12에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서 그곳에는 금도 나고 순금도 나고 진주도 나고 호마노도 나고 온갖 보석이 다 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에덴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낙원이요, 그곳에는 금은보화가 가득한 곳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노아를 보십시다. 여러분, 노아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빈손 들었으면 120년 동안 어떻게 방주를 지었겠습니까? 거대한 방주를 지을 만큼 큰 부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480세 때 인간을 땅에서 멸망시키겠다고 알려 주시고 120년 동안 방주를 짓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창6:3에 "야훼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120년 동안에 노아는 방주를 짓는데 모든 생기 있는 동물과 곤충들이 다 방주에 들어올 만큼 큰 배를 지었습니다. 요사이 이런 배를 지으려면 거대한 회사나 국가가 돈을 대야 될 텐데 노아는 혼자서 120년 동안에 그 많은 목재와 그 많은 인원들을 거느리고 배를 지을 만큼 부자였습니다. 노아가 털털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으면 방주가 아니라 보트도 하나 못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또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다. 75세에 가나안에 와서 빈털터리가 되었지요. 하나님께서 네 전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게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해서 가나안 땅에 왔는데 큰 기근이 들어서 종들은 다 뿔뿔이 헤어지고 짐승 때는 다 굶어죽고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을 데리고 빈털터리가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먹기 살기 위해서 애굽 땅으로 내려가서 설상가상으로 그 아내가 너무나 예뻤기 때문에 바로 왕에게 아내도 빼앗기고 인생에 가장 어두운 경험을 한 것이 아브라함입니다. 그러나 곧장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금과 은과 짐승 떼가 많았다고 했습니다.
창13:1~2에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가나안 땅에서 빈손 들고 애굽에 내려갔으나 애굽에서 모욕과 고난을 당했으나 하나님이 물질적으로는 그에게 가난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애굽에서 있을 동안에 하나님은 가축과 은과 금을 풍부하게 허락하여 주셔서 큰 부자가 되어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 살 동안에 얼마나 부자였든지 집에서 사병을 318명이나 거느렸습니다. 어려울 때 여러분 입 한사람 덜어주는 것 만 해도 가정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됩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318명을 집에서 사병으로 먹이고 입히고 기르고 월급을 주고 있었습니다. 롯이 적군에게 포로로 잡혀 갔을 때 아브라함이 318명의 사병을 거느리고 밤중에 습격해서 적을 물리치고 롯을 구해온 사건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14:14~16에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정말 큰 부자였습니다. 그 아들 이삭을 장가보내기 위해서 아람 땅에 보내 아내를 구하게 했을 때 그 사돈될 집에서 종 엘리에셀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창24:35에 "야훼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라고 말한 것입니다.
종의 입으로 직접 사돈될 집에 가서 아브라함은 큰 부자요, 은과 금이 풍부하고 짐승 때도 많고 종들도 많다고 자랑을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구약성경에 보면 그들의 삶속에 고난은 많았으나 물질적으로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창26:12~14에 보면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야훼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가난하게 되어야 된다구요? 하나님을 믿은 대표적인 사람들이 가난 안했는데 어떻게 합니까? 아담과 하와도 가난하지 않았고 노아도 가난하지 않았고 아브라함도 가난하지 아니했고 이삭은 성경 말씀대로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은 외삼촌 집에 도망을 가서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올 때 창32:10에 말하기를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지팡이만 들고 형을 피해서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쳤던 야곱이 20년 만에 돌아올 때는 한 떼, 두 떼 바다의 모래와 같은 많은 짐승을 거느리고 거부가 되어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구약시대를 통틀어 볼 때 하나님을 섬기고 충성한 주의 백성들이 고난은 많이 당했지만 물질적으로 헐벗고 굶주리고 남에게 구걸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의 동시대에 살았던 욥도 보십시오. 욥은 동방에서 제일가는 부자였습니다. 마귀의 시련을 겪어서 한때 큰 고통을 당했으나 하나님이 다시 배로 축복을 해준 사실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에게 빈털터리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하게 축복을 허락해 주는 것이 우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을 빈손 들려 보내기가 만무한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빈손 들고 나오지 않고 금과 은을 애굽 사람에게 풍부히 받아서 나왔었습니다. 그들을 광막한 광야에 살게 한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살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러므로 물질 문제에 관해서 인색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 앞에 많은 시련과 고난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헐벗고 굶주리고 벌거벗겨 놓아서 살게 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2. 신약시대 하나님의 사람과 물질
그것은 구약시대의 일이고 신약시대의 하나님과 사람과 물질의 관계는 다르다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뭐라고 말했냐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 땅에 오셔서 풍찬노숙을 하고 가난하게 살았다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려면 우리도 헐벗고 굶주리고 빈손 들고 살아야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가난한 이유는 우리의 가난을 대신 갚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 8:9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버지가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온갖 고생을 하고 물질을 모았습니다. 자손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좋은 대학에 공부시키고 좋은 생활하게 합니다. 그러나 자손은 말하기를 "나는 이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하고 수고하며 밤늦게 주무시고 아침 일찍 일어나며 온갖 고생을 다했는데 나도 아버지를 따라서 고생을 해야지 풍부하게 살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야 이놈아! 