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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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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아기·노승·사자 … ‘바위기둥’ 기묘한 손짓
마치 디자이너의 손길이라도 미친 듯, 기기묘묘한 바위가 일정한 간격으로 보란 듯이 둥지를 틀고 있는 전남 장흥의 천관산(天冠山). 귀한 보석이 둘러싸여 박힌 천자(天子)의 면류관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고 한다. 해발 723. 볼거리, 얘깃거리가 풍성한 천관산은 지리산·내장산·월출산·능가산(내소사 뒷산)과 함께 호남 5대 명산으로 꼽힌다. 1998년 전남도립공원으로 지정돼 내려오지만, 이웃한 월출산 국립공원 못지않은 유명세를 당당히 누리고 있다.
천관산은 ‘가을 억새’로 강한 인상을 심어 놓고 있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억새지만, 이곳 정상에 펼쳐진 132만㎡(40만평)에 이르는 ‘억새 바다’의 출렁거림은 장관을 이룬다. 그래서 가을의 천관산은 온통 은빛이다.
바위산이긴 해도 오르막과 평탄한 숲길, 바위길이 섞여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천관산의 매력이다. 여성이나 가족단위 등반객이 즐겨 찾는 산이다.
능선을 오르면서 속속 시야에 들어오는 80여개 거대한 ‘바위 기둥’은 놀랍다. 아기바위, 사자바위, 돛대봉, 종을 닮은 종봉, 나이 든 스님의 모습을 한 노승봉, 하늘 기둥인 천주봉, 책을 쌓은 모습의 대장봉 등 저마다 독특한 이름을 가졌다. 산 타기의 힘듦과 지루함을 말끔히 덜어내는 볼거리로 그만이다.
동서남북 10여곳으로 나뉘어진 등산로 가운데 하나를 골라 1시간~1시간30분쯤 오르면 정상인 연대봉으로 통하는 능선을 만난다. 가장 인기 있는 등반길은 환희대(720)를 통과하는 코스다. 여기서부터 꼭대기인 연대봉까지 1㎞ 남짓, 무려 132만㎡의 억새밭이 펼쳐진다. 봄엔 성큼성큼 커가는 생동감으로, 여름엔 아름다운 초원으로, 9월 중순부터는 녹황색의 꽃으로, 10월엔 은빛 물결을 일구며 등반객의 맘을 사로잡는다. ‘가을 억새’를 보러온 등산인들은 누구나 키를 넘는 억새숲을 지나며 노래 한 곡을 목청껏 뽑아낸다.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으악새’는 날아다니는 새가 아니라 바로 억새를 이르는 말. 10월 한 달 동안 이 노래는 ‘천관산 찬가’가 돼 계곡과 능선에 울려퍼진다.
능선 바로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올망졸망한 섬이 쪽빛 바다 위에 떠 있는 다도해가 펼쳐진다. 북으로는 월출산·제암산·무등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날씨가 맑으면 제주도 한라산까지 훤히 볼 수 있는 기회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봄날 천관산은 ‘붉은 산’으로 물든다. 지천에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퍼지면서 ‘불타는 산’으로 변하고, 군데군데 군락을 이룬 동백 숲도 유난히 진한 꽃을 피워낸다.
천관산은 역사와 문향이 흐르는 산이기도 하다. 당나라 승려들까지 와서 공부했다는 천관사, 고려 인종의 비로 의종·명종·신종의 어머니인 공예태후 임씨를 모시고 있는 정안사가 있다. 임씨는 천관산 입구인 당동마을 출신이다.
또 이 산에는 고찰 87개가 있어 금강산 다음으로 많은 대사(28명)를 내면서 불력이 깊은 산으로도 통한다. 신라 김유신의 연인 천관보살과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북쪽 주 등산로 들머리에는 조선 태종 때 심었다는 20 높이의 고목 태고송이 여전히 그 자태를 뽐내고 있고, 그 곁에 호남의 대표적인 실학자 위백규 선생이 세운 강학소 장천재(長川齋)가 있다. 인근에 그의 후손 장흥 위씨 집성촌인 방촌문화마을, 고인돌 300개로 이뤄진 선사유적지도 있다. 한국 문학을 이끌고 있는 이곳 출신 소설가 이청준·한승원·송기숙씨 등도 천관산 주변에서 글감을 구했다.
