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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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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05명의 성도들과 터키 성지 순례를 다녀온 후 다음 차기 계획에 대한 문의가 많아졌습니다. 아마도 이번 순례 여행에 참여한 성도들의 만족도가 높아서 입 소문난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교회내 일각에서 요즈음 국내 경제 상황도 좋지 않은데 성지 순례는 결국 여유있는 일부 성도들이나 누릴수 있는 특권이 아니냐는 비판도 없지 않은 것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 잠시 성지 순례의 유익을 변호하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성지순례에 대하여 마음에는 원이로되 경제가 허락되지 않아 감히 이를 꿈꿀수 없는 성도들에 대하여 진심으로 송구스러움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원해 보시고 기도해 보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성지순례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성도들 가운데 두가지 극단적인 견해들이 존재함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는 카톨릭이나 이교도 특히 모슬람처럼 성지를 극도로 우상화하고 성지 순례가 마치 구원이나 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일부 개신교도들은 백해무익한 구약적 혹은 이교적 사고로 일축하여 성지순례를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견해가 다 바람직하지 못한 문자 그대로의 극단적인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떤 땅이나 역사적 도구를 지나치게 거룩한 땅이나 성물로 우상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속사적 일하심이 있었던 그 장소나 사건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그 땅을 밟아가며 연구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매우 유익한 경험과 영향을 제공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지순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싶습니다. 성지순례란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일하심의 자취가 남겨진 곳 그리고 그의 백성들 곧 우리의 신앙선배들이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은혜를 경험한 그 땅과 길을 밟으며 연구하고 예배하면서 자신의 믿음의 성숙과 주께 대한 사랑의 깊이를 더해 가기 위한 거룩한 여행이라"고. 성지순례를 준비없이 떠난 사람들과 충분히 준비하고 다녀온 사람들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말해도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구약 시편120편에서 134편까지는 일종의 성지 순례의 찬미시 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오순절, 혹은 초막절같은 절기에 가족 친지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아가며 거기서 하나님을 예배할것에 대한 감격적인 기다림들을 이 시편들에서 표출하고 있음을 느낄수 있습니다. 시122편1-2절은 그들의 여정이 목적지에 도달한 기쁨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안에 섰도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서 시작하여 신약시대 최초의 본격적인 성지 순례자는 AD 300년대의 저 유명한 콘스탄틴의 어머니였던 헬레나(Helena) 여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의 이스라엘이나 터키의 성지 유적들은 대부분 헬레나 여사의 발걸음에서 유래한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본격적인 성지에 대한 길을 연 개척자는 독일 도미니칸 소속 사제였던 펠릭스 파브리(Felix Fabri)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1480년과 1483년에 이미 두 차례나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그 기록을 남긴바가 있습니다. 두 번째 여행에 그는 일종의 성지 순례단을 구성하여 친히 인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독일에서 이태리 베니스를 거쳐 이스라엘 욥바에 이르는 4개월여에 걸친 긴 항해를 인도해 갔다고 합니다. 그후 여러 성서 고고학적인 파이오니아의 역할을 감당한 고고학자들의 순례를 거쳐 세계 경제가 여러나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순례를 가능하게 하면서 19세기부터 성지순례는 전 세계 뜻있는 성도들의 보편적인 갈망이 되기 시작하였고 한국 교회도 1980년대 이후 본격적인 성지 순례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성지순례를 뜻있게 하려면 우선 답사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전 연구에 힘써야 합니다. 성서지리와 성경적인 연관성을 상세히 연구할수록 성지순례의 감동이 더해질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신교 기독교의 큰 묘판이었던 카톨릭(천주교)과 정교회 그리고 기독교 구약의 영향으로 탄생한 유대교와 이슬람 종교에 대한 사전 이해를 갖고 떠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성지에 가면 개신교 역사보다도 이런 기독교의 다른 분파나 이슬람같은 세계종교의 흔적들을 계속 직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사전 팀 워크를 위하여 함께 순례에 참여할 분들과 적어도 5회이상 만남의 시간을 갖고 서로간의 교제의 마당을 익혀두는 일들도 중요합니다. 함께 가는 사람들과의 우정은 여행의 기쁨을 위한 필수적인 고려의 조건입니다. 그리고 부지런한 워킹이나 조깅으로 기본체력을 미리 축적하는 것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성지순례는 적지않은 거리를 걸어야 할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신뢰할만한 영적 지도자의 인도를 받는 것은 아주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이런 준비된 성지순례를 갖다 온후 성도들의 삶이 크게 변화되는 것을 볼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내가 밟았던 그땅의 그림들이 생생하게 되살아 나는 축복을 다른 어떤 여행과 비교할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세계 선교에 대한 지평선도 크게 열려 세계를 품는 월드 크리스챤의 삶을 살게 됩니다. 저는 이스라엘을 벌써 10회, 터키를 5회나 다녀 왔지만 그 감동은 아직도 식지 않았습니다. 저는 은퇴가 두렵지 않다고 아내에게 종종 말합니다. 성지 순례 안내만으로도 저는 행복한 여생을 살 것 같습니다. 인생은 본래 순례자라고 히브리서가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이 순례 길에 안내자가 된 행복을 무엇으로 비교할수 있겠습니까? 터키 성지에 갔다온지 두주도 안되었는데 다시 그 땅이 그리운 것을 보면 저는 단단히 성지순례 병에 걸린 듯 싶습니다. 자, 내년은 이집트, 이스라엘과 요르단입니다. 자, 기도하고 적금 시작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분들에게 성지의 문은 열릴 것입니다. 성지순례는 돈있는 분들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사모하는 분들이 가는 곳입니다. 자, 성지로(해변으로) 떠나요!
