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1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작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 송혜진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이란 이런 날을 말하나 봅니다. 진한 꽃냄새가 바람을 타고 교실 안으로 확 끼쳐오네요. 운동장에선 옆 반 아이들이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고요.
민석이는 창문가에 있는 1분단 맨 앞자리에 앉아서 창 밖을 바라봅니다. 민석이는 이렇게 좋은 날에 교실에만 앉아있는 게 몹시 따분해요. 당장이라도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서 옆 반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고 싶습니다.
민석이만 그런 게 아니에요. 짝꿍 유미도 그런 마음입니다. 민석이 뒤에 앉은 은수와 은수의 짝꿍 찬영이도 그런 마음입니다. 그 뒤에 앉은 미영이, 현석이도 그런 마음입니다. 반 아이들 전체가 그런 마음입니다.
아이들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은 수업에만 열심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나무에 관해서 배웁니다.
"독수리는 쥐를 잡아먹고 살아요. 염소는 풀을 뜯어먹고 살지요. 그렇다면 나무는 어떻게 필요한 양분을 얻을까요?"
운동장에서 와아 하는 환호성이 들려옵니다. 누가 골을 넣은 모양이지요. 민석이는 부러운 듯 다시 운동장을 바라봅니다. 민석이는 반에서 가장 키가 작지만, 축구 하나만은 제일이에요. 민석이는 자기라면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민석이 짝꿍 유미도 민석이와 같은 마음인지 계속해서 창 밖을 힐끔거립니다. 민석이와 유미만 그런 게 아닙니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그런 마음입니다. 옆 반 아이들보다 자기네 반이 더 축구를 잘 할 것만 같습니다.
바로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민석이의 몸이 조금씩, 조금씩 창 쪽으로 기울어지는 겁니다. 민석이는 바로 앉으려고 해봤어요. 하지만 몸이 똑바로 서지가 않아요. 바로 앉으려고 할수록 몸은 더 창 쪽으로 기울어지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런 민석이를 발견합니다.
"김민석! 너 왜 몸이 책상 밖으로 나가 있어? 바로 앉지 못하겠니?"
"선생님!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몸이 나도 모르게 자꾸 옆으로 기울어져요."
"공부하기 싫으니까 그런 거지."
선생님은 민석이에게 꿀밤을 한 대 먹입니다. 민석이는 억울합니다. 바로 앉고 싶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는데 어떻게 합니까? 민석이는 몸을 똑바로 세우려고 한 번 더 시도해보지만 역시 안 됩니다.
그래서 민석이는 선생님이 교탁 쪽으로 걸어가는 사이, 몰래 책상과 의자를 창 쪽으로 한 발자국 옮깁니다.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책상을 옮겨서 똑바로 앉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입니다. 민석이가 바로 앉았다고 생각한 선생님은 그제야 다시 수업을 합니다.
"식물은 햇빛을 받아서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요. 이것을 광합성이라고 해요. 나무의 잎은 초록색을 띠지요? 광합성은 바로 초록색을 띠는 식물의 잎에서 일어나요."
선생님이 계속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민석이 짝꿍 유미의 몸이 민석이 쪽으로 조금씩 기울어집니다. 유미는 민석이처럼 꿀밤을 먹기 싫어서 바로 앉으려고 해봅니다. 그렇지만 이상하네요. 몸이 똑바로 서지가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이 그런 유미를 발견합니다.
"서유미! 이번에는 왜 네가 삐딱하게 앉아 있는 거니? 바로 앉아!"
"선생님! 저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몸이 저절로 기울어져요."
"거짓말하지 말고 당장 바로 앉지 못해?"
유미는 선생님이 잠시 칠판을 보는 사이, 민석이처럼 책상과 의자를 살짝 민석이 쪽으로 옮깁니다. 그렇게 하니 바로 앉은 것처럼 보입니다.
민석이와 유미가 책상과 의자를 창가 쪽으로 한 발자국씩 옮기고 나자, 이번에는 뒤에 앉아 있던 은수와 찬영이가 그렇게 합니다. 책상 줄이 바르지 않으면 선생님께 혼나기 때문에 그러는가보다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은수와 찬영이도 몸이 자꾸만 창문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뒤에 앉아 있는 아이들도 차례차례 책상을 창 쪽으로 옮깁니다. 그 친구들도 몸이 창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해서 맨 창가 쪽에 있는 민석이네 분단은 모두 오른쪽으로 한 발자국씩 책상을 옮겼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옆에 있는 2분단 아이들이 창가 쪽으로 한 발자국씩 책상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책상 간격이 맞지 않으면 선생님께 혼나기 때문에 그러는가보다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다른 분단 아이들도 몸이 아주 조금씩 창문 쪽으로 기울고 있었던 겁니다.
