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행9:1-22 |
---|---|
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하나로 통신과 삼성 전자 매직 스테이션 광고 모델을 하는 가수 유승준이 있습니다. 빛과 소금 10월 호에 그에 대한 기사가 있어 읽어 보았습니다. 그는 부모를 따라 이민을 갔다고 합니다. 낯선 땅에서 그는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다투고 급기야는 학교에 가지 않고 담배와 술로 세월을 보내며 방황했다고 합니다. 그의 방황의 골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졌고 급기야는 목숨을 포기할 생각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죽는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공포감이 덮쳐왔다고 합니다. 그 때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제가 당하고 있는 이 고난에서 제발 저를 살려 주세요." 그 때 그는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밝은 빛이 하늘로부터 방안에 내려왔고 그 빛과 함께 자신 안에서 "사랑하는 아들아 일어나라. 내가 너의 아버지다. 네가 힘들고 넘어지고 실패할 때 너와 함께 했느니라. 승준아, 내 손을 잡고 일어나라" 그는 손을 뻗으며 "하나님 죄송합니다. 저를 다시금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세요"라고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그후 그에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학교에 들어갔고 교회에 나가 신앙 훈련을 받게 되었고 가수의 꿈을 갖고 기도하였는데 6개월 만에 응답받아 가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예배에 참석할 수 없을 때는 백댄서들과 함께 방송사 옥상에서나 복도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되었을까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집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갖게 됩니다. 죽음의 길에서 삶의 길로 가게 됩니다. 고통의 삶에서 환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불안에서 평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진정 예수님을 만나면 됩니다. 어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까?
1. 그릇된 길,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자에게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1-8)
1)사람을 죽이는 일에 열중하였으나 자신도 죽음의 길을 걷고 있는 바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찾아 오셨습니다(1-3).
1절에 보니 바울은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다고 하였습니다. 2절에 보니 예수님의 도를 좇는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누구든지 잡아 오려고 했습니다. 1절에 '살기가 등등하여' 라는 말은 '호흡하다' '오직 그런 생각으로만 꽉찬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을 죽일려는 종교적인 열심히 그의 머리 속 가득차 있었습니다.
3절 보십시오. 이런 바울에게 예수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그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입니다. 당시 최고 학부를 나온 사람입니다. 유대인 중의 유대인입니다.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신으로서는 최선의 삶이고 그것이 당시 사회를 바르게 만들고 체제를 유지하는데 가장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면서도 전혀 도덕적 수치감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다른 사람만 죽이는 길이 아니라 자신도 죽이는 길이고 사회를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더 혼탁하게 만드는 길이었습니다. 오늘 현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의 길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2)우리도 그릇된 길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자에게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두 길이 있습니다. 죽음의 길과 삶의 길입니다. 성경 잠언서 14장12절에는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 방탕과 갈등의 세월을 보낸 청년이 있었습니다. 날마다 나쁜 친구들과 어깨를나란이 하고 골목을 누볐습니다. 술을 마시고 돈을 내는 적은 한번도 없고, 걸핏하면 시비를 걸어 닥치는 대로 부수고 파괴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습니다. 그에게 시간이라는 보화는 술한 잔에 비교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2차, 3차를 가던 중에 우연히 교회당 앞에 지나가다가 그 건물 벽에 현수막을 보게됐습니다. (롬6:23)"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순간 그는 '죄이 값은 사망'이라는 말씀이 그의 가슴을 예리하게 찔렀습니다. 마치 자신의 사형선고와 같았습니다. 그는 교회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친구에게 교회에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친구는 그의 제안을 뿌리치고 제 갈 길로 가버렸습니다. 그는 교회당에 들어가 지나간 죄를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지나간 죄를 낱낱히 회개했습니다. 이제 주를 위해 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술마시자는 친구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고학 끝에 감옥의 간수장이 되었습니다. 시장이 되었습니다.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미국의 22대 대통령 클리브랜드입니다.
그런데 클리브랜드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날 알콜 중독자로 범죄자로 사형수로 교도소에서 클리브랜드의 대통령 당선 신문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30년 전 교회 앞을 지나던 그 친구였습니다.
