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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삼상29: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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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한 해가 시작되면 누구나 소망을 갖게 됩니다. 건강에 대한 소망, 성공에 대한 소망, 대학 입시에 대한 소망, 자녀에 대한 소망, 가족의 행복에 대한 소망, 결혼에 대한 소망, 직장 승진에 대한 소망, 신앙 성장에 대한 소망 등 갖가지 소망을 가지고 한 해를 출발합니다. 그러나 연말이 되어 그 소망을 이루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많은 원인이 있지만 주원인이 소망을 가지지만 소망을 이루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점수를 많이 맞고자하는 소망은 있는데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이유는 소망만 있지 성적을 올릴 만한 행동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업가가 사업에 성공하기를 원하는데 사업에 성공할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건강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이 건강할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고 매일 술에 취하고 약물에 취해 허랑 방탕하게 보내면 결코 그는 건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사는 자는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어떤 자세가 필요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하여 몇 가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서는 아니 됩니다.(2)
소망을 이루기 위한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필리핀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영화배우 출신으로 화려하게 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으로 무엇이 부족해서 6천 6백 달러의 뇌물을 받습니까? 그 얼마 되지 않는 것을 말입니다. 적어도 우리 나라 대통령들 정도는 챙겨야 하지? 그래도 경제는 뒤져있지만 그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민주주의가 발달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클린턴이 고별연설을 하였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그는 능력은 있지만 믿을 수 없는 대통령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마지막 퇴임을 하면서 위증을 시인하고 그것으로 5년 동안 변호사 정지가 되고 경제를 그렇게도 호황으로 만들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르위스키 양과 성추문 때문입니다. 대통령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사업가는 사업가의 길이 있고, 학생은 학생의 길이 있고, 정치인은 정치인의 길이 있고, 신앙인은 신앙인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과학자가 가야할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자는 예술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야 소망의 항구에 이르러 크게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다윗이 아주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나라가 이스라엘을 처들어 갔습니다. 다윗은 과거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전쟁터에서 죽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이 블레셋 왕의 호위병이 되어 자기 나라 고국을 치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고 있습니다. 만약 이 전쟁으로 사울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점령한다면 다윗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국민들이 다윗을 왕으로 맞이하겠습니까? 북한군을 끌고와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나라를 차지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사람들이 모시겠습니까? 태조 왕건에 보면 나중에 견원이 아들에게 김제 금산사에 갔혔다가 도망가 왕건에게 투항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치기 위해 고려 군과 힘을 합하여 후백제를 치기 위해 나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 전쟁에서 이긴다고 후백제 사람들이 그를 다시 왕으로 맞아 주겠습니까? 미친 사람들 아니고는 자기 아들들을 죽인 사람을 어떻게 왕으로 모시겠습니까? 원수가 되어 기회만 있으면 그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다윗은 8형제 중 막내로 사무엘을 통해 왕으로 기름 부음받고 왕이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지 말아야 할 원수의 나라고 가서 그 원수나라 왕의 호위병이 된 것입니다(2).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다윗의 생에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르윈스키 성추문 정도가 아닙니다. 비자금, 안기부 자금 문제 정도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나라로 볼 때는 역적입니다.
그렇다고 블렛세 장군들이 다윗을 안전하게 믿고 그를 전쟁터에 데리고 가겠습니까? 언제 칼을 돌려 자신들을 노릴지 모를 일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4절을 보십시오. 블레셋 장군들이 왕에게 다윗을 전쟁터에 같이 갈 수 없다고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합니까? 왕이 될 꿈을 가진 사람이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갔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인기를 많이 얻고 있는 태조 왕건에서 마치 궁예가 왕건을 독심술로 의심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처럼 사울은 다윗을 의심하고 기회만 있으면 죽이려 하자 살기 위해 원수의 나라 블레셋으로 도망가 불레셋 왕의 신하가 된 것입니다. 원수의 나라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자신에게 유익한 일이 있어도 아무리 그 길이 좋다 하여도 가지 말아야 할 곳은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가지 말아야 합니다. 발이 있다고 다 가면 안됩니다. 눈이 있다고 다 보면 안됩니다. 손이 있다고 다 받으면 안됩니다. 입이있다고 다 말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올 한해 소망을 이루길 원하십니까? 가지 말하야 할 길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길은 화려한 길 같고, 기쁨이 넘치는 길 같고, 쉽게 돈을 벌고 성공하고 소망을 이룰 길 같지만 소망이 이루어 지는 길이 아니라 올무가 노여 있는 길이고 죽음의 길입니다.
