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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바라보는 한 해

히브리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334 추천 수 0 2010.01.27 13: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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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히12:1~2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9. 1. 4. 성찬주일 4부 설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1~2)

<서론>
“예수님을 바라보는 한 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맹모삼천지교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학자였던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가 자랄 때 공동묘지 근처에 집을 두었더니 애가 늘 장례 지내는 모습을 보고 그 울음소리를 듣고 그 흉내를 냅니다. 벌레를 잡아서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하면서 울면서 땅을 파서 파묻는 이런 일을 합니다. 그 엄마가 보니까 큰일 나겠습니다. 그래서 집을 시장가로 옮겼습니다. 그 시장에서 물건을 팔러 가고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본 맹자는 “어~ 걸직걸직한 물건 사세요. 이 걸직걸직한 물건 진짜에요. 가짜 아닙니다. 진짜요.” 그리고 놉니다. 어머니가 보니까 “큰일났다. 이러면 안되겠다.” 서당 근처로 집을 옮겼습니다. 그러니까 매일 듣는 것이 글 읽는 소리입니다. 그러자 맹자는 늘 글 읽는 흉내를 내다가 나중에 장성하여 위대한 학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삶에 환경을 바라보고 듣는데서 굉장히 변화를 받습니다.
2009년 한 해, 우리는 시작부터 끝까지 무엇을 바라보고 사느냐가 우리의 운명과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늘 바라보고 늘 듣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헤아리면서 살아가야 될 것인 것입니다.

<본론>
1. 예수님을 바라보고 생각하면 마음이 달라짐
첫째로, 우리 집중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면 마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혹을 안 받는다는 사람이라도 자꾸 유혹을 바라보고 유혹하는 말을 들으면 그 마음이 시험에 들고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늘 세상 소식을 듣고 보면 마음이 불안, 초조, 공포, 좌절, 염려 근심이 마음에 가득합니다. 요사이 텔레비젼만 틀면 싸우는 국회의원들 보이지요. 신문만 보더라도 멱살을 잡고 싸우는 국회의원들 보입니다. 그런 것을 자꾸 보고 그 싸우는 소리를 들으니까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 짜증이 나고 불평스럽고 나라살림이 말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좋은 모범이 못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 소식만 들으면 세상의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우리 마음에 안개와 구름처럼 덮어서 짜증이 나고 우리의 삶도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의 은혜가 지켜야지요. 세상이 마음과 생각을 붙들면 우리는 혼돈되고 파괴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대속의 은혜를 생각하면 마음이 해방되고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늘 마음이 죄에 눌려 있고, 세상과 마귀와 유혹에 눌려있고, 병과 고통에 눌려있고, 저주와 가난과 낭패와 실망에 눌려 있고, 죽음의 불안과 공포에 눌려 있는 마음이 해방을 얻어야 되겠는데, 해방을 얻을 수가 없어요. 잔칫집에 가서 좀 즐거워하다가 웃으면 그 순간에만 잊어버릴까..돌아오면 마음이 큰 안개와 구름이 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음이 이러한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느냐.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몸 찢고, 피 흘린 그 은총을 생각하면 하나하나 마음에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하고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 예수님 보혈로 용서해 주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면 보혈이 넘쳐나서 나의 죄를 다 씻어 버리고 용서해 주시고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생각이 들어와서 죄의 억압이 사라지고 세속과 마귀는 예수님이 보혈을 흘리시고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생각하면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게 되고 마음이 죄와 세속과 마귀에서 해방되고 병들어서 억눌린 사람은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네가 나음을 입었다. 예수님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다는 것을 십자가를 바라보고 늘 생각하면 자연히 마음속에 병의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고 낭패와 실망과 저주를 당하고 어떻게 살아갈까 염려, 근심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이는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아브라함이 복이 임하게 하려 하셨다는 그 말씀을 기억하고 십자가를 바라보면 “아~ 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나의 인생의 가시와 엉겅퀴를 다 짊어지고 가셨구나.” 마음에 해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이 다가오고 불안하고 괴롭습니다. 누구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 없잖아요.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날 위하여 죽었다가 장사 된지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고 보좌 우편에 앉은 것을 바라보면, 나도 예수님 안에서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하사 함께 보좌에 앉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속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해방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대속의 은혜를 생각하면 마음이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를 늘 우리는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넘쳐나는 용서와 성령의 은혜와 치료와 축복과 영생천국의 소망이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기쁨이 가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아무리 부귀, 영화 ,공명이 많아도 마음이 불안하면 행복이 없습니다. 초가삼간을 짓고 나물을 먹고 살아도 마음이 평안하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평안인 것입니다. 평안이 없으면 지위, 명예, 권세, 부귀, 영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아요. 