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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전15:3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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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2.9.7 설교
믿음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믿음으로 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1-3) 당신은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면서 살고 있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만물과 만사에서 그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항상 이렇게 보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7:16).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늘 … "(마7:28,30) 부활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이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두 가지 질문
부활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면 그 때는 어떤 몸으로 살아나게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답함으로써 부활에 대한 대단히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을 생각해봅시다.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 썩어서 해체된 몸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맹수에게 삼켜진 사람은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이미 다른 생명체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는데 말입니다. 요즘은 화장이 장려되고 있습니다. 국토는 좁은데 한 번 생긴 무덤은 없어지지 않고 있으니 결국은 이 땅이 무덤으로 가득 차게 되지 않을지 염려가 됩니다. 그래서 땅을 차지하지 않는 화장을 장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을 화장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매장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분해되어 그 흔적도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는 나무나 풀이 흡수해버렸을지도 모르며, 또 그 풀을 짐승들이 뜯어먹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무 열매를 누군가가 따먹을 것이며 … 이런 식으로 끝없이 이어질텐데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도 부활을 부정적으로 보며 부인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죽은 자가 어떤 몸으로 다시 살아서 나오게 될 것인가?" 부활체는 과연 죽기 전의 몸과 같을 것입니까? 아니면 전혀 다른 천상의 몸이 될 것입니까? 부활한 몸은 다시 죽을 것입니까, 아니면 다시는 죽지 않게 될 것입니까? 또 부활한 몸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자연계를 통해서(36-38절)
어떻게 부활을 알 수 있습니까? 첫째는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부활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둘째는 체험을 통해서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쓰던 당시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들이 많이 살아 있었습니다. 바울 자신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믿는 사람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체험들이 풍성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부활에 대해서 의심을 품을 여지가 없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자연계를 통해서 부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연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죽음에서 생명이 나옵니다. 씨를 심으면 그것은 죽어 부패합니다. 그러나 그 죽어서 썩은 씨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습니다. 씨는 보잘 것 없는 작은 것이지만, 거기서 나오는 싹과 나무와 꽃과 열매는 매우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씨가 땅에 떨어져 죽었는데, 썩어서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니라 거기서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은 씨보다 훨씬 영광스럽고 풍성합니다. 이렇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연에 부활의 원리를 새겨놓으셨습니다. 죽음과 묻히는 것이 없으면 새로운 생명도 없습니다. 이러한 자연계에서 우리는 부활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너무나도 자연스런 원리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자연계에서 이렇게 죽음에서 생명이 나오는 것은 우연히, 자연히 되는 일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씨들을 만들어 내시고, 썩어서 죽어 가는 씨에서 식물이 나오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식물만이 아니라 짐승과 새와 물고기와 인간의 몸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으로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습니다. 부활은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논쟁을 걸어왔습니다. 그들은 매우 억지스러운 이야기를 꾸며 가지고 왔습니다. 7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를 들었다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따라 둘째가 형수에게 장가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둘째도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셋째가, 그리고 결국은 7형제가 모두 한 여자에게 장가를 들었습니다. 만일 부활이 있다면 나중에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합니까? 사두개인들은 그러므로 부활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능력도 알지 못함으로 오해함이 아니냐"(막12: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두개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런 현세의 질서가 지배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부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게 됩니다.
육체의 다양성(39-41절)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육체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사람의 육체가 있는가 하면 짐승의 육체, 새의 육체, 물고기의 육체가 있습니다. 이 다양한 육체들은 다 다르며, 각자의 생활환경에 적합하도록 완벽하게 창조되었습니다. 물고기의 육체는 물에서 살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새의 육체는 공중에서 살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육체는 이 세상에서 살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 사람의 육체는 내세를 위한 몸이 아니라 현세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내세를 위해서는 현세를 위한 육체와는 다른 육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육체들을 각자의 생활환경에 맞도록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내세에 맞는 육체를 준비해두셨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때는 어떤 몸으로 오느냐?" 즉, "부활체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게 됩니다. 부활체는 내세에 적합한 육체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과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부활체의 특성(42-44절)
부활체의 특성에 대해서 말할 때 가장 분명한 것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50절). 즉 지금의 육체를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이 몸은 하나님의 영광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 육체는 하나님 나라에서 살기에는 적합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될 부활체는 지금의 육체와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1)
부활할 때 우리의 몸은 어떻게 변화될 것입니까? 42-44절은 현재 우리의 몸과 부활체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몸은 썩을 몸이요 욕되고 약한 몸이며 육적인 몸입니다. 그러나 부활체는 썩지 아니하는 몸이며 영광스럽고 강한 몸이며 신령한 몸입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 바울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몸은 썩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무덤에서 살아나는 몸은 결코 썩지 않을 것입니다. 그 몸은 죽거나 부패하지 않습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 인간의 한 평생은 수고와 고생뿐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살기 좋아졌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는 것 자체가 수고롭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한 몸은 이러한 욕된 것을 다 벗어버리고 영광스럽고 찬란한 몸이 될 것입니다.