어제 신문을 보는데 너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한 여고생이 60여명의 성인과 원조교제를 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박사를 받은 유망한 그랙픽 디자이너가 성인 방송을 하다 구속이 되었습니다. 돈벌자고 한 짓입니다. 그렇게 돈을 벌면 무엇하겠습니까? 그 돈이 행복을 보장해 줄까요?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 보니까 자신은 하나님 다음으로 돈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설교를 들으면서 그 목사님은 아마 말이 그렇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돈 보다 귀중한 것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생명이 고귀하고, 사랑이 고귀하고, 순결이 고귀하고 부모가 더 고귀하고 자식이 더 고귀하지 않습니까?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출세하는 것이 무엇이고 행복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고 이루고 올라가면 되는 것입니까? 서민들은 세금 조금만 않내도 집달리를 하는데 정치인들은 거대한 국민의 세금을 도둑질 해도 아무렇지 않게 보도하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을 합니다. 그저 정치적인 것으로 해석해 버리고 해결해 버립니다. 정치인만 그렇습니까? 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어떻습니까? 내신 성적 반영한다고 하니까 학교마다 답 다 알려주면서 시험보고 어지간하면 100점을 줍니다. 외국거주 특례입학 제도를 만들어 놓으니까 외국에 살지도 않았는데 가짜로 꾸려 학교에 들어 보냅니다. 농촌학교 특례입학 제도를 만들어 놓으니까 가짜로 농촌에 아이만 전입시켜 학교에 보냅니다. 내년에는 서울 대학에서 소년 소녀 가장, 서민을 위한 특례입학제도를 만든다고 합니다. 아마 자식을 소년 소녀 가장을 만들기 위해 죽어 주는 부모도 내년에는 나올 줄 모르겠습니다. 편법이 대접받고 정도를 걷는 사람이 정신 이상자처럼 취급받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만이라도 정도를 걸어갑시다. 한 나라 정치 경제에 희망이 없어도 교육이 바로 서면 희망이 있습니다. 그 교육마저 희망이 없다하여도 종교가 바로 서면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영국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은 인류 역사에 중요한 것 두 가지있다고 하였습니다. 인류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종교와 경제라고 그는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말하기를 역사를 연구해 보니 시대 마다 백성이 가장 행복하게 살 때는 종교가 건전한 윤리를 가지고 경제가 건전한 경제 원리를 가질 때라고 하였습니다. 종교가 부패해 지고 경제 원리가 정도를 걷지 못하면 그 시대는 불행해 진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웨버도 건전한 종교 윤리와 건강한 경제 원리를 합해서 자본주의가 되는 것인데 건강한 자본주의를 이룰 때 건강한 시민 사회 복지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자본주의에 신앙의 윤리가 빠지면 천민 자본주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천민 자본 주의는 세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첫째가 정경 유착이고 둘째가 도덕의 부패이고 셋째가 빈부의 격차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바로 그가 지적한 천민자본주의의 교과서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 길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 자본주의의 기본이 되는 신앙 윤리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신앙 윤리가 회복된 나라가 행복하고 잘 살더라는 것입니다. 선진국 18개국 가운데 일본만 제외하고는 다 개신교 윤리가 경제의 정신적 지주를 이루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살펴 보니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며 세가지 것을 배우는데 첫째가 소명적인 직업관 둘째가 성경적 재물관(소유와 경영 분리, 청부 사상) 셋째가 건전한 생활 윤리 즉 정직, 근면, 검소, 저축을 배우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신앙인에게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각자 처한 위치에서 정도를 걸어가야 합니다. 정치인은 정치인 대로, 경제인은 경제인대로, 회사원은 회사원대로, 신앙인은 신앙인대로, 부모는 부모로, 자녀는 자녀로,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학생은 학생은 학생대로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은 가지 말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지 말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지 말고 받지 말아야 할 것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2. 어떤 절망적인 환경에 처한다 하여도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다윗에세 왕이 되는 소망을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다윗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왕에 대한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가 가지는 소망도 마찬 가지입니다. 내 가정이 행복해 지고자 하는 소망, 아들 딸이 이 땅에서 잘 되기를 원하는 소망, 사업이 번창되어 멋지게 하나님의 사업을 해보고 싶은 소망, 건강한 몸으로 신나게 신앙생활 하고 싶은 소망, 그 모든 소망이 우리의 욕심에 의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살기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성경 빌2:13절을 보십시오.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저에게 주신 소망 우리 성도님들에게 주신 소망이 하나님이 주신 소망인 줄 믿습니다. 설령 우리가 우리 자의대로 계획했을 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잠 16:9을 보십시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그러면 우리는 그 소원의 항구로 나아갈 때 폭풍이 일어나면 그 폭풍을 보며 절망할 것이 아니라 그 폭풍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과정을 통하여 능력있는 선원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폭풍에도 넉넉히 이기는 선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다윗이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이 때 어쩌면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를 포기했을 지도 모릅니다. 십여년 동안 쫓겨다닌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지쳐 있겠습니까? 그가 왕이 되는 꿈을 가진 후 되는 것이 무엇이 있었습니까? 잠시 골리앗을 죽이고 여인들로부터 잠깐 인기를 얻은 것 이외에 계속적은 죽음의 위기를 당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가시밭길을 걸었습니다. 그가 통일 왕국의 왕이 되기 까지는 17여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니 포기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위기를 통하여 그에게 치명적인 범죄를 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었습니다. 자존심 상한 정도로 끝마무리 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또 다른 결정적인 위기를 극복해 주도록 했습니다.
