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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91:1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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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8. 10. 26. 주일 4부 설교 |
<서론>
오늘 저는 '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유독히 시편 91편 14절로 16절은 하나님의 말씀 중에 더욱 강조하여 ‘하나님이 이르시되’ 라고 함으로 하나님이 대단히 중요시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말씀인데 그중에 특별히 하나님께서 강조하시는 말씀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항상 기도합니다. 저도 매일같이 기도만 하면 하나님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내 이웃을 도와주시옵소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건지시는 손길은 항상 우리를 위해서 있지만 먼저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은 입술로 말하기는 쉽습니다. “주님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여보, 나 당신 사랑해요. 얘들아, 내 너를 사랑한다” 그렇게 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증명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어떻게 하셨습니까? 주셨다고 한 것입니다. 누구를 주셨냐. 외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주므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크냐, 적으냐는 줄 때 마음의 태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하면서 무엇을 줄 때 아까운 생각이 나면은 그 아직 사랑이 덜 된 것입니다. 아낌없이 줄 때에 큰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생활 해봐도 부부간에 무엇을 주고받지 않습니까? 줄 때 아까운 생각이 나면 사랑이 좀 못 미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는 것은 큰 사랑인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다. 아내가 남편에게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다. 큰 사랑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까운 것 없이 준 것은, 최고의 선물인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크게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아끼지 않고 주셨습니다. 아까운 생각 없습니다. 주님은 예수님을 아끼지 않고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은 최 극치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 극치의 사랑을 우리가 받아 들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 아낌없이 그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사랑이 증명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사랑에는 행동이 따라와야 되는 것입니다. 주는 것이 없이 사랑하지 못하죠.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만나고 싶고 하나님 곁에 있고 싶지 않습니까? 내가 우리 교회 어느 청년,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부모님이 말하기를 쉬지 않고 전화로써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 소녀도 청년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청년이 메시지를 소녀에게 보내고 그 소녀의 부모님이 ‘미친다고 미친다’고 했었습니다. 밥 먹다가도 메시지 보내고 깨어나면 메시지 보내고, 자고 나면 메시지 보내고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집 장가가서 한 6개월 쯤 살게 되면 메시지 보내도 안 받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가차이 있고 싶은 것입니다. 서로 대화를 하고 가차이 있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은 하나님 섬기는 주일예배를 꼭 지켜야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아니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계신 곳에 찾아가고 싶은데 주일날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하셨는데 주님이 와서 기다리는데 우리가 안 찾아온다면 사랑이 식었지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날 오기를 기다리고 만사를 제껴 놓고 주일 교회 와서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로 24절에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배하는 것을 하나님은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이 이곳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와서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증거를 내놓으라.” “내가 오늘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이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와 있는 것이니, 이것이 증거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집에서 주일날인데 교회 오지 않고 텔레비만 바라보고 있으면서 내가 주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주일을 성수하므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물질 봉사,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물질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에게 물질 줍니다. 아내가 남편 사랑하면 남편에게 물질 줍니다. 물질이 사랑을 증명하는 굉장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물질을 굉장히 사랑하고 좋아하고 있습니다. 물질이 우상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 중에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없는 것입니다. 십일조 뿐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면 다 드려도 아깝지 않다. 안 아깝다. 그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십일조를 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 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십일조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안하는지를 증명하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한번 나를 사랑하는 증거를 보여 다오. 내가 하늘 문을 열어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않는가 보라.” 저는 50년 목회생활에 한 번도 십일조를 도둑질한 적이 없다고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10의 5조, 나중에는 10의 9조까지 드렸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뜨뜻합니다. 하나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물질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원하시면 다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언제나 축복해 주셨고 위기에서 건져내 주시고 어려운 일에 도와 주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을 하면 하나님이 그 대가로써 건져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돌아 앉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안 건져 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기쁘게 하나님께 십일조 드리고 필요하면 성령의 감동이 있으면 물질도 드리므로 사랑을 증명하면 하나님은 그 사랑을 받으시고 사랑의 빚을 갚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할 때 응답하시고 반드시 주님 건지시는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 다음,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몸 드려 섬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저는 주일날 교회 오면서 우리 안내 집사님들이 길거리에 쭉 서서 안내를 하고 계신 것을 봅니다.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 까지 안내를 합니다. 그게 하나님 사랑하는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시간 드려, 몸 드려 그렇게 수고하면서 안내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돈을 받습니까? 사람들이 인정을 받습니까? 박수를 받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안내하고 수고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몸으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수고를 하는 분들이 주님께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건지는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생애를 보고 즐거워 하게 하시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지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언제나 먼저 세우는 것입니다. 밥을 먹어도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옷을 입어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람을 만나도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언제나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먼저 대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 제일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 제일주의다. 하나님을 제일 먼저 사랑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건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건지시는 손길이 나타나면 이 세상에 능치 못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에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우리가 일상생활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을 하고 있으면 담대해져서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주님께서 저를 건져 주시옵소서.”할 때 하나님은 “오냐. 내가 너를 건져주마!” 당장 대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어려움을 당할 때 주님 건져 달라고 부르짖는 것은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 번 따라 말씀하세요.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여러분은 오늘 교회 나와서 예배드림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하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나중에 헌금 때 십일조 드리고, 헌물을 드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 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 드리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구하십시오. 주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2.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둘째로, 주님께서는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알아준다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보다 높으신 어른이 없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백성들이 주의 이름을 알고 경배하면 주님께서 즐거워해서 그 사람을 높여 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고 하나님이 낮추면 높일 자가 없습니다. “나를 믿는 백성은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성호를 알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야훼 이레’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가 알아야 돼요. 야훼의 이름은 창세기 22장 13절로 14절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야훼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야훼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하나님이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고 해서 아브라함이 순종해서 단을 쌓고 아들을 묶어서 장작 위에 얹어 놓고 잡으려고 할 때 하나님이 “내 아들 이삭에게 손대지 말라.” 그리고 산양의 우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까 옆에 있는 수풀에 산양의 뿔이 걸려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산양을 아들, 이삭 대신 제물로 드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성호를 계시 받아서 ‘야훼 이레’라고 했던 것입니다. 야훼는 예비하신 하나님이라. 여러분 가만히 신앙생활을 해보면 아주 지극히 적은 것으로부터 큰일까지 하나님은 미리 아시는 고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여러분 살펴보면 먼저 하나님이 와서 해방을 예비해 놓을 때가 많은 것입니다. 지나고 보면 “와~ 하나님이 날 위해서 예비해 놓았구나! 하나님이 날 위해서 미리 준비해 놓았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 이레’인 것입니다. 