정신을 바로 차려라. 너가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하게 살게 하려고 내가 온갖 고생을 다해서 모아 놓았는데 왜 생각을 그렇게 잘못하느냐?" "아니요, 나는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가렵니다." "내가 너를 고생 안 시키려고 고생을 했는데 왜 내 고생을 네가 하려고 하느냐?" 그렇게 말할 것 아니겠습니까? "주여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서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풍찬노숙을 하며 살겠습니다." 예수님이 "아니야, 너희 가난함을 내가 대신 짊어지고 나의 가난함을 통해서 너로 부요케 하려고 내가 고생을 했으니 나를 믿는 너희는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노라" 그렇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난은 대속의 가난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갈3:13~14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저주를 받는다는 것 얼마나 무서운 일인 것입니까? 저주의 가시채를 주님께서 머리에 쓰시고 가시에 찔리고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우리를 아담과 하와 이후 받은 저주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값 주고 사기 위해서 고난당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불한 그 고통을 우리가 다시 지불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가난은 우리를 대속하기 위한 가난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의 가난은 선택한 가난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앉아서 장사를 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사업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온 천하에 다니면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나 안주하지 않고 늘 여행을 하고 복음을 전해야 되므로 가난할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막6:8~9에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주님께서는 세상의 물질에 염려하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홀가분하게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신을까, 어느 곳에 거할까는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증거할 때 굶어죽은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핍박을 당해서 순교를 당한 제자는 있지만 굶어서 죽지는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때 그 열악한 환경에서 아무데 의지할 것 없는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게도 먹이고 입히고 신겼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선택한 가난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부요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일생을 던져서 복음을 위하여 가난하게 된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여러분 사도들과 복음 전도자들은 스스로 나그네 생활을 선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8:20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늘은 이 동리에서 내일은 저 동리로 오늘은 이 나라에서 내일은 저 나라로 항상 떠돌아다니며 나그네 생활을 하니까 앉아서 돈을 벌 여가가 없는 것입니다. 부요해 집을 짓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그러한 처지가 못 된 것입니다. 스스로 택한 가난이었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 같은 사람은 독일을 떠나서 저 아프리카에 험한 오지에 들어가서 산 것은 자기가 선택한 것입니다. 선택한 가난이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가장 가난한 인도의 켈커타의 빈민굴에 들어간 것도 자기가 선택한 가난이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에 십자가 구속의 은총에 참여하는 것으로 상이 굉장히 클 것 입니다. 그는 장차 얻을 상을 위해서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축복과 특권을 포기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스스로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내어 던져 버리고 스스로 가난을 택한 것은 칭찬하고 찬양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은데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해서 교회에 짐이 되고 나라에 짐이 되고 일가친척에 부담이 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될 것 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한 물질관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물질관은 무엇이냐, 우리는 아담의 자손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므로 아담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알라는 것입니다. 아담은 에덴에서 저주를 받아 쫓겨났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저주에서 해방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저주에서 해방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은 아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구 인류가 아니라 신인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저주에서 해방이 되었으므로 집에 들어와도 축복이 있고 들에 가도 축복이 있고 떡 반죽 그릇을 만들어도 축복이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분명히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갈3:14에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복이 우리에게 빠르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 고난이 없다는 말은 안했습니다.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고난조차도 복의 열매를 종국에 맺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약5:11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욥은 크게 시험을 당하고 고난을 입었었으나 나중에 하나님이 배로 축복해 준 것처럼 고난도 결국에는 우리의 신앙을 높여주고 결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3. 일용할 양식
