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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로마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225 추천 수 0 2009.11.30 13:2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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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4:17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7. 11. 25. 주일설교 
<서론>
오늘 저는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살 때는 인간의 이성과 오 감각을 통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이후로는 더 이상 이성과 감각으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이 이론적으로는 광야에 살수 없고 감각적으로 볼 때는 절망이기 때문에 이성과 감각을 의지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믿음으로 살아야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 거대한 삶의 원리가 변화된 것입니다. 이제는 이성적으로나 감각적으로 살던 세계는 뒤로 두고 하나님 바라보고 믿음으로 사는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한가지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 세상에 살 동안에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인간적으로 느끼고 감각적으로 살았습니다만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우리는 애굽의 세상인 홍해수를 건넜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 더불어 살고 믿음으로 사는 세계에 들어온 것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본론>
1. 육의 사람이 사는 방식
그런데 이 세상사람 육에 속한 사람이 사는 방식은 일반상식에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있고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봐야 알고 귀로 들어야 인정을 하고 냄새 맡고 맛봐야 인정을 하고 접촉하여 느껴야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영적인 세계를 육신으로는 깨달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입이 볼 수 없는 것처럼, 귀가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입이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육은 영의 세계를 알 수가 없습니다. 영의 세계는 영으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는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 안에 들어왔다는 것은 영으로 살고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영의 사람은 있는 것을 없는 것같이 믿습니다.

2. 영의 사람이 사는 방식
육의 사람은 없는 것은 없는 것이고 있는 것이 있는 것이지만은 영의 사람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고 사는 생활인 것입니다. 영적인 것 즉, 하나님의 말씀, 성령님의 역사, 천국, 지옥 등은 모두다 감각으로는 체험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사람에게 하나님 있느냐고 물어 보십시오. 없다고 말하지요. 육신의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을 믿느냐고 말하면 모른다고 말할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있느냐. 모른다.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아느냐. 모른다고 말합니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만질 수 없고, 맛볼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있다고 하느냐.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맛보는 것, 만지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영적 세계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생각 속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통해서 영적 세계를 깨닫고, 보고, 알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잠언서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한 것입니다.
실상은 마음에서 모든 생명의 근원이 나오는데 세상 사람들은 마음을 보지 못하므로 환경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환경을 변화시키는 근본이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라고 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은 우리 생각을 통해서 나타나시는 것인데 우리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나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 속에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 마음의 꿈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꿈꾸어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가 보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옷자락을 만져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 냄새 맡이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할 때 마음속에 아버지를 꿈꿔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 예수님을 꿈꿔보고 성령님이 마음에 같이 계신 것을 꿈꿔 보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꿈꾸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는데 우리가 입을 넓게 연다는 것은 마음의 꿈을 넓게 연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크게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마음의 믿음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한 것입니다.