인생이란 생을 누구와 함께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클리브랜드처럼 그리스도를 만나 성실하게 인생을 산 사람도 있고 그의 친구와 같이 술과 범죄와 함께 인생을 낭비하다 형장의 이슬로 살아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단 한번 주어진 인생,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세월, 이 인생을 낭비하지 안고 좀더 보람있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즐겁습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희망이 생깁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세계는 나의 교구다!" 외친 존 웨슬 리가 예수님을 만나 변하였습니다. 70년대의 세기의 살인마, 김대두는 감옥에서 예수를 믿고 변화를 받았습니다. 김대두가 감옥에 있을 때에 죄수들은 말했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변화된다고 하더라도 김대두는 절대로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1300여 명을 회개시켰다고 합니다. 한 때 유교에 심취했던 임어당이 예수님을 만나 변하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주일 아침 교회에 앉아 있을 때에 행복을 느낀다. 지난 30년간 고아였으나 나는 더 이상 고아가 아니다!"
두 길이 있습니다. 한 길을 사망의 길이고 한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주님과 함께 생명의 길로 가시길 바랍니다.
2. 고통 중에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9-14).
1)바울이 고통 중에 있을 때 예수님은 찾아 오셨습니다(8-10).
8절을 보십시오.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사흘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고 보지 못하였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큰 빛을 보았기 때문에 영원한 장님으로 살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바울을 그 고통가운데 그대로 놓아 두지 않았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아니니아를 보냅니다. 그리고 안수하여 다시 보게 만들었습니다.(12) 19절 보십시오. 어떻게 되었습니까? 음식을 먹고 강건해 졌습니다.
2)우리는 고통 중에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삶의 고통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만나자고 하는 시간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고부 간의 갈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질병으로 말할 수 없는 통증 중에 있습니까? 자녀문제로 남모르게 눈물 흘리고 있습니까? 부부 갈등으로 밤잠을 설치는 분이 있습니까? 경제적 궁핍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번민하는 분이 있습니까? 해결하지 못한 죄로, 끝없이 물고 늘어지는 나쁜 습관으로 힘겨우신 분이 있습니까? 고통 중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출산을 위한 고통을 앓는 여인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은 새로운 인생을 위한 기회일 수 있습니다. 앉은 뱅이를 일으키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눈먼자를 뜨게하시고, 폭풍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들은 그 문제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문제가 없었다면 어쩌면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땅끝 시리즈의 작가 김성일 장로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교수이면서 600여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창조사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40대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는 원래 모태 신앙인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외가댁은 3대에 걸쳐 예수를 믿는 기독교 집안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 2학년때 소설가가 되고 보니 사람이 교만해진 것입니다. 신앙이란 현대시대에는 맞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큰 딸 예나(26.MBC-TV PD)의 편도수술이 잘못되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래도 어럼풋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돌아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아내에게 밀어닥친 '위암'이라는
병 앞에서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무척 괴로와했습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나는 내 육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회사 출퇴근을 병원에서 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원인이 내가 교회에 나가다가 안나가서 생긴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물음을 계기고 그의 사고는 180도로 바뀌었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직장에 문제가 있습니까? 자녀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 중에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내가 변하면 됩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믿는 사람만 잡아 죽이면 세상이 바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하고 자녀도 변하고 가정도 변하고 직장도 변하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 문제 중에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며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3. 사명을 주시려고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15-22).
1)예수님은 바울을 찾아 오셔 사명을 주셨습니다(15).
1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바울에게 사명을 줍니다.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한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자격을 주십니다. 18절 보십시오. 세례를 받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성령 충만을 주십니다. 그리고 바로 바울은 이 사명을 이룹니다. 20절 보십시오.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 아들이심을 전파합니다. 22절 보니까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습니다. 다메섹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갔던 사람이 이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2)우리도 사명을 주시기 위해 찾아 오신 예수님을 만나 사명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사명을 주시기 위해 찾아 오십니다. 인생을 살면서도 의미없데 무기력하게 살고 있지나 않습니까? 주님을 만나 사명을 가지고 힘있게 살아 가시길 바랍니다.
윤영준 목사님이 쓴 [그 다음은 또 어떻게]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맨 첫 번째 나오는 이야기는 이런 것입니다.
16세기 성자라로 불리우는 필립 디 네리라는사람이 있었는데 하루는 당시 최고의 대학이었던 컨티넨탈 대학의 교정을 걷고 있었답니다. 그 때 어떤 청년을 만났는데 그 청년에게 왜 이 학교에 왔느냐고 물어보니 법률공부를 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드라던 것입니다.