"약한 것으로 심고" - 현재의 우리의 육체는 얼마나 연약합니까? 늙고 병들고 슬픔과 고통을 당합니다. 특히 죽음 앞에서 이 육체는 아무 힘도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체는 이 모든 연약함과 한계들을 다 벗어버릴 것입니다.
바울은 현재 우리의 몸을 육의 몸이라고 부르며, 부활할 우리의 몸을 신령한 몸이라고 부릅니다. 육적인 몸은 살과 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과 부패를 겪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공기와 음식과 휴식을 필요로 합니다. 육적인 몸은 지상에서 생존하기 위한 몸입니다. 이 몸은 자연계에 적합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면 신령한 몸은 어떤 몸입니까? 이 몸에 대해서는 자세한 것을 알기 어렵습니다. 단지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것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모습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부활체, 즉 신령한 몸은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능력으로 가득 찬 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부활하신 주님의 몸은 음식을 잡수실 수도 있었고, 그 몸을 만져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몸이었습니다.
천국에서의 삶을 설명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의 말씀도 이 부활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은 지나갔음이러라"(계21:4) 부활체는 죽음과 늙는 것과 고통과 슬픔에 시달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부활체는 죄를 벗어버린 몸이 될 것입니다. 사실 현재 우리 몸의 모든 연약함과 불완전한 것들은 죄 때문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벗어버린 부활체가 이 모든 연약한 것들을 벗어버리게 되리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부활체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과는 이렇게 다릅니다. 그러면 우리가 부활할 때는 이전의 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활체가 현재의 육적인 몸과는 이렇게 완전히 다르지만 연속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멸망하거나 다른 존재로 환생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심고"라는 말이 현재 우리의 몸과 부활체의 관계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것들은 그 씨와 상관없는 것들이 아닙니다. 바로 그 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체는 다른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몸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한 후에도 이생에서의 사랑하는 이들을 알아보고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45-49절)
부활체는 모든 면에서 현재의 몸보다 우월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체는 그리스도의 부활체를 모범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1) 22절에서 바울은 인류에게 아담과 그리스도라는 두 명의 대표가 있다고 말했다. 모든 인류는 아담 안에서 다 죄인이 되었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 분 안에서 다시 살게 되었으며,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45-49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신령한 몸인 부활체로 부활할 것에 대해서 말하면서 다시 대표의 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은 최초의 인간이었고 흙에 속한 자였습니다. 그는 흙으로 지음을 받았으며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다 아담처럼 흙에 속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흙에 속한 자들이 되었으므로 우리 몸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어떻게 영원히 죽지 않는 몸, 흙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몸을 입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또 다른 대표, 즉 마지막 아담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졌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십니다. 아담의 후손들이 아담으로부터 흙에 속한 몸을 물려받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 속한 그의 백성들은 그리스도로부터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몸을 물려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까?