평안하면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 까지 다 누릴 수가 있고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평안이 다른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십자가에 다 내려놓을 때 우리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우리 자유가 어디서 옵니까? 십자가의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가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십자가만 바라보면 안돼요. 십자가에서 주님이 우리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를 헤아려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다 청산했구나.”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마귀와 세속을 다 이기셨구나.” 마귀와 세속에 대해서 자유를 얻습니다. “십자가에서 내 병을 다 짊어지고 가셨구나.” 병의 고통과 불안에서 해방되고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저주를 다 짊어지고 가셔서 내 인생에 다가오는 가시와 엉겅퀴를 청산해 버렸구나.”그러면 마음에 희망이 생기고 자신이 생기고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 죽음을 멸하고 주님께서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부활하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망과 음부가 다 사라지고 없구나. 예수 안에서는 영원한 천국과 영생만 있구나.” 이 진리를 깨닫게 되면 마음에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우편, 좌편에 강도 두 사람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그들이 거의 죽어갈 때 한 강도는 예수님을 쳐다보고 깨달았습니다. “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 메시아다.”깨달았어요. 그러니까 그가 뭐라고 했습니까? “주님, 주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예수님께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당장 구원을 받고 낙원이 약속된 것입니다.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강도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운명에 처했지만 한 사람은 깨달음으로 죽음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고 천국에 영광을 얻었지만 다른 사람은 깨닫지 못하므로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져서 지금도 지옥에서 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닫는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똑같이 교회 와서 똑같은 설교를 들어도 어떤 사람은 마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깨달아서 자유를 얻게 되고 어떤 사람은 깨닫지 못하므로 왔다 갔다 하고 아무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내가 깨달아서 자유와 해방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우리가 깨달으면 종의 멍에가 벗겨지고 마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한 인생은 짐승과 같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하여 깨닫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밝고 희망차고 긍정적인 꿈을 갖게 됨
둘째로, 십자가를 바라보고 비로소 밝고 희망찬 긍정적인 내일에 대한 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을 때는 내일이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새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은 불안하기 때문에 점쟁이를 찾아가고 사주팔자를 봅니다. 모든 사람들은 내일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일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깨닫게 되면 마음속에 평안만 얻는 것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찬란한 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받고 성령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꿈을 가질 수가 있고, 내가 마귀와 세상을 이기고 거룩하고 청결하게 될 수 있는 꿈을 가질 수가 있고, 내가 치료받아 건강한 몸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꿈이 있고 나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고 주님께 복을 받아 남에게 꾸어 주면서 꾸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질수 있게 되고 내가 죽더라도 살아서 영원한 천국의 영광에 주님과 같이 살 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택을 헤아리면 꿈이 마음속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확실히 내일에 대한 꿈이 마음속에 생겨나서 꿈 가운데 살게 되고 자기에 대한 자화상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나는 무능하다. 못났다. 바보 천치 같다. 병신같다. 잘나지 못했다. 참 기가막힌 놈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찌그러지고 이그러진 자화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십자가를 바라보면 자화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통하여 아무것도 아닌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자가 되었구나. 내가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구나. 자기에 대한 자화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자기의 사진이 달라져요. 옛날에는 못나고 비뚫어지고 패배하고 낭패한 사진을 늘 마음속에 걸고 다녔는데 이제는 밝고 맑고 환한 희망찬 사진이 마음속에 걸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면 꿈이 달라지고 자화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꿈꾸는 가에 따라서 인생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어떻게 보는 가에 따라서 언어심사 행동이 달라지고 운명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꿈이 새로워져야 되고 자화상이 새로워져야 되는데 인간의 노력으로써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이유가 있어야 꿈이 생겨나고 이유가 있어야 자화상이 달라지지요.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흑암의 세력을 멸해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미래에 꿈을 가질 수가 있고 예수님 구속 때문에 내 자화상이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올바른 자화상을 가지십시오. 욥을 보십시오. 욥은 나쁜 자화상을 가졌습니다. 항상 패가망신하고 온 자녀들이 다 죽고 병들 것이라는 잘못된 자화상을 가지고 벌벌 떨었으니 마귀가 그 틈을 타 들어가서 욥은 패가망신한 것입니다.
