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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편지 932 그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www.nsletter.net 정충영 교수
1938년 12월 영국 런던에 사는 주식중개인 니콜라스 윈턴(Winton:29세)은 체코슬로바키아 동부의 한 유대인 난민캠프에서 일하는 친구 마틴 블레이크(Blake)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행을 취소하고, 여기 일 좀 도와주게."
이 난민 캠프는 당시 나치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 서부 수데텐란트(Sudetenland) 지역을 병합해 유대인 탄압 정책을 펼치자 이곳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 동부로 몰려들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윈턴은 난민캠프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부모와 헤어져 난민 캠프에서 혼자 지내는 아이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 전역이 독일나치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윈턴은 유대인 어린이들을 구하기로 결심하고 런던으로 돌아와 이러한 어린이들을 입양할 가족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야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정부의 허가가 허가 났습니다. 1939년 3월부터 8월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669명의 어린이들이 영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해 9월에는 250명의 유태인 어린이들을 태운 아홉 번째의 기차가 프라하를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이틀 전에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중단되었습니다. 영국으로 들어오지 못한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전쟁 중에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70년이 흐른 지난 9월 4일(2009년) 런던의 리버풀 스트리트 역으로 1930년대 모델을 그대로 본뜬 증기기관차 한 대가 들어왔습니다. 그 열차에서 22명의 노인들이 내려와 그들을 맞는 휠체어의 한 노인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밴드의 축하곡도 크게 울렸습니다. 이 노인들은 윈턴에 의해 목숨을 건졌던 유대인 어린이들이었습니다. 휠체어에 앉은 윈턴은 올해 100세가 되었습니다.
윈턴의 업적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유대인 아이들의 '기차 여행'을 그대로 재연한 행사이었습니다. 이 열차는 체코 프라하를 출발해 3일 만에 런던에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프라하 역에서는 윈턴의 동상을 제막하였습니다.
윈턴의 '선행'이 알려진 것은 1988년 그의 아내 그레타(Greta)가 집 다락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상한 서류가방 때문이었습니다. 그 가방에는 윈턴이 구한 유대인 아이들의 명단과 그 아이들이 쓴 편지들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이 일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아내의 설득으로 그해 BBC 방송 '그게 인생이야(That's Life)'에서 윈턴은 그가 구한 당시의 '아이들'과 함께 출연해 당시 일을 처음으로 고백했습니다. 윈턴은 "나에게는 과분한 찬사이다. 난 쉰들러가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원턴은 자신이 행한 일이 별 것 아니라며 겸손했지만 그가 행한 일은 수백 명의 목숨을 살린 일이었습니다. 그는 아마 입양하는 사람들을 찾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했기 때문에 그것이 가져다 준 엄청난 결과에 대해 겸손해 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는 별 것 아니라 생각한 것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위대한 결과도 별 것 아니라 생각하는 것에서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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