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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6: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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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최장환 목사 |
참고 : | http://cafe.daum.net/smbible |
출 26:1-25 내 안에 하나님의 자리
최장환 목사
출 26:1-25까지의 말씀으로 '내 안에 하나님의 자리' 라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라고 1950년대에 여수 순천 공산당 반란 사건이 났을 때
그 아들이 순교당해서 참 마음이 아팠고요
그분은 소록도에 묻혀있는데 기념관에
손양원 목사님이 써놓은 글이 있는데
'나는 예수 중독자가 되어야 겠다.
술 중독자는 술로만 살다가 술로 인해 죽게되고
마약 중독자는 아편으로 살다가 마약으로 죽게 되나니
우리는 예수 중독자가 되어서 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죽자.
그래서 우리의 생활과 생명을 주님을 위해서 살면
주같이 부활되고 주의 종이니 주만을 위해서 일하고 내 일 하지 말자.'
술 중독자는 술로 나중에 결국 죽게 되고
마약 중독자는 결국 마약 때문에 죽게 되지만
예수 중독자는 예수로 죽으면 부활되고 정말로 귀한 복됨이 있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안에 하나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하나님이 내 안에 이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 안에 세상이 차지하고 있고, 욕심이 차지하고 있고,
나의 뜻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그것 때문에 나중에는 아픕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그것이 있으면 있을수록 기뻐지고
좋아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 하나님이 다 차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술 주정뱅이는 술이 차지 하고, 마약 하는 사람은 마약이 차지 하고 있습니다.
마약하는 사람은 마약만 눈에 보입니다. 술 주정뱅이는 술만 눈에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하나님만 쳐다보고 하나님을 따라가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자리는 정말로 내 드려야 할 자리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에 본문은 성막 중에서 위에 덮개가 네 덮개가 있는데요
첫 번째 덮개는 색깔이 가늘게 꼰 배실, 하얀색입니다.
청색 홍색 자색실로 짜졌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7절에 염소털로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는 14절에 붉은 물들인 빨간색 수양 가죽으로 되어 있고
네번째 마지막 덮개는 해달의 가죽으로, 물개 가죽으로 되어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어 있고 그 다음에 널판이 세워져 있는데 밑에
촉이 두 개가 있어서 서있는 겁니다.
그것이 안넘어 지도록 네줄로 되어 있고
안으로 안보이게 한줄로 엮어져 있는
그 널판을 여기다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막의 모형을 말합니다.
이것은 또 예수님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막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출애굽기에서 성막의 모형을 26장에 얘기를 하고 있어서
바로 그 성막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한 중앙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이 내 중앙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에 의해서 살고 그분에 의해서 죽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움직일 때도 성막이 한 중앙에 있고
정착해 있을때도 항상 한 중앙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듯이
우리도 어디를 가도 내 중앙에 그분이 계시고
우리가 어디를 앉아도 내 중앙에 주님이 항상 계셔야 될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어떤 주님이 내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하는지
이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1절을 보겠습니다.
1 너는 성막을 만들되 앙장 열 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 놓아 만들찌니
첫 번째로 왕이신데도 십자가를 지셔서 살리신 그 하나님이
내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보면 1절에 앙장 열 폭을 만들었는데
제일 먼저는 가늘게 꼰 베실이라고 했습니다.
가늘게 꼰 베실이라는 말은 하얀실로 그말입니다.
하얀 것은 예수님이 죄가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그다음에 청색이라는 말은 생명을 말합니다.
우리주님은 영원히 사는 생명이십니다.
그다음에 자색입니다. 자색은 왕이라는 말입니다.
그다음에 홍색은 십자가를 지셔서 피흘려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고 생명이 되시고 왕이시고
십자가를 우리를 위해서 지신 그분이시다.
그분이 우리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얼마나 중요한 얘기인지 알아야 합니다.
아까도 제가 말씀 드렸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이동할 때
앞에도 뒤에도 항상 지키면서 중앙에 모시고 갑니다.
우리도 어디서 무엇을 해도 죄 없으신 분이
나의 죄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그분이 왕이신데도 그 말입니다.
그런데 누구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겁니까?
나의 죄 때문에 그분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나 대신 죄값을 받아서 죽으실 분이 없습니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남편이 돌아가시니깐 아내가 너무 슬피 우는 겁니다.
당신없이는 못산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하관을 하고 흙을 삽으로 조금씩 떠서 붙는데
울면서 나를 두고 어디를 가냐고 나도 같이 데려가라고 어떻게 슬피 울어서
옆에 있는 사람이 엉덩이를 살짝 밀어버렸습니다.