욥기 3장 25절로 26절에 보면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 남았구나”
내가 늘 두려워하던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던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욥은 패가망신하기 전에 패가망신 할 것이라고 늘 두려워하고 늘 무서워했습니다. 잘못된 꿈을 가지고 잘못된 자화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큰 불행이 다가온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하여 밝고 맑고 환하고 희망찬 꿈을 갖고 희망찬 자화상을 갖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내일에 대한 참된 희망과 긍정적인 꿈이 생겨나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얼마나 멋있는 자화상을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까?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셨고 우리 범사에 잘되기 위해서 저주를 짊어지셨고 우리 강건하기 위해서 채찍에 맞아 주셨으니 그러므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꿈을 꾸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런 자화상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굉장한 자화상을 가졌습니다.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1~5)
와~ 얼마나 좋은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왜 그런 자화상을 가졌느냐.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구약에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런 아름다운 자화상을 가졌는데 신약에서는 우리들은 예수님이 실제로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우리를 대속해 주셨으니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과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아름다운 미래를 꿈꿀 수가 있고 우리는 흥미로운 자화상을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자화상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옛사람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사진틀을 바꾸어 걸어 놓으십시오. 옛날 사진은 제켜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색칠한 사진을 마음속에 걸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반석이 생김
셋째로, 십자가를 바라보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반석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터전 위에 서고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기대는 것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세상의 모든 것, 돈, 지위, 명예, 권세, 쾌락 이것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흔들리고
변화무쌍합니다. 이번에도 큰 경제적인 위기가 세상을 휩씁니다. 이런 것이 한동안 휩쓸고 나면 재벌의 판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옛날에 떵떵거리던 재벌이 망해 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재벌로 일어나고 판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변화무쌍해요. 이 세계에서 가장 부자로 살고 권력 많던 솔로몬도 나중에 탄식하기를 “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모든 것이 헛되고 사라질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허무맹랑하지요.
야고보서 4장 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안개를 믿고 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면 무엇이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하나님의 사랑은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치 않는 하나님인데 그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모자라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으니 그 아들을 선물로 주신 이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날이 변하고 달이 변하고 계절이 변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내 모든 이웃과 형제와 친구들이 다 변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도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축복과 은혜를 주셨는데 그런 분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어느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서 그 자식을 위해서 은혜를 예비하겠습니까? 없지요. 남편과 아내는 더구나 어림도 없고 형제와 친구들도 사태 여의치 못하면 다 떠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몸 찢고 피를 흘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그분은 벼하지 않는 것입니다. 잘될때나, 못될때나, 흥할때나, 망할때나, 성할때나, 쇠할때나 변함없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는 우리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안 믿으면 무엇을 믿겠습니까? 사랑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믿음인데 여러분 거짓말 하는 사람을 믿을 수 있습니까? 변화무쌍한 것에도 믿을 수 있는 것입니까? 못 믿지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굳건한 반석이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도 안 믿으면 그는 천치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믿음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넘치는 사랑을 체험하게 되면 어찌할 수 없이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 같이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마음속에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이구 그러나 나는 신분이 별로 고상하지 못하고 인격도 훌륭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이 날 사랑하는지 안 사랑하는지 어떻게 압니까?” 그 굉장한 질문이지요.