바라고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있는 것처럼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 은혜를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성령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여러분, 하나님이 계신 것 안 보입니다. 예수님이 은혜 베푸신 것 안보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예수님이 십자가의 은혜를 주시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안 보이는 생각을 통해서 꿈을 통해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것은 눈으로 안보이고 귀로 들리지 않고 인간의 감각으로 깨달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오직 생각 속에서 꿈속에서 믿음으로 우리 하나님이 예비한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말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어디 있느냐. 우리가 매일같이 고백하는 입술로 고백하는 말속에 하나님도 역사 하시고 안 보이는 마귀도 우리의 말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잠언서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우리가 사는 생명의 말을 하면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역사하시고 사망의 패배적인 말을 하면 마귀가 그 말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도 말씀을 통해서 눈에 안 보이는 마귀도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서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말을 통해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지만은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는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에도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말을 통해서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 믿으면 그대로 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꿈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말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생각도 안보입니다. 꿈도 눈에 안보입니다. 믿음도 눈에 안보입니다. 말도 눈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 보이는 세계 속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고 역사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손으로 만지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만져보려고 해도 안 되고, 하나님 냄새를 맡아 보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감각으로는 영의 세계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감각에 의지하면 불신자가 되고 낭패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마음의 생각을 통해서 마음의 꿈을 통해서 마음의 믿음을 통해서 마음에서 나오는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연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로 잘 알려진 이희아 양은 두 손을 다 합쳐도 손가락이 네 개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무릎 아래로는 다리가 없는 선천성 사지 기형1급 장애우입니다. 그녀는 열 손가락이 다 있는 사람도 치기 힘들다는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감미롭게 연주하며 국내외 장애, 비장애인 모두에게 온몸으로 희망을 전하는 피아니스트가 되었습니다. 지난 2005년 9월에 월간지 「참 소중한 당신」에서 이희아 양을 인터뷰 하면서 어떻게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었는지 이유를 말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그녀는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 두 손 다 합쳐봤자 네 손가락 밖에 없는데 네 손가락을 가지고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할 수 있냐?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희아 양은 하나님이 내게 하게 해주시기 때문에 한다는 믿음으로 피아노를 친 것입니다. 믿음이 그에게 능력과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을 주신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녀의 부모는 늘 성경 비디오를 보여주며 복음을 묵상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희아 양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서 늘 자신에게 함께 하시며 그녀의 꿈과 소망을 이뤄줄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영적인 삶이란 이처럼 하나님, 말씀, 성령의 역사 등을 생각하고 꿈꾸며 믿음으로 바라보는 삶이 바로 영적인 삶인 것입니다. 영적인 삶을 우리 마음속에 받아들이면 인간으로써 불가능한 현실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세계는 3차원의 세계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4차원의 세계입니다. 4차원의 세계가 생각을 통해서 꿈을 통해서 믿음을 통해서 말씀의 선언을 통해서 나타나면 환경인 3차원의 세계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희아 양과 같이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는 여아로써 결코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는데 그는 하나님이 피아니스트가 되게 해준다고 꿈꾸고 소원하고 믿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기적이 3차원의 육체의 생애 속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미국 중서부 지방의 어느 작은 농촌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어느 해 오랫동안 가뭄이 계속되어 농작물이 타들어가고 논바닥이 갈라지는 등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사람들은 걱정하며 기도하기 시작했고 지역 교회마다 모여서 비가 오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철야하면서 그날 비오기를 기도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였는데 오직 앞자리에 어린 소녀 한 사람이 빨간 우산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왜 너는 기도회에 나오는데 빨간 우산을 가지고 나왔습니까?” “집에 돌아갈 때 비가오기 때문에 우산 쓰고 가야 되지 않습니까?” “비가 올지 안 올지 누가 아느냐?” “아니 비오기 위해서 기도회로 모였다면서요. 우산도 안가지고 나오면 거짓말 아닙니까? 비가 올 것이기 때문에 나는 우산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게 믿음인 것입니다. 비오기 위해서 기도하면서 우산 준비하지 아니하고 우 복도 입지 아니하고 오는 것은 와도 좋고, 안와도 좋다. 올 똥 말똥 하여라. 그러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 어린 소녀같이 확실히 “비가 온다. 그러므로 우산을 준비하고 가자. 기도회 마치고 올 때는 우산을 쓰고 올 것이다.”그러한 믿음이 참된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언제나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생각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보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는 신앙을 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있는 것만 보고 있는 것만 듣고 있는 것만 냄새 맡고 있는 것만 말하고 있는 것만 만져보면 육에 속한 사람인 것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있는 것 이상의 저 세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4차원의 세계 영적 세계는 생각으로 보고 믿음으로 보고 꿈으로 보고 믿음으로 말하는 것이 바로 4차원의 세계인 것입니다. 4차원의 신앙세계를 사는 사람이 오늘날 현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3. 안 보이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다스림
눈에 안 보이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다스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릴 때 소 먹이러 가서 친구들끼리 물방울 싸움을 합니다. 피기를 뽑아서 물을 쪽 짜가 지고서 서로 붙여서 물이 빨려간 편이 이깁니다. 그런데 피기를 쭉 짜서 물방울 떨어질락 말락 하는 것하고 조금 물방울 가지고 붙으면 조금 물방울이 이길 것 같은데 영락없이 떨어질락 말락 하는 물방울에 조금 물방울이 끌려가는 것입니다. 큰 물방울에 작은 물방울은 끌려갑니다. 이와 같이 우리 육신적인 세계는 영적인 세계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세계는 영적인 세계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세계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마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되 풍성히 주는 역사로 우리를 인도하지만 우리 현실적인 세계 뒤에 있는 마귀는 인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처참한 파괴를 감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 부정적인 환경은 부정적인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가정에 부정적인 일, 불행, 사업의 고통, 육신의 질병, 여러 가지 혼란, 괴로움이 현실에 나타나기 전에 먼저 영적으로 마음속에서 부정적인 것이 있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마음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온다고 말한 것입니다.