그러므로 성경에는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서 여러분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에게 밥만 먹여 주시옵소서 기도합니까? 여러분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직업이 있어야 되지요.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되지요.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집이 있어야 되지요. 입고나갈 옷이 있어야지요. 타고 다닐 자동차가 교통수단이 있어야 되지요. 컴퓨터가 있어야 되지요. 핸드폰이 있어야 되지요. 요사이 일용할 양식을 얻으려면 준비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일용할 양식이라니까 하루 삼시 세 때 밥만 먹여 주는 것이 일용할 양식이라고 하는데 밥벌이 하자면 모든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벌써 어린 아이 때부터 밥벌이 하지만 유치원에 나가고 초등학교 중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업훈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일용할 양식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교회 오는데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오셨지 않습니까? 그것도 일용할 양식입니다. 여러분 옷을 입고 계시지 않습니까? 옷 안 입고 직장이 거할 수가 있어요? 없지요. 일용할 양식입니다. 집이 있어야 쉴 수 있지요. 집도 일용할 양식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일용할 양식으로 주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동차면 자동차 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핸드폰이면 핸드폰 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집이면 집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데 건강이 필요하다면 건강을 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빌4:19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한두 가지 쓸 것이 아닙니다. 모든 쓸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 일용할 양식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말3:10~12에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면서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 우리에게 모든 일에 복을 부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잘 섬기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화나 저주를 주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 집 앞에 서 있는 맘씨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는 창업주 '샌더스'는 6살 때 아버지를 잃고 12살에 어머니마저 재혼하며 그들을 떠나 이후에 그의 삶은 파란만장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65세 때 그는 그동안 어렵게 모았던 모든 재산을 잃고 파산해서 아내도 떠나버렸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들도 죽어서 너무나 슬퍼서 정신병이 걸렸습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있을 동안에 하루는 정신병 병원 교회에서 찬송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찬송을 따라서 교회에 가서 꿇어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구원도 받고 정신병에서 놓여남을 받았습니다. 정신병에서 놓여남을 받아서 길거리 나왔는데 집이 있습니까? 아내가 있습니까? 자식이 있습니까? 나이가 젊습니까? 65살이 된 노인이 무엇을 합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고 했는데 나는 집도 없고 가족도 없고 있을 곳도 없고 나이고 이제 65살인데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셔서 닭고기를 굽는 기술을 주셨습니다. 열심히 훈련을 하고 시험을 해본 결과에 11가지 양념으로써 닭튀김을 개발해서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창시하고 너무나 이 닭고기가 잘 팔려 대기업이 되어 65세에 창업을 해서 80세에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전 미국에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 하다가 9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의지하면 젊은 나이에만 하나님이 돌봐주는 것이 아니라 65살에 파산해서 정신병원이 걸렸어도 재기하여 80에 억만장자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이에 상관없어요. 예수 믿으면 젊은 나이나 늙은 나이나 주님께서 함께 해서 복을 주시면 들에 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생활은 복 받는 생활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보십시오. 일류 국가가 된 나라는 과거에 조상들이 잘 믿었던지 지금 자기들이 잘 믿었던지 주를 경계하고 섬기는 나라마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는 나라가 된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하나님을 잘 믿었던 소련이 하나님을 버리고 공산주의를 택하고 난 다음 얼마나 비참하게 망한 사실을 우리가 알지 않습니까? 우리가 교회 문을 닫으면 하나님은 하늘 문을 닫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문을 열어 놓으면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5만 교회가 있다는 것은 5만 교회 문을 열어 놓고 하나님이 5만 교회 하늘 문을 열어 제켜 놓았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많이 설수록 하늘문은 더 넓게 열리고 축복의 비는 더 힘차게 내려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남아돌아가는 삶이 아닌 부족함이 없는 삶을 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흥청망청 살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시23:1에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가 삶에 부족함이 없이 축복해 주겠다는 것이지 흥청망청 살게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굉장히 근검절약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 난 다음에 부스러기를 다 주워 모으라고 했습니다. 열 두 바구니 부스러기를 주워 모았습니다. 낭비는 주님께서 절대로 허락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가장 큰 문제는 너무나 낭비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음식 쓰레기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먹을 만큼 먹으면 좋은데 너무 낭비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음식문화가 달라져야 돼요. 서양 사람들도 음식을 먹을 만큼만 먹고 일본 사람들도 상에 올려놓은 음식은 깨끗이 먹고 치워 버리는데 우리 한국은 먹고 난 다음에도 수많은 사람이 먹을 만큼 음식을 남깁니다. 옛날에 우리가 군대에 갔을 때 누구든지 식당에서 일할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니까 동료들 가운데 몇 사람이 손을 들었어요. 그러면 군 식당에서 일하기 위해서 무슨 일을 했냐고 하니까 남의 음식 먹고 난 찌꺼기에 밥풀 걷어내는 젓가락질을 했다고 합니다. 하도 음식을 먹고 많이 남겨 놓으니까 그것을 부엌에서 도로 다른 사람 상 차릴 때 밥풀 떨어진 것 젓가락으로 건져 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음식 만드는 기술이라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만큼 낭비생활이 우리 한국에 많다는 것입니다. 먹을 만큼 먹고 입을 만큼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이제 가을이 닥쳐오면 옷장을 열어보고 남아돌아가는 옷은 다 정리해서 이웃에게 나눠 주십시오. 신발도 남아 돌아가는 것을 다 나누어 주십시오. 나누어줘야 새것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낡은 것 자꾸 가지고 있으면 새것이 안 들어 오는 것입니다.
