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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고린도후 이동원 목사............... 조회 수 4007 추천 수 0 2009.12.10 15: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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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후1:3-11 
설교자 : 이동원 목사 
참고 : 지구촌 교회 
절망의 순간에는 우리의 신앙을 재점검해서 하나님을 더욱 신뢰 해야한다.
설교요약
1.절망의 순간에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한다.
2.위로의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3.위로의 하나님을 이웃에게 전해야 한다.

개역 고후 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인도 아주 절망적인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주 신앙심이 깊은 훌륭한 그리스도인도 어떤 어려운 사태에 직면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하고 심지어 자기의 생명을 던져 버리고 싶어하는 자리에까지 이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나간 세기의 위대한 성자라고 일컬어지던 존 조웨트라는 사람의 자전적 전기에 보면, 다음과 같은 고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여러분은 나의 삶에 기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내가 늘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고 승리의 삶을 살며 또 영적으로 계속 성숙해 가는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때때로 나는 매사에 지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마음 깊히 더럽혀져 있는 자신을 보고 절망적인  상태가 되어 버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기독교 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가라고 일컬어지던 스펄전이 한번은 설교 중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나는 때때로 너무나 깊은 절망과 두려움 속에 빠지곤 합니다. 나는 제발 여러분만은 나와 같은 이런 극한 상태에 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놀라운 사실은, 본문에서 저 유명한 바울 사도가 거의 동일한 고백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문 8절을 보십시오.“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여기에서 바울이 사용한“환난”이라는 단어는, 가슴에 압박이 가해져서 아주 짖눌려진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는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말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바울은 본문에서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라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바울 사도가 당시 아시아의 유력한 수도였던 에베소에서 전도를 하다가 아데미 여신상을 만들던 은장색(銀匠色)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의 고발을 받게 됩니다. 바울의 복음이 전해지니까 제일 안 되는 것이 우상 장사였던 것입니다. 이 사람의 고발로 바울의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30절 이하에 보면 바울에게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주변 사람들이 권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얼마 전 에베소에 다녀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 연극장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극장 같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에베소의 극장은 이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원형극장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에베소의 원형극장 안에는 맹수들을 가두던 굴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어 보전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에베소의 연극장은 맹수들이 죄수들을 처참하게 죽이는 광경을 군중들이 지켜보며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바울이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전도하다가 마침내 자기의 생명을 버릴 수밖에 없는 극한 위험에 처하게 되었던 때를 연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2절에 보면, 바울은 이런 말을 합니다.“내가 범인(凡人)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이 말씀을 볼 때, 우리는 바울이 전도하다가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한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음을 연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바울이 고백한 대로 사람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 때문에 자기의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극한 상태에 처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바울이 절망 중에 있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여러분, 내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여러분이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나는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이제는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절망은 어떤 의미에서 불신자들의 절망보다도 더 비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절망적 상태에 도달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 대한 회의를 동반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 어찌하여 나에게 이토록 말할 수 없는 극한 고난을 주십니까?”그러나 이상한 사실이 있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절망적 상태에 빠지긴 하지만 삶을 포기해 버리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책을 통해서,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결국 절망을 넘어서서 희망을 붙잡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절망을 극복한 위대한 승자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 극한 절망을 넘어서서 희망을 갖게 했을까요? 우리의 삶이 절망의 계곡을 지날 때 우리로 하여금 이 절망을 넘어서게 하는 희망의 비밀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본문은 이 위대한 비밀을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1.위로의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

내 삶이 절망의 골짜기를 헤맬 때,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본문이 시작되는 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이것이 바울이 그의 극한 고난의 상태에서 발견했던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짤막한 본문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 중에 하나는 환난, 고난, 고생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들을 압도하는 더 중요한 단어가 본문에 등장합니다. 바로 “위로”라는 단어입니다. 본문에서 이 위로라는 단어가 얼마나 자주 사용되고 있는지 주목해 보십시오. 4절 이하의 말씀입니다.“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위로하사”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위로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받는 것도 너희의“위로와”구원을 위함이요 혹“위로받는”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4-7절).

