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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증인의 순교적 최후

요한계시 석원태 목사............... 조회 수 2058 추천 수 0 2009.12.21 21:28:20
.........
성경본문 : 계11:7~8 
설교자 : 석원태 목사 
참고 : 경향교회 http://www.ghpc.or.kr/ 
2007' 경향의 강단 요한계시록강해(75)

"두 증인의 증거 사역(1)(계 11:7~8)"
-두 증인의 순교적 최후-
요한계시록 11장 7~8절
석원태 목사

지금까지 우리는 척량운동, 두 증인, 그리고 두 증인이 받은 권세를 생각하였다.
  두 증인은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안전 보장을 받고 있음을 생각하였다.
  다음으로 두 증인이 누구냐를 생각하였다. 그것은 신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증거 단체인 교회이며, 또한 진리의 증인들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두 증인은 회개하는 권세, 성령의 권세, 말씀의 권세, 기도하는 권세를 행사하여 세상을 요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였다.
  이제 우리는 요한계시록 11장 7~13절【?두 증인의 증거 사역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증거 사역의 정도는 죽기까지였음을 보게 된다.
 마침내 저들의 최후 승리를 보게 된다.

  1. 두 증인의 최후는 승리이다(계 11:7~10).

  1) 언제 죽임을 당했나?

  요한계시록 11장 7절에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이라고 하였다.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라고 하였다. 복음시대의 교회운동은 능력적인 증거 사역을 완성하게 된다. 결코 사명받은 교회나 증인이 자기 사명을 미완성으로 두고 죽는 법이 없다. 얼핏 우리가 보기에는 일을 다 못하고 순교를 하거나, 세상을 떠난 것처럼 보이는 일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의 일이 끝났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계 14:13)라고 한 것이다.
  두 증인들은 성실히, 또 기쁨으로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끝마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역을 완성하심과 같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하지 않았던가?

  2)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나?

  요한계시록 11장 7절은 또 말하기를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죽일 터인즉…」이라고 하였다.
  짐승의 출처를 무저갱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9장 1~2절에서 짐승, 또는 사단의 임시 거처로 사단 운동의 센터(Center)이다.
 여기에서 황충 떼들이 올라온 일이 있다.
  짐승은 누구인가?
  여기 짐승은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의미한다. 요한계시록 12장과 13장에서 그 짐승의 정체는 뚜렷하다. 큰 붉은 용이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요,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나온다.
  적그리스도를 짐승에 비유한 것은 저들의 잔인성, 포악성, 영적 암매성, 무지성, 멸망성 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들 짐승의 정체는 역사상에 반복이 되었다. 예컨대 애굽, 바벨론, 앗수르, 헬라, 요한 당시 로마 제국이다. 본문에서 다시 이 짐승을 언급한 것은 역사의 최종 말기에 일어날 그의 최후 발악을 말함이다. 역사의 최종 마당에 나타날 짐승의 정체를 교회는 유의해야 한다.
  또한 두 증인이 증거를 마칠 때 무저갱에서 올라왔다는 말도 두 증인이 증거 사역을 할 때 짐승 활동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두 증인은 짐승들의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증거 사역을 하고 있다. 다만 본문에 짐승이 무저갱에서 올라 왔다는 말은 짐승의 출처와 소속을 한 번 더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하였다.

  3) 어디에서 죽임을 당했나?

  요한계시록 11장 8절에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니라」고 하였다.
  ‘소돔’은 불경건과 부도덕과 교만으로 하나님을 도전한 곳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은 곳이다.
  ‘애굽’은 우상 숭배와 반역과 교만으로 하나님의 백성(교회)을 학대하고, 죽이던 곳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큰 진노를 받았다.
  그런데 다시 말하기를 이 ‘소돔’과 ‘고모라’는 우리 주님께서 못박히시던 곳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큰 성길, 곧 소돔과 애굽은 어떤 특정지역을 가리킴이 아니라 사악한 이 세상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래서 ‘큰 성’을 요한계시록 16장과 17장과 18장에는 바벨론이라고 표현하였다. 큰 성 바벨론(계 16:19), 큰 바벨론(계 17:5), 큰 성(계 17:18), 큰 성 바벨론(계 18:2),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계 18:10)이라고 하였다. 이 성은 큰 음녀와 각종 더러운 영의 센터였다. 이 성은 적기독의 중심지였다.
  바로 이 큰 성 바벨론, 곧 애굽과 소돔은 짐승 활동의 본거지였다. 도덕적으로(소돔), 종교적으로(애굽) 타락하고, 배신하는 이 세상은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 주님을 따라가는 하나님의 자녀(교회)들을 미워하고, 핍박하고, 죽이는 것이다.
  여기 「큰 성길」(마 7:13~14)은 넓은 길이다.

