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베드로전 김필곤 목사............... 조회 수 3241 추천 수 0 2010.01.24 15:23:07
.........
성경본문 : 벧전4:10-11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문학가 쉘 실버스타인의 작품 중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하는 글입니다. 한 소년의 집 근처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소년은 어린 시절 이 나무에 올라가 놀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그네를 매고 그네를 뛰기도 했습니다. 나무는 그에게 놀이터를 제공했고 그 그늘에서 그는 마냥 즐겁게 놀았습니다. 그가 자라서 나무 열매를 구합니다. 나무는 그에게 좋은 열매를 줍니다. 그가 청년이 되어 집에 땔감이 필요했습니다. 나무는 가지를 내어 주었습니다. 장년이 되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배가 필요했습니다. 나무는 말했습니다. 나의 몸통을 베어다가 배를 만들어서 타고 목적지로 가라고 했습니다. 소년이 백발이 되어서 노인의 몸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나무는 밑동만 남아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밑동에 걸터앉아 쉬었습니다. 이 글의 마지막은 "나무는 너무 행복했습니다."라고 끝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가 그런 분일 수 있습니다. 나를 도와 주는 동료가, 구역 식구가, 교회 식구가 그런 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입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 병든자 죄인을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 섬겼습니다. 우리를 위해 피와 물을 다 쏟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생명까지도 내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 가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지금도 물어 보고 있을 것입니다.
"내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네죄를 사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위 해몸을 주건만 날무엇주느냐 너위해 몸을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185장 1절)"
이제 2002년 둘째 주일입니다. 올 한해도 하나님을 위한 봉사, 교회와 성도를 위한 봉사, 가족을 위한 봉사, 이웃과 사회를 위한 봉사, 나라와 민족을 위한 봉사의 현장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미약하지만 그동안 사회 교육원을 통해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면 소년 소녀 가장을 도왔습니다. 작년 부터는 각부서 별로 사회봉사를 하고 일만 생명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여 40여명의 아이들과 장애인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이 일에 동참하여 봉사하는 교회로 쓰임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를 위해 주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은혜을 맡은 청지기로 봉사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봉사하는 삶은 희망이 있습니다. 봉사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봉사하는 삶은 건강합니다. 봉사하는 삶은 보람이 있습니다. 이 사회가 병들고 가정이 병들고 개인이 병드는 것은 봉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권력자가 봉사정신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가 시끄럽지 않습니다. 가정 식구들이 봉사 정신으로 가정을 섬기면 가정이 늘 행복합니다. 성도들이 봉사 정신으로 신앙 생활을 하면 세상이 밝아지고 신앙생활이 행복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에게 봉사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7절에 기도하라 8절에 열심히 사랑하라 9절에 서로 대접하라"고 말씀하고 마지막으로 봉사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봉사 부분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봉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먼저 10절에 보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서로 봉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1. 비교의식이 아니라 은혜의식으로 봉사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저는 이것은 은혜의 원리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습니다. 사람이 봉사하면서 늘 비교의식을 가지고 봉사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은혜 의식을 가지고 봉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데도 비교하고, 자녀를 교육시키는데도 비교하고 직장에서 일하는데도 비교하고 심지어는 무엇을 입는데 먹는데도 늘 비교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인의 봉사란 비교의식을 가지고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늘 은혜 의식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올 한해도 하나님께서 건강 주시고, 물질 주시고, 기회 주시고, 일할 수 있는 일터 주시고, 섬길 수 있는 교회 주시고, 교회에서 봉사할 수 있는 직분 주시고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봉사할 수 있는 힘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이 봉사 정신이 약합니다. 우리 나라도 기독교 정신이 뿌리 내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지만 아직도 약합니다. 