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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레위기 조용기 목사............... 조회 수 3218 추천 수 0 2009.11.30 14: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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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렘33:2 ~3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8. 1. 13. 주일설교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불티가 하늘로 올라감 같이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태어났다고 욥은 탄식을 했습니다. 시골에서는 옛날 마당에 모기를 쫓기 위하여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불을 잘 붙게 하기 위하여 볏짚이나 보릿짚을 태우면 뜨거운 공기에 불티가 하늘로 솟아나는 것을 늘 우리가 보곤 했습니다. 이와 같은 변함없는 자연법칙처럼 인간의 삶도 고난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크고 작은 고난에 우겨 싸이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핍박과 비난을 받고 모함을 당하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배반과 거꾸러뜨림을 당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앞이 캄캄하며 삶의 기쁨이 사라지고 죽고 싶은 심정이 될 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울부짖으며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체험을 하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큰 위로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예레미야 33장 2절로 3절입니다.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야훼, 그의 이름을 야훼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본론>
1.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첫째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조용히 묵상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소곤거리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말했었습니다.
시편 91편 15절에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간구를 듣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여러분 간구라는 것은 마음이 애타서 끌어 오르는 간절한 부르짖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교훈할 때도 보통말로 교훈할 때가 있고 눈물을 흘리며 손을 잡고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우리가 응답받는 기도는 그냥 찬양하고 묵상기도하고 그저 소곤소곤 하는 기도로 하라고 말씀하지 아니하고 부르짖으라. 간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간구하는 것은 결국 부르짖고 기도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간절한 열심히 배속에서 끌어 올라서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 흑암의 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 보좌에 기도가 상달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보고 부르짖으라고 말할 때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놀리려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너희가 부르짖어 간절히 기도하면 응답하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부터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야훼, 그의 이름을 야훼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른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짖어야 우리의 부르짖음을 받아서 일을 행하시고 그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야훼라는 것입니다. 부르짖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간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사는 하나님이 무조건 간섭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의 부르짖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일을 행하시고 일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께로 나와서 기도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 와서 부르짖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예가 우리 구약성경에 보면 많이 있습니다. 한나의 기도, 제사장 엘리는 한나가 술이 취한 줄로 알았습니다. 한나가 얼마나 애끓는 간장을 가지고 기도를 했던지 말이 막혀서 목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말문이 막힐 정도로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하니까 입술만 덜썩 거렸죠. "그가 야훼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삼상 1:12~13)
기도에 너무나 깊이 몰입해서 취한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애절하고 간절히 부르짖다 보니까 말문이 막혀서 입술만 덜썩거리는 간절한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그 기도는 곧장 응답을 받아서 한나에게 하나님이 귀한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와 같이 간절한 기도, 속에서 끓는 기도를 하나님은 바라보시는 것입니다.
애간장이 타는 기도를 한것은 또 수로보니게 여인의 기도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돈과 두루땅에 갔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헬라 여인 수로보니게가 주님께 나와서 "내 딸이 귀신 들렸으니 고쳐 달라"고 간청을 했었습니다. 주님이 들은 채 만채 했습니다. 이 부인은 제자들을 붙잡고 하소연 했습니다. 제자들이 "저 부인이 저렇게 간절히 구하니 주님께서 도와주시지요." 주님께서 "나는 이스라엘에 잃어버린 자에게 밖에 오지 않았다. 아직 이방인의 때가 오지 않았으니 도와주지 못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주님 가는 앞길을 막고 꿇어 엎드려서 "주님이시여, 우리 딸이 귀신 들렸사오니 고쳐 달라"고 했을 때 주님이 굉장히 모욕적인 대답을 하셨습니다. "자녀들에게 줄 떡을 취하여 개에게는 주지 않는다. 너는 개 같은 여자다. 너의 기도는 응답될 수 없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말을 들었을 때 분노하고 일어나서 뒤도 안돌아 보고 갈 것입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에 소원이 있었는지 "옳소이다. 나는 개입니다. 그러나 개들도 자녀들이 먹는 밥상 밑에 떨어진 부스러기는 잡아먹으니 나 부스러기만 좀 주십시오." 얼마나 간절했기 때문에 그 모욕적인 언사를 해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이 간절한 호소를 했겠습니까? 주님께서 그 말씀을 들으시고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 찌어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귀신이 나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방인의 때가 오지 않아서 합법적으로 이방인에게 기도응답을 줄 수 없는 때라도 너무나 간절한 기도를 하니까 주님이 때를 넘어서 그 여자에게 떡 부스러기를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보면 거지 바디매오가 몸부림치는 기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리고 성을 지나갈 때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지라. 거지가 동냥을 하다 말고 지나가던 사람의 옷자락을 잡고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물으니까 나사렛 예수가 네 앞을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는 당장 동냥 받던 그릇을 던져 버리고 일어나서 동서남북을 향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밀치고 강제로 앉혔습니다. "이 장님 거지야, 너 같은 놈이 부르짖는다고 들어줄 리가 있느냐? 잠잠하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뛰며 꿀리며 간절한 호소로써 애타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가시다가 말고 발을 중지하시고 돌아보시면서 "그를 내게로 오라"고 했었습니다. 