30장을 보십시오.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있는 동안 아말렉 사람들이 다윗이 머문 동네에 처들어와 다 불살라버리고 아내와 자식들을 노예로 팔기 위해 잡아 가버렸습니다. 만약 다윗이 그런 망신을 당하고 돌아 오지 않았다면 그들은 영원히 노예로 팔려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 때문에 돌아와 그들을 구원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환란 속에도 하나님의 계획은 있고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는데 폭풍이라는 필수과정이 필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포로가 되어 그렇게도 가고 싶어하는 로마를 가는 것을 봅니다. 바울은 왜 포로가 되어야 합니까? 라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로로 로마로 압송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인 것으로 허락했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살지만 때때로 폭풍이 다가 오기도 하고 폭설이 내리기도 하고 찬바람이 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 일수록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소망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절망적 상황을 만날 때 소망이 있는 사람이 다른 젊은 절망적 상황에서의 그 절망적 상황을 바라보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희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제 (주)쌍방울 대표이사 백갑종 안수집사 이야기를 읽어 보았습니다. 법정 관리 1년 4개월만에 230억원 영업흑자를 일궈냈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는 1999년 9월. 출근 첫날 회사로 오면서 차 안에서 성경을 껴안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 바쁜 중에도 새벽기도를 하며 말씀에서 지혜를 찾아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말하기를 기업의 성공은 경영인의 도덕성이라고 말하며 "기독교인들, 특히 기독경영인들은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며, 기적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창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2001학년도 특차 입학생 중에 감동적인 입학을 한 사람의 기사를 읽어 보았습니다. 올해 연세대 특차에 입학한 경남 마산시에 사는 22살의 양익주 군의 기사였습니다. 그는 97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연세대학병원 재활 병동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마음대로 걸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새 소망을 발견하였습니다. 비록 걸을 수는 없지만 이제까지 몰랐던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양군은 주일예배와 목요찬양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며 신앙을 키워갔습니다.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현실이 가슴 아팠지만 신앙을 통해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세무사가 되겠다는 새 소망을 가졌습니다.그러나 병마는 그를 쉽게 놔주지 않았습니다.98년 2월‘악성 경부 임파종’이란 청천벽력 같은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빚보증을 잘못선 어머니가 어려워진 집안 형편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 버리고 아버지는 자신을 돌보느니라 아무 일도 못했습니다. 가난과 장애를 극복하면서 키워온 꿈과 소망은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을 때 한 움큼씩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처럼 희망도 한움큼씩 빠져 나가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하나님께서 결코 자신을 고통 중에 버려두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완치되면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는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신이 다녔던 교회 교인들과 장애인선교회 형제들은 열심히 그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마침내 사랑하는 우리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99년 12월 병원에서 CT촬영을 해 보니 암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10개월 동안 대학입시를 준비했습니다.학원에 다닐 수 없어 학습지와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했습니다.허리통증 때문에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들어 하루 5∼6시간씩 침대에 누워서 공부했습니다.나머지 시간은 묵상하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힘을 얻었습니다.그는 합격 소감을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저와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을 돕는 목회를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때로는 고난의 강이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3.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일지라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십시오. 