시34:9~10에 "너희 성도들아 야훼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야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께서 낭비하라고 말씀하지는 아니하시나 부족함이 없게 해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응답을 받지만 그러나 돈이나 물질을 사랑치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
딤전 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라고 했으며
히13:5에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고 말했었으며
마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고 하나님 보다도 물질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은 심히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랑하고 살아야지 돈이나 물질을 사랑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돈이나 물질은 우리가 사용하는 물질에 불과하지 우리 마음을 사로잡아서 우리가 그를 사랑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꾸짖으시고 그 물질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속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함이 완전히 심령을 점령하고 돈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지 못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린드버그는 1930년, 당시 프로펠러 하나 달린 단발 비행기를 몰고 대서양을 처음 횡단한 영웅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 일에 도전했다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이후 그는 파리를 가게 되었는데, 그가 온다는 소문에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렸습니다. 어느 큰 담배 회사 사장이 이 기회를 이용해서 자기 회사의 담배를 광고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린드버그에게 다가가 담배 한 개비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것을 손에 끼어도 좋고 입에 물어도 좋습니다. 포즈 한 번만 취해 주십시오. 그러면 사진 한 장 당 5만 달러 약 5천 만원을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70년 전에 5만 달러라면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그러나 엄격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린드버그는 사람들 앞에서 그 사람 정면에 쳐다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세례 받은 교인입니다. 담배 피울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다음 날 바로 파리 신문에 대서특필로 나왔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그 당시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즉시 성금 10만 달러를 모아서 린드버그에게 전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린드버그의 이러한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돈이나 물질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요사이 엉터리 신자 같으면 담배 한 개비 드는데 5만 달러 준다면 10개 피 들사람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얼마든지 피지요. 내가 안 피고 포즈만 취하는 것인데 나쁠게 뭡니까? 포즈 취해 드리지요. 자~" 린드버그에게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아니요. 나는 세례 받은 그리스도의 신자입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므로 포즈 잡을 수가 없습니다." 5만 달러의 돈에 넘어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돈을 사랑해서 시도 때도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고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린드버그의 생애는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의 유혹 앞에서 당당하게 설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물질을 써야 되는 것입니다. 물질의 소유주가 아닌 청지기로써 하나님의 뜻을 쫓아 나누어 주기를 위해 물질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물질을 내가 소유한 것이 아닙니다. 물질을 주신이도 하나님이시요, 그를 통해서 사용하시는 이도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이 주셨으면 그 물질을 하나님의 청지기로써 우리가 사용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써야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 드리고 선교헌금 드리라면 드리고 이웃에 나눠 주라면 주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뜻 따라서 우리가 물질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물질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우리가 잠시 맡아서 청지기로써 하나님 시키는데로 나눠주기 위한 물질인 것입니다.