그것은 내 이름이 ‘야훼 이레’니까 항상 나는 예비하는 하나님을 알고 나에게 의지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위해서 끊임없이 예비하는 ‘야훼 이레’ 되심을 알고 인정하고 기도해야 될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 라파’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야훼임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양대 사업을 하십니다. 구원하는 사업하고, 치료하는 사업인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하고 난 다음 영적으로 죽고 육체는 병들어서 죽게 된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원하러 오셨을 때 영적인 죄를 사하고 병들어 죽는 육체를 고치는 사역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병 고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사역의 3분지 2를 병고치는데 보내고 12제자나 70인의 제자에게 꼭 천국을 전파하면 병을 고치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지막 주님이 천국 가실 때 남긴 말씀은 믿는 자들은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병을 고치는 것은 예수님의 열정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병을 친히 담당하시고 짊어지시고 병의 대가를 청산하시기 위해서 채찍에 맞아 등이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된 것입니다. 병의 빚을 갚은 것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우리가 병들면 확실히 알아야 될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고 예수님이 뜻도 아니고 병든 것은 사탄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앞에서 예수 이름으로 병과 싸워서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과 보혈의 능력으로 병을 대적하면 병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나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적전쟁인 것입니다. 몸이 병들면 마귀가 우리의 몸에 병을 들여서 우리의 기동력을 상실케 하고 죽이려고 할 때 마귀와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싸우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만 우리는 이겨놓고 싸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말씀하셨으며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미 나음을 얻어놓고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확신을 하고 끝까지 마귀를 대적하고 이겨서 치료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훼 라파’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 의원이 되신다. 나는 너의 의사가 되신다. 나의 이름을 알고 병들 때 나에게 와서 기도하고 나의 도움을 구하라. 하나님은 직접 성령의 능력으로 고치기도 하시고 좋은 의원을 보내 주시든지 좋은 약을 보내 주시든지 좋은 환경을 통해서 치료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이 치료받는 것이 뜻이고, 건강한 것이 뜻이고, 병드는 것이 하나님 뜻이 아닌 것을 확실히 아십시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의 이름이 ‘야훼 라파’인 것입니다. 라파는 치료하는 의사라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의사면 자식이 병들기를 내버려 놓을 턱이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신 의사가 되신 것입니다. 못 고칠 병이 없어요. 전지전능 하십니다. 그 의사가 아버지인 것을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야훼 닛시, 하나님 우리 승리라는 말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 15절로 16절에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야훼 닛시’라 하고 이르되 야훼께서 맹세하시기를 야훼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 아말렉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아말렉의 공격을 받아서 멸망 당할 수 있는 위기에 처했을 때 여호수아가 군대를 조직해서 나와서 싸우고 모세가 아론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 하나님 능력이 임하여서 그 아말렉을 다 쳐서 멸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 닛시, 야훼께서 우리를 이기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깃발입니다. 하나님은 야훼 닛시로써 우리와 같이 싸워 주시는데 그 이름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의 공격을 당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워 주시는 야훼 닛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영적인 아말렉의 공격을 받아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할 때 “야훼 닛시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내 아버지 이름을 올바르게 알고 기도해야지 아버지의 성호도 모르면서 어떻게 기도합니까? “야훼 닛시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닛시가 되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면 우리의 삶속에 언제나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은 ‘야훼 샬롬’입니다. ‘야훼 평강의 하나님’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면 우리가 진실한 평화를 누리고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사기 6장 24절에 "기드온이 야훼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야훼 살롬이라 하더라 "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거하리로다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그 깃으로 너를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거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 인이 네 곁에서, 만 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네 원수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야훼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야훼여 주는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시편 91편 1절로부터 끝까지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바로 이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평화를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시편 91편 1절로 끝절까지를 매일 같이 하나님 앞에 낭송을 합니다. 그러면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그가 나의 피난처요, 그가 나의 요새요, 그가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니 두려울 것이 어디 있습니까? 또 주님께서 그 사자들을 보내사 나의 모든 길에서 나를 지켜 주시고 나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해주시니 무엇을 무서워하고 두려워 할 수 있겠습니까? 사탄이 오거나 마귀가 오면 내가 독사와 뱀을 발로 밟을 수 있다고 말했었으니 강하고 담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고 은혜를 주고 축복을 주고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훼 샬롬’,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화가 되는 것입니다. 돈이 우리에게 평화가 되지 않습니다. 권력이 우리에게 평화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면 우리에게 진실한 평화를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 하나님의 성호는 ‘야훼 로이’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로이라는 것은 목자인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한번 외워 보십시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할렐루야~ 얼마나 좋은 하나님을 모시고 계십니까? 야훼가 나의 목자가 되어서 이처럼 돌보아 주시니 야훼 목자를 의지하고 우리는 평안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양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영과 혼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살아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을 많이 읽고 외우고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면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생명과 능력의 원천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야훼 로이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므로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목자가 우리를 이끄니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쁜 목자가 우리를 이끈다면 우리는 나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은 참 목자요, 삯군이 아닙니다. 삯군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두고 달아나나 주님은 이리가 오면 이리와 싸워서 양을 건지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찢고 피흘려 우리를 건져 주시는 목자이시니 이 목자인 야훼 로이 야훼 우리 목자를 의지하면 평안하게 우리가 승리롭게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은 ‘야훼 찌드케누’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야훼 찌드케누. 찌드케누라는 말은 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희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죄를 알지도 못하는 예수께 우리의 죄를 다 덮어 씌워서 예수님을 통해서 죄 덩어리인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된다. 죄를 한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된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게 만들어 주신다. 마귀가 참소할 수 없도록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일생에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것처럼 누가 만들어 줍니까? 한 번도 일생에 죄를 안 지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세요. 전에 대전에서 제가 집회 하면서 일평생에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 손들으라 해서 보니까 한 사람이 손을 들어요. 내가 너무나 감동해서 좀 일어나라고 하니까 그 뒤에 따라온 어머니가 “아니래”, 왜냐하면 우리 아들이 미쳐서 오늘 정신병 고치러 왔다고.. 한 번도 죄를 안 지었다는 사람은 정신병자지 정상적인 사람은 한번도 죄를 안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없습니다. 우리는 죄 덩어리입니다. 우리 조상의 죄를 인수 받아서 그다음 우리가 죄를 보태어서 죄 덩어리입니다. 그런 우리가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것처럼 만들어 주는 것이 예수의 보혈로 대신 갚아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죄 있으면 부끄러워 못서는데 가슴 펴고 아버지 앞에 설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로 의롭다함을 얻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참소하고 우리를 벌거벗기려고 하되 예수님의 보혈로 무장한 우리들은 마귀가 지적할 수 있는 죄가 안 보이는 것입니다. 용서를 바라보기 때문에 그러므로 나는 용서받은 의인인 것입니다. 나의 의로운 행위로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용서받은 의인인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용서받은 의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희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려 하심이라. 너가 얼마나 의로우냐. 하나님처럼 의롭다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아주 죄짓는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보통 의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의롭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보통 의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처럼 의롭다.”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받는 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생의 죄를 다 청산해 버리고 그 보혈로 우리를 하나님처럼 의롭게 만들어 주시므로 예수를 통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고는 천당 못갑니다. 그 죄를 어떻게 처리합니까? 인간의 힘으로 아무리 의롭게 살아도 죄를 청산할 수 없습니다. 예수를 통해서 그 보혈을 통해서 철저히 의롭게 되어 하나님처럼 의로워져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주님의 성호는 ‘야훼 메카디쉬켐’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야훼 메카디쉬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해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31장 13절에 "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야훼인 줄 너희가 알"지어다.