4) 왜 죽임을 당했나?

  (1)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1장 10절에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사람들을 괴롭게 한고로…」라고 하였다.
  여기 두 선지자가 바로 두 증인 곧 참된 교회요, 사역자(증인)들이다.
  ‘땅에 거하는 자’란 요한계시록 11장 9절에 나오는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 사람들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큰 성길, 곧 소돔과 애굽에서 죄악의 생리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두 선지자들이 땅에 거하는 사람들을 괴롭혔다고 하였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구원의 소식이다. 사랑의 소식이다.
  빛을 주고, 사랑을 주고, 소망을 주고, 축복을 주는 것이 복음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교회의 ?전파가 저들에게 괴로움이 되었을까?
  여기 ‘괴롭게 하였다’는 말은 ‘고문하였다’는 뜻이다. 그것은 복음을 통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의 양심을 재판하였다는 뜻이다.
  참으로 중대한 말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복음 운동이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왜 괴로움이 되었는가? 참된 복음은 불신자에게는 괴로움이 된다.
  왜냐?
  ① 복음은 생명의 빛의 운동이기 때문이다(요 8:12, 9:5).
  어둠은 빛을 싫어한다. 이유는 빛 때문에 자기의 정체가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요 3:19~20). 이런 경우 어둠은 빛 때문에 오히려 괴롭다.
  ② 복음 운동은 죄를 없이 해 주는 사죄 운동이기 때문이다(막 10:45, 2:17).
  그래서 복음은 불신앙의 세상을 악하다고 정죄한다(요 7:7). 이런 경우 죄악의 세상은 복음의 심판 앞에 괴로움을 느낀다.
  ③ 복음 운동은 이 세상에서 택자를 불러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 살면서도 이 세상에 소속되어 이 세상 방법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요 17:14). 이런 경우 세상은 복음을 미워하고 싫어한다. 이유는 세상 중의 자기들과 함께 살던 자들 중에서 빼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다(요 16:33).
  ④ 복음 운동은 심판 운동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고,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고전 1:18). 이런 경우 십자가를 미련하게 보는 멸망의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보는 사람들의 존재는 괴롭다.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을 증거하는 것이 복음이다(요 3:1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고 증거하기 때문이다(요 3:36).
  ⑤ 복음 운동은 천국 부활 운동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복음을 듣는 자는 살아난다. 아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들이다(요 5:24~29).
  초대 교회 사도들의 부활 전도는 예루살렘 교회주의자들을 많이 괴롭혔다(행 4:2). 금세 제일주의, 현실주의자들에게는 내세 부활주의 운동이 덫이 되고, 괴로운 존재처럼 보였던 경우이다.
  ⑥ 복음 운동은 회개 운동이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다’고 외쳤다(마 3:2, 마 4:17). 그러나 회개하기 싫은 이 땅에 거하는 세상 제일주의자들에게는 이 복음 운동이 괴롭게 여겨진 것이다.
  ⑦ 복음 운동은 세상의 심판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의 주제 중의 하나이다. 그 종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세상에 재림하실 것이라고 증거한다. 그때 땅에 거하는 자, 곧 소돔과 애굽 제일주의자들에겐 영영한 심판이 있다고 증거하기 때문이다(계 1:7).
  이런 경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겐 괴로움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볼 때 두 선지자들의 증거 사역이 얼마나 참되고, 거룩했는가를 알 수 있다. 저들은 거짓 선지자들처럼 사람들에게 아첨하지 않았다(렘 6:14, 8:11).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들의 죄를 지적해 주지 않았고, 오히려 평안하다고만 해주었다(렘 6:14, 8:11, 겔 2:7, 딤후 4:2).
  그러나 참된 선지자(두 증인)들은 그러하지 않았다. 이 세상의 불신앙과 불법을 책망하고, 고발하고, 정죄하며, 회개를 촉구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임박한 진노의 심판을 증거한 것이다.
  참된 선지자 모세의 증거는 애굽 왕 바로를 괴롭게 하였다. 다윗의 충성심은 사울 왕을 괴롭게 하였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바른 신앙 증거는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을 괴롭게 하였다. 진리의 종 미가야는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와 그 무리들을 괴롭게 하였다. 세례 요한의 참된 증거는 헤롯 왕을 괴롭게 하였다. 예수님의 바른 증거는 바리새인들(교권주의자)과 빌라도(권력)를 괴롭게 하였다.
  예수님의 부활은 다시 저들을 괴롭게 하였다. 베드로의 설교, 스데반의 설교, 바울의 설교는 얼마나 많은 이 세상주의자들을 괴롭게 하였던가?
  그러나 반면에 구원을 받을 하늘의 백성들에게는 이 증인들의 증거가 복음이요, 소망이요, 빛이요, 꿀이요, 송이 꿀이 아니었던가? 세상을 그처럼 괴롭히던 복음 운동이 신자들에게는 그처럼 기쁘고 즐거운 것이었다.

