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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사6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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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정수환 목사 |
참고 : | 2009년 11월 22일 성령강림절 후 마지막 주일 |
성경 ; 사64:1-9, 막13:32-37, 고전1:3-9
제목 ;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물맷돌 홈페이지 주소 ; www.dor.or.kr
학운교회 : http://cafe.daum.net/hagoon
한 때, 학생들 사이에서 참새 시리즈가 유행했습니다. 그 시리즈 중에서 두 가지를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첫 번째 시리즈입니다.
어느 마을에 포수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포수는 전기 줄에 앉아 있는 참새를 잡으려고 총을 겨누었습니다. 그랬더니, 참새가 “하하하, 당신이 날 쏘면 내 다리에 장을 지지겠소이다!”하고 소리쳤습니다. 이에 포수는 조금도 망설일 것도 없이 참새를 향하여 총을 쏘았습니다. 포수는 그 참새가 왜 그처럼 용감하게 말했을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참새의 배를 갈라서 확인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참새의 간이 잔뜩 부어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시리즈입니다.
두 마리의 참새가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포수가 그 중의 한 마리를 맞춰 떨어뜨렸습니다. 총에 맞은 참새가 추락하면서 말했습니다.
“왜 나만 쏴요? 쟤두 쏴요!”
그러자, 총에 맞지 않은, 그 옆의 참새가 말했습니다.
“쟤 아직 안 죽었어요. 한방 더 쏴요!”
제가 웬만하면 설교제목을 부정적으로 정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의미를 가진 기분 좋은 단어를 선택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은 위협적인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주보에 기록되어 있듯이, 오늘 저는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할까 합니다. 이 제목은 이사야서에 있는 말씀을 인용해서 정했습니다.
이사야서 64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도 주님을 섬기지 않고,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셨고, 우리 죄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리고 거짓된 우상을 섬기며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여러 예언자를 보내셔서 수없이 타이르며 권고했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 지은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만일 그들이 돌아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셔서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아무렇게나 살았습니다. 그들도 물론,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끝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건만, 그들은 당장에 실컷 먹고 마시거나 춤추며 즐기는, 그 재미나고 즐거운 생활을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과감하게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해마다 늦가을이 되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아, 우리 인생도 머지않아 저 낙엽처럼 일생을 마감할 마지막 날이 오겠지’하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 마지막 날을 대비할 준비를 하지 않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참고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지은 죄를 깨닫고 돌아올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마른 나뭇잎이 강한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 사라지듯이, 죄악에 찌든 우리들은 심판의 폭풍에 휘말리어 이리저리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주께로 돌아와 구원해 달라고 호소하는 이도 없고, 스스로 뉘우치면서 주님께 매달리는 사람도 없구나(사64:6-7)’하고 말입니다.
‘리처드 백스터’라는 사람이 ‘천국을 준비했는가?’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왜 세상의 명예와 돈, 그리고 성공에 목말라하면서 매달리는가? 참된 가치를 구하지 않고 땅의 것만을 구한다는 것은, 영원에 대한 소망이 없다는 증거이다.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을 믿는 사람이라면 세상 영광에 얽매이지 않는다.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 어린 시절에 달려 있고, 운동선수가 받는 우승트로피와 군인의 훈장이 경기와 전투 결과에 달려 있듯이, 세상에서의 삶이 영원한 삶을 결정짓는다.
세상을 떠날 때에 그 보응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세상의 헛된 영광을 경멸하고 굳센 각오로 거룩하고 충만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부지런히 추구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영혼이 머지않아 영원한 세상을 향하여 떠나게 되리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 사람들처럼, 영원의 문 앞에서 사소하고 헛된 일로 일삼을 수가 있단 말인가?
‘리처드 백스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망각한 나머지 세상의 헛된 영광만을 구하게 된다면, 크게 후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을 생각하고 살아야만, 오늘 현재도 가치 있고 보람이 있는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 ‘리처드 백스터’의 주장입니다.