다윗은 이런 상황에 이르면 소망을 이루기는커녕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블레셋의 아기스 왕에게 방백들이 반발을 하였습니다. 그 방백들은 구체적으로 옛날 일을 들어 다윗을 비난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4절에 보면 그들은 노골적으로 전장에서 우리의 적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정도 되면 강금하던지 아니면 처형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아기스 왕은 어떻게 합니까? 3,6,7,9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아기스 왕의 인정을 받습니다. 무엇을 인정받습니까? 원수인 왕이지만 그에게 정직성을 인정받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인정받는 것 중에서 정직보다 최선의 길은 없습니다. 클린턴은 이 부분에 오점을 남겼습니다. 부시가 미국의 43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미국의 도덕성을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들 부부는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였고 당선되자 마지 고향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이번 취임식도 예배 형식으로 한다고 합니다.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가 기도를 하고 성경구절이 낭독되고 부시의 고향 텍사스에서 온 감리교회 목사가 축도하는 것으로 취임식이 끝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임명한 차베스(Linda Chavez) 노동장관 지명자가 몇일 안되어 사임을 당당했습니다. 불법 이민자 과테말라 출신의 여성에게을 불법 고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행동이 자선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처음에는 불법 이민자인줄 몰랐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이를 번복하였습니다. 결국 차베스의 신뢰성에 의문이 생겼고 부시는 지명을 철회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 나라에서는 이 부분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너무나 거짓과 사기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눈속임하면 오래 가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밝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온 날부터 한 번도 그에게 악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자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와 같이 선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도가 나도 당신 같으면 내가 믿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 당하면 사람들이 몰려와 도와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살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다음으로는 인간관계가 중요합니다.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을 통하여 사업의 길도 열리고 공부의 길도 열리고 출세의 길도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그 사람 소망을 이루는 것 쉽지 않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으로 부터도 얼마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삼상 20:4)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삼하 23: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우리사 성경을 볼 때 소망의 사람 대표적인 사람은 요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꿈을 꿉니다. 그러나 형제들에게 팔리어 노예의 집에 갑니다. 고난의 길의 연속입니다. 보디발에 집에 갔습니다. 그 때 보디발이 요셉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창 39:4)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창 39:6)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그만큼 요셉을 신뢰해 주었습니다. 감옥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무총리가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은 이방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깁니다.
정직하여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면 성공할 수도 있고 출세할 수도 있고 가지고 있는 소망을 이룰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연초에 '34년만의 작은 기적'이라는 기사를 읽어 보신 분 계실 것입니다. 미국에서 주지사 비서로 일하던 한 여성이 34년 만에 주지사 자리에 오른 지금 65세 된 루스 앤 미너 여사의 감동적인 인생 이야기였습니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그의 인생을 아메리칸 드림의 표본이라고 평했고 작은 기적을 실천한 표본이라고 칭찬했습니다. 미국의 여성 주지사 5명 가운데 한 명된 그녀는 1936년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결혼을 하였지만 31세 때 남편이 돌아가시고 홀로 되었습니다. 그녀는 고교 졸업장이 없어 변변한 직장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든 자녀들과 함께 인생을 꾸려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절망하지 않고 시간제 일을 하며 뒤늦게 고등학교와 대학에 들어가 졸업을 하고 세 아들을 키우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녀는 70년 셔먼 트리빗 주하원의원의 비서로 취직하였도 그녀는 그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2년 뒤 트리빗 의원이 델라웨어 주지사에 당선되자 비서였던 미너 여사 는 주지사 비서관으로 승진, 주청사에 출입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하원의원에 당선 된 이후, 하원의원 8년, 상원의원 10년의 화려한 경력을 쌓은 뒤 93년 델라웨어주의 부지사에 선출되었고 마침대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 뭐 예수님에게 인정받으면 되지 사람과의 관계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거의 하나님께도 인정받지 못할 확률이 큽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 거의 하나님께도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올 한해 소망이 있습니까?