그가 뛰어갔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 해주기를 원하느냐?" "주님, 보기를 원하나이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그 장님이 눈을 뜨고 만 것입니다. 몸부림치는 기도, 많은 주위의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잠잠하라고 그렇게 억압을 해도 아랑곳없이 부르짖는 기도, 이것이 바로 통성기도요, 애절한 기도요, 간절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부르 짖으라'는 말은 히브리어 '카라'에서 나온 말로서 '절규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경주장에서 달리는 선수들은 골인점이 눈앞에 보이면 속도를 더 이상 늦출 수 없습니다. 오직 골인 점을 향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죽도록 뛰는 것입니다. 남은 힘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기진맥진 할 때까지 뛰는 것입니다. 바로 부르짖는다는 의미는 그와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조금도 몸속에 힘을 남겨놓지 말고 기진맥진 할 때까지 전력을 기울여 부르짖는 것이 바로 부르짖는 기도인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성령세례 받으려고 삼각산에 가서 밤중까지 기도해도 그렇게 간절한 기도는 안하고 그냥 천천히 기도를 했는데 응답이 안와서 새벽녘에 가서는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었던지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아요. 제 허리가 새우등 같이 굽어졌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고함을 쳐 기도하니까 곧장 성령세례 받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체험을 한 것이 기억납니다. 간절한 기도 그것이 하늘을 감동시키고 마귀의 일을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술이 취한 줄로 오해 받을 정도로 간절히 기도한 한나와 애간장 타듯 기도한 수로보니게 여인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며 부르짖은 것입니다. 이 이상 더 지나면 힘이 지쳐서 기절할 것 같은 그러한 상황까지 기도를 하면은 그 기도는 하늘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보좌를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2.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둘째로, 그렇게 기도하면 주님께서는 내가 네게 응답하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상과 사신은 응답하지 못합니다. 점쟁이들이 아무리 점을 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합니까? 우상 사신에 가서 아무리 절하고 손을 빈다고 해서 우상 사신이 대답합니까? 여러분 이스라엘에 아합 왕 때 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세라신을 섬기고 크게 타락했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3년 6개월이 지나고 난 다음에 아합왕에게 제시했습니다. "갈멜산에 바알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데리고 와서 나하고 시합하자. 불로 응답하는 신은 참신으로 인정하자." 그래서 날을 정하여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그리고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인 가운데서 단을 두 개 쌓고 하나는 바알에게 하나는 야훼의 단을 쌓고 바알에게 송아지를 잡아서 각을 떠서 얹어 놓고 "먼저 너희가 부르짖으라. 수가 많으니까 너희가 부르짖어 하늘에서 불로 응답하면 그가 참신인줄 알자."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고함을 치고 자기 몸을 칼로 찌르며 피를 흘리고 바알과 아세라 신의 경배자들이 부르짖어도 불은 오지 않았습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 쯤 엘리야는 자기의 제단을 쌓고 송아지를 각을 떠서 얹어 놓고 물을 몇 동이나 부어서 도랑까지 물이 차게 하고 난 다음 그는 꿇어 엎드려서 기도했습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야훼여 내게 응답 하옵소서 내게 응답 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야훼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야훼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불로 응답하는 하나님, 바알과 아세라 신의 제사장들은 850명이 되어도 불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여 제물을 다 태웠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엎드려서 야훼 그는 참 하나님이라고 고함을 부르짖게 만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하늘에서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상과 사신이 응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는데 그 길로 갈멜산 중턱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비를 달라고요. 청천 하늘을 바라보고 기도한 것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갔다고 말한 것입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안와서 만물이 다 타고 말라 버렸는데 역시 엘리야가 하나님께 간절히 엎드려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이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도 엘리야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던지 그 머리가 다리 사이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꽂꽂이 서서 기도하다가 창자가 자꾸 당기도록 기도하니까 머리가 점점 수그러져서 머리가 다리 사이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공처럼 되었습니다. 간절한 기도 이것을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을 여기에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응답해 주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응답 안하는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를 놀리시는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헛된 약속을 하는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로 18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로 14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엄청난 약속이 아닙니까? 무엇이든지 큰일이나 적은일이나 가능한 일이나 불가능한 일이나 야훼께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주님께서 시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무나 많은 일에 주님께 기도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하려고 하다가 피투성이가 될 때가 많은 것입니다. 또 너무나 기도를 허술하게 하는 것입니다. 집중적으로 목숨을 내어 놓고 부르짖고 기도하지 아니하고 허술하게 기도하므로 말미암아 마귀의 진에 기도가 막혀서 나가지 못하게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저는 작년 11월 우리교회 순복음가족신문에 실린 동작대교구 임현숙 집사님의 간증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집사님의 남편은 평소 임현숙 집사님의 신앙생활을 못 마땅히 여겨 교회를 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 일쑤였습니다. 하루는 그 남편이 친구들과 야유회를 갔다 들어오더니만 다리가 아프다고 하는데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튿날 보니까 다리가 반점이 생기고 굉장히 부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병원에 가보니까 병원에서는 '비브리오패혈증'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야유회에 가서 먹은 생선이 잘못되어서 비브리오패혈증에 걸려서 오늘 하루를 넘기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하나님께 매달려 부르짖었습니다. 사흘 동안 정신없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부르짖어 기도하고 난 다음에 의사 선생님이 와서 진찰하기를 "당신이 기도를 많이 했군요. 생명의 위험은 넘겼습니다. 그러나 살기는 살겠지만 두 다리는 잘라야 되겠습니다. 다리가 너무 부어오르고 썩어서 잘라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좀 시간을 달라고 하고 구역식구들에게 부탁해서 구역 식구들이 다 함께 와서 금식하며 주님께 내리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에 의사가 와서 "아, 안 잘라도 되겠습니다. 피가 통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번 힘차게 박수합시다. 또 무슨 문제가 생겼냐하면 병원에 입원한 날수가 많고 합병증으로 말미암아 치료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도저히 치료비가 나올 데가 없어서 또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마른하늘에 비를 내리시는 주님, 치료비가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너무 걱정을 하고 환자를 돌보다가 집에 가다가 그만 자동차 사고가 났습니다. 그래서 치였는데 큰 부상은 당하지 않고 정신적인 충격만 많이 받았는데 자동차 회사에서 보험을 주셨는데 치료비와 꼭 보험으로 나왔어요. 그래서 치료비도 다 무사히 지불하고 지금은 남편 열심히 교회 나온다고 하는데 아마 이 예배 시간에 나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크고 은밀한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부르짖지 아니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남편 잃어버리고 말아야겠지요.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무사하지 않고 응답하셔서 우리 생활에 간섭해 주시는 것입니다.