한국자원봉사포럼의 관계자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15% 정도가 자원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원봉사자의 나라로 불리는 미국은 자원봉사조직이 1백40만 개 이상이며 미 국민 의 56%가 이들 단체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고 영국은 국민의 50%가, 캐나다는 45% 이상이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이웃 일본만 해도 약 25%의 국민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이제 받은 복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데 봉사할 때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비교의식을 가지고 하면 그 봉사는 오히려 자신에게 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일터 주신 것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직장에서 왜 똑같이 입사했는데 저 사람은 과장되고 나는 계속 대리로 있느냐고 비교하며 봉사한다면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교회에서도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하나하며 비교하면 봉사에 힘이 없고 오히려 시험에 들어 분노와 시기를 마음에 담고 봉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 비유를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타국으로 가면서 종들에게 금 다섯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비교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맨 뒤에 받았으므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주인공을 끝에 나오는 것인데 그래도 첫 번 사람보다 더 많이 주겠지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최고 적게 받았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을 받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한 것입니다. 내가 무엇이 모자라기에, 내가 무엇이 못났기에 저 사람들보다 적게 맡는단 말인가? 악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노가 생겼습니다. 주인을 굳은 사람 불공평한 사람, 불의한 사람, 악한 사람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 배차라고 땅에 파묻어 놓아 버렸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른 두 사람은 칭찬을 받고 더 많은 것을 맡김받았은데 자신은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책망을 받고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되는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정도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무익한 종,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종, 쓸데 없는 종, 오히려 피해만 주는 종으로 낙인찍혀 쫓겨나 슬피울며 이를 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은혜의 원리를 잃어 버린 사람입니다.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주인이 그 재능을 알고 재능대로 준 것입니다. 한 달란트도 엄청난 것입니다. 1달란트의 가치는 6천 데나리온 가량 되고(마18:24)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1일 품삯이므로 1달란트는 일반 노동자가 거의 20년 동안 일을 하여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아마 자신 홀로만 한 달란트 받았으면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료들과 비교하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회사에서 일을 하든, 학교에서 공부를 하든,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봉사를 하든 비교의식으로 일하면 하나님께서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비교하여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좋은 것같으면 우월감이 생겨 교만해집니다. 비교하여 자신이 조금 못한 것 같으면 열등감이 생겨 비참해 집니다. 가인을 보십시오. 예배드리는데도 비교의식을 가지고 드립니다. 동생 예배는 받고 왜 내 예배는 받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분노를 품습니다. 미워합니다. 결국 살인합니다. 비교의식을 가진 사람은 자꾸 다른 사람의 것을 보고 서로 봉사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을 제어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을 자신의 마음대로 조정하려고 합니다. 결과는 행복하지 못합니다. 불행해 집니다. 봉사란 은혜 의식으로 할 때 진정한 봉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봉사란 헬라어로 디아코니아입니다. 종이 상밑에서 심부름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미니스트리(ministry)라고(엡4:12)표현하고 있는데 받들어 섬긴다는 뜻이 담겨있는 말입니다. 대가없이 하는 수고가 봉사입니다.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자원해서 기쁨으로 해야 봉사입니다.(시40:8)
내가 무엇을 맡았느냐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봉사는 자존심 문제가 압니다. 평북 정주에 있던 명문 오산학교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당시 그 동네에는 아주 똑똑한 청년이 살았습니다.그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청년이었습니다.그는 비록 집안이 가난해서 머슴살이를 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오히려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그는 주인을 위한 최상의 봉사를 했습니다. 매일같이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닦아놓곤 했습니다.주인은 이 청년이 머슴살이를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 학자금을 대주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습니다.마침내 그 청년은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 선생님이 됐습니다.이 청년이 바로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조만식 선생이었습니다. 카터는 대통령이었던 사람인데도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집없는 사람들의 집을 지어 주고 다니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현역 국회의원인데고 교회에 나와 차량봉사를 합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봉사입니다.