로마서 8장 2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 스스로 거룩하게 안되요. 담배 한 대도 못 끊어서 요것만한 담배에 달려서 발발발 떠는데요. 담배 술잔에 도박하는 화투장에 묶이면 못 헤어 나오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우리가 악한 습관에 잡히고 더러움에 잡히면 스스로 해방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야훼 메카디쉬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케 하는 하나님이라. 하나님께 나와서 부르짖고 의지하면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담배가 싫습니다. 술이 싫어요. 도박이 싫어요. 방탕이 싫어요. 세상이 싫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싫어지기 때문에 세상을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 신앙이란 나의 인간의 힘과 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했는데 하나님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성령의 능력으로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를 거룩게 하는 ‘야훼 메카디쉬켐’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 삼마’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야훼 삼마.”
에스겔 48장 35절에 "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야훼삼마라 하리라 "
야훼 삼마라는 것은 야훼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20절에 말씀하기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에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데 우리 눈에 안보이지만은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알리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가 함께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어요. 놀랄만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 공기가 보이지 않잖아요. 그러나 공기 속에 사는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안보이지만 예수님의 보혈을 통하여 예수님이 그 날에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고, 또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와 함께 있는 것이 우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삽니다. 야훼는 삼마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아 구만리 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자리에 계십니다. 따라 말씀 하세요. “하나님은 지금 이 자리에 나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오늘날 살고 있는 것이 여러분의 삶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므로 여러분의 조그만한 부르짖음에도 귀를 기울이고 들으시고 여러분이 생각조차 살펴 아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외롭지 않고 버림받지 않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야훼 이레, 야훼 라파, 야훼 닛시, 야훼 샬롬, 야훼 로이, 야훼 찌두케누, 야훼 메카디쉬켐, 야훼 삼마. 하나님의 이름을 알아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알고 올바르게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일을 하겠다는 것을 계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호를 모르고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해요. 오~ 하나님, 야훼 이레 하나님, 나를 위해서 예비하는 하나님, 하나님이 예비하여 주시옵소서. 수능 시험을 치는데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예비하여 주시옵소서. 야훼 이레 하나님, 예비하여 주시옵소서. 오~ 아버지여 병들었습니다. 야훼 라파 의원 되시는 하나님, 야훼 하나님께서 나를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성호를 알아야 되지 않습니까? 내가 원수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나를 도와 싸워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야훼 닛시 하나님, 나에게 승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나의 가정이 불안하고 내 생활이 불안하오니 야훼 샬롬 하나님, 평강을 주시옵소서. 평강을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외롭고 괴롭습니다. 나를 인도해 주십시오. 야훼 목자 되신 하나님, 야훼 로이 되신 하나님,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야훼 메카디쉬켐 되신 하나님, 나를 거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야훼 찌두케누 하나님 나를 의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야훼 삼마 하나님, 나와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 생활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속에 우리의 도움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예비 하시는 하나님 혹은 치료하시는 하나님 혹은 싸워 이기게 해주시는 하나님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 거룩하게 해주시는 하나님, 항상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그 이름 속에 있어서 그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깨닫고 그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감사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여러분이 되는 것입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항상 그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며 감사하며 찬송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일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은 한없이 높으신 분이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높이니 여러분도 따라서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남편이 높아지면 아내도 높아지고, 자식들도 높아지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높이고 영광 돌리면 여러분도 같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3.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셋째로,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하나님께서는 간구하리니 응답하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것은 우리가 많은 사람이 간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간구하는 기도는 원한 서린 간절한 마음인 것입니다. 간구하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목표가 분명해야 돼요. 내가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고 방만하게 기도하지 아니하고 목표가 분명해야 되요. 여러분 기도할 때 목표를 적어야 되요. 적어놓고 그 목표를 항상 바라보고 집중해서 기도해야 되요. 그래야 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마음에 뜨거운 소원을 가져야 되요. 원과 한을 가지고 기도해야 되요. 반드시 응답받기 위해서 원한을 품고 기도해야 되요.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응답해 주셔요. 여러분 간구라는 것은 끊임 없이, 끊임 없이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돼요. 기도하면 항상 낙심하는 때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간절한 열정으로 기대를 하고 기도하다가 중간쯤 가면 그만 의심이 생기고 그 다음에는 낙심이 생겨서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 집에서 할 수도 있지만 더 기도하는 분위기 속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새벽에 나와서 새벽기도하고 혹은 밤에 나와서 철야기도하고 더 집중적으로 하기 위해서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이와 같이 주님께 간구하면 응답해 주시는데 오늘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지 않습니다. 주님께 그냥 응답해 주시면 응답해 주시고 안하면 그뿐이고 그렇게 하기 때문에 응답 못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가면 응답받지 않고는 뒤로 돌아서지 않겠다는 불퇴전의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과부가 재판관에게 나와서 간구하고 뒤로 물러가지 않고 너무나 재판관에게 부르짖으니 재판관이 “내가 하나님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너무나 괴롭히므로 이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괴로워할 정도로 집중하고 뜨거운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매일 계속해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응답은 간구하는 자에게 오지 간절히 구하지 않는 자에게 응답해 주겠다고 말하지 않았었습니다. 우리보고 통성기도 한다고 욕하는 사람 많은데 모르는 소리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은 마음에 간구하는 마음이 있어야 고함 소리가 나오지 마음에 간구하지 아니하면 조용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말하기를 “하나님이 귀가 먹었나? 고함을 치게..”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귀가 먹으셔서 그런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함을 찾아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이 바로 간구하는 기도를 응답하겠다고 말씀하셨으니 간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큰 간구가 금식기도인 것입니다. 금식은 육체를 죽이는 것입니다. 안 먹으면 죽어요. 목숨 걸고 기도한다는 말은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안 먹으면 죽으니까 목숨을 걸어놓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금식기도는 굉장한 파워가 있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기도를 늘 드리셔서 응답받게 되시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4. 환난 때 내가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그 다음에 환난 때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적고 큰 환난을 많이 당하지 않습니까? 환난 때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라 환난 때 하나님이 더 같이 계셔서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한 것은 환난을 당해야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파봐야 병 고치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수가 공격을 해봐야 원수와 싸워서 이기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해봐야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워 봐야 평화로운 하나님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을 사는데 환란은 필요합니다. 적은 환란은 적은 하나님을 체험하고 큰 환란은 큰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모두다 환란 당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가를 기록한 기록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평안했으면 하나님을 경험할 수가 없지요.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고통을 당해봐야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은 환란은 적은 체험을 하고, 큰 환란은 큰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반드시 나쁘지 않습니다. 환란 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면 환란에 파멸 당하고 고통을 당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은 환란 때 우리와 같이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개인적으로 환란을 당합니까? 가정적으로 경제적으로 환란 당합니까?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건지시고 영화로움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온 세계가 경제적인 환란에 처했습니다. 미국을 위시해서 한국과 전 세계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는데 이때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세계 지도자들이 하나님은 찾지 아니하고 쓸데없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돼요. 