3.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
셋째로,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겠다.
기도는 우리가 아는 방법으로 올 때도 있지만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방법으로 응답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비밀한 길은 우리가 모릅니다. 모르는데 우리는 절망의 벽에 부딪쳐서라도 하나님은 길이 있으니까 부르짖는 것입니다. 옛말에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었습니까?
시편 121편 1절로 2절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
태산이 내게 가로막혔습니다. 눈을 들어 보니까 갈 길이 없습니다. 앞길이 다 막혔어요. 태산이 나를 막고 있으니까 기어 올라갈 수도 없고 터널을 뚫을 수도 없습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산보다 높은 곳에 고개를 드니까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무리 우리 인생 문제가 태산같이 클지라도 태산보다 높은 하나님이 계시고 태산을 제압할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산을 옮기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태산을 옮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 꼬 천지를 지으신 야훼께서 나의 도움이 되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계획한 것은 은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쉽게 하나님을 비평하거나 하나님을 인간적으로 이해하려고 애를 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8절로 9절에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야훼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라"
그러므로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꾸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대체 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방책을 세우고 자기가 길을 만들어서 자기가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오만과 교만과 독선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받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지 아니하고 자기의 생각, 자기의 길로 연구 개발해서 나가면 그것은 오만이요, 교만이요, 독선이요, 결국에는 바벨탑 같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굉장히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길을 야훼께 맡겨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내 의를 빛과 같이 나타내시며 내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맡길 줄 알아야 되고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간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급하게 내 길로 내 생각으로 내 계획으로 내 방책으로 일을 했다가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계획은 사람에게 있어도 그 발걸음을 옮기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쉽게 인간적으로 서지 않는 것입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의 책「잘 되는 나」에 이런 간증이 있는 것을 읽어 보았었습니다. 오스틴 목사의 친구 한 명이 말기 암에 걸렸는데, 의사들이 다 포기했습니다. 하루는 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데 네 살배기 아들이 성경책을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글을 못 읽으니까 성경책을 펼쳐 가지고서 손가락을 대면서 "아빠, 뭐라고 적었는지 한번 읽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뭐라고 써있냐면 요한복음 11장 4절을 어린 아이가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니까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오스틴 목사님의 친구는 여기에서 하나님 음성을 들었습니다. 왜 네 살배기 아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절망에 처한 그에게 성경책 들고 와서 마음대로 펼쳐서 손가락으로 이 성경 구절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레마인 것입니다. 그는 그 성경구절을 부여잡고 낙심을 이기고 절망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암에서 고침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키워 주기 위해서 이런 작은 기적들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고 늘 깨어 있을 때 이처럼 일상생활 주변에서 늘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도움은 오직 야훼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미리 아십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우리는 눈앞에 밖에 못 보지만 하나님은 벌써 끝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르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아시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르고 말하기 때문에 우리말은 거짓말이 될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알고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알고 하시는 말씀은 거짓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손위에 얹어 놓고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 알고 하시는데 어떻게 거짓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올 일들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본적도 없고 귀로 들은 적도 없고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한 것을 하나님은 이미 다 아시는 고로 그 해결 방책을 예비해 놓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여러분의 일생을 이미 손바닥에 얹어 놓고 다 알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예비한 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 뭐를 안주겠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금덩어리 하나를 드리는데 여러분이 금덩어리를 싸갈 신문쪽지 하나 주십시오 하면은 금덩어리를 주신 제가 신문쪽지 안주겠습니까?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선물로 주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마음속에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살면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에 막다른 골목이라고 낙심치 말 것은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보다 한없이 높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추인 비밀을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21절로 22절에 보면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야훼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라고 한 것입니다.