관 위로 떨어졌어요. 그랬더니 그 여자분이 나올라고 어쩔줄을 모르는 거에요.
언제는 죽고 싶다고 언제는 데려가라고 해놓고는 올라 올려고 하니까
다른 사람이 웃으면서 손을 내밀어서 끌어 올려줬습니다.
우리 같아요. 말로만 그러지 실상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만이 하실 수 있으세요.
그래서 이 세상에 나에게 가장 귀중한 분은 예수님이세요.
우리 육은 없어지지만 영은 영원히 있기 때문에
그분과의 관계를 떼려고 해도 뗄수 없는데
이 자리에다가 그 분을 모셨다고 하는 것.
그분이 왕이신데도 나 대신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그분을 내안에 가슴에 모시는 것. 이 안에 모시고 다녀야 될거 아닙니까.
우리 주님이 날 위해서 왕이시지만, 생명이시지만,
날 위해서 죽으신 그 분을
내 안에 모시고 산다면 그 분이 얼마나 기쁠까요.
우리는 주께서 왕이시지만 나대신 십자가를 지신 그분을 내 안에 모십시다.
내안에 그분의 자리를 내드리자 그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삶을 통해서 바로 이렇게 그 분은 왕이신데도 불구하고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대신 피 흘려 돌아가시고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구원해 주신 그분을 내 안에 자리에 모시는 그분은
항상 여기에 계실 분이라고 자리를 내드리는,
여기에 세상 것에다 자리 내주고 예수님 자리가 없으면 안되잖아요.
여기 우리 가운데 주님의 자리를 내드립시다.
그분이 나를 장악하시게 해야 합니다.
니고데모라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예수님하고 만나서 얘기를 하다가 예수님을 알게 됐습니다.
자기는 많이 아는 그런 사람이라, 자기는 괜찮다고 했는데
거듭남에 대해서 듣고는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자기가 죄인이라는 걸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가장 귀한 분을 자기 마음 자리에다가 모시고 살고 있는데
예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랬더니 향품을 백근이나 사다가 예수님을 장사지내려고 찾아온 사람이 니고데모입니다.
니고데모의 자기 마음 자리에는 항상 주님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왕이시지만 자기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그 분이
그 자리에 계속 있었기 때문에 바로 그분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도 장사지내려고 그 엄청나게 비싼 돈을 들여서
많은 양의 향품을 가져온 사람이 니고데모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이 내가 감당해야 할
죄를 대신 감당해주신 그 분을 내 안 자리에 왕으로 모시고
그분을 좌정하시도록 여기에 앉으시라고,
그리고 나의 왕이 되시라고 우리 안을 내드려야 될 줄 믿습니다.
두 번째는 14절입니다.
14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웃덮개를 만들지니라
두 번째, 아무 것도 아니게 보이나 귀하신
그 분을 우리 마음자리 안에다가 모셔드려야 합니다.
그림 아까 보신대로 제일 위에 있는 것이 해달의 덮개입니다.
해달의 가죽은 우중충하게 보입니다. 아무 것도 아니게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곧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읍시다.' 그러면 예수가 밥주나요?
예수가 우리의 식구를 먹여 살리나요? 그럽니다.
예수믿어서 밥이 나오냐, 죽이 나오냐 하는 그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예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아니게 보여도
그분이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를 대신해서 보여주실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는게 아니라 예수님만 보십니다.
우리 사람은 자기가 유리하면 해주고 불리하면 도망갑니다.
그런데 하물며 대신 죽는 것 까지도 해주신 분이 그분이시고
아무것도 아니게 보여도 하나님이요,
우리의 생명이요, 영원한 왕이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겉은 아무 것도 아니게 보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도 다 똑같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아무 것도 아니게 보이지만 예수님에게는 생명이 있으시고
우리와 영원히 살 수 있는, 구원하실 수 있는 가장 세상에서 귀하신 분이 그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마음 가운데 앉혀 드리고 그분이 좌정하셔서 나를 통제하도록 하셔야 합니다.
그 보다도 귀하신 분이 어디 계시냐는 겁니다.
그래서 해달의 가죽만 나오면 눈물이 글썽글썽해야합니다.
예수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깐 죽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 세상에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을 만드신 분이 바로 그 분이십니다.
우리가 말하고 듣고 가정이 있는 것 그분의 덕택입니다.
모든 것은 그분으로부터 시작한것이라는 것. 아무것도 아니게 보이지만
나에게 가장 귀한 그분을 우리 가슴 한 가운데 앉혀드리고 그 분이 나를 주관하시도록
자리를 내드릴 때 우리는 정말로 그분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넬료라고 하는 사람은 이방인의 로마의 군병, 백부장입니다.
