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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13: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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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3·08·30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선택을 하게 됩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선택할 때 항상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결혼을 할 때나 이사를 할 때, 직장을 택할 때, 그밖에 어떤 경우에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인가, 하나님 섬기기에 유리한가, 이런 것들을 항상 우선적으로 고려해서 선택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롯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가축이 많아지고 목초지와 물은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문제로 하나님 영광을 가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문제를 속히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롯을 찾아가 제안을 했습니다. "네가 먼저 마음에 드는 땅을 골라 떠나거라. 그러면 내가 그 반대편을 택하마." 삼촌이 양보하자 롯은 먼저 좋은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남은 땅을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은 이들의 미래를 좌우하는 선택이 되었습니다.
양보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지면서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게 한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아브라함이 우선권과 주도권을 행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가나안으로 온 사람은 아브라함이었고, 조카 롯은 단지 삼촌을 따라온 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전혀 반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재산과 장래가 달린 중요한 문제인데 아브라함은 조카에게 선택의 우선권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은 그렇게 여유를 가지고 양보할 수 있었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 돈 잘 버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좋은 목초지를 차지하여 재산을 많이 늘리는 것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는 믿음 안에서 이미 그 땅을 소유한 자였습니다. 이렇게 더 크고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선택의 우선권을 롯에게 양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은혜 많이 받은 성도는 여유가 있고 양보를 잘 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아브라함이 이렇게 양보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문제는 선택의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합니다. 자기의 이해에 예민하며 손해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갖게 되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손해보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양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아브라함이 선택의 우선권을 조카 롯에게 양보한 것은 하나님을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싸우느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느니 차라리 손해를 보는 것이 나았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
문제는 믿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양보만 한다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차지할 것임이요"(마5:5) 우리가 보기에는 악착같이 싸우고 이겨야 땅을 차지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처럼 온유한 사람이 어떻게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여기서 온유하다는 말은 본래 천성이 유약하고 온순해서 남과 경쟁하거나 싸우지 못하고 늘 포기해버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악착같이 싸우고 양보할 줄도 모르던 사람이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 때문에 양보하고 포기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눈앞의 이익을 포기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어떻게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까요?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하나님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모든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에게 무엇이든지 주시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온유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1-12)
롯의 선택
아브라함이 롯에게 서로 헤어질 것을 제의했을 때 롯은 이것을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신앙적인 갈등을 해결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롯이 보기에 삼촌 아브라함은 너무나도 무모하고 비합리적이며 지나치게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그렇게 영리하고 사리가 바르던 삼촌이 영 딴 사람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믿되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갖지 못했던 롯에게는 삼촌과 함께 지내는 것이 여간 불편하고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아예 삼촌을 떠나기로 작정했습니다.
삼촌 아브라함이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라고 제의했을 때 그는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0절) 그래서 롯은 주저하지 않고 좋아 보이는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11절) 이렇게 해서 롯은 좋은 땅을 차지하게 되었고, 늘 지나치게 믿는 불편한 삼촌 아브라함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롯은 좋은 땅을 차지하게 되었고, 신앙의 자유(?)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선택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롯은 동쪽을 떠나가 마침내 소돔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돔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13절) 그래서 소돔에는 하나님의 큰 심판이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롯이 소돔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 전쟁통에 롯은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서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소돔을 유황불로 심판하셨습니다. 그 때 롯은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에 겨우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롯은 불행하고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롯의 선택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겠는가, 그렇게 하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겠는가,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임을 잊지 마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어떤 위험이 올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선택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선택
롯이 떠나고 아브라함은 이제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롯이 아름다운 땅을 선택한 반면 아브라함은 거친 땅에 남았습니다. 롯이 성읍에 정착한 반면 아브라함은 성밖에서 방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롯보다 훨씬 불리한 처지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좋은 땅을 포기하고 가나안을 선택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롯의 선택이 세상 욕심에 의한 선택이었던 반면에 아브라함의 선택은 믿음에 의한 선택이었습니다. 당장은 아브라함의 선택이 손해인 것 같았으나 앞으로 전개되는 역사는 아브라함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줍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서운함과 외로움, 그리고 허전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떠나 계셨다가 다시 찾아오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항상 아브라함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양보하고 포기한 후에,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아브라함을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롯을 떠난 후 외로움에 잠겨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말씀해주심으로 더욱 강건해졌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며, 그로 인하여 손해와 외로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성도의 모습을 기뻐하시고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우리도 눈앞의 세상적인 욕심에 이끌려 선택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절). 롯도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같은 단어지만 롯의 경우와 아브라함의 경우에 이 말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롯은 탐욕과 불신앙과 세상적인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볼 수 없었고 오직 세상적인 풍요와 쾌락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선택했으며, 그 선택으로 인하여 불행한 결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육신의 눈에는 메마른 광야밖에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믿음의 눈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과 비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의 약속을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15-17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을 밟으며 걸어다녔습니다. 그 땅은 이제 아브라함의 것이었으며, 그의 후손들이 번성할 땅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미래를 막연하고 불확실하게 바라보지 마십시오. 내가 서 있는 위치를 한탄하지 마십시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항상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비전의 눈으로 미래와 세계를 바라보십시오. 마지못해 직장생활을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꿈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하도록 하십시오. 사업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곳에서 땀흘려 일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내가 번 돈은 장차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사용될 돈이다. 내가 좀 더 수고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일하도록 하십시오. 눈을 들어 중국과 인도와 아프리카를 보십시오. 믿음으로 그 땅을 밟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비전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교회가 장차 땅끝까지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이 세계 방방곡곡에 나가서 복음 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눈이 그곳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세계비전을 바라보며, 세계를 가슴에 품고 뜨겁게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과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될 그 날을 바라보며 이 비전을 이루어나가는 교회가 됩시다.