홍해 밑에 길을 만들 줄이야 누가 알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도 모르고 바로의 군대들도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물에 갇혀서 죽었다고 생각하고 바로의 군대는 홍해 물에 갇힌 이스라엘 백성을 산채로 포로로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하나님은 비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홍해를 갈라서 바다 밑에 신작로를 깔아 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한 일인 것입니다. 그들이 수르광야에 들어가서 나흘 길을 걸어가도 물이 없어 목이 마를 때 쓴 연못물을 만나서 탄식을 했었습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이미 쓴 연못물을 달게 할 나무를 준비해 놓으시고 나뭇가지를 꺾어 놓은지라 화학작용이 일어나서 물이 달아지고 만 것입니다. 쓴물을 달게 만드는 것도 하나님이 이미 준비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어느 곳에 가서 어떠한 어려운 고비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이 해결책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방책이 없는 곳에 하나님의 방책을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쓰디쓴 연못물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쓴 연못물의 경험을 할 때 우리는 낙심하고 탄식하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은 이미 달게 할 방책을 세워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대책이 없을 때 하나님은 대책을 세워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라고요. 우리가 길이 없을 때 예수님은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부르짖으면 없는 길도 만들어 놓는 것이 주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져서 큰 혼란에 떨어졌을 때 예수님이 어떻게 크고 큰 비밀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탁하니 예수님이 그 부탁을 들으시고 물을 변하여 포도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될 줄 누가 알았습니까?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는 은밀한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만에 살아날 것을 누가 알았었습니까? 다 무덤에 들어간 나사로는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마리아와 마르다가 탄식하고 통곡하고 눈물을 밤새도록 흘리고 온 얼굴이 퉁퉁 부었는데 예수님은 무덤가에 오셔서 위로한 것이 아니라 "나사로야 나오라!" 죽은 지 나흘 만에 혈관이 다 썩고 몸 세포가 다 썩은 그를 순식간에 살려 일으킨 것입니다.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나 과소평가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태산준령을 옮기지 못할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산을 바라보고 낙심하는 것입니다. 산 너머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상상력에 미치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해답을 갖고 계시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세계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이는 비결은 기도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것도 일상적인 평범한 기도를 뛰어넘어 간절하고 애절하며 몸부림쳐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기도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며 마귀의 진을 훼파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생각을 한없이 뛰어넘는 각을 한없이 뛰어넘는 비밀한 해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중에 가장 위대한 대통령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위기 때마다 엎드려 기도를 했습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링컨에게 "왜 위기의 순간마다 기도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나는 기도 이외에 최선의 방책을 모릅니다. 내가 가진 지혜와 주변 사람들의 재능도 어려움을 극복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오직 전능하신 그분만이 최선의 방책을 알고 계심으로 나는 그저 주님을 믿고 의지할 뿐입니다."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자기 생애에서 최선의 방책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링컨과 같이 계셔서 여러 번 선거의 낙마에서도 건져 주시고 혼탁한 정치를 바로잡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크고 은밀한 비밀을 나타내 주실 것을 알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여러분 생활 속에 제일 좋은 대책인 것입니다. 대책이 없다구요? 기도가 대책인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난 다음 대책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무엇이 다릅니까? 다른 사람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하다가는 태산에 부딪히면 대책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산꼭대기 위에 하늘이 있고 하늘보좌에 하나님이 우리의 대책이 된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는 이상은 낙심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여주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대책이 없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대책이 되십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보고 낙심할 때 산 건너편 저 하늘에 하나님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 것을 압니다. 우리 주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평범하고 평상적인 기도가 아니라 애끓는 간장이 녹는 부르짖는 기도를 하고 마귀의 진을 물리치고 하나님 보좌에 기도가 상달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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