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행20:25-31 |
---|---|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http://www.john316.or.kr |
사도행전(114) 복된 삶의 3대 요소 (행 20:25-31)
1. 영혼을 구하는 삶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한 고별설교에서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했기에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자신이 깨끗하다!”고 말합니다(26-27절). 무슨 말입니까? 기독교에서 말하는 엄숙한 ‘피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 법칙은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히 9:22).”는 법칙입니다.
죄는 ‘피 흘림’을 요구하는데 하나님은 ‘피 흘림’에서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그 길은 ‘예수님의 피로 포장된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면 ‘피 볼 인생’이 ‘피 보지 않는 인생’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피 보지 않는 인생’으로 변한 사람은 앞으로 ‘피 볼 인생’에게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그때 전도 받은 사람이 예수님을 거부하면 그의 피에 대해 자신이 깨끗하게 되지만 전도하지 않아서 가까운 누군가가 피를 보면 그때는 복음을 전하지 않은 사람도 연대책임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처럼 전도가 중요합니다.
어떤 분은 “나는 전도를 못해요!”라고 하지만 문제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입니다. ‘영혼 구하는 삶’을 최고의 순위에 둘 때 최고의 삶이 펼쳐집니다. 전도는 은사를 가진 사람의 ‘특별한 사명’이 아니라 모든 성도의 ‘공통적인 사명’입니다. ‘시도해서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시도조차 안하는 것’은 죄입니다.
2. 깨어 근신하는 삶
사도 바울은 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후 에베소 장로들에게 참된 목자의 길을 권고하면서 특별히 양떼를 위해 근신하고 깨어 있으라고 권면합니다(28절). 이 구절은 리더에게 본이 되는 ‘절제하는 삶’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2천 년 전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라고 했으니까 지금은 훨씬 더 가까워졌겠지만 오히려 종말 의식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지나친 종말의식’은 삶을 망가뜨리지만 ‘건전한 종말의식’은 삶을 건전하게 만듭니다.
미물인 소도 도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자신의 종말을 예감합니다. 하물며 영혼을 가진 사람이 종말의 때를 망각하고 산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말세는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때이기에 특별히 새벽기도 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듭니다. 그런 때에 새벽 기도할 수 있는 축복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3. 말씀 중심적인 삶
사도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양떼를 잘 돌보라고 권면한 것은 교회를 파괴하려는 세력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29-30절). 실제로 에베소 교회는 여러 이단들이 들어와서 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이단이 바로 니골라 당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이단들이 이단 사상을 가지고 들어올 때 자신이 전한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통해 이단을 물리치라고 권면합니다(31절).
사람들의 미신적인 본능은 뿌리가 깊습니다. 일전에 한 절의 불상에 ‘우담바라’ 꽃이 피었다고 야단했습니다. ‘우담바라’란 꽃은 용이나 봉황새처럼 3000년에 한 번씩 꽃이 핀다는 상상의 꽃입니다. 그런 꽃이 불상에 피었다는 소식이 TV뉴스를 타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렸고 그 절에서는 ‘우담바라 친견 108일 대법회’를 열었습니다. 그때 수많은 유력 인사들이 우담바라를 보겠다고 그곳을 찾았고, 하루에 2만 명이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생물학자들은 그게 우담바라 꽃이 아니라 풀 잠자리 알이라고 밝혀냈습니다.
풀 잠자리 알을 우담바라라고 선전하는 종교인, 그것을 여과 없이 보도하는 방송인, 그리고 무턱대고 모여드는 군중들을 보면 미신적인 본능의 깊은 뿌리를 느끼게 됩니다. 신비한 어떤 물건을 ‘보는 것’으로 운명이 바뀌거나 인격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신적인 본능을 극복하게 하는 굳건한 말씀 중심적인 신앙입니다. 말씀 중심적인 신앙은 흥미는 주지 못해도 심미를 주고, 재미는 주지 않아도 의미를 줍니다. 결국 말씀 중심적인 신앙이 진정한 축복을 선도하며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성도들 성도답게 만듭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