에베소서 1장 4절로 6절 단단히 들어 보세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여러분이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겠다고 작정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게 된 것은 창세전에 하늘과 땅을 짓기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이 택해 주셔서 그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기뻐서 우리를 예정하신 것입니다. 왜 나를 택했느냐? 좋아서 택했다고 하는데 무슨 말 합니까? “아이구 저 꼬락서니 저걸 다 예수님 믿겠다고 하나님 불렀느냐?”고 하지만 “왜, 내가 좋아해서 택한다는데 네가 무슨 잔소리냐?” 요사이 아들 딸들은 부모 말을 안 듣지 않습니까? 성인이 되면 자기들이 신랑감 택하고 신부감 택합니다. 얼마 전에도 어느 부모가 나에게 와서 탄식을 합니다. 왜냐하면 금지옥엽으로 기른 딸이 부모가 도저히 원치 않는 남자하고 사귀면서 죽어도 그 사람하고 결혼하겠다는 것입니다. 좋은 혼처가 많이 나왔는데 보기도 싫고 만나기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보기에는 이 호박같은 남자를 자기 딸이 너무나 좋아해서 말로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보고 자기 딸을 데리고 올 테니까 신앙상담을 좀 해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못이기는 척 하고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데리고 와서 “왜 그 사람하고 결혼하려고 하니? 다른 좋은 사람이 많이 있는데.. 좀 더 만나보고 선택하지 왜 마음을 정해 버렸니?”라고 하니까 “목사님, 나는 그 사람을 죽도록 좋아해요. 내가 좋아하는데 무슨 말을 합니까?” 그 말에 할 말이 없어요. “맞았다. 맞았다. 맞았다. 네가 좋아하면 네 팔자 네가 선택하는 것이니까 좋았다. 부모님이 좋아하는 것과 네가 좋아하는 것과 다르지 않느냐.” 좋아서 자기 신랑감 택한 것을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안 좋아하는 사람하고 결혼했다가 나중에 불행하면 내내 부모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좋아서 했다가 불행하면 자기 책임이지 부모 책임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왜 저런 사람을 택해 주었습니까? 내가 좋아해서 내가 기뻐서 내가 창세전에 택했다.”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은 나를 창세전에 좋아하셔서 기쁨을 못 이기고 택해 주셔서 지금 내가 믿게 되었습니다.” 할 말 없지요. “하나님은 왜 나 같은 사람을 택했습니까?” 하니까 “내가 좋아서 택했다. 왜 잔소리냐?” 할 말 없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하나님을 믿을 수 있잖아요. 그렇죠? 하나님이 나를 좋아서 나를 택해서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고 영원한 영광을 값없이 받게 만들어 주었으니 이런 하나님을 안 믿을 수가 없지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가 자연적으로 믿음이 안 생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안 믿으려도 해도 안 믿을 수가 없어요. 그 큰 사랑으로 품어 주시고 안아 주시고 어루만져 주시고 돌봐 주시는데 그 사랑을 안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믿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믿습니다.” 할렐루야~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4. 대속의 은혜로 달라진 언어
넷째로, 십자가를 쳐다보면 우리 말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말에 큰 힘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3절로 6절에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기에 보면 우리가 말을 하면 말이 우리 몸을 굴레 씌운다는 것입니다. 말을 달리게 하기 위해서는 이에다가, 여기에다가 쇠를 넣어 가지고서 끈을 묶어서 위에서 당깁니다. 아프니까 위에서 당기는 대로 가는 것입니다. 이 조그마한 쇳조각이 입에 들어 있어서 물을 좌우로 운전을 하는 것처럼 혀는 여러분을 좌우로 굴레 씌워서 끌고 가는 도구인 것입니다. 혀가 말하는 대로 여러분이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혀는 삶의 방향을 운전하는 기구인 것입니다. 큰 폭풍에 거대한 화물선이 무사히 항구를 찾아가는 것은 밑에 있는 키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방향타인 키가 있어서 키가 이렇게 배의 방향을 잡는 것처럼 우리 혀도 우리 인생의 방향을 잡는 키라고 말한 것입니다. 혀가 방향을 잡는 대로 인생은 그리로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실패로 방향을 잡으면 실패로 가고 성공의 방향을 잡으면 성공으로 가는 것입니다. 혀는 키입니다. 그리고 혀는 온 산림을 불태우는 불씨와 같다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불씨로 불을 붙이는 것이 온 산림을 다 태우는 것처럼 우리의 혀에 잘못 불씨를 붙이면 우리 온몸을 지옥불로 태우든지 불씨를 잘 붙이면 온 몸을 성인의 불로 태우든지 두 가지 불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을 붙이면 천국이 우리 것이 되고 세상 불을 붙이면 지옥이 우리 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혀가 온 몸을 굴레 씌우고, 삶의 방향을 운전하고, 온 산림을 태우는 불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에 예수 믿기 전에는 말을 마음대로 했어요. 말에 대한 중요성을 별로 모르기 때문에 늘 말을 하는데 긍정적인 말보다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합니다. “아이구 죽겠다. 아이구 못살겠다. 벼락 맞을 놈이다. 빌어먹을 놈이다. 나는 늘 병든다. 나는 늘 약하다. 나는 하는 것마다 일이 안 된다. 내 팔자 고약하다.” 거의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속이 시원해요. 