1.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서는 아니 됩니다.
2. 어떤 절망적인 환경에 처한다 하여도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3.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일지라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사는 자의 자세/사무엘상29:1-11/김필곤 목사
소망을 가지고 사는 자는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어떤 자세가 필요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하여 몇 가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서는 아니 됩니다.(2)
소망을 이루기 위한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필리핀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영화배우 출신으로 화려하게 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으로 무엇이 부족해서 6천 6백 달러의 뇌물을 받습니까? 그 얼마 되지 않는 것을 말입니다. 적어도 우리 나라 대통령들 정도는 챙겨야 하지? 그래도 경제는 뒤져있지만 그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민주주의가 발달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클린턴이 고별연설을 하였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그는 능력은 있지만 믿을 수 없는 대통령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마지막 퇴임을 하면서 위증을 시인하고 그것으로 5년 동안 변호사 정지가 되고 경제를 그렇게도 호황으로 만들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르위스키 양과 성추문 때문입니다. 대통령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사업가는 사업가의 길이 있고, 학생은 학생의 길이 있고, 정치인은 정치인의 길이 있고, 신앙인은 신앙인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과학자가 가야할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자는 예술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야 소망의 항구에 이르러 크게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다윗이 아주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나라가 이스라엘을 처들어 갔습니다. 다윗은 과거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전쟁터에서 죽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이 블레셋 왕의 호위병이 되어 자기 나라 고국을 치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고 있습니다. 만약 이 전쟁으로 사울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점령한다면 다윗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국민들이 다윗을 왕으로 맞이하겠습니까? 북한군을 끌고와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나라를 차지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사람들이 모시겠습니까? 태조 왕건에 보면 나중에 견원이 아들에게 김제 금산사에 갔혔다가 도망가 왕건에게 투항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치기 위해 고려 군과 힘을 합하여 후백제를 치기 위해 나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 전쟁에서 이긴다고 후백제 사람들이 그를 다시 왕으로 맞아 주겠습니까? 미친 사람들 아니고는 자기 아들들을 죽인 사람을 어떻게 왕으로 모시겠습니까? 원수가 되어 기회만 있으면 그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다윗은 8형제 중 막내로 사무엘을 통해 왕으로 기름 부음받고 왕이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지 말아야 할 원수의 나라고 가서 그 원수나라 왕의 호위병이 된 것입니다(2).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다윗의 생에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르윈스키 성추문 정도가 아닙니다. 비자금, 안기부 자금 문제 정도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나라로 볼 때는 역적입니다.
그렇다고 블렛세 장군들이 다윗을 안전하게 믿고 그를 전쟁터에 데리고 가겠습니까? 언제 칼을 돌려 자신들을 노릴지 모를 일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4절을 보십시오. 블레셋 장군들이 왕에게 다윗을 전쟁터에 같이 갈 수 없다고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합니까? 왕이 될 꿈을 가진 사람이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갔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인기를 많이 얻고 있는 태조 왕건에서 마치 궁예가 왕건을 독심술로 의심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처럼 사울은 다윗을 의심하고 기회만 있으면 죽이려 하자 살기 위해 원수의 나라 블레셋으로 도망가 불레셋 왕의 신하가 된 것입니다. 원수의 나라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자신에게 유익한 일이 있어도 아무리 그 길이 좋다 하여도 가지 말아야 할 곳은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가지 말아야 합니다. 발이 있다고 다 가면 안됩니다. 눈이 있다고 다 보면 안됩니다. 손이 있다고 다 받으면 안됩니다. 입이있다고 다 말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올 한해 소망을 이루길 원하십니까? 가지 말하야 할 길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길은 화려한 길 같고, 기쁨이 넘치는 길 같고, 쉽게 돈을 벌고 성공하고 소망을 이룰 길 같지만 소망이 이루어 지는 길이 아니라 올무가 노여 있는 길이고 죽음의 길입니다.
