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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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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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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자의 근본
1)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여자는 인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인간으로서 남자와 비교할 때 한 가지라도 비하 될 수 없는 인격체라는 사실입니다. 남존여비 사상이나 가부장제도적 사고는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창조되었다 함은 하나님의 창조성과 그 성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창 1: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고전 11:12)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2) 남자 갈빗대 하나로 지음 받음
남자의 갈빗대 하나로 중심 하여 사람을 지으셔서 여자로 칭하셨습니다. 이는 여자의 근거가 남자에서 기초한 것을 말하고 동시에 질적으로 한 인간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갈빗대는 따듯한 품속에 있으니 여자는 따뜻이 품어 줘야 좋을 사랑이 더 많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에게서는 중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창 2:21-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1) 남자에게서 났으므로 여자라 칭함
(창 2:23)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고전 11:8)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2) 남자를 위하여 났음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소위 남존여비 사상 같은 류의 뜻이 아니라 반려자, 협조자, 동조자라는 의미가 더 많습니다. 남자의 소유물로서의 필요한 요소라는 의미가 아니고 남자와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데 협력자로서 위하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창 2:18)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고전 11:9)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3) 여자의 머리는 남자
중요함의 차이가 아니라 위치의 입장을 고려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시듯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는 그 입장을 분명하게 했습니다. 머리는 잘 다스려야 하는 위치이며 모든 기관을 잘 보호하고 살려 나가는데 더욱 수고해야 하는 위치입니다.
(고전 11:3)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여자는 남자의 영광
(고전 11:7)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5) 여자는 남자를 주관하라는 허락이 없음
오늘의 교회 사회에 적용되는 말씀인가를 논쟁하기도 합니다. 여자 목사 안수 문제를 아직도 찬반 속에 개인적 신앙의 자유에 맡겨진 상태로 둡니다. 여자의 입장은 무엇이냐를 두고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토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남자를 주관하는 일, 즉 위치 입장에서 지도자 되는 것을 금하신 말씀입니다. 구약과 신약에 하나님의 성소에서 혹은 예수의 제자로서 여자는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의문은 아니지만 지금 여성 운동가이면 인격적 공평의 원칙에 하나님을 힐문할지 모릅니다.
기독교 교파 중에는 여자들은 일절 공 교회에서 지도자로 설 수 없음을 알리고 직분자로 세우지 않습니다. 여자의 위치 문제에 대한 논란은 개인에게 맡길 뿐입니다.
우리는 다만 성경의 원칙은 시대를 불문하고 진리이기에 교회의 지도자는 남자가 하고 여자는 협력의 원칙에 의거하여 은혜롭게 일 해 나가면 좋으리라 봅니다. 구체적으로 여 집사, 권사, 장로, 교사, 전도사, 목사 등에 대하여 우리는 교단마다 견해를 달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의 일을 봉사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성경에 여선지자도 있고 교회를 이끄는데 여성도들의 봉사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딤전 2:11)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6) 여자는 더 연약한 그릇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에 비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약합니다. 때문에 남자는 여자를 더 조심하여 보호하고 살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능력이 약하다거나 그래서 여성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영육이 남자보다 약함에 강조한 말씀입니다.
(벧전 3:7)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塊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3) 인류의 첫 범죄자
지금의 우리로서는 여자가 금령의 실과를 먼저 먹었다는 것이 체험적으로 비판할 아무런 근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성경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여자가 먼저 죄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가 그 여자를 잘 간수하지 못한 것 또한 죄를 짓게 한 간접적 원인 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여자가 금령의 실과를 먹고 남편에게 줄 때에 금령의 실과인지 물어나봤으면 인류 역사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가령 남자는 죽지 않는 몸이고 여자만 죽는다든가... 따라서 이 원죄(原罪)는 남녀 공동의 죄로 취급되고 말았습니다.
