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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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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B전도사님,
먼저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 사역을 시작하시는 전도사님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사역을 시작하는 것을 봄의 계절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역을 종료하는 것을 겨울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합니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보내는 자기 생애의 최후 서신에서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딤후 4:21a)고 썼을 때, 틀림없이 그는 자기 사역의 겨울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맞이한 겨울은 결코 회한의 계절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라며 당당하게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런 마지막 승리의 고백을 위해 그의 사역을 봄철부터 후회함이 없도록 준비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선 안 될 것입니다. 우선 바울 사도는 인생에 필요한 공부를 기피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율법은 그로 하여금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 3:6b)는 고백을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또 그는 자신을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고백했는데 학자들은 이런 표현 속에서 바울이 히브리 문화를 체득한 사람으로서 문화적 소양에 대한 자존감을 담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포기할 세상이 없어서 모든 것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존귀함으로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세상 포기는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그가 배운 인생의 모든 공부를 오직 주님을 위해서만 드리는 헌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B전도사님,
아직 전도사님에게 넘치는 젊음이 있다고 믿는 이 계절에 신학뿐 아니라 오늘의 사회와 역사가 요구하는 인생 공부도 게을리 하지 마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한 분야에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만 인생살이 전반에 대한 통찰력을 갖는 것은 필수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인생에 대한 상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목회자들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이 목회 현장에서 교우들과 기본적인 교감에도 장애를 겪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무엇보다 전도사님은 지금부터 2~3년 정도 폭넓은 독서를 통해 자신의 소양을 닦는 시간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가 회심한 후에 아라비아 사막에서 보낸 시간을 ‘광야 신학교 기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미 전도사님은 신학교를 졸업하셨기에 광야를 지났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오늘날 동서양의 모든 신학교들이 신학적 소양 면에서는 학생들을 상당히 준비시키고 있지만 영성 면에서도 그렇다고 말할 확신이 없습니다.
물론 전도사님이 신학교 시절에 영성 향상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QT를 통한 하나님과의 사귐 훈련,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일대일로 전도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한 후 건강한 성도로 양육할 줄 아는 능력, 성경 공부를 인도하면서 한 그룹을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로 변화시킬 수 있는 리더십, 자신의 도덕성을 책임질 줄 아는 경건성 등은 영성의 기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B전도사님,
혹시 그중에 결핍된 영역이 있다면 사역 초기에 그 영역에 대해 훈련을 제공하는 기관이나 세미나에 참여하셔서 자신을 구비하는 시간을 갖도록 권면하고 싶습니다. 빠를수록 좋을 것입니다. 물론 그 훈련을 지속적으로 적용하시는 일은 평생의 숙제가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 사도와 동역의 기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의 상황을 좀더 쉽게 적용해 본다면, 바나바 담임 목사를 보좌하는 부사역자의 삶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해, 지금 전도사님은 이 시기에 직면해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바나바 같은 선배를 만나 사랑을 받으면서 자신의 은사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사님은 이 시기에 자신의 책임 사역자가 누구이든지 그분을 자신의 멘토로 알고 부지런한 배움을 가지십시오. 완전한 사역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약점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그분의 강점을 배우십시오.
만일 전도사님이 그분과 전혀 다른 목회 철학을 펼치기를 원하셨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입니다. 어느 교회 혹 어느 사역자와 동역하기로 기도 가운데 결정하셨다면, 이미 동일한 목회 철학의 기초 위에서 그 교회의 사역을 수행하기로 동의하신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좋은 제안이 있다면, 열린 채널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가 채택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러나 자신의 제안이 관철되지 않더라도 기도하며 기다릴 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설교의 기회가 오면, 담임 목사님이나 그밖에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들에게서 자주 ‘피드백’(feed-back)을 받도록 하십시오. 무엇보다 말씀의 전문가가 되십시오.
드디어 바울 사도는 선교사로 안수를 받고 바나바 사도와 함께 전임 선교사로 파송받는 시기가 왔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때까지 바울의 이름은 안디옥교회 지도자들 중에 맨 나중에 위치합니다(행 13:1). 한동안 바나바와 사울을 언급할 때 성경은 ‘바나바와 사울’이라는 식으로 기술했습니다. 그러나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 ‘바울과 바나바’이라는 식으로 리더십의 교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바울은 자신의 자리를 불평하지 않고 겸손하고 성실하게 사역에 임하며 책임 리더십에 대한 ‘팔로십’(followership)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진실한 ‘팔로워’(follower)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팔로워’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으뜸가는 ‘팔로워’였던 베드로는 미래의 리더들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바울 사도가 세계적인 리더로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전에 뼈아프게 배워야 했던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바로 관계의 예술이었습니다.
바울은 목표 지향적 리더였기 때문에 그는 사람 지향적 리더가 되는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아마 마가, 요한을 둘러싼 바나바와의 갈등은 이 과제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 교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훗날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서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아마 은퇴한 선배 바나바의 얼굴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B전도사님,
그때 그 겨울에 후회 없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아름다운 봄을 준비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겨울을 보내며, 못난 선배 이동원 드림.