〈 장흥 | 배명재기자 ninaplus@kyunghyang.com 〉
천관산 산행은 왕복 4~5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러나 등반로 주변의 볼거리와 억새 풍광 구경에 시간을 낸다면 6시간은 잡아야 넉넉하다. 장천재~금강굴~구정봉~억새 능선~연대봉~정원석~장천재 등반로가 가장 널리 알려진 코스다. 이곳은 천관사~구정봉~환희대~연대봉 등반로와 함께 봄철 ‘진달래 능선’으로 불린다. 활짝 핀 진달래꽃이 장관을 이룬다.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가는 길로 다도해가 보이는 남쪽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다. 구정봉까지 와서 탑산사로 내려오는 코스다. 조금 험한 내리막길이지만 15분 정도만 고생하면 그만한 대가는 충분히 얻을 수 있다. 1200년 전 세워진 탑산사는 법당과 요사도 볼 만하지만 입구에서 절까지 쌓아올린 돌탑으로도 유명하다. 400개가 넘는 돌탑이 아슬아슬하지만 굳건히 서 있다. 바로 아래 천관산 문학공원이 있다. 이청준·한승원·차범석·전상국씨 등 내로라하는 문인 54명의 육필 원고가 자연석에 새겨져 있다.
산행을 마치면 싸고 푸짐한 남도음식을 맛볼 수 있다. 향긋한 매생이 요리와 통통한 자연산 굴이 겨울 제철음식이다. 키조개·낙지 등 철마다 갯벌과 청정바다에서 건져올린 해산물이 별미다.
‘정남진 마을’인 관산읍 신동리 바닷가도 들러볼 만하다. 지금 그곳에서는 바닷가 들녘을 가득 메운 보리밭과 쪽파, 도로변 종려나무 가로수,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한 매화가 봄 소식을 전하고 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와 목포에서 국도 2호선을 타고 강진을 거쳐 장흥 쪽으로 들어오면서 바로 나타나는 순지 IC에서 우회전한다. 거기서 이어지는 국도 23호선을 타고 내려가다 관산읍으로 들어가지 말고, 5㎞ 아래쪽 방촌마을까지 가서 다시 우회전하면 장천재가 보인다. 광주에서는 장흥·회진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천관산 입구에서 내리면 되고, 부산·순천 방면에서도 장흥으로 국도 2호선을 타고 가다 순지 IC를 통과해 내려가면 된다.
〈 배명재기자 〉
마치 디자이너의 손길이라도 미친 듯, 기기묘묘한 바위가 일정한 간격으로 보란 듯이 둥지를 틀고 있는 전남 장흥의 천관산(天冠山). 귀한 보석이 둘러싸여 박힌 천자(天子)의 면류관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고 한다. 해발 723. 볼거리, 얘깃거리가 풍성한 천관산은 지리산·내장산·월출산·능가산(내소사 뒷산)과 함께 호남 5대 명산으로 꼽힌다. 1998년 전남도립공원으로 지정돼 내려오지만, 이웃한 월출산 국립공원 못지않은 유명세를 당당히 누리고 있다.
천관산은 ‘가을 억새’로 강한 인상을 심어 놓고 있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억새지만, 이곳 정상에 펼쳐진 132만㎡(40만평)에 이르는 ‘억새 바다’의 출렁거림은 장관을 이룬다. 그래서 가을의 천관산은 온통 은빛이다.
바위산이긴 해도 오르막과 평탄한 숲길, 바위길이 섞여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천관산의 매력이다. 여성이나 가족단위 등반객이 즐겨 찾는 산이다.
능선을 오르면서 속속 시야에 들어오는 80여개 거대한 ‘바위 기둥’은 놀랍다. 아기바위, 사자바위, 돛대봉, 종을 닮은 종봉, 나이 든 스님의 모습을 한 노승봉, 하늘 기둥인 천주봉, 책을 쌓은 모습의 대장봉 등 저마다 독특한 이름을 가졌다. 산 타기의 힘듦과 지루함을 말끔히 덜어내는 볼거리로 그만이다.
