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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작
-누가 내 자전거 좀 훔쳐가 주세요
-정선아
벌써 세 번째예요. 도둑맞은 자전거 말이에요. 자전거를 새로 살 때마다 자물쇠를 한 개씩 더 채웠죠. 그래서 지금 자전거는 몸에 자물쇠를 주렁주렁 달게 됐어요. 나는 날마다 자전거를 타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자물쇠를 풀었다가 잠갔다가 하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에요. 하지만 꼭 자물쇠를 잠가야 해요. 안 그러면 도둑이 훔쳐갈 게 틀림없어요.
첫 번째 자전거는 내 실수로 도둑맞았어요. 학원에 지각하는 바람에 자물쇠를 바구니 안에 놔둔 채 깜빡 잊어버렸거든요. 학원 끝나고 내려와 보니 자전거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거예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난생처음으로 경험해 봤어요.
두 번째 자전거는 꽤 오랫동안 잘 타고 다녔어요. 그런데 아파트 밑에 세워뒀더니 밤새 누가 귀신같이 자물쇠를 끊고 가져간 게 아니겠어요. 그날 엄마 아빠와 함께 온 동네를 뒤졌지만 내 자전거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세 번째 자전거는 학원 앞에 세워뒀는데 누가 자전거 안장만 쏙 빼갔어요. 무심코 자전거를 탔더라면 엉덩이가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 그림= 권신아
자전거 가게 아저씨는, '자물쇠가 많이 달려서 훔쳐가지 못하니까 도둑이 분해서 안장이라도 떼어갔나 보다'라고 말씀하시며 안장에도 자물쇠를 채워주셨어요. 엄마는 옆에서 깔깔 웃으셨고요. 나는 무척 화가 났어요.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어도 자물쇠는 꼭 다 채우고 다녀요.
네 개의 자물쇠는 모양이 서로 달라요. 하나는 평범한 자물쇠고 다른 하나는 비밀번호 다섯 개를 맞춰서 열어요. 안장 자물쇠는 아주 작고요, 나머지 하나는 건드리면 삐잉삐잉 소방차처럼 시끄러운 소리를 내요. 하지만 이렇게 자물쇠를 네 개씩 달아도 불안해 요즘에는 자전거를 집 안에 들여놔요.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제발 같이 타는 사람이 없기를 기도해요.
이렇게 귀찮은 일이 많은데도 왜 꼭 자전거를 타고 다니느냐고요? 나는 학원을 여섯 곳이나 다니는데 월, 수, 금요일에는 피아노, 수학, 영어 학원에 가고요, 화, 목요일에는 수영, 논술, 미술 학원에 가요. 학원끼리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걸어 다니기가 힘들거든요. 엄마는 학원 버스를 타고 다니라고 하지만, 학원 버스를 타려면 기다리는 시간도 너무 길고 집까지 뱅뱅 돌아서 가고 또 차멀미도 심해서 정말 싫어요. 그래서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죠.
"위험해서 안 돼!"
엄마는 딱 잘라 말했어요.
"사내아이는 좀 넘어지면서 커도 괜찮잖아."
아빠는 같은 남자라서 그런지 내 맘을 너무나 잘 알아주셨어요. 내가 계속 조르니까 엄마는 시험에서 평균 90점 이상 맞아오면 사준다고 했어요.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만 이럴 수가. 결과는 평균 89점! 울고불고 매달렸더니 결국 아빠가 엄마 몰래 자전거를 사주셨죠. 그렇게 힘들게 산 자전거를 두 대나 잃어버리다니! 엄마는 지금 산 자전거가 마지막이래요. 이것까지 잃어버리면 다시는 자전거 꿈도 꾸지 말래요. 그래서 이렇게 내가 자물쇠를 채우는 고생을 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런 생각을 싹 잊게 해줄 정도로 자전거를 타는 순간만큼은 정말 즐거워요. 자전거를 타면 바람이 막 불어와요. 여러 가지 냄새가 나는 바람이에요. 꽃밭 앞을 지나가면 산뜻한 냄새, 뻥튀기 가게 앞을 지나면 고소한 냄새가 코를 만지고 지나가요.
또 나는 자전거를 타고 이리저리 모험하듯 돌아다니는 것이 참 좋아요. 근처 공원에 가면 마음껏 자전거 페달을 밟을 수 있어요. 한 손으로만 핸들을 잡아보기도 하고, 서서 타보기도 해요. 내가 꼭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아요. 특히 두 다리를 페달에서 떼고 달릴 때면 자전거와 내가 하나가 돼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이에요. 만약 누가 나보고 제일 친한 친구를 꼽으라고 하면 두말할 것 없이 자전거라고 말할 거예요. 컴퓨터도 좋아하지만 그래도 자전거가 더 멋진 친구 같은 걸요.
