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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의 자유

이정수 목사............... 조회 수 2324 추천 수 0 2009.11.21 11:32:17
.........
    고전예화 491. 구약 성경의 자유: 부록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修訂(수정) 되어야 한다
自由(자유)를 위해서
飛翔(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은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自由(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전문

*어느 한 개인의 자유를 부정한다는 것은 그 한 개인의 생명만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인의 생명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은 원초적으로  자유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말하는 자유는 이른 바 “자유의지” 라 하는 이론적-관념적-개념적 자유가 아닙니다. “자유의지” 라는 그 말 자체는 이론적-관념적-객관적 대상일 뿐 “구체적인 한 개인”의 자유와는 아무 상관없는 공허한 추상적 개념입니다. 즉, “자유의지”라느니 또는 무슨 무슨 자유라고 규정짓고 정의 내릴 수 있는 자유는 진짜 자유가 아닙니다.

사람이란 원래 주체적 존재인 동시에 객관적 존재이며,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서도 여전히 자기 자신을 주관적으로 보기도 하다가 객관적으로 보기도 하면서 자기 자신을 추상화-관념화-개념화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그런 식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자유는 “구체적인 한 개인”과 분리하여 관념적-이론적-개념적인 것으로 추상화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내가 말하는 자유란 그런 객관적-관념적인 “자유의지”가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구체적인 한 개인”의 구체적 자유 곧 전인적 자유(the freedom of the whole man)를 말하는 것입니다.

A denial of freedom to an individual is a denial of life itself. The very character of the life of man demands freedom. In speaking of freedom at this point I am not talking of the freedom of a thing called the will. The very phrase, freedom of the will, abstracts freedom from the person to make it an object; and an object almost by definition is not free. But freedom cannot thus be abstracted from the person, who is always subject as well as object and who hinself still dose the abstracting. So I am speaking of the freedom of man, the whole man, and not one faculty called the will).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자유란 무엇인가? 연설문 일부 발취.

구약 성서의 자유
본문/ 출2:23-25(출21:1-6, 레25:8-12, 사58:6-12)

1. 들어가는 이야기

   나는 지난 주 성경을 읽으며 묵상하던 중 새삼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Liberty=Freedom)의 有無!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자유의 문제를 묵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자유=Liberty=Freedom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유=Liberty=Freedom: 1. 무엇인가 결핍되고 부족하여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상태, 수긍이 갈만한 억압 혹은 자기 자신조차 자기가 제한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제한까지 포함하여 그 모든 제한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상태.  2. 각 사람이 자기의 인생 진로, 표현, 신앙 등을 국가, 교회, 집안, 초자연적 존재 등 그 누구의 간섭(freedom from) 없이 스스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상태(freedom to). 단, 이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자유이며, 그 결과에 대하여 자기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자유이다.

2.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자유의 의미
구약 성경은 모세오경+예언서+성문서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핵심은 모세오경이며 그 눈동자는 출애굽기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라는 존재의 출발점이 출애굽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 奇異(기이)한 사실 하나를 봅니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국가, 민족, 개인은 신화, 역사, 족보 등을 내 세우며 자기 조상을 신의 자손, 태양의 후손, 왕손, 귀족 가문 등으로 미화합니다. 그런데 매우 예외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만은 자기 조상이 애굽 바로의 비천한 노예=종이었다고 합니다. 자기 조상들이 종살이 苦役(고역)으로 처절하게 울부짖었을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이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자기 조상들을 출애굽 시켜 주심으로 우리가 자유인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自由는 거의 언제나 노예=종의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과 강제 중노동=노역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이제 더 이상 남의 노예=종이 되지 말고 스스로 자유하라. 만약 너희 중에 스스로 자유하지 못하는 약한 사람들이 생겼다면 이미 자유한 힘 있는 너희가 그들을 자유케 하라고 모세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끊임없이 명령하고 있습니다.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육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칠년에는 값없이 자유케 하라(출21:1-7, 신15:12-18) *제오십년=희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레25:8-12)-嬉年法(희년법)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끊는 것이라(사58:6-12, 사61:1-3).

3.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라고 하십니다. 왜?
첫째. 하나님은 태초부터 이 세상 모든 생명체가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곧 자유하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창1:22, 28. 8:17)). 한낱 벌레도 가두고 억누르면 꿈틀거리다가 죽습니다.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어떤 한 사람의 자유를 부정한다는 것은 곧 모든 생명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의 생명은 원초적으로 자유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A denial of freedom to an individual is a denial of life itself. The very charicter of the life of man demands freedom.” -마틴 루터 킹 목사.

일제 강점기의 시인 윤동주의 “새벽이 올 때까지”,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군사독재 시대의 시인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와 같은 詩는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와 다름 아닙니다. 자유를 원하는 절규입니다.

둘째. 자유는 행복의 源泉(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자유, 신체 거주 이동의 자유,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無知(무지)로부터의 자유, 부조리한 사회제도로부터의 자유, 거짓 예언자=거짓 종교로부터의 자유, 절망으로부터의 자유, 정치적 공포로부터의 자유,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고 사랑하는 것을 위하여 정열을 바칠 수 있는 자유 등 이 모든 자유 가운데 그 어느 하나라도 빼버리고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Absolutely Impossible!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제4계명을 제정하시어 말 못하는 짐승들까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안식일에는 쉴 수 있는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출20:10).

셋째. 자유는 양날 가진 칼이기 때문입니다. 폴 틸리히는 인간 실존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말하기를 “아담은 자유를 잘못 사용하여 죄를 짓고 죽음의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아담의 그 잘못 사용한 자유로 말미암아 우리는 인간이 되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역으로 표현하면 “아담이 자유를 잘못 사용하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에 우리는 올바른 자유 행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는 양날가진 칼입니다. 아담처럼 사용하면 저주가 되고 예수님처럼 사용하면 축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로고 세라피(의미요법)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 박사는 그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각 사람 앞에 닥쳐온 삶의 현실은 搖之不動(요지부동)이다. 그러나 그 삶의 현실에 대한 태도를 결정할 자유만은 여전히 각 사람에게 남아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즉, 비극적인 현실에 직면하여 “절망할 것인가? 아니면 고뇌를 넘어 환희로 갈 것인가?” 이 둘 중 그 어느 하나를 선택 할 수 있는 자유는 여전히 각 사람 몫으로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양날 가진 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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