환난 때 주께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환난 때 주님이 같이 하셔서 건지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가에서 환난을 당했었습니다. 애굽의 군대가 그들을 사로잡으러 왔는데 앞에 홍해수가 창열해서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그들은 다 죽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때 모세가 말하기를 “오늘날 너희는 가만히 있어 너희를 위해서 싸우는 하나님을 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통해서 홍해를 갈라놓고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고 그를 따라온 애굽 군대는 물이 덮어서 다 죽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환란을 당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환란이 왔기 때문에 홍해를 가르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만나를 주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3백만이 방황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먹이기 위해서 만나를 보내신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서 바위가 터져서 물이 나옵니까? 광야에서 물이 없어 목이 말라 목이 타죽게 되었으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고 바위를 터트려서 물을 내보내신 것입니다. 이런 기적들이 다 환란을 당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어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데 예수님이 와서 마리아와 마르다를 위해서 나사로를 살려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나사로를 살리는 기적은 죽었기 때문에 살렸지 살아있는 사람은 못 살립니다. 나사로가 번연히 살아있는데 어떻게 일으킵니까? 나사로가 다행히 죽어서 나흘 동안 무덤에 들어가서 썩은 냄새가 나기 때문에 주님이 기적을 베풀고 부활이요, 생명인 역사를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성도들이 간증할 때 환란을 당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간증할 때 은혜가 되지요. 하나님의 환난과 고통을 통해서 건져준 체험도 없이 나와서 간증하면 아무 은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목사도 그래요. 많은 시험과 환난을 겪고 고통을 당한 목사가 설교를 하면 구수하고 은혜로워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에.. 그러나 평안하게 아무 환난과 고통도 없이 신학 공부해서 목회하는 사람은 설교를 해도 맹물 같아요. 숭늉 같지가 않아요. 똑같은 말씀 하는데 어떤 목사님의 설교는 숭늉 같고 어떤 목사님의 말씀은 맹물 같아요. 그거 왜 그러느냐? 어떤 목사는 환난을 많이 당해서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에 그 설교가 숭늉 같고 어떠한 사람은 환난을 당하지 않고 그냥 편안하게 지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맹물 같은 간증을 하고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서 숭늉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환난 때 주님께 부르짖어 응답받는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환난 때 그냥 버려두지 않습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환난 때” “내가 그와 함께 하여”“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환난에서 건지면 반드시 환난과 그 동등 이상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냥 환란에서 건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환란에서 건지고 나면은 그와 동등 혹은 그 이상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란이 오면은 복도 따라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 믿는 사람에 한해서 그런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 그렇게 하겠다는 말 안했습니다. 그리고 환란 당하면 하나님의 복도 같이 오시겠군요. 그러므로 환난을 받아 들여서 기도하고 참고 견디고 은혜로써 승리하면 그 다음에는 영광스러운 복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환난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악이 변하여 선으로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되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따르는 것입니다.
5. 장수를 주고 나의 구원을 보이리라
다섯째로, 만족한 장수로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장수하므로 저로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예수 믿으면 오래 삽니다. 왜 그러냐.
신명기 30장 20절에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고, 우리의 장수라고 말하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섬기니까 생명을 받고 장수를 안받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잠언 10장 27절에 "야훼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고 말씀한 것입니다.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은 930살을 살았습니다. 그의 아들 셋은 912년을 살았고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므로 인간으로서 최고의 장수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를 거치면서 인간의 수명은 급격히 줄어들어서 아브라함이 175세를 살았고 야곱이 147세, 요셉은 110세를 살았습니다. 천 년을 살아 보겠다고 불로초를 캐러 보냈던 진시황은 얼마나 살았어요? 49년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하하하. 우습지요. 전문가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이 60만 넘기면 거의 90까지 산답니다. 왜냐하면 죽을 사람은 60전에 다 죽는데요. 왜냐하면 폐가 나쁘던지, 간이 나쁘던지 뭐 특별한 기관이 나쁜 사람은 벌써 60이 되기 전에 고장이 나서 다 죽고 60이 넘으면 이제는 서서히 늙어지는데 늙어지는 것이 한 20년 걸리면 한 90까지 산데요. 그렇다고 60이 안된 사람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계시면 장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2005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78.6세로서 남자가 75세, 여자가 85세 정도로 나타난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빨리 죽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만히 보면 여자들은 많이 웃어요. 두 세 사람 모여도 늘 깔깔 거리고 웃습니다. 남자들은 좀처럼 웃지 않아요. 근엄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웃는 사람이 오래 삽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많이 웃으십시오. 웃는다는 것도 큰 복입니다. 최근에는 첨단 의료기술과 갖가지 의약품이 개발되어 평균 수명을 늘이기 위해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하고 있는데 성경에는 이러한 건강과 장수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데요.. 잠언서 10장 27절에는 하나님을 경외할 때 장수의 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고, 신명기 30장 20절에는 순종할 때 장수하고, 에베소서 6장 1절에는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한다고 말했고, 잠언서 28장 16절에는 탐욕을 멀리할 때 장수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좌우간 주님께서 “내가 장수하므로 저를 만족케 하겠다”고 했으니 주님 잘 믿으면 만족할 만큼 장수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사람이 얼마나 살아야 만족 하겠습니까? 여러분 90 사는 사람보고 “이제 어지간히 살았으니까 죽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면 “무슨 소리 하냐? 120살까지 살아야 되겠다.” 120세 산 사람보고 한번 물어 보십시오. “이제 어지간히 살았죠?” “아니야. 150까지 살꺼야.” 인간의 생명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 믿고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장수가 영생이 되어야 사람은 만족할 수 있기 때문에 왜 오래 살고 싶으냐? 원래 하나님은 사람을 죽지 않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지 않았으면 죽음이 없이 영원히 살 것 인데 죄가 들어와서 사망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이란 정상적인 것이 아니고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인간이 본성은 영원히 사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본능적으로 영원히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죄 때문에 죽습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면 영생을 얻고 부활 영생 천국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17)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가 바로 장수요, 영생인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우리는 이 세상에도 육신적으로 오래 살고 육신을 벗어 버려도 영적으로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의사이시므로 병을 고쳐서 육신으로도 오래 살고 영적으로도 영원히 오래 사니까 예수 믿는 것보다 더 복된 일이 이 세상에 없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 예수 믿지, 복 없는 사람은 예수 못 믿어요. 여러분은 복이 많아서 예수 오늘 믿게 된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은 것은 찬양해 마지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영육 간에 치료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영원히 살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결론>
시편 91편 14절로 16절을 다 같이 한번 따라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이 말씀을 적어서 여러분 벽에 붙여 놓고 여러분 화장대에 붙여 놓고 늘 읽으십시오. 왜냐하면 하루 제가 저녁에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성령께서 뚜렷하게 내게 말씀하기를 “이 시편 91편 14절로 16절은 내 백성에게 알려 줘라! 내 백성이 내가 저들은 위해서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 내가 참으로 저들을 도와주려고 하는데 저들이 모르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구하지 아니하므로 도움을 베풀 수가 없으니 알려 주어라!” 그래서 이 설교 내가 오늘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지시하셨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르신 말씀을 여러분 기억하시고 이대로 하나님을 모시고 섬겨서 하나님의 큰 은총과 기적을 체험하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머리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제게 명하신 것을 제가 오늘 시행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 줄을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은총을 받지 못하고 고난 중에 있으니 하나님이 탄식하시고 이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쳐라. 저들이 배워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도록 하라고 하셨으므로 그대로 하였사오니 우리 아버지여 성도들이 이 말씀을 깨달아 알고 받아들이고 믿고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시고 기적을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아직 믿지 않은 사람은 마음을 감화 감동시켜 회개하여 구원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저는 '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유독히 시편 91편 14절로 16절은 하나님의 말씀 중에 더욱 강조하여 ‘하나님이 이르시되’ 라고 함으로 하나님이 대단히 중요시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말씀인데 그중에 특별히 하나님께서 강조하시는 말씀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항상 기도합니다. 저도 매일같이 기도만 하면 하나님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내 이웃을 도와주시옵소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건지시는 손길은 항상 우리를 위해서 있지만 먼저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은 입술로 말하기는 쉽습니다. “주님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여보, 나 당신 사랑해요. 