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분은 마지막 대접 재앙, 곧 마지막 재앙(계 15:1), 마지막 세상 심판을 앞당겨 예고하는 것이다(계 16~19장). 이것은 사실상 대접 재앙을 예고하는 것이다. 대접 재앙 속에서 멸망받을 자(666의 표를 받은 자)와 구원받을 자가 갈라진다는 사실이다.
1) 세 천사의 선언(계 14:6~11)
A. 첫째 천사의 복음 선언(계 14:6~7)
첫 번째에 나타난 천사를 복음 천사라고도 한다. 왜냐하면 그가 모든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1) 공중으로 날아가는 천사였다.
요한계시록 14장 6절에 「또 보니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라고 하였다. 계속해서 죄악의 세상에 머물지 않고 세상을 초월하여 있는 상태를 뜻함이다. 그렇게 공중으로 나는 이유는, ① 그의 출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암시함이다. ② 모든 땅에 거하는 자들이 그의 확연한 모습을 보며, 그가 발하는 소리를 듣게 하기 위함이다. ③ 또한 이것은 땅에 있는 두 짐승의 방해가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2) 영원한 복음을 가진 천사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14장 6절은 다시 말하기를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고 하였다. 그가 가진 복음은 어떤 복음인가?
① 우주적 복음이었다.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이라고 하였다. 땅에 거하는 자들(계 13:8, 12, 14)은 짐승들 앞에 묶여 사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 중에도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자가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멸망자들을 향한 경고 행위도 된다.
② 영원한 복음이라고 하였다. 왜 영원한 복음이라고 했나?
첫째 이유는 복음의 본질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세상 역사가 어떻게 변하고 바뀌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원히 불변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이다(히 13:8). 그의 복음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기 때문이다(벧전 1:25). 둘째 이유는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의 복음 운동이 계속된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24장 14절에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복음 운동은 어떠한 사단의 공격과 방해에도 굽힐 줄 모르고 계속된다. 그러므로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마 28:20).
셋째 이유는 그 복음의 효과가 영원하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구원을 영원한 구원(히 5:9)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그가 베푼 사죄의 효과가 영원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복음의 특색이고 또한 우리의 소망이다. 이렇게 복음의 효과는 필연적이며 영원한 구원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
(3) 큰 음성을 발하는 천사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14장 7절에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라고 하였다.
① 왜 큰 음성을 발하나? 그가 가진 소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곧 복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복음이 전 우주를 상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전할 소식의 내용이 신자에게나 불신자에게나 꼭 같이 크고 중대하기 때문이다. 신자에게는 그 복음이 구원의 소식이기 때문에 중대하다. 그러나 불신자들에게는 그 복음이 오히려 심판과 멸망의 소식이기 때문이다(고전 1:19).
② 큰 음성의 내용이 무엇인가? 첫째 내용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뜻이다. 오직 한 분 뿐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였다. ‘두려워하라’는 말은 높이는 존경심과 경외하는 신앙을 뜻하는 것이다. 둘째 내용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다(계 14:7).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인생의 으뜸 되는 본분이기 때문이다(전 12:13). 이것이 지고한 명령사로 임하는 것이다. 셋째 내용은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것이다(계 14:7). ‘경배’란 엎드려 절함을 뜻함이다. 창조주에게 경배하라고 하였다. 영원한 복음을 가진 천사가 외친 큰 소리의 내용은 하나님만을 경외(신앙)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만 경배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본분이다.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다.
③ 큰 음성을 발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계 14:7)이라고 하였다. 여기의 심판은 세상 끝날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필수적인 생활신조는 ‘하나님 신앙+하나님 영광+하나님 경배’이다. 이것은 끝까지 지켜야 하는 우리의 생활신조이다. 우리는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는다(마 24:13).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끝까지 하나님 신앙, 끝까지 하나님 영광, 끝까지 하나님 경배인 것이다. 그렇다면 영원한 복음을 가진 천사는 사실상 신자들을 위한 천사인 것이다.
④ 오늘의 이 천사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의 교회이다.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천사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초월하여 공중을 날면서, 영원한 구원의 복음을 가지고 큰 확신의 음성으로 ‘오직 하나님만 믿으라.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라.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고 외쳐야 할 것이다. 오늘의 전도자는 이러한 복음 천사의 사역을 맡은 자들이다. 바로 두 증인의 사명을 갖고 있는 자들이다.