많은 사람은 예수를 무시하고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인 고넬료는 예수님을 안것입니다.
다른사람들은 예수님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고넬료는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바로 베드로를 통해서 예수를 듣고 믿음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방인이지만 예수님이 아무것도 아니게 보였지만
그분은 바로 가장 귀하신 생명되시고 왕되신 분이라는 걸 알고
자기 가슴에 모셔드리고 살았던 사람이 고넬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아무것도 아니게 주님이 보여도
우리의 왕이신 것을 알고 날마다 삶속에서
우리주님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다 버리고
나에게 가장 귀하신 분이시고 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영혼을 책임져 주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분이 그 분밖에 없는 걸 알고
그 분을 우리 한가운데 앉혀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15절 보겠습니다.
15 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
16 각 판의 장은 십 규빗, 광은 일 규빗 반으로 하고
17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하게 하되 너는 성막 널판을 다 그와 같이 하라
세 번째, 은혜로 함께하여 서도록 만드신 그 하나님을 우리안에 모셔 드려야 됩니다.
조각목은 아무것도 아닌 아카시아 나무 같은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널판을 만든 것입니다.
아카시아 나무는 뗄감 외에는 쓸게 없습니다.
아카시아 나무는 손만 데면 짝짝 갈라집니다.
우리도 조금만 건드리면 짝 벌어지고 속상해서 그러더라구요.
우리가 아카시아 나무입니다. 아무것도 아닌거에요.
제가 우스운 얘기 하나할께요 '개는 죽으면 개고기로 팝니다.
그런데 사람 죽으면 천만원 듭니다.'
그러니깐 육신적으로 말하면 개만도 못하다는겁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널판으로 세웠다니까요. 이것이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그냥 세워지면 자빠지니깐 두 촉을 만들어서 세웠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만 주면 넘어지니깐 두 개 세워서 만든겁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세워놨습니다.
그리고는 거룩한 성막에 갖다 놨다니깐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거에요.
그 하나님을 우리 가슴속에 모셔 드려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 하나님이 무시당합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예수 믿게 만들어가지고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이 참 고마운 일입니다.
누가보기에는 좀 우스워도 아닙니다. 여기가 천국입니다.
성막에 아카시아 나무가 널판으로 쓰였다는 것, 그런데 거기에다가 금으로 입힌거에요.
아카시아 생 나무로 있을때와 금으로 입혔을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거에요.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우리 주님을 가르치셔서 믿음을 갖게 하고
우리 주님을 서게 해서 다 쓰임받게 해주신 그 은혜.
도저히 우리가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그 주님을 우리 가슴 중앙에 모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바로 은혜로 함께 하여 서도록 만드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내 가운데서 그분이 대접받으실 때,
그분이 얼마나 얼굴이 환히 웃으시면서 좋아하실꺼에요.
그런데 이 안에 대접도 안해주고 밖에 내놓으면 그분이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우리는 은혜로 함께해서 서도록 만드신 우리 주님을
우리 가슴 한 중앙에 모셔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가라고 하는 사람은 일차 전도여행을 할 때 힘드니까 돌아왔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원래 베드로의 제자입니다.
그런데 이 마가가 나중에 변화되었습니다.
왜 변화되었을까요?
아무것도 아닌 나같은 사람을 일차 전도여행에 쓰임받게 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어렵다고 돌아와버린 것이 나중에 너무나 잘못한 것을 알고
나중에는 그 배려해주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다 보니까
나중에 베드로에게 바울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실패했지만 나중에는 마가는 인정받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분을 중심에 모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하다보면 실수하고 잘못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그렇게 됐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모시고 그분을 섬기며 영광 돌리며
살아 갈 때에 하나님의 우리의 실패를 은혜로 바꿔서
나중에 귀하게 하나님에게 인정받을수 있을 줄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 내 안에 내가 가득차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자리하시고 내 자신을 주관하시며 통제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자리하셔야 하냐면
첫째로 왕이신데도 십자가를 지셔서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께서
내 안 에 자리하셔야 하고
둘째로 아무 것도 아니 것같이 보이시지만 나에게 가장 귀하신 하나님께서
내 안에 자리하셔야 하고
셋째로 은혜로 함께하셔서 서도록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서
내 안에 자리하시게 하셔서
모든 일에서 이것도 감사하고 저것도 감사하다고 말하며
내 안에 가잔 귀한 중심의 자리를 하나님께 내드려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고
우리를 주장하시고 인도하시며 역사하시고 축복하시는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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