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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고전예화 496. 고요함의 지혜
*지혜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존재의 바탕에는 이미 지혜가 있다. 그 지혜를 사용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지금 현재에 만나는 사람이나 사물에 집중하는 것이다. 집중은 원초적 지혜이며 순수의식 그 자체다. 집중은 개념적 생각이 만들어낸 장벽을 녹여 없애고 이 세상 모든 것이 홀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 인식하는 자와 인식되는 것이 하나가 되게 한다.
*근원적 어리석음은 “나(에고)=생각”이라는 믿음이다. 깨달음이란 나(에고)는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생각은 언제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 “나(에고)=생각” 이라고 할 때 나는 권태롭다. 권태롭다는 것은 허기진 마음이 무엇인가 더 많은 자극을 원한다는 것이다. 권태를 느낄 때 사람들은 잡지, 영화, 텔레비전, 인터넷, 쇼핑 등을 통하여 허기진 마음을 채운다. 혹은 마음의 허기를 몸으로 전이하여 마구 먹어댄다.
*그런데 맑은 마음으로 자신의 허기진 마음=권태로운 느낌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맑은 마음으로 지켜보기 시작하면 어느 한 순간 마음에 고요함이 스며든다. 처음에는 아주 작았던 고요의 공간이 점점 커진다. 그와 동시에 허기진 마음=권태감이 조금씩 약화되며 권태로움이 별 것 아니라고 깨닫는다.
*이 때부터 나는 권태로운 느낌이 나의 원래 모습이 아님을 알게 된다. 권태는 나의 내면의 에너지가 습관적으로 가라앉는 현상일 뿐이다. 권태로움은 내가 아니다. 분노는 내가 아니다. 슬픔은 내가 아니다. 두려움은 내가 아니다. 그런 감정들은 단지 내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지표이며 늘 오고 가는 것이다. 참 나는 파란 하늘. 가고 오는 감정은 구름이다.
*권태롭다, 슬프다, 두렵다, 배가 고프다,...라는 느낌과 감정을 느끼는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느끼는 나를 지켜보는 나는 누구인가? 전자의 나는 참 나가 아니다. 순간 순간 갈마드는 생각일 뿐이다. 후자의 나가 참 나이다. 항존하는 순수의식이며 맑은 마음이다. 후자의 나(순수 의식=참 나=맑은 마음)로 전자의 나(끊임없이 솟았다 꺼지는 갖가지 생각과 느낌과 감정들)를 지켜 볼 때 그 즉시 소란스런 마음이 안정을 찾고 고요함이 깃드는 것을 체험 할 수 있다.
*그 때 나의 몸은 관문이 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과 생각의 밑바탕에 존재하는 깊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단순히 머리=생각=감정이 아니라 온 몸과 온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생명이 내 안에 있다. 이 때도 생각이 작용한다. 그러나 이 경지에서의 생각은 보다 지혜롭고 보다 아름답다.
참고: 고요함의 지혜, 에크하르트 톨레, 진우기 역, 김영사.
*지혜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존재의 바탕에는 이미 지혜가 있다. 그 지혜를 사용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지금 현재에 만나는 사람이나 사물에 집중하는 것이다. 집중은 원초적 지혜이며 순수의식 그 자체다. 집중은 개념적 생각이 만들어낸 장벽을 녹여 없애고 이 세상 모든 것이 홀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 인식하는 자와 인식되는 것이 하나가 되게 한다.
*근원적 어리석음은 “나(에고)=생각”이라는 믿음이다. 깨달음이란 나(에고)는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생각은 언제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 “나(에고)=생각” 이라고 할 때 나는 권태롭다. 권태롭다는 것은 허기진 마음이 무엇인가 더 많은 자극을 원한다는 것이다. 권태를 느낄 때 사람들은 잡지, 영화, 텔레비전, 인터넷, 쇼핑 등을 통하여 허기진 마음을 채운다. 혹은 마음의 허기를 몸으로 전이하여 마구 먹어댄다.
*그런데 맑은 마음으로 자신의 허기진 마음=권태로운 느낌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맑은 마음으로 지켜보기 시작하면 어느 한 순간 마음에 고요함이 스며든다. 처음에는 아주 작았던 고요의 공간이 점점 커진다. 그와 동시에 허기진 마음=권태감이 조금씩 약화되며 권태로움이 별 것 아니라고 깨닫는다.
*이 때부터 나는 권태로운 느낌이 나의 원래 모습이 아님을 알게 된다. 권태는 나의 내면의 에너지가 습관적으로 가라앉는 현상일 뿐이다. 권태로움은 내가 아니다. 분노는 내가 아니다. 슬픔은 내가 아니다. 두려움은 내가 아니다. 그런 감정들은 단지 내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지표이며 늘 오고 가는 것이다. 참 나는 파란 하늘. 가고 오는 감정은 구름이다.
*권태롭다, 슬프다, 두렵다, 배가 고프다,...라는 느낌과 감정을 느끼는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느끼는 나를 지켜보는 나는 누구인가? 전자의 나는 참 나가 아니다. 순간 순간 갈마드는 생각일 뿐이다. 후자의 나가 참 나이다. 항존하는 순수의식이며 맑은 마음이다. 후자의 나(순수 의식=참 나=맑은 마음)로 전자의 나(끊임없이 솟았다 꺼지는 갖가지 생각과 느낌과 감정들)를 지켜 볼 때 그 즉시 소란스런 마음이 안정을 찾고 고요함이 깃드는 것을 체험 할 수 있다.
*그 때 나의 몸은 관문이 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과 생각의 밑바탕에 존재하는 깊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단순히 머리=생각=감정이 아니라 온 몸과 온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생명이 내 안에 있다. 이 때도 생각이 작용한다. 그러나 이 경지에서의 생각은 보다 지혜롭고 보다 아름답다.
참고: 고요함의 지혜, 에크하르트 톨레, 진우기 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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