제가 이제 들려드리려고 하는 이야기는 이미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느 신학교에서 한 젊은이가 교수에게 찾아가서 “교수님, 사람이 죽기 전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으면, 다음 세상에 갈 준비를 할 수 있을까요?”하고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교수님은 “그야 몇 시간의 여유만 있어도 충분하겠지”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교수님은 내세를 갈 준비를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듯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그거 참 좋은 말씀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앞으로 살 수 있는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골치 아프게 믿음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교회는 대충 다니는 척하면서 세상 재미를 실컷 맛보면서 살아야겠다. 그리고 죽을 때쯤 되어서, 그때 가서 믿음생활을 제대로 열심히 하면 되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젊은이가 교수실을 막 나가려고 하는데, 그 교수님이 그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언제쯤 죽을 것인지 알고 있는가?” 젊은이는 “그거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하고 마음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이에, 그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사실 그렇습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모든 사람은 그 자신도 언젠가는 죽게 되리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언제 죽게 될는지, 그 때와 그 시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을 따름입니다. 물론, 그 기대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어리석은 속셈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 죽을지 그 때를 알려주시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내일이라도 당장 하나님께서 오라 하시면, 우리는 그냥 무조건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 누구도 그 자신의 마지막이 언제일지 그 날짜를 알지 못하는 고로, 오늘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1.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멀지 않았으니, 우리는 항상 조심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에 있는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막13:32)”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잠자고 있는 동안에 주께서 오시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잠자고 있다는 말은, 우리가 통상 밤에 자는 잠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지 못하고, 세상 즐거움과 재미에 빠져서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런고로, 모든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잘 감당해야만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망각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수의 학생이 그 본분인 공부에 전념하기보다는 다른 일에 정신을 팔고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공부하는 일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만일 공부해야 하는 학생이 공부는 하지 않고 놀기만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고 세상 재미에 푹 빠져 살 경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해 지역을 중심으로 5개 성읍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타락한 지역이 우리가 잘 아는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이 두 도시의 사람들은 너무나 죄를 많이 짓고 살아서, 하나님께서는 이 두 지역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두지역이 유황불로 멸망을 당하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은 숙부 아브라함의 믿음 덕분에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때, 롯의 아내도 함께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불타는 그의 재산이 아까워서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후로, 소돔과 고모라는 타락한 도시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게 되었습니다.
1947년 7월, 영국 공군은 히틀러의 나치 세력을 분쇄하기 위해서 독일 공습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때에 세운 작전명이 ‘고모라 작전'이었습니다. 독일 북부의 항구도시인 함부르크를 소돔과 고모라처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 공군은 그 지역에 포탄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그 공군기지에 근무하던 한 사병이 포탄에 맞아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그때 마침, 옆에 있던 다른 사병은 피해를 입지 않고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신학자 몰트만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트만은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원래 수학과 물리학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그는 회개하고 목회자와 신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때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몸과 마음으로 전파하겠다.'는 결심을 굳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죽음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죽음의 사자(使者)는 항상 우리 코앞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죽음의 사자는 그 즉시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처럼 게으름을 피우다가는, 그야말로 큰 창피와 불행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아무리 땅을 치면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낙엽이 다 떨어져서 벌거벗은 나무를 보면서도, 우리 자신의 죽음도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항상 깨어 있어서 주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외우다시 잘 알고 있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에베소서 5장 16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현대어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지금은 악한 시대다. 그러니,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현명한 자가 되라. 모든 기회를 충분히 살려서 선한 행동을 하라.’ 또 다른 번역인 ‘현대인의 성경’은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지혜 없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 있는 사람처럼 시간을 아껴야 한다. 이 시대는 악하다.’고 번역했습니다.
어느 시대나 선(善)과 악(惡)은 공존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물론 선(善)과 악(惡)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각 사람이 어느 쪽에다가 마음을 기울이고 사느냐에 따라서, 선한 의인이 되기도 하고 악한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악인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는 말은 각 사람에게 맡겨준 사명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3년 전에 말씀드린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개척교회를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처음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 다른 교회의 지원을 받거나, 또는 그 누구의 도움을 받는 일도 없이, 그야말로 날 개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교인 한 분이 등록을 했는데, 이분은 교회를 다닌 적이 전혀 없는 분이었습니다. 60대 여자 분이었는데, 일정한 직업도 없이 혼자 사셨습니다. 생활은 장사 비슷한 것을 하셔서 연명했습니다. 우리는 한참동안 이분과 함께 세 사람이 예배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하루에도 여러 차례 교회를 방문하곤 했습니다. 한 분밖에 없는 아주 귀한 성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분을 정성껏 잘 모셨습니다.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귀한 것이 생기면 이분에게 먼저 제공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심방할 곳이 없는지라, 성경을 보거나 책을 읽는 일, 그리고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이 저의 주된 일과였습니다. 오전 중에는 주로 성경을 보았는데, 성경을 읽다가 졸리면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제가 어쩌다가 잠을 잘 때에는 거의 틀림없이, 그 성도님이 나타나곤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그 성도님이 볼 때, 저는 언제나 잠만 자고 있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목사가 낮잠을 자다가 성도에게 들켰으니, 그처럼 쑥스럽고 미안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그런 일이 있고 보니, 변명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하루는 그분이 아내에게 말하기를 “우리 목사님은 어떡하려고 늘 주무시고만 있는 걸까요? 부지런히 심방도 하고 전도도 해야 교회가 부흥하게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장탄식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분이지만, 목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 사실만은 너무나 분명하게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께서도 목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성도가 어떻게 해야 믿음생활을 잘하는 것인지,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잘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들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시고, 각자 그 마음을 다시 한 번 굳게 다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에 참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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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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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운교회 : http://cafe.daum.net/hagoon
한 때, 학생들 사이에서 참새 시리즈가 유행했습니다. 그 시리즈 중에서 두 가지를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첫 번째 시리즈입니다.