얘들아, 내 너를 사랑한다” 그렇게 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증명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어떻게 하셨습니까? 주셨다고 한 것입니다. 누구를 주셨냐. 외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주므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크냐, 적으냐는 줄 때 마음의 태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하면서 무엇을 줄 때 아까운 생각이 나면은 그 아직 사랑이 덜 된 것입니다. 아낌없이 줄 때에 큰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생활 해봐도 부부간에 무엇을 주고받지 않습니까? 줄 때 아까운 생각이 나면 사랑이 좀 못 미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는 것은 큰 사랑인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다. 아내가 남편에게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다. 큰 사랑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까운 것 없이 준 것은, 최고의 선물인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크게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아끼지 않고 주셨습니다. 아까운 생각 없습니다. 주님은 예수님을 아끼지 않고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은 최 극치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 극치의 사랑을 우리가 받아 들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 아낌없이 그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사랑이 증명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사랑에는 행동이 따라와야 되는 것입니다. 주는 것이 없이 사랑하지 못하죠.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만나고 싶고 하나님 곁에 있고 싶지 않습니까? 내가 우리 교회 어느 청년,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부모님이 말하기를 쉬지 않고 전화로써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 소녀도 청년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청년이 메시지를 소녀에게 보내고 그 소녀의 부모님이 ‘미친다고 미친다’고 했었습니다. 밥 먹다가도 메시지 보내고 깨어나면 메시지 보내고, 자고 나면 메시지 보내고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집 장가가서 한 6개월 쯤 살게 되면 메시지 보내도 안 받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가차이 있고 싶은 것입니다. 서로 대화를 하고 가차이 있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은 하나님 섬기는 주일예배를 꼭 지켜야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아니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계신 곳에 찾아가고 싶은데 주일날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하셨는데 주님이 와서 기다리는데 우리가 안 찾아온다면 사랑이 식었지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날 오기를 기다리고 만사를 제껴 놓고 주일 교회 와서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로 24절에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배하는 것을 하나님은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이 이곳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와서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증거를 내놓으라.” “내가 오늘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이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와 있는 것이니, 이것이 증거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집에서 주일날인데 교회 오지 않고 텔레비만 바라보고 있으면서 내가 주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주일을 성수하므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물질 봉사,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물질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에게 물질 줍니다. 아내가 남편 사랑하면 남편에게 물질 줍니다. 물질이 사랑을 증명하는 굉장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물질을 굉장히 사랑하고 좋아하고 있습니다. 물질이 우상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 중에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없는 것입니다. 십일조 뿐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면 다 드려도 아깝지 않다. 안 아깝다. 그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십일조를 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 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십일조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안하는지를 증명하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한번 나를 사랑하는 증거를 보여 다오. 내가 하늘 문을 열어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않는가 보라.” 저는 50년 목회생활에 한 번도 십일조를 도둑질한 적이 없다고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10의 5조, 나중에는 10의 9조까지 드렸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뜨뜻합니다. 하나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물질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원하시면 다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언제나 축복해 주셨고 위기에서 건져내 주시고 어려운 일에 도와 주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을 하면 하나님이 그 대가로써 건져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돌아 앉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안 건져 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기쁘게 하나님께 십일조 드리고 필요하면 성령의 감동이 있으면 물질도 드리므로 사랑을 증명하면 하나님은 그 사랑을 받으시고 사랑의 빚을 갚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할 때 응답하시고 반드시 주님 건지시는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 다음,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몸 드려 섬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저는 주일날 교회 오면서 우리 안내 집사님들이 길거리에 쭉 서서 안내를 하고 계신 것을 봅니다.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 까지 안내를 합니다. 그게 하나님 사랑하는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시간 드려, 몸 드려 그렇게 수고하면서 안내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돈을 받습니까? 사람들이 인정을 받습니까? 박수를 받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안내하고 수고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몸으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수고를 하는 분들이 주님께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건지는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생애를 보고 즐거워 하게 하시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지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언제나 먼저 세우는 것입니다. 밥을 먹어도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옷을 입어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람을 만나도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언제나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먼저 대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 제일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 제일주의다. 하나님을 제일 먼저 사랑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건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건지시는 손길이 나타나면 이 세상에 능치 못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에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우리가 일상생활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을 하고 있으면 담대해져서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주님께서 저를 건져 주시옵소서.”할 때 하나님은 “오냐. 내가 너를 건져주마!” 당장 대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어려움을 당할 때 주님 건져 달라고 부르짖는 것은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 번 따라 말씀하세요.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여러분은 오늘 교회 나와서 예배드림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하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나중에 헌금 때 십일조 드리고, 헌물을 드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 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 드리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구하십시오. 주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2.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둘째로, 주님께서는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알아준다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보다 높으신 어른이 없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백성들이 주의 이름을 알고 경배하면 주님께서 즐거워해서 그 사람을 높여 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이시면 낮출 자가 없고 하나님이 낮추면 높일 자가 없습니다. “나를 믿는 백성은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성호를 알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야훼 이레’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가 알아야 돼요. 야훼의 이름은 창세기 22장 13절로 14절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야훼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야훼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하나님이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고 해서 아브라함이 순종해서 단을 쌓고 아들을 묶어서 장작 위에 얹어 놓고 잡으려고 할 때 하나님이 “내 아들 이삭에게 손대지 말라.” 그리고 산양의 우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까 옆에 있는 수풀에 산양의 뿔이 걸려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산양을 아들, 이삭 대신 제물로 드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성호를 계시 받아서 ‘야훼 이레’라고 했던 것입니다. 야훼는 예비하신 하나님이라. 여러분 가만히 신앙생활을 해보면 아주 지극히 적은 것으로부터 큰일까지 하나님은 미리 아시는 고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여러분 살펴보면 먼저 하나님이 와서 해방을 예비해 놓을 때가 많은 것입니다. 지나고 보면 “와~ 하나님이 날 위해서 예비해 놓았구나! 하나님이 날 위해서 미리 준비해 놓았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 이레’인 것입니다. 그것은 내 이름이 ‘야훼 이레’니까 항상 나는 예비하는 하나님을 알고 나에게 의지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위해서 끊임없이 예비하는 ‘야훼 이레’ 되심을 알고 인정하고 기도해야 될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 라파’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야훼임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양대 사업을 하십니다. 