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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광대
강화도에 살던 떠꺼머리 총각이 어느 날 임금 자리에 올랐다.
때마다 신선로 음식을 들고 밤마다 비단침구 속에서 잠을 잤다.
어린아이 다루듯 자리에서 일어나면 예쁜 궁녀들이 옆에서 부축을 했고,
손에서 손을 건너오지 않는 물건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알아서 하라"해도 "황공하옵니다"
"모르겠소"해도 "황공하옵니다"
"자고 싶다"해도 "황공하옵니다"
수많은 신하들이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황공하옵니다"만을 연발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아서 우쭐거리던 어깨도 달이 가고 해가 바뀌자 시들해졌다.
신선로에 밥을 먹으나 된장국에 밥을 먹으나 한끼 때우기는 마찬가지.
비단침구로 잠을 자나 누더기 이불로 잠을 자나 하룻밤 잠자기는 마찬가지.
임금님은 '속이 답답하다'라고 짜증을 내었다.
눈치 빠른 신하들이 궁녀들을 바꿔 들여 보냈다.
임금님은 꽥 소리를 질렀다.
"여자들한테도 지쳤다. 달리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 다오."
신하 하나가 저자거리에 나가서 소년 광대를 데려왔다.
요즘 말로 하면 코메디언인이 소년 광대는 대궐에서 쓰는 말하고는 전혀 반대의 말을 해서 임금님을 웃겼다.
내시를 가리켜서 "저건 고자다" 그러면 임금님은 으하하.
풍채가 좋은 대감을 가리켜서 "저건 배불뚝이다" 마찬가지로 임금님은 으하하.
임금님 말을 척척 받는 대감을 가리켜서 "저건 아첨꾼이다" 역시 임금님은 으하하.
임금님이 물었다.
"그럼 나는 누구냐?"
소년 광대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당신이야 뭐, 황공하옵게도 임금옷을 빌어 입은 허수아비지."
임금님의 표정이 돌변했다.
"여봐라! 저 놈을 당장 끌어내어 목을 베어라."
그러자, 이번에는 소년 광대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임금님의 노여움이 상투끝까지 올랐다.
"이놈아! 왜 웃느냐?"
소년 광대가 말했다.
"그럼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습니까? 바른 말로 남을 놀릴 땐 돈을 주고,
바른 말로 자기를 놀릴 땐 벌을 주다니, 이보다 더 웃기는 광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듣기 싫다. 이놈!"
임금님은 주먹으로 탁자를 꽝 내리쳤다.
(이것은 강화도 떠꺼머리 총각이 임금자리에 오르고 나서 처음으로 자기 손을 자기 마음대로 써본 역사적인 일이었다).
글세요, 그 다음에 소년 광대를 사면해 주었는지,
처형해 버렸는지 그것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깁니다.
정채봉<멀리가는 향기/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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