동서남북 10여곳으로 나뉘어진 등산로 가운데 하나를 골라 1시간~1시간30분쯤 오르면 정상인 연대봉으로 통하는 능선을 만난다. 가장 인기 있는 등반길은 환희대(720)를 통과하는 코스다. 여기서부터 꼭대기인 연대봉까지 1㎞ 남짓, 무려 132만㎡의 억새밭이 펼쳐진다. 봄엔 성큼성큼 커가는 생동감으로, 여름엔 아름다운 초원으로, 9월 중순부터는 녹황색의 꽃으로, 10월엔 은빛 물결을 일구며 등반객의 맘을 사로잡는다. ‘가을 억새’를 보러온 등산인들은 누구나 키를 넘는 억새숲을 지나며 노래 한 곡을 목청껏 뽑아낸다.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능선 바로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올망졸망한 섬이 쪽빛 바다 위에 떠 있는 다도해가 펼쳐진다. 북으로는 월출산·제암산·무등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날씨가 맑으면 제주도 한라산까지 훤히 볼 수 있는 기회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봄날 천관산은 ‘붉은 산’으로 물든다. 지천에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퍼지면서 ‘불타는 산’으로 변하고, 군데군데 군락을 이룬 동백 숲도 유난히 진한 꽃을 피워낸다.
또 이 산에는 고찰 87개가 있어 금강산 다음으로 많은 대사(28명)를 내면서 불력이 깊은 산으로도 통한다. 신라 김유신의 연인 천관보살과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북쪽 주 등산로 들머리에는 조선 태종 때 심었다는 20 높이의 고목 태고송이 여전히 그 자태를 뽐내고 있고, 그 곁에 호남의 대표적인 실학자 위백규 선생이 세운 강학소 장천재(長川齋)가 있다. 인근에 그의 후손 장흥 위씨 집성촌인 방촌문화마을, 고인돌 300개로 이뤄진 선사유적지도 있다. 한국 문학을 이끌고 있는 이곳 출신 소설가 이청준·한승원·송기숙씨 등도 천관산 주변에서 글감을 구했다.
〈 장흥 | 배명재기자 ninaplus@kyunghyang.com 〉
천관산 산행은 왕복 4~5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러나 등반로 주변의 볼거리와 억새 풍광 구경에 시간을 낸다면 6시간은 잡아야 넉넉하다. 장천재~금강굴~구정봉~억새 능선~연대봉~정원석~장천재 등반로가 가장 널리 알려진 코스다. 이곳은 천관사~구정봉~환희대~연대봉 등반로와 함께 봄철 ‘진달래 능선’으로 불린다. 활짝 핀 진달래꽃이 장관을 이룬다.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가는 길로 다도해가 보이는 남쪽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다. 구정봉까지 와서 탑산사로 내려오는 코스다. 조금 험한 내리막길이지만 15분 정도만 고생하면 그만한 대가는 충분히 얻을 수 있다. 1200년 전 세워진 탑산사는 법당과 요사도 볼 만하지만 입구에서 절까지 쌓아올린 돌탑으로도 유명하다. 400개가 넘는 돌탑이 아슬아슬하지만 굳건히 서 있다. 바로 아래 천관산 문학공원이 있다. 이청준·한승원·차범석·전상국씨 등 내로라하는 문인 54명의 육필 원고가 자연석에 새겨져 있다.
산행을 마치면 싸고 푸짐한 남도음식을 맛볼 수 있다. 향긋한 매생이 요리와 통통한 자연산 굴이 겨울 제철음식이다. 키조개·낙지 등 철마다 갯벌과 청정바다에서 건져올린 해산물이 별미다.
‘정남진 마을’인 관산읍 신동리 바닷가도 들러볼 만하다. 지금 그곳에서는 바닷가 들녘을 가득 메운 보리밭과 쪽파, 도로변 종려나무 가로수,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한 매화가 봄 소식을 전하고 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와 목포에서 국도 2호선을 타고 강진을 거쳐 장흥 쪽으로 들어오면서 바로 나타나는 순지 IC에서 우회전한다. 거기서 이어지는 국도 23호선을 타고 내려가다 관산읍으로 들어가지 말고, 5㎞ 아래쪽 방촌마을까지 가서 다시 우회전하면 장천재가 보인다. 광주에서는 장흥·회진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천관산 입구에서 내리면 되고, 부산·순천 방면에서도 장흥으로 국도 2호선을 타고 가다 순지 IC를 통과해 내려가면 된다.
〈 배명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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