행20:35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눅6:38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주는 자가 복이 있고 주면 돌아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세워 놓은 법칙인 것입니다. 우리가 산을 향하여 고함을 치면 저쪽 산에서 산울림이 울려오듯이 물질을 주면은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돌려주시는 것입니다. 돌려 줄 것이요, 후히 되어 눌러서 흔들어서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까? 오늘 세계적으로 물질적으로 복을 많이 받은 미국이 가장 원조를 많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조를 많이 하는 만큼 미국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도 온 세계 더 많은 원조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력이 있는 데로 원조를 많이 하면 많은 축복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북한이 수해를 당했는데 원조를 보낸다고 굉장히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몰라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는 북한하고 같지 않지만 북한에 있는 사람은 우리와 같은 동포들인 것입니다. 그들이 헐벗고 굶주릴 때 우리가 등을 돌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던 빵이라도 나눠 먹어야 되고 입던 옷이라도 나누어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실천인 것입니다. 말과 입으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사랑할 때 그곳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묻혀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만큼 우리 사람의 마음을 녹이고 마음 문을 열어 놓는 힘은 없습니다. 말만 가지고 사랑하면 누가 우리 마음 문을 열어 놓겠습니까? 고난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도움을 베풀면 어떠한 완악한 마음도 부드러워지고 녹아지고 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 물질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물질을 가지고서 내 스스로 혼자 살겠다고 해서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굉장히 근검절약 하지만 이웃을 위해서 사용할 때는 듬뿍 사용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존 머레이는 검소한 생활로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아끼고 절약해서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어떤 할머니 한 사람이 구제금을 요구하러 갔습니다.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가 낡아서 학교를 새로 짓는 구제위원회의 위원으로써 부자인 존 머레이씨에게 찾아 가니까 그가 서재에서 글을 읽고 있는데 촛불 2개를 켜놓고서 글을 읽고 있다가 할머니가 오니까 하나를 훅 꺼버립니다. 그 할머니가 '아이구 이 깍쟁이 봐라. 나 만나서 이야기 하는 동안에 촛불 2개 중에 하나를 꺼버리니 이 사람에게 무슨 구제물자 달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기왕 왔으니 말을 해야 되겠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러니까 "이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가 낡아서 새로 짓기 위해서 위원회에서 모금을 하러 왔습니다." 그러니까 "아이 모금 해드려야죠." 그러면서 당장 수표를 끄집어 내어서 5만 달러를 적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어떻게 5만 달러나 주십니까? 내가 들어오니까 촛불 2개 켰다가 하나를 불어 버리는 양반이 어떻게 5만 달러를 줍니까?" 하니까 허허 웃으면서 "책을 읽을 때는 눈이 잘 안보이니까 촛불 2개가 필요하지만 대화할 때는 촛불 하나만 있어도 대화할 수 있지 않습니까? 두개 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나는 이렇게 근검절약해서 모은 돈을 좋은 일을 위해서 쓴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기의 생활에 근검절약한 사람이 남의 일에도 많이 헌금할 수 있고 도와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흥청망청 다 써버리면 남에게 도와줄 돈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우리는 남과 나누기 위해서 근검절약해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의 삶에 심고 거두는 법칙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갈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심어야 거두는 것입니다. 심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못 거둬요. 내버려 두면 황폐하게 되거나 잡초가 무성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고후9:8~9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고 거두는 법칙을 시행하면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게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왜, 착한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러므로 모든 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에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를 주셔서 모든 일에 항상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게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없어요. 나는 안돼요. 나는 빈손 들었어요. 나는 못해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항상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
가난 그 자체는 선한 덕이 아닙니다. 가난은 하나님이 원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가난은 죄 때문에 온 저주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고 주님 안에서 긍정적으로 사는 마음은 선한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원해서 가난하게 되는 것은 크게 상급을 주시지만 게을러서 가난하고 저주받아 가난한 것은 원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부자라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부자면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움켜쥐고 나눌 줄 모르는 탐욕적인 마음이 나쁜 것이지 부자라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주님 모신 청지기 삶에서 물질이 많으면 많을수록 많이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부자가 되어서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많은 사람에게 직업을 주고 많은 사람의 삶을 도와준다면 부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수해가 나서 이웃이 죽어 가는데도 한 푼도 도와줄 수 없는 가난뱅이가 된다면 우리가 사랑을 베푼다고 말하겠습니까? 전염병이 창궐해서 죽어가는 나라가 있는데 우리가 약 한상자도 보낼 수 없는 가난하다면 무슨 사랑을 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엇이 우리에게 있어야 사랑을 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것을 나누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아서 누리고 나누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에게는 에덴 낙원을 주셨고 구약시대에 우리 예수믿는 선조들은 모두 다 고난은 있었으나 물질적으로는 크게 부요하고 풍성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를 새 인류로 만드실 때 저주에서 가난에서 해방시키는 역사를 해주셨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자원해서 가난해 질수는 있으나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게을러서 일하지 못해서 저주받아서 가난한 것은 주께서 원치 않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항상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 할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우리 모든 삶에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오니 집도 자동차도 전화기도 옷도 신발도 직업도 교육도 다 일용할 양식에 속하는 것이므로 매일같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여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그 결과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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