어느 마을에 포수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포수는 전기 줄에 앉아 있는 참새를 잡으려고 총을 겨누었습니다. 그랬더니, 참새가 “하하하, 당신이 날 쏘면 내 다리에 장을 지지겠소이다!”하고 소리쳤습니다. 이에 포수는 조금도 망설일 것도 없이 참새를 향하여 총을 쏘았습니다. 포수는 그 참새가 왜 그처럼 용감하게 말했을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참새의 배를 갈라서 확인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참새의 간이 잔뜩 부어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시리즈입니다.
두 마리의 참새가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포수가 그 중의 한 마리를 맞춰 떨어뜨렸습니다. 총에 맞은 참새가 추락하면서 말했습니다.
“왜 나만 쏴요? 쟤두 쏴요!”
그러자, 총에 맞지 않은, 그 옆의 참새가 말했습니다.
“쟤 아직 안 죽었어요. 한방 더 쏴요!”
제가 웬만하면 설교제목을 부정적으로 정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의미를 가진 기분 좋은 단어를 선택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은 위협적인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주보에 기록되어 있듯이, 오늘 저는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할까 합니다. 이 제목은 이사야서에 있는 말씀을 인용해서 정했습니다.
이사야서 64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도 주님을 섬기지 않고,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셨고, 우리 죄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리고 거짓된 우상을 섬기며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여러 예언자를 보내셔서 수없이 타이르며 권고했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 지은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만일 그들이 돌아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셔서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아무렇게나 살았습니다. 그들도 물론,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끝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건만, 그들은 당장에 실컷 먹고 마시거나 춤추며 즐기는, 그 재미나고 즐거운 생활을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과감하게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해마다 늦가을이 되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아, 우리 인생도 머지않아 저 낙엽처럼 일생을 마감할 마지막 날이 오겠지’하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 마지막 날을 대비할 준비를 하지 않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참고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지은 죄를 깨닫고 돌아올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마른 나뭇잎이 강한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 사라지듯이, 죄악에 찌든 우리들은 심판의 폭풍에 휘말리어 이리저리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주께로 돌아와 구원해 달라고 호소하는 이도 없고, 스스로 뉘우치면서 주님께 매달리는 사람도 없구나(사64:6-7)’하고 말입니다.
‘리처드 백스터’라는 사람이 ‘천국을 준비했는가?’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왜 세상의 명예와 돈, 그리고 성공에 목말라하면서 매달리는가? 참된 가치를 구하지 않고 땅의 것만을 구한다는 것은, 영원에 대한 소망이 없다는 증거이다.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을 믿는 사람이라면 세상 영광에 얽매이지 않는다.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 어린 시절에 달려 있고, 운동선수가 받는 우승트로피와 군인의 훈장이 경기와 전투 결과에 달려 있듯이, 세상에서의 삶이 영원한 삶을 결정짓는다.
세상을 떠날 때에 그 보응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세상의 헛된 영광을 경멸하고 굳센 각오로 거룩하고 충만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부지런히 추구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영혼이 머지않아 영원한 세상을 향하여 떠나게 되리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 사람들처럼, 영원의 문 앞에서 사소하고 헛된 일로 일삼을 수가 있단 말인가?
‘리처드 백스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망각한 나머지 세상의 헛된 영광만을 구하게 된다면, 크게 후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을 생각하고 살아야만, 오늘 현재도 가치 있고 보람이 있는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 ‘리처드 백스터’의 주장입니다.