예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위로와 힘을 얻었으며, 비전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요즘에 큐티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날마다 큐티 간증이 게시판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수많은 별들을 세시는 하나님을 통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새롭게 깨달았다고 합니다(시147:4 -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또 "너의 경내를 평안케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시147:14)라는 말씀에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 말씀이 당신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 줄 것입니다. 그 말씀이 당신의 비전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위로와 힘을 얻고 비전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게 되었다고 해서 현실이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척박한 가나안 땅에 있었습니다. 비전을 보았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실망하기 쉽습니다. 어떻게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비전을 새롭게 본 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18절) 아브라함이 단을 쌓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비전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며, 감사와 헌신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현실의 차이를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셔서 우리를 사로잡아주십니다.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이 땅에서 실망하고 현실에 부딪혀 힘들고 외로울 때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비전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배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 뵙고,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충만하게 힘입으며, 큰 기쁨과 용기를 얻는 예배가 되기 바랍니다.
그 선택이 있은 후 롯은 점점 이동하여 마침내 소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세상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기근을 만나고 갈등을 겪고 손해를 당하면서 아브라함은 더욱 믿음의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하나님을 생각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당장에 그것이 손해보는 것 같고 외로운 길인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십시오. 당신의 미래는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혹시라도 롯처럼 선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좋게 보여도 멸망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비전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믿음의 길로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선택을 하게 됩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선택할 때 항상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결혼을 할 때나 이사를 할 때, 직장을 택할 때, 그밖에 어떤 경우에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인가, 하나님 섬기기에 유리한가, 이런 것들을 항상 우선적으로 고려해서 선택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롯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가축이 많아지고 목초지와 물은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문제로 하나님 영광을 가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문제를 속히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롯을 찾아가 제안을 했습니다. "네가 먼저 마음에 드는 땅을 골라 떠나거라. 그러면 내가 그 반대편을 택하마." 삼촌이 양보하자 롯은 먼저 좋은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남은 땅을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은 이들의 미래를 좌우하는 선택이 되었습니다.
양보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지면서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게 한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아브라함이 우선권과 주도권을 행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가나안으로 온 사람은 아브라함이었고, 조카 롯은 단지 삼촌을 따라온 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전혀 반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재산과 장래가 달린 중요한 문제인데 아브라함은 조카에게 선택의 우선권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은 그렇게 여유를 가지고 양보할 수 있었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 돈 잘 버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좋은 목초지를 차지하여 재산을 많이 늘리는 것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는 믿음 안에서 이미 그 땅을 소유한 자였습니다. 이렇게 더 크고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선택의 우선권을 롯에게 양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은혜 많이 받은 성도는 여유가 있고 양보를 잘 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아브라함이 이렇게 양보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문제는 선택의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합니다. 자기의 이해에 예민하며 손해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갖게 되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손해보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양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아브라함이 선택의 우선권을 조카 롯에게 양보한 것은 하나님을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싸우느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느니 차라리 손해를 보는 것이 나았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
문제는 믿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양보만 한다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차지할 것임이요"(마5:5) 우리가 보기에는 악착같이 싸우고 이겨야 땅을 차지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처럼 온유한 사람이 어떻게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여기서 온유하다는 말은 본래 천성이 유약하고 온순해서 남과 경쟁하거나 싸우지 못하고 늘 포기해버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악착같이 싸우고 양보할 줄도 모르던 사람이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 때문에 양보하고 포기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눈앞의 이익을 포기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어떻게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까요?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하나님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모든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에게 무엇이든지 주시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온유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1-12)
롯의 선택
아브라함이 롯에게 서로 헤어질 것을 제의했을 때 롯은 이것을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신앙적인 갈등을 해결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롯이 보기에 삼촌 아브라함은 너무나도 무모하고 비합리적이며 지나치게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그렇게 영리하고 사리가 바르던 삼촌이 영 딴 사람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믿되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갖지 못했던 롯에게는 삼촌과 함께 지내는 것이 여간 불편하고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아예 삼촌을 떠나기로 작정했습니다.