구원하는 사업하고, 치료하는 사업인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하고 난 다음 영적으로 죽고 육체는 병들어서 죽게 된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원하러 오셨을 때 영적인 죄를 사하고 병들어 죽는 육체를 고치는 사역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병 고치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사역의 3분지 2를 병고치는데 보내고 12제자나 70인의 제자에게 꼭 천국을 전파하면 병을 고치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지막 주님이 천국 가실 때 남긴 말씀은 믿는 자들은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병을 고치는 것은 예수님의 열정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병을 친히 담당하시고 짊어지시고 병의 대가를 청산하시기 위해서 채찍에 맞아 등이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된 것입니다. 병의 빚을 갚은 것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우리가 병들면 확실히 알아야 될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고 예수님이 뜻도 아니고 병든 것은 사탄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앞에서 예수 이름으로 병과 싸워서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과 보혈의 능력으로 병을 대적하면 병은 물러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나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적전쟁인 것입니다. 몸이 병들면 마귀가 우리의 몸에 병을 들여서 우리의 기동력을 상실케 하고 죽이려고 할 때 마귀와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싸우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만 우리는 이겨놓고 싸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말씀하셨으며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미 나음을 얻어놓고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확신을 하고 끝까지 마귀를 대적하고 이겨서 치료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훼 라파’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 의원이 되신다. 나는 너의 의사가 되신다. 나의 이름을 알고 병들 때 나에게 와서 기도하고 나의 도움을 구하라. 하나님은 직접 성령의 능력으로 고치기도 하시고 좋은 의원을 보내 주시든지 좋은 약을 보내 주시든지 좋은 환경을 통해서 치료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이 치료받는 것이 뜻이고, 건강한 것이 뜻이고, 병드는 것이 하나님 뜻이 아닌 것을 확실히 아십시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의 이름이 ‘야훼 라파’인 것입니다. 라파는 치료하는 의사라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의사면 자식이 병들기를 내버려 놓을 턱이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신 의사가 되신 것입니다. 못 고칠 병이 없어요. 전지전능 하십니다. 그 의사가 아버지인 것을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야훼 닛시, 하나님 우리 승리라는 말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 15절로 16절에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야훼 닛시’라 하고 이르되 야훼께서 맹세하시기를 야훼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 아말렉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아말렉의 공격을 받아서 멸망 당할 수 있는 위기에 처했을 때 여호수아가 군대를 조직해서 나와서 싸우고 모세가 아론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 하나님 능력이 임하여서 그 아말렉을 다 쳐서 멸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 닛시, 야훼께서 우리를 이기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깃발입니다. 하나님은 야훼 닛시로써 우리와 같이 싸워 주시는데 그 이름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의 공격을 당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워 주시는 야훼 닛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영적인 아말렉의 공격을 받아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할 때 “야훼 닛시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내 아버지 이름을 올바르게 알고 기도해야지 아버지의 성호도 모르면서 어떻게 기도합니까? “야훼 닛시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닛시가 되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면 우리의 삶속에 언제나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은 ‘야훼 샬롬’입니다. ‘야훼 평강의 하나님’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면 우리가 진실한 평화를 누리고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사기 6장 24절에 "기드온이 야훼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야훼 살롬이라 하더라 "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거하리로다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그 깃으로 너를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거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 인이 네 곁에서, 만 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네 원수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야훼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야훼여 주는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시편 91편 1절로부터 끝까지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바로 이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평화를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시편 91편 1절로 끝절까지를 매일 같이 하나님 앞에 낭송을 합니다. 그러면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그가 나의 피난처요, 그가 나의 요새요, 그가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니 두려울 것이 어디 있습니까? 또 주님께서 그 사자들을 보내사 나의 모든 길에서 나를 지켜 주시고 나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해주시니 무엇을 무서워하고 두려워 할 수 있겠습니까? 사탄이 오거나 마귀가 오면 내가 독사와 뱀을 발로 밟을 수 있다고 말했었으니 강하고 담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고 은혜를 주고 축복을 주고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훼 샬롬’,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화가 되는 것입니다. 돈이 우리에게 평화가 되지 않습니다. 권력이 우리에게 평화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면 우리에게 진실한 평화를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 하나님의 성호는 ‘야훼 로이’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로이라는 것은 목자인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한번 외워 보십시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할렐루야~ 얼마나 좋은 하나님을 모시고 계십니까? 야훼가 나의 목자가 되어서 이처럼 돌보아 주시니 야훼 목자를 의지하고 우리는 평안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양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영과 혼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살아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을 많이 읽고 외우고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면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생명과 능력의 원천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야훼 로이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므로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목자가 우리를 이끄니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쁜 목자가 우리를 이끈다면 우리는 나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은 참 목자요, 삯군이 아닙니다. 삯군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두고 달아나나 주님은 이리가 오면 이리와 싸워서 양을 건지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찢고 피흘려 우리를 건져 주시는 목자이시니 이 목자인 야훼 로이 야훼 우리 목자를 의지하면 평안하게 우리가 승리롭게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은 ‘야훼 찌드케누’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야훼 찌드케누. 찌드케누라는 말은 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희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죄를 알지도 못하는 예수께 우리의 죄를 다 덮어 씌워서 예수님을 통해서 죄 덩어리인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된다. 죄를 한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된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게 만들어 주신다. 마귀가 참소할 수 없도록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일생에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것처럼 누가 만들어 줍니까? 한 번도 일생에 죄를 안 지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세요. 전에 대전에서 제가 집회 하면서 일평생에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 손들으라 해서 보니까 한 사람이 손을 들어요. 내가 너무나 감동해서 좀 일어나라고 하니까 그 뒤에 따라온 어머니가 “아니래”, 왜냐하면 우리 아들이 미쳐서 오늘 정신병 고치러 왔다고.. 한 번도 죄를 안 지었다는 사람은 정신병자지 정상적인 사람은 한번도 죄를 안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없습니다. 우리는 죄 덩어리입니다. 우리 조상의 죄를 인수 받아서 그다음 우리가 죄를 보태어서 죄 덩어리입니다. 그런 우리가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것처럼 만들어 주는 것이 예수의 보혈로 대신 갚아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죄 있으면 부끄러워 못서는데 가슴 펴고 아버지 앞에 설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로 의롭다함을 얻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참소하고 우리를 벌거벗기려고 하되 예수님의 보혈로 무장한 우리들은 마귀가 지적할 수 있는 죄가 안 보이는 것입니다. 용서를 바라보기 때문에 그러므로 나는 용서받은 의인인 것입니다. 나의 의로운 행위로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용서받은 의인인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용서받은 의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희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려 하심이라. 너가 얼마나 의로우냐. 하나님처럼 의롭다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아주 죄짓는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보통 의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의롭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보통 의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처럼 의롭다.”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받는 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생의 죄를 다 청산해 버리고 그 보혈로 우리를 하나님처럼 의롭게 만들어 주시므로 예수를 통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고는 천당 못갑니다. 그 죄를 어떻게 처리합니까? 인간의 힘으로 아무리 의롭게 살아도 죄를 청산할 수 없습니다. 예수를 통해서 그 보혈을 통해서 철저히 의롭게 되어 하나님처럼 의로워져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주님의 성호는 ‘야훼 메카디쉬켐’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야훼 메카디쉬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해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31장 13절에 "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야훼인 줄 너희가 알"지어다.