다만 여자가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점과 죄를 먼저 경험하였다는 것이 하나님께 책망 받을 일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창 3:1)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고후 11:3)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딤전 2:13-14)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잉태의 고통을 더 받음
여자가 먼저 금령의 실과를 먹음으로 더 죄스런 인간으로 심판 받아 잉태의 고통을 더 받게 되었다 했습니다. 잉태의 고통은 원칙적으로 원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창 3: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남자 아이를 낳으면 40일이 부정하되 여아는 73일이 부정하다 했음
여인이 아기를 낳으면 일정의 부정한 기간이 있는데 여기서도 성 차별이 있습니다. 이 문제가 오늘 현대인에게는 의문이 될련지 모르나 과학적 근거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하나님의 벌책 중량이 다른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레 12:2-5)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제 팔 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 삼 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 경도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 륙 일을 지나야 하리라
여자는 죄악의 성(城)으로 비유했음
남자도 죄를 지으나 성경은 죄의 상징적 표상을 남자에 두지 않고 여자에 두었습니다. 이것도 창세기의 원죄 사건을 미루어 표현하게 된 것이리라 봅니다.
(계 17:18)또 내가 본 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2. 여자의 결혼
1) 결혼 동기
(1) 결혼하지 않으면 더욱 좋다
(고전 7:38)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 시집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
육신의 고난이 따르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말이겠지만 아무나 이 권면을 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자신의 신변과 의지가 설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홀로 산다는 것은 평인으로서는 같이 사는 것보다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고전 7:28)그러나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때가 마지막 때이므로
말세가 되면 오히려 홀로 사는 것이 더 나으리라는 예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정신은 세상의 락을 위주로 살지 않아야 하는 새로운 가치관이나 또는 주력하는 관심의 대상이 예수님이 되고 보면 남편과의 삶이나 자식을 키우며 산다는 것이 세인 같이 않아 영적으로 어려움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날부터 누구나 개인적으로는 말세이므로 항상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희망 아래서 삶을 살아가므로 가족에 대한 불성실이 예고되는 것을 말합니다.
(고전 7:26,29)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남편을 위하므로 주님을 봉사하는데 소홀해진다고
(고전 7:34)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2) 그러나 결혼은 죄가 아님
(고전 7:28)그러나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고전 7:36)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3) 정욕의 한계를 넘을 수 없으니 결혼하라
인간의 성(性) 자체가 문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성을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부부라는 사회적 법에 의한 가정을 가질 때 그 부부의 생활은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사회에서 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부부는 결코 성을 위한 만남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성을 위주로 만났다가 많은 사람들이 이혼합니다. 부부의 성 관계도 성 자체를 위한 행위이면 하나님으로부터 결코 은총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영적인 은혜를 입기 위해서 우리는 정욕에 어찌 할 수 없는 의지 때문에 결혼을 했다 하여도 부부가 맺어진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함에 있다 함을 모든 신앙의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길 것입니다. 과연 부부 관계 후에 찬송과 회개와 기도가 더 잘되겠는지 부부들이 자문 해보기를 바랍니다.
(고전 7:2)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고전 7:9)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살전 4:4)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마 5: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4) 결혼해야 할 이치가 있을 때( 혼기도 지나고...꽃다운 시절 )
(고전 7:36)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2) 결혼 생활
(1) 불신자라도 서로 믿음을 약속한다면 결혼이 가능함
교회는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을 환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있어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때문에 신앙을 갖겠다는 조건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진실하고 성실히 수행할 수 있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대가 신앙 생활을 얼마간 하다가( 6개월 정도 ) 결혼식을 올릴 것을 권유하고 교회 출석을 한다면 교회에서 예식을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성스런 곳인데 불신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장소로는 교회당의 본 이미지가 손상될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인간은 서로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한다는 사이에서 거룩한 종교 생활을 동조할 수 없다면 그와의 마음 일치를 무엇으로 볼 수 있을까요? 단지 육체적이거나 인간적 삶을 고집 하는 정도는 아닐까요?
성도가 일반 예식장에서 많은 비용을 들려 식을 올리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얼마든지 은혜롭게 예식을 올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예식장을 빌려 식을 올릴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대체로 불신자가 상대가 되어서 어쩔 수 없어서 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식을 올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한 쪽의 신앙에 대한 이해가 온당치 못하다는 결론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결혼도 목사로서는 온전히 축복하기에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전 7:12-14)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2) 결혼은 서로에게 의무 수행이 따르며 지켜야 함
결혼은 서로에게 힘이 되고 한 뜻을 위해 만난 생의 벗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툭 하면 성격 탓으로 이혼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과연 이혼의 사유로 합당할까요?