삼촌 아브라함이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라고 제의했을 때 그는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0절) 그래서 롯은 주저하지 않고 좋아 보이는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11절) 이렇게 해서 롯은 좋은 땅을 차지하게 되었고, 늘 지나치게 믿는 불편한 삼촌 아브라함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롯은 좋은 땅을 차지하게 되었고, 신앙의 자유(?)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선택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롯은 동쪽을 떠나가 마침내 소돔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돔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13절) 그래서 소돔에는 하나님의 큰 심판이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롯이 소돔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 전쟁통에 롯은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서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소돔을 유황불로 심판하셨습니다. 그 때 롯은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에 겨우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롯은 불행하고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롯의 선택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겠는가, 그렇게 하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겠는가,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임을 잊지 마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어떤 위험이 올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선택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선택
롯이 떠나고 아브라함은 이제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롯이 아름다운 땅을 선택한 반면 아브라함은 거친 땅에 남았습니다. 롯이 성읍에 정착한 반면 아브라함은 성밖에서 방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롯보다 훨씬 불리한 처지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좋은 땅을 포기하고 가나안을 선택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롯의 선택이 세상 욕심에 의한 선택이었던 반면에 아브라함의 선택은 믿음에 의한 선택이었습니다. 당장은 아브라함의 선택이 손해인 것 같았으나 앞으로 전개되는 역사는 아브라함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줍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서운함과 외로움, 그리고 허전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떠나 계셨다가 다시 찾아오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항상 아브라함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양보하고 포기한 후에,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아브라함을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롯을 떠난 후 외로움에 잠겨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말씀해주심으로 더욱 강건해졌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며, 그로 인하여 손해와 외로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성도의 모습을 기뻐하시고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우리도 눈앞의 세상적인 욕심에 이끌려 선택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절). 롯도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같은 단어지만 롯의 경우와 아브라함의 경우에 이 말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롯은 탐욕과 불신앙과 세상적인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볼 수 없었고 오직 세상적인 풍요와 쾌락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선택했으며, 그 선택으로 인하여 불행한 결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육신의 눈에는 메마른 광야밖에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믿음의 눈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과 비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의 약속을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15-17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을 밟으며 걸어다녔습니다. 그 땅은 이제 아브라함의 것이었으며, 그의 후손들이 번성할 땅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미래를 막연하고 불확실하게 바라보지 마십시오. 내가 서 있는 위치를 한탄하지 마십시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항상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비전의 눈으로 미래와 세계를 바라보십시오. 마지못해 직장생활을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꿈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하도록 하십시오. 사업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곳에서 땀흘려 일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내가 번 돈은 장차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사용될 돈이다. 내가 좀 더 수고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일하도록 하십시오. 눈을 들어 중국과 인도와 아프리카를 보십시오. 믿음으로 그 땅을 밟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비전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교회가 장차 땅끝까지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이 세계 방방곡곡에 나가서 복음 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눈이 그곳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세계비전을 바라보며, 세계를 가슴에 품고 뜨겁게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과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될 그 날을 바라보며 이 비전을 이루어나가는 교회가 됩시다.
예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위로와 힘을 얻었으며, 비전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요즘에 큐티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날마다 큐티 간증이 게시판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수많은 별들을 세시는 하나님을 통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새롭게 깨달았다고 합니다(시147:4 -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또 "너의 경내를 평안케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시147:14)라는 말씀에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붙드십시오. 그 말씀이 당신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 줄 것입니다. 그 말씀이 당신의 비전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위로와 힘을 얻고 비전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게 되었다고 해서 현실이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척박한 가나안 땅에 있었습니다. 비전을 보았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실망하기 쉽습니다. 어떻게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비전을 새롭게 본 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18절) 아브라함이 단을 쌓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비전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며, 감사와 헌신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현실의 차이를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셔서 우리를 사로잡아주십니다.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이 땅에서 실망하고 현실에 부딪혀 힘들고 외로울 때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비전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배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 뵙고,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충만하게 힘입으며, 큰 기쁨과 용기를 얻는 예배가 되기 바랍니다.
그 선택이 있은 후 롯은 점점 이동하여 마침내 소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세상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기근을 만나고 갈등을 겪고 손해를 당하면서 아브라함은 더욱 믿음의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하나님을 생각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당장에 그것이 손해보는 것 같고 외로운 길인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십시오. 당신의 미래는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혹시라도 롯처럼 선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좋게 보여도 멸망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비전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믿음의 길로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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