그래서 네리는 청년에게 "대학 공부를 다 마치면 무엇을 할 것인가" 했더니 청년은 "박사 학위를 얻겠습니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리는 계속 질문을 하였습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무엇을 하겠는가?" "아주 힘든 문제를 몇 개 맡아 웅변과 지식으로 멋지게 변호처리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명성을 얻겠습니다."
네리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겠는가?" 청년은 "그 후에는 많은 돈을 벌고 드디어 부자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네리는 다시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명성과 재물을 소유한 중에 평안히 살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네리 다시 질문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겠는가?" 청년은 "그 다음에는 내가 아마 늙어 죽게 되겠지요"라고 말했습니다. 네리 마지막 또 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겠는가?"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이 마지막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이 질문을 받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싸늘한 시체로 변할 것입니다. 그렇게도 애지 중지 길렀던 아들 딸들이 3일 이상 집에 놓아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 땅의 삶에 대하여 결산을 받게 됩니다. 결산 받을 날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는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라파엘은 "그리는 것이 나의 인생이다"고 말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건축하려고 나는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씨이저와 알렉산더는 "정복하고 지배하는 삶"을 구가했습니다.
우리 성도님은 무엇하기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평생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학문입니까? 부입니까? 명예입니까? 행복입니까? 건강입니까? 권력입니까? 즐김입니까? 일평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일시적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내 삶을 이끄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내 삶을 통하여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고 말씀합니다.
나에게 아무것도 없다고 자포자기 하지 마십시오.
바울 역시 말하는 것에 둔한 사람입니다. 질병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옷을 만들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새로운 인생이 출발됩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하찮은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사명을 이루기 위한 것이 됩니다. 옥수수 박사 김순권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사범학교에 가고 싶었답니다. 그러나 농업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결국 열심히 공부하여 유학을 갔습니다. 옥수수 실험을 하는데 미국 사람은 수술을 암술에 접붙이는데 그 꽃가루가 날리기 때문에 1분에 몇 개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순권 박사는 그사람들보다 4배 5섯배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물었답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냐" 내 눈을 보아라 이렇게 와이사스 구멍만하게 하나님께서 만들었기 때문에 꽃가루가 날리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사명감에 사는 사람들의 해석방법입니다. 조건 보면서 절망하지 마십십오. 사명을 주시기 위해 찾아 오신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달리 보이는 것입니다. 모세의 지팡이도 능력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물매돌도 칼보다 더 위력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질병도 오히려 더 겸손하게 하기위하여 더 많은 능력을 받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리 원하십니까? 절망에서 희망의 길로, 죽음의 길에서 삶의 길로, 고통의 삶에서 환희의 삶으로, 불안에서 평안으로 인생을 전환하고 싶습니까?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릇된 길,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자에게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십시오.
고통 중에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십시오.
사명을 주시려고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렇게 하여 바울처럼 성령 충만하여 강건하여지고 능력있는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인생/행9:1-22/김필곤 목사
그후 그에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학교에 들어갔고 교회에 나가 신앙 훈련을 받게 되었고 가수의 꿈을 갖고 기도하였는데 6개월 만에 응답받아 가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예배에 참석할 수 없을 때는 백댄서들과 함께 방송사 옥상에서나 복도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되었을까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집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갖게 됩니다. 죽음의 길에서 삶의 길로 가게 됩니다. 고통의 삶에서 환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불안에서 평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진정 예수님을 만나면 됩니다. 어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까?
1. 그릇된 길,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자에게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1-8)
1)사람을 죽이는 일에 열중하였으나 자신도 죽음의 길을 걷고 있는 바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찾아 오셨습니다(1-3).
1절에 보니 바울은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다고 하였습니다. 2절에 보니 예수님의 도를 좇는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누구든지 잡아 오려고 했습니다. 1절에 '살기가 등등하여' 라는 말은 '호흡하다' '오직 그런 생각으로만 꽉찬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을 죽일려는 종교적인 열심히 그의 머리 속 가득차 있었습니다.