긍정적인 것은 눈에 안보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말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고생이 많고 고난이 많고 부정적인 것을 늘 마음속에 말할 수 있는 것은 주위에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그러면 부정적인 말을 하면 더욱 인생이 부정적이 되고 패배적인 말을 하면 더욱 인생이 패배적이 되고 절망적인 말을 하면 더욱 절망적이 되고 “내 팔자 왜 이러느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년도에는 좀 좋아질 줄 알지만 좋아질 요소가 없어요. 왜냐하면 말을 잘못하기 때문에 작년 같이 똑같은 말을 하는데 금년도에 좋아질 리가 있겠습니까? 말이라는 것이 우리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기 때문에 말도 자연히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 받고 나는 의롭게 되었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십자가를 통하여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 이제 하나님 뜻대로 의롭게 살아야 되겠다. 나는 십자가를 통해서 거듭나서 성령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성령이 같이 계신다.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는다.” 그렇게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치료 받았으므로 병을 이길 수가 있다. 어떠한 병이 와도 겁나지 않는다. 주님이 같이 계신다.” 치료의 말을 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성공의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나는 받은 사람이다. 지금 잠시 어렵지만 나는 복 받은 사람으로 복이 내게 임할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이 들에 가면 들이 복을 받고 집에 오면 집이 복을 받고 떡 반죽 그릇을 만지만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는다고 했는데 내가 복 받은 사람이니 내가 하는 일에 복이 임하실 것이다. 나는 구원 받아 영생 천국을 얻었으니 천당에 간다. 이 세상에 살 사람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간다. 나는 주 안에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모든 말에 자연적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에 믿은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늘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이 달라져야 인생이 달라지는데 말이 달라질 이유가 없어요.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면 여전히 죄가 있고 여전히 마귀가 있고 유혹이 있고 고통이 있고 병이 있고 가난이 있고 슬픔이 있고 낭패가 있고 실망이 있고 죽음이 있으니 그것을 말 안 할 수가 없지요. 보는 것이 그것이고 듣는 것이 그것이고 경험하는 것이 부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말을 하므로 자꾸 중복적으로 부정적인 것이 다가오지요. 말을 달리할 이유가 없는데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운명이 달라진 것을 바라보기 때문에 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문지른다고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우리 인생이 달라져서 말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말이 달라지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생기는지 말해도 될까요?
한국의 유명한 학자인 이어령 교수를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오늘날 그래도 이만큼 잘 살게 된 이유를 그는 말하기를 코흘리개 아이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잘살게 된 것은 코 주루룩 흘리면서 빨아 먹으면서 있는 어린이다. 요사이는 그런 애들이 없지만 우리 어릴 때는 학교가면 전부 누런 코가 여기까지 내려왔어요. 혀로 빨아 먹고 소매로 이렇게 하고.. 그래서 늘 듣는 말이 부모나 이웃 사람이 “야! 코 흥 해라! 흥!” 또 종이를 대놓고 “흥해라 흥!” 이어령 박사는 말하기를 흥하라는 것은 잘되라는 말 아닙니까? 하도 시골이나 도시 할 것 없이 부모들이 자식들 보고 흥하라. 흥! 흥하라 흥! 하니까 자식들이 다 흥해서 요사이 잘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유머스럽지만 참말입니다. 흥하라고 하는 것하고 망하라고 하는 것하고 다르잖아요.“망하라 이 놈아! 빌어먹어라 이놈아!” 그러면 망하고 빌어먹을 것인데 원튼 원치 않든 무의미하게도 흥하라 흥하라. 애는 그것도 모르고 흥했지만 흥하고 만 것입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하냐 하면 유명한 가수였던 어느 우리 집사님이 “가수는 대개 자기가 가장 히트한 곡대로 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자기가 히트를 해서 음반이 많이 팔리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그 부른 노래대로 그 인생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그러니까 가수가 한곡을 히트곡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개 5천 번 이상을 불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5 천 번 이상 그 노래를 불러야 히트곡이 돼요. 그러니까 그 말을 자꾸 부르니까 그것을 입으로 시인해서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게 말의 입에 있는 쇳조각 같이 되고 그것이 배의 키같이 되고 그것이 불씨가 되어서 그런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 그럴 리가 있냐?” 여러분 송대관 씨가 부른 노래가 뭡니까? “쨍하고 해 뜰 날”이지요. 송대관씨가 그 노래 부르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구두닦이였어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구두닦이를 하면서 “쨍하고 해뜰날”을 계속 불렀습니다. 그러자 그 인생이 쨍하고 해뜰날이 되고 만 것입니다. 평범한 것 같지만 우리가 늘 생각하고 말하고 부르는 노래대로 되는 것입니다. 늘 슬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슬픈 인생을 살게 돼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늘 좋은 노래를 부르고 긍정적이고 밝고, 맑고, 환한 노래를 부른 사람은 또 그대로 돼요. 