2. 소유의식(주인의식)이 아니라 청지기 의식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대의 청지기는 두가지입니다. 디스펜사토르(분배자)로 이는 주인의 한 가족 전체의 가사 정리를 책임지고 가족의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저장하고 분배하는 청지기입니다. 또 하나는 빌리쿠스로 주인의 부동산을 관리하고 주인의 소작인들에 주인을 대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때 청지기는 관리하고 있는 것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주인의 뜻대로 주인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청지기란 주인의 것을 맡은 사람입니다. 주인의 뜻에 맡게 일해야 할 사람입니다. 선한 청지기는 자신의 것처럼 일하지 않고 주인의 뜻에 거역하여 일하지 않습니다. 악한 청지기는 모든 것이 자기 것인 양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올 한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 하나님이 맡겨준 것입니다. 건강도, 재물도, 지식도, 명예도, 지위도, 직분도, 직장도, 사업장도, 자녀도 교회도 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일하여야 합니다. 내 것이라는 소유의식을 가질 때 그 때부터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국가도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청지기로 부름받은 사울을 보십시오. 그렇게 성령 충만하였고 준수한 용모를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효성도 지극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초대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맡겨준 일을 충성스럽게 봉사하지 못하고 그렇게 인생을 비참하게 불안과 공포 속에서 비참하게 살다가 결국 전쟁터에서 세 아들은 전사하고 자신은 자살해야만 했을까요? 무엇으로 인해 그의 인생이 수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까? 우리는 그가 수렁의 길로 들어 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성경 사무엘상 13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 대군이 쳐들어 왔습니다. 백성들이 두려워 바위에 숨고 전의를 상실하고 떨고 있었습니다. 이 때 사울이 무엇을 합니까? 13장 9절보니까 사울이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렇듯합니다. 사무엘이 약속된 날짜에 오지 않았으니 사무엘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를 드리는 권한는 누구에게 있는 것입니까? 제사장에게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왕이 삼권을 가지고 나라를 흔들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진다해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권력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선이 없습니다. 내 것으로 내가하는데 누가 시비하냐는 것입니다. 맡겨준 자의 의도를 잃어 버리게됩니다. 교만해지게 됩니다. 그 후 어떻게 됩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청지기로 바꾸어 버립니다. 이 후부터 사울의 인생은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어느날 다윗이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치고 승리하였습니다. 다윗이 승리하고 돌아 오니 여인들이 거리에 나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노래합니다. 사울이 청지기 의식을 가졌으면 그것 무난히 넘어갈 수 있는 일입니다. 자기가 이겨주지 못한 사람 다윗이 이겨 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러나 그는 권력이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성경 삼상 18장 8절 말씀 읽어 보십시오. 오해하는 것입니다. 억지를 부리는 것입니다. 시기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때 사탄이 사울을 가만히 두겠습니까? 10절 보세요.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할 사람이 사탄의 종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미끄러져 버립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있어서 소유의식이 아니라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실제적인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다 모든 것 놓고 갈 것입니다. 잠깐 맡았다가 관리하다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국적 인종 종교를 초월, 세계 79개국에서 11만5000가구의 주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어준 해비타트 운동을 하는 풀러 총재가 있습니다. 그분은 28세의 나이에 이미 백만장자가 된 사람입니다. 엄청난 규모의 저택에는 가정부와 비서가 여러 명 있었습니다. 최고급 자동차를 비롯, 보트와 자가용 비행기도 있었습니다. 호수를 낀 멋진 별장이 있고 그와 별도로 목장에는 수백 마리의 말과 소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앙 좋은 아내가 어느날
“당신은 차라리 돈과 결혼하는 편이 나았어요.남을 위해 조금도 봉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이제 갈라설 때가 됐어요”편지를 남기고 떠나버렸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아내에게 다시 시작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전 재산을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선교사, 시민운동가로 살던 그들이 76년부터 시작한 사업이 해비타트 운동입니다. 그들 부부는 청지기로서 삶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행복을 찾았습니다. 몇 년전 조앤 크로크라는 할머니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에 써달라며 8,000만달러를 자선 기부금으로 구세군에 내놓았습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000억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돈으로, 구세군 133년 역사상 최대규모라 합니다. 그녀는 기부 소감을 "현금 수송차가 영구차를 따르는 것을본 적이 없다"는 남편 레이 크로크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레이 크로크는 52세에 사업을 시작하여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를 세계적인 레스토랑체인으로 키운 기업인입니다. 오늘날 맥도날드 레스토랑은 전세계 111개국의 2만3,000개 체인점에서 연간 330억달러의 매출고를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오직 청지기 정신으로 사업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피터 드러커교수는 그의 저서 "혁신과 기업가정신"에서 구멍가게를 거대기업으로 일으킨 레이 크로크의 기업경영을 "경영기술"의 극치로 꼽고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건강도, 지식도, 지혜도, 능력도 우리의 부도 우리의 외모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잠깐 맡았을 뿐입니다. 맡기신 분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가장 값진 봉사입니다.