우리 인간 꼭 맞는 것을 찾는 삶이 아니라 맞추는 일꾼입니다. 그래서 동물과 다른 윤리적 인간이라는 말을 감히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본능적 삶은 인간의 문화와 질서를 파괴하게 합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우연히 잘 만난 부부 인연이 아니라 아름다운 부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땀 흘리는 것이 천사가 보며 기뻐하고 부러워 할 일이며 동물들이 보고 인간을 과연 자기들을 지배 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결혼은 의무 수행을 잘 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힘써 도와주는 작업입니다. 결혼의 의무는 외적인 것보다 내적 갈등과 어려움들을 서로 노력해 나가는 일입니다. 돈이나 자식이나 외모 그 밖의 것들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광야 같은 세상 길에 동무가 되어 가장 가깝고 힘이 되는 친구의 역할을 잘 하는 것입니다. 형제는 피로 맺어진 이유로 남과 같은 느낌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격이 달라도 남처럼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처럼 부부란 이제 남이 아닙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남매요 서로에게 부모 같은 존재요 서로 없으면 하나로서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운명적 존재입니다.
(고전 7:3-4)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3) 용모를 단정히 할 것
아담한 옷
(딤전 2:9)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긴 머리카락은 주 앞에 겸손을 상징( 그 당시에 )
(고전 11:6)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
(사 7:20)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
(고전 11:10)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4) 부부의 성 관계는 거룩함, 남편과의 생활은 원만할 것
가금씩 부부 관계에 대해 어느 한쪽이 부정한 것으로 여겨 문제를 삼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특이한 관계요 성격으로 잘못하고 있는 태도입니다. 부부가 아기를 낳기 위해 결혼 한 것은 아니지만 인류의 생산은 부정한 결과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살전 4:3-4)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엡 5:31)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5) 기도를 위하여는 서로 합의하고 다시 재합할 것
어느 한 쪽이 기도하기 위해 별거하는 시공간적 제약을 받을 때 서로에게 합의된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 한 후는 합의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단지 기도하기 위해서는 서로 의논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고전 7:5)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 남편에게 복종할 것
현대 여성학에 정면 도전적 말씀입니다. 어느 정도의 복종인가? 만 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과연 수긍하고 이행 할 수 있는 말씀일까요?
여기서 복종이란 남편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이른 말씀일 것입니다.
(엡 5:22-23)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엡 5:33)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고전 11:3)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7) 남편이 다스림
(창 3: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딤전 2:11)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8) 순복하고 복종
(벧전 3:1-4)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골 3:18)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9) 자녀를 사랑하라
(딛 2:4)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10) 집안 일을 하라
(딛 2:5)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3) 교회 생활
(1) 교회에서는 잠잠하라
(고전 14:34)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모든 성도의 교회에 대한 태도같이
말할 허락 없음
말함은 부끄러운 일
(고전 14:35)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2) 남편에게 순종, 집에서 물을 것
(딤전 2:11)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고전 14:35)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3) 단정히, 참소하지 말며, 절제, 충성
(딤전 3:11)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3. 이혼 문제
1) 남녀의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으신 것이니 사람이 나눌 수 없음
결혼은 인간의 운명적 만남이자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결혼함은 그 자체가 하나님이 태초에 실행시키신 일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이혼하기 위한 결혼은 있을 수가 없음을 말합니다. 그만큼 결혼을 신성시하라는 것이며 그런 입장에 서서 삶을 책임지고 아름답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결혼은 연극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하나님이 관여하신 대사(大事)입니다. 그리고 이 행사를 치를 때 나와 너의 만남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다란 창조와 같은 기적이요 사건으로 볼 것입니다.