이제 원리는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께 속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아담에게 속해 있으나 모든 사람이 다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담에게 속하는 것은 태어나면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께 속할 수 있습니까? 오직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 자라야 그리스도께 속하게 됩니다. 우리가 일단 믿고 그 분께 속하게 되면 우리는 부활하신 그 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처럼 행복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능력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본받아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주님처럼 영광스럽게 변화된 우리는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에서 완전한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야 영광스럽게 변화될 수 있으며, 영광스럽게 변화된 몸이라야만 영광스런 하늘나라에 살기에 합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은혜 주신 것을 감사드립시다. 혹시라도 이 자리에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못한 분이 있다면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이 놀라운 축복을 함께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
믿음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믿음으로 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1-3) 당신은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면서 살고 있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만물과 만사에서 그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항상 이렇게 보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7:16).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늘 … "(마7:28,30) 부활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도 이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두 가지 질문
부활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면 그 때는 어떤 몸으로 살아나게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답함으로써 부활에 대한 대단히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을 생각해봅시다.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 썩어서 해체된 몸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맹수에게 삼켜진 사람은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이미 다른 생명체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는데 말입니다. 요즘은 화장이 장려되고 있습니다. 국토는 좁은데 한 번 생긴 무덤은 없어지지 않고 있으니 결국은 이 땅이 무덤으로 가득 차게 되지 않을지 염려가 됩니다. 그래서 땅을 차지하지 않는 화장을 장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을 화장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매장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분해되어 그 흔적도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는 나무나 풀이 흡수해버렸을지도 모르며, 또 그 풀을 짐승들이 뜯어먹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무 열매를 누군가가 따먹을 것이며 … 이런 식으로 끝없이 이어질텐데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도 부활을 부정적으로 보며 부인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죽은 자가 어떤 몸으로 다시 살아서 나오게 될 것인가?" 부활체는 과연 죽기 전의 몸과 같을 것입니까? 아니면 전혀 다른 천상의 몸이 될 것입니까? 부활한 몸은 다시 죽을 것입니까, 아니면 다시는 죽지 않게 될 것입니까? 또 부활한 몸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자연계를 통해서(36-38절)
어떻게 부활을 알 수 있습니까? 첫째는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부활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둘째는 체험을 통해서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쓰던 당시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들이 많이 살아 있었습니다. 바울 자신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믿는 사람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체험들이 풍성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부활에 대해서 의심을 품을 여지가 없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자연계를 통해서 부활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연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죽음에서 생명이 나옵니다. 씨를 심으면 그것은 죽어 부패합니다. 그러나 그 죽어서 썩은 씨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습니다. 씨는 보잘 것 없는 작은 것이지만, 거기서 나오는 싹과 나무와 꽃과 열매는 매우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씨가 땅에 떨어져 죽었는데, 썩어서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니라 거기서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은 씨보다 훨씬 영광스럽고 풍성합니다. 이렇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연에 부활의 원리를 새겨놓으셨습니다. 죽음과 묻히는 것이 없으면 새로운 생명도 없습니다. 이러한 자연계에서 우리는 부활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너무나도 자연스런 원리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자연계에서 이렇게 죽음에서 생명이 나오는 것은 우연히, 자연히 되는 일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씨들을 만들어 내시고, 썩어서 죽어 가는 씨에서 식물이 나오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식물만이 아니라 짐승과 새와 물고기와 인간의 몸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으로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습니다. 부활은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논쟁을 걸어왔습니다. 그들은 매우 억지스러운 이야기를 꾸며 가지고 왔습니다. 7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를 들었다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따라 둘째가 형수에게 장가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둘째도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셋째가, 그리고 결국은 7형제가 모두 한 여자에게 장가를 들었습니다. 만일 부활이 있다면 나중에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합니까? 사두개인들은 그러므로 부활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능력도 알지 못함으로 오해함이 아니냐"(막12: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두개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런 현세의 질서가 지배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부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게 됩니다.
육체의 다양성(39-41절)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육체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사람의 육체가 있는가 하면 짐승의 육체, 새의 육체, 물고기의 육체가 있습니다. 이 다양한 육체들은 다 다르며, 각자의 생활환경에 적합하도록 완벽하게 창조되었습니다. 물고기의 육체는 물에서 살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새의 육체는 공중에서 살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육체는 이 세상에서 살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 사람의 육체는 내세를 위한 몸이 아니라 현세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내세를 위해서는 현세를 위한 육체와는 다른 육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육체들을 각자의 생활환경에 맞도록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내세에 맞는 육체를 준비해두셨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때는 어떤 몸으로 오느냐?" 즉, "부활체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게 됩니다. 부활체는 내세에 적합한 육체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과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부활체의 특성(42-44절)
부활체의 특성에 대해서 말할 때 가장 분명한 것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50절). 즉 지금의 육체를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이 몸은 하나님의 영광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 육체는 하나님 나라에서 살기에는 적합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될 부활체는 지금의 육체와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1)
부활할 때 우리의 몸은 어떻게 변화될 것입니까? 42-44절은 현재 우리의 몸과 부활체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몸은 썩을 몸이요 욕되고 약한 몸이며 육적인 몸입니다. 그러나 부활체는 썩지 아니하는 몸이며 영광스럽고 강한 몸이며 신령한 몸입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 바울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몸은 썩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무덤에서 살아나는 몸은 결코 썩지 않을 것입니다. 그 몸은 죽거나 부패하지 않습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 인간의 한 평생은 수고와 고생뿐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살기 좋아졌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는 것 자체가 수고롭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한 몸은 이러한 욕된 것을 다 벗어버리고 영광스럽고 찬란한 몸이 될 것입니다.