로마서 8장 2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 스스로 거룩하게 안되요. 담배 한 대도 못 끊어서 요것만한 담배에 달려서 발발발 떠는데요. 담배 술잔에 도박하는 화투장에 묶이면 못 헤어 나오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우리가 악한 습관에 잡히고 더러움에 잡히면 스스로 해방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야훼 메카디쉬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케 하는 하나님이라. 하나님께 나와서 부르짖고 의지하면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담배가 싫습니다. 술이 싫어요. 도박이 싫어요. 방탕이 싫어요. 세상이 싫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싫어지기 때문에 세상을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 신앙이란 나의 인간의 힘과 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했는데 하나님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성령의 능력으로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를 거룩게 하는 ‘야훼 메카디쉬켐’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 삼마’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야훼 삼마.”
에스겔 48장 35절에 "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야훼삼마라 하리라 "
야훼 삼마라는 것은 야훼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20절에 말씀하기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에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데 우리 눈에 안보이지만은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알리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가 함께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어요. 놀랄만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 공기가 보이지 않잖아요. 그러나 공기 속에 사는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안보이지만 예수님의 보혈을 통하여 예수님이 그 날에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고, 또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와 함께 있는 것이 우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삽니다. 야훼는 삼마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아 구만리 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자리에 계십니다. 따라 말씀 하세요. “하나님은 지금 이 자리에 나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오늘날 살고 있는 것이 여러분의 삶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므로 여러분의 조그만한 부르짖음에도 귀를 기울이고 들으시고 여러분이 생각조차 살펴 아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외롭지 않고 버림받지 않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야훼 이레, 야훼 라파, 야훼 닛시, 야훼 샬롬, 야훼 로이, 야훼 찌두케누, 야훼 메카디쉬켐, 야훼 삼마. 하나님의 이름을 알아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알고 올바르게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일을 하겠다는 것을 계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호를 모르고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해요. 오~ 하나님, 야훼 이레 하나님, 나를 위해서 예비하는 하나님, 하나님이 예비하여 주시옵소서. 수능 시험을 치는데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예비하여 주시옵소서. 야훼 이레 하나님, 예비하여 주시옵소서. 오~ 아버지여 병들었습니다. 야훼 라파 의원 되시는 하나님, 야훼 하나님께서 나를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성호를 알아야 되지 않습니까? 내가 원수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나를 도와 싸워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야훼 닛시 하나님, 나에게 승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나의 가정이 불안하고 내 생활이 불안하오니 야훼 샬롬 하나님, 평강을 주시옵소서. 평강을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외롭고 괴롭습니다. 나를 인도해 주십시오. 야훼 목자 되신 하나님, 야훼 로이 되신 하나님,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야훼 메카디쉬켐 되신 하나님, 나를 거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야훼 찌두케누 하나님 나를 의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야훼 삼마 하나님, 나와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 생활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속에 우리의 도움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예비 하시는 하나님 혹은 치료하시는 하나님 혹은 싸워 이기게 해주시는 하나님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 거룩하게 해주시는 하나님, 항상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그 이름 속에 있어서 그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깨닫고 그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감사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여러분이 되는 것입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항상 그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며 감사하며 찬송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일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은 한없이 높으신 분이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높이니 여러분도 따라서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남편이 높아지면 아내도 높아지고, 자식들도 높아지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높이고 영광 돌리면 여러분도 같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3.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셋째로,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하나님께서는 간구하리니 응답하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것은 우리가 많은 사람이 간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간구하는 기도는 원한 서린 간절한 마음인 것입니다. 간구하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목표가 분명해야 돼요. 내가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고 방만하게 기도하지 아니하고 목표가 분명해야 되요. 여러분 기도할 때 목표를 적어야 되요. 적어놓고 그 목표를 항상 바라보고 집중해서 기도해야 되요. 그래야 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마음에 뜨거운 소원을 가져야 되요. 원과 한을 가지고 기도해야 되요. 반드시 응답받기 위해서 원한을 품고 기도해야 되요.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응답해 주셔요. 여러분 간구라는 것은 끊임 없이, 끊임 없이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돼요. 기도하면 항상 낙심하는 때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간절한 열정으로 기대를 하고 기도하다가 중간쯤 가면 그만 의심이 생기고 그 다음에는 낙심이 생겨서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 집에서 할 수도 있지만 더 기도하는 분위기 속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새벽에 나와서 새벽기도하고 혹은 밤에 나와서 철야기도하고 더 집중적으로 하기 위해서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이와 같이 주님께 간구하면 응답해 주시는데 오늘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지 않습니다. 주님께 그냥 응답해 주시면 응답해 주시고 안하면 그뿐이고 그렇게 하기 때문에 응답 못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가면 응답받지 않고는 뒤로 돌아서지 않겠다는 불퇴전의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과부가 재판관에게 나와서 간구하고 뒤로 물러가지 않고 너무나 재판관에게 부르짖으니 재판관이 “내가 하나님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너무나 괴롭히므로 이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괴로워할 정도로 집중하고 뜨거운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매일 계속해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응답은 간구하는 자에게 오지 간절히 구하지 않는 자에게 응답해 주겠다고 말하지 않았었습니다. 우리보고 통성기도 한다고 욕하는 사람 많은데 모르는 소리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은 마음에 간구하는 마음이 있어야 고함 소리가 나오지 마음에 간구하지 아니하면 조용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말하기를 “하나님이 귀가 먹었나? 고함을 치게..”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귀가 먹으셔서 그런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함을 찾아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이 바로 간구하는 기도를 응답하겠다고 말씀하셨으니 간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큰 간구가 금식기도인 것입니다. 금식은 육체를 죽이는 것입니다. 안 먹으면 죽어요. 목숨 걸고 기도한다는 말은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안 먹으면 죽으니까 목숨을 걸어놓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금식기도는 굉장한 파워가 있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기도를 늘 드리셔서 응답받게 되시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4. 환난 때 내가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그 다음에 환난 때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적고 큰 환난을 많이 당하지 않습니까? 환난 때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라 환난 때 하나님이 더 같이 계셔서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고 한 것은 환난을 당해야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파봐야 병 고치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수가 공격을 해봐야 원수와 싸워서 이기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해봐야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워 봐야 평화로운 하나님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을 사는데 환란은 필요합니다. 적은 환란은 적은 하나님을 체험하고 큰 환란은 큰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모두다 환란 당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가를 기록한 기록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평안했으면 하나님을 경험할 수가 없지요.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고통을 당해봐야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은 환란은 적은 체험을 하고, 큰 환란은 큰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반드시 나쁘지 않습니다. 환란 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면 환란에 파멸 당하고 고통을 당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은 환란 때 우리와 같이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개인적으로 환란을 당합니까? 가정적으로 경제적으로 환란 당합니까?