그러므로 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 인생을 통째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갈보리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헤아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85살 먹은 아브라함을 보고서 어떻게 했습니까? “내가 너에게 자식을 줄터이니 그 자식이 너의 후손이 될 것이라” 그러면서 밤에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헤아리라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날부터 시작해서 하늘을 쳐다보고 밤이면 별들을 헤아린 것입니다. 그래서 별들을 헤아리는데 얼마나 헤아렸습니까? 100살이 될 때까지 헤아렸습니다. 1년을 헤아려도 아무것도 안생기고 2년을 헤아리고 5년을 헤아리고 10년을 헤아리고 15년 헤아려서 100살이 되었으니까 이제 파파 할아버지가 되어서 이제는 절대로 아기를 못 낳는다고 했는데 파파 할아버지가 파파 할머니를 통해서 이삭을 낳은 것입니다. 늘 별들을 바라보고 헤아렸기 때문에 그는 믿음을 가질 수가 있었고 꿈을 가질 수가 있었고 담대해 질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택을 헤아려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고 여러분에게 주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마음속에 헤아려 보십시오. 그냥 십자가를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어.. 저 십자가에서 내 죄가 용서함 받고 내가 의롭다함을 입었구나. 저 십자가를 통해서 성령이 오시고 내가 거룩하게 되고 깨끗하게 되었구나. 저 십자기를 통해서 내가 병 고침을 받았구나. 저 십자가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복이 내게 임하게 되었구나. 저 십자가를 통해서 영생 복락을 얻게 되었구나.” 그것을 자꾸 헤아려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헤아려 보면 그러는 동안에 마음이 평안해지고 마음에 긍정적인 생각이 생기고 헤아리다가 마음에 새로운 꿈이 생기고 자화상이 달라지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믿음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결론>
갈보리 산 십자가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고 그 모든 은택을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살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평안하고 기뻐지며 내일에 대한 꿈이 긍정적이 되고 자화상이 밝고 환하며 굳건한 반석 같은 믿음이 생겨나고 입술의 고백이 너무나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 오가는 인생은 허무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지 않고 교회만 바라보고 자기만 바라보고 원망, 탄식, 불평 하면서 살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도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 사람들이 말합니다. “너 교회 오가면서 뭐가 달라졌느냐? 예수 믿는다고 해서 달라진것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그럴바에야 나는 예수 안 믿겠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달라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왜냐?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같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시편 기자가 말하는 것처럼 “내 영혼이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말라.” 헤아려 보라. 저가 내 모든 죄악을 사하신 것을 헤아려라. 내 모든 병을 고치는 것을 헤아려라.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소원을 만족케 하사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는 것을 헤아려라! 하나님이 그대로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여러분 특별한 다른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보고 사는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루에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씩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은택을 헤아립니다. 매일요.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십자가를 바라보고 은택을 헤아리고 교회 나오면서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은택을 헤아리고 교회에서 앉아 있으면서 시간만 있으면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은택을 헤아리고 내가 잠들기 전에 십자가를 바라보고 은택을 헤아립니다. 습관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은택을 헤아릴 때 늘 마음이 평안해지고 내일에 대한 밝은 꿈이 생겨나고 자화상이 밝아지고 믿음이 생겨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총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믿음의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게 하여 주시옵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은총이 우리에게 빛처럼 쏟아지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우리가 모두 다 달라지고 변화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기적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 하나님을 잘 섬기고 더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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