B. 두 번째 천사의 바벨론 종말 선언(계 14:8) - 무너질 바벨론
요한계시록 14장 8절에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고 하였다. 이 두 번째 천사는 바벨론 천사라고도 한다. 그것은 그가 바벨론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적인 이 세상 종말을 예고함이다. 바벨론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5대 적그리스도 중의 한 정체이다.
(1) 큰 성 바벨론이 무엇인가?
우리 본문에 「큰 성 바벨론」(계 14:8)이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11장 8절에는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였다. 요한계시록 17장 1절에는 「물 위에 앉은 큰 음녀」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17장 5절에는 「큰 바벨론」, 요한계시록 17장 18절에는 「네가 본 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유혹의 센터인 이 세상을 뜻함이다. 이 세상은 권세와 영화의 센터이다. 그것은 시대를 따라 여러 가지로 변색을 하면서 기독신자들을 유혹한다. 요한계시록 18장 10절에는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라고 하였다.
(2) 왜 큰 성 바벨론이라고 불렀는가?
이 음녀 바벨론이 미치는 유혹의 영향력이 크고 넓고 중하기 때문이다. 이 큰 성 바벨론은 큰 붉은 용이 활동하는 무대이다. 큰 성 바벨론은 큰 붉은 용의 지배를 받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권력-임금)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과 큰 성 바벨론과 666의 표를 받은 자를 거느리고 있다. 큰 성 바벨론은 큰 붉은 용, 그리고 두 짐승, 그리고 666을 받은 자들의 활동 무대인 것이다. 그래서 ‘큰 성 바벨론’인 것이다. 그 말은 바로 ‘위대한 바벨론’이란 뜻인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대항하는 이 세상을 뜻함이다.
(3) 큰 성 바벨론의 특색은 무엇인가?
우리 본문은 말하기를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계 14:8)라고 하였다.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가 무엇인가? 이 말은 ‘그녀의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부터’라고 하는 말이다. ① 영적 음행의 포도주이다. 그것은 짐승을 따라 섬기고 경배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다. 다른 신을 섬김을 음행이라고 하였다(계 13:15). 권력 바알을 섬기는 것이다. 역사상에 나타났던 적기독 권력은 언제든지 자기를 신이라고 자칭하였다. 애굽의 바로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로마의 황제들이, 일본의 군국주의가 그러하였다. ② 이단을 따라가는 포도주다. 곧, 거짓 선지자들을 섬기고 경배하는 행위이다(계 13:14). 종교적 바알이다. ③ 세속주의의 포도주다. 그것은 육체주의이다. 향락으로 하나님을 대신하고 사는 것을 뜻함이다(계 17:2~5). 쾌락적 바알이다. 요한계시록 18장 2~3절에는 만국이 그 음행의 포도주로 인하여 무너졌다고 하였다. 큰 성 바벨론은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가 모이는 곳이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18장 9절, 19장 2절에도 바벨론은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게 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예레미야 51장 7절에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바벨론의 특색은 무신론적 사상, 반신론적 사상, 우상 숭배의 사상, 이단적 사상, 육체적 향락주의의 사상들의 온상지임이 분명하다 . 세상과 짝함은 간음하는 여자들과 같다.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라고 하였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니 망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약 4:4)?
(4) 바벨론의 운명적 종말은 필연적이다.
우리 본문은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하였다. 반복적인 표현을 써서 무너짐을 말하고 있다. 이사야 21장 9절에도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 신들의 조각한 형상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고 하였다. 예레미야 51장 8절에는 「바벨론이 졸지에 넘어져 파멸되니」라고 하였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라고 반복한 것은 필연적인 무너짐을 뜻함이다. 필연적인 종말이다. 영원한 무너짐, 영원한 종말, 영원한 파멸이다. 전혀 재기나 재생이 불가능한 완전하고 영원한 멸망을 뜻함이다. 결정적인 멸망, 확실하고 또 확실한 멸망을 뜻함이다. 신적 필연성의 멸망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무너짐이다. 하나님의 필연성에 의해서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지는 것이다. 영원한 복음에 비해 영원한 저주이다. 영원한 구원에 비해 영원한 심판이다. 크신 하나님의 결정적인 심판이다.
C. 세 번째 천사의 멸망 선언(계 14:9~11)-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자 이 부분은 요한계시록의 5대 원수 중의 하나인 666의 표를 받은 자, 곧 적그리스도 시민의 멸망을 예고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배교자, 불신자의 운명적 종말을 선언함이다. 저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고 하였다.
(1) 누가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는가?
