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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14: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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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석원태 목사 |
참고 : | 경향교회 http://www.ghpc.or.kr/ |
2008' 경향의 강단 요한계시록강해(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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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심판 선언(계 14:6~20) 1) 세 천사의 선언(계 14:6~11) 끝날의 이 세상은 최후 대환난의 도장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전개되는 장소이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 사는 성도들은 복이 있다. 그것은 마치 캄캄한 밤하늘에 반짝이고 있는 별들의 존재처럼 귀하고 중한 축복이다. (1) 인내하는 축복이다. 어떤 인내인가? ②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인내이다. ③ 믿음을 지키는 인내이다. ④ 인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의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하였다.
우리는 두 삶의 최후가 얼마나 현격하게 차이가 있는가를 보게 된다.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짐승을 높이며, 그 짐승을 따르던 자들의 최후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고 하는 영벌의 진리를 보았다(계 14:9~11).
그러나 반대로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은 자, 곧 주를 높이다가 죽은 자의 최후는 영생과 보상의 축복이 따르고 있다고 하였다.
왜 복이 있다고 하였는가?
① 그것은 기록할 만한 중대한 축복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리 본문에 「기록하라」고 하였다. 이렇게 사도 요한에게 주 안에서 죽은 자를 기록하라고 함은 저들의 받을 축복의 상태가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가를 보여 주는 말이다. 말하자면 성도의 삶은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그 삶에 대하여 보상을 해야 되겠기 때문이다.
② 성령이 보증해 주는 최후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고 하였다. 사실상 성령은 천당 신앙의 보증이시다(고후 5:5). 성령이 저들의 삶을 저렇게 높이 평가한 것은 저들이 성령의 인도 대로, 성령의 지시 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저들은 성령 안에서 호흡하면서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만 일했기 때문이다. 저들은 세상에 살 동안 주의 영을 떠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저들의 삶은 성령이 보증해 주고 있다.
③ 안식을 얻기 때문이다.
우리 본문은 또 말하기를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계 14:13)라고 하였다. 저들은 저들에게 주어진 성도로서의 한평생 삶을 잘 마친 자들이다. 여기 ‘수고를 그치고…’라 함은 ‘저들의 애씀으로부터’, ‘저들의 고난, 혹은 고통으로부터’라는 뜻이다. ‘쉰다’ 함은 ‘위에서 산다’ 하는 뜻으로 땅과 대조되는 뜻이다.
저들이 감당한 수고의 정체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저들이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갔던 것이다. 저들은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자기에게 주어진 경기의 코스(Course)를 잘 달리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킨 자들이었다(딤후 4:7). 그러므로 저들에게는 안식이 따라온 것이다.
십자가의 멍에를 메고 주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그 결과 안식의 위로가 따라온다.
④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 본문은 또 말하기를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하였다.
여기 ‘행한 일이 따른다’ 함은 저들이 주의 이름으로 감당한 십자가적인 선행에 대하여 상급이 따라옴을 이름이다.
마태복음 16장 27절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였다.
로마서 2장 6~8절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하였다.
고린도전서 3장 8절에는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고린도전서 3장 12~15절엔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라고 하였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의로운 재판장이 나타날 때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였다(딤후 4:8).
행한 일에 상급이 있는 것은 기독교 신자의 소망이다. 예수 재림 때 이러한 축복이 성취된다(마 25:14~46).
⑤ 천국에서 누리는 안식이고 보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상에서 누릴 땐 그것이 복이 되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본질적으로 이 세상은 영원한 구원의 축복과 상급을 누리기엔 적합하지 않다. 우리가 받는 축복 자체가 새 하늘과 새 땅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스펄전(Spurgeon)은 말하기를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관계함도 기쁨이 크거든, 내세에서 대면하는 관계에 들어갈 땐 그 얼마나 더욱 기쁨이 되랴!’고 하였다.
왜 그렇게 기쁨이 될까?
천국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고 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3장 4절에는 「나와 함께 다닐 것이라」고 하였다.
천국은 성도들만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히 12:22~24). 결코 천국에는 무신론자나 기타 역사의 폭군이 없다.
천국은 거룩한 천사들이 성도를 수종들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히 12:22~24).
천국은 성도가 주님께로부터 면류관을 받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딤후 4:8).
천국은 앞서 간 친구를 만나게 되는 곳이니 기쁘다(삼하 12:23).
천국은 죄가 없는 곳이니 기쁘다(계 21:27).
천국은 사랑이 100%로 충만한 곳이므로 기쁘다(고전 13:3).
천국은 즐거운 찬송이 계속되는 곳이기 때문에 기쁘다(계 4:8).
천국은 이제까지 모르던 것을 다 알게 되는 곳이니 기쁘다(고전 13:12)
천국은 하나님만을 밤낮으로 섬길 수 있는 곳이니 기쁘다(계 22:3).
천국은 죽음의 공포에서 영원히 자유하게 되니 기쁘다(계 21:4)
이렇듯이 요한계시록은 14만 4천 인의 최후 승리가 보장되어 있는 소망의 책이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초점이요, 생명이다.
바벨론과 그의 시민들이 종말의 운명 앞에서 영원히 울어도 못 다 울 고통의 그날에, 새 하늘과 새 땅에 입성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이렇게도 찬란한 영광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진리야말로 신·망·애를 실어다 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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