  (2) 어느 정도로 괴롭게 했던가?

  우리는 두 선지자(두 증인)들이 땅에 거하는 자들을 어느 정도로 괴롭게 했는가를 능히 추측할 수 있다. 그 근거는 땅에 거하는 자들이 짐승에게 죽임을 당한 이 두 선지자들의 최후 앞에 취한 저들의 태도를 봐서 알 수 있다.
  ① 저들은 시체를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요한계시록 11장 9절에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라고 하였다. 저들의 시체가 큰 성길에 방치되어 구경거리가 되었다. 시체를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함을 볼 때 저들의 잔인성과 포악성이 드러난다.
  이런 경우 선교 활동이 잠정적으로 중단될 수밖에 없다. 지금 공산치하 특히 중국이나 북한의 경우, 그리고 극단적인 무슬림이 그러하다.
 순교자의 시체가 큰 성길에서 피투성이로 뒹굴고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 큰 성 곧 바벨론이 심판받는 최후의 날에 이 성길에서 흘린 순교자의 피는 불타지 않고 주 앞에서 빛나고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계 18:24)?
  ② 두 선지자들의 죽음을 즐거워하였다고 한다.
  요한계시록 11장 10절에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고 하였다.
  참으로 무섭고 두려운 세상이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진리의 종들을 죽여 놓고, 그 피 묻은 시체를 보고 즐거워하고 있지 않은가?
  ③ 서로 예물까지 보냈다.
  요한계시록 11장 10절이 또 말하기를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고 하였다.
  예물은 사랑의 표시나, 감사의 답례나, 아니면 서로의 기쁨을 나누는 인격의 표시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저들은 의인들을 죽여 놓고 그 시체 앞에서 오히려 쾌감의 축배를 나누고, 기념 선물을 교환하였다. 참으로무서운 살인마의 파티가 아닌가?
  이런 것을 볼 때 두 선지자(증인)들은 죽기까지 복음을 전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이 땅에 거하는 자들을 죽기까지 괴롭혔다는 말이 된다.

  5) 언제까지 죽임을 당하는가?

  요한계시록 11장 9절에 「…사흘 반 동안」이라고 하였다. 극히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핍박의 정도는 순교자의 시체를 성길에 뒹굴게 할 정도이다. 이 기간은 최후 종말의 환난기를 말함이다. 신약 교회 시대의 최종말기, 곧 환난기 중 후반기에 속한다.
  그렇다면 예수 초림부터 그를 미워하고, 핍박하고, 죽이던 박해는 그의 교회 시대 말기에 가서는 최절정에 달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예수 재림 직전까지 곧, 지상 교회가 끝날 때까지 순교자의 시대가 계속될 것을 의미한다.
  바로 그것이 1,260일 동안의 예언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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