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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극히 소수의 본토종인 베르베르인(1,2%)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랍인종인 사람들이 회교를 국교로 삼고 살아가는 나라가 튀니지였습니다. 물론 이 나라의 역사의 한때인 로마 통치시대에 기독교의 황금시대가 있었다는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도착했지만 짧은 여행을 통해서 적지 않게 남아 있는 기독교 유적지를 만나면서 아주 뜻밖의 믿음의 선배들의 족적을 만나게 된 감격을 누렸습니다.
우선 이 땅은 저 유명한 교부 터툴리안이 태어난 곳이었습니다. 그는 주후 160년 이곳 칼타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는 말로 기독교의 철학화를 비판했고 "이단의 금지"라는 유명한 책을 썼던 교부였습니다. 그는"나는 부조리한고로 믿는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종자라"는 유명한 말들을 남겼습니다.
그는"신약"이라는 말, "삼위 일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한명의 유명한 교부이기도 한 키프리안(200-258)교부의 족적이 그대로 남겨진 도시가 수도 튀니스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248년 칼타고 교회의 감독이 되었고 여기서 순교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수도 튀니스의 작은 골목길에는 "키프리안 로드"라는 작은 길의 싸인판이 초라하게 걸려 있었고 지금은 폐허가 되어버린 교회터 입구에는 그의 생애와 순교를 알리는 작은 대리석 기념판이 쓸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다쪽으로 열린 교회터 한 모서리에 앉아 기도하면서 나는 언제인가 다시 회복될 이 나라의 교회의 미래를 바라볼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순교자의 피가 헛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은 300-400명 남짓한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이 셀 교회의 형태로 신앙의 명목을 가까스로 이어가고 있는 곳이지만 말입니다.
또 하나 이 곳은 히포의 어거스틴의 발자취가 남겨진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참회록에서 어머니 모니카가 자신이 이태리로 떠나려는 것을 눈물로 만류하며 기도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모니카는 자기 아들 어거스틴이 당시의 화려한 로마의 도시 이태리 밀라노로 떠난다면 아들은 틀림없이 더욱 타락할 것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가 기도하던 동안 이태리로 떠나갔습니다.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는 헛되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던 것을 역사는 우리에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거기서 어거스틴은 위대한 설교자요 영적 지도자인 암브로스를 만나 놀라운 지도자로 성장해 가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기도했던 터전에는 역시 어거스틴의 어머니가 "여기서 기도했다"고 짤막하게 적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니카의 기도를 하나님의 방식으로 응답하셨던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교회사에 지울수 없는 불멸의 발자취를 남긴 지도자이기도 했지만 고 대천덕 신부님이 그가 소위 도나티스트들과 논쟁을 벌려 이겼지만 당시의 지배 계급에 의해 억압 당하던 원주민들의 아픔을 위로하지 못한 결과로 도나터스를 따르던 무리들이 후일 모두 무슬림으로 개종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던 것을 새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땅은 시돈과 두로로부터 건너온 카르타고인들이 이주해 정착한후 소위 로마를 코끼리 타고 공격해 간 한니발 장군의 신화를 만들때에도 후일 다시 로마가 한니발을 무찌르고 칼타고를 무너뜨릴 때에도 항상 외세에 의해 짓밟히고 억눌림을 당해온 슬픈 역사의 희생을 간직한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땅의 진정한 회복은 이땅을 정복하는 또 다른 제국주의적 십자군이 아닌 사랑과 기술로 이땅의 민중들을 겸손히 섬기고자 하는 긍휼 사역을 기다리는 땅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었습니다.
카르타고의 유적들이 흐터져 있는 언덕에는 1890년 불란서에 의해 1270년 불운한 8차 십자군 원정중 카르타고에서 사망한 왕에게 바쳐진 세인트 루이스 교회 유적이 이땅의 마지막 기독교의 상징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 대사 관저에서 김경임 여 대사님의 황송스런 점심 환대를 받기 전 잠시 들른 바르도(Bardo)박물관에서 만난 화려한 로마시대와 오스만 터키 시대의 모자이크들은 역사의 무상함을 애절한 아름다움으로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비행기에 몸을 싣자 튀니스에서 약 10km 북동쪽 언덕에 자리잡은 전통 예술의 마을 시디 부 사이드(Sidi Bou Said)의 영상들--지나간 역사의 상흔과 상관없이 아름다움을 통해 영원을 만나고자 했던 보편적 인생들의 따뜻한 숨결이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언제인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찾고 싶은 이 성지를 뒤로하고 떠나오면서 이 땅의 회복을 위해 고단한 상황에서 애쓰는 선교 동역자들의 얼굴 얼굴을 기도의 가슴에 심었습니다.
새롭게 만난 사랑 튀니지여, 평화가 그대에게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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