신나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피아노 학원에 다 왔어요. 약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학원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자물쇠를 꼼꼼히 살펴보고 학원에 들어갔어요. 진도표를 받으러 공부방으로 가는데 처음 보는 아줌마가 나를 불렀어요.
"난 선생님 친구인데, 선생님이 편찮으셔서 못 나오셨으니까 오늘은 연습만 하고 가."
와! 하마터면 기뻐서 소리를 지를 뻔했어요. 선생님이 아프신 건 슬프지만 이렇게 놀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게 얼마 만인지 몰라요. 피아노가 끝나면 수학, 수학이 끝나면 바로 영어. 쉬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학원을 옮겨 다녀야 했거든요.
들뜬 마음으로 피아노를 치니 손가락이 날아갈 것 같았어요. 자전거를 타고 공원에 가서 놀려면 빨리 피아노 연습을 해치워야 했거든요. 피아노 진도표의 동그라미가 금세 다 색칠됐어요. 평소보다 훨씬 일찍 끝났어요. 진도표를 내고 나가려고 하는데 승현이가 날 불렀어요. 승현이도 나처럼 피아노를 빨리 치고 나왔나 봐요.
"우리 떡볶이 먹고 갈래?"
승현이가 꼬드겼어요. 갑자기 군침이 돌았어요. 수학 학원에 가려면 40분 정도 시간이 남으니 떡볶이를 먹은 다음에 공원에 가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승현이는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인데 나보다 학원을 더 많이 다녀요.
"넌 무슨 무슨 학원 다녀?"
내가 물었어요.
"피아노, 태권도, 눈높이, 영어……. 너무 많아서 다 못 세겠어."
승현이는 빨개진 입술을 삐쭉 내밀며 한숨을 내쉬었어요.
"왜 그렇게 많이 다녀?"
"내 짝꿍은 나보다 더 많이 다니는데? 걔는 학원비만 한 달에 200만 원이 넘는대! 그래서 난 처음엔 학원비 땜에 엄마한테 미안했는데 내 짝꿍 얘기 듣고 나서는 하나도 안 미안해. 내 학원비는 겨우 100만 원밖에 안 되거든."
승현이는 라일락 아파트에 살아요. 그 아파트는 우리 동네에서 평수가 제일 넓어요. 라일락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진달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무시해요. 자기네 아파트 길로는 지나다니지도 못하게 해요. 진달래 아파트는 평수가 작거든요. 그래도 우리 집은 진달래 아파트보다 넓어서 다행이에요. 하지만 라일락 아파트 앞에서는 어쩐지 창피해져요. 라일락 아파트에는 학원을 열 군데나 다니는 아이도 있대요.
떡볶이를 다 먹고 자전거를 타러 가려고 하는데 승현이가 날 또 붙잡았어요. 문방구에 가서 게임 한 판 하자는 거예요. 시계를 보니 25분 정도 남았어요. 6시까지 수학 학원에 가면 되니까 한 판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서 문방구로 갔어요.
"학원 버스 놓치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게임을 다섯 판이나 해버린 거예요. 승현이는 허겁지겁 뛰기 시작했어요. 나도 덩달아 뛰었어요. 아무래도 공원은 다음에 가야 할 것 같아요.
자전거 자물쇠를 풀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어요. 이상하다. 열쇠가 없어요. 왼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어요. 열쇠가 없어요. 바지 주머니에도, 가방에도, 어디에도 없어요. 나는 놀라서 피아노 학원으로 다시 뛰어갔어요. 모든 방을 다 뒤졌지만 열쇠는 없었어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어요. 혹시라도 열쇠가 피아노 밑으로 들어갔으면 어쩌죠?
"얘, 너는 학원 버스 안 타니?"
원장실에 선생님 대신 앉아 있던 아줌마가 말했어요. 나는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며 피아노 학원을 나왔어요. 목이 빠져라 땅만 보며 걸었어요. 열쇠를 찾기 위해서요. 엘리베이터 문 사이까지 들여다봤지만 열쇠는 없었어요. 눈앞이 핑핑 도는 것 같았어요. 나는 무작정 떡볶이집으로 갔어요.
"아줌마, 혹시 열쇠 못 보셨어요?"
"열쇠? 좀 전에 청소했는데 열쇠는 못 봤는데……. 아, 딱지는 하나 본 것 같기도 하고."
"딱지요? 어딨어요?"
"어딨긴. 벌써 갖다 버렸지. 저기, 나무 아래."
아줌마는 눈짓으로 방향을 가르쳐 주셨어요. 나는 그곳으로 뛰어갔어요. 아줌마가 열쇠를 딱지로 착각하고 버렸을지도 모르죠. 나무 앞에는 쓰레기 더미가 잔뜩 쌓여 있었어요. 지금까지 학원에 다니면서도 이런 쓰레기 더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시간은 벌써 일곱 시가 다 되었어요. 수학 선생님이 엄마한테 전화할지도 몰라요. 며칠 전에 본, 망친 수학 점수도 엄마한테 이르겠죠. 가슴이 쓰레기봉투를 꽉 매듯이 조여 왔어요. 나는 쓰레기봉투를 풀어 보려고 했지만 냄새가 너무 심해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집에서도 이런 걸 만져본 적이 없는걸요.
