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을 가리켜 요한계시록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사도 요한에 의해서 종말의 필연적 계시가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어진 본문은 요한계시록이 주어진 경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Ⅰ. 계시 기록자의 신분은 사도 요한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9절에 「나 요한」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요한계시록 1장 1절과 2절과 4절에도 나타난 사람입니다.
1. 그는 「너희 형제」라고 하였습니다(계 1:9).
사도 요한은 자기를 사도라 부르지 않고 「너희 형제」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① 겸비의 뜻과 ② 하나님 나라의 한 권속 됨과 ③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영통 가족의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2. 주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9절이 또 말하기를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환난」이란 십자가로 말미암는 이 세상의 박해와 학대와 미움을 뜻합니다(마 5:11, 요 16:33). 「나라」는 이 세상 중에 이룩되어가는 하나님의 교회 운동을 뜻합니다. 세상에서 주의 백성들이 주와 함께 왕 노릇함을 의미합니다(딤후 2:12). 「참음」은 「환난」과 「나라」 때문에 겪는 죽음의 아픔들 가운데 견디어 내는 인내를 뜻합니다. 마태복음 24장 13절에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자기의 신분과 사명을 밝힘으로써 계시록의 독자들과 공동 운명에 놓여 있는 자로서의 친근함을 나타나고 있습니다.
3. 주의 증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9절 중에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라고 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의 복음을 말합니다. 「예수의 증거」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에 대한 사건을 말합니다. 그는 이 사실을 그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주목하고, 손으로 만져본 확실한 현장인이었습니다(요일 1:1).
Ⅱ. 계시 기록의 장소는 ‘밧모섬’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9절에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라고 했습니다. 그가 반드시 속히 될 계시를 받은 장소는 「밧모섬」이라고 했습니다. 이 밧모섬은 에베소에서 남서쪽으로 약 70마일 떨어진 곳으로 약 14시간을 항해하면 닿을 수 있는 곳입니다. 넓이는 5마일, 길이는 10마일쯤 되는 작은 적암 고도로 당시는 무인도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로마의 도미시안 황제의 박해를 받아 정배를 간 장소였습니다. 그때 중죄를 범한 로마제국 산하의 여러 중죄수들도 함께 그곳에 수용되었는데, 그들에게는 채석하는 노동을 시켰다고 합니다. 지금 이 섬은 아주 아름다운 섬으로 변모되었고,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관광객을 유치하는 섬이 되었습니다. 본래는 터키령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과 함께 패전국이 된 터키는 수많은 섬들을 모두 그리스령으로 내어주어야만 했습니다. 해서 현재는 그리스령에 속해 있습니다. 그때 사도 요한은 채석장에서 돌을 깨는 노동을 하면서 시간이 주어졌을 때 동굴(?)같은 곳에서 기도하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하늘의 주님을 만나고 계시를 받았습니다. 비록 무인고도의 정배지였지만, 주님은 그 고난의 장소를 하늘의 문을 열고 하늘의 계시를 받는 영광의 지성소로 삼았습니다. 나중(주후 96년경)에 다시 석방되어서 에베소로 돌아와 장수하는 목회를 하였다고 이레네오, 유세비우스, 예롬 등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 번연은 옥고 12년의 고난의 장소에서 저 불후의 명저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일지라도 주의 계시와 은총이 임하는 곳이면 천국이 됩니다.
Ⅲ. 계시 기록 당시의 상황입니다.
1. 계시를 받은 때는 「주의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주의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날은 초기 교회가 ‘주님 부활하신 날’로 기념하고, 예배하고, 감사하던 날입니다. 승리의 날, 개선의 날, 생명의 날, 영광의 날, 약속 성취의 날이었습니다.
2. 계시를 받은 형편은 「성령에 감동」함 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주의 날에 내가 성령 안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사색 중에 있었음이 아니고, 성령이 사도 요한의 전부를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모든 영감의 기록은 이런 형편에서 씌어졌습니다.
3. 계시를 주는 방법은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라고 했습니다. 꼭 ‘나팔’이란 말이 아니고, 「나팔 소리 같은」이라고 했습니다. 그 소리는 사도 요한을 깨우는 일종의 영음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기 직전에 그에게 새로운 주의를 환기 시키고 관심을 집중시키는 음성이었습니다.
Ⅳ. 계시 성문화의 명령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1절에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라고 하였습니다.
1. ‘너 보는 것을 책에 쓰라’는 명령입니다.
왜 기록을 명령했을까? ① 성경 계시는 사유물이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성도가 소유할 공유물이기 때문입니다. ② 다량의 계시 내용을 수용하기 위함입니다. ③ 정확하고 완전한 보존과 전달을 위함입니다. ④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2. 무엇을 보았는가?
계시록 전체의 내용입니다.
3. 책을 써서 보낼 곳이 어디인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일곱 교회는 주 재림 시까지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세계 교회를 의미합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요한은 예수의 환난과 나라 때문에 밧모섬으로 정배를 갔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곳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될 종말 계시를 기록하게 하기 위한 계시 은총의 장소였습니다. 온 피조세계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하여 사용하시는 복음 선교의 무대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기록이라고 하는 책을 수단으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계시가 ‘성문화’의 방법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실로 이것을 「읽는 자」, 「듣는 자」,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에게 복이 있습니다(계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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