3. 자기 영광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 영광의식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11절에 보면 하나님의 공급하는 힘으로 봉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설교로 봉사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봉사하려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공급하는 힘으로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범사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고입니다. 우리의 봉사는 결과가 자신의 영광을 위한 봉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봉사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봉사의 결론이 되어야 하며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지도 않으면서 주인 노릇하는 사람도 싫어하시지만 열심히 봉사해 놓고 스스로 영광을 받는 것도 싫어 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봉사는 많이 있습니다. 숨겨진 봉사, 작은 일의 봉사, 다른 사람의 명예를 지키는 봉사, 듣는 봉사 등 모든 봉사는 공로의식로 해서는 아니됩니다. 자신이 영광을 거두는 것보다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이 땅에서 영광을 다 받으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진정한 평가는 그 사람이 떠난 후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우수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장로님께서 천국에 갔습니다. 천국식당에 가서 앉아있는데, 30분을 기다려도 아무도 찾아와서 뭘 드시겠냐고 물어보지를 않습니다. 참다 못한 장로님은 지나가 버리는 한 종업원을 억지로 붙잡고 따졌습니다. "왜 물도 갖다주지도 않고 뭘 드시겠냐고도 물어보지도 않는거요? 서비스가 뭐 이래요?" 종업원이 하는 말, "장로님, 여기는 셀프서비스입니다",
장로님이 다시 받아 칩니다. "그러면 왜 저기 있는 사람들은 셀프서비스가 아니고, 종업원들이 서비스를 직접 하는거요?" "아 저분들 말입니까? 저 분들은 집사님들과 평신도들입니다. 저분들께서는 지상에서 서비스를 항상 남에게 베풀고 남을 잘 섬겼기 때문에 섬김을 받는 것입니다". 종업원의 이 말에 장로님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 목사님은 어디에 있소? 보이지를 않는데..." 종업원이 말했다. "아 그 목사님요? 지금 막 배달나가셨어요."
주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야말로 가치있는 것입니다. 나는 봉사하면서 조롱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 때문에 수치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 영광스럽게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남편을 위해 봉사하다 이 땅에서 보상 못받는다고 억울해 할 필요없습니다. 저도 목회자로 일하면서 참 상대하기 힘든 사람을 만날 때 있습니다. 그럴 때 봉사할 마음이 싹 가셔 버립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가슴에 들려 주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래 그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너가 하늘 나라에서 받을 십자가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그런 모습을 보여 줌으로 그 분을 이해하고 더 목회 잘 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한 기회로 받아 들이면 그 봉사도 신이 나는 것입니다.