어제 신문을 보는데 너무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한 여고생이 60여명의 성인과 원조교제를 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박사를 받은 유망한 그랙픽 디자이너가 성인 방송을 하다 구속이 되었습니다. 돈벌자고 한 짓입니다. 그렇게 돈을 벌면 무엇하겠습니까? 그 돈이 행복을 보장해 줄까요?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 보니까 자신은 하나님 다음으로 돈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설교를 들으면서 그 목사님은 아마 말이 그렇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돈 보다 귀중한 것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생명이 고귀하고, 사랑이 고귀하고, 순결이 고귀하고 부모가 더 고귀하고 자식이 더 고귀하지 않습니까?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출세하는 것이 무엇이고 행복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고 이루고 올라가면 되는 것입니까? 서민들은 세금 조금만 않내도 집달리를 하는데 정치인들은 거대한 국민의 세금을 도둑질 해도 아무렇지 않게 보도하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을 합니다. 그저 정치적인 것으로 해석해 버리고 해결해 버립니다. 정치인만 그렇습니까? 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어떻습니까? 내신 성적 반영한다고 하니까 학교마다 답 다 알려주면서 시험보고 어지간하면 100점을 줍니다. 외국거주 특례입학 제도를 만들어 놓으니까 외국에 살지도 않았는데 가짜로 꾸려 학교에 들어 보냅니다. 농촌학교 특례입학 제도를 만들어 놓으니까 가짜로 농촌에 아이만 전입시켜 학교에 보냅니다. 내년에는 서울 대학에서 소년 소녀 가장, 서민을 위한 특례입학제도를 만든다고 합니다. 아마 자식을 소년 소녀 가장을 만들기 위해 죽어 주는 부모도 내년에는 나올 줄 모르겠습니다. 편법이 대접받고 정도를 걷는 사람이 정신 이상자처럼 취급받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만이라도 정도를 걸어갑시다. 한 나라 정치 경제에 희망이 없어도 교육이 바로 서면 희망이 있습니다. 그 교육마저 희망이 없다하여도 종교가 바로 서면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영국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은 인류 역사에 중요한 것 두 가지있다고 하였습니다. 인류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종교와 경제라고 그는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말하기를 역사를 연구해 보니 시대 마다 백성이 가장 행복하게 살 때는 종교가 건전한 윤리를 가지고 경제가 건전한 경제 원리를 가질 때라고 하였습니다. 종교가 부패해 지고 경제 원리가 정도를 걷지 못하면 그 시대는 불행해 진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웨버도 건전한 종교 윤리와 건강한 경제 원리를 합해서 자본주의가 되는 것인데 건강한 자본주의를 이룰 때 건강한 시민 사회 복지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자본주의에 신앙의 윤리가 빠지면 천민 자본주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천민 자본 주의는 세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첫째가 정경 유착이고 둘째가 도덕의 부패이고 셋째가 빈부의 격차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바로 그가 지적한 천민자본주의의 교과서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 길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 자본주의의 기본이 되는 신앙 윤리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신앙 윤리가 회복된 나라가 행복하고 잘 살더라는 것입니다. 선진국 18개국 가운데 일본만 제외하고는 다 개신교 윤리가 경제의 정신적 지주를 이루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살펴 보니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며 세가지 것을 배우는데 첫째가 소명적인 직업관 둘째가 성경적 재물관(소유와 경영 분리, 청부 사상) 셋째가 건전한 생활 윤리 즉 정직, 근면, 검소, 저축을 배우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신앙인에게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각자 처한 위치에서 정도를 걸어가야 합니다. 정치인은 정치인 대로, 경제인은 경제인대로, 회사원은 회사원대로, 신앙인은 신앙인대로, 부모는 부모로, 자녀는 자녀로,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학생은 학생은 학생대로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은 가지 말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지 말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지 말고 받지 말아야 할 것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2. 어떤 절망적인 환경에 처한다 하여도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다윗에세 왕이 되는 소망을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다윗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왕에 대한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가 가지는 소망도 마찬 가지입니다. 내 가정이 행복해 지고자 하는 소망, 아들 딸이 이 땅에서 잘 되기를 원하는 소망, 사업이 번창되어 멋지게 하나님의 사업을 해보고 싶은 소망, 건강한 몸으로 신나게 신앙생활 하고 싶은 소망, 그 모든 소망이 우리의 욕심에 의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살기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성경 빌2:13절을 보십시오.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저에게 주신 소망 우리 성도님들에게 주신 소망이 하나님이 주신 소망인 줄 믿습니다. 설령 우리가 우리 자의대로 계획했을 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잠 16:9을 보십시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그러면 우리는 그 소원의 항구로 나아갈 때 폭풍이 일어나면 그 폭풍을 보며 절망할 것이 아니라 그 폭풍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과정을 통하여 능력있는 선원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폭풍에도 넉넉히 이기는 선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다윗이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이 때 어쩌면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를 포기했을 지도 모릅니다. 십여년 동안 쫓겨다닌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지쳐 있겠습니까? 그가 왕이 되는 꿈을 가진 후 되는 것이 무엇이 있었습니까? 잠시 골리앗을 죽이고 여인들로부터 잠깐 인기를 얻은 것 이외에 계속적은 죽음의 위기를 당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가시밭길을 걸었습니다. 그가 통일 왕국의 왕이 되기 까지는 17여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니 포기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위기를 통하여 그에게 치명적인 범죄를 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었습니다. 자존심 상한 정도로 끝마무리 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또 다른 결정적인 위기를 극복해 주도록 했습니다.