모두 똑바로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책상과 의자를 옆으로 옮긴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반 아이들 전체가 창문 쪽으로 한 발자국씩 책상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민석이의 몸은 아까보다도 더 많이 기울어집니다. 그 바람에 민석이의 옆구리는 활처럼 휘었습니다. 민석이는 선생님께 또 혼나기 싫어서 책상과 의자를 한 발자국 더 창 쪽으로 옮깁니다.
그러자 유미도 한 발자국 더 민석이 쪽으로 책상을 옮깁니다. 그러자 뒤에 앉은 은수와 찬영이도 그렇게 합니다. 미영이, 현석이, 1분단 아이들, 2분단 아이들, 나중에는 반 전체가 또 그렇게 합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수업만 합니다.
"여기 화분이 두 개 보이죠? 하나는 그늘에서 자라서 잎이 노랗게 되었고 튼튼하지도 않아요. 그렇지만 나머지 하나는 햇빛을 잘 받아서 잎도 파랗고, 키도 크죠? 이렇게 식물은 햇빛을 받으면 잎이 싱싱한 초록빛이 되고, 양분도 많이 만들어서 키도 쑥쑥 자라요."
선생님이 수업을 계속하는 동안, 민석이의 몸은 점점 더 기울어집니다. 그래서 계속 책상을 옮기다 보니, 이제는 민석이의 머리가 거의 창문에 닿을 지경입니다.
조금만 더 기울어지면 머리가 창문 밖으로 빠져나갈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이 뭐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민석이는 정말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일까요? 활처럼 굽어있던 민석이의 몸이 점점 연둣빛으로 변해가는 겁니다. 처음엔 얼굴이 연둣빛이 되더니, 그 다음엔 목이, 가슴이, 팔이 차례로 연둣빛으로 변해갑니다.
이러다가는 민석이의 몸 전체가 배추애벌레처럼 온통 연둣빛이 될 것만 같습니다. 민석이만 그런 게 아니에요. 짝꿍 유미의 얼굴도 서서히 연둣빛으로 변해가고 있어요.
유미의 몸도 자꾸만 휘어져서 이제는 머리가 거의 민석이의 오른쪽 옆구리에 닿을 듯해요. 민석이와 유미만 그런 게 아니에요. 반 아이들 전체가 창가 쪽으로 계속 몸이 기울어지고 있고, 얼굴은 연둣빛으로 변해가고 있어요.
운동장에선 아까보다 더 큰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들려옵니다. 옆 반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돌리고 있는 겁니다. 그것을 본 민석이는 왠지 몸은 더 휘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수업만 합니다.
"그러니까 나무가 양분을 만들려면 꼭 햇빛이 있어야 해요. 햇빛을 받으면 나무는 더 푸르고 싱싱해져요."
그런데 이건 또 웬일일까요? 민석이의 귀밑이 간질간질 하더니, 귀밑에서 뭔가가 만져지는 겁니다. 그건 푸른 잎사귀입니다. 연둣빛으로 변한 민석이의 귀밑에서 푸른 잎사귀가 피어나고 있는 겁니다. 귀밑에서만 잎사귀가 피어나는 게 아니에요. 어깨 위에서도, 뒤통수에서도 피어납니다. 이를 어쩌나? 민석이는 나무로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있자니까 이번에는 민석이의 팔이 자기도 모르게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머리 위로 올라가더니 창 쪽으로 휘어집니다. 그렇게 휘어진 두 팔에서는 나뭇가지들이 갈라져 나오고, 하나 둘씩 잎사귀도 피어납니다.
민석이만 그런 줄 알았는데, 짝꿍 유미도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로 그렇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은수와 찬영이도 그러고 있습니다.
민석이는 선생님께 또 야단맞을까봐 계속 창 쪽으로 책상과 의자를 옮깁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책상을 옮겨도 똑바로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칠판만 보면서 수업을 합니다.
"이제 나무에게 햇빛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지요? 나무는 햇빛이 없으면 살수가 없어요. 그래서 베란다에 놓아 둔 나무들은 햇빛이 많은 쪽으로 자꾸 굽어 자라는 거예요."