(창 2: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마 19:6)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2) 이유 없이 갈리지 못함
성격 탓으로 이혼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격이 맞아서 잘 사는 부부는 지상에 잘 없습니다. 성격이 꼭 맞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인간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윤리적 생활을 기꺼이 해 나갈 때 아름다운 결실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의무를 이행한다는 것을 신세대는 진실이 아니라는 변명을 하지만 결코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진실이 아닙니다. 인간이기에 짐승의 본능과 다르게 인내와 철학이 존재하고 윤리와 도덕이 있으며 법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고전 7:10-11)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3) 음행의 연고로는 갈릴 수 있음
어느 한 쪽의 불륜 사건으로 인해 받은 충격과 어떤 현실적 문제를 계기로 마음이나 육체적 관계가 더 이상 부부로 존재할 수 없을 때 이혼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계명을 주실 때 다른 신이 없음을 알 것과 섬기지 못할 것을 명하신 것처럼 부부 십계명의 첫 계명도 다른 남편과 아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 19:9)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4) 신앙 사상 문제로도 갈릴 수 있음
이단에게 매료되어 가정이 파탄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이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위하여 기도를 다한 후 결정할 일입니다.
(고전 7:15)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5) 어떤 일에서든 다시 재합하기를 하나님은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위 두 가지의 문제는 매우 충격이 크므로 어찌할 수 없기에 이혼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재합하여 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로 죄를 사하며 사는 것이 이혼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아니라 본인들에게 그렇다 하는 것입니다.
(고전 7:11,15)(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4. 과부에 대하여
1) 그냥 지내는 것이 좋음
이혼이 많은 이 시대에 과연 성경과 같이 혼자 지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과부가 쉽게 재혼하는 것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고전 7:8)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 정욕 때문이면 주 안에서 결혼
(고전 7:9)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고전 7:39)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3)재혼치 않은 참 과부는 나이 60세로 존경 대상(그당시)
(딤전 5:5-11)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것이요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5. 사후 천국에서
천국에서는 부부 인연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남편이 둘이 있어더라도 구원을 받은 백성이면 천국에서는 아무런 부담 없이 같이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려는 것은 절대적으로 아닙니다. 다만 천국에서는 부부 인연 없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 22:23-30)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 두고 그 둘째와 세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롬 6: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계 20:6)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
1)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여자는 인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인간으로서 남자와 비교할 때 한 가지라도 비하 될 수 없는 인격체라는 사실입니다. 남존여비 사상이나 가부장제도적 사고는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창조되었다 함은 하나님의 창조성과 그 성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창 1: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고전 11:12)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2) 남자 갈빗대 하나로 지음 받음
남자의 갈빗대 하나로 중심 하여 사람을 지으셔서 여자로 칭하셨습니다. 이는 여자의 근거가 남자에서 기초한 것을 말하고 동시에 질적으로 한 인간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갈빗대는 따듯한 품속에 있으니 여자는 따뜻이 품어 줘야 좋을 사랑이 더 많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에게서는 중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창 2:21-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1) 남자에게서 났으므로 여자라 칭함
(창 2:23)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고전 11:8)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2) 남자를 위하여 났음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소위 남존여비 사상 같은 류의 뜻이 아니라 반려자, 협조자, 동조자라는 의미가 더 많습니다. 남자의 소유물로서의 필요한 요소라는 의미가 아니고 남자와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데 협력자로서 위하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창 2:18)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고전 11:9)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3) 여자의 머리는 남자
중요함의 차이가 아니라 위치의 입장을 고려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시듯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는 그 입장을 분명하게 했습니다. 머리는 잘 다스려야 하는 위치이며 모든 기관을 잘 보호하고 살려 나가는데 더욱 수고해야 하는 위치입니다.
(고전 11:3)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여자는 남자의 영광
(고전 11:7)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5) 여자는 남자를 주관하라는 허락이 없음
오늘의 교회 사회에 적용되는 말씀인가를 논쟁하기도 합니다. 여자 목사 안수 문제를 아직도 찬반 속에 개인적 신앙의 자유에 맡겨진 상태로 둡니다. 여자의 입장은 무엇이냐를 두고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토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남자를 주관하는 일, 즉 위치 입장에서 지도자 되는 것을 금하신 말씀입니다. 구약과 신약에 하나님의 성소에서 혹은 예수의 제자로서 여자는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의문은 아니지만 지금 여성 운동가이면 인격적 공평의 원칙에 하나님을 힐문할지 모릅니다.