30장을 보십시오.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있는 동안 아말렉 사람들이 다윗이 머문 동네에 처들어와 다 불살라버리고 아내와 자식들을 노예로 팔기 위해 잡아 가버렸습니다. 만약 다윗이 그런 망신을 당하고 돌아 오지 않았다면 그들은 영원히 노예로 팔려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 때문에 돌아와 그들을 구원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환란 속에도 하나님의 계획은 있고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는데 폭풍이라는 필수과정이 필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포로가 되어 그렇게도 가고 싶어하는 로마를 가는 것을 봅니다. 바울은 왜 포로가 되어야 합니까? 라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로로 로마로 압송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인 것으로 허락했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살지만 때때로 폭풍이 다가 오기도 하고 폭설이 내리기도 하고 찬바람이 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 일수록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소망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절망적 상황을 만날 때 소망이 있는 사람이 다른 젊은 절망적 상황에서의 그 절망적 상황을 바라보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희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제 (주)쌍방울 대표이사 백갑종 안수집사 이야기를 읽어 보았습니다. 법정 관리 1년 4개월만에 230억원 영업흑자를 일궈냈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는 1999년 9월. 출근 첫날 회사로 오면서 차 안에서 성경을 껴안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 바쁜 중에도 새벽기도를 하며 말씀에서 지혜를 찾아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말하기를 기업의 성공은 경영인의 도덕성이라고 말하며 "기독교인들, 특히 기독경영인들은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며, 기적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창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2001학년도 특차 입학생 중에 감동적인 입학을 한 사람의 기사를 읽어 보았습니다. 올해 연세대 특차에 입학한 경남 마산시에 사는 22살의 양익주 군의 기사였습니다. 그는 97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연세대학병원 재활 병동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마음대로 걸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새 소망을 발견하였습니다. 비록 걸을 수는 없지만 이제까지 몰랐던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양군은 주일예배와 목요찬양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며 신앙을 키워갔습니다.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현실이 가슴 아팠지만 신앙을 통해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세무사가 되겠다는 새 소망을 가졌습니다.그러나 병마는 그를 쉽게 놔주지 않았습니다.98년 2월‘악성 경부 임파종’이란 청천벽력 같은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빚보증을 잘못선 어머니가 어려워진 집안 형편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 버리고 아버지는 자신을 돌보느니라 아무 일도 못했습니다. 가난과 장애를 극복하면서 키워온 꿈과 소망은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을 때 한 움큼씩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처럼 희망도 한움큼씩 빠져 나가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하나님께서 결코 자신을 고통 중에 버려두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완치되면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는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신이 다녔던 교회 교인들과 장애인선교회 형제들은 열심히 그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마침내 사랑하는 우리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99년 12월 병원에서 CT촬영을 해 보니 암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10개월 동안 대학입시를 준비했습니다.학원에 다닐 수 없어 학습지와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했습니다.허리통증 때문에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들어 하루 5∼6시간씩 침대에 누워서 공부했습니다.나머지 시간은 묵상하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힘을 얻었습니다.그는 합격 소감을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저와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을 돕는 목회를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때로는 고난의 강이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3.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일지라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십시오. 다윗은 이런 상황에 이르면 소망을 이루기는커녕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블레셋의 아기스 왕에게 방백들이 반발을 하였습니다. 그 방백들은 구체적으로 옛날 일을 들어 다윗을 비난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4절에 보면 그들은 노골적으로 전장에서 우리의 적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정도 되면 강금하던지 아니면 처형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아기스 왕은 어떻게 합니까? 3,6,7,9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아기스 왕의 인정을 받습니다. 무엇을 인정받습니까? 원수인 왕이지만 그에게 정직성을 인정받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인정받는 것 중에서 정직보다 최선의 길은 없습니다. 