민석이의 두 팔은 계속해서 가지를 치면서 창밖으로 뻗어나갑니다. 민석이의 상체는 완전히 창밖으로 나가 있습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창 밖으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민석이만 그런 게 아닙니다. 반 아이들 모두가 나뭇가지로 변한 팔을 머리위로 추켜올리고는 계속 몸이 휘어지고 있습니다. 내내 칠판만 보고 있던 선생님이 뒤돌아봅니다. 선생님은 깜짝 놀라서 소리칩니다.
"아니, 너희들! 수업 중에 다들 손 들고 뭐 하는 거니? 그리고 왜 다들 삐딱하게 앉아 있는 거야? 모두 손 내리고 바로 앉지 못해?"
그러자 창밖으로 굴러 떨어지기 직전인 민석이가 아주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말합니다.
"선생님!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제 몸이 나무로 변하고 있어요."
"뭐라고?"
"나무는 햇빛을 많이 받아야 잘 자란다고 선생님께서 방금 가르쳐 주셨잖아요. 제 몸은 이제 나무예요. 그래서 햇빛을 더 많이 받고 싶어서 자꾸 몸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나 봐요."
"요 녀석이 어디서 거짓말이야?"
그러자 두 손을 머리 위로 뻗친 채로 민석이 옆구리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짝꿍 유미가 거의 울상이 되어서 말합니다.
"민석이 말이 맞아요, 선생님! 제 몸도 자꾸만 나무로 변하고 있어요. 이것 보세요. 얼굴이 온통 초록색으로 변했잖아요. 온몸에 잎이 나고 가지도 계속 자라고 있는 걸요? 선생님 저 좀 어떻게 해주세요."
"이 녀석들이 수업하기 싫어서 이 야단들이지?"
"선생님,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그때 복도 쪽에 앉아 있던 규진이가 벌떡 일어납니다. 규진이도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규진이의 몸은 아직 연둣빛이 아닙니다. 잎도 하나도 나지 않았고, 가지도 거의 자라지 않았습니다. 규진이가 볼멘소리로 말합니다.
"선생님! 이건 불공평해요. 창가에 앉아 있는 아이들만 햇빛을 많이 받잖아요. 나무는 햇빛을 많이 받아야 양분을 만들어서 잘 자란다고 선생님이 방금 가르쳐 주셨잖아요. 저도 창가 쪽에 앉게 해주세요."
그러자 규진이의 짝꿍 민서가 덩달아 일어나면서 말합니다.
"맞아요, 선생님! 보세요! 민석이랑 유미는 햇빛을 많이 받아서 아주 파랗고 통통해졌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노랗고 빼빼 말랐단 말이에요. 우리도 창가 쪽에 앉게 해주세요."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외칩니다.
"우리도 창가에 앉게 해주세요."
"우리도 햇빛 많이 받게 해주세요."
선생님은 너무 시끄러워 한쪽 귀를 막고는, 다른 쪽 손으로 교탁을 탕탕 치면서 말합니다.
"조용, 조용! 모두 조용!"
아이들은 더 큰 소리로 말하면서 계속 책상을 창가 쪽으로 옮깁니다. 이제 책상은 청소할 때처럼 완전히 창 쪽으로 밀쳐져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입을 모아서 큰 소리로 합창을 합니다.
"선생님, 우리는 자라나는 나무예요!"
"나무에게는 햇빛이 필요해요!"
"우리 모두 밖에 나가게 해주세요!"
귀를 막고 있던 선생님은 그제야 귀에서 손을 떼면서 소리칩니다.
"내가 졌다, 졌어! 좋아, 이번 시간만 운동장에서 놀기로 해! 하지만 이번만이다."
아이들은 야호를 외치면서 창문으로 달려듭니다. 민석이가 제일 먼저 창밖으로 굴러 떨어지고, 뒤이어 유미와 은수와 찬영이가 창문에서 폴짝 뛰어내립니다.
"이 녀석들! 복도로 해서 나가야지! 창문 넘어 다니는 거 교장 선생님께서 아시면 화내신단 말이야."
선생님이 이렇게 소리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마구마구 창을 넘습니다. 뛰어내리다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찧는 아이, 바닥에 얼굴을 부딪치는 아이, 발을 헛디뎌 떼굴떼굴 굴러가는 아이, 아주 난장판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도 아프지 않다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나서는 이내 까르륵거리며 운동장 중앙으로 달려갑니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편을 갈라서 축구를 시작합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다음 수업종이 울렸지만, 아이들은 들어갈 생각을 않습니다.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라고 목이 터져라 부르든지 말든지, 교장 선생님이 창가에서 성난 표정으로 투덜거리든지 말든지, 아이들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운동장을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닙니다.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