바울 사도는 극한 고난 중에서도 위로의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고난의 역설입니다. 바울은 그 고난 때문에 절망하긴 했지만,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위로하시는 하나님으로 그의 삶에 다가가셨던 것입니다. 마침내 바울은 이 고난의 폭풍우 한복판에서 벌떡 일어나서 이렇게 외칩니다.“나를 능히 위로하시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살 소망이 다 끊어진 상태에까지 이르는 고난을 받았는데도, 그가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고난운데에서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증언하고 있는 바울의 이 놀라운 모습을 보십시오.

대영제국의 미술 박물관에 소장된 그림 가운데에 G.F. 왓트라는 사람이 그린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한 소녀가 바이올린과 비슷한 악기를 들고 지구 위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녀가 들고 있는 악기는 줄이 다 끊어지고 꼭 한 줄만 남아 있었습니다. 하늘은 캄캄합니다. 그리고 그 어두운 하늘에 오직 하나의 별이 빛나고 있습니다. 왓트는 이 그림의 밑에다 이렇게 제목을 썼습니다.“희망”꼭 하나밖에 없는 바이올린의 현, 캄캄하기만 한 하늘, 그러나 소녀는 그어둠 속에서도 하늘에 떠 있는 단 하나의 별 때문에 남은 줄 하나로도 희망을 노래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별은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일 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한 성도는 바울 사도와 비슷한 심한 고난을 체험하면서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주님, 나를 둘러싼 모든 형편은 정말 사면초가(四面楚歌)입니다. 그러나 아직 나에게 열려 있는 하늘이 있는 것을 감사합니다”나아갈 길이 없습니다. 사면이 막혔습니다. 그러나 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이 성도는 일어나 이렇게 감사를 합니다.“아직도 열려 있는 하늘, 아직도 부를 수 있는 하나님, 아직도 신뢰할 수있는 하나님, 내가 쳐다볼 수 있는 별이신 하나님, 이 하나님이 계심을 인하여 나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난은,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왜 고난의 상황을 나에게 면제시켜 주시지 않는지 묻지 마십시오.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살 소망조차 끊어지는 이 고난의 막다른 골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우리를 위로하심으로 우리로 이 고난에서 다시 일어나 그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점입니다. 이 하나님을 발견하십시오.

2.위로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본문 9절에서 우리는 고난에 대한 바울 사도 자신의 해석을 읽게 됩니다.“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사람이 생명이 위태롭게 되지 않을 때는 자기의 지혜와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는 아직도 자기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 가능성이 아예 없어질 때, 그때 인간은 어쩌면 가장 진솔하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살 소망이 끊어지는 절망이 인간에게 때때로 필요한가 봅니다. 그런 지경에 처해 봐야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10절). 자신이 너무나 무력하고 연약한 자라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힘이 되시고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구약의 호세아서를 읽어 보면 호세아의 아내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남편을 배반하고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처럼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사건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남자에게 완전한 절망을 안겨 주는 사건입니다. 모든 것은 회색이었습니다. 그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삶에서 희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막다른 절망의 자리에 서게 된 호세아, 그에게 하나님께서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내가 네 연인이 되어 주마”이 말씀을 듣고 호세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그 가정의 말할 수 없는 불행과 역경을 딛고 일어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거듭 나 여호와를 배신하고 돌아선 이 민족을 내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한 것처럼, 너도 네 아내를 향해서 그런 자리에 서기를 원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네가 이 민족에 대한 나의 사랑을 그들에게 전해 주는 자가 되었으면 좋겠다”호세아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사랑에 대한 배신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 주는지 그리고 그런 불성실한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메시지 속에서 그분의 큰 사랑에 위로를 얻고 그 고난의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게 됩니다.

본문에 나타난 것같이 바울이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 것은, 그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체험을 소유하고 있는 자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체험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한번 체험해  본 사람은 나중에 시험이 닥칠 경우에도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바울은 과거에 자기가 사망의 골짜기에 던져졌을 때 거기에서 자기를 건지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런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당신과 함께하신 하나님, 그분이 지금 당신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참으로 하나님이 어제도 오늘도 동일하신 분이라면 그리고 그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라면, 그분이 절망과 좌절 속에 있는 당신을 버리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과거에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 그분은 지금도 나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훗날에도 함께하실 것입니다. 역경과 고난이야말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기회인 것을 깨달으십시오.