나는 쓰레기봉투 풀기를 포기하고 문방구로 향했어요. 게임기는 내 속도 모르고 저 혼자서 신나게 돌아가고 있었어요. 점점 하늘이 컴컴해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땅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 사냥개처럼 열쇠를 찾아다녔어요. 벌써 저녁 여덟 시가 넘었어요. 수학 학원이 끝나고 영어 학원에 가 있을 시간이에요. 하지만 나는 갈 수 없어요. 열쇠를 찾기 전까지는요. 오늘 걸었던 길을 계속 빙빙 돌았어요. 날마다 오고 갔던 길인데 이렇게 끔찍할 수가 없었어요. 열쇠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나는 다시 쓰레기 더미가 쌓인 나무 앞으로 갔어요. 쓰레기봉투를 풀어야 하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했어요. 찢어진 쓰레기봉투 밑으로 김칫국물이 찐득하게 말라붙어 있었어요. 냄새가 고약했어요. 엄마 아빠한테 사실대로 얘기했다가는 혼만 나겠죠.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아요. 날 붙잡았던 승현이가 원망스러웠어요. 열쇠만 찾는다면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못 받아도, 아니 학원을 지금보다 두 군데 더 다녀도 괜찮을 것 같아요. 눈을 질끈 감은 채 쓰레기봉투에 손을 갖다 댔어요. 손이 덜덜 떨렸어요. 그때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동수야! 뭐 하는 거야! 얼마나 찾아다닌 줄 아니?"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까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정말 창피했지만 나는 딸꾹질까지 하며 엉엉 울었어요. 정장을 입은 걸 보니 아마도 엄마는 회사에 있다가 학원 전화를 받고 왔나 봐요. 나는 쓰레기봉투를 풀어봐야 한다고 했지만 엄마는 더럽게 뭘 만지느냐며 내 손을 찰싹 때렸어요. 결국 엄마한테 끌려가다시피 집으로 가야 했어요.
다음 날 다시 그곳에 갔지만 나무 밑에 쓰레기 더미는 보이지 않았어요. 그 자리는 언제 쓰레기가 있었느냐는 듯이 텅 비어 있었어요. 청소차가 갖고 갔나 봐요. 첫 번째 자전거를 잃어버렸을 때처럼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자전거 열쇠를 잃어버린 뒤로 나는 학원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됐어요. 집에 자전거 키가 하나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 말로는 없대요. 아빠가 열쇠 아저씨를 불러주셨지만, '요즘에는 자전거 자물쇠를 하도 정교하게 만들어서 특수한 기계가 필요하다'며 손을 내저으셨어요. 도둑맞지 않으려고 비싼 자물쇠를 달아둔 것이 오히려 애물단지가 된 셈이죠. 새로 자전거를 사달라고 해봤지만 엄마는 약속은 약속이라며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어요. 이번에는 아빠도 내 편이 될 수 없대요.
자전거는 피아노 학원 앞 은색 철봉에 계속 매여 있어요.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습관처럼 자전거를 보게 돼요. 자전거는 점점 녹이 슬어서 갈색 빛으로 변해가요. 자전거가 눈이나 비를 맞고 있는 날에는 내 가슴도 아프고 시려요. 이불이라도 덮어주고 싶어요.
나는 종종 이런 상상을 해요. 도둑맞은 첫 번째, 두 번째 자전거가 어느 날 갑자기 긴 여행을 마치고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요. 첫 번째 자전거는 내가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탔던 거여서 많이 찌그러졌고 두 번째 자전거는 여기저기 박혀서 상처가 많아요. 하지만 상상 속에서는 아주 멋지고 근사한 모습으로, 바구니에는 선물을 가득 싣고 오는 거예요.
그리고 세 번째 자전거는 자기 몸에 달린 자물쇠를 모두 푼 채 자유롭게 날아가는 거예요! 생각만 해도 꼭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달릴 때처럼 마음이 상쾌해지죠.
하지만 자물쇠를 네 개나 주렁주렁 매달은 자전거는 누가 훔쳐가지도 못하나 봐요. 날마다 철봉에 매여 있어야 하는 자전거. 불쌍한 마음에 자전거를 쓰다듬어 봤어요. 차가웠어요. 그때 갑자기 자물쇠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어요. 마치 '난 아직 살아 있다, 어서 날 풀어 달라!'고 외치는 것 같아요. 차라리 이 자전거가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누군가가 훔쳐가 주든가요. 역시, 그날 용기 내서 쓰레기봉투를 열어볼 걸 그랬어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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