"약한 것으로 심고" - 현재의 우리의 육체는 얼마나 연약합니까? 늙고 병들고 슬픔과 고통을 당합니다. 특히 죽음 앞에서 이 육체는 아무 힘도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체는 이 모든 연약함과 한계들을 다 벗어버릴 것입니다.
바울은 현재 우리의 몸을 육의 몸이라고 부르며, 부활할 우리의 몸을 신령한 몸이라고 부릅니다. 육적인 몸은 살과 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과 부패를 겪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공기와 음식과 휴식을 필요로 합니다. 육적인 몸은 지상에서 생존하기 위한 몸입니다. 이 몸은 자연계에 적합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면 신령한 몸은 어떤 몸입니까? 이 몸에 대해서는 자세한 것을 알기 어렵습니다. 단지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것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모습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부활체, 즉 신령한 몸은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능력으로 가득 찬 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부활하신 주님의 몸은 음식을 잡수실 수도 있었고, 그 몸을 만져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몸이었습니다.
천국에서의 삶을 설명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의 말씀도 이 부활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은 지나갔음이러라"(계21:4) 부활체는 죽음과 늙는 것과 고통과 슬픔에 시달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부활체는 죄를 벗어버린 몸이 될 것입니다. 사실 현재 우리 몸의 모든 연약함과 불완전한 것들은 죄 때문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벗어버린 부활체가 이 모든 연약한 것들을 벗어버리게 되리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부활체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과는 이렇게 다릅니다. 그러면 우리가 부활할 때는 이전의 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활체가 현재의 육적인 몸과는 이렇게 완전히 다르지만 연속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멸망하거나 다른 존재로 환생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심고"라는 말이 현재 우리의 몸과 부활체의 관계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것들은 그 씨와 상관없는 것들이 아닙니다. 바로 그 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체는 다른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몸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한 후에도 이생에서의 사랑하는 이들을 알아보고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45-49절)
부활체는 모든 면에서 현재의 몸보다 우월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체는 그리스도의 부활체를 모범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1) 22절에서 바울은 인류에게 아담과 그리스도라는 두 명의 대표가 있다고 말했다. 모든 인류는 아담 안에서 다 죄인이 되었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 분 안에서 다시 살게 되었으며,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45-49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신령한 몸인 부활체로 부활할 것에 대해서 말하면서 다시 대표의 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은 최초의 인간이었고 흙에 속한 자였습니다. 그는 흙으로 지음을 받았으며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다 아담처럼 흙에 속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흙에 속한 자들이 되었으므로 우리 몸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어떻게 영원히 죽지 않는 몸, 흙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몸을 입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또 다른 대표, 즉 마지막 아담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졌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십니다. 아담의 후손들이 아담으로부터 흙에 속한 몸을 물려받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 속한 그의 백성들은 그리스도로부터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몸을 물려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까?
이제 원리는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께 속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아담에게 속해 있으나 모든 사람이 다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담에게 속하는 것은 태어나면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께 속할 수 있습니까? 오직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 자라야 그리스도께 속하게 됩니다. 우리가 일단 믿고 그 분께 속하게 되면 우리는 부활하신 그 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처럼 행복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능력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본받아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주님처럼 영광스럽게 변화된 우리는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에서 완전한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야 영광스럽게 변화될 수 있으며, 영광스럽게 변화된 몸이라야만 영광스런 하늘나라에 살기에 합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은혜 주신 것을 감사드립시다. 혹시라도 이 자리에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못한 분이 있다면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이 놀라운 축복을 함께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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