제가 이제 들려드리려고 하는 이야기는 이미 소개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느 신학교에서 한 젊은이가 교수에게 찾아가서 “교수님, 사람이 죽기 전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으면, 다음 세상에 갈 준비를 할 수 있을까요?”하고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교수님은 “그야 몇 시간의 여유만 있어도 충분하겠지”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교수님은 내세를 갈 준비를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듯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그거 참 좋은 말씀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앞으로 살 수 있는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골치 아프게 믿음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교회는 대충 다니는 척하면서 세상 재미를 실컷 맛보면서 살아야겠다. 그리고 죽을 때쯤 되어서, 그때 가서 믿음생활을 제대로 열심히 하면 되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젊은이가 교수실을 막 나가려고 하는데, 그 교수님이 그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언제쯤 죽을 것인지 알고 있는가?” 젊은이는 “그거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하고 마음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이에, 그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사실 그렇습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모든 사람은 그 자신도 언젠가는 죽게 되리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언제 죽게 될는지, 그 때와 그 시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을 따름입니다. 물론, 그 기대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어리석은 속셈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 죽을지 그 때를 알려주시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내일이라도 당장 하나님께서 오라 하시면, 우리는 그냥 무조건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 누구도 그 자신의 마지막이 언제일지 그 날짜를 알지 못하는 고로, 오늘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1.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멀지 않았으니, 우리는 항상 조심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에 있는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막13:32)”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잠자고 있는 동안에 주께서 오시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잠자고 있다는 말은, 우리가 통상 밤에 자는 잠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지 못하고, 세상 즐거움과 재미에 빠져서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런고로, 모든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잘 감당해야만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망각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수의 학생이 그 본분인 공부에 전념하기보다는 다른 일에 정신을 팔고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공부하는 일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만일 공부해야 하는 학생이 공부는 하지 않고 놀기만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고 세상 재미에 푹 빠져 살 경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해 지역을 중심으로 5개 성읍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타락한 지역이 우리가 잘 아는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이 두 도시의 사람들은 너무나 죄를 많이 짓고 살아서, 하나님께서는 이 두 지역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두지역이 유황불로 멸망을 당하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은 숙부 아브라함의 믿음 덕분에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때, 롯의 아내도 함께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불타는 그의 재산이 아까워서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후로, 소돔과 고모라는 타락한 도시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게 되었습니다.
1947년 7월, 영국 공군은 히틀러의 나치 세력을 분쇄하기 위해서 독일 공습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때에 세운 작전명이 ‘고모라 작전'이었습니다. 독일 북부의 항구도시인 함부르크를 소돔과 고모라처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 공군은 그 지역에 포탄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그 공군기지에 근무하던 한 사병이 포탄에 맞아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그때 마침, 옆에 있던 다른 사병은 피해를 입지 않고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신학자 몰트만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트만은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원래 수학과 물리학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그는 회개하고 목회자와 신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때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몸과 마음으로 전파하겠다.'는 결심을 굳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죽음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죽음의 사자(使者)는 항상 우리 코앞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죽음의 사자는 그 즉시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처럼 게으름을 피우다가는, 그야말로 큰 창피와 불행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아무리 땅을 치면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낙엽이 다 떨어져서 벌거벗은 나무를 보면서도, 우리 자신의 죽음도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항상 깨어 있어서 주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외우다시 잘 알고 있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에베소서 5장 16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현대어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지금은 악한 시대다. 그러니,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현명한 자가 되라. 모든 기회를 충분히 살려서 선한 행동을 하라.’ 또 다른 번역인 ‘현대인의 성경’은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지혜 없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 있는 사람처럼 시간을 아껴야 한다. 이 시대는 악하다.’고 번역했습니다.
어느 시대나 선(善)과 악(惡)은 공존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물론 선(善)과 악(惡)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각 사람이 어느 쪽에다가 마음을 기울이고 사느냐에 따라서, 선한 의인이 되기도 하고 악한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악인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는 말은 각 사람에게 맡겨준 사명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3년 전에 말씀드린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개척교회를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처음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 다른 교회의 지원을 받거나, 또는 그 누구의 도움을 받는 일도 없이, 그야말로 날 개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교인 한 분이 등록을 했는데, 이분은 교회를 다닌 적이 전혀 없는 분이었습니다. 60대 여자 분이었는데, 일정한 직업도 없이 혼자 사셨습니다. 생활은 장사 비슷한 것을 하셔서 연명했습니다. 우리는 한참동안 이분과 함께 세 사람이 예배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하루에도 여러 차례 교회를 방문하곤 했습니다. 한 분밖에 없는 아주 귀한 성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분을 정성껏 잘 모셨습니다.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귀한 것이 생기면 이분에게 먼저 제공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심방할 곳이 없는지라, 성경을 보거나 책을 읽는 일, 그리고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이 저의 주된 일과였습니다. 오전 중에는 주로 성경을 보았는데, 성경을 읽다가 졸리면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제가 어쩌다가 잠을 잘 때에는 거의 틀림없이, 그 성도님이 나타나곤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그 성도님이 볼 때, 저는 언제나 잠만 자고 있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목사가 낮잠을 자다가 성도에게 들켰으니, 그처럼 쑥스럽고 미안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그런 일이 있고 보니, 변명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하루는 그분이 아내에게 말하기를 “우리 목사님은 어떡하려고 늘 주무시고만 있는 걸까요? 부지런히 심방도 하고 전도도 해야 교회가 부흥하게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장탄식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분이지만, 목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 사실만은 너무나 분명하게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께서도 목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성도가 어떻게 해야 믿음생활을 잘하는 것인지,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잘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들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시고, 각자 그 마음을 다시 한 번 굳게 다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에 참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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