3절 보십시오. 이런 바울에게 예수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그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입니다. 당시 최고 학부를 나온 사람입니다. 유대인 중의 유대인입니다.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신으로서는 최선의 삶이고 그것이 당시 사회를 바르게 만들고 체제를 유지하는데 가장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면서도 전혀 도덕적 수치감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다른 사람만 죽이는 길이 아니라 자신도 죽이는 길이고 사회를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더 혼탁하게 만드는 길이었습니다. 오늘 현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의 길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2)우리도 그릇된 길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자에게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두 길이 있습니다. 죽음의 길과 삶의 길입니다. 성경 잠언서 14장12절에는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 방탕과 갈등의 세월을 보낸 청년이 있었습니다. 날마다 나쁜 친구들과 어깨를나란이 하고 골목을 누볐습니다. 술을 마시고 돈을 내는 적은 한번도 없고, 걸핏하면 시비를 걸어 닥치는 대로 부수고 파괴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습니다. 그에게 시간이라는 보화는 술한 잔에 비교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2차, 3차를 가던 중에 우연히 교회당 앞에 지나가다가 그 건물 벽에 현수막을 보게됐습니다. (롬6:23)"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순간 그는 '죄이 값은 사망'이라는 말씀이 그의 가슴을 예리하게 찔렀습니다. 마치 자신의 사형선고와 같았습니다. 그는 교회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친구에게 교회에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친구는 그의 제안을 뿌리치고 제 갈 길로 가버렸습니다. 그는 교회당에 들어가 지나간 죄를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지나간 죄를 낱낱히 회개했습니다. 이제 주를 위해 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술마시자는 친구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고학 끝에 감옥의 간수장이 되었습니다. 시장이 되었습니다.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미국의 22대 대통령 클리브랜드입니다.
그런데 클리브랜드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날 알콜 중독자로 범죄자로 사형수로 교도소에서 클리브랜드의 대통령 당선 신문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30년 전 교회 앞을 지나던 그 친구였습니다.
인생이란 생을 누구와 함께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클리브랜드처럼 그리스도를 만나 성실하게 인생을 산 사람도 있고 그의 친구와 같이 술과 범죄와 함께 인생을 낭비하다 형장의 이슬로 살아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단 한번 주어진 인생,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세월, 이 인생을 낭비하지 안고 좀더 보람있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즐겁습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희망이 생깁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세계는 나의 교구다!" 외친 존 웨슬 리가 예수님을 만나 변하였습니다. 70년대의 세기의 살인마, 김대두는 감옥에서 예수를 믿고 변화를 받았습니다. 김대두가 감옥에 있을 때에 죄수들은 말했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변화된다고 하더라도 김대두는 절대로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1300여 명을 회개시켰다고 합니다. 한 때 유교에 심취했던 임어당이 예수님을 만나 변하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주일 아침 교회에 앉아 있을 때에 행복을 느낀다. 지난 30년간 고아였으나 나는 더 이상 고아가 아니다!"
두 길이 있습니다. 한 길을 사망의 길이고 한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주님과 함께 생명의 길로 가시길 바랍니다.
2. 고통 중에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9-14).
1)바울이 고통 중에 있을 때 예수님은 찾아 오셨습니다(8-10).
8절을 보십시오.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사흘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고 보지 못하였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큰 빛을 보았기 때문에 영원한 장님으로 살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바울을 그 고통가운데 그대로 놓아 두지 않았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아니니아를 보냅니다. 그리고 안수하여 다시 보게 만들었습니다.(12) 19절 보십시오. 어떻게 되었습니까? 음식을 먹고 강건해 졌습니다.
2)우리는 고통 중에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삶의 고통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만나자고 하는 시간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고부 간의 갈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질병으로 말할 수 없는 통증 중에 있습니까? 자녀문제로 남모르게 눈물 흘리고 있습니까? 부부 갈등으로 밤잠을 설치는 분이 있습니까? 경제적 궁핍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번민하는 분이 있습니까? 해결하지 못한 죄로, 끝없이 물고 늘어지는 나쁜 습관으로 힘겨우신 분이 있습니까? 고통 중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출산을 위한 고통을 앓는 여인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은 새로운 인생을 위한 기회일 수 있습니다. 앉은 뱅이를 일으키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눈먼자를 뜨게하시고, 폭풍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들은 그 문제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문제가 없었다면 어쩌면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땅끝 시리즈의 작가 김성일 장로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교수이면서 600여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창조사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40대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는 원래 모태 신앙인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외가댁은 3대에 걸쳐 예수를 믿는 기독교 집안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 2학년때 소설가가 되고 보니 사람이 교만해진 것입니다. 신앙이란 현대시대에는 맞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큰 딸 예나(26.MBC-TV PD)의 편도수술이 잘못되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래도 어럼풋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돌아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아내에게 밀어닥친 '위암'이라는
병 앞에서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무척 괴로와했습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나는 내 육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회사 출퇴근을 병원에서 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원인이 내가 교회에 나가다가 안나가서 생긴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물음을 계기고 그의 사고는 180도로 바뀌었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직장에 문제가 있습니까? 자녀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 중에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내가 변하면 됩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믿는 사람만 잡아 죽이면 세상이 바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하고 자녀도 변하고 가정도 변하고 직장도 변하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 문제 중에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며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3. 사명을 주시려고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15-22).