먼저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 사역을 시작하시는 전도사님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사역을 시작하는 것을 봄의 계절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역을 종료하는 것을 겨울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합니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보내는 자기 생애의 최후 서신에서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딤후 4:21a)고 썼을 때, 틀림없이 그는 자기 사역의 겨울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맞이한 겨울은 결코 회한의 계절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라며 당당하게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런 마지막 승리의 고백을 위해 그의 사역을 봄철부터 후회함이 없도록 준비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선 안 될 것입니다. 우선 바울 사도는 인생에 필요한 공부를 기피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율법은 그로 하여금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 3:6b)는 고백을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또 그는 자신을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고백했는데 학자들은 이런 표현 속에서 바울이 히브리 문화를 체득한 사람으로서 문화적 소양에 대한 자존감을 담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포기할 세상이 없어서 모든 것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존귀함으로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세상 포기는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그가 배운 인생의 모든 공부를 오직 주님을 위해서만 드리는 헌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B전도사님,
아직 전도사님에게 넘치는 젊음이 있다고 믿는 이 계절에 신학뿐 아니라 오늘의 사회와 역사가 요구하는 인생 공부도 게을리 하지 마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한 분야에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만 인생살이 전반에 대한 통찰력을 갖는 것은 필수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인생에 대한 상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목회자들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이 목회 현장에서 교우들과 기본적인 교감에도 장애를 겪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무엇보다 전도사님은 지금부터 2~3년 정도 폭넓은 독서를 통해 자신의 소양을 닦는 시간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가 회심한 후에 아라비아 사막에서 보낸 시간을 ‘광야 신학교 기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미 전도사님은 신학교를 졸업하셨기에 광야를 지났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오늘날 동서양의 모든 신학교들이 신학적 소양 면에서는 학생들을 상당히 준비시키고 있지만 영성 면에서도 그렇다고 말할 확신이 없습니다.
물론 전도사님이 신학교 시절에 영성 향상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QT를 통한 하나님과의 사귐 훈련,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일대일로 전도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한 후 건강한 성도로 양육할 줄 아는 능력, 성경 공부를 인도하면서 한 그룹을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로 변화시킬 수 있는 리더십, 자신의 도덕성을 책임질 줄 아는 경건성 등은 영성의 기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B전도사님,
혹시 그중에 결핍된 영역이 있다면 사역 초기에 그 영역에 대해 훈련을 제공하는 기관이나 세미나에 참여하셔서 자신을 구비하는 시간을 갖도록 권면하고 싶습니다. 빠를수록 좋을 것입니다. 물론 그 훈련을 지속적으로 적용하시는 일은 평생의 숙제가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 사도와 동역의 기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의 상황을 좀더 쉽게 적용해 본다면, 바나바 담임 목사를 보좌하는 부사역자의 삶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해, 지금 전도사님은 이 시기에 직면해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바나바 같은 선배를 만나 사랑을 받으면서 자신의 은사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사님은 이 시기에 자신의 책임 사역자가 누구이든지 그분을 자신의 멘토로 알고 부지런한 배움을 가지십시오. 완전한 사역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약점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그분의 강점을 배우십시오.
만일 전도사님이 그분과 전혀 다른 목회 철학을 펼치기를 원하셨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입니다. 어느 교회 혹 어느 사역자와 동역하기로 기도 가운데 결정하셨다면, 이미 동일한 목회 철학의 기초 위에서 그 교회의 사역을 수행하기로 동의하신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좋은 제안이 있다면, 열린 채널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가 채택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러나 자신의 제안이 관철되지 않더라도 기도하며 기다릴 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설교의 기회가 오면, 담임 목사님이나 그밖에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들에게서 자주 ‘피드백’(feed-back)을 받도록 하십시오. 무엇보다 말씀의 전문가가 되십시오.
드디어 바울 사도는 선교사로 안수를 받고 바나바 사도와 함께 전임 선교사로 파송받는 시기가 왔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때까지 바울의 이름은 안디옥교회 지도자들 중에 맨 나중에 위치합니다(행 13:1). 한동안 바나바와 사울을 언급할 때 성경은 ‘바나바와 사울’이라는 식으로 기술했습니다. 그러나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 ‘바울과 바나바’이라는 식으로 리더십의 교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바울은 자신의 자리를 불평하지 않고 겸손하고 성실하게 사역에 임하며 책임 리더십에 대한 ‘팔로십’(followership)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진실한 ‘팔로워’(follower)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팔로워’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으뜸가는 ‘팔로워’였던 베드로는 미래의 리더들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바울 사도가 세계적인 리더로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전에 뼈아프게 배워야 했던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바로 관계의 예술이었습니다.
바울은 목표 지향적 리더였기 때문에 그는 사람 지향적 리더가 되는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아마 마가, 요한을 둘러싼 바나바와의 갈등은 이 과제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 교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훗날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서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아마 은퇴한 선배 바나바의 얼굴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B전도사님,
그때 그 겨울에 후회 없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아름다운 봄을 준비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겨울을 보내며, 못난 선배 이동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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