클린턴은 이 부분에 오점을 남겼습니다. 부시가 미국의 43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미국의 도덕성을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들 부부는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였고 당선되자 마지 고향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이번 취임식도 예배 형식으로 한다고 합니다.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가 기도를 하고 성경구절이 낭독되고 부시의 고향 텍사스에서 온 감리교회 목사가 축도하는 것으로 취임식이 끝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임명한 차베스(Linda Chavez) 노동장관 지명자가 몇일 안되어 사임을 당당했습니다. 불법 이민자 과테말라 출신의 여성에게을 불법 고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행동이 자선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처음에는 불법 이민자인줄 몰랐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이를 번복하였습니다. 결국 차베스의 신뢰성에 의문이 생겼고 부시는 지명을 철회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 나라에서는 이 부분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너무나 거짓과 사기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눈속임하면 오래 가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밝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온 날부터 한 번도 그에게 악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자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와 같이 선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도가 나도 당신 같으면 내가 믿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 당하면 사람들이 몰려와 도와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살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다음으로는 인간관계가 중요합니다.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을 통하여 사업의 길도 열리고 공부의 길도 열리고 출세의 길도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그 사람 소망을 이루는 것 쉽지 않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으로 부터도 얼마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삼상 20:4)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삼하 23:5)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우리사 성경을 볼 때 소망의 사람 대표적인 사람은 요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꿈을 꿉니다. 그러나 형제들에게 팔리어 노예의 집에 갑니다. 고난의 길의 연속입니다. 보디발에 집에 갔습니다. 그 때 보디발이 요셉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창 39:4)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창 39:6)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그만큼 요셉을 신뢰해 주었습니다. 감옥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무총리가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은 이방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깁니다.
정직하여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면 성공할 수도 있고 출세할 수도 있고 가지고 있는 소망을 이룰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연초에 '34년만의 작은 기적'이라는 기사를 읽어 보신 분 계실 것입니다. 미국에서 주지사 비서로 일하던 한 여성이 34년 만에 주지사 자리에 오른 지금 65세 된 루스 앤 미너 여사의 감동적인 인생 이야기였습니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그의 인생을 아메리칸 드림의 표본이라고 평했고 작은 기적을 실천한 표본이라고 칭찬했습니다. 미국의 여성 주지사 5명 가운데 한 명된 그녀는 1936년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결혼을 하였지만 31세 때 남편이 돌아가시고 홀로 되었습니다. 그녀는 고교 졸업장이 없어 변변한 직장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든 자녀들과 함께 인생을 꾸려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절망하지 않고 시간제 일을 하며 뒤늦게 고등학교와 대학에 들어가 졸업을 하고 세 아들을 키우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녀는 70년 셔먼 트리빗 주하원의원의 비서로 취직하였도 그녀는 그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2년 뒤 트리빗 의원이 델라웨어 주지사에 당선되자 비서였던 미너 여사 는 주지사 비서관으로 승진, 주청사에 출입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하원의원에 당선 된 이후, 하원의원 8년, 상원의원 10년의 화려한 경력을 쌓은 뒤 93년 델라웨어주의 부지사에 선출되었고 마침대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 뭐 예수님에게 인정받으면 되지 사람과의 관계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거의 하나님께도 인정받지 못할 확률이 큽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람 거의 하나님께도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올 한해 소망이 있습니까?
1.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서는 아니 됩니다.
2. 어떤 절망적인 환경에 처한다 하여도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3.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일지라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사는 자의 자세/사무엘상29:1-11/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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