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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의 유언장

이정수 목사............... 조회 수 2997 추천 수 0 2009.11.21 11: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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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예화 489. 권정생 선생의 유언장

권정생 선생(1937-2007)은 1967년부터 2007년 5월 별세할 때까지 40년 동안 경북 안동 일직면 조탑동 일직교회 종지기(교회 부속 건물 단 칸 방에 살다가 그의 작품 몽실언니가 1990년 9월-1991년 1월까지 36부작으로 mbc TV드라마로 방송되어 원작자 원고료를 받은 돈으로 개천가 빌뱅이 언덕 군유지에 5평 집을 짓고 옮겼다)로 병고에 시달리며 지극히 가난하게 살면서 강아지 똥, 몽실 언니, 하느님의 눈물 등을 쓴 우리시대 최고의 동화 작가입니다. 이오덕, 전우익 선생은 권정생 선생의 막역지우였습니다.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뒤 조탑동 사람들은 세 번 크게 놀랐습니다. 하나. 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인 줄 알았는데 전국에서 수많은 조문객이 찾아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우는 것을 보고 놀랐고, 둘. 병으로 고생하며 겨우 겨우 하루를 살아가는 불쌍한 노인으로 알았는데 년 간 수 천만원의 인세 수입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셋. 그렇게 생긴 수입을 자기를 위해서는 거의 쓰지 않고 모은 10 억원과 앞으로 생길 수입을 몽땅 굶주리는 남북한 어린이를 위하여 써 달라고 조목조목 유언장에 밝혀 놓은 걸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다음은 그의 유언장입니다.

내가 죽은 뒤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만 하다). 3. 박연철 변호사(이 사람은 민주 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이다).
위의 세 사람이 나의 모든 저작물을 함께 관리하여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온 인세수입은 어린이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 신문사에서 하는 남북 어린이 어깨동무 팀에 맡기고 가끔 확인하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걸로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런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 거리다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이 같이 반 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즈음 들어 내가 화를 잘 내는 것을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 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 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다음 세상에 태어난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 25살 때 22 혹은 23살 아가씨와 연해를 하고 싶다. 하지만 다시 태어났을 때도 얼간이 폭군 지도자와 전쟁이 있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유언장 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 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작성자 : 권정생. 주민등록번호: 370816-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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