3.위로의 하나님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이 발견한 “고난의 적극적인 목적”을 고백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하나님께서 환난 중에 있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해주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로 고난을 겪게 하시고 또 그 고난 중에서 위로를 체험하게 하시는 이유, 그것은 내 주변에 나의 경우와 비슷한 유형의 고난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본문 6절을 보십시오.“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환난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환난을 경험해 본 사람, 역경을 겪은 사람, 그런 사람만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 유명한 시인 괴테가“나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않겠다”라고 한 것처럼, 고난의 의미를 체험한 사람들만이 같은 고난 속에 처하고 있는 이웃들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저는 불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무렵 저는 인생의 극한적인 어둠과 절망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몸도 약했고, 집안도 파산했고, 전혀 내일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불교를 비방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당시 제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렸을 때 부처님의 평화스러운 그 얼굴이 제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평화스러우니까 내 고난과는 상관이 없는 분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반면에 이따금 보게 되는 십자가상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제 마음을 끌었습니다. 교회에 나가본 적도 없는 저였지만, 십자가상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예수님은 어쩐지 저의 아픔을 이해해 주실 것만 같았던 것입니다.

강아지를 파는 어떤 상점에 톰이라는 소년이 들어왔습니다. 물론 강아지를 사기 위해서입니다. 주인은 색깔이 예쁘고 털도 고운 귀여운 강아지들을 여러 마리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톰이라는 소년은 주인이 골라 주는 강아지들에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한쪽 다리를 다친 강아지를 가리켰습니다. 주인은 깜짝 놀라면서 “그 강아지는 너와 친구가 될 수 없어. 다리를 절기 때문에 너와 같이 뛰어다니면서 놀 수도 없는데... ”라고 말합니다. 이때 그 소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그렇지만 이 강아지는 자기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할지 몰라요.』전혀 소년답지 않은 이 말에 주인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그 강아지를 소년에게 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돈을 지불한 후 절름발이 강아지를 안고 떠나는 소년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 전에 들은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톰이라는 이 소년은 다리를 절룩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이 강아지는 자기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할지 몰라요”소년은 자신이 그 눈물과 그 아픔을 경험했기 때문에, 비로소 이웃의 고통 앞에 무관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최악의 고난을 경험하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위로 하시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위로자와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당신은 내 삶의 고난과 눈물을 이해하시며 나에게 다가오시는, 나의 위로자와 구원자가 되기를 기뻐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십니까?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는 주간을 수난 주간이라고 합니다. 이 수난의 계절이 지나면, 우리 앞에 부활의 찬란한 아침이 열릴 것입니다. 수난의 어둠은 곧 지나갈 것입니다. 내가 지금 처해 있는 고통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하나님의 위대한 위로를 체험하고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다면, 나는 이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희망의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절망과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는 이웃들을 진실로 위로하며 주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당신에게 절망과 고통을 허용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입술에서 절망을 이기는 찬송이 흘러나올 수 있도록 그리고 그리스도가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신다는 구원의 복음이 증거될 수 있도록 당신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보십니까?“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심게 하소서.”저는 당신만이 겪어야 하는 그 고난과 그 슬픔의 이유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의 메시지를 통해서 분명히 증언할 수 있는 사실은, 당신이 참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다면 위로의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내 친구, 내 이웃,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차갑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때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의 위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이 고난을 받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당신의 구원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호 2:15). 하나님이 호세아에게 말씀하신 이 희망의 메시지를 붙들고 일어난다면, 당신은 이제 주님의 위로를 전하는 사람으로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주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오, 하나님. 오늘 내게 다가오는 이 어둠과 이 고난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주를 바라보고 승리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심게 하소서”이 기도가 당신과 저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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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8 마태복음 기다리는자의 삶 마25:14∼30  임영수 목사  2009-12-10 2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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