1)예수님은 바울을 찾아 오셔 사명을 주셨습니다(15).
1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바울에게 사명을 줍니다.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한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자격을 주십니다. 18절 보십시오. 세례를 받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성령 충만을 주십니다. 그리고 바로 바울은 이 사명을 이룹니다. 20절 보십시오.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 아들이심을 전파합니다. 22절 보니까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습니다. 다메섹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갔던 사람이 이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2)우리도 사명을 주시기 위해 찾아 오신 예수님을 만나 사명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사명을 주시기 위해 찾아 오십니다. 인생을 살면서도 의미없데 무기력하게 살고 있지나 않습니까? 주님을 만나 사명을 가지고 힘있게 살아 가시길 바랍니다.
윤영준 목사님이 쓴 [그 다음은 또 어떻게]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맨 첫 번째 나오는 이야기는 이런 것입니다.
16세기 성자라로 불리우는 필립 디 네리라는사람이 있었는데 하루는 당시 최고의 대학이었던 컨티넨탈 대학의 교정을 걷고 있었답니다. 그 때 어떤 청년을 만났는데 그 청년에게 왜 이 학교에 왔느냐고 물어보니 법률공부를 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드라던 것입니다.
그래서 네리는 청년에게 "대학 공부를 다 마치면 무엇을 할 것인가" 했더니 청년은 "박사 학위를 얻겠습니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리는 계속 질문을 하였습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무엇을 하겠는가?" "아주 힘든 문제를 몇 개 맡아 웅변과 지식으로 멋지게 변호처리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명성을 얻겠습니다."
네리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겠는가?" 청년은 "그 후에는 많은 돈을 벌고 드디어 부자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네리는 다시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명성과 재물을 소유한 중에 평안히 살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네리 다시 질문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겠는가?" 청년은 "그 다음에는 내가 아마 늙어 죽게 되겠지요"라고 말했습니다. 네리 마지막 또 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겠는가?"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이 마지막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이 질문을 받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싸늘한 시체로 변할 것입니다. 그렇게도 애지 중지 길렀던 아들 딸들이 3일 이상 집에 놓아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 땅의 삶에 대하여 결산을 받게 됩니다. 결산 받을 날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는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라파엘은 "그리는 것이 나의 인생이다"고 말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건축하려고 나는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씨이저와 알렉산더는 "정복하고 지배하는 삶"을 구가했습니다.
우리 성도님은 무엇하기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평생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학문입니까? 부입니까? 명예입니까? 행복입니까? 건강입니까? 권력입니까? 즐김입니까? 일평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일시적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내 삶을 이끄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내 삶을 통하여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고 말씀합니다.
나에게 아무것도 없다고 자포자기 하지 마십시오.
바울 역시 말하는 것에 둔한 사람입니다. 질병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옷을 만들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새로운 인생이 출발됩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하찮은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사명을 이루기 위한 것이 됩니다. 옥수수 박사 김순권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사범학교에 가고 싶었답니다. 그러나 농업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결국 열심히 공부하여 유학을 갔습니다. 옥수수 실험을 하는데 미국 사람은 수술을 암술에 접붙이는데 그 꽃가루가 날리기 때문에 1분에 몇 개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순권 박사는 그사람들보다 4배 5섯배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물었답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냐" 내 눈을 보아라 이렇게 와이사스 구멍만하게 하나님께서 만들었기 때문에 꽃가루가 날리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사명감에 사는 사람들의 해석방법입니다. 조건 보면서 절망하지 마십십오. 사명을 주시기 위해 찾아 오신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달리 보이는 것입니다. 모세의 지팡이도 능력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물매돌도 칼보다 더 위력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질병도 오히려 더 겸손하게 하기위하여 더 많은 능력을 받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리 원하십니까? 절망에서 희망의 길로, 죽음의 길에서 삶의 길로, 고통의 삶에서 환희의 삶으로, 불안에서 평안으로 인생을 전환하고 싶습니까?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릇된 길,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자에게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십시오.
고통 중에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십시오.
사명을 주시려고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렇게 하여 바울처럼 성령 충만하여 강건하여지고 능력있는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인생/행9:1-22/김필곤 목사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