생각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인 일들이 우리 환경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는 못산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못되고 안 되고 불행한 일들이 환경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음에 꿈이 부정적이면 안 됩니다. 늘 못사는 자기를 바라보고 못사는 자기 자녀들을 바라보고 안 되는 사업을 바라보고 부정적인 꿈을 가지면 파괴적인 일이 환경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부정적이면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되는 것입니다. “못살지. 사고가 생기겠지. 절망이야. 죽을 거야. 병들 거야.”부정적인 믿음은 불안과 공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내 불안과 공포대로 될찌어다 라고 마귀는 말하는 것입니다. 욥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더니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탄식한 것입니다. 말이 부정적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은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인 씨앗을 심습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납니다. 콩을 심어놓고 팥이 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인 것입니다. “내가 못산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병든다. 죽는다.” 파괴적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는 게 의미가 없어, 사는 게 다 지겨워, 모든 것이 엉망이야, 나는 지쳤어, 다 귀찮아, 이제 사는 것이 신물이 나.” 그러면 네 믿음대로 될 찌어다.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말조심 하세요. 말은 힘 안 든다고 마음대로 부정적인 말을 뱉는데 이것이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서로 싸우더라도 저주의 말은 하지 마십시오. 자녀들을 꾸짖을 때 부정적인 말로써 꾸짖지 마십시오. 그것이 큰 세력이 되어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약한 사람이 “나는 강하다. 나는 힘 있다. 나는 장골이다. 나는 튼튼하다고 말을 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한 사람도 “나는 약하다. 나는 병든다. 나는 허약하다. 나는 못한다.”고 하면 점점 그렇게 흘러 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이 여러분의 내일을 만들어 내는 힘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회사에서 세일즈맨들의 능률이 오르지 않자 사장이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그는 한쪽 귀퉁이에 까만 점 하나를 찍은 흰 손수건을 세일즈맨들에게 펼쳐 보이면서 “이 손수건 큰 손수건이지요?” 더 크게 펼쳐야지. 여기에다 까만 점 하나를 찍어 놓고 “여러분 손수건에 무엇이 보입니까?” 세일즈맨들이 다 보고 “사장님 까만 점이 보입니다.” “아니, 자세히 보세요. 뭐가 보입니까?” “까만 점이 보입니다.” 사장님이 손수건을 흔들면서 “그러니까 당신들이 큰일이요. 흰 손수건 큰데 까만 점은 귀퉁이에 하나밖에 없는데 왜 까만 것만 보이고 흰 손수건은 안보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이 보입니까? 솔직히 말하세요. 무엇이 보입니까? 조용기 목사 손이 보입니까, 흰 손수건이 보입니까? 조용기 목사의 손은 단순히 두개밖에 없는데 흰 손수건은 너무 크지 않아요. 손수건을 보아야지요. 인생을 살면 인생이 흰 손수건과 같은데 거기에 부정적인 까만 점 몇 개만 보고 “까맣구나. 까맣구나. 까맣구나. 까맣구나. 내 인생이 깜깜하구나! 절망이구나. 까맣구나” 그렇게 하면 안돼요. 하나님이 주신 인생은 큰 흰 보자기와 같아서 흰 것이 많습니다. 까만 것 보다 많습니다. 좋고 잘되고 긍정적이고 소망을 줄 일이 절망보다 많은데 사람들은 언제나 까만 점을 먼저 바라보고 흰 손수건은 바라보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이 회사 사장이 사원들을 보고 “왜 여기 흰 수건에 까만 점은 구석에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만 보고 여기 넓은 흰 바탕은 보지 못합니까?”우리의 불가능과 단점은 이 까만 점처럼 작고, 가능성과 장점은 이 수건의 흰 바탕과 같이 많습니다. “다시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할 수 없다는 것은 조그마한 점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은 흰 바탕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못살고 패배하고 절망은 까만점 한 점 입니다. 할 수 있고 하면 되고 해볼 수 있는 것은 흰 바탕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므로 할 수가 있습니다. 잘됩니다. 건강합니다. 축복 받습니다. 