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건지시고 영화로움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온 세계가 경제적인 환란에 처했습니다. 미국을 위시해서 한국과 전 세계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는데 이때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세계 지도자들이 하나님은 찾지 아니하고 쓸데없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돼요. 환난 때 주께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환난 때 주님이 같이 하셔서 건지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가에서 환난을 당했었습니다. 애굽의 군대가 그들을 사로잡으러 왔는데 앞에 홍해수가 창열해서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그들은 다 죽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때 모세가 말하기를 “오늘날 너희는 가만히 있어 너희를 위해서 싸우는 하나님을 보라”고 말한 것입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통해서 홍해를 갈라놓고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고 그를 따라온 애굽 군대는 물이 덮어서 다 죽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환란을 당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환란이 왔기 때문에 홍해를 가르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만나를 주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3백만이 방황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먹이기 위해서 만나를 보내신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서 바위가 터져서 물이 나옵니까? 광야에서 물이 없어 목이 말라 목이 타죽게 되었으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고 바위를 터트려서 물을 내보내신 것입니다. 이런 기적들이 다 환란을 당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어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데 예수님이 와서 마리아와 마르다를 위해서 나사로를 살려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나사로를 살리는 기적은 죽었기 때문에 살렸지 살아있는 사람은 못 살립니다. 나사로가 번연히 살아있는데 어떻게 일으킵니까? 나사로가 다행히 죽어서 나흘 동안 무덤에 들어가서 썩은 냄새가 나기 때문에 주님이 기적을 베풀고 부활이요, 생명인 역사를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성도들이 간증할 때 환란을 당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간증할 때 은혜가 되지요. 하나님의 환난과 고통을 통해서 건져준 체험도 없이 나와서 간증하면 아무 은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목사도 그래요. 많은 시험과 환난을 겪고 고통을 당한 목사가 설교를 하면 구수하고 은혜로워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에.. 그러나 평안하게 아무 환난과 고통도 없이 신학 공부해서 목회하는 사람은 설교를 해도 맹물 같아요. 숭늉 같지가 않아요. 똑같은 말씀 하는데 어떤 목사님의 설교는 숭늉 같고 어떤 목사님의 말씀은 맹물 같아요. 그거 왜 그러느냐? 어떤 목사는 환난을 많이 당해서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에 그 설교가 숭늉 같고 어떠한 사람은 환난을 당하지 않고 그냥 편안하게 지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맹물 같은 간증을 하고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서 숭늉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환난 때 주님께 부르짖어 응답받는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환난 때 그냥 버려두지 않습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환난 때” “내가 그와 함께 하여”“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환난에서 건지면 반드시 환난과 그 동등 이상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냥 환란에서 건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환란에서 건지고 나면은 그와 동등 혹은 그 이상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란이 오면은 복도 따라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 믿는 사람에 한해서 그런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 그렇게 하겠다는 말 안했습니다. 그리고 환란 당하면 하나님의 복도 같이 오시겠군요. 그러므로 환난을 받아 들여서 기도하고 참고 견디고 은혜로써 승리하면 그 다음에는 영광스러운 복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환난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악이 변하여 선으로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되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따르는 것입니다.
5. 장수를 주고 나의 구원을 보이리라
다섯째로, 만족한 장수로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장수하므로 저로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예수 믿으면 오래 삽니다. 왜 그러냐.
신명기 30장 20절에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고, 우리의 장수라고 말하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섬기니까 생명을 받고 장수를 안받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잠언 10장 27절에 "야훼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고 말씀한 것입니다.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은 930살을 살았습니다. 그의 아들 셋은 912년을 살았고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므로 인간으로서 최고의 장수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를 거치면서 인간의 수명은 급격히 줄어들어서 아브라함이 175세를 살았고 야곱이 147세, 요셉은 110세를 살았습니다. 천 년을 살아 보겠다고 불로초를 캐러 보냈던 진시황은 얼마나 살았어요? 49년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하하하. 우습지요. 전문가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이 60만 넘기면 거의 90까지 산답니다. 왜냐하면 죽을 사람은 60전에 다 죽는데요. 왜냐하면 폐가 나쁘던지, 간이 나쁘던지 뭐 특별한 기관이 나쁜 사람은 벌써 60이 되기 전에 고장이 나서 다 죽고 60이 넘으면 이제는 서서히 늙어지는데 늙어지는 것이 한 20년 걸리면 한 90까지 산데요. 그렇다고 60이 안된 사람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계시면 장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2005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78.6세로서 남자가 75세, 여자가 85세 정도로 나타난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빨리 죽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만히 보면 여자들은 많이 웃어요. 두 세 사람 모여도 늘 깔깔 거리고 웃습니다. 남자들은 좀처럼 웃지 않아요. 근엄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웃는 사람이 오래 삽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많이 웃으십시오. 웃는다는 것도 큰 복입니다. 최근에는 첨단 의료기술과 갖가지 의약품이 개발되어 평균 수명을 늘이기 위해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하고 있는데 성경에는 이러한 건강과 장수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데요.. 잠언서 10장 27절에는 하나님을 경외할 때 장수의 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고, 신명기 30장 20절에는 순종할 때 장수하고, 에베소서 6장 1절에는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한다고 말했고, 잠언서 28장 16절에는 탐욕을 멀리할 때 장수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좌우간 주님께서 “내가 장수하므로 저를 만족케 하겠다”고 했으니 주님 잘 믿으면 만족할 만큼 장수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사람이 얼마나 살아야 만족 하겠습니까? 여러분 90 사는 사람보고 “이제 어지간히 살았으니까 죽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면 “무슨 소리 하냐? 120살까지 살아야 되겠다.” 120세 산 사람보고 한번 물어 보십시오. “이제 어지간히 살았죠?” “아니야. 150까지 살꺼야.” 인간의 생명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 믿고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장수가 영생이 되어야 사람은 만족할 수 있기 때문에 왜 오래 살고 싶으냐? 원래 하나님은 사람을 죽지 않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지 않았으면 죽음이 없이 영원히 살 것 인데 죄가 들어와서 사망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이란 정상적인 것이 아니고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인간이 본성은 영원히 사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본능적으로 영원히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죄 때문에 죽습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면 영생을 얻고 부활 영생 천국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17)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가 바로 장수요, 영생인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우리는 이 세상에도 육신적으로 오래 살고 육신을 벗어 버려도 영적으로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의사이시므로 병을 고쳐서 육신으로도 오래 살고 영적으로도 영원히 오래 사니까 예수 믿는 것보다 더 복된 일이 이 세상에 없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 예수 믿지, 복 없는 사람은 예수 못 믿어요. 여러분은 복이 많아서 예수 오늘 믿게 된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은 것은 찬양해 마지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영육 간에 치료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영원히 살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결론>
시편 91편 14절로 16절을 다 같이 한번 따라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이 말씀을 적어서 여러분 벽에 붙여 놓고 여러분 화장대에 붙여 놓고 늘 읽으십시오. 왜냐하면 하루 제가 저녁에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성령께서 뚜렷하게 내게 말씀하기를 “이 시편 91편 14절로 16절은 내 백성에게 알려 줘라! 내 백성이 내가 저들은 위해서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 내가 참으로 저들을 도와주려고 하는데 저들이 모르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구하지 아니하므로 도움을 베풀 수가 없으니 알려 주어라!” 그래서 이 설교 내가 오늘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지시하셨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르신 말씀을 여러분 기억하시고 이대로 하나님을 모시고 섬겨서 하나님의 큰 은총과 기적을 체험하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머리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제게 명하신 것을 제가 오늘 시행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 줄을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은총을 받지 못하고 고난 중에 있으니 하나님이 탄식하시고 이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쳐라. 저들이 배워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도록 하라고 하셨으므로 그대로 하였사오니 우리 아버지여 성도들이 이 말씀을 깨달아 알고 받아들이고 믿고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시고 기적을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아직 믿지 않은 사람은 마음을 감화 감동시켜 회개하여 구원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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