성지순례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성도들 가운데 두가지 극단적인 견해들이 존재함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는 카톨릭이나 이교도 특히 모슬람처럼 성지를 극도로 우상화하고 성지 순례가 마치 구원이나 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일부 개신교도들은 백해무익한 구약적 혹은 이교적 사고로 일축하여 성지순례를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견해가 다 바람직하지 못한 문자 그대로의 극단적인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떤 땅이나 역사적 도구를 지나치게 거룩한 땅이나 성물로 우상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속사적 일하심이 있었던 그 장소나 사건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그 땅을 밟아가며 연구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매우 유익한 경험과 영향을 제공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지순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싶습니다. 성지순례란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일하심의 자취가 남겨진 곳 그리고 그의 백성들 곧 우리의 신앙선배들이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은혜를 경험한 그 땅과 길을 밟으며 연구하고 예배하면서 자신의 믿음의 성숙과 주께 대한 사랑의 깊이를 더해 가기 위한 거룩한 여행이라"고. 성지순례를 준비없이 떠난 사람들과 충분히 준비하고 다녀온 사람들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말해도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구약 시편120편에서 134편까지는 일종의 성지 순례의 찬미시 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오순절, 혹은 초막절같은 절기에 가족 친지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아가며 거기서 하나님을 예배할것에 대한 감격적인 기다림들을 이 시편들에서 표출하고 있음을 느낄수 있습니다. 시122편1-2절은 그들의 여정이 목적지에 도달한 기쁨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안에 섰도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서 시작하여 신약시대 최초의 본격적인 성지 순례자는 AD 300년대의 저 유명한 콘스탄틴의 어머니였던 헬레나(Helena) 여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의 이스라엘이나 터키의 성지 유적들은 대부분 헬레나 여사의 발걸음에서 유래한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본격적인 성지에 대한 길을 연 개척자는 독일 도미니칸 소속 사제였던 펠릭스 파브리(Felix Fabri)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1480년과 1483년에 이미 두 차례나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그 기록을 남긴바가 있습니다. 두 번째 여행에 그는 일종의 성지 순례단을 구성하여 친히 인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독일에서 이태리 베니스를 거쳐 이스라엘 욥바에 이르는 4개월여에 걸친 긴 항해를 인도해 갔다고 합니다. 그후 여러 성서 고고학적인 파이오니아의 역할을 감당한 고고학자들의 순례를 거쳐 세계 경제가 여러나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순례를 가능하게 하면서 19세기부터 성지순례는 전 세계 뜻있는 성도들의 보편적인 갈망이 되기 시작하였고 한국 교회도 1980년대 이후 본격적인 성지 순례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성지순례를 뜻있게 하려면 우선 답사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전 연구에 힘써야 합니다. 성서지리와 성경적인 연관성을 상세히 연구할수록 성지순례의 감동이 더해질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신교 기독교의 큰 묘판이었던 카톨릭(천주교)과 정교회 그리고 기독교 구약의 영향으로 탄생한 유대교와 이슬람 종교에 대한 사전 이해를 갖고 떠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성지에 가면 개신교 역사보다도 이런 기독교의 다른 분파나 이슬람같은 세계종교의 흔적들을 계속 직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사전 팀 워크를 위하여 함께 순례에 참여할 분들과 적어도 5회이상 만남의 시간을 갖고 서로간의 교제의 마당을 익혀두는 일들도 중요합니다. 함께 가는 사람들과의 우정은 여행의 기쁨을 위한 필수적인 고려의 조건입니다. 그리고 부지런한 워킹이나 조깅으로 기본체력을 미리 축적하는 것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성지순례는 적지않은 거리를 걸어야 할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신뢰할만한 영적 지도자의 인도를 받는 것은 아주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이런 준비된 성지순례를 갖다 온후 성도들의 삶이 크게 변화되는 것을 볼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내가 밟았던 그땅의 그림들이 생생하게 되살아 나는 축복을 다른 어떤 여행과 비교할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세계 선교에 대한 지평선도 크게 열려 세계를 품는 월드 크리스챤의 삶을 살게 됩니다. 저는 이스라엘을 벌써 10회, 터키를 5회나 다녀 왔지만 그 감동은 아직도 식지 않았습니다. 저는 은퇴가 두렵지 않다고 아내에게 종종 말합니다. 성지 순례 안내만으로도 저는 행복한 여생을 살 것 같습니다. 인생은 본래 순례자라고 히브리서가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이 순례 길에 안내자가 된 행복을 무엇으로 비교할수 있겠습니까? 터키 성지에 갔다온지 두주도 안되었는데 다시 그 땅이 그리운 것을 보면 저는 단단히 성지순례 병에 걸린 듯 싶습니다. 자, 내년은 이집트, 이스라엘과 요르단입니다. 자, 기도하고 적금 시작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분들에게 성지의 문은 열릴 것입니다. 성지순례는 돈있는 분들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사모하는 분들이 가는 곳입니다. 자, 성지로(해변으로)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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