기독교 교파 중에는 여자들은 일절 공 교회에서 지도자로 설 수 없음을 알리고 직분자로 세우지 않습니다. 여자의 위치 문제에 대한 논란은 개인에게 맡길 뿐입니다.
우리는 다만 성경의 원칙은 시대를 불문하고 진리이기에 교회의 지도자는 남자가 하고 여자는 협력의 원칙에 의거하여 은혜롭게 일 해 나가면 좋으리라 봅니다. 구체적으로 여 집사, 권사, 장로, 교사, 전도사, 목사 등에 대하여 우리는 교단마다 견해를 달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의 일을 봉사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성경에 여선지자도 있고 교회를 이끄는데 여성도들의 봉사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딤전 2:11)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6) 여자는 더 연약한 그릇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에 비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약합니다. 때문에 남자는 여자를 더 조심하여 보호하고 살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능력이 약하다거나 그래서 여성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영육이 남자보다 약함에 강조한 말씀입니다.
(벧전 3:7)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塊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3) 인류의 첫 범죄자
지금의 우리로서는 여자가 금령의 실과를 먼저 먹었다는 것이 체험적으로 비판할 아무런 근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성경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여자가 먼저 죄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가 그 여자를 잘 간수하지 못한 것 또한 죄를 짓게 한 간접적 원인 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여자가 금령의 실과를 먹고 남편에게 줄 때에 금령의 실과인지 물어나봤으면 인류 역사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가령 남자는 죽지 않는 몸이고 여자만 죽는다든가... 따라서 이 원죄(原罪)는 남녀 공동의 죄로 취급되고 말았습니다.
다만 여자가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점과 죄를 먼저 경험하였다는 것이 하나님께 책망 받을 일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창 3:1)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고후 11:3)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딤전 2:13-14)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잉태의 고통을 더 받음
여자가 먼저 금령의 실과를 먹음으로 더 죄스런 인간으로 심판 받아 잉태의 고통을 더 받게 되었다 했습니다. 잉태의 고통은 원칙적으로 원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창 3: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남자 아이를 낳으면 40일이 부정하되 여아는 73일이 부정하다 했음
여인이 아기를 낳으면 일정의 부정한 기간이 있는데 여기서도 성 차별이 있습니다. 이 문제가 오늘 현대인에게는 의문이 될련지 모르나 과학적 근거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하나님의 벌책 중량이 다른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레 12:2-5)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제 팔 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 삼 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여자를 낳으면 그는 이 칠 일 동안 부정하리니 경도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 륙 일을 지나야 하리라
여자는 죄악의 성(城)으로 비유했음
남자도 죄를 지으나 성경은 죄의 상징적 표상을 남자에 두지 않고 여자에 두었습니다. 이것도 창세기의 원죄 사건을 미루어 표현하게 된 것이리라 봅니다.
(계 17:18)또 내가 본 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2. 여자의 결혼
1) 결혼 동기
(1) 결혼하지 않으면 더욱 좋다
(고전 7:38)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 시집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
육신의 고난이 따르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말이겠지만 아무나 이 권면을 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자신의 신변과 의지가 설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홀로 산다는 것은 평인으로서는 같이 사는 것보다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고전 7:28)그러나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때가 마지막 때이므로
말세가 되면 오히려 홀로 사는 것이 더 나으리라는 예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정신은 세상의 락을 위주로 살지 않아야 하는 새로운 가치관이나 또는 주력하는 관심의 대상이 예수님이 되고 보면 남편과의 삶이나 자식을 키우며 산다는 것이 세인 같이 않아 영적으로 어려움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날부터 누구나 개인적으로는 말세이므로 항상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희망 아래서 삶을 살아가므로 가족에 대한 불성실이 예고되는 것을 말합니다.