어제 모 신문을 보니까 중증 장애아 아들처럼 돌보는 인제 상계 백병원 김흥동 교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평생 나환자를 돌보며 사는 모습을 보면서 "의사는 돈버는 직업이 아니다"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대가 없는 사랑"으로 장애아들을 돌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기사중에 저의 마음을 감동케 한 것은 김교수님으로부터 10년째 돌봄을 받고 있는 선천성 근육병을 앓고 있는 21살의 김지태씨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병은 온몸의 근육이 서서히 약해지면서 각종 합병증으로 인해 결국 죽음에 이르는 희귀 질환입니다. 수개월 전부터 거의 누워 지낼 정도로 병세가 악화된 김씨는 성탄절 한달 가량 앞두고 밤을 새워 1000마리의 종이 거북이를 접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생명을 아낌 없이 돌보아 주는 김 교수에게 성탄선물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손가락을 움직일 힘조차 없어지기 전에 선생님에게 선물을 꼭 하고 싶었기 때문에 종이 거북이를 접었다고 합니다. 새해가 시작되어 2주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청년은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힘으로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선생님에게 선물하기 위해 종이거북을 접었습니다. 이 청년에 비하면 우리는 많은 것이 아직 남아 있고 주어진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남아 있는 인생을 보내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베드로 전서4:10-11/김필곤 목사(2002.1.1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2816 고린도전 예비하시는 하나님 고전2:9  조용기 목사  2010-01-27 2377
2815 베드로후 거짓 것을 조심하자 벧후2:1-14  최장환 목사  2010-01-27 2119
2814 창세기 기다리는 자 창16:1-6  최장환 목사  2010-01-27 2084
2813 누가복음 죄사함 눅7:41-47  강종수 목사  2010-01-25 2454
2812 레위기 하나님께 생각난 자 레19:19-30  최장환 목사  2010-01-25 4024
2811 요한계시 충성되고 살아있는 교회 계3:7-13  최장환 목사  2010-01-25 2412
2810 창세기 생각을 바꾸면 감사가 보인다. 창37:12-28  최장환 목사  2010-01-25 4587
2809 민수기 하나님의 원칙 민27:1-14  최장환 목사  2010-01-25 2362
2808 룻기 주님의 귀한 신부 룻3:1-18  최장환 목사  2010-01-25 1901
2807 아가 고마운 사람 아3:1-11  최장환 목사  2010-01-25 2205
2806 요한계시 올바른 방향 계20:1-15  최장환 목사  2010-01-25 1606
2805 창세기 하나님의 의도 창14:1-20  최장환 목사  2010-01-25 1726
2804 사도행전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행9:1-9  최장환 목사  2010-01-25 2528
2803 출애굽기 내 안에 하나님의 자리 출26:1-25  최장환 목사  2010-01-25 4200
2802 요한일서 서로 사랑해야 할 형제 요일4:19-21  김필곤 목사  2010-01-24 2693
2801 느헤미야 힘이 주어졌을 때 느5:14-19  김필곤 목사  2010-01-24 2052
2800 누가복음 마지막까지 잃지 말아야 할 기회 눅16:19-31  김필곤 목사  2010-01-24 2361
2799 신명기 우리는 행복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 신33:29  김필곤 목사  2010-01-24 2504
2798 창세기 결코 중간에 포기할 수 없는 믿음의 백성 창15:1-7  김필곤 목사  2010-01-24 2260
» 베드로전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벧전4:10-11  김필곤 목사  2010-01-24 3241
2796 여호수아 새 출발의 다짐 수8:1-2  김필곤 목사  2010-01-24 2149
2795 신명기 역전하는 인생 신30:1-10  김필곤 목사  2010-01-24 2409
2794 다니엘 인격화 된 감사생활 단6:10  김필곤 목사  2010-01-24 2666
2793 사도행전 끝마무리 잘하는 신앙인 행14:19-28  김필곤 목사  2010-01-24 2510
2792 사도행전 승리와 승리 후의 자기관리(자기 우상화의 극복) 행14:8-18  김필곤 목사  2010-01-24 2181
2791 사도행전 악감을 품은 반대자 처리 방법 행14:1-7  김필곤 목사  2010-01-24 1682
2790 사도행전 수용과 거부 행13:42-52  김필곤 목사  2010-01-24 2370
2789 사무엘상 전쟁에 대한 신앙인의 자세 삼상17:45-47  김필곤목사  2010-01-24 2672
2788 이사야 하나님의 약속 사52:1-6  최장환 목사  2010-01-23 2586
2787 에배소서 은혜로 얻은 결과 엡2:11-22  최장환 목사  2010-01-23 2135
2786 히브리서 주님의 심정 히2:1-15  최장환 목사  2010-01-23 1991
2785 시편 하나님의 인도 시138:1-18  최장환 목사  2010-01-23 2372
2784 시편 하나님을 느끼는 자 시18:1-15  최장환 목사  2010-01-23 1978
2783 고린도전 알아야 할 것 고전6:12-20  최장환 목사  2010-01-23 3957
2782 에스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자 스2:64-70  최장환 목사  2010-01-23 4534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