기쁨과 행복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따라 환경과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다스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긍정적이고 희망찬 꿈을 꾸며 이루어질 것을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에 안 보이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가 현실의 세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의 세계를 바라보고 울고 불고 좌절하고 절망하지 말고 눈을 들어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십시오. 긍정적인 세계를 생각하고 긍정적인 세계를 꿈꾸고 긍정적인 세계를 믿고 긍정적인 세계를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복된 삶도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복된 사람이 환경에 복되지 마음에 복이 없는데 환경에 복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복이 있는 사람이 들에 가면 들에 복이 임하고 복 있는 사람이 집에 들어오면 집에 복이 임하고 복 있는 사람이 짐승을 기르면 짐승의 새끼도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어땠습니까? 복 있는 사람 아닙니까? 요셉이 종으로 팔려서 10년 동안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 하는데 요셉이 하는 일마다 복이 임하므로 보디발이 놀래 가지고서 종인 요셉을 가정총무로 삼은 것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서 3년 동안 고생 할 때도 요셉이 복을 받았기 때문에 감옥이 다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간수장이 요셉을 총 책임자로 만들은 것입니다. 애굽에 7년 기근으로 다 죽을 때도 요셉을 국무총리로 세우니까 복 받은 사람이 국무총리를 하니까 7년 동안 풍년이 와서 모든 애굽을 살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복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복이 생각을 통하여 꿈을 통하여 믿음을 통하여 말을 통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복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할 것은 복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음속에서부터 넘쳐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떠하면 그 사람도 그러한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오니라. 여러분의 생명은 마음에서 넘쳐 나오는 샘물인 것입니다. 마음이 흙탕물이면 온 인생이 흙탕물로 꽉 들어차게 되고 마음이 맑은 물이면 온 인생이 밝고, 맑고, 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각이 항상 주님을 통해서 긍정적이 되고, 꿈이 긍정적이 되고 희망적이 되고, 믿음이 긍정적이 되고, 복된 말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말해야 될까요?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내 인생이 멋져, 모든 것이 좋아, 나는 행복해, 기분이 최고야, 정말 기뻐” 어때요? 좋죠? 여러분 마음에 여러분 이와 같이 긍정적인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을 할 때 환경이 그렇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환경이란 거대한 소용돌이를 누가 운전하느냐. 마음이 운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관차를 그대로 세어 놓으면 그대로 있지요. 조종사가 기관사 운전하면 가지요. 여러분 환경을 운전하는 조종사는 여러분의 마음이 그것인 것입니다. 마음이 가는대로 여러분의 인생은 그리로 달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지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864년 영국에서는 1마일(약 1.6Km)을 4분 5초에 뛴 것이 당시 최고 기록이었습니다. 그 후에 많은 사람들이 이 기록을 단축해 보려고 도전했지만 4분 1초를 마지막으로 끝났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1마일을 4분 이내에 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 입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나는 동안 이 기록은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45년 어느 외과 의사가 발표하기를 "1마일을 4분 이내로 뛸 수 있도록 인간은 심장이 만들어져 있고 육체가 만들어져 있다"고 의학적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의학적인 결과를 듣고 난 다음 거의 100년을 4분 이내로 뛸 수 없다는 생각으로 최고 기록을 깨뜨리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 발표가 난 뒤에 2년 동안에 무려 130명이나 1마일을 4분 이내로 뛰어 기록을 갱신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100년이 지나도 1마일을 4분대에 깨지 못하였어요. 