(고전 7:26,29)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남편을 위하므로 주님을 봉사하는데 소홀해진다고
(고전 7:34)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2) 그러나 결혼은 죄가 아님
(고전 7:28)그러나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고전 7:36)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3) 정욕의 한계를 넘을 수 없으니 결혼하라
인간의 성(性) 자체가 문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성을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부부라는 사회적 법에 의한 가정을 가질 때 그 부부의 생활은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사회에서 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부부는 결코 성을 위한 만남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성을 위주로 만났다가 많은 사람들이 이혼합니다. 부부의 성 관계도 성 자체를 위한 행위이면 하나님으로부터 결코 은총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영적인 은혜를 입기 위해서 우리는 정욕에 어찌 할 수 없는 의지 때문에 결혼을 했다 하여도 부부가 맺어진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함에 있다 함을 모든 신앙의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길 것입니다. 과연 부부 관계 후에 찬송과 회개와 기도가 더 잘되겠는지 부부들이 자문 해보기를 바랍니다.
(고전 7:2)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고전 7:9)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살전 4:4)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마 5: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4) 결혼해야 할 이치가 있을 때( 혼기도 지나고...꽃다운 시절 )
(고전 7:36)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2) 결혼 생활
(1) 불신자라도 서로 믿음을 약속한다면 결혼이 가능함
교회는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을 환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있어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때문에 신앙을 갖겠다는 조건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진실하고 성실히 수행할 수 있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대가 신앙 생활을 얼마간 하다가( 6개월 정도 ) 결혼식을 올릴 것을 권유하고 교회 출석을 한다면 교회에서 예식을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성스런 곳인데 불신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장소로는 교회당의 본 이미지가 손상될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인간은 서로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한다는 사이에서 거룩한 종교 생활을 동조할 수 없다면 그와의 마음 일치를 무엇으로 볼 수 있을까요? 단지 육체적이거나 인간적 삶을 고집 하는 정도는 아닐까요?
성도가 일반 예식장에서 많은 비용을 들려 식을 올리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얼마든지 은혜롭게 예식을 올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예식장을 빌려 식을 올릴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대체로 불신자가 상대가 되어서 어쩔 수 없어서 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식을 올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한 쪽의 신앙에 대한 이해가 온당치 못하다는 결론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결혼도 목사로서는 온전히 축복하기에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전 7:12-14)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2) 결혼은 서로에게 의무 수행이 따르며 지켜야 함
결혼은 서로에게 힘이 되고 한 뜻을 위해 만난 생의 벗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툭 하면 성격 탓으로 이혼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과연 이혼의 사유로 합당할까요?
우리 인간 꼭 맞는 것을 찾는 삶이 아니라 맞추는 일꾼입니다. 그래서 동물과 다른 윤리적 인간이라는 말을 감히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본능적 삶은 인간의 문화와 질서를 파괴하게 합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우연히 잘 만난 부부 인연이 아니라 아름다운 부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땀 흘리는 것이 천사가 보며 기뻐하고 부러워 할 일이며 동물들이 보고 인간을 과연 자기들을 지배 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결혼은 의무 수행을 잘 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힘써 도와주는 작업입니다. 결혼의 의무는 외적인 것보다 내적 갈등과 어려움들을 서로 노력해 나가는 일입니다. 돈이나 자식이나 외모 그 밖의 것들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광야 같은 세상 길에 동무가 되어 가장 가깝고 힘이 되는 친구의 역할을 잘 하는 것입니다. 형제는 피로 맺어진 이유로 남과 같은 느낌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격이 달라도 남처럼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처럼 부부란 이제 남이 아닙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남매요 서로에게 부모 같은 존재요 서로 없으면 하나로서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운명적 존재입니다.
(고전 7:3-4)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3) 용모를 단정히 할 것
아담한 옷
(딤전 2:9)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긴 머리카락은 주 앞에 겸손을 상징( 그 당시에 )
(고전 11:6)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
(사 7:20)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편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털과 발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
(고전 11:10)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4) 부부의 성 관계는 거룩함, 남편과의 생활은 원만할 것
가금씩 부부 관계에 대해 어느 한쪽이 부정한 것으로 여겨 문제를 삼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특이한 관계요 성격으로 잘못하고 있는 태도입니다. 부부가 아기를 낳기 위해 결혼 한 것은 아니지만 인류의 생산은 부정한 결과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살전 4:3-4)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엡 5:31)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5) 기도를 위하여는 서로 합의하고 다시 재합할 것
어느 한 쪽이 기도하기 위해 별거하는 시공간적 제약을 받을 때 서로에게 합의된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 한 후는 합의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단지 기도하기 위해서는 서로 의논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고전 7:5)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 남편에게 복종할 것
현대 여성학에 정면 도전적 말씀입니다. 어느 정도의 복종인가? 만 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과연 수긍하고 이행 할 수 있는 말씀일까요?