①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이다. 요한계시록 14장 9절에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라고 하였다. 여기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곧 적기독의 권력을 의미한다(계 13:1~10). ‘우상’은 땅에서 올라온 거짓 선지자를 의미한다(계 13: 11~15). 저들은 이러한 짐승(권력)과 우상(거짓 선지자)을 예배한다. 예배(Worship)는 ‘가치를 돌린다’는 뜻이다. 하나님께 돌려야 할 모든 것을 사단과 권력자에게 돌림을 뜻함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이다. 하나님이 진노할 수밖에 없는 죄이다. 사람에게 있는 모든 찬양, 감사, 영광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가지 않고 짐승과 우상에게 가져감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함이요, 도전함이다. 참으로 크나큰 배신이요, 배교이다.
② 짐승의 표를 받은 자이다. 요한계시록 14장 9~10절이 또 말하기를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라고 하였다. 여기 ‘짐승의 표’는 ‘카라그마’(ca,ragma)인데,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는 짐승, 곧 거짓 선지자가 발행한 666을 뜻함이다(계 13:16~18). 그것은 불신앙의 표이다. 멸망의 표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소속되지 않고 사단에게 소속되었다는 표식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반대하고 멸시하는 표이다. 짐승의 표, 666을 받은 자는 예외 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사실상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부, 성자, 성령의 표가 그 이마에 있다(계 14:1). 그것은 구원의 표, 영생의 표식이다. 이렇게 영생 얻을 자와 심판을 받는 자는 각자가 자기 소속의 표를 갖고 있다. 요한계시록 14장 11절에도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은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고 같은 사건을 말하고 있다.
(2) 어떤 심판(포도주)을 받는가?
①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4장 10절에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고 하였다. 섞인 것이 없는 진노의 포도주이다. 이는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의 진노와 심판을 뜻함이다. 하나님의 자비나, 용서나, 사랑이 전혀 없는 극에 달한 하나님의 진노를 뜻함이다. 순수한 진노, 완전한 진노를 뜻함이다. 진노의 잔은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이사야 51장 17절에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큰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라고 하였다. 이사야 51장 22절에는 「나의 분노의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겠다」고 하였다. 예레미야 25장 15절에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잔을 받아 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고 하였다. 시편 75편 8절에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끼까지라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택자를 위하여 최후 환난의 날을 감하신다(마 24:22). 그러나 불신자 위에 내리는 이 심판에는 그 어떤 특혜 조치가 전혀 없다.
② 영물들과 어린 양 앞에서 마시는 진노의 포도주이다. 요한계시록 14장 10절에서 말하기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라고 하였다. 그 앞에서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 ‘거룩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수종자들이다.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공개적인 심판을 뜻한다. 다시는 용서나 집행 유예가 없는 마지막 심판이다. 직접적인 심판이다. 어린양이 친히 그 심판을 주재하고, 천사들이 그 심판에 수종든다.
③ 불과 유황으로 받는 고난이다. 요한계시록 14장 10절 하반절에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라고 하였다. ‘불과 유황’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심판의 한 도구이다.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할 때 사용하였다(창 19:24). 이 ‘불과 유황’은 대접 재앙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쏟아 붓는 하나님의 진노이다. 남김없이 쏟아지는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다. ‘불과 유황’은 ‘그 불’과 ‘그 유황’이다. 이는 독특한 불이요 유황으로서, 다른 불과 유황으로는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④ 영원한 고통의 심판이다. 요한계시록 14장 11절에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라고 하였다. 14장 11절 하반절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세세토록’이라 함은 ‘영원토록’, ‘영원을 향하여’라는 뜻이다. 고난의 연기가 무궁함을 뜻함이다. 영원한 현재형으로 계속됨을 뜻함이다.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 함도 고난의 계속을 뜻함이다. 세세토록 고난이 계속됨이 바로 영벌인 것이다. 영생과 영벌은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진리이다. 마태복음 25장 46절에 「저희는 영벌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하였다. 확실하고 분명한 내세의 실존을 알려 주고 있다.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하는 자의 결국이 얼마나 판이한가를 보여 주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세 천사의 선언을 생각하였다. 첫 번째 천사는 복음의 천사였다. 그는 세상에 있는 신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라(신앙),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만 영화롭게 하라고 큰 음성으로 외쳤다. 두 번째 천사는 바벨론 천사였다. 적기독의 한 정체인 큰 음녀 바벨론, 곧 결정적이고도 확실한 바벨론의 종말 선언을 들었다. 세 번째 천사는 바벨론의 시민, 곧 666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의 그 운명적인 영원한 종말 선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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