그러나 영국 의사가 의학적으로 인간은 심장과 육체의 조직이 4분 이상 뛸 수 있는 조직으로 되어 있다고 발표하자 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 순식간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4분 이내로 뛰었던 것입니다. 그같이 생각과 마음과 꿈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서 우리는 환경과 삶을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못한다면 못합니다. 한다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못한다는 사람은 언제나 꼬리에 빌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는 사람은 기어코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에는 목표 곧 꿈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유명한 자료가 있습니다. IQ와 학력, 나이와 환경 등이 비슷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생의 목표가 있는가를 물어 보았었습니다. 이 중 27%는 목표가 없고, 60%는 목표가 희미하며, 10%는 목표가 있지만 비교적 단기적인 목표였습니다. 단지 3%의 사람만이 명확하면서도 장기적인 목표와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25년 간 끈질기게 연구한 결과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명확하고 장기적인 목표와 꿈을 가진 사람은 3%의 사람들은 25년 후에 사회 각계각층에서 최고의 인사가 되어 있었고 10%의 단기적인 목표를 가진 사람은 의사, 변호사, 건축가 등 전문가로서 사회의 중상위 계층이 되었고, 목표가 희미했던 60%의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의 중하위층에서 나름대로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런데 목표가 없던 27%의 사람들은 취업과 실직을 반복하며 대부분 최하위 수준의 생활을 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는 관상용 물고기 중에 '고이'라는 잉어가 있습니다. 이 잉어를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5cm에서 8cm 밖에 자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주 큰 수족관에 넣어 놓으면 15cm에서 25cm까지 자랍니다. 그런데 고이를 강물에 방류하면 90cm에서 120cm까지 자란다고 하는 것입니다. 환경에 따라 자라는 것이 바뀌는 것입니다. 물고기조차도 환경이 5cm, 8cm 밖에 안자라는 것은 조그마한 어항이기 때문에 요것만큼 자라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그것밖에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좀 큰 수족관에 넣으니까 아~ 나는 좀 자라겠다고 생각하니까 15cm에서 25cm 바다에 던져 놓으니까 그는 90cm에서 120cm까지 자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 하는 것이 이처럼 인생 전체에 큰 영향을 줍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이 긍정적이며 꿈이 크고 희망찰 때 우리의 삶도 긍정적이고 복된 성공적인 삶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저의 제자들이 전국 세계 각지에 나가서 큰 교회를 개척하고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 제게 늘 묻습니다. “어찌하여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나온 제자들은 도시마다 제일 큰 교회를 짓고 세계 여러 나라에 가서 큰 목회를 하느냐.”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큰 교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꿈이 크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고이와 같이 적은 교회에서 자랐으면 5cm, 8cm 밖에 못 자라겠는데 좀 더 컸으면 15cm, 25cm 큰 강물에는 90cm에서 120cm 자라는 것처럼 큰 교회에서 자라서 큰 꿈을 생각하고 큰 꿈을 바라보고 큰 꿈을 믿고 큰 꿈을 말하기 때문에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꿈이 외소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경에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일본인인 하루야마 시게오는 「뇌의 혁명」 이란 책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반드시 우리 몸에 구체적인 물질로 변화되어 '육체에 작용 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플러스 발상'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나면 분노라는 정보가 뇌로 전달되어 '노르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그런데 이 때 분비되는 노르아드레날린은 매우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이 많이 분비되면 우리 몸은 병에 걸리거나 노화가 촉진되어 그만큼 빨리 죽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미소를 띠고 사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뇌세포를 활성화하고 육체를 이롭게 하는 '베타-엔돌핀'이라는 유익한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이 호르몬은 우리 신체를 젊게 만들 뿐 아니라 암세포를 파괴하고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그래서 베타 엔돌핀이 많이 나오면 우리는 인생을 즐겁게 보내며, 건강하고 장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생각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나아가서 우리의 환경까지도 변화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생각을 부정적으로 가지면 ‘노르아드레날린’이 생겨나서 우리 몸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타-엔돌핀'은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을 할 때 '베타-엔돌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우리 몸을 파괴하고 늙게 하는 효소를 몸에서 생겨나게 하고 우리를 건강하고 장수하게 하는 효소를 생겨나게도 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우리 몸도 좌우하고 환경도 좌우하고 운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생각과 꿈과 믿음과 입술의 고백은 여러분 우리의 몸도 우리의 환경도 우리의 운명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4.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람이 낙심했을 때 별들을 헤아리게 했지 않습니까? 창세기 15장 5절에 아브라함이 85세 되어 자식이 없어 탄식하고 낙심하고 좌절했을 때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은 당장 자손을 준 것이 아니라 없는 아들을 별처럼 많게 생각하라고 한 것입니다. 마음에 별 같은 많은 자식을 꿈꾸라고 했습니다. 많은 자식이 있는 것을 믿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따라 말씀하세요.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에게 문제해결은 3차원에 있지 않고 4차원에 있었습니다. 너는 눈에 안 보이는 것을 생각하고 보고 믿고 입으로 말하라는 것입니다. 별들을 보고 헤아리고 난 다음에 없는 아들을 별들처럼 많게 생각하고 마음에 별 같은 많은 자식을 꿈꾸고 마음에 그 자식이 있다고 믿고 그 다음에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도록 한 것입니다.
창세기 17장 5절에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라”(창 17:15~16)
여러분 아브라함은 나중에 없는 아들을 있는 것같이 불렀습니다. 100세가 될 때까지 아브람을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조상이요, 사래를 사라. 많은 자식의 여주로 부른 것입니다. 이름은 매일같이 부릅니다. 매일같이 불러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 사람은 부부간에 이름을 안 부릅니다. 여보, 당신이라고 하지요. 여러분 우리 한국 사람 내놓고 서양으로 가면 모두 다 이름을 부릅니다. 우리 집사람은 조보고 용기야! 나는 우리 집사람 보고 성혜야! 서로 이름을 부릅니다. 이름은 너무나 많이 부르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이 긍정적으로 시인할 때 한번만 하지 말고 열 번이고 백번이고 천 번이고 하라는 것입니다. 이름을 바꾸듯이 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건강하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나는 건강하다. 건강하다. 건강하다. 건강하다. 자꾸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복 받았다. 나는 복 받았다. 나는 복 받았다. 나는 복 받았다. 나는 복 받았다. 나는 복 받았다. 나는 복 받았다. 늘 일어서나 앉으나 말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긴다. 나는 이긴다. 나는 이긴다. 나는 이긴다. 나는 이긴다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네 입에 말로 네가 묶였으며 네 입의 말로 네가 사로잡혔다고 말한 것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는 것이니 혀에서 죽는 말을 하지 말고 사는 말을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그 결과 100세에 아들을 얻게 된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부정적인 말을 하면 인생은 불행하고 실패합니다. 조심하고 들어 보십시오.