여기서 복종이란 남편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이른 말씀일 것입니다.
(엡 5:22-23)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엡 5:33)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고전 11:3)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7) 남편이 다스림
(창 3: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딤전 2:11)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8) 순복하고 복종
(벧전 3:1-4)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골 3:18)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9) 자녀를 사랑하라
(딛 2:4)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10) 집안 일을 하라
(딛 2:5)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3) 교회 생활
(1) 교회에서는 잠잠하라
(고전 14:34)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모든 성도의 교회에 대한 태도같이
말할 허락 없음
말함은 부끄러운 일
(고전 14:35)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2) 남편에게 순종, 집에서 물을 것
(딤전 2:11)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고전 14:35)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3) 단정히, 참소하지 말며, 절제, 충성
(딤전 3:11)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3. 이혼 문제
1) 남녀의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으신 것이니 사람이 나눌 수 없음
결혼은 인간의 운명적 만남이자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결혼함은 그 자체가 하나님이 태초에 실행시키신 일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이혼하기 위한 결혼은 있을 수가 없음을 말합니다. 그만큼 결혼을 신성시하라는 것이며 그런 입장에 서서 삶을 책임지고 아름답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결혼은 연극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하나님이 관여하신 대사(大事)입니다. 그리고 이 행사를 치를 때 나와 너의 만남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다란 창조와 같은 기적이요 사건으로 볼 것입니다.
(창 2: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마 19:6)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2) 이유 없이 갈리지 못함
성격 탓으로 이혼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격이 맞아서 잘 사는 부부는 지상에 잘 없습니다. 성격이 꼭 맞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인간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윤리적 생활을 기꺼이 해 나갈 때 아름다운 결실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의무를 이행한다는 것을 신세대는 진실이 아니라는 변명을 하지만 결코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진실이 아닙니다. 인간이기에 짐승의 본능과 다르게 인내와 철학이 존재하고 윤리와 도덕이 있으며 법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고전 7:10-11)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3) 음행의 연고로는 갈릴 수 있음
어느 한 쪽의 불륜 사건으로 인해 받은 충격과 어떤 현실적 문제를 계기로 마음이나 육체적 관계가 더 이상 부부로 존재할 수 없을 때 이혼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계명을 주실 때 다른 신이 없음을 알 것과 섬기지 못할 것을 명하신 것처럼 부부 십계명의 첫 계명도 다른 남편과 아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 19:9)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4) 신앙 사상 문제로도 갈릴 수 있음
이단에게 매료되어 가정이 파탄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이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위하여 기도를 다한 후 결정할 일입니다.
(고전 7:15)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5) 어떤 일에서든 다시 재합하기를 하나님은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위 두 가지의 문제는 매우 충격이 크므로 어찌할 수 없기에 이혼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재합하여 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로 죄를 사하며 사는 것이 이혼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아니라 본인들에게 그렇다 하는 것입니다.
(고전 7:11,15)(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4. 과부에 대하여
1) 그냥 지내는 것이 좋음
이혼이 많은 이 시대에 과연 성경과 같이 혼자 지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과부가 쉽게 재혼하는 것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고전 7:8)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 정욕 때문이면 주 안에서 결혼
(고전 7:9)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고전 7:39)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3)재혼치 않은 참 과부는 나이 60세로 존경 대상(그당시)
(딤전 5:5-11)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것이요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5. 사후 천국에서
천국에서는 부부 인연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남편이 둘이 있어더라도 구원을 받은 백성이면 천국에서는 아무런 부담 없이 같이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려는 것은 절대적으로 아닙니다. 다만 천국에서는 부부 인연 없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 22:23-30)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 두고 그 둘째와 세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롬 6: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계 20:6)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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