“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인맥이 있어야 하지. 이 나이에 뭘 할 수 있겠어. 왜 나에게는 걱정거리만 생기는 거야. 이런 것도 못하니 나는 실패자야. 사실 난 용기가 없어. 사람들이 나를 화나게 해. 오랜 습관이라 버리기 어려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맨 정신으로 살 수 없는 세상이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되지. 나는 원래 이렇게 생겨 먹었어. 상황이 협조를 안 해줘.”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 파괴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앤드류 매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나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상상하고 열심히 노력하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말이 부정적이어서 사는게 의미가 없어, 사는게 지겨워, 나는 지쳤어 등의 말을 할 때 우리의 말로써 우리 환경은 어렵고 부정적이고 고통스럽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결론>
이스라엘 백성이 육적으로 살다가 영적 믿음으로 살 것을 명령 받았을 때 정말로 적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40년 광야 생활 동안 내내 육과 영, 감각과 믿음의 갈등 속에 몸부림쳤습니다. 그래서 항상 믿었다가 안 믿었다가 하나님 의지했다가 안 의지했다가 원망, 불평, 탄식, 육으로 살고, 영으로 살지 않았다가 버림을 당코 만 것 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과 감각주의로 세상에 살다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주의로 살려고 할 때 많은 마음의 갈등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삶과 환경과 운명을 변화시키는 삶은 믿음에서만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너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져라 해도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철강 왕으로 알려진 카네기의 사무실 한켠, 화장실 벽에는 그의 커다란 사무실에 어울리지 않는 그림 하나가 걸려 있습니다. 그것은 유명한 화가가 아닌 값싼 그림입니다. 커다란 나룻배에 노 하나가 덩그렇게 놓여 있는 그런 그림인 것입니다. 그런데 카네기는 이 그림을 보물처럼 아꼈습니다. 항상 사무실에 들어오면 삭막한 해변 가에 사람도 없는 덩그런 나룻배에 노가 얹혀 있는 것만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가 춥고 배고팠던 청년 시절에 우연이 길에서 이 그림을 보았는데 그림 속 나룻배 밑에 화가가 적어 놓은 글귀가 눈에 딱 들어왔습니다. "반드시 밀물은 온다. 그 날 나는 바다로 나가리라." 따라 말씀하세요. "반드시 밀물은 온다. 그 날 나는 바다로 나가리라." 여러분의 인생이 해변가 사막에 내던져진 빈 덩그런 나룻배 같고 빈 노를 가졌지만 반드시 밀물이 올 때가 오는 것입니다. 반드시 좋은 때가 오는 것입니다. 기회는 오는 것입니다. 그날에는 성공의 바다로 나갈 수 있습니다. 카네기는 이 글을 읽으며 '밀물'을 기다리듯 모든 시련을 극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적인 부호가 된 그는 자신에게 새로운 꿈과 용기를 준 이 그림을 구입하여 늘 자신이 볼 수 있는 위치에 걸어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낙심했을 때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헤아리게 하심으로 마음에 별 같은 많은 자식을 꿈꾸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를 수 있습니다. 없는 의와 용서와 의를 있는 것처럼 부를 수 있습니다. 없는 거룩함과 성령 충만을 있는 것처럼 부를 수 있습니다. 없는 치료와 건강을 있는 것처럼 부를 수 있습니다. 없는 축복과 번창을 있는 것처럼 부를 수 있습니다. 없는 천국과 영생을 있는 것처럼 부를 수 있습니다. 아직 없지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것을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직 내가 느끼지 못하지만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탁월한 것은 우리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를 수 있도록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육신으로 안보입니다. 육신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육신으로 체험할 수 없습니다. 육신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영적으로 들어가면 성령을 통해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안 보이는 세계에 수많은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육신으로는 보이지 않고 느끼지 않고 체험할 수 없지만 영적으로 우리가 말씀을 따라 생각하고 말씀을 따라 보고 말씀을 따라 믿고 말씀을 따라 입으로 시인하면 영적인 세계가 역사하기 시작해서 여러분이 변화 받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수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바라보고 탄식하며 낙심합니다. 현실은 현실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배후에 있는 영적인 세계가 현실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세계가 나타나면 삶과 영광과 축복이 오고 마귀의 세계가 나타나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이 나타난 것을 알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고 나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은총이 우리 생활 속에 넘치도록 나타나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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